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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군구에 대한 문서.2. 역사
중국사를 통틀어 난세에 군웅 군벌들이 땅을 갈라 싸웠고, 중국 대륙 시절의 중화민국도 군구를 설치했다.현재 중국의 인민해방군도 초기에는 군구별로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고 이점은 특히 인민해방군 초기에 두드러졌는데, 각 군구의 전신이었던 인민해방군 야전군들은 펑더화이, 린뱌오, 류보청, 천이 등등 전설적인 개국공신 지휘관들이 지휘하고 있었다. 야전군 사령관들은 계급이 도입되었을 때 모두 원수에 오를 정도였다. 이들은 자신의 부대를 1930년 초반부터 무려 20여년간 계속 지휘해 왔고, 수백 명에 불과하던 자신의 부대를 국공내전 말기에는 각각 100만명이 넘는 대군으로 성장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중심으로 한 야전군의 장교단은 중국공산당이 파견한 정치장교마저도 모두 개인적인 인맥으로 뭉쳐있었다.[1] 마오쩌둥은 항상 이들을 경계했고, 결국 문화대혁명 당시 이들을 모두 숙청하거나 실각시켰다. 특히 펑더화이는 국공내전 및 6.25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워낙 군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펑의 실각 후 군내에서 그 인맥들이 대부분 쫓겨나서 감방에 가거나 홍위병에게 치욕을 당하고 하방하여 뻘짓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군을 지배하던 국방장관 린뱌오가 쿠데타를 벌이려다 실패한 후(린뱌오 사건), 그의 군맥이었던 공군 장성들의 대부분이 연루유무에 관계없이 숙청되었다.
실제로 천안문 사건 당시, 베이징을 지키는 베이징군구의 병력이 출동하여 천안문의 대학생 시위대를 진압했어야 정상이지만, 베이징군구 사령관이 출동을 거부하여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다른 군구(지난군구)의 협력을 받아 진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 하지만 실제로는 베이징군구가 출동하지 않은 것은 군구 사령관의 출동거부도 있지만 사실 사령관이야 교체하면 그만이라서 결정적 이유는 아니고, 당시 중국의 군구는 각자의 관할 지역에서 병력을 충원하다보니 베이징군구 소속 군인이면 어떤 식으로든 베이징에 연고가 있게 마련이라 공산당이 원하는 것만큼 강경하게 밀어붙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베이징에 별다른 연고가 없었던 선양군구[3] 소속병력을 베이징까지 불러와서 시위를 진압한 것.
다만, 군구사령관이 아무리 강력했어도 원래 공산주의 국가들의 공산군이 다 그렇듯이 정치장교의 파워가 더 막강했기에 군구사령관이 진짜 군벌처럼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초반에 린뱌오나 펑더화이 레벨의 전설의 레전드급 건국공신일 때나 가능했고 군구지휘관의 권세와 위엄이 절정에 달했던 초반기에도 청말 중화민국의 군벌들과는 달리 중공 중앙정부에서는 군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중국군의 중앙집권화와 통제 수준이 높아지고 평화기가 길어졌으며 군구사령관을 포함한 장교진까지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군구사령관의 파워는 영 예전과 같지 않다.
3. 특성
군구제는 중국 이상으로 국토가 넓은 러시아도 쓰는 것으로, 국경선이 길면 구간별로 주적도 다르고 전장환경도 달라지기 때문에 나눠서 준비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 소련은 그래도 동유럽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지만, 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주변국 상당수와 사이가 나빴고 나머지 국가들과는 건국 이후에 나빠졌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대비하여야 했다.국공내전 말기에 500만 명의 대군을 보유하게 된 인민해방군은 각 성에 군구를 설치하고 병력을 나누어 배치했다. 군구제가 설치될 1950년대는 중국이 워낙 큰데다가 중국의 교통수단이 영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병력수송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각 성(省)에 군구가 설치되었으며 심지어 성 상위에 대행정구, 인민위원회, 군정위원회 등이 설치되는 등 당시 중국의 행정구역조차 계엄령 치하의 군정권이나 다름없었다. 국공내전 이후에도 6.25 전쟁, 중월전쟁 같은 해외전쟁이 있었고 중국 대륙내에서는 국민당지지 유격대나 잔당들이 출몰했고, 내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성에 상주병력이 있어야 했다. 1958년까지는 대륙 내에서 공산당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소멸했고, 이어 병력을 400만으로 감축하였으며, 중공의 내외 정세에 따라 각 성에 설치되었던 군구는 계속 여러차례 분할되고 통합된다.
4. 편제 : 7대 군구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구 | |||
선양군구 | 베이징군구 | 란저우군구 | 지난군구 |
난징군구 | 광저우군구 | 청두군구 |
1985년, 다시 군병력 100만을 감축하면서 13개 집단군을 재편, 크게 중국 영토를 7등분하여 중공군 최후의 군구 7대 군구를 설치, 각각의 지역에 군구에 2~3개의 집단군을 두는 식으로 군을 세분화시켜 놓았다. 중국의 7대 군구는 일곱 개로 선양군구[4], 베이징군구[5], 란저우군구[6], 지난군구[7], 난징군구[8], 광저우군구[9], 청두군구[10]였다.
난징군구는 대만, 청두 군구는 인도, 광저우 군구는 베트남, 선양, 란저우, 베이징 군구는 러시아가 주적이고, 특히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반도(대한민국, 북한) 북부에서 한국군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11] 각 군구마다 전략적, 전술적 교리가 다르고 이에 따라 무기 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체로 육지로 맞닿지 않는 대만 섬의 중화민국, 일본을 상대할 난징군구는 J-10, J-11과 같은 최신형 전투기와 방공함이 우선적으로 배치되고 있다. 난징군구는 타 군구에 비해 전투력이 점점 올라갔다. 중국 전체 항공전력의 절반이 넘는 4세대급이 배치되어 있고 공군 최신 항공기들은 전부 이쪽으로 몰리는 듯하다. 청두 군구는 히말라야산맥에서 인도군과 국지전을 치르는 정도가 목적이라서 [12] 산악부대 (제52, 53 산악여단)와 헬기강습부대가 배치.
선양군구는 유사시 한국군을 상대로 한 북한 지역에서의 공격 임무 수행이나 북한 정권교체 혹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한 만주에서의 방어전에 투입되어야하며 최종적으로는 베이징군구, 지난군구와 합쳐 한반도와 러시아 극동 지역을 장악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기갑부대의 비율이 높다. 만약 북한에서 모종의 사태가 나면 중국에서 선양, 베이징, 지난 군구와 이에 배속된 중국 해군 함대가 출동할 것이라고들 한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60~80만 병력이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13]
단 아무리 군구제를 하더라도 핵무기를 관장하는 로켓군은 당연히 중앙군사위원회의 직속 통제 하에 있다. 핵무기는 그냥 강력한 무기 정도가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쓰이는 정치적 카드인데, 이런 민감한 물건을 일개 야전사령관이 제 마음대로 발사하고 다니게 허락했다가 정말로 발사하면 어느 나라나 다 후폭풍 감당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중국군도 핵은 중앙정부 직속으로 철저히 통제하는 중이다.
2015년, 다시 군병력을 감축하면서 7대 군구를 5대 전구로 개편되었다.[14]
5. 같이보기
[1] 류보청의 정치장교였던 덩샤오핑이 계속 류보청을 옹호한 것이 유명한 예.[2] 당시 베이징 위수구역 담당 제38집단군 사령관인 쉬친셴(徐勤先) 중장은 진압명령을 받자 "'인민해방군은 인민에게 총부리를 돌릴 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했다. 그는 바로 지위해제된후 명령불복종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서방에서는 사형에 처해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5년형을 받고 이후 스자좡시로 거주지를 제한당했다고 한다. 사건 20여 년 후 홍콩의 <빈과일보>가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가 인터뷰했는데, 그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도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3] 위에는 지난군구라고 하지만 실제 출동한 병력은 선양군구였다.[4] 현 랴오닝성 선양.[5] 현 베이징 시[6] 현 간쑤성 란저우.[7] 현 산둥성 지난.[8] 현 장쑤성 난징.[9] 현 광둥성 광저우.[10] 현 쓰촨성 청두.[11] 사태가 이 정도가 되면 미군도 당연히 참전하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선양군구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12] 중국-인도 양국은 가끔씩 국경분쟁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전면전 상황으로 번지는 것은 굉장히 꺼린다.2020년에도 화기를 쓰지 않은 격투로 수십명이 사망했지만 (인도군이 여러 중국군의 무기들을 공개하기는 했지만, 현지 상황을 보면 해발 6000미터 넘는 산악지역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추락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면전으로가지는 않았다.[13] 최대로 잡을 경우 이 3개 군구에 다른 군구 병력도 일부 차출하여 최대 8~10개 합성집단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대 이후 기준으로 한국 지상군 현역 병력의 두 배 정도.[14] 그러나 지리적인 특성상 서쪽 끝에 있는 서장군구, 신강군구는 육군 직할 군구로 존속하는 것으로 2016년에 다시 편제를 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