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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20:37:54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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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등장 세력
2.1. 조선2.2. 초원2.3. 중원2.4. 강남2.5. 기타
3. 등장 인물
3.1. 조선3.2. 초원
3.2.1. 강족3.2.2. 격곤3.2.3. 누번3.2.4. 돌궐3.2.5. 동호3.2.6. 선비3.2.7. 예맥3.2.8. 월지3.2.9. 회흘3.2.10. 흉노
3.3. 중원3.4. 강남
3.4.1. 증3.4.2. 3.4.3. 3.4.4. 촉3.4.5. 파3.4.6. 민월3.4.7. 절
3.5. 기타
4. 연표5. 주요 사건6. 주요 밈7. 1000 정리

1. 개요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 관련 정보들을 정리해놓은 페이지.

2. 등장 세력

크게 초원 세력과 열국(列國)으로 구분되며, 열국(列國) 내에서도 중원과 강남은 차이가 있는 편이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중 현재 멸망한 국가/세력에는 뒤에 ◆ 가 붙는다.

2.1. 조선

플레이어 국가. 항목 참조

2.2. 초원

2.3. 중원


2.4. 강남



2.5. 기타

3. 등장 인물

작중 현재 사망한 인물의 경우 뒤에 ◆ , 은퇴한 인물의 경우 ◇가 붙는다.

3.1. 조선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조선/등장인물 항목 참조.

3.2. 초원

초원 부족들은 실존인물이 없다시피 하고, 해당 부족 언어를 고증해 작명하기도 어렵다. 때문에 비중있는 캐릭터의 경우 편의상 AA캐릭터 이름으로 통칭한다.

3.2.1. 강족

3.2.2. 격곤

3.2.3. 누번

3.2.4. 돌궐

3.2.5. 동호

3.2.6. 선비


3.2.7. 예맥

3.2.8. 월지

3.2.9. 회흘

3.2.10. 흉노

3.3. 중원

3.3.1.

3.3.2. 삼진

3.3.2.1.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위/등장인물 참조
3.3.2.2.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조/등장인물 참조
3.3.2.3.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한/등장인물 참조

3.3.3.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송/등장인물 참조

3.3.4.

AA 측면에서는 전반적으로 Fate 시리즈마토 가문(+마토 사쿠라의 바리에이션들) 계열 AA가 많다.

3.3.5. 위(衛)(작은 위)

3.3.6.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제/등장인물 참고

3.3.7.

3.3.8.

3.3.9.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진/등장인물 참고

3.3.10. 한(漢)

3.4. 강남

3.4.1.

3.4.2.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월/등장인물 참고

3.4.3.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은 시작되었다!/초/등장인물 참고

3.4.4.

3.4.5.

3.4.6. 민월

3.4.7.

3.5. 기타

3.5.1. 부여

3.5.2. 십제

3.5.3. 중산

3.5.4. 의거

3.5.5. 헬레니즘

4. 연표

기원전 4세기, 축록중원(逐鹿中原)은 시작되었다!/관련 정보/연표 참고

5. 주요 사건

전체 사건은 연표 참조.

6. 주요 밈

7. 1000 정리

※ '가속' 등 내용없는 1000은 제외.
1. 조선에 새로운 인재가 등용을 하러 찾아온다.
4. 조선에 좋은 일이 생긴다.
5. 위대한 철학자가 조선에 출현.
6. 리롤권(리다이스권) 1개
7. 조선에 크와트로 AA 출현.
10. 아무로 AA 출현.
11. 부여에서 뛰어난 외교관이 나온다.
15. 조선은 군마의 개량과 공성병기 개발에서 긍정적 성과를 얻는다.
16. 조선은 수군을 증강하는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한다.
17. 말 개량에 참여할 동호 사람이 합류
18. 조나라령의 빠른 안정화
19. 묵가의 인사들이 조선에서 회담을 갖는다.
20. 조선은 변법의 진척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게 된다.
21. 조선의 점령지 안정화에 부가적인 진척이 생긴다.
22. 묵가 인사들의 추가적인 유입으로 인하여 조선 전역의 방비도에 전반적인 개선이 목격된다.
23. 전차병을 해산하면서 남는 군마로 기병을 추가로 편성한다.
24. 조선의 복속/안정도 보너스에 진척 및 무성 요새화 자동 추진
25. 기이가 위나라에서 배워온 오자병법을 무관들에게 전수해서 무관들의 통솔이 오른다.
26. 예맥 포섭에 보정 추가
27. 예맥 복속에 보정
28. 점령지 안정화에 진척
29. 점령지 안정화에 보너스
30. 문예의 마지막 업무가 완수되어 변법의 진척에 적지는 않은 결과를 얻는다.
31. 일반적인 변법 가속도 보정
32. 제나라에 실망한 직하학궁 인재들이 상당수 조선으로 유출되어 전국적으로 교육 진흥이 있었다.
33. 기이는 우선 기식이 남긴 기록 등을 통해 기토에게 외교와 첩보를 가르쳐본다. (지력 상승)
34. 기이와 기토의 문무백관과 함께하는 오자병법(2차) 탐방기.
35. 조선의 중앙집권화 작업이 마무리가 가시권에 들면서 조선 조정의 다음 우선 과제가 관제 개혁으로 대두된다.(다다음턴 관제 개혁 보정.)
36. 조나라 군주 사망 패널티 약화
37. 공손앙에게 이전 대담에 의해 스스로의 생각에 변화가 있었는지,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하고 싶다면 거기에 도움이 되는, 어떤 업무를 하고싶은지 물어본다.
38. 직하학궁 출신 학자의 유입, 상앙과의 대담 등의 일을 계기로 인의패도론의 완성도가 정교해진다.
39. 무효로 통과(대신 40어장에서 1000, 1001의 2개 들어주기로 함)
40. 안문관 건설에 보정
40. 청구 개척의 과정에서 조선의 자체 수운의 발달
41. 맥성의 보리는 중원 제일이라고 소문이 난다.
42. 위나라 점령지 안정화 보정
43. 안문관에 논을 만들어 쌀재배를 한다.
44. 군제 개편 보정
46. 다음 조선 인재 AA로 유즈키 유카리
47. "우리 조선의 맥주맛으으으으으으으으으은 중원 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일!!"
48. 요서회랑 행군으로 빡친 묵가 공병대가 요서회랑에 고속도로를 깔 실마리를 찾아낸다!
49. 다음 구현령에는 호세, 증산 사절로 갔었던 성주의 후손 중 한명이 등장하려나...?
50. 조선후의 옥좌는 칼을 모아 녹여 만든 철옥좌.....일까?
51. 조선의 상징물중에 하나는 호랑이다.
52. 역사속의 랩배틀
53. 훗날 월의 사후 인생역정을 들은 조선후는 조회를 3일간 파할 것을 명했고, 흠모하는 대부들의 발길이 끊일 줄 몰랐다더라...
54. 기식의 과거에 대해서 알아보자.
56. 사실 기토는 현재의 철옥좌가 몸에 딱 맞는다(?)
(추가 정리 필요)
191. 조선 국군들의 바둑 실력
193. 초대 조선후 브로리의 진짜 이름은 '부루'. 제왕운기 스타팅 가즈아!
194. 극신 캐릭터AA 변경
195. 리롤권
196. 부여잔당 현황
197. 현재 비비오에게 투제라는 이름의 감상
[1] 초원은 서쪽의 돌궐과 동쪽의 조선으로 양분되어있는 상황이다.[2] 關市. 중원 국가와 주변 이민족 간에 벌어지는 공식적인 무역. 일반적으로 비과세였으며, 한고조 유방이 흉노 묵돌 선우에게 백등산 전투에서 패배하고 맺은 조약 조항 중 하나로 관시 개설이 있을 정도로 북방민족들에게 필요했다.[3] 월은 왕과 귀족들의 대립구도였는데, 월나라 귀족들의 접근을 거부하였고, 접근 사실을 월 왕에게 보낸 사실마저도 월나라 귀족들 손에 들어갔다.[4] 당시 조선은 위나라와 단순한 동맹 사이가 아니라 혈맹이라 부를 정도로 매우 긴밀한 사이였는데 조선과 동맹하여 제나라를 견제하고 있던 한나라가 먼저 조선과의 동맹 관계를 이탈하고 제나라에 붙어서 위나라 침공을 개시하자 조선 역시 제나라와 적대하기 보단 위나라를 뜯어먹는게 더 낫다고 판단하여 손바닥을 뒤집은 것. 사실 당시 위앵이 밀어주던 방연이 과한 군사행동으로 어그로를 끄는 바람에 조선과의 관계가 약간 흔들리고 있긴 했다.[5] 이때의 묘사는 거의 반쯤 합종군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대규모였으며 조선 15만, 제 18만 등 전국시대 후기에도 상당한 병력이라 여겨질 정도의 대병력이 위나라를 집중 공격했다. 다만 묘사상으로 볼때 조선이 15만씩이나 동원하면서 제나라가 이를 위협으로 여기고 마찬가지로 동원한 감이 있다.[6] 훗날 한나라와 서로를 헐뜯다가 여파로 강등되어 양공국으로 전락한다.[7] 훗날 위나라와 서로를 헐뜯다가 왕도 신정을 포함한 나라의 절반이 조선에게 병합된다.[8] 최고의 명장면은 송공이 직접 참여한 조선에서 벌어진 제사가, 자료가 남아있던 부분을 제한 나머지를 그냥 찍어서 진행했음에도 은나라 예법과 100% 일치했던 것이다. 송나라 전체가 감동의 도가니가 되었다.[9] 조선은 산융보다는 예맥계였다.[10] 348년의 정규 턴은 다이스 결과 위(衛)부터였는데 하필이면 바로 이전 해 판정에서 정규 턴 포함 저스트 1년 행동불가가 떠버리면서 그대로 행동이 날아가 버렸다.[11] 구체적으로 전후 협상안에서 격을 공이나 왕으로 올린다는 안도 논의' 되었지만, 결국 최종 협상안은 위군 유지였다.[12] 단순 국력이라면 조선이 앞설 가능성이 높으나 조선은 위나라와 오랜 기간 동안 동맹이었다가 이를 끊고 바로 뒤통수를 치면서 신뢰를 크게 상실해 외교적인 헤게모니를 쥐지 못하고 제나라에 한수 뒤처져 있었다[13] 이게 어느정도냐면 교동, 그러니깐 즉묵 일대를 제외하면 어장 초반의 노나라보다도 줄어든 것이다.[14] 결국 기설이 죽은 이후 얼마 뒤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였으나 참패해 원래의 영토는 조선과 송이 나누어가진 다음 옛 조상 땅인 진(陳)만 떼어주어 진후국이 되고 만다.[15] 작은 위와는 도찐개찐인데, 둘다 정규턴에서조차 행동이 확정이 아니고 작은 위는 0~88 다이스에서 0이 나와야, 주는 0~9 다이스에서 0이 나와야 했다. 언뜻 보기에는 주나라가 더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작은 위는 비정규 턴에도 다이스를 돌려보기는 하는데 주나라는 다이스를 돌려보지도 않았다.[16] 초를 관중 밖으로 몰아내고 하동 일부와 의거를 합병하여 북지군으로 만들었다.[17] 기근해결책의 하나로 과거 친초파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그리고 숙청의 반동으로 진나라 서부지역이 반란이 일어난다.[18] 후일 초나라가 대대적으로 흔들려 그 과정에서 공국으로 부활한다.[19] 후일 결국 황헐과 장신이 몰락하면서 초나라를 다잡을 수 있는 인재가 남지 않았고, 지방끼리 따로 놀다가 영역을 더 떼이게 된다. 이것은 항우가 일으킨 난 이후 남양까지 확대된다.[20] 오죽하면 스레민들 사이에서 '강남한다', '강남스타일'이라는 은어를 만들어질 지경이다.[21] 필사적으로 저항한 광릉성주의 형이었다.[22] 후일 송무왕 연패의 계략으로 촉발된 분열상의 여파로 공국으로 강등되며, 이후 추은령의 적용으로 불야와 회계를 반납당한다.[23] 의거왕은 흉노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건으로 발언권이 없다시피 했다.[24] 귀부 상대로 진말고도 돌궐, 조선이 언급되었으나 돌궐과는 문화가 다르고, 조선은 너무 멀리있어서 상대적으로 가깝고 또 왕족끼리 인척으로 묶여있던 진이 낙점되었다.[25] 물론 지금 한반도는 개발이 안 되있어서 국력은 일개 도시인 개성이랑 투닥이는 신세다(...)[26] 아예 주요 8대 가문 중에서 조선의 유가 정통파 학자로 기거하고 있는 인물이 나올 정도로 가까워졌다.[27] 돌궐 카칸 AA와 공유로, 어장 극초기에 기식의 AA가 군사행동 당시 조선군의 장으로 사용된 것과 동일 원리로 일시 부여되었다. 추가예시로는 대부 금강을 사로잡아 월국에 넘긴 무명의 제군 장수가 있다.[28] 조선 식으로는 명예직화 되기 이전의 조선상. 즉 이 사람보다 높으려면 돌궐 카칸이나 그 후계자 후보들 정도다.[29] 자신이 돌궐의 6인자라는 의미에서 하대부(...) 라고 소개하였고, 중대부 왕흘은 이에 자신보다도 지위가 낮음을 이유로 정말 대놓고 하대하자, 5인자(...)의 격을 전혀 느끼지 못한 위화감으로 이에 대해 질문하니 이내 기겁한 왕흘의 태도가 돌변하였다. 본인의 지식 부족을 이유로 왕흘이 범한 외교적 결례에 대해서는 대범하게 넘어갔다.[30] 군마, 그중에서도 농마로 전용이 가능한 힘과 지구력이 좋은 품종 위주로 제품을 제안하고, 그조차도 성과가 충분치 않다면 진이 공물을 보내었다는 소식을 통해 위신을 추가하여 벌충하자 하였다.[31] 사실 그 전에 아셰라드 칸을 지지하지 않는 동호 남부 구성원은 이미 조선에게 붙은 상태였기에 이 시점에서 그의 세력은 1/4이 되어있었다.[32] 그러나 전오 시기에는 정황 상 건강 악화를 가장한 독살 시도에 좀 시달렸다.[33] 나무위키에선 연희공으로 되어있다. 연간공은 다른 호칭으로, 일반적으로는 같은 한자를 쓰는 연간공이 100여년 전에 존재했기 때문에 '뒤 후(後)'자를 붙여서 연후간공으로 부른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헷갈릴 일이 없으므로 작품 내에서 쓰인 연간공으로 호칭을 통일한다.[34] 제까짓 조선이 뭘 하겠느냐면서 최전방 관문에 해당하는 지역을 그냥 비워두었다.[35] 참고로 사망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실로 골 때리는데, 하남대전 당시 다이스를 돌리다가 위(衛)의 판정에서 '아 얘 죽었나 보다' 정도로 언급되고 지나간다.[36] 그러나 모든 것이 틀린 이때 위사에게 강제동원당한 것을 가장하면서 휘하 병력들을 전원 무사히 투항시켜 주나라에 되돌려보내는 최후의 계책을 성공시키고 만족하며 죽었다. 조국의 현실을 넘어서는데 실패한 안타까운 인재라 할 수 있다.[37] 정확하게는 소진의 추천으로 발탁[38] 불리한 조건 한두개정도 물리길 기대하였지만[39] 변경사항은 연종에 주가 참여한다는 한구절뿐[40] 사실 진나라 쪽에서는 이 반란을 빌미로 군을 일으켜 농서 등으로 향하고 있었고, 한왕 자신도 돌궐 예하의 군소 이민족들을 포섭하고 있었다. 이 모두는 조선이 흉노를 친조선 세력으로 통합시키기 위한 밑작업이었다.[41] 즉 자신 또는 선대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다.[42] 영직의 경호원으로 조선이 정중히 영직 일행을 대접하기에 할 일이 없어 심부름을 나와 있던 도중 죽을 위기에 처한 사신단을 보고 괴한들의 장을 저격해 죽였다.[43] 독살 시도로 일행이 모두 도망쳐버려 정사와 부사만 남았고, 이 때문에 혼자 움직이던 아탈란테가 받았던 조선마가 수레를 이끌면서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강을 건널 때에는 인근에 조선인들이 있어 눈치가 명백히 보이기에 몰래 움직여야 했던 암살대들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44] 당시 초나라는 굴씨와 경씨에 불안점이 발견된 상황이었다.[45] 2차 완 전투, 5차 수춘 전투 포함[46] 상세 사유는 주요 사건의 산동대전, 진나라 내전 등 참조[47] 고씨 가문이 아니었으면 사형당했을 것이라는 언급이 나온다.[48] 다만 조선의 방첩요원이기도 했던 연종가, 그것도 필두인 방훤이 이 징크스의 예외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