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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남부전략을 비판하는 만평[1] |
1. 개요
1960년대 미국에서 공화당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미국 남부의 인종 보수주의 정서를 이용해 표심을 공략한 선거 전략이다.[2] 특히 리처드 닉슨이 집권한 계기가 된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 전략이 두드러졌다.이로 인해 중위 투표자 정리에 따라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체성이 점점 중도로 수렴하던 미국 정계에서 완전한 텃밭 교체가 일어나 공화당의 전통적 텃밭인 미국 북부가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인 남부가 공화당으로 이동하는 대격변이 완성되었다.
2. 역사
남부는 남북 전쟁으로 흑인 노예제를 폐지하고 1877년까지 거의 20년 가량 군정이 실시되었는데, 이로 인해 북부에 대한 반감과 북부정당으로 인식된 공화당에 대한 반감으로 민주당이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고, 흑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는 식의 각종 인종차별정책도 남부 민주당 조직에 의해 자행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 당시에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속에서 북부와 중부의 대도시들은 큰 성장을 보인 반면에 농촌 경제가 주산업이었던 남부는 북부에 비해 현저히 낙후된 지역으로 전락했으며, 윌리엄 J. 브라이언 및 인민당과의 연합으로 민주당도 개혁주의적인 의제를 받아들이면서 개혁주의 세력들이 민주당 내에서 나름대로의 지분을 차지하였지만, 불편한 동거는 이어졌다.그때까지 민주당의 모토는 각 주의 자유를 보장하며, 연방은 주의 권한을 넘는 정치행위를 하는 것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기 집권하게 되는 19세기 말에 미국이 북아메리카의 영토 대부분을 손에 넣고, 본격적으로 태평양에 진출하는 시점부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다. 이때부터는 미국이 오직 자국의 사정만 신경쓸 수 없고, 주 정부는 연방과 별개로 타국과 외교할 권한이 없기에 미국 연방의 팽창주의와 해외 진출은 자연스럽게 주의 권리 침해와 연결되었다. 사실 이 때는 공화당에서 계속 대통령을 배출했고 공화당의 이념은 연방 팽창주의었기에, 민주당이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었다. 남북전쟁에서 패한 후유증으로 정치적으로 발이 묶여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공화당의 장기집권 중 발생한 1907년 은행 패닉 이후 더이상 주 정부의 자유로운 경제활동만으로는 미국 경제의 쌓여있는 모순과 이 때문에 생기는 공황을 막을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끝내는 이 공황의 책임으로 공화당이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 패해 대통령 자리를 잃고, 우드로 윌슨은 국민적 압력으로 미국의 진정한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는 연방준비제도를 창설한다. 이는 민주당의 원래 이념과는 배치되는 경제의 중앙집중화와 국가통제의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한 논쟁거리였다.
우드로 윌슨이 마무리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민주당은 다시 대통령 자리를 공화당에 내준다. 하지만 공화당의 재집권은 처참한 대공황으로 돌아왔고, 당시 미국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굶을 걸 걱정하던 시대를 남긴 공화당에 대한 분노로 다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집권한다. 그가 밀어붙인 뉴딜정책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미국 참전은, 더이상 민주당이 주의 권한에 얽매이지 않고 미국 연방의 이익을 위해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제 민주당의 이념은 더이상 미국 건국과 창당과 함께 이어져 왔던 각 주의 권한 보호가 아니게 되었다. 원래 공화주의를 지향하던 공화당은 완전히 자기들의 이념을 민주당에 뺏긴 꼴이다.
20년간의 민주당 장기집권에 지친 미국 시민이 공화당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를 선택하지만, 공화당은 이전까지의 방식으로는 선거에 승리할 수 없어 전쟁영웅이자 중도성향의 아이젠하워를 모셔와 대통령으로 만들었기에 공화당과 민주당의 스펙트럼이 상당부분 겹치게 된다. 냉전 상황에서 공화당이 고립주의를 시도하기엔 이미 늦었다. 또한 2차 대전으로 인해 전시체제가 된 미국 경제에서 전 국민이 나와서 일하게 되어 이전까지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던 흑인,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 전쟁물자를 만들기 위해 노동하였고, 그 영향으로 1950년대~1960년대에 여성 인권 운동과 함께 흑인 민권 운동이 활발해졌다. 그런 여성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존 F. 케네디와, 케네디의 암살 후 후임이 된 린든 B. 존슨이 1964년에 민권법을 통과시키자 이제는 완전히 과거 노예제에서 시작된 흑백 분리 정책까지 뒤집히며 그동안 전통적인 지지자였던 남부 지역 백인들이 완전히 민주당에 배신당했다는 반감이 생겨났다.
같은 해에 열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주의 자치권이라는 의제를 가지고 나온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는 남부 백인들에게 호응을 어느 정도 얻었다. 당시에 존슨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존슨이 이기긴 했지만..[3]
그리고 이런 구도를 역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굳히면서 당의 체질을 180도 바꾸는 결단을 한 인물은 바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그의 정치 전략가인 케빈 필립스(Kevin Price Phillips)이다. 닉슨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있어도 실용주의자였다. 1964년 선거의 패배와 이어지는 린든 존슨 행정부의 행보를 보고, 과감하게 텃밭 교체를 시도한 것. 닉슨과 필립스는 과거 링컨이 만들어놓은 공화당의 이미지를 180도 바꾸어, 흑인에 대해 교묘하게 차별적인 수사를 구사하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흑인 권리 향상 정책에 반대를 표하여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당시 공화당이 대놓고 흑인차별이 옳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은 아니었고 공화당 주요 정치인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수사를 사용한 것을 부인했으나, 2005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인종 양극화를 이용했으며, 흑인 투표를 무시했다는 점을 NAACP에 공식 사과하였다. #
3. 같이 보기
- 미국/인종차별
- 뉴딜동맹 - 본래 뉴딜동맹은 흑인계층과 남부 백인 딕시들의 불편한 동거에 가까웠는데, 민권법으로 흑인계층의 지지는 더욱 강화되었으나, 공화당의 남부전략으로 후자가 빠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