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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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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 Paro Lake
국가 <colbgcolor=#fff,#2d2f34>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
분류 인공호(화천댐, 1944년)
유입 북한강
유출 북한강
면적 38.9㎢

1. 개요2. 역사3. 시설4. 방문 방법5. 중국 정부의 명칭 간섭6. 기타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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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파로호.jpg
파로호 (破虜湖)

강원특별자치도 화천군양구군에 걸쳐있는 면적 38.9㎢에 저수량 약 10억 t인 호수화천댐의 축조로 인해 형성된 인공 호수다. 화천댐은 중력식 콘크리트댐이며 이전에는 발전용 댐이었지만 최근에는 다목적댐이 되었다.

2. 역사

1944년 일제는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의 북한강 협곡을 막아 수력 발전이 가능한 화천댐을 축조한다. 낙차 77.5 m를 이용해 10만 8천 kW 정도를 발전 가능하다. 현재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관리 한다.

이 화천댐을 축조함으로서 인공호인 파로호가 생겨났다. 당시에는 화천호, 화천 저수지 혹은 대붕호(호수 모양이 전설 속 새인 대붕과 닮아 붙은 이름)라고 불렸다. 정확히는 주민들이 대붕호를 건의했지만 당시 일제는 '대명제'라는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후 해방이 되고 삼팔선이 그어지며 북한령에 속했다. 1948년 북한의 단전 조치로 인해 이 댐에서 북한강으로 흐르는 물을 막아버렸다. 하류의 청평댐 등의 수력 발전은 큰 피해를 보았고, 한국은 심각한 가뭄과 전력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파일:Pa Ro Ho Stele in Korea.jpg
1955년 1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명명하고 기념비 제막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6.25 전쟁 당시 1951년 5월 용문산 전투에서 대한민국 육군 제6보병사단중공군 3개 사단의 공세를 막아낸 뒤 패주병들을 여기까지 쫓아가 섬멸하자(파로호 전투)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군 및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이를 기념해 파로호로 개명하였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파로호라 하지않고 화천저수지라고 부른다.

이후 휴전 협정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7월 13일 금성 전투에서 공산군의 목표 중 하나가 되어 백암산 전투 당시 중공군 일부가 이 호수를 노리고 남하했다. 그리고 20일엔 본격적으로 금성천 및 화천댐(화천발전소)를 두고 425고지-406고지 전투가 벌어져 사수에 성공해 댐을 포함, 호수 전체가 한국령이 되었다. 그 결과 수도권에 막대한 물과 전기를 공급하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홍수 피해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불안해서 상류에 평화의 댐을 추가로 건설했다.

참고로 파로호 전투 당시 여기에서 익사, 사살, 수장된 중공군은 대략 2만 4천여 명이라고 한다. 수장을 한 이유는 시체를 방치하면 악취 이상으로 전염병 창궐 우려가 있기 때문. 게다가 대부분이 지금도 수습이 안 되었기에 수위가 낮아지면 (방류가 이루어지는) 댐 부근 진흙 속에서 유해들이 잔뜩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바닷물 속에서는 오래 되면 유해가 녹아 없어지는데, 민물에서는 좀 더 오래 간다. 그래도 그냥 물에 잠겨 있는 상태로는 살은 몇 주 안에, 뼈는 길어야 10여 년 만에 삭아 없어지는데, 진흙 속에 묻히면 반 쯤 화석화돼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지나도 뼈가 남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화천댐이 바닥을 완전히 드러내고 진흙을 준설한 적은 없으므로, 홍수로 대량 방류할 때 어느 정도까지 바닥의 진흙층이 쓸려내려갔는지가 관건이다.

1987~8년 무렵에는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수위를 크게 낮췄다. 이때문에 수몰 지역의 옛 건물 터들과 문화재들이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華川(화천)댐 수몰지 43년만에 "햇빛"

3. 시설

댐으로 가로막힌 수중 생태계를 위해 하루 한 번 물고기 수송용 모노레일을 운용한다.#

파로호 전투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화천댐이 있다. 현지에서는 주로 '구만리 발전소'라고 부른다.

파로호에 있는 섬 하나가 다람쥐와 관련이 있다. 한국이 아직 첨단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던 1960년대 당대에는 귀여운 다람쥐를 잡아다 외국에 애완동물로 수출하는 것이 꽤 짭짤한 수익이 되었다.[1] 때문에 파로호에서는 다람쥐가 도망갈 염려가 없는 무인도에 풀어서 키우고자 했다. 하지만 파로호가 가뭄으로 메마르는 바람에 그 무인도와 육지 사이가 붙으면서 다람쥐들이 탈출했고, 결국 다람쥐 번식 작전은 대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래도 영향이 남아서 현재도 그 섬을 '다람쥐섬'이라고 부른다.

양구읍한반도 모양 인공섬이 있다.[2]

4. 방문 방법

서울에서 파로호를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 방법이 꽤 복잡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화천공영버스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하루 8회 있으며, 춘천시외버스터미널을 포함하여 있는대로 거쳐가는 완행 노선이다. 하차 후 화천시내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시내버스터미널에서 화천 버스 5번을 갈아타고 구만리 뱃터 정류소에서 내려 도보로 300m 정도를 가면 파로호 선착장을 갈 수 있다. 주변에 파로호 전망대와 안보전시관도 있다. 다만 버스 자체가 자주 오지 않는 것이 최대의 문제.

또 서울에서 자동차를 이용하여 파로호로 가는 경우 5번 국도를 이용하여 춘천으로 간 뒤 이후 다시 5번 국도 또는 407번 지방도를 타고 다시 461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겨울에 화천산천어축제를 할 때 겸사겸사 방문하거나, 평화의 댐과 연계하여 관광하는 것이 보통이다.

5. 중국 정부의 명칭 간섭

중국 외교부2018년 말 당시 노영민 주중대사에게 파로호 명칭 변경을 요구한 적이 있다. # 이후 문재인 정부가 강원도, 화천군에 일제 때 쓰던 대붕호로 다시 바꾸라 지시했다는 낭설이 돌았으나, 강원도, 화천군 측이 그런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는 어찌됐든 많은 자국민들이 희생된 곳이고 이름 자체가 오랑캐를 뜻하니 기분이 좋진 않겠지만, 전쟁 당시 먼저 한국측에 선공을 가한건 중국이라 명분이 떨어지며 지명을 바꾸는 건 화천 군민과 한국 국민들이 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강원도남북협력협회에선 평화주의 등의 이유로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2019년 한겨레, 오마이뉴스에서는 오랑캐라는 명칭 자체의 부적절함 등을 이유로 변경을 지지하는 기사를 냈다.## 오마이뉴스는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칭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는데, 현지 주민들은 지명 변경 운운을 어이 없어 했다. 화천군 또한 정부도 아닌 일개 단체의 요구만으로 지명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거듭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한국전쟁에서 중국군을 파로호에 수장한 것을 불편해하는 일부 한국 좌익의 시각은 이전에도 있었다. 명칭 논란 1년전의 한겨레 기사에 잘 나타나있다. 여기선 물론 침략자 중국군이라는 사실은 제껴놓고 인도주의적 대우를 해주고 싶으나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이라는 시각으로 묘사되어있다. 때문에 파로호 명칭 바꾸기는 일단은 작은 논란으로 끝났지만, 파로호 사건처럼 '침략자 중국군도 불쌍한 외국 청년들'식의 온정적 시각에 '만악의 근원 미제'가 결합하여 다른 방식으로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2020년, 최문순 화천군수는 대붕호란 명칭이 역사적으로 크게 유의미한 명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지역 자체가 대명제, 대붕호, 화천호, 화천저수지, 화천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다 한국전쟁 이후 파로호로 명명된 것.

6. 기타

이곳에 수장된 중공군 유해만 대략 2만 4천 구라고 한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 병사들 중에 만주족 병사들이 한족 병사들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했으므로, 파로호의 명칭에 걸맞게 만주족 병사들의 유해들도 적지 않게 수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해발굴사업을 하면 꽤 많은 유해와 전쟁유물들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한중우호 차원에서 중공군 유해를 발굴하고 위령비를 건립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6.25를 '항미원조전쟁'이라고 칭하여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측이 인도적으로 유해 발굴까지는 해줄 수는 있다. 발굴되는 전사자의 유해는 망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국적 상관없이 출신국에 돌려보내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국측이 중국군을 위한 위령비 건립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유해들을 발굴하는 것도 수몰된 상태라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설령 파로호의 물을 전부 빼고 헤집는다 해도 호수에 70년이나 잠겨있었으니 진흙에 완전히 잠겨있던 시신들을 제외하면 뼛조각도 건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편 이곳에 접한 신내마을, 비수구미마을 등지에는 육로가 나지 않은 호숫가에 주민들이 드문드문 거주한다. 이 지역에도 원래부터 마을이 존재했으나, 화천댐을 짓기 이전에도 육로교통이 극단적으로 불편한 지역이라 수운에 의존해왔다. 과거에는 이 지역에 수동분교, 모일분교 등의 학교 역시 존재했으며, 중고등학교는 구만리 선착장까지 통학 시간에 다니는 배를 타고 화천읍내까지 나오거나, 혹은 중학생 때부터 읍내에서 자취를 하고는 했다고. 전기와 통신선은 대부분 가설되어 있으나 상하수도 시설은 없으며, 우체부가 직접 보트를 타고 다니며 지게를 지고 우편과 택배를 나른다. 주민들은 거의 다 노인이라, 읍내 약 심부름이나 주민 간 비공식 서신 등 본래의 업무 외에 주민들의 다양한 민원을 함께 맡아 준다고 한다. 주민들 역시 육로가 닿는 선착장에 차를 두고 집까지는 보트를 타고 다니는데 겨울에는 호수가 얼어붙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하니 정말 오지 중의 오지라 할 수 있다. 관련 KBS 다큐 영상.

2022년 1월 중순 러시아지질연구기관이 천연가스 조사를 위해 파로호 인근(양구)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있다. 양구군청은 이에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대한민국 해군천지급 군수지원함(AOE-I)의 3번함이 화천함(AOE-59)으로 명명되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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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에도 오줌과 머리카락도 유용한 수입원이 되던 시절이었다. 머리카락은 가발로 만들어서 수출했고, 오줌은 약품으로 가공한 다음에 수출했다. 중고교 화장실에 수거통을 장치하기도 했다.[2] 영월 한반도 지형과 전혀 무관하다. 방문시 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