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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셸 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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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장미셸 자르
Jean-Michel Jarre
파일:31A5BD4A-5707-4BFA-AA31-562DD3D7D086.jpg
본명 장미셸 앙드레 자르
Jean-Michel André Jarre
출생 1948년 8월 24일 ([age(1948-08-24)]세)
오베르뉴론알프 리옹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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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0cm
부모 아버지 모리스 자르[1]
어머니 프랑스 뻬조[2]
배우자 플로어 길라드(1975년 결혼 – 1977년 이혼)
샬럿 램플링(1978년 결혼 – 1998년 이혼)
안 파리요(2005년 결혼 – 2010년 이혼)
공리(2019 결혼 – 현재)
자녀 에밀리 자르(1976년생)
아들 데이빗 자르(1977년생)
활동 시기 1969년 – 현재
데뷔 1969년 싱글 앨범 <La Cage>
장르 일렉트로니카 · 프로그레시브 일렉트로닉 · 앰비언트 · 뉴에이지
레이블 Disques Dreyfus, BMG, Sony, Polydor, PolyGram, Epic, SME, Warner Bros., EMI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 ~ 1970년대2.2. 1980년대2.3. 1990년대2.4. 2000년대 ~ 현재2.5. 기타 생활
3. 디스코그래피4. 비디오5. 사용 신디사이저 목록6. 여담

1. 개요

프랑스 출신의 초창기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이다.

현역으로 따지면 역시 당시 일렉트로니카 선풍을 몰고온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와 자웅을 겨루었던 아티스트로, 통칭 일렉트로닉계의 대부. 영화음악가인 모리스 자르(Maurice Jarre)[3]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80년대~90년대 뉴스, 광고다큐 같은 시그널 곡에 이 사람의 음악이 꼭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많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그러하듯이 얼굴이나 이름은 몰라도, 음악을 들으면 대번 어? 나 이 음악 들어본 것 같은데? 한 반응이 나오게 만드는 대표적인 주자라 할 수 있다. 본 활동무대인 유럽에서도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인다고 한다.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 ~ 1970년대

파일:external/i.skyrock.net/3192023675_1_2_zXBHKwXq.jpg
1978년의 장미셸 자르 Equinoxe Part IV의 P/V 촬영 당시
Oxygene(1976) 중 Oxygene Part 4 Equinoxe(1978) 중 Equinoxe Part 4
1948년 8월 24일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영화 음악가 모리스 자르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5살때 이혼하여 어머니와 지내면서[4] 10대 시절에 신디사이저를 소개받았고, 이에 관심을 보인 자르는 20대 때 파리 음악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1968년구체 음악의 창시자인 피에르 셰페르가 만든 음악 연구 그룹(GMR)에 합류하고, 슈톡하우젠의 스튜디오에서 일했었다. 이후 1969년에 작은 신디사이저 스튜디오를 설치하고 첫 번째 싱글 음반인 <La Cage>을 발매했다. 이후 71년에는 발레곡을 작곡하고, 1972년에는 <Deserted Palace>와 영화 사운드트랙 음반인 <Les Grarges Brulees>를 1973년에 발매하여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연극, 발레, 텔레비전, 광고 음악계등에 진출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 결과 1976년에 발매되는 <Oxygene>은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Oxygene>은 처음에는 여러 레코드 회사에 거절당했지만, 자르와 함께 동문 수학했던 다른 샤페르의 제자가 제작자인 남편을 설득한 끝에 앨범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프랑스 음반 역대 베스트 셀러로서 약 1800만 장 이상을 팔아치웠다고 하며, 자르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끌게 될수 있었던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한국에서는 특히 <Oxygene Part 4>가 유명한데, 듣는 순간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을만큼 방송에서 엄청나게 사용되었다. 주로 시사나 심각한 소재의 다큐멘터리 쪽에서...

이후 1978년에 춘분을 테마로 차용한 <Equinoxe>를 발매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Equinoxe Part 4>, <Equinoxe Part 5>가 우리에게 친숙한 편으로, 특히 Part 4는 90년대 중반[5] 리즈시절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시그널로 쓰여서 이 시기에 유년~청년기였던 1980년대~1990년대 초반생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Oxygene>만큼의 엄청난 성공은 아니었지만, 약 1000만 장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고, 1년 뒤인 79년에는 프랑스혁명 기념일에 파리의 콩코드 광장에서 Place De La Concorde라는 제목으로 최초로 대중앞에서 야외 콘서트를 개최하는데, 100만명의 관객이 돌파해서 기네스북에 올렸고, 1억명 이상의 TV 시청을 확보했다고 한다.

2.2. 1980년대

파일:external/frenchquartermag.com/synthtopia..jpg
1981년 중국 베이징 공연 사진
Les Chants Magnetiques(1981) 중 Les Chants Magnetiques Part 2 Rendez-Vous(1986) 중 Fourth Rendez-Vous
1981년에는 앤디 워홀의 팝 아트 전위 작품인 '마릴린 먼로'에 영감을 받은 <Les Chants Magnetiques>를 발매했다.

그리고 당시 외부 뮤지션으로서는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에서 콘서트를 열었고,[6][7] 그 공연의 실황을 담은 음반인 <The Concerts In China>를 발매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공연실황 비디오 첫머리에 약 20분 정도 담겨있는 공연 준비 과정이 지금 보면 참 여러모로 공산주의를 좋게 보는 듯한 느낌의 편집과 오리엔탈리즘이 섞인 괴랄한 센스인데, 이유가 있다. 당시는 서구권에 문화대혁명의 병크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서구권 좌파들(특히 프랑스나 일본)이 사회주의 정권 중국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기도 했고, 세계인들이 30~40년 넘게 계속된 냉전에 지쳐서 미-소 데탕트 분위기가 퍼지던 시기이기도 했다.[8] 중국은 이 때까지만 해도 슈퍼파워가 아닌 '가난한 은둔의 나라' 취급받던 시절이라, 심지어 한국에서조차도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중국에 대해서 우호적 감정이 퍼지기도 했다. 1984년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이나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자오즈민의 결혼 귀화 등이 그 예.[9]

이후 1983년 전시회에서 쓰였던 음악인 <Music for Supermarkets>를 발표했는데, 장파(LW) 라디오방송인 라디오 룩셈부르크를 통해 이 음반을 틀고 난 다음 경매용으로 부칠 단 한 개의 LP판만 남기고직접 마스터 테이프와 LP음반제작용 마스터를 파기하는 기행을 보였다(...).[10] 다만 Music for Supermarkets에 등장하는 곡 일부는 이후 앨범에 사용되었다[11]

이후 1984년에는 <Zoolook>를 발매했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샘플링해서 음반 곳곳에서 활용한것이 이 음반에 특징으로 음반자체는 대중적으로 실패했지만,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1985년에는 친분이 있던 우주비행사 브루스 맥켄들리스 2세를 통해 차기 우주왕복선 임무 수행 예정이었던 우주 비행사이자 색소폰 연주자인 로널드 맥네어(Ronald Ervin McNair)를 만나서 'Rendez-vous 4'라는 곡을 공동으로 작업했다. 이 곡의 색소폰 파트는 로널드 맥네어챌린저를 통해 직접 우주로 올라가서 색소폰 연주를 녹음해 수록할 계획이었다.[12] 그러나 1986년 STS-51-L은 발사 직후 73초만에 폭발해 참사가 발생했고 이 계획은 무산 되었다.이후 맥네어를 기리는 'Last Rendez-Vous(Ron's Piece)'를 Rendez-Vous의 마지막곡으로 수록하였다. 그렇게 <Rendez-Vous>를 발매하고 텍사스의 150주년과 NASA의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휴스턴 도심 한가운데 에서 콘서트 Rendez Vous Houston을 개최하여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다시 한번 기네스북에 오른다. 그리고 8월엔 장 미셸 자르에 고향인 프랑스 리옹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기념으로 리옹 중심가에서 콘서트 Rendez Vous Lyon을 열어 80만명에 이르는 관객을 모은다. 이후 실황음원은 <In Concert Houston-Lyon>라는 앨범으로 출시 되었다.

그후 1988년에는 영국 산업 혁명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Revolutions>를 발매한다. 이 음반의 첫머리에 있는 'Industrial Revolutions'는 4파트로 구성된 나름 대곡인데, 이 곡의 첫머리는 90년대 초반 한국의 한 비디오메이커[13]에서 타이틀음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국내에도 나름 알려져 있다.[14] 같은 해 런던 템스 강의 재개발지역이던 도클랜드에서 두차례 공연을 가졌다.[15] 이 공연실황은 1989년에 <Jarre Live>라는 앨범으로 발표되었다.[16]

2.3. 1990년대

파일:JMJ93.webp
1992년 장 미셸 자르
Waiting for Cousteau(1990) 중 Calypso Chronologie(1993) 중 Chronologie Part 4
1990년 자크 쿠스토에게 바치는 음반 <Waiting for Cousteau>를 발표했고 프랑스 혁명 기념일(7월 14일)에 파리의 계획도시인 라데팡스에서 Paris la Defense 콘서트를 열어 250만명이 모여들여 다시 한번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다.[17]
1992년에는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콘서트 Swatch the World를 열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시티에서 Legends of the Lost City 콘서트를 개최했다.

1993년 스티븐 호킹시간의 역사에서 영향을 받은 <Chronologie>가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자르 음반중 가장 듣기 편하다는 호평과, 지나치게 대중적이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았다. 같은해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임명되었고, 스와치의 협찬으로 처음으로 콘서트 투어 Europe in Concert를 열어 유럽 16개 도시를 순회했다. 그후 1994년 홍콩을 찾아 홍콩 스타디움에서 콘서트를 열고[18], 이때 실황과 유럽 순회공연 실황을 섞은 더블앨범 <Hong Kong>음반을 발매했다.

1995년유네스코 50주년을 위해 에펠 탑에서 콘서트 Concert Pour La Tolerance를 개최하여, 125만명에 관객을 모으고, 전세계의 라이브 중계를 했다.[19] 그리고 공연일에 맞춰서 <Jarremix>라는 리믹스 음반을 발매했다.

그후 1997년 그의 첫음반 <Oxygene>에 후속작인 <Oxygene 7-13>을 발매했다. 발매후 전 처럼 콘서트 투어를 열었고, 그중 모스크바 850주년을 기념하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열린 Oxygene in Moscow는 350만명 관객을 모았다.[20] 1998년 까지 콘서트 투어를 계속 진행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기념하여 Rendez-vous 4를 아폴로 440와 협연하여 Rendez-vous 98을 발매했고, 또 일본의 키보디스트코무로 테츠야와 함께 Together Now를 공동으로 작업했다. 이후 월드컵 폐막식을 기념해 코무로 테츠야와 함께 에펠 탑에서 콘서트를 열어 80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해당 공연 실황은 Electronic Night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

2.4. 2000년대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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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장 미셸 자르
Geometry of Love(2003) 중 Geometry of Love Part 1 Electronica 1: The Time Machine(2015) 중 Glory[21]
1999년 호스니 무바라크의 초청으로 12월 31일부터 2000년 1월 1일까지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The Twelve Dreams Of The Sun이라는 제목의 콘서트를 열었다. 해당 공연은 3막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자르의 콘서트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공연 이기도 하다. 총 12만명의 관객을 모았고, 전세계로 생중계 되기도 했다.

이후 전작보다 월드 비트 성격이 강해진 <Metamorphoses>를 발매했다. 그후 2002년에는 <Sessions 2000>을, 2003년에는 <Geometry of Love>를, 2004년에는 그의 곡들을 새로 리믹스한 컴필레이션 음반 <Aero>를 발매 했고, 그리고 같은 해 중국 자금성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콘서트 실황 음원과 영상은 <Jarre in China>라는 이름으로 1년 뒤에 CD와 DVD로 출시되었다.

2005년엔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연대자유노조 25주년 기념으로 콘서트를 열었고, 2006년엔 모로코에서 Water for Life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신작 <Teo & Tea>를 발표하였다. 클럽에서 유행하는 최신 댄스 음악을 시도하였으나, 평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자르 본인도 '만들 땐 재미있었지만, 다신 이런 거 안 만든다'고 했을 정도.[22] 그후 2013년까지 유럽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열었다.

그후 2015년 10월 16일에 8년 만에 앨범을 냈다. 제목은 <Electronica 1: The Time Machine>. M83, 아민 반 뷰렌, 게사펠슈타인, 탠저린 드림, 오브등 일렉트로니카씬의 거물들과 콜라보 했을 뿐만 아니라, 선행 싱글의 리믹서도 어보브 앤 비욘드, 스티브 안젤로가 참여하는 등 리믹서/콜라보레이터에서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고 있다.

2016년 위의 음반과 비슷한게 초호화 라인업으로 <Electronica 2: The Heart of Noise>라는 음반을 발표했다.

그리고 <Oxygene>에 후속작 <Oxygene 7-13>가 나온지 19년 만인 2016년에 새 후속작 <Oxygene 3>가 발매됐다.

이후 2018년 9월 14일에 음악활동 50년 기념으로 컴필레이션 음반인 <Planet Jarre>를 내놓고, 동년 11월 16일에는 <Equinoxe>의 후속 앨범인 <Equinoxe Infinity>를 발표했다. 2018년에 칠순을 맞이했음에도 신규 앨범을 2장 내놓는 등 제법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초에는 버추얼 노틀담 콘서트 앨범 <Welcome To The Other Side>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작품과 연계된 <Amazonia>를 발표했다.

2.5. 기타 생활

3. 디스코그래피

※ 짙은 글씨는 그의 정규 음반

4. 비디오

5. 사용 신디사이저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미셸 자르/신디사이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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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장미셸 자르/신디사이저#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장미셸 자르/신디사이저#|]]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여담


[1] 1924. 09. 13. ~ 2009. 03. 28.[2] 1914. 10. 17. ~ 2010. 04. 23.[3] 닥터 지바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랑과 영혼 등 수많은 영화음악을 담당하며, 영화음악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인물. 2009년 암으로 사망.[4] 이후 모리스 자르와는 19살때 재회했다고 한다.[5] 정확히는 1993년 4월 12일부터 1997년 5월 30일까지[6] 베이징상하이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첫 공연땐 중국에 야간통행금지 때문에 관객들이 공연이 끝나버리기도 전에 나가버리는 일도 있었다(...) 결국 두번째 공연부터 시간을 앞으로 당기고, 표를 무료로 나눠주고 등등 해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7] 이 때부터 공연에서 레이저 하프를 쓰기 시작했다.[8] 다만 이 공연 직후인 레이건 집권 이후, 미국과 구소련은 SDI로 촉발되는 신냉전 체제로 바로 들어서서 1985년 정점을 찍는다. 냉전은 1986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글라드노스트(개혁 개방) 정책을 펴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비로소 냉전이 종식된다.[9] 사실 한국엑서 혐중감정이 제대로 불붙은 건 2015년 한한령 이후다.[10] 마스터 파기 당시 사진[11] 앨범의 파트 32는 이후 'Rendez-Vous'의 <Fifth Rendez-Vous (Part III)>에, 파트 4는 'Zoolook'의 <Blah Blah Cafe>에, 파트 6는 같은 앨범의 <Diva>에 일부 사용되었다. 이후, 2018년 자르의 50주년 기념 앨범인 'Planet Zarre'에 파트 2의 데모가 공개되었다.또한 송출 당시에 녹음된 내용을 새로 만든 리메이크 판도 존재한다.[12] 만약 이뤄졌다면 최초로 우주에서 녹음된 음악이 되었을 것이다.[13] 드림박스. 당시 삼성물산 산하의 비디오 업체였는데 삼성전자 산하에 스타맥스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그룹에 비디오 업체가 두 개나 있었다. 한 그룹에 같은 사업을 한 업체가 두 개였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기 위해 1995년 출범한 삼성영상사업단에 통합되었는데 3년도 안 되어 IMF가 터지는 바람에 삼성은 결국 음반 및 비디오 사업을 접게 된다.[14] 유튜브에 있는 당시 영상 전술한 각주처럼 삼성물산 산하 업체기 때문에 비디오에 삼성물산 계열 광고/배급 영화 광고가 실려 있다.[15] 강 중간에 무대를 띄워 위에서 공연을 했는데, 공연중에 폭우를 만나, 취소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자르의 콘서트 스케일이 워낙 큰 편이라서 결국 약간씩 감전되면서까지 강행했다고 한다.[16] 원래는 영국 공연을 마치고 일본에서도( <Revolutions> 수록곡중 "London Kid"와 "Tokyo Kid"라는 곡이있다.)1989년에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히로히토가 사망해 공연은 저절로 취소된다.[17] 파일:external/jeanmicheljarre.es/defense3.jpg 해당 콘서트 사진. 여담으로 이날 라데팡스에서 에투알 개선문까지 약 4KM나 되는 큰 도로가 모두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고 한다.[18] 홍콩 스타디움의 위치가 주거지역에 매우 인접하여 당시 공연 진행에 있어 소음 민원으로 인해 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해당 위치에서는 두번 다시 그 어떤 음악공연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1994년 자르의 홍콩 공연은 도시 전설로 홍콩인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고 한다.[19] 이 공연실황은 의외로 한국에서도 전파를 탔었는데, 수도권에서는 KMTV 현재 GMTV에서 방영했고, 부산방송(PSB)(현 KNN의 개국 당시 명칭. 당시는 부산권만을 가시청권으로 했다.)에서는 개국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20] 파일:external/www.digitalite.net/3598972522.jpg 해당 콘서트 사진. 현재 이공연은 로드 스튜어트의 1994년 브라질 공연과 함께 관객이 많이 모인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다.[21] M83과 콜라보[22] 프랑스의 Trax라는 잡지와 2010년 했던 인터뷰에서 말했다.[23] 둘 사이의 딸 에밀리 자르가 있었다. 이혼 후 딸의 양육권은 자르가 갖는다.[24] 메탈기어 솔리드 3더 보스의 캐릭터 디자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코지마 히데오 역시 장 미셸 자르를 좋아한다고. 트위터1 트위터2[25] 당시 이자벨 아자니는 자르가 영국 여배우와 외도한 사실이 드러나 헤어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자니는 "나는 그를 믿었는데 그는 나를 속였다"며 "그의 약속이 빛을 바랬기 때문에 나는 그를 떠난다"고 말했다. 아자니는 자르가 영국 여배우와 외도했다는 증거를 입수했으며 그는 불륜 관계를 결국 인정했다고 덧붙였다.[26]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니키타에서 여주인공 니키타를 열연해서 유명해진 여배우. Teo & Tea에서 Beautiful Agony에 나오는 신음소리를 피쳐링하기도 했다.[27] 현재 해적판으로만 나오고 있다.[28] CD랑 함께 출시 됐고 1년전에 Live in Beijing라는 이름으로 DVD만 따로 나왔었다.[29]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