상위 문서: 레드 제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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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록밴드 레드 제플린에 관한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다.메이헴, 바르그 비케르네스 등의 블랙 메탈 뮤지션들을 제외하면 레드 제플린은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가장 논란과 사건 사고가 많았던 밴드다. 최근에는 상술한 롤링 스톤스, AC/DC와 더불어 페미니즘과 PC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표적으로 비난받는 밴드이기도 하다.
2. 비판 및 논란
2.1. 표절 논란
"레드 제플린의 표절곡 8개" |
#[1]
레드 제플린의 음악은 워낙 많은 곡들이 표절[2] 의혹을 받아서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3] 물론 표절 문제 등 당시에 있었던 잡음들은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혀지고 어쨌든 듣기 좋은 곡들이라는 결과물만 남았기에 지속적인 인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고 있다. 비슷한 예로 오아시스도 활동 당시엔 표절 때문에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건 갈수록 잊혀지고 결과물만 남아서 별 태클 없는 인기와 거물이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4]
레드 제플린의 표절은 주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레드 제플린 앨범들 속에서 몇 곡은 고전 블루스 곡들을 1960, 70년대 기준에서 재해석한 커버곡이다. 즉 현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리메이크의 개념과 비슷하나, 현대의 리메이크 곡들은 크레딧을 원작자에게 주며, 이것이 올바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은 고전 블루스 곡들을 커버해서 앨범에 수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레딧을 플랜트-페이지로 해 놓아서(…) 문제가 됐던 것이다.[5] 마찬가지로 고전 블루스 곡들을 커버해서 앨범에 수록하였음에도 크레딧을 원작자로 올려놓고 원작자 혹은 그의 유족들과 수익을 나눴던 롤링 스톤스, 더 후 등의 밴드들과 비교되는 측면이다. [6]
이렇게 전성기 시절의 주요 앨범들에서 각종 표절을 저질렀기에 레드 제플린을 일컬어 창의적인 창조자라기보단 솜씨 좋은 장인, 내지는 빼어난 편곡자라는 비아냥도 있다.[7]
흥미로운 점은 원작자들의 표절 고소나 항의가 있을 때마다 리더 지미 페이지의 대처가 매우 신속하고도 똑똑했다는 것이다. 즉 표절 시비가 1심과 상소로 인한 상급심 등으로 장기간 이어지며 언론의 화제와 주목을 끌기 전에 바로 다음의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문제를 조속히 종결짓곤 했다. 한 방식은 크레딧을 원작자에게 아예 줘버리거나, 제플린의 일정 기여분을 인정받아 원작자와 제플린의 공동 작곡자로 변경시키는 것. 또 다른 방식은 크레딧은 그대로 제플린으로 두되, 거액의 보상금을 원작자나 사망한 원작자의 후손에게 줘서 합의를 보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플린에겐 수많은 표절시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상호간 다툼으로 재판이 길게 이어진 적은 거의 없다. 많은 경우를 합의금 제공을 통한 법정외 합의[8]로 조용히 종결지어서 원작자로 하여금 결국 고소를 취하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레드 제플린이란 위대한 밴드의 이러한 불명예스런 이면은 당시 평론가들과 뮤지션들의 비판거리가 되었다. 지미 페이지와 절친한 사이라고 알려져 있는 키스 리처즈 또한 지미 페이지가 훌륭한 기타리스트인건 인정하지만 훌륭한 ‘작곡가’는 아니라고 비판했고, 지미 헨드릭스도 키스 리처즈와 비슷한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표절 때문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밥 딜런도 레드 제플린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9] 그리고 롤링 스톤이 70년대에 퀸과 더불어 열심히 까대던 밴드가 레드 제플린이였다. 지금은 화해했지만 라이벌이었던 리치 블랙모어는 젊은 시절 대놓고 "지미 페이지는 과대평가된 표절꾼"이라며 깐 적이 있다.[10] 당시 기타리스트들은 정규 교육을 받을 형편이 아니어서 LP판을 귀카피하는 등 지금보다 더한 노력을 하였고, 서로 음반을 돌려 듣다보면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표절했는지 단번에 알아냈기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법이었다.
● 아래는 표절 의혹이 있었던 곡들의 일부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처음 발매시부터 원작자를 제대로 밝혀서 커버곡임을 명시한 곡들은 당연히 표절곡이 아니니 포함되지 않았다.)
- Babe I'm Gonna Leave You : 앤 브레든 (Anne Bredon) 의 곡을 커버한 곡인데 처음엔 허가도 받지 않고 크레딧도 Traditional. arr. Jimmy Page로 적었었다. 브레든 측이 고소하자 긴 법정공방 끝에 Bredon/Page/Plant로 수정.[11]
- Boogie with Stu : 리치 밸런스의 "Ooh My Head"에 기초해서 만든 곡으로서, 크레딧을 Bonham, Jones, Page, Plant, Ian Stewart, Mrs Valens 공동으로 명기하여 리치 발렌스의 어머니 Mrs Valens를 넣었으나, 이렇게 저작권 출판사측의 허락도 안 맡고 그냥 어머니만 끝에 슬쩍 넣은 건 제대로 된 크레딧 처리가 아니고 저작권 침해라며 리치 발렌스의 출판사로부터 표절 고소를 당해서 이 역시 출판사측 요구대로 합의금을 주어 해결했다.[12]
- Bring It On Home : 윌리 딕슨 (Willie Dixon) 이 작곡하고 소니 보이 윌리엄슨 2세가 1963년에 발표한 원곡을 변형시킨 곡. 역시나 허가도 안 받았고 작곡자도 Plant/Page로 표기. 딕슨 측이 고소하자 거액의 합의금을 줘서 법정외 합의를 봄.
- Bron-Y-Aur Stomp : 위에서도 언급되었던 버트 잰쉬의 "The Waggoner's Lad"가 원곡이다.
- Custard Pie : 슬리피 존 에스테스 (Sleepy John Estes) 와 해미 닉슨 (Hammie Nixon) 의 "Drop Down Mama", 부카 화이트의 "Shake 'Em On Down", 블라인드 보이 풀러의 "I Want Some Of Your Pie" 이 세 블루스 곡을 조합한 곡.[13]
- Dazed and Confused : 제이크 홈즈 (Jake Holmes) 의 원곡을 야드버즈 시절 페이지가 "I'm Confused"라는 제목으로 바꿔서 연주했고, 다시 가사를 수정해 데뷔앨범에 수록했으나 자작곡으로 표시. 2010년 제이크 홈즈가 레드 제플린에게 소송을 걸며 법정공방 끝에 2012년에 지미 페이지와의 합의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 How Many More Times : 하울링 울프의 "How Many More Years"를 기반으로 하고 알버트 킹의 "The Hunter"의 요소도 섞어서 만든 곡.
- In My Time of Dying : 가스펠 음악가인 블라인드 윌리 존슨이 "Jesus Make Up My Dying Bed"란 제목으로 처음 발표했고 이후 밥 딜런이나 록밴드 "Fear Itself" 등에 의해 여러 스타일로 커버된 곡인데, 레드 제플린의 레코딩은 조시 화이트 (Josh White) 의 버전에 기초하고 있다. 이 역시 크레딧을 그냥 Page/Plant/Johns/Boham으로 했다.
- Nobody’s Fault but Mine :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20년대 발표곡인 "It's Nobody's Fault But Mine"이 원곡. 레드 제플린의 버전은 John Renbourn[15]의 1966년도 커버 버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 Since I've Been Loving You : 60년대 미국의 사이키델릭 록밴드 Moby Grape가 1968년에 레코딩하여 발표한 곡인 "Never"의 가사와 곡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온 곡. 원곡은 Moby Grape의 베이시스트인 Bob Mosley 가 작곡했다.
- The Lemon Song : 하울링 울프의 "Killing Floor"를 표절했고, 가사는 로버트 존슨의 "Traveling Riverside Blues"에서 따왔다는 의혹을 받았다.[16] 하울링 울프의 출판사가 레드 제플린을 고소하자, 하울링 울프에게 크레딧을 주기로 하여 합의를 봤다.
- Trampled Under Foot : 로버트 존슨의 곡 "Terraplane Blues"의 가사에서 메타포를 가져온 곡, 곡 자체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17].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명곡 Superstition에서도 큰 영향을 받은 곡이다.
- Whole Lotta Love : 윌리 딕슨의 "You Need Love"를 표절했다며 딕슨 측이 레드 제플린을 고소해서 크레딧을 주기로 하여 합의를 보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윌리 딕슨이 작곡하고 머디 워터스가 1962년에 녹음해서 발표한 "You Need Love"란 곡을 영국의 록밴드 스몰 페이시스[18]가 1966년에 꽤 변형을 가해서 You Need Loving이란 제목으로 커버한 버전과 머디 워터스의 원곡을 짜깁기 한 곡이 바로 이 곡이다.[19]
여담으로 Stairway to Heaven 또한 표절곡이라는 루머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알려져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곡의 분위기 자체는 사람들에 따라 비슷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반음 하향 진행은 당시부터 현재까지 널리 알려진 대중음악의 작법중 하나이며 레드 제플린이 Spirit의 Taurus라는 곡에 영향을 받았는지 실제로 알 수 없고, 설령 영향을 받았다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레드 제플린의 대담(?)한 표절 12곡들이라는 기사를 올렸던 롤링 스톤도 서두에 Stairway to Heaven은 절대 표절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레드 제플린이 대단한 밴드임에는 분명하나, 이런 불명예스러운 흑역사 또한 분명히 있음을 잊지는 말자. 출처 참조 링크 들
2.2. 정치적 성향
현대의 수많은 연예인들과 셀럽들이 정치, 사회적 발언으로 인해 논란이 되는 것에 비해[20] 레드 제플린은 정치와 사회 분야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아서 논란이 됐던 케이스이다.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이게 왜 논란이 되었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레드 제플린 현역 당시, 즉 1960~1970년대 당시 영국은 음악가들이 당시 영국의 사회 현실과 보수적인 정부,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풍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당시 활동했던 비틀즈, 더 후, 핑크 플로이드 등 수많은 록 밴드들은 절대 다수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였으며 정치적으로 좌파의 성향을 가졌다. 물론 롤링 스톤스, 에릭 클랩튼, 브라이언 메이 등의 아티스트들처럼 보수, 혹은 강경 보수의 성향을 가진 록스타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 롤링 스톤스 또한 지지하는 정당만 보수당이지 Gimme Shelter 등의 곡들에서 베트남 전쟁을 비판하는 등 히피와 좌파를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또 록 음악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음악이기도 했던만큼[21]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에 비해 록 음악가들의 정치적 메시지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마지막 히피 밴드"라는 별칭이 있는 레드 제플린의 정치적 메시지에도 대중들의 이목이 당연히 쏠렸지만, 레드 제플린은 상술한 밴드들과는 달리 정치, 사회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존 폴 존스, 존 본햄 모두가 정치적 성향을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치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보적인 리스너들 사이에서는 레드 제플린이 사회적 의무를 저버렸다면서 논란이 있었으며[22][23], 수많은 런던 펑크 밴드들은 “돈에 눈이 멀어 로큰롤 저항 정신을 내다 버린 부르주아 밴드”라며 레드 제플린을 많이 비난했다.[24]
물론 이에 대해서는 정치병에 가까운 논란이라는 반박이 많으며, 록 밴드가 스스로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 의무가 전혀 아니다. 이러한 정치적 무관심에 관한 논란은 1980년대 들어 레이건 행정부와 대처 내각에 의해 좌파 운동권이 대다수 무너지면서 점차 사그라들었다.
여담으로 물론 동시대의 여타 밴드들에 비해선 정치 사회적인 곡이 없던 건 사실이지만, 사실 사회적인 곡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That's the Way는 당대 미국인들이 히피들에 대해 가지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Misty Mountain Hop에서는 영국 경찰들이 당대 히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레드 제플린이 정치와 사회에 별 관심이 없었던 덕분에 중증 나치 제복 덕후였던 지미 페이지가 네오나치 취급을 당하지 않고 "그냥 쟤네 또 약빨고 별 괴상한 짓 하나 보다"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3. 가사의 성적 비하 여부 논란
레드 제플린의 여러 곡들은 롤링 스톤스, AC/DC와 같은 록 밴드들, 그리고 여러 힙합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과거부터 현대까지 성 비하적인 가사라는 논란이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더 가디언에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성적이고 괴상한 가사로 뽑은 The Lemon Song, 성관계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Black Dog 등의 곡들이나, 로버트 플랜트가 아내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느낀 것에 대해 다루고 있는 What Is and What Should Never Be, 로버트 플랜트가 ‘오드리 해밀턴’과 불륜을 저지른 것에 대해 다루는 Hot Dog 등의 곡들이 그렇다. 특히 정치적 올바름의 광풍이 불고 있는 현재에는 이러한 레드 제플린의 가사와 후술할 사생활이 엮여서 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대 전후로 정치적 올바름을 대거 받아들인 롤링 스톤은 여타 록 장르와 더불어 레드 제플린을 어마어마하게 평가 절하하였다.[25]다만 이는 일부만 가지고 있는 관점으로, 위의 곡들은 특정 성에 대한 비하적 의도보다는 표현의 자유나 그저 거친 표현의 일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1960년대와 2020년대의 성적 개방 정도는 매우 차이가 있기 때문에 2010년대 이후 대두된 정치적 올바름 관점에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2.4. 악성 팬덤
빠가 까를 만든다는 말이 여러 유명인들에게 적용되듯이, 역시나 레드 제플린 또한 이러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레드 제플린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밴드중에 하나이기에, 레드 제플린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악성 팬덤들에 의한 논란이 해외에서는 번번하게 일어나는 편이다. 이러한 논란 자체는 레드 제플린과 비슷하게 팬층이 아주 두터운 핑크 플로이드에게도 똑같이 존재한다.[26][27] 물론 이는 밴드 본인들의 문제점은 아니고 팬덤의 문제점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비판이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적 영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레드 제플린의 표절 논란을 수정 전쟁에 의하여 영문 위키에서 끌어내린 것이 그들의 대표적인 악행이다. 그리고 레드 제플린의 표절 논란을 지적한 영상에서는 힙합음악의 샘플링과 유사한 행위일 뿐이라거나 또한 블루스 음악은 어차피 다 돌려쓰는 음악이라는 망언을 하며 무지성으로 옹호하고 있다.# 이게 가장 심각한 일인데 실제로 Quora에 레드 제플린 표절 논란 글을 보면 모두 짜기라도 한듯 하나같이 저런식으로 옹호하고 있다. 물론 후술하듯이 모든 레드 제플린의 팬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건 아니고 유독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악성 팬덤이 모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28][29][30] 또한 레드 제플린과 다른 밴드들을 비교하면서 다른 밴드들을 까내리는 일도 종종 일어나는 편이다.
물론 레드 제플린의 모든 팬들이 악성 팬덤인건 아니며, 대부분의 팬들은 이러한 악성 팬덤의 행보에 동조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는 이러한 팬덤을 미국판 사생팬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31]
3. 사건 사고
3.1. 난잡한 사생활
그루피들과 파티를 하고 있는 레드 제플린 멤버들. |
롤링 스톤스와 더불어 사생활이 개판인 밴드를 꼽을때 결코 빠지지 않는 밴드. 밴드 멤버 중 정상적인 사생활을 가진 사람은 존 폴 존스밖에 없다. 전성기 시절 음주, 마약, 기물파손, 섹스 스캔들 등 현대 연예계에서는 하나만 걸려도 바로 영구제명감인 사고란 사고는 모조리 치고 다녔지만, 과음으로 인해 사망한 존 본햄을 제외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70세가 넘은 현재까지 매우 건강하니 어찌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지미 페이지는 당대 록 음악계에서 키스 리처즈, 에릭 클랩튼과 더불어 마약을 가장 많이 했던 아티스트이다.[32] 키스 리처즈와는 같은 마약 공급업자로부터 마약을 사들여서 투약했다. 또한 1970년대 중반부터는 헤로인도 투약했는데, 그 부작용으로 거의 뼈밖에 안 남을 정도로 살이 엄청 빠지고 기타 실력도 그에 비례해 하락했다. 1979년 넵워스 공연 등 70년대 중후반의 공연을 보면 지미 페이지가 헤로인에 중독되어 헤헤 웃으면서 괴상한 춤을 추면서 삑사리를 쳐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미 페이지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마약을 정말 많이 했고, 트렌스젠더 클럽을 드나들며 마약을 투약했다. 마약을 너무 많이 투여해서 목숨이 위험하면 매니저와 관계자들이 멤버들을 기둥에 묶었다고 한다.
그루피 문제 역시 매우 심각했다. 레드 제플린은 1970년대 초반 롤링 스톤스와 함께 그루피를 가장 많이 이끌고 다니던 밴드였는데, 밴드 매니저가 공연이 끝나고 나면 성관계할 여성들을 집어서 골라주는 등 막장이었다. 또한 아예 그루피들을 전용 비행기까지 데리고 들어가서 다음 공연 장소로 이동할 동안 비행기에서 질펀하게 놀았다. 또한 지미 페이지는 당시 친하게 지냈던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즈 등의 록스타들과 그루피들도 공유하면서 성관계를 가지는 등 상상을 초월했다. 거기다가 이들은 14세 그루피와도 사귄 적[33]이 있는데, 현재 같았으면 페도필리아로 체포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로버트 플랜트와 지미 페이지가 페도필리아 성향이라는 소문은 1970년대 초반 영국 음악계 내에서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소문이었다.[34] 다만 후술하겠지만 레드 제플린이 페도필리아 성향이라는 것은 과장된 면이 있다.
이런 사생활의 정점으로 방문하는 호텔마다 난리를 친 사건은 아주 유명하다. 묵는 호텔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퍼포먼스는 더 후의 키스 문이 원조였는데, 더 후가 이런 퍼포먼스를 진행한 이후 롤링 스톤스와 레드 제플린 등 다른 밴드들도 이 퍼포먼스를 했던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레드 제플린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는데, 방문하는 호텔의 벽을 부숴 버렸으며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려서 친구들과 음주, 마약을 하고 고급 창녀들 및 그루피들과 성관계도 하면서 흥청망청 노는 난장판식 퇴폐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존 본햄과 친구들은 호텔 복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방문을 때려부쉈고, 파티 참가자들은 아무데서나 하고 싶은걸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호텔 측에 이를 복구하고도 남을 만큼의 변상을 했고, 팁도 두둑히 줬기에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이것 외에도 존 본햄이 술에 취해서 여성 기자의 옷을 찢은 적이 있다.[35] 존 본햄은 술버릇이 안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멤버들이 바로 그 기자에게 사과를 했다고 한다.[36] 어쨌든 중요한 건 루머로 추정되는 후술된 상어 사건과는 다르게 이 사건은 루머가 아닌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악마 숭배 루머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37] 또한 레드 제플린의 아동 성애 취향도 과장된 감이 있다. 지미 페이지가 14세 그루피와 사귄 것은 사실이지만 이 당시에도 아동 성애는 처벌 대상이었기 때문에 관계를 맺지 않고 빠르게 정리했다고 한다.[38]
3.2. 머드 샤크 사건
이런 기행과도 같은 사생활로 인해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괴소문이 여럿 퍼지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이른바 "머드 샤크 사건"이 있다.이 사건은 1985년에 출판된 레드 제플린의 전기인 ‘Hammer of the Gods’에 적혀있다. 책에 따르면 레드 제플린 멤버들은 적발의 어린 그루피의 옷을 벗겨 침대에 묶어놓고, 갓 잡아올린 상어를 토막내어 그 조각을 그루피의 질과 항문에 쑤셔 넣었다고 한다. 혹은 상어 조각을 쑤셔 넣은 것 외에도 그루피와 상어를 수간을 시켰다는 말도 있다.
머드 샤크 사건은 프랭크 자파가 노래의 소재로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당시 영국 및 미국 음악계에서 화제가 됐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관계 증명이 되지 않았으며, 당시 레드 제플린과 사이가 좋지 않던 롤링 스톤도 "확실하지 않은 헛소문이다"라고 일축하였다. 또한 상술했듯이 미성년자 그루피들에겐 마약도 하지 못하게 막았던 멤버들이 이러한 짓을 저지른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도 하기에, 현대에는 말도 안 되는 루머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관계 증명이 확실히 안 된 괴사건이라는 점에서 롤링 스톤스의 ‘레드랜즈 별장 사건’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 레드랜즈 별장 사건도 사건 내용만 보면 머드 샤크 사건만큼 기괴한 사건이다.
3.3. 음악과 악마주의
레드 제플린은 전세계적으로 역사상 가장 히트를 친 헤비 메탈 밴드였기 때문에 헤비 메탈을 말 그대로 혐오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집중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거기다가 멤버들이 흑마법에 심취한 적도 있었던 만큼 악마 숭배 의혹도 있었다.[39] 실제로 아직까지도 음모론자들은 Stairway to Heaven의 헤비메탈 파트를 역재생하면 악마를 찬양하는 어구가 들린다며 레드 제플린이 악마를 숭배하며 이를 일반인들에게 퍼뜨리려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보면 피가 모자라 사건의 원조격인 셈이다.이것이 한층 더 발전되어, 식물에게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들려줬더니 식물이 말라 죽었다라는 반지성주의적인 논리까지 나오게 된다. 당연하지만 이런 것들은 전부 레드 제플린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 유사과학, 음모론에 가깝지만, 여전히 이 음모론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다고 한다.
3.4. 공식 인스타 욱일기 사건
레드 제플린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일본 투어 50주년을 맞아 욱일기 문양의 디자인이 담긴 밴드 로고 티셔츠를 판매해 논란이 되었다.이러한 욱일기 논란은 퀸, 그린 데이 등 수많은 영미권 아티스트들에게서 생기는 논란인데, 욱일기에 반감을 가지는 한국, 중국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욱일기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레디 머큐리는 일본 투어 당시 욱일기 티셔츠를 입고 공연하기도 했으며, 빌리 조 암스트롱은 일본 공연에서 욱일기 뱃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1984년에 내한 공연 시도를 했던 퀸, 그리고 내한 공연에서 태극기를 두른 그린 데이였기에 욱일기 논란이 있더라도 혐한 혹은 와패니즈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레드 제플린 소속인 존 폴 존스도 내한 공연까지 했다. 따라서 영미권 밴드들이 욱일기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혐한이라고 보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4. 그 외
- 커트 코베인은 레드 제플린을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 이유는 가사가 여성 혐오적이라서라고.[40] 같은 이유로 AC/DC, 에어로스미스도 거의 극혐했으며 어릴 때 모았던 레드 제플린/에어로스미스 전집을 12달러에 팔아 치운 바 있다. 물론 The Lemon Song, Shoot to Thrill, Walk This Way 같은 곡들을 들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정작 너바나의 첫 공연에서 Heartbreaker[41]를 커버하는 등 레드 제플린의 곡들을 수차례 커버했고, 데뷔 전 레드 제플린의 음악으로 아티스트로서의 실력을 키우는 등 가사는 싫어해도 음악은 좋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라이브 퍼포먼스가 스튜디오에서의 퍼포먼스보다는 떨어진다라는 평가도 해외 록 매니아 사이에서 돌고 있다. 특히 마약에 취해 온갖 삑사리를 내던 지미 페이지의 기타 연주가 그렇다. 그러나 사실 팬들에게 라이브 실력을 지적받는 가장 큰 이유는 유튜브에 무료로 풀린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 공연 영상들 대다수가 로버트 플랜트의 역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1970년대 중후반의 공연이기 때문이다.[42] 밴드 극초기, 즉 1968년에 했던 공연들에서는 오히려 지미 페이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연주가 수준 이하라며 비판받았으나, 이후 레드 제플린의 전성기인 1969년부터 1972년까지의 라이브는 멤버들의 역량이 최정점을 찍었을 때이기에 매우 호평받는다.[43] 그러나 이 이후부터 지미 페이지는 약빨고 무대에 올라 비틀거리면서 삑사리를 쳐댔고, 로버트 플랜트는 무리한 공연으로 목이 상해버려 음을 낮추어 불렀기에 이러한 비판이 생긴 것이다. 다만 혹자는 이러한 모습이 오히려 자유로운 록 스피릿(…)과 히피 정신에 부합한다고 좋아하기도 한다.
[1] 이 논쟁에 관해 더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은 해당 링크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해당 링크는 오래 전에 레딧의 음악 게시판에 올라온 하나의 글이지만 레드 제플린의 표절 논쟁에 관해 첨예한 입장의 대립을 너무 잘 보여주기에 같이 첨부한다. 해당 링크의 댓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블루스 음악의 대부분은 돌려 쓰는 것이라는 옹호론부터 돌려쓰는 것을 넘어 핵심 아이디어를 훔쳐왔기에 표절인 것이다라는 반박론까지 반응이 다양하다.[2] 영어(속어)로는 rip off. 그 외에 공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plagiarism이나 혹은 piracy(해적질)라는 표현도 쓰인다.[3]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문단이 따로 있었을 정도지만 수정전쟁으로 사라졌다.[4]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표절은 아티스트에게 어떤식으로도 정당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오아시스나 레드 제플린이나 그들의 커리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표절 논란 이야기는 항상 안하고 넘어갈 수가 없을것이다.[5] 참고로 이러한 방식이 당대 주로 행해졌던 표절 방식이었다. 크레딧에서 원작자를 제외하고 본인들만 작성해서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이었다. 비틀즈, 비치 보이스, 스몰 페이시스 등의 밴드들도 이러한 표절 논란이 있으며, 이 논란에서 자유로운 밴드는 후술하듯이 커버곡 혹은 리메이크곡이면 크레딧을 꼬박꼬박 원작자로 기재했던 롤링 스톤스, 더 후 정도가 있다.[6] 심지어 롤링 스톤스는 머디 워터스, 슬림 하포 등 미국에서도 잘 안 알려진 블루스 음악가들의 음악을 홍보하고 그들이 무대에 설 수 있게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이는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다.[7] 꼭 안티가 아니더라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커버 밴드'라는 아이러니한 별명으로 이들을 칭하는 청자들이 꽤 있을 정도이다.[8] out of court settlement[9]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인사를 하자 차갑게 거절한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는 로큰롤보다 하드 록 성향이 강한 밴드들을 선호하지 않는 밥 딜런의 개인적인 음악 성향에 더 기인할 것이다. 실제로 밥 딜런은 본인의 노래를 커버까지 한 건즈 앤 로지스에게도 차갑게 대했다는 일화가 있다.[10] 당대에는 레드 제플린을 비판한 음악가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밝힌 음악가들도 매우 많았기에 뮤지션들 모두가 제플린을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믹 재거, 로저 달트리, 에릭 클랩튼, 키스 문 등의 음악가들은 제플린의 음악과 연주 방식을 극찬하면서 제플린의 팬이라고 밝혔다. 또한 레드 제플린 활동 시기에 데뷔한 뮤지션들 대다수가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퀸, 에어로스미스, 밴 헤일런.[11] 원곡을 들어보면 제플린의 버전과 전혀 다르긴 하다.https://youtu.be/A9VpWAEk6aI[12] 근데 리치 발렌스의 "Ooh My Head"도 리틀 리차드의 "Ooh My Soul"의 변주곡이다.[13] 페이지는 오마주의 의도라고 변명했지만 과연 표절과의 차이와 경계는 무엇인지?[14] 그런데 Watch Your Step 역시 레이 찰스의 "What'd I Say"와 유사함이 지적된 바 있다.[15] 지미 페이지가 열렬히 추종했던 뮤지션이자 위에서 언급된 Bert Jansch의 음악동료이기도 했다.[16] 그런데 로버트 존슨 역시 루스벨트 사이크의 "She Squeezed My Lemon"에서 가사를 따왔다.[17]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이 로버트 존슨의 Terraplane Blues에 대한 트리뷰트 같은 곡이라고 밝힌 바 있다.[18] 페이지와 플랜트 모두 이 밴드의 상당한 팬이었는데, 특히 플랜트는 무대뒤 대기실까지 따라다닐 정도로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좋아했다고 한다.[19] 스몰 페이시스도 제플린과 마찬가지로 크레딧을 본인들만 올렸으나, 제플린과 달리 윌리 딕슨이 페이시스의 존재를 몰랐기에(…) 고소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20] 레드 제플린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뮤지션들 중 당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됐던 데이비드 보위나 에릭 클랩튼도 정치적 무관심이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 논란이 된 케이스다. 보위는 파시즘 찬양 및 네오나치 논란이 있었고, 클랩튼은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21] 록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가 된 것은 68혁명과 관계가 깊고, 우파, 그 중 특히 기독교계가 록 음악을 혐오했던 것 등 록 음악은 힙합을 제외한 다른 대중음악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정치색이 강한 장르였다. 당장 위에서 제시된 Gimme Shelter 외에도 록 음악에는 Revolution, My Generation 등의 정치적인 음악들이 매우 많았다.[22] 레드 제플린 데뷔 이전에 로버트 플랜트가 마리화나 합법 시위에 참가했던 것을 제외하면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보내거나 정치, 사회적 활동을 한 적이 전혀 없다. 물론 후에 로버트 플랜트는 마리화나 찬성 시위에 참가했던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혔다.[23] 1971년 일본 투어 당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 공연을 열었던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당시 사람들이 록 밴드에게 기대하던 정치 사회적 메시지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다.[24] 아이러니하게도 레드 제플린과 반대로 1970년대 사회적 발언을 가장 많이 표출했던 핑크 플로이드는 "돈은 레드 제플린만큼 벌면서 노동자들을 이해하는 척하는 고상한 케임브리지 패션 좌파"라며 까였다(...). 이는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이 모두 일반적인 노동 계층 출신이 아닌 유복한 중산층 출신인 것도 한몫 했다.[25] 최근 롤링 스톤은 과도한 유색인종, 여성 친화적 행보로 몇몇 팬들로부터 ‘PC 스톤’이라는 멸칭을 받을 정도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의 음악이 21세기 음악에 끼친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고, 하드록, 블루스 장르의 음악이 절하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26] 그 수많은 밴드중에 하필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악성 팬덤 문제가 심한 이유로는 두 밴드중 레드 제플린은 록 음악의 하위장르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고 할 수 있는 헤비 메탈의 상징과도 같으며,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밴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두터운 팬층과, 메탈 음악과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을 접하면서 유입한 젊은 팬층이 합쳐져서 일부 팬덤이 악성 팬덤의 성향을 갖추게 된 것이라는 추측도 있을 수 있다.[27] 국내에서는 이들의 유명한 곡들이 알려져 있지만 밴드 자체가 유명한 편은 아니기에 이러한 논란은 존재하지 않으나, 반대로 영화 개봉 후에 국내에서 다른 밴드에 이와 똑같은 문제점이 생기게 되었다. 국내에서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의 인지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28] 모든 블루스 음악을 하는 록밴드가 표절을 하는거나 다름없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29] 물론 레드 제플린이 실제로 고전 블루스를 많이 리메이크한건 사실이다. 문제가 되는 점은 리메이크를 해놓고는 크레딧에 자기들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30] 첨언하자면 샘플링이라는 기법은 저 당시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샘플링은 도둑질이나 표절같이 숨기려는 행위라기보다는 오마주에 가깝다.[31] 똑같이 표절 논란이 있고 악성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훌륭한 아티스트라는 점에서 국내의 서태지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32] 이 당시 록 음악가들은 거의 모두가 마약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점잖은 이미지인 폴 매카트니도 대마초 때문에 체포 직전까지 갔던게 1970년대다. 당시 마약을 (거의)하지 않았던 음악가는 퀸, 러시, 딥 퍼플, 로버트 프립, 핑크 플로이드와 몇몇 프로그레시브 록 아티스트 정도 밖에 없다. 그리고 지미 페이지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주 알아주는 수준으로 마약을 했었다.[33] 위 사진에서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다. “로리 매덕스”라는 그루피로, 당시 지미 페이지와 연애했었다. 이 그루피는 데이비드 보위와도 사귀게 된다.[34]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재에는 이들의 아동 성애 성향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게리 글리터와 같은 사람과는 다르게 현재는 아동 성애에 그다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거나, 또는 흑역사로 치부하면서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5] 존 본햄은 평소에는 신사다운 청년이었다가 술만 마시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고 한다. 해외 투어를 갔을 때 딸을 위해 각 나라에서 산 인형을 손수 포장했다고 한다. #[36] 하지만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해고 이 사건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한들 여성의 옷을 찢는다는건 이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여성 인권이 낮고 난잡한 성생활이 난무했던 1970년대 기준으로도 정신나간 일이다.[37] 다만 한때 흑마법 사상에 심취했던 것은 맞다.물론 후에 존 본햄을 살려내는데 실패하면서 접었다.[38] 당시 지미 페이지와 사귄 로리 매덕스도 지미는 신사답게 처신했다고 회고했다. 마약도 손 대지 못하게 했다고.[39] 사실 헤비 메탈 밴드들이 악마를 숭배한다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블랙 사바스와 더불어 레드 제플린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다.[40] 커트 코베인은 좌파적인 정치 성향에다가, 극성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사람이다. 물론 "페미 나치"라는 말을 공공연히 했던 만큼 현재의 래디컬 페미니즘과는 분명한 거리가 있긴 하다.[41] 이 곡도 상당히 성적인 가사이다.[42] 1973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 1979년 네브워스 공연이 그 예시이다.[43] 이 당시의 라이브 연주는 대다수가 부틀렉이기에 고음질 녹음본이 거의 없으나, BBC Sessions 앨범의 디스크 2에서 1971년 공연을 공식적으로 녹음한 음원 버전을 들을 수 있다. 이 디스크는 레드 제플린의 전성기 시절 라이브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음원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