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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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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HL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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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3-277B 콕핏

1. 개요2. 제원3. 개발4. 대한항공과 DC-35. 현재6. 파생형
6.1. 민간 버전6.2. 해외 라이센스 버전
7. 여담8. 등장 매체9. 관련 문서10. 참고 링크

1. 개요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c-47%B0%FA%20c-17.jpg
1991년에 초도생산된 C-17과 비행하는 DC-3. 상단이 DC-3이고 하단이 C-17이다.

미국더글라스에서 개발한 중,단거리용 협동체 쌍발 레시프로엔진 여객기. 두 개의 방사형 피스톤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이름의 DC는 Douglas Commercial의 약자로 이 명명법은 DC-10까지 사용되었다.

초창기 단엽 금속제 여객기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기종이자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상업 여객기로,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나온 제트 여객기인 보잉 707, 보잉 747 등과 함께 민항기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기체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전 항공기에 비해 빠른 속력과 넓은 항속거리를 자랑했고,[3] 신뢰성과 승차감이 좋았기 때문에 우편 계약 위주 대신 승객 위주로만 운영한 최초의 여객기 중 하나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많은 항공 여행 루트를 개척했다.

1935년부터 1942년까지 총 607기가 생산되었으며, C-47 스카이트레인(10,047대)이나 소련(4937대), 일본(487대)에서 라이선스를 받고 만든 군용 버전까지 합하면 무려 16,078대가 생산되었다.

2. 제원

영어 위키피디아 DC-3A-S1C3G 기준 제원
승무원 2명
승객 21~32명
길이 19.7m
너비 29.0m
높이 5.16m
날개 면적 91.7m2
종횡비 9.17
에어포일 NACA2215 / NACA2206
공중량 7,650kg
총 중량 11,431kg
연료 용량 3,736L
동력 장치 프랫 & 휘트니 R-1830-S1C3G Twin Wasp × 2, 각 1,200hp(890kW)
프로펠러 3엽 Hamilton Standard 23E50 시리즈, 직경 11피트 6인치(3.5m) 유압으로 제어되는 일정한 속도, 페더링
최대 속도 2,590m(8,500피트)에서 200kn(230mph, 370km/h)
순항 속도 180kn(207mph, 333km/h)
실속 속도 68.0kn(78.2mph, 125.9km/h)
항속거리 1,370 nmi(1,580 mi, 2,540 km)(최대 연료, 3500 lb 페이로드)
고도 7,100m(23,200피트)
상승률 1,130ft/min(5.7m/s)
날개 하중 25.5lb/sq ft(125kg/m 2 )
추중비 0.0952hp/lb(156.5W/kg)

3. 개발

1920년대 이후, 광대한 미국 국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고속 수송 수단으로서 항공기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지만, 당시까지 항공기들은 순항속도와 항속거리 모두 지금 기준으로는 조잡하기 짝이 없어서 미국 횡단은 위해서 여러 급유지가 필요할 뿐더러 승객 수도 적어서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트랜스 월드 항공이나 유나이티드 항공, 팬 아메리칸 항공 등의 항공사들은 보다 많은 적재량을 가진 금속제 여객기의 개발을 더글라스나 보잉, 커치스 등의 제작사에 의뢰하게 됐다.

DC-3의 시작은 넓게 보면 1930년대 초반에 TWA의 절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TWA는 유나이티드 항공과 불꽃튀는 경쟁 중이었는데, 그 시절 항공사들은 특정 항공기 제작업체를 선호하여 해당 업체 제품들만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고 항공기 제작업체 역시 자신들을 선호하는 항공사들에 우대정책을 펴는 상황이었다.[4]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은 같은 계열사였던 보잉[5]의 신형 여객기인 보잉 247를 도입했고. 보잉은 계열사였던 유나이티드 항공이 주문한 60기의 기체를 납품하기 전까지는 타 항공사들에 247를 팔지 않는다고 선언해버렸다.

이에 질투심이 든 TWA는 더글라스에게 유나이티드 항공과 맞붙을 수 있는 신형 여객기를 만들도록 주문했는데, 이에 대한 더글라스의 응답은 바로 1933년에 출시한 저익 단엽 쌍발기 DC-1이었다. TWA의 하워드 휴즈와 기술 자문인 대서양을 처음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이전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 TWA 비행기가 떨어져 전원 사망한 사건 때문에 엔진 하나가 고장나도 날 수 있는 3발기를 요구했는데, 더글라스는 쌍발기로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하며 프로토타입격으로 내놓은 DC-1이 엔진 하나로 못 날자 당장 단종시킨 후 재설계에 들어가 1934년에는 DC-1의 개량형 양산형 DC-2를 선보이면서 TWA를 만족시킨 것은 물론, 상당히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한편 아메리칸 항공의 CEO였던 사이러스 R. 스미스[6] 회장은 자사의 커티스 T-32 콘도르 복엽 여객기를 대체할 신형 여객기를 더글라스에 주문하게 됐다. 이에 더글라스는 DC-2 기반의 신형 여객기를 2년 동안은 개발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야간노선을 위한 침대 여객기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DST(Douglas Sleeper Transport)'로 불렀다. DC-3는 아메리칸 항공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DC-2의 폭을 약간 넓힌 것은 물론, 기체의 대부분을 새로 설계했다.

이후 라이트 형제의 첫 비행 32주년이었던 1935년 12월 17일에 DST 프로토타입이 초도비행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되었다. DST는 14명분의 침대와 갤리를 갖추고 단 한 번의 연료 보급만으로 쾌속 200마일로 북미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장거리 쾌속기가 되었고, 1936년 6월 25일에 아메리칸 항공으로 말미암아 운항이 시작되었다. 당연히 반응은 매우 좋았다.

DST 완성 직후에 더글라스는 DST에 침대 대신 좌석을 놓아 1+2배열로 만들어 너비가 1.7 m에 1+1 배열이던 DC-2보다 1.5배 많은 21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게 했고, 후에는 2+2 배열로 최대 32명을 태울 수 있게 했다. 시제기는 없이 당초부터 양산형으로 롤아웃했으며, 1936년 6월 26일에 아메리칸 항공의 뉴어크-시카고 노선으로 취항이 시작된 이후로 매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 당시 미국의 항공사들만 해도 무려 400기 이상의 DC-3을 주문했으며, 1939년 시점으로 DC-3은 전신격인 DC-2와 합하면 미국 내 총 여객 수송량의 90%를 차지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칸 항공의 스미스 회장의 말처럼 'DC-3는 (연방 정부의 우편 수송) 보조금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운임 수입만으로 (흑자를 만들어) 운용 비용을 견딜 수 있는 최초의 여객기'가 되었다. 거기에 당대 기준으로는 연비가 매우 좋았으며, 운항 경비는 DC-2에 비해 겨우 3%밖에 늘지 않았고, 엔진 탈착이 단시간에 가능하다는 등의 정비도 쉬운 데다가 승차감도 좋았으니 미국의 항공사들은 물론, 영국항공의 전신격이던 영국해외항공(BOAC)와 스위스에어, KLM 네덜란드 항공[7] 같은 외국 항공사들도 DC-3를 사가게 되었다. 다만 오리지널 DC-3은 1943년에 이미 생산이 중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에는 군용기인 C-47로도 매우 크게 활약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종전 후 여객기나 화물기 등의 민항기로 개조된 후 민간에 저가로 풀리며 DC-3C로 다시 태어났다. 거기다 1949년에는 엔진 출력을 올리고 적재 용량을 키운 'Super DC-3'가 제조되었지만, 지불하던 DC-3C가 다수 나돌고 있던 것도 있었고,[8] 항공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며 신규 수요의 중심은 대형 4발기인 후계기 DC-4나 거기에 여압 캐빈을 설치한 DC-6로 옮겨졌기 때문에 겨우 5대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그 후 1950년대에 더욱 고성능을 가진 여객기들이 등장하면서 DC-3은 메이저 항공사에게 점차 버려지기 시작했으나,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들에서는 1970년대에도 여객기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DC-3의 전성기가 끝난 후인 7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항공기 제작사들이 포커 F27처럼 '포스트 DC-3'를 만들려고 했지만, DC-3에 비하면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남극에 착륙한 최초의 비행기이기도 한데, 실제로 1956년 10월 31일에 '케세라세라(Que Sera Sera)'라는 이름을 가진 C-47이 스키 장비를 갖추고 비행기로서는 최초로 남극에 착륙했다.[9]

4. 대한항공과 DC-3

대한항공은 전신인 대한국민항공(KNA) 시절을 포함하면 이 문서 최상단에 있는 우남호(HL2002)을 포함해 DC-3 4기를 운용했다.

대한국민항공은 2대(창랑호, 만송호)를 운항했는데, 1950년에 이 기체들을 도입하여 한국 최초의 항공 노선인 서울-공주-군산 노선에 취항했지만, 안타깝게도 두 기체 다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창랑호는 납북된 후 행방이 묘연해진 데다가, 만송호는 1957년 7월 7일에 착륙하던 중에 사고가 나 완파되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DC-3 2대(HL2001, HL2002)를 운항하였다. 그 중 '우남호'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HL2002는 1943년에 C-43으로 제작된 후 여객기로 개수되어 알래스카 항공에 의해 운용되었으며, 이후 1954년 대한국민항공에 도입되었다. 우남호는 1955년 10월 18일에 하와이 교포 1세들로 구성된 '하와이동포 고국 방문단' 46명을 싣고 하와이에서 모국으로 날아올라 대한민국 최초로 태평양 노선을 운항한 역사적인 비행기이기도 하다. 우남호는 1969년부터 대한국민항공의 후신인 대한항공에 인계되어 운용되다가 1971년에 퇴역한 후 인하학원[10]의 이사장이기도 한 조중훈 대한항공 회장에 의해 1974년 인하대학교에 기증되어 오늘날에도 전시되어 있다. '우남호'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인하대학교의 설립자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인 '우남'에서 비롯되었다. '창랑호'는 장택상, '만송호'는 이기붕의 호에서 비롯되었다.

또 다른 DC-3인 HL2001은 1939년산 기체라고 한다.

5. 현재

2013년 10월에 군용까지 합쳐서 2천여 대, 2017년 8월에 300대 이상이 현역이었는데, 2023년 11월 기준으로도 무려 164대가 수송기나 전세 비행용으로 사용된다고 하며,[11][12] 심지어 2020년 기준으로는 무려 7대가 운항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2차 대전 이전에 개발된 여객기 중 유일하게 현역인 여객기이며, 따라서 DC-3는 항공 업계인들이 뽑은 첫 생산 이후로 100년 이상 운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체에도 올라가기도 했다. 참고자료[13] 항공 애호가와 조종사 사이에는 "DC-3의 대체품은 다른 DC-3밖에 없다."이라는 오래된 농담이 있기도 하다.

다만 100년 이상 운용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체로 꼽힌 것은 그동안에 생산된 전체 기준이고, 현역인 가장 오래된 DC-3는 43번째로 생산되어 1937년 3월 2일자로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된 디트로이트(Detroit)호인데, 플래그십 디트로이트 재단이 소유하고 있으며 미국 전역의 에어쇼에서 등장한다고 한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DC-3는 1936년에 여섯 번째로 생산되어 1936년 7월 12일자로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된 NC16005이다.

2022년 4월 경엔 콜롬비아 국적 DC-3 2기가 5일 간격으로 추락사고를 내기도 했다.#

6. 파생형

6.1. 민간 버전

크게 7종이 있다.

6.2. 해외 라이센스 버전

7. 여담

8. 등장 매체

9. 관련 문서

10. 참고 링크



[1] 우남호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기체이다. 1974년 대한항공이 해당 기체를 인하대학교에 기증함에 따라 현재 인하대학교 캠퍼스 내에 전시되어 있다.[2] 동체에 창문이 없어서 화물기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 보존하면서 창문을 모두 막은 것이다.[3] DC-3으로는 뉴욕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단 세 정거장만 있으면 17~18시간 만에 미국 본토를 횡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는 터무니없이 느린 거지만, 그 이전까지 항공 여행은 영문 위키피디아의 표현대로라면 '낮에만 더 느리고 짧은 항속거리의 항공기로 짧게 비행한 후 밤에는 기차 여행을 해야 했던' 것이었단 것을 감안하면 크게 발전한 거다.[4] 이 경향은 후대인 1950년대 후반에 보잉 707DC-8이 처음 나오던 시절까지 이어졌다. 707이 DC-8보다 1년 일찍 나와 DC-8만 주문한 유나이티드와 델타항공 등은 국내선 점유율에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5] 그 당시에는 노스롭프랫&휘트니도 보잉의 계열사였다.[6] Cyrus Rowlett "C.R." Smith, 1899~1990. 1934~1968/1973~1974년까지 아메리칸 항공의 CEO를 지냈으며, 2차 대전 당시에는 항공 수송 사령부의 전시 부사령관을, 린든 존슨 대통령 시기에는 상무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7] 1936년 도입 후 암스테르담-자카르타 경유-시드니 운항. 당시 세계 최장의 정기 노선이었다고 한다.[8] 당시 민간에 풀린 DC-3은 C-47까지 합치면 무려 1500여대였다고 했으며, 미국의 큰 항공사부터 신흥 독립국의 항공사까지 거의 모든 항공사가 DC-3C를 여객기로 썼다고 했다. 거기에 DC-3는 잔디나 흙으로 된 활주로도 사용할 수 있어 개발도상국이나 활주로가 포장되지 않은 오지에서 선호를 받았다.[9] 참고로 이로부터 약 2달 후인 1956년 12월 22일에는 칠레LAN 항공 소속의 DC-6B가 여객기로서는 사상 최초로 남극 대륙 상공을 비행했다.[10] 1968년에 한진그룹이 인수했다.[11] 이는 비슷한 시기 기준으로 현역으로 운항되던 MD-80의 수보다도 많았다. 참고로 MD-80은 1999년에 단종된 기체다.[12] 정확히는 미국에서 89대, 캐나다에서 19대, 호주에서 6대, 남아공에서 16대, 콜롬비아에서 17대, 태국에서 7대, 볼리비아, 중국, 프랑스, 인도, 모리타니, 뉴질랜드, 영국 등지에서 1~3대씩 운용 중이라고 한다. 이들은 보관 중인 기체도 포함한 수치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13] 물론 현재도 운행되는 기체들은 기골이 보강되거나 터보프롭 엔진으로 바꾼 것들이라고 한다.[14] 더글라스와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인 1935년 $90,000에 맺어진 라이센스로 DC-2의 라이센스 생산의 성공으로 맺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