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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8:18

혼다 케이스케/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혼다 케이스케
1. 개요2. 클럽 경력
2.1. 유년기와 J리그 시절2.2. CSKA 모스크바
2.2.1. 전성기의 수많은 이적설
2.3. AC 밀란
2.3.1. 2013-14 시즌2.3.2. 2014-15 시즌2.3.3. 2015-16 시즌2.3.4. 2016-17 시즌
2.4. CF 파추카2.5. 멜버른 빅토리2.6. SBV 피테서2.7. 보타포구 FR2.8. 네프트치 PFK2.9. FK 수두바2.10. 파로 FC
3.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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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다 케이스케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클럽 경력

2.1. 유년기와 J리그 시절

중학시절 '평발'에 축구 재능은 전무하다는 악평을 들으며 감바 오사카 입단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축구일기라는 것을 쓰며 자신의 목표, 비전, 축구 전술, 경기 내용뿐 아니라 자신이 먹은 식단과 영양소까지 일일이 작성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이시카와현 세이료 고등학교[1] 고3 때 팀을 전국대회 4강에 진출시키는가 하면 졸업과 동시에 나고야 그램퍼스에 입단하게 된다. 나고야[2]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청소년 대표나 올림픽 대표 등으로 선발되기도 했지만 딱히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이후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에의 VVV 펜로로 이적한 이후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2. CSKA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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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첫 해인 07/08시즌 VVV 펜로는 2부 리그로 강등당하고, 다음 해인 08/09 시즌 2부 리그에서 36경기 출장 16골 13어시스트를 올리며 시즌 MVP로 선정된다. 이 활약으로 인해 다음 해 이적료 900만 유로에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PFC CSKA 모스크바로 이적했다.

CSKA 모스크바에서는 리그, 컵대회, 슈퍼컵을 모두 우승하여 러시아에서 들어올릴 수 있는 모든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냈는데 특히 세비야와의 챔피언스 리그 맞대결에서 프리킥 득점에 성공하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3] 이 골 덕분에 CSKA 모스크바는 구단 창단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2011시즌 초반에는 감독과의 불화가 심각해져서 벤치로 밀려나기도 했다. CSKA가 헤매자 감독이 혼다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혼다도 대활약을 펼치면서 주전으로 복귀, 에이스급으로 맹활약 하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2012년 2월 1일 한국 내셔널리그강릉시청 축구단에서 뛰다 CSKA 입단이 확정되어 화제가 된 김인성한솥밥을 먹기도 했지만 김인성이 별다른 활약없이 2013년 1월에 방출되면서 짧은 만남으로 남게 됐다.[4]

전반기에만 리그에서 7골을 몰아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재수없게도 오른쪽 무릎연골 반월판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당하면서 거의 시즌아웃에 가까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수술 이후 혼다는 재활치료를 위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병원으로 갔는데 하필 그 행선지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은 드디어 혼다가 FC 바르셀로나에 이적한다는 짓궂은 루머를 퍼뜨리며 놀려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1/12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혼다의 전 에이전트는 이적설이 양산되는걸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혼다 왈, "그 녀석은 좋은 녀석이었다. 무능했을뿐."[5] 이후 2011/12 겨울 첫번째 이적시장에서 프랑스 리그앙 1위를 고수하던 파리 생제르망이 혼다 이적을 위해 179억원을 제시했으나, 정작 모스크바 감독은 혼다의 이적은 없다고 거절.

그 직후 일본과 유럽 주요 매체에서 일제히 세리에 A의 라치오로 이적이 결정됐다고 보도했으며, 결정적으로 라치오 구단주 본인이 혼다 영입을 천명했기에 라치오 이적이 확정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겨울 이적시장 마감 당일 라치오에서 혼다 영입에 실패했다는 내용을 보도했고, CSKA측 역시 혼다의 이적은 없다고 보도했다. 몸값 조정까지는 성공했으나, 분할지급을 원하던 라치오와 일시불을 원하던 CSKA의 입장차이가 막판까지 좁혀지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는 모양. 애초에 혼다가 이적을 하지 못한 것은 CSKA가 책정한 몸값이 터무니 없이 높았고 결정적으로 소속구단이 그를 이적시킬 마음이 없었다는데 있다.[6]

결국 라치오 이적이 무산된 혼다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재활치료를 끝마치고 레알 마드리드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 경기를 위해 다시 러시아로 떠난다. 이 경기에서 혼다는 후반 20분에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돼 갓 부상에서 복귀한 선수치고는 굉장히 준수한 활약을 펼쳤고[7] 팀의 극적인 동점골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CSKA 모스크바 감독은 혼다 투입 후 공격이 살아났다며 그를 추켜세웠고# 이후의 리그 경기도 선발출장해 2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완전히 살아난 모양새더니 아니나 다를까...이번엔 왼쪽 허벅지를 부상당하며 실려나갔다.

호날두가 혼다를 조심해야 한다며 주가를 한창 띄워줬음에도# 병원에 실려가느라 2차전은 아예 명단제외 당했고 결국 CSKA는 4-1로 무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혼다에게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빅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놓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엔 국대에서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한을 풀었다(...).

13-14 시즌은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시티, 바이에른 뮌헨,빅토리아 플젠(체코)과 조를 이룬 소속팀에서 맹활약을 해야할 처지인데 2차전 플젠과의 홈경기에서 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역전과 재역전,상대방 자책골로 조 꼴찌 후보(?)를 겨우 이겼기에 혼다의 골은 큰 평가를 받지 못했다.

PFC CSKA 모스크바의 5시즌 동안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1회 우승, 러시아 컵 2회 우승, 러시아 슈퍼컵 1회 우승을 하여 러시아내에서 개최되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통산 127경기(선발107경기) 28골 29도움

2.2.1. 전성기의 수많은 이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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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의 이적을 도와주세요.
2010년 월드컵 이후 온갖 유명인사/언론들에게 호평을 받은 관계로 빅클럽 이적설이 끊이질 않았다.상기 언급한 뱅거 감독의 아스날 FC부터 시작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시티 FC, 리버풀 FC, 첼시 FC, FC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CF, 세비야 FC, ACF 피오렌티나, AC 밀란, 갈라타사라이 SK 등등. 심지어 당시 일본 웹에서 혼다 케이스케를 검색하면 추천검색어 1위로 '이적'이 뜰정도였다.[8] 하지만 PFC CSKA 모스크바가 돈이 궁한 팀이 아닌 관계[9]로 팀의 에이스인 혼다에게 이적료를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하였고(약 200억원) 계약기간도 길었기 때문에 러시아를 떠나기는 힘들어 보인다는 말이 많았다.[10]

여러가지 이적설이 나도는 와중에 혼다 본인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로의 이적을 원하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처음에는 이적설이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떨며 응원하던 일본 팬들도 반쯤 체념한 분위기가 되었다. 반면 한국에선 비아냥적으로 언론 기사거리로 잘 쓰였다. 정대세분데스리가 1부리그 FC 쾰른에 단번에 이적하자, 국내 언론에선 설레발만 많던 혼다와 달리 단번에 소문없이 이적된 정대세를 견주며 까기도 했다. 하지만 정대세도 분데스리가에서 부진으로 한국으로 이적 블라디미르 푸틴이 직접 나서서 혼다의 러시아 탈출을 방해하고 있다는 농담도 돌고 있으며, 혼다의 얼굴을 다른 팀의 유니폼에 갖다 붙이는 놀이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혼다가 언론플레이의 달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언론의 희생자였다. 조직에 대한 헌신같은 판에 박힌 인터뷰, 판에 박힌 행동만 하는 일본축구계에서 넘치는 개성과 실력, 해외에서의 인지도로 인해서 일본 미디어의 클릭수 부풀리기용 먹이거리가 된 것이다.[11] 일본 언론[12]에서는 이적설 떡밥으로, 한국 언론에서는 예전의 스즈키 이치로처럼 악역으로써 활약해주었다. 한때 절정으로 넘쳐나는 이적설에 혼다 자신이 "괴롭다"는 인터뷰한 일도 있다. 사실 인터뷰는 겸손, 개념있게 하는 편.

아무튼 2013년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 AC 밀란으로의 이적이 유력하다는 정보가 각종 언돌을 통해 보도가 되면서 다시 한번 관심을 받았다. 이때 CSKA 감독은 '그런 오퍼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고, AC 밀란의 구단주 역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팀은 혼다를 영입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2013년을 끝으로 CSKA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혼다가 이적금 없이 밀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태였다.

여름 내내 밀란과의 링크가 계속 나고 있었고, 밀란에선 부정하기도 했지만, 결국 AC 밀란이 혼다의 영입을 공식 발표하고 혼다의 이름이 박힌 10번 유니폼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혼다의 꿈이 이루어졌다.[13] 그래도 몰락한 명가 밀란이라지만 오랫동안 혼다가 바래왔던 명문팀 10번이 되었다. 당시에는 카카와의 호흡이 어느정도 일까 기대하는 팬들도 많았다.

2.3. AC 밀란

2.3.1.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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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AC 밀란행이 공식 발표되었다. 하지만 밀란으로 오기 전 CSKA 모스크바 소속으로 이미 이번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출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밀란에서는 13-14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2014년 1월 13일 US 사수올로 칼초전에 교체 선수로 들어와 골대도 맞추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도메니코 베라르디가 밀란을 상대로 4골을 넣으며 완전히 묻혔다.

2014년 1월 16일 코파 이탈리아 16강 스페지아 전에서 선발 선수로서 후반 2분 중거리슛이 골키퍼의 손에 맞고 튀어 나오자 침착하게 밀어넣으며 2번째 출전 경기만에 골을 기록하였다.

2014년 4월 8일 오랜만에 제노아전에서 골을 터뜨렸다. 팀은 여전히 중위권이고 시즌은 이미 무관 확정에 챔피언스리그의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혼다 개인으로선 오랜만에 맛보는 리그 골이자 팀이 2-1로 이겼으니 기뻐할 일이었다.


2013/14 시즌 16경기(선발 13경기) 2골 2도움
세리에 A: 14경기(12) 1골 2도움
코파 이탈리아: 2경기(1) 1골

2.3.2.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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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4-15 시즌이 열리자 혼다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똑같은 오른쪽 윙포워드에서도 7경기 6골 2어시라는 놀라운 포인트 적립률을 과시하며 메네즈와 함께 밀란을 이끌었다. 원인으로는 혼다가 제일 잘하고 선호하는 2선 중앙에서의 플레이가 카카와 겹치던 것이, 카카가 이적하고 난 다음부터 중앙으로의 적극적인 활동범위 확대로 인해 플레이가 훨씬 자유로워지고 몸에 맞는 상황이 된 것이다. 밀란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밀란은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 혼다가 차출되는 것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무득점 행진이 이어지면서 초반 활약이 묻히게 되었다. 14-15 시즌 최종 성적은 정규리그 29경기 6골.

2014/15 시즌 30경기(선발 26경기) 6골 4도움
세리에 A: 29경기(26) 6골 4도움
코파 이탈리아: 1경기(-) -

2.3.3. 2015-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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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기 감독에서 미하일로비치 감독으로 바뀌고 혼다는 처음에는 새 감독에게 중용받았지만 폼이 올라오지 않아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한국시간으로 9월 14일 밀란 더비의 패배의 원흉이 되어서 까임은 더 심해졌다. 결국 벤치로 전락하였는데...

원문 링크

2015년 10월 4일, 밀란과 나폴리의 경기가 있었고, 이 경기에서 밀란은 0-4로 대패. 혼다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경기 이후 일본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변했다.
(경기에 대해)
전반전은 제법 좋은 승부였고, 실점 장면은 우리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그 뒤에, 찝어말하자면 나폴리의 기세가 사그라들기 시작해서 동점을 만들 찬스도 몇번 있긴 했는데… 후반전은 전혀 다른 경기가 되어버렸지만 개인적으로는 문제점이 알기 쉬워졌을 뿐 문제점 자체는 달라지지 않은데다, 문제점이 더 커져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마도 오늘 경기에서 팬이나 경영진, 선수들은 크게 상처받고 문제를 깨달을 것이다. 오늘의 패전에서 제대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재건은 머나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째서 출전하지 못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이런 한심한 경기를 하면서 출전할 기회를 주지 않는게 이상하다. 이탈리아 언론에게는 대단히 큰 문제겠지만, 이 경기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가를 논하는 시점에서 일단 넌센스다. 최근 3년정도, 이대로는 누가 뛰든지 무리라는 것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해결책에 대해)
맨체스터 시티나 PSG만큼 돈을 쓴다든가. 그게 아니라면 좀 더 구조적인 부분에서부터 고쳐가야한다. 선수가 깨닫는다고 해도 이 팀은 변하지 않는다. 역시 경영진이 깨닫고, 그리고 감독이 깨닫고, 그리고 선수들이 깨닫고, 동시에 팬들도 깨달아야 한다. 나는 팬들이 박수를 치는 타이밍을 보면서 오로지 승리에만 좌우되는 팬들이라고 느끼고 있다. 경기 내용따위는 보질 않고, 그냥 이기면 박수를 친다.
밀란은 3년간 여러 선수들을 실험해왔고, 이번에도 100억 엔 정도를 써서 또 다시 새로운 선수를 실험하고 있다. 탑 플레이어는 아니라곤 해도 각국의 대표선수들이 모여있는 집단. 그럼 어째서 경기에 나가는 선수가 맡겨진 포지션에서 활기있는 플레이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좀 더 구조적인 부분. 이른바 평가기준이다. 평가기준을 언론, 팬, 감독, 경영진으로부터 전부 바꿀 수 있다면 커다란 재건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2년동안 생각해온건데, 반대로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인지 묻고싶다. 지금 이 상황에서 유벤투스까지 약해진다면…유벤투스도 지금 위험하지 않나. 정말로 이탈리아 전체가 위험하다. 그러니까 이탈리아 언론에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달라. 어차피 나를 또 마구 까대겠지만.

전무후무한 수준으로 아주 신랄하게 밀란의 문제에 비판하였다. 이 인터뷰 하나만으로 혼다는 전세계의 밀란팬들에게 축구 실력을 떠나 지지를 받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강직한 발언을 하기로 유명하였지만 팀에서 입지가 위험한 선수가 이런 수준으로 인터뷰를 한 것이 상당히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오죽하면 혼다의 밀란 시절에 유일하게 기억에 남을 것은 인터뷰라고 할 정도이다.

이 인터뷰에 밀란 레전드들이 화가 났다.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는 여론도 있긴 했지만, 에이스의 등번호인 10번에 걸맞지 못한 혼다의 폼에 '맞는 말이긴 하지만 팀 부진에 일조하고 있는 혼다가 할 말은 아니다' 라는 반응부터 인터뷰 중간의 본인의 출전 관련 언급과 엮어 '못하는 주제에 출전시켜달라고 땡깡부리는 거 아니냐' 는 반응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밀란측과 그의 레전드들이 혼다를 비판한건 어찌 보면 또 당연한 게, 혼다 이외의 밀란 선수들이 베총리의가 잘못 운영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혼다는 아직은 밀란 선수이기 때문에 이 발언은 밀란 선수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저하시킬수 있는 발언이었다. 굳이 혼다가 말하지 않아도 카펠로, 코스타쿠르타, 안첼로티 같은 레전드 또는 영향력 있던 분들이 밀란을 비판하고 있던 판에 부진하던 혼다가 출전시간을 늘려달라며 밀란 전체를 까대니 구단 입장에서는 강경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밀란은 95-96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후 그다음 시즌부터 시작하여 6년간 성적이 롤러코스터 마냥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가 각각 2번씩 반복하다 2002-2003 시즌 이후부터 완전히 반등한 전력까지 있으니 더 까이는게 없잖아 있다.[14]

국내 포털사이트의 반응 역시 '맞는 말을 했다'와 '너부터 잘하고 좀'으로 나뉘었다가 결국엔 '맞는 말인데 너도 못하잖아'로 통합되었다(...). 일본인이니까 무턱대고 까는 사람들은 적은 편이고 아예 동양인이라 당연히 해야할 말 했다가 인종차별 당한다는 극단적인 옹호 의견도 나오기는 했다.

이후 2016년 1월 초까지 리그 13게임 출장 0골 1어시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뭐, 거의 교체로 나오니까 혼다 잘못만은 아니지만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이야기.

그런데 인테르와의 밀란 더비에서 보나벤투라와 더불어 양 사이드를 휩쓸며 훌륭한 활약을 해서 밀란의 3대0 승리에 크게 일조했다. 이것이 혼다의 입지를 바꿀지는 모르지만 최근 부진하긴 해도 나름 리그에서 강력한 수비인 인테르를 털어먹었다는 점도 있고하니 중용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후 팔레르모 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이게 방출설이 돌던 선수와 같은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맹활약하며 mom에 선정되었다. 폼이 살아나고 있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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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제노아전에서 경기 시작 5분경에 우측에서 멋진 크로스를 날려 카를로스 바카의 득점에 기여하였다. [15]
결국 63분 데 실리오의 패스를 다이렉트로 꽂아넣어 마무리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 외에도 골대를 맞추는 등 제노아전에서는 무서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3월 키에보 전에서 mom급 활약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7게임 연속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최종 성적은 30게임 출장 1골 3어시스트라는 밀란 10번으로서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팀내 에이스로서 입지는 자코모 보나벤투라에게 완전히 밀린 상황.

인자기 감독 시절부터 감독이 별로 신경안쓰고 무시할 정도였는데 그 후 인터뷰를 하고는 더 심해져서 아예 팀에서 무시당할 정도. 본인이 그렇게 잘하지도 않고 3시즌이 지나는데 여전히 팀원들과 호흡이나 적응도 되지 않는다고 하고.. 이탈리아 자체의 인종차별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쉽게 넘어갈 부분은 아니었다.

6/8일 대만, 인도네시아, 캄보디아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축구교실 설립을 위해 출국하는 공항에서 인터뷰를 통해 현재 상황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자신을 'ロートル'(로토루: 나이든 노인을 의미 중국어 '老頭児'가 어원)라는 자조적 표현을 들어가며 '자신과 같은 나이많은 선수를 받아줄 팀이 있을까' 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이 당시 그는 친형이자 에이전트인 혼다 히로유키에게 타 구단과의 이적협상을 당분간 중단할 것을 지시하였는데 AC밀란과의 관계를 당분간 지속하고자 하는 의사를 가졌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16] #

5/24일 AC 밀란은 주장인 리카르도 몬톨리보, 루카 안토넬리, 다비데 칼라브리아 이 세 선수만 2019년 6월 30일까지 계약 기간을 연장했다고 공식 발표하였는데, 계약기간이 1년 남은 혼다와의 계약연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AC 밀란의 잔류여부를 더욱 어둡게 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레스터 시티 FC, 토트넘 홋스퍼 FC 등 EPL구단들이 이적 관심을 보이기는 했고 실제로 본인의 의사에 따라선 이적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성사되지는 못했다.

7/3일 이탈리아 신문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 는 30명의 AC 밀란 선수들 중, '매각 불가', '불투명', '방출 및 매각' 의 3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였는데, 안드레아 폴리, 다비데 칼라브리아, 안드레아 베르톨라치, 리오넬 벤조니 등과 함께 혼다 케이스케가 '불투명' 카테고리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류가 신임 감독인 빈첸조 몬텔라 감독의 의중과는 다를 수 있으며 향후 AC 밀란을 인수하게 될 중국 컨소시엄의 의중에 따라서도 달라질수 있는 부분이기는 했다. #

8/5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일가가 보유한 지주회사 핀인베스트는 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AC밀란 지분 99.93%를 중국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예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AC밀란을 인수한 중국 컨소시엄은 중국의 유럽 스포츠 투자에 관여하는 회사인 창싱,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투자 펀드 등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

2015/16 시즌 37경기(29경기) 2골 7도움
세리에 A: 30경기(23) 1골 3도움
코파 이탈리아: 7경기(6) 1골 4도움

2.3.4.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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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 시즌 혼다는 수소 페르난데스음바예 니앙에게 밀린 완벽한 전력 외 자원이였다.[17]
특히 10월 25일 펼처진 제노아 CFC와의 원정경기에 실로 오랜만에 출전했지만 WTF 스러운 경기력으로 0-3 대패의 주역이 되는 등 과거 전성기 시절의 탈아시아급 재능이 증발된지 오래 되었음을 보여주었다.[18]

FC 바르셀로나에 이적요청을 했지만 바르셀로나가 "고맙지만 됐어요." 라고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제노아전을 본 에이전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19][20]

이 당시 일본 축구선수 중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혼다를 잡기 위해 중국 슈퍼 리그, MLS 등에서 러브콜을 보냈으며, 혼다 역시 이전 대표팀 소집에서 할릴호지치 감독과 갈등설이 불거질 정도로 소속 클럽에서의 출전시간 문제로 한 소리 들은 만큼 이번 겨울 이적 시장에서의 이적은 거의 확실시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일본 선수들은 중국 리그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는 점과 [21] MLS 역시 당시 일본 대표팀 감독이었던 할릴호지치 감독이 '힘들겠지만 가급적 유럽 리그 내에서 선수 커리어를 유지해 줬으면 한다' 라고 주문하기도 했던 상황을 근거로 결국 잔류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22][23]

결국 겨울 이적 시장에서 팀 잔류를 선택했다. 일본 언론은 물론이고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서도 혼다의 결정에 대해 의아함을 나타냈지만 EPL, 중국, 미국 클럽에서의 오퍼는 간간히 언급되었지만, 수준이 낮은 2부 리그나 하위권 팀들의 오퍼였기에 자존심 강한 성향의 혼다로선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며, 2017 여름 이적시장 전까지 재계약은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적료가 없는 자유계약 선수 신분으로 여름 이적시장에서 중상위권 팀으로의 이적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당시 리그 일정 종반기로 가고 있는 상황까지 출장시간이 90분을 조금 넘긴 떨어진 경기력이라 아시아 최고 수준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대외적 직책을 가진 혼다라 하더라도 어느팀이 오퍼를 넣을지는 의문이었던 상황이긴 했다.

그 후 이탈리아 언론에서 AC밀란을 탈퇴하고 미국 MLS리그의 시애틀 사운더스로 이적할 것이란 기사를 내놨다. 일단 MLS 이적기간은 2/14일부터 5/8일까지로 기사의 내용처럼 가능성이 아주 없는 편은 아니었다. 3월에 일본 대표팀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만약 대표팀에 차출이 된다면 자신의 거취에 대해 할릴호지치 감독과도 상의를 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이 시기 즈음 이적에 대한 언급이 있지 않을까 관측되기도 했다.

16/17 시즌 이후 1부로 승격되는 스페인 2부 리그의 레반테에서 혼다에 대한 신분 조회를 했다는 스페인 언론 기사가 나왔다. 아시아권 최고수준의 프랜차이즈 스타, 그리고 1부 승격 이후 전력보강 측면에서 6/30일로 AC밀란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계약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혼다가 전력보강에 상당히 매력적인 카드로 인식된 것으로 보여진다.[24]

그리고 5/21일 이번시즌 볼로냐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득점에 성공하였다[25] 몬텔라 감독과 이냐치오 아바테가 기자회견에서 혼다에 대한 우호 발언을 해주었지만, 혼다는 당일인 21일 트위터를 통해 AC밀란 탈퇴와 밀란 팬들에 대한 감사의 뜻을 밝혔다.

38라운드 칼리아리 칼초와의 경기에서는 주장 완장을 달고 고별전을 풀타임으로 뛰었다. 다만 팀은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헌납하면서 1:2로 패배하였다. #

그동안 구단진에 대한 항명 발언과 더불어 혼다를 사실상 전력외로 취급하던 AC밀란이 혼다의 고별무대에 주장 완장 및 풀타임으로 경기를 뛰게 한 것은 매우 이례적[26]인데, 프로 선수로서 혼다의 높은 의식을 밀란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27]

2016/17 시즌 9경기(선발 2경기) 1골
세리에 A: 8경기(2) 1골
코파 이탈리아: 1경기(-) -

2.4. CF 파추카

파일:혼다게이스케.jpg
그리고 2017년 7월 14일, 멕시코의 1부 리그인 리가 MX에 있는 CF 파추카로 이적하였다. #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클럽이지만, 1892년에 창설되어 115년의 역사를 가지는 유서깊은 축구 클럽이며, 멕시코의 전통적인 강팀이다. 무엇보다 구단주가 세계 정상급 부자이자 멕시코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카를로스 슬림이기 때문에 일본 언론에서는 혼다의 개인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위한 방향의 이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CF 파추카는 돈이 넘쳐나는 클럽이기 때문에 마케팅 목적의 영입은 아니며 혼다의 개인적인 역량과 대외적 이미지를 높게 평가해서 영입한 것이라고 언급하였다.[28] 우측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개막전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29] 부상에서 복귀한 후에는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정규리그와 컵대회 합쳐서 34경기(정규리그 29경기+컵대회 5경기)에서 총 13골 5도움(정규리그 10골 4도움)을 기록했다.[30][31]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뒤 파추카를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32]

2.5. 멜버른 빅토리

2018년 8월 6일 호주의 멜버른 빅토리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1년.

입단 후 초반 8경기에서 5골 3도움을 기록하며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게 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 후 대구 FC와의 대결에서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패하였다.
또한 J리그 팀인 산프레체와도 붙었으나 패배하였다. 하지만 경기 후 J리그는 자신이 있을 때와 발전한 것이 없다며 비판을 남겼다.

시즌 중반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난 후엔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18경기 출장 7골 5도움으로 시즌을 마쳤다.

2.6. SBV 피테서

한동안 무직 신세였고, 맨유(...)에 자신을 역제의하는 등 팀을 구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그러다 네덜란드 리그의 SBV 피테서에서 훈련을 하게 되었고, 2019년 11월 6일 잔여시즌까지 이 팀에서 뛰기로 계약했지만 부진한 활약과 더불어 팀이 5연패에 빠지자 레오니드 슬루츠키 감독도 비테세와 결별하는 당 악재가 지속되면서 결국 입단 6주만에 팀을 떠났다.# 최종성적은 4경기 출장 0골 0도움 공격포인트 0개

2.7. 보타포구 FR

2020년 1월 28일 브라질 세리A 명문팀인 보타포구2020년 12월까지 계약을 체결하였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높은 범죄율 때문에 방탄 자동차를 원했고 구단이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에서 모두 뛰어본 선수라는 희대의 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데뷔전에서 페널티킥 득점으로 데뷔골을 터뜨리며 5대륙에서 득점한 사상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전 세계 축구리그가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받던 2020년, 혼다는 클럽에 3월 월급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먼저 전달했고, 팀에 개인적인 금전적 원조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 혼다의 인성은 이미 이전부터 좋기로 소문이 나있었기에, 축구팬들은 호평하고 있다.

그런데 2020년 말. 갑자기 포르투갈 리그 포르티모넨스로 이적을 발표했다. 아프다던 선수가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러 가는 등, 팀을 무시하는 행보로 브라질 현지나 보타포구 동료들의 비난이 들끓는 중이다. 일본 언론 "THE PAGE"에서도 "혼다는 주장을 맡았지만 보타포구와 시즌 도중 계약을 해지했고, 보타포구는 팀 역사상 3번째로 2부로 강등됐다. 몸담았던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구설수에 오르며 팀을 떠나는 패턴을 돌이켜보면 자신의 좋은점만 이야기하던 그의 입과 고압적인 그의 태도가 오히려 뼈아프게 비쳐진다. 더욱이 그라운드 안팎에서의 행동이 주변에 끼치는 영향력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너무 큰 것을 고려하면 이제 J리그 구단들도 제안을 꺼리는 존재가 됐다고 할 만하다."라면서 혼다를 비판했다.# 그러나 2월 11일 포르티모넨스가 혼다의 선수 등록에 실패했다고 밝히면서 이적은 불발되고 말았다. 본인은 유럽 내에 잔류하고 싶어하지만 뚜렷한 행선지는 없는 상황.

2.8. 네프트치 PFK

결국 아제르바이잔 프리미어 리그의 명문 팀인 네프트치 PFK로 이적하여, 7경기 2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우승을 도왔는데, 이적 후 팀의 8경기 중 7경기에 출전했을 만큼 강한 신뢰를 받았다.

또한 경기력도 훌륭해서 팀의 리그 우승에 큰 보탬이 되었지만 시즌 이후 계약 종료로 팀을 떠났다.#

2.9. FK 수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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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여름 리투아니아 1부리그인 A 리가의 수두바로 이적, 등번호 3번을 배정받았다.

9월 26일 리투아니아 A 리가 방가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2.10. 파로 FC

파일:HondaParoFC.jpg

2024년 여름, 부탄 프리미어 리그파로 FC와 단 1경기를 위한 특별 계약을 체결하며 주목을 받았다. 8월 13일 열리는 AFC 챌린지 리그 출전권을 거둔 플레이오프, 처치 보이즈 유나이티드(네팔)와의 경기에 출전하기 위한 계약이다.#

8월 8일 부탄 프리미어리그 치랑 FC와의 경기에서 교체출전하였다. 팀은 2:1로 승리하였다. 하이라이트

8월 13일 네팔의 처치 보이즈 유나이티드 와의 AFC 챌린지 리그 플레이오프에 주장으로 풀타임 출전하여 연장전 끝에 2:1 승리를 이끌었다. 팀은 사상 최초로 AFC 대회 본선에 진출하였다. 경기결과

3. 국가대표 경력

2008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바레인전에서 일본 대표로 데뷔했다. 그 후 2010 남아공 월드컵 일본 대표에 선발되었고 대회 기간 한없이 부실한 일본의 스트라이커진 대신 수비형 미드필더 겸 원톱으로 출장했다.[33] 무회전 프리킥과 중거리 슛, 정확한 패스 등으로 활약하며 일본의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이를 본 아스날 FC아르센 벵거 감독은 "세계 정상급 레벨"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이때 일본 대표팀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전술은 수비를 두터이 한 다음 엔도 야스히토, 혼다 케이스케와 같은 출중한 킥력을 갖춘 선수들로 하여금 프리킥 찬스 때 직접 슈팅으로 득점 유도, 피지컬적으로 해외 선수들과 비벼볼만 한 오카자키와 혼다 둘의 콤비 플레이로의 득점 창출을 중심으로 하였고, 이 전술은 주효하였다. 특히 덴마크 전 때 혼다, 엔도 둘의 환상적인 프리킥 골과 혼다-오카자키로 이어졌던 쐐기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일본 대표팀의 우승에 공헌, 대회 MVP에 선정됐다. 덤으로 자신의 국가대표 커리어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하지만 공격포인트가 1골 0도움, 그나마 그 1골도 PK골이었던지라 기대 이하의 기록 탓에 MVP에는 많은 선방을 선보인 가와시마 에이지나 뛰어난 수비력과 3어시스트를 기록한 나가토모 유토가 선정됐어야 했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에 대해 본인이 말하길 "내 마음대로 뛰었다면 4, 5골은 넣을 수 있었다"고... 특히 한일전에서 수비진에게 지워지고 페널티킥을 못 넣은 것은 최악이었다.

한일전 서울월드컵경기장 에서는 득점없이 비겼지만 이후 삿포로 월드컵 경기장 에서 전반에 카가와 신지 후반에 본인이 직접 득점하고 전반에 넣었던 카가와 신지 멀티골로 승리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에도 선발됐는데, 13-14 시즌에는 소속팀에서 출전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해 카가와 신지와 함께 실전 감각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우려를 떨치고 첫 경기 코트디부아르전에서 선제골을 넣었다. 그러나 혼다의 분전에도 불구 일본은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디디에 드록바를 막기 위해 중앙을 두텁게 세우다가 측면이 속수무책으로 뚫리며 두 골을 얻어맞고 1:2로 패했다.[34] 그 뒤 별 다른 활약 없이 팀은 광탈.

소속팀에서도 활약하지 못하고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과 불화를 겪으며 한동안 대표팀 내 입지가 크게 떨어졌으나, 멕시코 리그로 이적 이후 폼을 끌어올리고 할릴호지치 감독이 경질되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표팀에 승선했다. 선발은 아니지만 주로 팀의 조커 카드이자 슈퍼 서브로서 콜롬비아 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코너킥으로 오사코 유야의 골을 어시스트했고, 세네갈 전에서도 교체 투입되어 동점골을 넣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35][36] 특히 세네갈전 골로 월드컵 3개 대회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으며,[37] 아시아 선수의 월드컵 최다골 기록을 기존의 3골에서 4골로 새롭게 경신한 점도 고무적이다.[38] 또한 3개 대회 연속 득점과 도움을 올린 선수는 혼다 이전까지 5명이었는데 여섯 번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됐다. #

또한 역대로도 몇 없는 월드컵 3대회 연속 골+어시스트를 기록한 아시아 유일의 선수가 됐다.[39]

러시아 월드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1] 마쓰이 히데키를 배출한 그 고교 맞다.[2] 이때 당시 김정우도 여기서 뛰었다. 8/10 일본전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고.[3] 하지만 세비야 골키퍼 안드레스 팔로프의 실책성 플레이가 결정적이었다. 아무리 힘과 스피드가 실린 공이라지만 정면으로 온 공을 골대 안으로 튕겨냈으니...[4] 그래도 UEFA 챔피언스 리그의 로스터에 포함되어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16강전 교체명단에 올랐던 것이 화제가 되긴 했다. 다만 출전은 하지 못했다.[5] 상황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될 때까지 데리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성이다. 이 에이전트 때문에 혼다가 깎아먹은 명성은 어지간한 선수들이 아니면 거의 재기불능(...)의 수준이다. 혼다 본인도 모스크바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고..[6] 물론 소위 유럽의 빅리그라고 하는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의 리그에 비하면 러시아 리그는 변방이라면 변방이다. 하지만 가스머니로 무장한 러시아 리그는 자금력에서만은 위 4대 리그에 전혀 꿀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돈 없어서 매물 급하게 내놓고 헐값에 팔지는 않는다. 더구나 자금력 풍족하기로 소문난 CSKA라면...사실 CSKA의 최근 선수이적 동향을 보면 오히려 혼다의 몸값은 꽤나 합리적(?)으로 영입가격에 얼마 안붙인 셈이다. 안팔리면 그냥 쓰면 된다. 혼다가 못하는 선수도 아니고..[7] 그것도 복귀전 첫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였다.[8] 다만 이 이적설이라는 게 거의 전부가 공신력이 떨어지는 산케이 스포츠의 찌라시(...)에 불과했고, 1990249693 실제 CSKA 모스크바의 에이전트와 관계가 있는 사람의 발언으로는 혼다에게 실제로 오퍼가 온 건 가장 최근의 AC 밀란이 전부였다는 모양.[9] 구단주가 가스 재벌이다.[10] 참고로 2011년 5월 28일에는 혼다가 마침내 EPL의 명가 리버풀과 3년 계약이라는 기사가 떴으나 축구선수 혼다가 계약한 것이 아닌 자동차 회사 혼다가 스폰서 계약을 맺은 것이었고(…), 동년 8월 산케이 신문에서는 아스날 FC로 이적이 결정됐다고 보도했다가 막상 아스날로 이적한 것은 혼다가 아닌 박주영이었던지라 망신만 당했다...고 알려져있으나 사실 아무 관계없는 혼다(축구선수)를 혼다(자동차회사)로 국내 찌라시 스포츠신문사들이 독자들을 낚은 것.(...)[11] 이런 면에서 이천수, 고종수 와도 어느 의미로는 비슷. 튀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 건 한국이나 일본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12] 사실 스포츠, 연예 분야에서 찌라시성 기사는 한국도 만만치 않지만 그 원류는 일본 찌라시들에서 배워온 것(...) 한류스타들이나 김연아의 예에서 보듯이 일본 듣보잡, 찌라시 언론에서 소설을 쓰면 한국 찌라시에선 그 걸 마치 사실같이 퍼와서 기사로 실어 조회수를 올리고 독자들을 낚는게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13] 결국 CSKA모스크바와는 계약기간을 다채우고 2014년 1월에 밀란으로 떠나게 되었다.[14] 당시에도 세대교체 실패로 및 카펠로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행 이후의 밀란은 혼란기에 접어들며 96-97시즌에 시기에 전시즌 디펜딩 챔피언이던 밀란이 리그에서 11위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고 그 다음 시즌에도 97-98시즌에도 리그10위라는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부진하다 알베르토 자케로니가 세운 기적의 98-99 시즌에 리그 우승을 하고 그 다음시즌 즉 99-00시즌에는 리그 3위의 성적을 거두어 챔스 티켓을 거머쥐었으나 그 다음시즌인 00-01 시즌에는 6위로 추락을 한 뒤 01-02시즌에는 다시리그 4위를 기록하여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po에서 승리해 본선에 올라가 그 시즌에챔스 우승을 한다.[15] 카를로스 바카가 한번 리프팅을 하고 슛을 해서 어시스트는 아니다.[16] 다만 이 당시 AC 밀란은 중국기업과의 매각협상을 진행중이었다. 실제 성사될 경우, 중국 기업의 거대 자본을 통한 공격적 선수영입에서 혼다가 잔류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40][17] 과거 필리포 인자기-시니샤 미하일로비치 감독 시절 구단에 대한 인터뷰 문제로 매 경기 5분 교체출전이라는 '처벌'을 당했을 때는 그래도 인터뷰를 통한 항명이라는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었지만 이번시즌에서 뚜렷한 이유없이 출장 자체가 안된 것을 보면 혼다 자체가 당시 감독이었던 빈첸조 몬텔라의 구상 외의 선수임에는 분명했던 것 같다. 문제는 이 당시 혼다의 경우 2017년 여름까지 계약기간을 남겨둔 상황이라 겨울 이적시장 때 혼다와 재계약을 하든 타 구단에 이적을 시키든 결론을 내야 했는데, 이적을 통해 최소한 제값을 받기 위해서든, 재계약을 위한 선수와의 우호관계 조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출전을 통해 실적을 쌓게 해야 함에도 그냥 별다른 이유없이 출전 자체를 시키지 않아 감독과 구단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다소 의문이 드는 부분은 있었다.[18] 물론 이 경기에서 밀란은 그 전에 유벤투스를 꺽었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진했지만 사실상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기회를 잡은 혼다로썬 반전을 보여주기는 커녕 동료들과 덩달아 부진했으니...[19] 바르셀로나는 혼다 영입 자체가 매우 의미없다. 혼다급 아니 혼다 이상의 2선 자원은 유럽에 흔하다. 게다가 이미 하피냐 아우칸타라도 있다....[20] 하지만 이적에 대해 혼다는 이전 CSKA 모스크바에서 뛸 때도 크게 언급하지 않았고 AC밀란에서도 이적에 대해선 말을 아껴왔다. 그렇기에 혼다가 직접 바르셀로나에 이적 요청을 어필했다기 보다는 에이전트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이전에도 에이전트의 병크로 인해 혼다가 에이전트를 해고시킨 바 있다. 더욱이 이전 에이전트를 해고시키고 새로 임명한 에이전트는 다름아닌 혼다 케이스케의 친형이다!![21] 우라와 레즈의 마키노 도모아키 역시 중국 리그에서 고액 이적료와 연봉을 내걸며 이적을 추진했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라는 패기를 시전하며 우라와에 잔류했기도 했다.[22] 혼다는 최근 선수로서의 커리어 보다는 클럽 구단주, 축구학교 설립 등과 같은 사업가로서의 선수 외적인 면으로 더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MLS 이적 이야기가 나온 것 역시 최근 혼다가 미국에 유소년 축구학교를 건립하였는데, 학교의 흥행과 미국 쪽에서의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해 아예 선수 생활도 미국에서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23] 혼다의 개인 홈페이지 및 페이스북을 보면 축구선수라는 직업이 무색할 만큼 개인 사업 및 대외 활동을 소개하고 알리는 내용 뿐이다. 소속팀에 대한 사진이나 연습 사진을 주로 개제하는 다른 축구 선수들의 SNS와 비교하자면 매우 이례적인 모습인데, 이 때문에 혼다의 개인 사업 및 대외적 직책으로 비추어 볼 때, 축구선수란 자신의 현 직업 역시 하나의 직책으로서 인식할 뿐 선수생활에 큰 미련을 두고 있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24] 이 당시 레반테는 다음 시즌 대비 8명 정도의 신규영입을 계획 중이었는데, 이 중 혼다를 핵심멤버로 구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CSKA와 AC밀란을 거치면서 챔피언스리그와 세리에 A라는 최고 수준의 경기경험이 많으며 다양한 공격포지션 소화가능, 높은 프랜차이징 능력 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레반테는 부진한 선수들을 영입해 재활시키는데 탁월한 팀이기 때문에 적은 출전시간으로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혼다로선 레반테가 본인의 커리어 유지나 월드컵 대비를 위해서라도 괜찮은 선택이었다.[25] 그것도 바제도우병에 걸렸다는 루머가 나온 이후 한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프리킥 골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26] 계약 해지로 나가는 선수, 게다가 구단과 사이도 별로 좋지 않았던 선수에게 이 정도 예우을 베푸는 사례는 좀처럼 없다.[27] 경기에 뛰지 못하거나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경기 후 미디어 믹스존으로의 이동 대신 VIP통로 등 '샛길'로 빠져 나갈 수도 있지만 혼다는 밀란 입단 후 한번도 미디어를 피해 샛길로 '도망치지' 않고 경기에 못 나온 날이더라도 항상 믹스존에서 일본 및 현지 언론과 인사 및 인터뷰를 했으며, 자신을 비난하며 조롱했던 밀란 공식 서포터즈인 Milanista에게도 맞대응하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대했다고 한다.[28] 더욱이 혼다의 영입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인 하비에르 아기레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8~01년까지 파추카의 감독생활을 지내며 멕시코 리그 우승을 이끌어내고 최우수 감독상까지 수상했던 경력이 있는 아기레는 마르티네스 파추카 회장과 긴밀히 연락하며 혼다의 영입을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파추카는 구단주의 엄청난 재산이 있어 돈에 구애받는 구단이 아니기에, 선수 영입시 선수 개인의 가치관, 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는데, 여기에 아기레의 조언과 추천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고 한다.[29]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한 대신 특별석에서 마르티네스 회장과 함께 참관하였다.[30] 혼다의 활약에도 팀은 리그 9위에 그쳤는데 사실 이 성적도 전 시즌(16/17시즌) 리그 10위보다는 한계단 오른 성적이다...[31] 여담으로 페이스북 축구 페이지 등 각종 SNS에서는 혼다가 멕시코 리그에서 혼자 수비수 4~5명을 하프라인부터 드리블로 제끼고 득점하는 움짤이 돌면서 '리오넬 스시'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참고로 혼다는 러시아 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도 드리블로 수비수 3명을 제끼고 득점한 적이 있다.[32] 다음 행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다음 시즌에 J리그에 복귀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혼다 본인이 직접 밝혔다.[33] 이는 혼다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라 역대 일본 대표팀 최전방 공격수 가운데 세계 무대에 통할 만한 선수가 별로 없었다. 일례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일본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트루시에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공격형 미드필더 모리시마 히로아키를 톱으로 썼고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최전방을 담당했던 다카하라 나오히로야나기사와 아쓰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최전방을 담당했던 오쿠보 요시토오사코 유야, 2014년 월드컵에 이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일본 대표팀의 최전방을 담당했던 오사코 유야 등의 선수들은 스트라이커가 주 포지션이긴 했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부진[41]했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의 경우에도 모리야스 감독은 윙어인 마에다 다이젠을 톱으로 쓰는 고육지책을 썼다.[34] 당시 동점골의 빌미를 제공한 이가 혼다였다.[35] 혼다는 개인 테크닉과 피지컬이 좋지만 스피드가 느려 역습과 같은 빠른 공격 진행시 팀의 템포를 망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의 일본은 초반엔 카가와를 통한 빠른 공격 진행과 역습을 주무기로 삼고 이후 후반에 혼다를 카가와 대신 투입시켜 지친 상대에게 혼다를 중심으로 한 과거 일본의 전통적인 짧은 패스를 통한 안정적인 템포의 굳히기 또는 반격 전술을 쓰고 있다. 이는 그동안 일본 대표팀의 숙제였던 혼다와 카가와의 공존이라는 부분을 해결함과 동시에 후반에도 공격에 대한 상대와의 주도권 다툼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36]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DF 마키노 토모아키는 J리그에서 몇 안되는 고액 연봉자이자 CF/패션 브랜드 모델로도 활약하는 인기 스타 중 한 명이지만 대표팀에서는 요시다 마야에 밀려 로테이션 멤버이다. 월드컵 이후 토크쇼에 출연했는데, J리그와 대표팀에서의 자신의 입지에 대한 괴리감으로 좌절을 느꼈는데, 일본 축구계에 첫손꼽는 스타인 혼다 케이스케가 스스로 로테이션 멤버를 자처하며 마다하지 않고 벤치에서 필드의 선수들과 벤치의 다른 선수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불어넣는 멘트를 하는 등 대표팀 고참이자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준 데에 많은 배움과 존경을 느꼈다고 언급했다.[37] 여기서 재밌는 점은 3대회에서 만난 모든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 득점했다는 것이다.(카메룬, 코트디부아르, 세네갈)[38] 정확히 말하면 혼다는 3개 대회 연속 득점뿐만 아니라 도움도 기록한 선수다.(남아공 월드컵 2골 1도움, 브라질 월드컵 1골 1도움, 러시아 월드컵 1골 1도움.)[39] 이전까지 이 기록을 가진 선수는 데이비드 베컴, 아사모아 기안, 그제고시 라토, 아르연 로번, 루디 펠러까지 총 5명이다. 이 기록에 혼다도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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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AC밀란의 회장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심장 수술로 인해 인수 협상이 장기화 되고 있어 시즌 개막 전까지 협상이 이루어질지 불투명한 상황이긴 했다.#[41] 저들 중에서는 그래도 오사코가 2018년 월드컵에서 조별 경기 때 콜롬비아 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등의 활약을 하긴 해서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