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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1 13:05:20

대한민국의 고속열차 개발사


1. 개요2. 1980년대 이전3. 1990년대
3.1. 차량 선정
3.1.1. 일본의 입찰 경쟁 탈락3.1.2. 독일의 입찰 경쟁 탈락과 프랑스 선정3.1.3. 선정 이후
4. 2000년대5. 2010년대6. 2020년대7. 논란
7.1. 프랑스 선정에 대한 비판과 반박
7.1.1. 일본7.1.2. 독일
7.2. 개발 순위 논쟁
8. 경쟁 차량들의 여담, 후일담9. 여담10. 연관 문서

1. 개요

한국의 고속열차 개발사.

2. 1980년대 이전

파일:観光号11-46-42.jpg
1970년대 당시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였던 관광호

1970년대 한국에서 가장 빠른 열차는 관광호 - 새마을호였다. 이 열차는 일본에서 수입한 강철제 객차, 발전차[1] 미국에서 수입한 디젤기관차의 조합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고속도는 최고 시속 150킬로미터가 한계였다. 그래서 1978년 11월 정부는 고속철도 건설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1983년 3월경 현대차량(현대로템의 전신)에서 새마을호보다 더 빠른 고속전철의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계획 시기와 요구 조건을 볼 때, 해당 계획대로였다면 영국철도 370형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철도 370형은 최고 시속, 기존선 사용, 틸팅열차 사양이 해당 계획 조건과 유사하고, 1981년부터 이미 운용 중이었다.[2]

3. 1990년대

85년에 시제차는 물론 조감도도 나오지 않으면서 고속열차 개발 계획은 취소된 것 같아 보였지만, 1990년대 경부고속선(경부고속철도) 계획과 함께 부활했다. 이때의 요구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3.1. 차량 선정

이후 당시 고속철도 시스템을 가진 단 3개의 국가였던 일본, 독일, 프랑스가 한국에 고속열차 수출을 계획했는데[4], 각국이 한국에 제안한 차량은 다음과 같다.

3.1.1. 일본의 입찰 경쟁 탈락

먼저 일본이 평가 기준에 미달해서 1993년 6월에 탈락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일본이 가장 먼저 탈락한 이유는 차관 제공도 없으면서 경쟁 후보 중에서도 누가봐도 가장 비싼 가격에다 성능도 가장 좋지 않았고 라이센스 생산은 물론 자체 중정비마저 불허할 정도로 기술 이전에 대해 배타적인 입장을 보여서 협상의 조건이 "이건 해도 너무한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지나치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철도 인프라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은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매우 컸다. 이 당시 한국 경제가 매년 고성장을 기록하고있었다지만, 그럼에도 도시철도와 고속철도를 건설하는것은 상당한 재정부담이 되었는데, 고속철도는 그보다도 건설부담이 컸다. 일본은 인도에 신칸센을 수출할 때 파격적인 차관 제공을 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현지에서는 신칸센이 대한민국의 고속열차 사업 입찰경쟁에서 탈락한 이유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국 내 반일감정 때문이다." 라는 설이 거의 정설처럼 굳어져있고, 일부 한국 고속철도 개발사업 참여진도 그러한 증언을 하는 등, 한국에서도 이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일본의 언플은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다.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 최대 규모의 토목 사업이었던 고속열차 건설 계획을 단지 '반일감정' 하나 때문에 세밀하게 협상하지 않고 진행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러한 조건은 일본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좋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고, 자신들이 제시한 입찰 조건이 해도 너무할 정도로 지나치게 나빠서 당시 철도청과 한국 정부는 이를 고속철도 사업 목적을 완전히 역행하는 조건 제시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이렇게 지나치게 안일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임했던 일본 협상단은 가장 많이 점수가 감점되었고 3파전에서 가장 먼저 탈락했다. 당시 철도청과 한국 정부가 일본 협상단한테 단체로 거액의 뇌물이라도 먹었거나 사리판단이 결여된 바보천치같은 인사들로 채워진 것이 아닌 이상, 일본이 아니라 다른 경쟁 후보 국가들을 선택하는 것이 전략상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결국,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도 저런 식으로 일본과 똑같이 불성실한 조건을 내밀었어도 거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이렇게 처음부터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으니, 반쯤 우스갯소리로 "일본은 뇌물마저 준비 안했다" 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협상에 전혀 성의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정말로 철도청에서 반일감정 때문에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었다면 국민들의 여론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을 것이 뻔한데다 정치권에서도 눈치를 봐야 되므로 일본의 신칸센을 도입해야 하는지 신경쓰지 않았을 리도 없었다. 또한 이 당시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반대하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기는 했으나,[9] 그럼에도 일본 기업들의 기술력이 한국기업보다 월등했던 시대인지라, 대기업들이 제품을 생산할때 일본기업으로부터 상당수의 기술을 사서쓰거나, 아니면 상당수의 중소기업에서 일본 기업 하청으로 먹고사는것은 알사람은 다 알았기 때문에, 일본의 기술 자체를 사서 쓰는것 자체는 찬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반일감정 하나 때문이었다면 일본은 처음부터 입찰을 하는 과정이나 협상의 대상으로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거나 아예 입찰하지 말라고 거부하면서 무시해버렸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게다가, KTX 개발 이전부터 일본에서 열차를 아예 들여오지 않았을 것도 불보듯이 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한국에서는 반일감정이 현재 2020년대보다 더 심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스라엘-시리아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등 무역은 물론이고 교류조차도 거부하고 있는 다른 분쟁국가들과 비교해보면 8.15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잘 지내왔고 무역과 교류는 계속 원활히 진행되어 왔었다.[10]

애초부터, 새마을호의 전신인 관광호는 아예 일본에서 차량을 직수입한 열차인데다, 그 외에 전동차들도 초기에는 아예 직수입 모델을 굴렸고 일부 유럽제 혹은 후대에 국산화된 경우를 제외하면 핵심기술을 거의 일본 기업인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에 의존해왔었다. 심지어 한국철도공사 VVVF 전동차의 경우, 초기에는 아예 본 문서에서 언급한 신칸센 300계의 기술을 일부 접목한 주변환장치를 적용했고, 최근에 출고되는 신차에서도 서울 지하철 5호선, 7호선, 8호선 우진산전 제작 차량 및 부산 도시철도 1호선 2017년 이후 도입 차량도 일본 기술에 기반한 인버터를 여전히 적용하는 중이다. 그래서, 정말로 반일감정 하나 때문에 입찰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 이유였다면 그동안 코레일 측에서 KTX 개발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일본 기업에서 직수입으로 도입하거나 기술제휴로 만들어왔던 한국의 열차들을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특히 상기한 VVVF 전동차들의 경우, KTX 개발 이전 시기인 199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20년 넘게 도시바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사실, 198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일본 측에서는 신칸센을 한국에다 수출을 추진하면서 기술을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그 당시에는 나온지 한참 되어 끝물인 신칸센 0계 전동차 였으니 그 무렵에는 0계의 후속으로 차세대 기종인 100계가 한참 개발중인데다가 도호쿠 신칸센용 200계가 등장을 앞둔 시점이고, 구형이 되는 0계는 한국에 기술이전을 해줘도 딱히 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일본에서도 한국 대기업들이 점차 차고 올라오자, 한국에 기술 이전을 해주지 말자는 여론이 늘어나게 되면서 이 때부터는 기술 이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협상에 비협조적으로 나왔으니 한국에서는 굳이 신칸센을 도입하고 낙찰해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3.1.2. 독일의 입찰 경쟁 탈락과 프랑스 선정

마지막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경합했는데, 선정 직전인 탓인지 1993 대전 엑스포에서도 두 나라는 각국의 전시관에 열차를 전시해놓고 자존심 싸움을 했고 결국 운용 경험, 금융 조건, 경제성, 사업 일정, 기술 이전 등을 비교한 끝에 1993년 8월에 프랑스가 승리했다.[11] 독일이 3개국 중 기술적 스펙이 가장 좋았고, 기술 이전, 차관 등 각종 조건도 일본보다 나았음에도 프랑스가 승리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기술 이전에 있어서 독일보다 프랑스가 적극적이었는데, 프랑스는 실제 도입된 것과 같이 시제차 1편성, 양산선행차 11편성을 제외한 전 편성 한국 라이센스 생산 허용, 노반, 분기기 등의 지상설비와 운용 시스템 한국 자체 선정과 개발 허용은 물론 향후 이전받은 기술을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해도 라이센스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제시했으나, 독일은 라이센스 생산을 허용하긴 하나 대부분의 차량을 독일에서 완제품으로 직도입하고 극히 일부 차량만 부품 단위로 반입해서 조립만 하는, 사실상 한국철도공사 200000호대 전동차서울교통공사 SR000호대 전동차와 같은 넉다운 생산만 허용해서 그야말로 허울 뿐인 거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노반, 분기기 등의 지상설비도 독일산을 써야 했고, 향후 이전받은 기술을 토대로 자체적인 시스템을 개발할 경우 라이센스 비용을 낼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프랑스와 손을 잡은 것은 기술 이전 외에 운용 경험도 큰 이유를 차지했다. 특히 프랑스 고속철도는 한국과 비슷한 수도권 집중 방사형 체제[12]로 구성되어 있어서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한국 철도망의 구조와 맥이 통했다. 당시의 한국은 단순히 차량만 수입한 게 아니라, 이와 연계되는 차량 및 선로의 유지보수 시스템까지 같이 도입했는데, 프랑스는 이런 파리 중심 방사형 고속철도망을 유지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에 선로를 보수하고 철수하는 시스템이 발전한 반면에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독일은 아예 한 구간을 틀어막고 보수를 하는 시스템이라 한국의 사정에는 맞지 않은 상황이었다.[13]

일각에서는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과 같이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훔쳐간 외규장각 도서를 반환해준다는 조건으로 TGV를 수입했다는 루머가 퍼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당시 3개국 중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고, 한국의 사정에도 그나마 가장 맞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ICE가 에세데 사고 때문에 탈락된 것이란 루머도 있는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며 차량 도입 계약은 1994년에 체결됐고 에세데 사고는 1998년에 일어났다. 물론 ICE 차량으로 결정이 났다면 사고로 인해 안전성 문제가 불거져 차량 도입이 늦어졌을 수는 있다.

3.1.3. 선정 이후

이렇게 프랑스 알스톰이 일본, 독일 대비 파격적인 수준의 기술 이전과 라이센스 생산 허용 조건을 제안해서 선정되었으나, 이는 차량 도입을 계약할 때 단종된 구형 기종인 TGV 레조를 떠넘기기 식으로만 생각했던 것이었고,[14] 프랑스 현지 기술진도 기술을 전수받으러 간 한국 측 기술진에게 처음에는 "어차피 기술을 가르쳐 줘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할 것이다" 라고 여기면서 거만한 태도로 대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뽕을 뽑겠다는 한국 측 기술 연구진의 끈질긴 물밑 교섭 끝에 고속철도에 대한 각종 저작권, 기술 도입 중에 새로 발견된 신기술에 대해서는 한국 측이 그 권리를 선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유리한 조건을 모두 따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 당시에는 알스톰 사내에서도 한국 측을 너무 얕보고 계약을 해버렸다는 반응이 있었다고 전해지면서, 공장에 칸막이까지 치는 등 갈수록 방어적이고 신경질적인 태도로 변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알스톰으로부터 100% 기술 제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50% 정도를 받긴 했으나 이마저도 차체 규격과 골격 정도에 불과했고 내장 설비 관련 기술을 비롯한 중요한 핵심 기술에 대해서는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일례로 당시 알스톰에 파견된 기술진이었던 이병석 현대로템 전 대표이사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한창 따끈따끈한 신차였던 TGV 듀플렉스의 알루미늄 차체 제작 공정을 구경하려고 하자 기술 이전은 스틸 차체에 한하기 때문에 알루미늄 차체는 보여줄 수 없다며 가로막거나, 도면에 대해서 설계 원리를 물어볼 때도 기술 이전은 설계도대로만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만 해주고 그 이상은 계약 범위 밖(Out of scope)이라며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불성실한 기술 이전 태도는 KTX-1을 인도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라서 한국 측에 제공된 KTX-1 유지보수 매뉴얼은 한국에 파견된 SNCF 기술자가 보기에도 대놓고 부실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알스톰은 해당 SNCF 기술자를 회유하려 시도했는데, 해당 기술자는 이러한 회유 시도에 분노하여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기술들을 전수해줬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알스톰은 자회사 EUKORAIL[15]을 세워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금성산전, 삼성전자, 금성전선, 일진 등 한국 7개 업체, 추가 프랑스 2개 업체와 한국TGV 컨소시엄을 만들어 KTX를 들여오기로 했고, 그렇게 프랑스 알스톰 공장에서 생산된 초기 도입분의 차량들이 1998년 4월 18일마산항으로 들어왔다. 당시 뉴스 당시 계획상, 동력차는 대우와 현대가 5 : 5, 보조 동력차(부스터 카)는 한진이 전부, 객차는 현대, 대우, 한진이 4 : 4 : 2로 제작할 예정이었지만 이후 전부 현대가 제작하게 되었다. 이유는 빅딜.#

4. 2000년대

산천 출시 당시 홍보영상

2004년에 KTX가 개통한 이후 프랑스 TGV 기반의 KTX-1 도입 당시에도 가장 큰 목적은 한국의 고속열차 독자 개발이었기에, 한국 기술진은 프랑스 고속열차면허 생산하면서 받은 기술로 고속열차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면허 생산 당시 알스톰의 비협조적인 기술 이전 탓에 한국 기술진이 프랑스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차체 규격과 골격 정도뿐이었고, 핵심 기술을 비롯한 내장설비 관련 기술은 거의 얻지 못하는 바람에 독자적으로 몇 년에 걸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하다시피 개발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 측 기술 연구진들은 이러한 조건에서도 그나마 얻을 수 있었던 기술들을 토대로 차기 시험 모델인 HSR-350X를 개발해냈고, 여기서 얻어진 기술을 기반으로 양산차인 KTX-산천을 새롭게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KTX-산천 1호기 출고 당시 기념으로 초청되었던 프랑스 측 인사는 뭐 씹은 표정이었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서는 고속철도 기술 수출 당시 핵심 기술을 가르쳐주지도 않는 등, 한국 고속철도 자체 개발에 불성실하고 비협조적으로 대했는데, 알스톰에서 제공한 기술을 뽑아먹을 대로 다 뽑아먹고 후속 고속열차는 스스로 강화된 제품으로[16] 자체 생산까지 해 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는 HEMU-430X로 최고시속 421km/h를 달성했고, 해무 기술을 기반으로 KTX-이음, KTX-청룡을 상용화시킨 후 우즈베키스탄에 이음 열차 기반으로 첫 해외수출까지 달성한 것을 보면 정말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5. 2010년대

세계 고속철도 시장의 주류가 지멘스 벨라로 등 동력분산식 차량이 되면서 한국 역시 새로운 동력분산식 400km/h대 고속열차 개발을 착수했고, 개발된 시험열차 HEMU-430X최고속도 421km/h를 찍으면서 세계에서 4번째로 400km/h대 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진 기술을 기반으로 첫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인 KTX-이음을 양산했고, 2022년에는 320km/h의 최고속도를 가진 KTX-청룡 양산에도 성공한다.[17] 이 쪽 역시 HSR-350X는 놔두고 아예 처음부터 새로 개발한 물건에 가까워 관절대차 같은 TGV의 흔적도 아예 완전히 사라졌다.

6. 2020년대

2021년에 준고속열차인 KTX-이음이 영업운행을 시작한 후 2024년 5월에는 KTX-청룡 초도편성이 영업운행을 시작하였다. 현재는 알스톰에서 도입한 KTX-1의 대체 준비를 위해 현대로템에서 최고 속도 370km/h의 HSEMU-370을 개발 중이다.

그리고 2024년 6월 14일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아프로시욥에 투입될 KTX-이음 기반의 열차를 7량 6편성 2,700억 규모로 도입하게 되어서 대한민국 고속철도 개발 이래 사상 첫 수출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향후 다른 국가에도 수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7. 논란

7.1. 프랑스 선정에 대한 비판과 반박

최근까지도 프랑스를 "구식 차량 팔았으면서 핵심 기술이전도 제대로 안 해준 유럽의 짱깨" 라고 비하하면서 프랑스가 아닌 일본이나 독일의 고속열차를 들여왔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사실, 굳이 신칸센 뿐만 아니라 한국 철도는 예전부터 일본 철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이 사실이 결코 일본이 한국을 호구잡으려 할 때 한국이 순순히 호구잡혀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독일어보다 일본어의 진입 장벽이 낮고, 일본 철도 덕후를 겸하고 있는 철도 동호인들이 적지 않은 철덕계 특성상 신칸센을 들여와야 했다는 주장이 ICE 도입 주장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이에 대해 당시 네임드 철덕인 조사부장의 반박글이 남아있다.# 해당 주장들에 반박하면 다음과 같다.

7.1.1. 일본

만약 일본을 선정했더라면 일본 측이 기술이전에 부정적이었는지라 도입 이후 독자적인 고속열차 개발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대신 N700계E6계 기반 차량을 일본에서 사 왔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마다 발생할 거액의 외화 유출은 덤. 게다가 후술할 대만의 사례처럼, 신칸센 차량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 대신 대한민국의 고속선 환경에 맞게 개수하여 들어왔으면 대한민국도 300계 대체용 신칸센 차량을 일본의 원본 차량보다 초고액으로 사 와야 했을 것이다. 대만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의 유로트레인 차량 도입을 결정하고 건설하던 도중 신칸센 차량으로 변경했기 때문에, 이미 유럽식으로 지은 신호 시스템과 선로에 맞춰 개수하여 들여왔다.

국가적 차원의 고속철도 기술 국산화 전략에 무지한 적지 않은 동호인들은 동력분산식 열차를 도입하지 못하고 동력집중식 TGV를 도입한 것을 매우 애석해 하지만, 기술이전도 기술이전이거니와 기본적으로 동력집중식이 기술적 난이도가 낮아 한국이 빠르게 고속열차 자체 개발에 성공한 점을 무시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일본이 제안한 열차는 300계인데, 300계는 신칸센 차량의 고질병인 낮은 내구성 문제[18]로 인해 2012년에 전부 퇴역한 이후 박물관에 전시된 선두차 1량을 제외하고 전부 스크랩되어 버려서 부품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고 동류 전환같은 부품 돌려막기로 연명하거나 아예 유지보수의 난맥 때문에 예상 사용기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조기 퇴역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700계를 기반으로 한 700T형을 도입한 타이완 고속철도의 경우, 700계가 단종되어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증차 목적으로 N700S계 기반 차량 도입을 추진했다가 편성당 185억 엔(700T형의 4배)이라는 초고액이 문제가 되어서 구매 협상이 중단되었다. 사실, 현재도 대만은 한국과 달리 현재에도 독자적인 고속열차 제조 능력도 전무하다.일본 뉴스 물론, 그 당시에는 일본은 누가 봐도 거지같이 불성실한 협상 조건을 한국에 내밀었다가 퇴짜를 맞으면서 거절당했고 받아들였을리는 없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7.1.2. 독일

독일의 경우 일본보다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많지만, 선정 이후 에세데 사고가 터져버려서 고속철도 건설과 고속열차 개발에 차질이 생겼을 확률이 매우 높다.[19] 사실 이보다 더 문제는 고속철도의 전반적인 유지보수 시스템이었는데,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종단선 고속철도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전국에 분포한 주요 도시들을 종횡으로 연결하는 철도망이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환경이다보니 프랑스는 운행종료 시간에 빠르게 해당 구간을 보수하고 철수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반면 독일은 어떤 구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해당 구간의 운행을 아예 일정 기간 통제하고 보수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철도망 형태가 독일보다는 프랑스와 더 비슷한 한국 환경에 적용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경부고속선 2단계 구간 분기기 문제나 2010년대 중반 이후 고질적인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주행능력 저하 같은 문제를 보면 ICE를 도입했을 경우 문제가 더 커졌을 것이다.

7.2. 개발 순위 논쟁

현재까지 한국이 세계 몇 번째로 고속열차의 독자 개발에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왜냐 하면 프랑스, 독일, 일본 외에도 한국보다 고속열차 개발에 성공한 나라들이 다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탈리아의 경우 피아트안살도브레다라는 제작사의 합작으로 ETR 500이라는 고속열차를 개발했다. 그러나 피아트는 철도차량 부분을 프랑스 알스톰에 매각했고, 안살도브레다 역시 일본 히타치에 인수되어서 현 시점으로 ETR 500을 순수한 이탈리아만의 기술이라고 봐야 할 지는 의문인 상태다.

스페인 역시 탈고라는 제작사에서 Renfe S-102라는 자체 제작 고속열차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쪽 역시 동력차 부분을 ADtranz라는 독일 제작사[20]에서 만들어서 순수 스페인 기술이라고 봐야 할 지 논란이 있다. 다만 후속차인 탈고 아브릴(S-106)의 경우 동력차도 국산화한 게 확인되었다.

8. 경쟁 차량들의 여담, 후일담

9. 여담

10. 연관 문서


[1] 새마을호 하면 떠오르는 스테인리스 객차는 1986년에 출시되었다.[2] 하지만 승차감 등의 문제로 인해 얼마 못가 2대 43형 기관차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3] 궤간, 차량한계[4] 이외에도 고속열차 제작 기술력이 있었던 국가들로 이탈리아 피아트펜돌리노나 스웨덴 AESA의 SJ 2000도 있었지만, 이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았다.[5] 스타 21의 규격과 동일하다.[6] 일각에서는 ICE 2의 개발형 기반이라는 주장도 있다.[7] 다만 중정비의 경우 "중정비를 일본으로 보내라는 자료는 본 적이 없다."라는 주장도 있어서 논란이 일부 존재한다. 물론 탈락 이유가 많아서 큰 의미는 없다.[8] 당시 가장 빠른 300계조차 평탄선 균형속도가 298km/h에 불과해 300km/h 주행자체가 불가능했다[9] 이 당시에도 어린이 시간대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놓고 방송되면서 인기를 끌고, 오락실 게임의 다수와 만화책 상당수도 일본것이었으며, TV 예능 프로그램 형식도 일본것을 암암리에 베끼는 경우가 비일비재한지라, 대중문화를 개방하면 드라마와 가요 등까지 일본 문화에 잠식될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막상 개방하니까 일본노래와 일본드라마가 한국을 점령할것이라느니 했던 우려가 죄다 기우가 되었고, 역으로 한국 가요와 드라마가 일본에서 유행하고, 취약점으로 생각했던 만화도 한국 웹툰 플렛품이 일본 만화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세로스크롤 형식의 웹툰이 일본에도 도입하면서, 청소년과 성인 만화와 애니메이션, 야동(...)을 빼면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는 역전세계가 되어버리기는 했다[10] 하다 못해 견원지간인 중국-대만도 교류는 한다.[11] 당시 신문 기사들을 보면 공정한 평가를 위해 300개에 달하는 항목별로 전문가 및 담당 실무진이 개별 점수를 입력하되 전체 점수는 볼 수 없도록 한 뒤, 정부가 총점을 집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최종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프랑스가 87점, 독일이 86점으로 양국의 차이는 1점에 불과했다.[12]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체제다. 그리고 이와 연관된 것도 KTX-이음이 다닐 경전선동해선, 중앙선밖에 없다.[13] 이런 일관된 시스템 도입이 안 되어 엉망진창이 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타이완 고속철도다. 선로, 운영, 공사 시스템은 유로트레인 기반이지만 차량은 신칸센 700계 전동차 기반으로 도입하면서 차량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했다. 타이완 고속철도 사례는 한국의 고속철도 시스템 도입의 완전한 반례로 이 문서에서 계속 언급된다.[14] 정확히 따지자면 TGV 레조는 1992~96년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1994년 당시에는 구형 기종은 아니라지만, 얼마 있지 않아 신형 기종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구형 기종인 셈이었다. 그렇다고 KTX-1이 그렇게 구형 차량은 아니었던 게, 당시 기존 레조는 물론이고 이후 만들어진 TGV 듀플렉스 차량에도 없었던 외부 행선 LED 안내판을 TGV 계열 차량 중 처음 도입했고, 일부 전장품을 듀플렉스 차량과 공용하거나(대표적으로 기존의 스티어링 휠 식이 아닌 원 핸들 주간제어기 방식이 있다.), 회생제동 추가 등 오리지널 레조보다 상당히 개량돼 도입된 차량이다. 즉, 레조에서 듀플렉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의 차량이라 볼 수 있기에 신형 기종이라면 나름대로 신형 기종이라고 볼 수는 있었다. 이 원 핸들 주간제어기 구조는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KTX-산천, KTX-이음, KTX-청룡에서도 그대로인데, 기관사들이 쉽게 운전실 배치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ITX-새마을의 마스콘도 이전의 새마을호 dhc 동차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도시철도와 다르게 몸 쪽으로 당기면 제동을, 앞쪽으로 밀면 역행이다.[15] 유코레일. 이후 알스톰 한국 법인으로 사명 변경[16] 알루미늄 차체, 관절대차 독자 개발 등.[17] KTX-청룡현대로템에서 코레일 추가발주분 17편성, 주식회사 SR 추가발주분 14편성을 추가 제작해서 초도분 2편성을 합해 총 33편성이 들어온다. 그리고 2026년에 남부내륙선 개통을 위해 13편성이 추가 발주될 예정.[18] 300계 이전에도 0계 역시 도입 20년도 안 돼서 노후화가 시작되어서 같은 종류의 신형 차량으로 대체된 적이 있었으며, 2010년에 최종 생산이 끝난 E3계 역시 20년도 못 채우고 신차인 E8계로 대체될 계획이다. 반면에, 다른 경쟁 후보였던 레조나 ICE 1은 300계와 달리 현재도 현역이다.[19] 참고로 이와 관련해서 1991년 과학동아에 실린 분석기사를 찾아보면 "초도운행 당시 문짝이 날아가고 화장실에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술적 성취로는 최고 수준이라는 ICE"라는 서술이 있다. 7년 후 벌어진 사고를 생각해 보면 예사로 안 보이는 부분. 타이완 고속철도가 시스템은 유로트레인 기반으로 들여와놓고 차량은 신칸센으로 틀어버려 누더기가 된 결정적인 두 계기가 921 대지진에세데 사고였다.[20] 이후 캐나다계 독일 기업인 봄바디어 트랜스포트에 인수되었다가 봄바디어 트랜스포트가 프랑스 알스톰에 매각되어 현재는 알스톰에서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유지보수를 진행한다.[21] 여담으로 과거엔 신칸센을 수입했었어야 한다는 주장이 상당히 있었지만 일본이 팔려던 열차가 신칸센 300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런 주장은 사실상 사라졌다.[22] 약 1400억엔[23] 1993년 미국에 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었고 대만에는 2층 열차파생형인 유로트레인으로 도전했지만 700계에게 밀렸다.[24] 이전에 ICE T를 오스트리아에 수출한 적이 있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철덕들은 한국 고속철도 사업에 독일이 지멘스 벨라로, 프랑스가 TGV 듀플렉스를 내놓았으면 승부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25] 영업 운전은 1984년부터 했고 2009년 독일에서 삽산이 도입되면서 퇴역했다.[26] 외형은 일본 485계 전동차 초기형과 유사하게 생겼다.[27] 다만, 일부 자료에는 처음부터 고속열차가 아닌 120km/h급 열차로 개발되었다는 정보도 있다.[28] 2편성 정도가 제작되었다고 알려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