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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GM-133 트라이던트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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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제원3. 배경4. 개발 & 운용5. 영국의 도입6. 수명연장7. 관련 문서

1. 개요


2014년 6월 2일 미 해군이 공개한 USS 웨스트 버지니아의 트라이던트 실사격 영상.

UGM-133 Trident II

미국록히드 마틴[1]에서 개발한 MIRV 방식의 잠대지 대륙 간 탄도 미사일로서 현재 미 해군영국 해군의 중추적인 핵투사 수단으로서 군림하고 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유일무이한 핵전력이며 미국은 공군의 미니트맨 III 지대지 대륙 간 탄도 미사일과 전략폭격기에 탑재된 수단(순항미사일 & 전술핵[2][3]) 등으로 3대 핵전력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 오하이오급 전략원잠에 적재되어 전략초계임무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애초에는 2020년 즈음까지만 운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국방예산 감축과 함께 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이 겹쳐 무려 2040년대까지 써먹을 계획을 하고 있는데 최초 개발이 시작된 시기로 따지면 무려 70년이 경과되는 셈이다. 트라이던트 II(D5)라는 명칭으로 봐서는 UGM-96 트라이던트 I(C4)의 후속이지만 최초 개발은 UGM-73 포세이돈의 단점을 싹 갈아 엎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얼떨결에 먼저 탄생한 물건이 C4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에 개발된 폴라리스 초기형은 소련의 앞바다나 다름없는 노르웨이 인근까지 진입해야 모스크바를 겨냥할 수 있었으나, D5는 긴 사정거리 덕분에 태평양대서양 등의 일반적인 초계구역은 물론 미국 본토 연안에서도 얼마든지 러시아와 중국을 향해 날릴 수 있다.

2. 제원

UGM-133A Trident II D5
길이 13.58 m
지름 2.11 m
중량 59,000 kg
사정거리 12,000 km 이상
속도 마하 24(29,200 km/h)
유도 천문/관성항법 (Astro Inertial Guidance)
CEP 90~120 m
탄두 W88 (475 kt) x12#
추진 고체연료 3단
운용기간 1990~현재

3. 배경

1967년 무렵 IDA(Institute for Defense Analyses)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등의 주도로 STRAT-X(Strategic Experimental)라는 연구가 시작됐는데 당시는 소련의 핵전력들이 원시적이고 덜 떨어진 상태에서 슬슬 벗어나 정확도가 높아지고 MIRV 방식을 도입하는 등 미국에 대한 위협이 슬슬 높아지는 상황이었고 이것들을 압도할 새로운 무기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 목표[4]로 도래했다. 이에 정확한 CEP로 소련의 ICBM 기지를 확실하게 타격할 수 있는 선제공격 수단과 함께 소련의 대잠전력도 계속 향상되고 있었기에 안전한 해역에서도 발사가 가능한 장거리 탄도탄 보유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이 연구에는 미 공군도 같이 참여해서 여러 수단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약 10년 가량 SSBNSLBM을 운용한 경험으로서 해군의 탄도탄 탑재 잠수함이 가장 안전한 수단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고 1970년 무렵 미 해군이 내놓은 사정거리 8,000~12,000 km의 ULMS(Undersea Long Range Missile System)라는 방안이 가장 경제적이고 생존성 높은 수단이라고 평가된다. 그런데 이 ULMS의 성능을 제대로 뽑아내려면 덩치가 기존 SSBN의 미사일 발사관 체적을 훨씬 뛰어넘게 생겼고 이미 그 시기에는 조지 워싱턴급을 시작으로 벤저민 프랭클린급까지의 잠수함들이 폴라리스포세이돈 등의 컴팩트한 미사일만 수용하게끔 건조됐기에 죄다 애물단지로 둔갑할 상황이 된다. 그러나 더 한심한 것은 이 애물단지들이 1959~1967년 사이에 무려 41척이나 건조됐다는 사실이었는데(...)[5][6] 결국 절충안으로서 기존 SSBN의 발사관 사이즈에 맞는 사거리 연장형 미사일을 새로 개발하고 원래 ULMS의 취지에 부합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연구를 지속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다. 전자의 계획은 ULMS I(C4) & 후자는 ULMS II(D5)로 프로젝트의 명칭이 변경됐고 1972년 5월 ULMS는 Trident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각각의 미사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ULMS II를 탑재할 신형 SSBN의 개념연구와 설계도 같이 진행됐으며 수중배수량 약 19,000톤에 35,000 shp의 원자로 1기를 탑재하고 기존 SSBN의 탑재량인 16기에서 8기가 늘어난 24기의 SLBM을 무장하는 것으로서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진다. 그러나 D5의 개발이 완료될 시점은 아직 딱히 규정되지 않은 관계로 일단 1980년 언저리로 잡았던 C4의 개발이 완료되면 새로 건조될 오하이오급과 기존의 애물단지 SSBN에 임시로 C4를 병행해서 무장시켜 전략초계임무에 들어가는 것으로 계획한다.

STRAT-X 연구가 시작할 시기에 미국이 지닌 핵투사 능력은 소련의 도시 다수와 산업시설 및 인민들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것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으나 소련의 선제공격이나 핵보복에 미국의 ICBM 기지들이 싸그리 녹아버릴 가능성[7]이 높아진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게다가 1974년 1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기존에 유지하던 MAD 전략에서 잠시 탈피하여 소련의 선제공격 징후가 느껴진다 싶으면 바로 연장들고 작업에 들어가는 SIOP에 기반한 핵전략을 승인하면서 핵전력을 좀 더 유연하게 써먹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이 시기에 미국의 핵무기들은 그냥 무식하게 메가톤급의 화력을 때려붓는 것에서 벗어나 무기체계의 정확도와 다목적 그리고 베트남전을 겪은 결과로서 경제적인 측면까지 고려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게 됐고 D5라는 신형 전략무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과거의 SLBM에 비해 획기적인 정확도를 통해 소련의 소프트 타겟이 아닌 핵전력 자체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Counterforce)을 요구받게 되는데 미 해군의 SSPO(Strategic Systems Project Office)는 최초 이런 의도에 좀 시큰둥하긴 했으나 곧 IAP(Improved Accuracy Program)라는 정확도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다. 사실 탄도탄의 정확도를 높여 전략적 목표물 등의 하드 타겟 타격을 강조하던 주체들은 미 공군이었고 미 해군은 그냥 무조건 많이 박살내면 된다 사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상의 ICBM 기지들이 죄다 절단나면 핵전력의 큰 기둥 하나가 뽑히게 되고 이는 곧 미국이라는 국가가 몹시 심각해진다는 대승적 판단.

당시 미 공군이 ICBM을 보호하기 위해 들인 노력은 아주 처절하기까지 했다. STRAT-X의 대표적인 산출물인 피스키퍼는 소련의 선빵에 대비하여 열차에 실어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발사하거나 미국 전역에 무려 4,600개에 달하는 진짜와 가짜 사일로를 건설해서 소련의 탄도탄을 소모시키는(...) 정신나간 방법[8]도 생각해봤으나 민주주의 국가인 만큼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와 막대한 비용 등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에 항상 시달렸다. 결국 뾰족한 방법은 찾아내지 못한 상태로 미니트맨 사일로에 잠깐 들락거렸다가 2005년 조용히 퇴역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자 SLBMICBM을 제치며 미국의 중추적인 0순위 핵전력으로 인정받게 됐고 1977년 미 의회에서도 D5에 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승인하게 되어 이제 거의 유일한 과제는 ICBM에 견줄만한 정확도를 달성하는 것에 있었다. 1981년 10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D5가 과거의 물건들을 단순 개량하는 리모델링 수준에서 벗어나 피스키퍼와 상당 부분을 공유한 정확한 탄도탄으로 개발할 것을 컨셉[9]으로 잡았고 대략 1989년 정도에 완료시키는 것으로 계획한다.

4. 개발 & 운용

Data Gathering System Type of Data Phase Error Estimates Affected
LONARS
(LORAN Navigation Receiving System)
SSBN Position Patrol, Prelaunch Errors Navigation,
Combined System (at Prelaunch)
VPRS
(Velocity & Position Reference System)
SSBN Position & Velocity
Shipboard Data Recording Navigation, Fire Control &
Guidance Prelaunch Outputs & Interfaces
Navigation, Fire Control (Align & Erect) ,
Presetting, System (at Prelaunch)
SATRACK
(Satellite Missile Tracking)
Range & Doppler Shifts
Relative to GPS Satellites
Boost, Post Boost Guidance, System (at Launch)
In Flight Missile Telemetry Guidance & Flight Control System Outputs Guidance,
System (at Star Sighting & RV Deployment)
Telemetry from Instrumented RV RV Acceleration & Orientations,
Radar Tracking at Reentry
Post Boost, Deployment,
Reentry
Deployment Velocity, Reentry,
System (at Atmospheric Reentry)
MILS
(Missile Locating System)
Location of Impact Impact System (at Impact)
SMILS
(Sonobuoy Missile Locating System)

최초 IAP 프로그램은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몇 가지 해결책을 고안해냈다. GPS를 통한 위성항법은 꽤 높은 정확도를 기대할 수 있으나 소련이 행여 인공위성을 박살낸다면 그냥 바보가 되는 것이기에 곧 포기하게 됐고 EMR(Electromagnetic Reconnaissance)이라는 일종의 ELINT 기법을 이용해서 목적지 도달시 오류를 수정하는 최종유도도 검토했지만 기술적인 어려움과 골치아픈 정치적 문제에 봉착하는 등 별반 똘똘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C4의 천문/관성항법(Astro Inertial Guidance) 장치인 Mk-5를 개량하는 것으로서 최종적인 결정을 하고 위의 표처럼 여러가지 오류에 대한 검증을 실행한다. 이 작업의 골자는 SLBM을 발사하기 전 현재 속도와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VPRS(Velocity & Position Reference System)라는 중계기를 해저에 설치하는 것과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응용물리학 연구소가 개발한 SATRACK(Satellite Missile Tracking)이라는 NAVSTAR GPS 위성을 활용한 미사일 계측 시스템[10]을 마련해서 오차의 궁극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으로서 어마어마한 개량과 오류의 수정이 이어졌고 기존 C4의 천측센서(Stellar Sensor)에 사용된 전자식 비디콘(Vidicon)을 반도체로 구성된 CCD로 교체하는가 하면 PIGA(Pendulous Integrating Gyroscopic Accelerometer)라는 아주 정밀한 진자형 적분 자이로 가속도계[11]를 장착해서 자이로를 보완하게 했다. 또한 C4의 CEP를 향상시키는 것에 큰 역할을 한 PAM(Plume Avoidance Maneuver)[12] 기법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등 어쨌든 말이 쉬울 뿐이지 이런 짓들을 하는데만 총 8년이 소요됐고 무려 6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대략 이런 과정들을 거쳐 Mk-6라는 새로운 유도체계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런저런 오류를 규명하는 동안 RV가 재돌입 후 목표물까지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오차가 CEP를 저하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으로 밝혀진다. 원뿔형의 RV가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재질의 표면이 불균일하게 손상되면 쓸데없는 양력 등의 저항으로 속도가 손실되거나 방향이 어긋나는데 가장 온도가 높은 맨 앞의 재질을 약간 다르게 가공해서 녹는점을 일부러 낮추게 했다. 이렇게 재돌입 단계에서 최대한 균일한 형태로 변형[13]되게끔 제작한 RV에는 Mk-5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부수적으로 당시 모스크바에 잔뜩 배치된 A-35 ABM에 요격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도도 있었다.[14] 한편 SSBN의 위치와 SLBM이 날아가는 발사 방위각은 천측센서를 통해 교정할 수 있지만 지구는 완전한 구(Sphere)의 형태가 아니어서 RV가 비행할 궤도에는 중력의 변화(Local Gravity Anomaly)가 반드시 발생하는데다 지네들은 각각의 여러 코스를 날아가는 다탄두이기 때문에 지구 각 지역의 중력 데이터를 반드시 수집해 오차를 잡아야 했다. 그 동안 미국은 NAVSAT이나 GEOS-C 등의 지상/해양 관측위성을 많이 올려놨고 여기서 얻은 지구 중력 데이터도 있었으나 아주 확실하게 해보려고 1985년 3월 GEOSAT(Geodetic Satellite) 위성을 발사한다. 이것도 표면적으로는 지구 관측용 위성이라고 해놨지만 실질적인 0순위 목적은 군사적인 측면에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GEOSAT을 발사한 주체는 NASA가 아닌 미 해군이었다. 특히 북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소련과 중국[15][16]에 대한 관측이 집중됐으며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와 함께 해저지형의 정보도 줏어오기 위해 해양탐사선[17]까지 바다에 풀었다. VPRS 중계기를 해저에 설치한 이유처럼 해저지형[18]의 데이터[19]는 필수적이었으나 시간과 비용 등의 애로사항이 많아 지구 곳곳을 싸그리 훑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인식했고 결국 SSBN이 초계해야 할 지역(Patrol Area)을 지정하고 그 지역에서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토크 등의 목표물까지 이루어진 경로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으로서 현실적인 타협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SSBN의 전략초계구역은 굉장히 넓고 다양하며 목표물 역시 도시나 산업시설, 적의 사령부나 ICBM기지, 전략폭격기가 주둔한 공군기지 등등 어마어마한 조합이 나오게 된다. 이 복잡한 작업은 SSBN이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초 백악관이나 펜타곤의 지령을 받은 후 E-6B와 같은 통신중계기를 통해 명령이 전달되며 SSBN이 해저에 숨어있는 만큼 주로 초장파(VLF)를 이용해 통신이 이루어진다.

그나저나 미 해군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CEP를 달성하긴 했지만 C4처럼 탄두부 섹션이 협소하게 설계된 관계로 RV의 머릿수[20]를 줄이지 않고 최대한의 파괴력을 뽑아내고자 했다. 이 때 선택된 것이 원래 피스키퍼에 갖다 심으려고 개발한 475 kt 짜리 W88 탄두였고 별반 옥신각신하는 일도 없긴 했으나 막상 배치가 시작되기도 전인 1988년 무렵 금속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Rocky Flats Plant라는 회사가 환경단체의 고발을 시작으로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과 FBI의 조사를 받으면서 도산하게 된다. 물론 비축해놓은 탄두가 꽤 있긴 했지만 모든 미사일에 다 끼워넣기에는 어림도 없는데다 가뜩이나 탄두 조달이 힘든데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열심히 추진하던 여러 순항미사일 사업은 무기용 우라늄플루토늄의 수요를 계속 부채질했다. 그러다가 곧 소련이 붕괴되는 사건이 터지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돈도 좀 아끼고 적당히 하자는 생각으로 C4에서 쓰던 100 kt 짜리 W76과 Mk-4를 병행해서 탑재했고 피스키퍼도 약간의 다운그레이드를 거친 300 kt 짜리 W87 탄두를 싣게 된다. 피스키퍼의 CEP(40 m)가 D5(90 m)에 비해 약간 똘똘한데다 이제 SLBM이 선제 핵공격의 중추가 되었기 때문에 알아서 퉁치려는 의도로 이렇게 했겠지만 러시아의 ICBM 사일로를 파괴하는 시뮬레이션에서는 피스키퍼의 화력이 약간 딸리긴 하나 목표물 파괴 확률은 오히려 10~15% 가량 높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어쨌든 이 W88 탄두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 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물량을 확보해왔고 W76을 탑재한 일부 D5들의 탄두와 교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6년 무렵 RRW(Reliable Replacement Warhead)라는 계획을 세우고 W88를 포함한 미국의 전략 핵탄두 상당수를 새로운 탄두로 교체하려 했으나 미 의회의 반대로 시원하게 엎어졌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존 탄두의 관리와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대체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었다. 과거에는 연식이 흐를수록 금속 재질의 탄두에 금이 가거나 모양이 변형되는 등의 문제가 빈번했지만 제작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많은 개선이 병행됐고 국가핵안보국(National Nuclear Security Administration)은 대부분의 미국 핵탄두가 제조부터 100년까지는 멀쩡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D5는 기존의 SLBM과 소소한 기술적 차이는 있지만 전형적인 콜드런칭[21]의 형태로 발사된다. 약 30 m 가량의 수심에서 미사일 발사관 뚜껑이 열리면 가스의 압력을 통해 얇은 막을 통과해서 수면 위 적당한 높이까지 올라오고 1단 로켓이 점화됨과 동시에 C4처럼 에어로 스파이크(Aerospike)가 바로 튀어나온다.[22] 1단과 2단은 각각 60초 가량 연소하며 무려 6,000 m/s의 속도를 만들어내고 3단이 점화되면 바로 PBCS(Post Boost Control System)라는 제어용 컴퓨터가 3단의 움직임과 RV들이 각각 이동해야 할 궤도를 향해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파일:Trident_D5_components_PIRASSC200904025Rev1.jpg


미 해군은 1987년 1월 15일부터 1989년 1월 26일까지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총 19회의 발사 테스트를 수행한다. 1960년 폴라리스의 첫 시험과 마찬가지로 일단은 지상에서 안전하게 쏴보자는 의도였으며 총 16회 성공[23]에 3회 실패를 기록했으나 대부분 사소한 원인들이 실패의 원인으로 드러났고 보완책도 비교적 빨리 마련됐다. 그러나 1989년 3월 21일 SSBN-734 USS 테네시에서 있었던 최초의 잠수함 발사 테스트 PEM-1(Performance Evaluation Missile)에서 노즐TVC의 결함으로 또 다시 실패를 경험했고 동년 8월 15일의 PEM-4에서는 미사일이 솟아오르면서 발생하는 물기둥이 노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문제가 드러나 설계를 조금 수정해야 했다. 잠수함에서 총 9회의 테스트 가운데 2회의 실패를 기록했으나 1990년 2월 12일 함정에서의 최종적인 운용적합성을 시험하는 DASO-1(Demonstration and Shakedown Operations) 시험에서는 만족스러운 성공을 달성하면서 전략초계임무에 투입이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그 이후로 D5를 탑재한 SSBN들이 그냥 빈둥빈둥 놀고 다닌 것은 절대 아니었고 2015년 2월까지 영국 해군뱅가드급이 수행한 테스트를 포함 총 155회의 발사를 성공시켰는데 이 과정에서는 그냥 한 발만 쏘고 만 것부터 해서 실전을 가정한 일제사격(Salvo) 시험 등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은밀하게 진행되어 왔다.

1988년 12월에 취역하여 PEM 테스트를 말뚝으로 수행한 SSBN-734 USS 테네시는 D5를 탑재한 최초의 오하이오급으로 기록됐으며 1997년 9월 미 해군에 인도된 SSBN-743 USS 루이지애나를 마지막으로 일단 10척의 함정이 D5를 운용하게 된다. 최초로 건조된 SSBN-726 USS 오하이오를 시작으로 8척은 건조부터 C4를 적재하고 있었고 연식이 좀 지나서 오버홀 작업에 들어가면 D5로 교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1993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START II 조약에 의해 SSBN-726을 포함한 4척은 2000년대 초반 BGM-109 토마호크를 무려 154발이나 탑재한 토마호크 셔틀로 둔갑해서 함급 분류기호SSGN으로 변경됐고 SSBN-730 USS 헨리 M. 잭슨부터의 4척은 2002~2008년에 걸쳐 D5로 완전히 갈아타게 된다. 현재 총 14척의 D5 탑재 SSBN이 전략초계임무에 편성되어 있으나 항모전투단에 소속된 것도 아닌데다 작전에 투입되는 머릿수도 한정되어 있어서 몇 척이 어디에 숨어서 뭘 하는지의 여부는 러시아는 말 할 필요도 없고 미국에서도 극소수의 인원 외에는 알지 못한다.[24]

한편 2006년 무렵 미 전략사령부PGS(Prompt Global Strike)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어디에 위치한 적[25]이라도 신속하게 박살낼 수 있는 타격수단을 연구한다. 그 대상 가운데 하나가 D5에 재래식 탄두를 탑재하려는 계획인 CTM(Conventional Trident Modification)으로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지지를 받으며 연구를 시작했으나 아니나 다를까 CTM과 관련한 예산 1억 2,700만 달러 대부분은 국회에서 상큼하게 거부당한다.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서 CTM의 비행궤적 자체는 일반 SLBM과 동일한데 이 알맹이가 핵인지 재래식 탄두인지는 러시아나 중국이 알 방법이 없어 우발적 핵전쟁의 가능성이 높은데다 그걸 미리 통보하는 행위도 현실성이 몹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 어마어마한 가격의 미사일이 꼴랑 불량국가의 허접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것은 럼즈펠드가 그렇게 강조했던 전쟁비용 절감을 고려한 측면에서도 완전히 틀려먹었고 결국 CTM 프로젝트는 2008년에 완전히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어쨌든 PGS 프로그램은 그 이후로도 유효하긴 하나 미 해군의 무기체계 가운데 이 개념을 충족시키는 똘똘한 솔루션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5. 영국의 도입

1979년 영국 총리에 취임한 마가렛 대처는 과거 노동당 정권과는 달리 미국과의 관계와 핵억지력 등의 안보 현안에 대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SS-20 Saber IRBM을 동독과 체코 등에 배치시켜 NATO 국가들의 안보적 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때 미국은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1983년 무렵 서독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 퍼싱 II MRBM을 대거 배치하여 맞불을 놓았다. 결과적으로 1987년 INF(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 협정으로 양측 모두 철수했지만 당시 서로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은 상당히 심각했다. 대처 총리는 취임 직후 노후화된 폴라리스 A3TK를 교체하기 위해 지미 카터 대통령과의 회담을 서둘렀다. 영국이 지닌 핵무기가 SALT II 회담에서의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고 1980년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 이전에 하루라도 빨리 확답을 받기를 원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이 탄두를 제외한 C4의 판매 허가를 요청했을 때 미국은 반대급부로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미군기지 건설 등을 요구했고, 영국이 이를 흔쾌히 수용하면서 협상은 매끄럽게 마무리된다. 1980년 7월 영국 정부는 미국에서 C4를 수입하여 새로 건조하는 SSBN에 탑재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밝혔지만 C4보다 뛰어난 새로운 무기체계가 개발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일단은 추이를 지켜보다가 나중에 바꿀 생각이었다.

카터 대통령의 뒤를 이어 새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핵전력의 현대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영국을 파트너로 들이는 것에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영국은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전략무기 수출에 있어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8월 영국이 원한다면 D5를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비록 D5의 스펙과 재무적인 부분에 있어 약간의 충돌이 빚어지긴 했지만 비교적 무난하게 영국으로 수출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이 과정에서 D5의 구매비용 외에 연구개발 비용으로 약 1억 6,600만 달러를 부담하는 내용에 동의하고 미사일 발사관도 같이 도입했지만 SSBN 건조와 관련된 기술은 누락됐으며 MIRV 또한 소련의 반발이 우려되어 역시 제외했다.[26]

영국의 D5에 탑재된 탄두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미국에서 제공받은 W76 탄두와 Mk-4 RV의 기술을 응용하여 자체적인 물건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인연감으로 유명하 제인스(Jane's)에서는 심지어 10 kt의 위력에 RV의 숫자도 4기 가량일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해군은 1999년에 공식적으로 뱅가드급 1척이 지닌 D5의 탄두가 총 48개라는 성명을 냈다.[27]

6. 수명연장

미국의 무기체계 개량이 다 그렇듯이 이것도 일종의 리퍼비시 프로젝트로서 2002년 미 해군은 D5를 대략 2042년까지 운용할 계획으로 D5 LE(D5 Life Extension)라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당시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연구/건조하면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의 절감을 가능하게 한 COTS(Commercial off the Shelf)[28]는 이제 미군의 각종 사업에 유행처럼 번졌는데 D5 역시 그런 방법들로 성능을 개량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며 추후 발생할 유지보수 비용도 줄이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2007년 록히드 마틴은 고체연료와 MIRV의 업그레이드를 포함한 물리적인 부분과 원시적인 컴퓨터 시스템[29]으로 구성된 미사일 유도체계 개량 등 총 8억 4,8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는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추진한 RRW 계획이 취소된 만큼 탄두는 변경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역시 2006년 12월 의회에서 D5 LE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임을 밝히는 한편 새로운 SSBN을 건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으며 10년 후인 2016년 7월 영국 의회에서는 이 신형 SSBN에 대한 예산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됐고 드레드노트급으로 명명되기에 이른다.

미 해군은 2016년 7월 IT 애플리케이션과 사이버 보안 등에 관련한 업그레이드를 위해 록히드 마틴과 830만 달러의 수정계약을 체결했고 2017년 3월에는 개수작업을 받은 미사일 2발의 배치가 확인됐다. 개량사업은 일단 순조롭게 계속 진행중이며 오하이오급에서 운용하다가 2030년 무렵 컬럼비아급이 차례차례 취역하면 여기서 쓱쓱 뽑아다가 저기에 다시 갖다박는 작업을 해가며 운용할 예정인데 컬럼비아급의 미사일 발사관 사이즈는 오하이오급과 동일하나 갯수가 16개로 줄었고 함정의 머릿수도 일단 12척만 계획하고 있어서 D5의 조달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7년 5월 무렵 미 해군의 전략체계프로그램국장인 테리 베네딕트 제독은 2042년 D5의 수명이 완전히 끝난 후 무려 2084년까지 사용할 차세대 SLBM의 개발(트라이던트 III E6)을 담은 SWS(Strategic Weapon System)-534[30]라는 계획을 내놓았으나 그 시기의 안보 환경이 어떻게 될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별반 두리뭉실한 개념조차도 나오지 않는 등 중요한 알맹이는 없는 상황이다.

7. 관련 문서

(영문 위키백과) UGM-133 Trident II
심플로켓2로 보는 트라이던트 2 발사 과정
[1] 최초 록히드에서 개발계약을 따내고 진행되어 왔으나 1995년에 타이탄, 아틀라스 등의 로켓 개발로 유명한 마틴 마리에타社와 합병했다.[2] 물론 B61과 같은 자유낙하형 전술핵은 F-16과 같은 평범한 전술기에도 탑재/투사가 가능하고, F/A-18F/A-18E/F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미 해군은 '항공모함에 전술핵을 전혀 비축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 으나, 이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애매한 말로 대충 얼버무린다.[3] 대한민국 공군의 KF-16에는 핵무기 운용과 관련된 시스템이 아예 없는 상태로 제작/납품되어 같은 Block 32/52 기체라 하더라도 미 공군이나 일부 NATO 공군의 기체와 상이한 부분이 존재한다. 과거 이른바 "방위성금헌납기"로 알려진 F-4D는 미 공군이 운용하던 것을 그대로 들여오는 바람에 핵무기 투하 버튼이 조종석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미국 측이 뒤늦게 이를 알아채고 황급히 기체들을 뜯어다가 삭제시키기도 했다.[4] 이 과정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산출물이 C4와 D5, 오하이오급 잠수함과 LGM-118A 피스키퍼였다.[5] 설사 D5의 크기에 맞게 건조됐다 하더라도 불어난 잠수함의 체급은 당시의 원자로가 감당해내기 힘들었고 그걸 달아봤자 꼴랑 20노트의 속도도 나오기가 힘들 것으로 예측됐다. 이 시기 미국의 잠수함에 주류를 이루던 15,000 shp 짜리 S5W 원자로는 수중배수량이 5,000톤도 안되는 스터전급에서도 가끔씩 전력이 모자란다는 민원을 듣게 했고 로스앤젤레스급의 30,000 shp 짜리 S6G는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개발이 완료된다.[6] 미 해군은 1959년에 레이더 초계 잠수함(Radar Picket Submarine)이라는 해괴한 목적으로 원자로를 2개나 박아넣은 SSRN-586 USS 트리톤을 건조한 적이 있긴 했다. 항모전투단이 기동하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이런 무식한 짓을 한 것인데 원자로 2개에 별별 놈의 레이더와 초계장비 등이 잔뜩 실리다보니 오하이오급이 취역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긴 잠수함(136.4 m)으로 기록됐었다(...). 당시 기준으로 무려 1억 1천만 달러를 들여 이 흉물을 건조했지만 운용비용은 둘째치고 잠수함으로서 지녀야 할 능력은 말하기가 창피할 정도였고 얼마 되지도 않아 E-1 트레이서 항모탑재 조기경보기가 등장하는 바람에 진짜 애물단지로 둔갑해서 기껏 세계일주 따위의 뻘짓이나 하다가 단 10년만 운용하고 바로 퇴역한다. 어쨌든 그 후로 항공모함같은 헤비급 함정을 제외하고는 잠수함에 원자로를 2개 집어넣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게 됐다.[7] 사일로 등의 고정된 장소에 위치하고 있기에 소련의 정찰자산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서 정밀하게 타격하거나 행여 MIRV를 통해 뽀록으로라도 얻어 맞는다면 몹시 우울해지는 상황이 나온다. 실제로 초기의 탄도탄들은 이런 요행을 바라는 의도로 MIRV를 채택하기도 했고 소련도 당연히 이런 걱정을 했기 때문에 열차나 혹은 SS-25처럼 TEL(Transporter Erector Launcher)에 미사일을 업고 마실다니다가 짱박혀서 쏘는 이동식 탄도탄들을 어마어마하게 만들어 냈다. 결국 미국은 이렇게 개미떼처럼 흩어져 있는 미사일 차량들을 진작에 알아다가 때려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고 일단 발사되면 아예 요격을 해버리자는 의도에서 SDI에 이어 MD까지 계획했고 현재 실행에 옮기고 있다.[8] 미 공군은 1974년 10월 미니트맨 IB를 C-5 수송기에 실어다가 공중에서 발사하는 시험을 거쳤고 이걸 또 성공하기까지 했는데 당시 습득한 기술들을 다듬어 피스키퍼를 탑재한 C-5 편대를 항시 스크램블 대기시키는 것을 구상하는가 하면 심지어 바다속에 피스키퍼 사일로를 건설하자는 의견이 나오는 등 별 기상천외한 해결책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었다. 물론 이런 황당한 짓들을 기발한 생각이라고 칭찬한 사람은 당연히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9] 애초에는 UGM-96B로 명명하려 했으나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1986년 UGM-133A라는 새로운 제식명에 D5라는 접미사도 붙여줬다.[10] 미사일의 오차 분석과 모의 비행 테스트 등을 제공하고 있어서 실물로 하는 것에 소요될 엄청난 비용을 절감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SATRACK I은 1973~1983년까지 사용하며 C4의 정확도 향상에 큰 도움이 됐고 1983년부터 현재까지는 SATRACK II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트라이던트 계열 뿐만 아니라 미 육군의 NMD(National Missile Defense)와 미 공군피스키퍼 개발에도 적절하게 사용됐다.[11] 피스키퍼에는 AIRS(Advanced Inertial Reference Sphere)라는 초정밀 관성항법 유도시스템이 들어가는데 PIGA의 파생형인 SFIR(Specific Force Integrating Receiver)이라는 가속도계가 중추적인 부품으로 들어간다. AIRS는 기껏해야 농구공만한 크기지만 30만 달러의 가격에다 부품이 무려 20,000개에 육박해서 무조건 수작업으로 제작했고 약 6개월 가량이 필요했다. 당연히 고장이 발생하기 쉬워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다.[12] 3단 로켓이 연료를 다 소모하면 RV(Reentry Vehicle) 뭉치들을 지니고 있는 판떼기인 ES(Equipment Section)는 3단과 분리된 후 별의 관측을 시작한다. 관측과 보정이 완료되면 속도를 조절하고 RV를 얌전하게 분리해야 하는데 이 때 ES에서 자세 보정을 위해 분사하는 가스가 RV를 건드려 비행 경로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분사 노즐을 똘똘하게 통제하는 방법이다.[13] 협력업체인 GE가 낸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이런 굵직한 무기체계 개발은 한 회사가 혼자 건드리기는 어려워서 여기저기 하도급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데 F-22록히드 마틴이 주계약자로 되어 있으나 보잉에게도 상당한 일감이 할당되어 있고 D5 역시 다를 바 없었다. P&W의 모회사인 United Technologies를 포함해서 레이시온, 웨스팅하우스, 휴즈 등이 있었고 특히 Charles Stark Draper Laboratory라는 연구소는 유도체계 개발과 관련하여 록히드 다음으로 많은 약 8천만 달러의 비중을 지니고 있었다.[14] 그러나 소련 스스로는 자신들의 시스템이 MIRV를 곁들인 미국의 핵공격을 방어하기에는 택도 없는 성능이라고 자평했다고 한다.[15] 미국은 1980년대 소련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중국과 상당히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군사교류라는 명목으로 무기체계에 대한 수출과 기술이전도 진행되는 등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기절초풍할 일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소련을 엿먹이려는 생각까지는 나쁘지 않았으나 그 부메랑이 현재 슬슬 되돌아오고 있는 중으로서 1984년 인민해방군에 판매한 UH-60은 Z-20이라는 짝퉁 헬기로 탄생했고 꼴랑 800만 달러의 껌값에 기술이전을 해준 Mk.46 어뢰는 Yu-7이라는 또 하나의 복제품으로 둔갑했다. 중국 역시 1969년 중소 국경 분쟁으로 소련과 견원지간이 된데다 이렇게 알아서 들어오는 횡재들을 절대 지나치지 않고 낼름낼름 다 줏어먹었는데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다음 세대의 무기체계 개발에 어떤 영향을 줬을런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또한 영국도 이런 바보같은 짓에 동참해서 Spey 엔진의 라이센스 생산을 허가해주는 등 치명적인 뻘짓들을 꽤 저지르고 다녔고 중국은 여기서 습득한 노하우에다 베트남에서 격추된 F-4의 잔해에서 J79 엔진을 확보해다가 역설계까지 시도하는 등 왕서방처럼 실리를 꼬박꼬박 챙겨갔다. 중국산 WS-6 터보팬 엔진의 개량사업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때 터득한 기술들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16]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아예 안했던 것은 아니다. U-2 정찰기를 대만 공군 소속으로 위장해서 중국 본토를 정찰하다가 꽤 많은 숫자를 상실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고 1971년에는 중국의 핵실험 등을 감시하기 위해 D-21 정찰 드론윈난성까지 보냈다가 추락하여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것도 SR-71처럼 마하 3 이상의 속도를 지닌 무인 비행체였으나 신뢰성이 좀 띨띨하다 보니 잦은 고장과 추락으로 골치아픈 외교적 문제가 잔뜩 누적된데다 정찰위성이 등장하면서 프로젝트는 자연스럽게 폐기된다. 그러나 그 다음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한다.[17] 이 작업에 투입된 AG-153 USS 컴패스 아일랜드라는 함정은 원래 민간선박으로 위장해서 건조했다가 3년만에 미 해군에서 인수해 무려 2천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해양탐사선으로 개조했다. 그러나 이름만 해양탐사선일 뿐 미 해군의 FBM(Fleet Ballistic Missile)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이 주 목적이자 건조의 이유였고 다른 함정의 경우 폴라리스를 선체에 심어다가 수상 발사시험 테스트베드로 굴려지는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도맡아 했던 숨은 조력자였다. 그런데 소련은 이런 탐사선들이 망망대해를 떠돌면서 왜 이상한 짓을 하는지를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어선으로 가장한 첩보선들을 파견해서 주변을 빙빙 돌거나 항로를 가로막는 등 국제법상 공해에서의 항해가 보장되는 점을 악용하여 갖가지 훼방을 놓곤 했다. 미국은 이런 어선(?)들을 AGI(Auxiliary General Intelligence)라고 칭했는데 무늬만 어선처럼 해놓고 코딱지만한 소련 국기를 게양했을 뿐 알맹이는 온갖 정보수집과 통신에 필요한 장비들로 가득했으며 안테나를 바다에 쭉 늘어뜨리고 낚싯대라고 우기는 등 보통 진상들이 아니었다. 특히 베트남전에서는 그 활동이 아주 두드러졌는데 양키스테이션에 위치한 미 항공모함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항모의 기동과 항공기의 이착륙을 방해하는 등 온갖 어그로를 끌었고 라인배커 작전이 한창일 때는 의 공군기지 근처에서 대충 고기잡는 척 하다가 B-52가 우르르 출격한다 싶으면 바로 북베트남에 고자질해서 대비할 시간을 벌어주게 했다. 미국은 이걸 쫓아내려고 저공비행을 하거나 위협하는 척을 하는 등 별 놈의 짓을 다 해봤지만 뚜렷한 효과는 없었는데 1967년 7월 21일 약이 오를대로 오른 KA-3B 급유기의 한 조종사가 작전을 마치고 항모로 복귀하기 전에 그 둔중한 기체로 어선을 향해 초저공으로 급강하해서 어선의 머리 위에 항공유를 시원하게 살포하는 용자짓을 선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선 주변은 엄청난 크기의 항공유 스프레이가 안개처럼 피어올랐고 어부(?)들은 황급히 담배와 엔진을 끄고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등 제대로 뜨거운 맛을 보게 된다. 한편 항모의 동료들은 그 조종사가 착륙한 후 Red Baron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여줬다고 한다(...).[18] SSBN이 수중에서 정지한 상태라 하더라도 해류에 의해 미세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바다가 아닌 땅(해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19] 구글 어스에 보여지는 해저지형에 대한 정보들은 대부분 군사적인 목적으로 수집한 데이터에 기반했다.[20] 최대 12기의 RV를 탑재할 수 있었지만 1991년 START I 조약의 결과로서 8기로 감소됐다.[21] 만약에 수면에서 미사일 점화가 실패한다면 바다에 그대로 떨어지면서 잠수함도 손상을 입겠지만 미니트맨처럼 핫런칭 방식을 사용하면 열기와 후폭풍으로 잠수함을 그냥 불고기로 만들 소지가 있는데다 핫런칭 발사대는 대부분 1회용이나 다름 없기에 미사일 한번 쏘면 잠수함 다시 뜯어다가 발사관 교체하는 그런 미친 짓을 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중에서 SLBM을 발사하면서 핫런칭을 선택하는 경우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22] 혹자는 이걸 아트로핀 주사기에서 바늘이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는데 끝 부분이 뭉툭한 모양새가 서로 흡사하긴 하다.[23] 1987년 10월 6일의 7번째 테스트는 "부분적 성공"이라 판정했는데 미사일은 잘 올라갔으나 3단에 위치한 PBCS의 작동에 사소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24] SSBN이 정박하는 해군기지는 2개 뿐이니 일반인도 민간 업체의 위성 사진을 통해 가동률을 알아볼 수 있지만, 가동중인 SSBN들이 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25] 당연히 러시아나 중국이 목표가 아니라 이른바 불량국가핵무기 관련 시설이나 테러리스트 캠프, 생화학 무기 공장 등이 대상이었다.[26] 이 시기 영국 정부는 경제적으로 침체되었고, D5의 조달까지 겹쳐 다른 부문의 국방비를 대폭 삭감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해군력에 상당한 영향을 줘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호위함 등이 대거 퇴역하게 된다.[27] 뱅가드급의 미사일 발사관이 총 16개니까 D5에 각각 3개의 탄두가 들어있거나 단일 탄두를 지닌 미사일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28] 과거에는 별 시답잖은 품목이라 하더라도 군용이라는 이유로서 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등 융통성이 없었으나 이제는 그런 짓을 자제해서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품질좋고 저렴한 민수용 모니터가 얼마든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군 함정의 지휘통제실에는 군용으로 따로 개발된 투박한 물건이 설치된다든지 했는데 이제는 LG전자가 만든 모니터를 과감하게 사용하겠다는 의미다. 렉스턴 차량이 약간의 개량을 거쳐 각 군에 납품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29] C4와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컴퓨터 기술의 적극적인 도입으로서 탄도비행과 관련된 정보를 완전한 디지털로 변환/출력하여 오차에 대한 즉각적인 수정이 가능하게끔 화력통제장치를 구축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발도 아닌 발사시험이 성공한 시점이라고 해봤자 1990년이라 1MB의 ROM과 200KB의 RAM 용량이 고작이었고 당시와 현재의 컴퓨터 기술은 비교하기가 민망할 수준이라 업그레이드는 당연히 수반하게 된다.[30] 지금껏 미 해군에 공급된 D5가 기껏 533기 밖에 안되니 그것보다 더 많이 만들자는 의도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