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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12:44:36

경방

경성방직에서 넘어옴
범동아일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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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경방
영문명칭 Kyungbang Co., Ltd.
설립일 1919년 10월 5일
설립자 김성수
회장 김준[1]
대표이사 김준, 김담
업종명 그 외 기타 소매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56년 ~ 현재)
종목코드 000050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OSPI200
KRX100
자본금 137억원 (2019)
매출액 2,535억 5천만원 (2019)
영업이익 389억 6천만원 (2019)
당기순이익 222억 2천만원 (2019)
직원 수 266명 (2020.03.31)
주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영중로 15 (영등포동4가)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기업정신4. 그룹 회장5. 역대 로고6. 역대 임원7. 오너 일가8. 지배구조9. 관계사 목록10. 여담11. 공익사업12.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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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방직업체로 삼양그룹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조선인이 세운 기업들 중의 하나이다. 매우 오래 전에 세워진 회사이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배울 때 물산장려운동[2]에서 이 회사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조흥은행에 이어 유가증권시장 상장업체 5호다. 현재의 사명인 경방은 직()의 줄임말에서 비롯됐다.[3]

2. 역사

1919년에 인촌 김성수가 이강현의 조언으로 도산 위기에 있던 경성직뉴를 인수해서 재설립한 게 기원이다. 초기에는 경영상 적자를 겪었으나 1922년에는 관계사 경성직뉴 산하에 고무공장을 세워 '별표 고무신'을 생산했고, 1923년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공장을 연 뒤 직원을 100% 조선인으로 채우고 방직제품 생산을 개시했으나 일본제 면제품이 독점한 터라 시장진입에 어려움이 생겼다. 이에 따라 우리 풍토에 맞는 제품을 구상하여 농촌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고자 수십번 빨아도 해지지 않고 묵직한 중량 제품을 고안토록 했다. 심지어 상표명에도 1926년 나온 태극성 및 불로초 등과 같이 우리말 상표명을 적극 쓰기도 했다. 아래 사진과 같이 같은 시기에 물산장려운동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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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경성부 황금정 1정목에서 광교로 사옥을 이전한 후 1933년 영등포공장 증축 후 대규모 방직업체로 성장해 일본계 기업과 경쟁했으며, 1939년 만주국에 남만주방직회사를 세운 후 1944년 동광제사 및 중앙상공을 합병했고, 1945년 8.15 해방 이후 경성방직 출신 기술자들은 국내 면방직업 재건에 기여하기도 했다. 해방과 6.25 전쟁을 거치며 관리 미숙과 일부 시설 파손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영등포공장 일부 시설을 복구해 명맥을 이어갔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 시 상장해 1962년 동일방직과 함께 동인염색공업을 인수한 후 1968년 면제품 판매체인 '경방써비스코너'를 열었고, 1970년 현 명칭으로 변경한 후 영국령 홍콩에 해외지사를 세웠으며, 1974년 경기 용인군에 공장을 세우고 1975년 경방고등공민학교를 열었다. 1984년 경기 안산 반월공장, 1987년 광주공장을 각각 세웠다.

다른 한편 1973년 태평증권, 1977년 새한패시픽 등을 각각 인수하고 1980년에는 경방코너를 독립법인으로 분사시켰고, 1990년 경방어패럴을 세워 패션업에도 진출하고 1994년 8월 31일 '경방필백화점'을 개점해 쇼핑사업에도 진출하고 관련 업무를 경방유통에 맡도록 했다. 같은 해 한강종합유선방송 설립에 참여해 지역 케이블SO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거치며 계열사들을 정리하며 2001년 우리홈쇼핑 설립에 참여했고, 2003년 경방상사를 합병하고 영등포 복합단지 개발계획 'K-Project'를 추진하며 영등포공장을 폐쇄했다. 2006년 우리홈쇼핑을 롯데쇼핑에 팔고[4] 2007년 (주)신세계와 백화점 위탁경영 20년 계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경방필백화점을 폐점했고, 2008년 베트남 현지법인을 세웠으며 2009년에 영등포 경방 타임스퀘어를 개장했다. 2015년 경방유통을 합병하고 2019년에는 면방업계 사양화에 따라 용인 및 광주공장 생산업무를 중단시켰다.

쇼핑몰 사업이 확대되어 2021년에는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역 舊 포도몰에 타임스트림을, 2022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타임테라스를 오픈 했다.

국내에서는 2021년경 부터 방직물 생산을 중단했다. 베트남으로 생산기지 전체를 이전했기 때문이다.# 경방이 과거 한국에서 방직을 생산했다는 흔적은 영등포 구 경성방직 사무동이 거의 유일하다. 2004년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현재 카페로 활용 중이다. 그래도 여타 방직물 회사들에 비하면 꽤 오랜기간 한국에서 생산을 하긴 했었다. 이에따라 한국에서는 타임스퀘어를 운영하는 사실상 쇼핑몰 회사처럼 되었다.

3. 기업정신

1968년에 제정됐다.
(1절)희고도 깨끗한 실을 뽑아 / 겨레의 자급자족 다짐하던
그 전통 그 횃불이 오늘에도 휘황한 / 보람찬 업적이여 우리의 경방

(후렴)조국에 하늘에 영원토록 / 빛나리 태극성 찬란한 별아

(2절)올올이 정성을 다한 솜씨가 / 빛살로 뻗어가네 바다 너머로
가는 곳 곳곳마다 아름다운 수놓고 / 이름을 떨치리 우리의 경방

4.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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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79e3f 0%, #179e3f 20%, #179e3f 80%, #179e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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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김용완
(1971~1975)
제2대
김각중
(1975~2007)
제3대
이중홍
(2007~2015)
제4대
김준
(2016~ )
}}}}}}}}}}}}}}} ||

5. 역대 로고

경성방직주식회사 파일:경방 로고.svg
1919년 ~ 1970년 1970년 ~ 현재

6. 역대 임원

7. 오너 일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오너 일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8. 지배구조

2023년 4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담[6] 20.9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준 13.4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매진 5.0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경방육영회 4.7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호 4.42%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경방어패럴 2.7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경우회 1.87%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지영 1.79%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차현영 1.48%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삼양홀딩스 10.35%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수당재단 1.14%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자사주 9.12%

9. 관계사 목록

10. 여담

11. 공익사업

12. 관련 문헌



[1] 창업자 김성수의 외조카손자로, 김각중의 아들이다.[2] 물산장려운동을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으나 만주국에 방직회사를 세운 이력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전범기업에도 포함되었다.[3] 과거부터 존재한 방직·방적회사들은 이런 형태로 회사 이름을 줄여썼다.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가 세운 전방직의 준말이고 옛 적의 현재 이름은 SG충방이다. 또한 부산광역시 진시장 근방을 조방앞이라고 하는데(조방낙지 등으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역시 의 줄임말이다.[4] 단, 브랜드 이름만 롯데홈쇼핑이고, 법인명은 그대로 우리홈쇼핑이다.[5] 재학 당시 지도교수는 이회창의 큰아버지인 이태규 박사이다.[6] 김담 외 22인이 60.77%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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