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드래프트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1. 개요
2007년 KBO 신인 드래프트(공식 명칭: 200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진행되었다.2. 1차 지명
2006년 6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2명을 뽑았다. 원래는 1명만 뽑아 왔으나, 연고지 배려 차원에서 2명으로 늘어난 것. 한편 현대 유니콘스는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에서 제외되었다.※표시는 해외진출이나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팀 | 1차 지명자 | 계약금 |
김동명[1] (대구고, 포수) | 1.3억 원 | |
김상걸 (경주고, 투수) | 0.8억 원 | |
이용찬 (장충고, 투수) | 4.5억 원 | |
임태훈 (서울고, 투수) | 4.2억원 | |
김광현 (안산공고, 투수) | 5억 원 | |
나현수 (야탑고, 투수) ※ | - | |
장필준 (북일고, 투수) ※ | - | |
최진호 (세광고-인하대, 투수) | 1억 원 | |
이상화 (경남고, 투수) | 2억 원 | |
이재곤 (경남고, 투수) | 1.7억 원 | |
봉중근 (신일고-ATL-CIN, 투수) | 10억 원[2] | |
김유선 (덕수정보고, 투수) | 3.5억 원 | |
[3] | - | |
정영일 (진흥고, 투수) ※ | - | |
오준형 (광주일고-인하대, 투수) | 1.8억 원 |
3. 2차 지명
2006년 8월 16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되었다.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 소속 선수들 등 총 715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4]
3.1.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9라운드까지 진행되었으며 각 팀은 최대 9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 짝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2. 지명 결과
- ※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를 의미한다.
- 볼드체 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를 의미한다.
라운드 | KIA | 현대 | LG | 롯데 | 한화 | SK | 두산 | 삼성 |
1 | 양현종 (동성고, 투수) | 장효훈[5] (북일고, 투수) | 박용근 (속초상고-영남대, 내야수) | 이웅한 (공주고, 투수) | 김혁민 (성남서고, 투수) | 이창욱 (군산상고-고려대, 투수) | 이원재 (중앙고, 투수) | 백정현 (상원고, 투수) |
2 | 김연훈 (군산상고-성균관대, 내야수) | 임태준 (전주고, 포수) | 김태식 (공주고, 투수) | 김민성 (덕수정보고, 내야수) | 최연오 (휘문고-연세대, 포수) | 김기현 (마산고, 투수) | 이두환 (장충고, 포수) | 추승민 (구미전공, 투수) |
3 | 이호신 (휘문고-경희대, 외야수) | 김남형 (인천고, 내야수) | 이승우 (장충고, 투수) | 박세진 (충암고, 투수) | 김강 (광주일고, 내야수) | (부산고, 투수) | 권영준 (중앙고, 투수) | 임익준 (동성고, 내야수) |
4 | 성민규[6] (대구상고-홍익대 중퇴- 네브라스카대, 외야수) | 조성원 (광주일고, 포수) | 최종인[7] (덕수정보고, 투수) | 손광민[8] (부산고, 내야수) | 김경택 (북일고, 투수) ※[9] | 한윤기 (신일고, 투수) | 김강률 (경기고, 투수) | 김종호 (배재고-건국대, 외야수) |
5 | 권윤민 (전 시카고, 포수) | 박종선 (용마고, 투수) | 유정민 (선린인터넷고, 투수) ※[10] | 이중훈 (야탑고-동의대, 포수) | 서정 (광주일고-성균관대, 외야수) | 박윤 (인천고, 내야수) | 이정민 (춘천고, 내야수) | 김상준 (안산공고, 외야수) |
6 | 김주현 (덕수정보고, 내야수) | 패스 | 나성용 (진흥고, 포수) ※[11] | 황진수 (공주고, 내야수) | 손재윤 (공주고, 내야수) ※ | 이천웅 (성남서고, 투수) ※[12] | 이용호 (덕수정보고, 투수) | 이병용 (서울고, 투수) |
7 | 김남석 (광주일고, 내야수) ※[13] | 패스 | 김용진 (김해고, 내야수) | 장동웅 (북일고, 포수) ※[14] | 패스 | 조영민 (신일고-홍익대 중퇴, 투수) | 이동걸 (휘문고-동국대, 투수) | |
8 | 박윤식 (제물포고-인하대, 외야수) | 패스 | 경정수 (청주기공, 내야수) ※ | 장동우 (경기고, 내야수) ※[15] | 정대욱[16] (대구고, 내야수) | |||
9 | 전준수 (광주일고, 외야수) ※ | 패스 | 문준용 (진흥고, 내야수) ※ | 이종훈 (대구고, 투수) |
4. 드래프트 평가
4.1. 선수별 총평
4.1.1.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진흥고 / 투수) | 지명 거부 후, 미국 진출(2014년 SK 지명) |
오준형 (광주일고-인하대 / 투수) | 큰 활약없이 2013년 방출된 후 코치로 전향했다. | |
2차 1RD 1번 | 양현종 (동성고 / 투수) | 선동열의 뒤를 이은 KIA의 새로운 투수 마스코트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1차 지명자인 오준형보다 계약금을 더 많이 받은 사실상의 1차 지명자로 2009년부터 포텐셜을 완전히 터트려 KIA의 1선발로 자리 잡았고, 2017년 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2020 시즌 후 텍사스와 스플릿 계약을 맺어 MLB로 진출하는데 성공하였으나 MLB에서 큰 성과없이 복귀했다. 이후 선발승, 통산 탈삼진, 이닝 부문 등에서 새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
2차 2RD 16번 | 김연훈 (군산상고-성균관대 / 내야수) | 입단 1년만에 트레이드로 SK로 이적하였다. SK와 kt에서 괜찮은 백업 내야수로 활약하였다. |
2차 3RD 17번 | 이호신 (휘문고-경희대 / 외야수) | 11년 동안 팀에 있었지만 끝내 포텐을 터트리는데 실패한 뒤 2018년 10월 19일 방출되었다. |
2차 4RD 32번 | 성민규 (대구상고-홍익대 중퇴-네브레스카대 / 외야수) | 별다른 활약없이 방출되었다. 오히려 방출 후 시카고 컵스 프런트로 활동한 것이 주목받았고, 롯데 자이언츠 단장까지 올랐다. |
2차 5RD 33번 | 권윤민 (동산고-인하대-CHC / 포수) | 입단 후 내야수로 전향했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1년만에 은퇴하고 스카우트로 전직했다. |
2차 6RD 47번 | 김주현 (덕수정보고 / 내야수) | 큰 활약없이 입단 2009년 방출되었다. 방출 후 롯데로 이적하였다. |
| (광주일고 / 내야수) |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2011년 LG 지명) |
2차 8RD 56번 | 박윤식 (제물포고-인하대 / 외야수) | 별다른 활약없이 입단 1년만에 방출되었다. |
| (광주일고 / 외야수) | 지명 거부 |
4.1.2.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 ||
RD | 지명자 | 평가 |
| 연고지 이전 문제로 인한 1차 지명 불가(2003~2008) | |
2차 1RD 2번 | 장효훈[17] (북일고 / 투수) | 현대 해체 이후 자연스럽게 히어로즈 선수가 되었고 KT, 롯데를 거쳐 한화로 왔으며 최후의 현대 출신 선수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리고 심수창의 18연패를 깨고 역대 최초로 19연패를 기록하는 불명예를 얻었다..... |
2차 2RD 15번 | 임태준 (전주고 / 투수) | 기대를 받고 높은 순번에 지명되었으나 8년간 17경기 .083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 |
2차 3RD 18번 | 김남형 (인천고 / 내야수) | 역시 기대를 받았지만 워낙 부상이 잦아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다 2014 시즌 후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
2차 4RD 31번 | 조성원 (광주일고 / 포수) | 2009년 10월 방출되었다. |
2차 5RD 34번 | 박종선 (용마고 / 투수) | 현대가 해체되기 직전에 방출당하였다. |
| 패스 | |
| 패스 | |
| 패스 | |
| 패스 |
4.1.3. LG 트윈스
LG 트윈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봉중근 (신일고-ATL-CIN / 투수) | 08시즌부터 10시즌까지 3년 연속 10승을 거두며 LG의 선발 에이스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마무리로 맹활약을 하고 2018년 은퇴하였다. |
김유선 (덕수정보고 / 투수) | 망했다. 1차 지명임에도 입단 후 기량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은데다가 갤진용사건까지 연루되면서 1군은 커녕 2군에도 한번도 등판하지 못하고 2012년 방출되어 LG의 1차 지명 흑역사로 남았다. | |
2차 1RD 3번 | 박용근 (속초상고-영남대 / 내야수) | 김재박 감독 시절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계속 기용되어 말이 많았으나 괜찮은 유틸리티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군복무 이후 2012년 말 큰 수술로 2013시즌을 통을 날리고 복귀하였으나 2015시즌 중 kt로 이적하였다. |
2차 2RD 14번 | 김태식 (공주고 / 투수) | 별다른 활약 없이 2010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3RD 19번 | 이승우 (장충고 / 투수) | 입단 초기부터 갤진용 사건과 SNS 상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다가 2012년 선발 로테를 어느정도 돌았으나 2012시즌 후 삼성에 정현욱의 FA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하였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2년만에 방출당했다. |
2차 4RD 30번 | 최종인[18] (덕수정보고 / 투수) | 1군 통산 2경기 1.2이닝 ERA 16.20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2012년에 제대하자마자 방출당했다. |
| (선린인고 / 투수) |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2012년 롯데 입단) |
| (진흥고 / 포수) |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2011년 한화 지명) |
| 패스 | |
| 패스 | |
| 패스 |
4.1.4. 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이상화 (경남고 / 투수) | 입단 후 부상 때문에 주로 2군에 있었으며 가끔 1군에 올라와 임시선발, 롱릴리프 역할을 수행했다.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2015시즌에 부진했고 결국 시즌 후 2차 드래프트로 팀을 떠났다. 2017 시즌엔 커터를 장착하여 KT의 필승조로 활약했으나 이후 계속된 부상으로 별 활약을 하지 못했고 2020 시즌 후 은퇴했다. |
이재곤 (경남고 / 투수) | 입단 후 빠르게 경찰청에 입대하여 군 문제를 해결하였고, 2010년 선발로 깜짝 활약을 펼치며 팀의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재곤의 마지막 전성기였고 이후로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이다가 결국 2017 시즌 후 방출되었다. 이후 KT에 육성선수로 입단했으나 1년만에 방출되었다. | |
2차 1RD 4번 | 이웅한 (공주고 / 투수) | 입단 후 1군에 단 한번도 올라오지 못하고 2015 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2RD 13번 | 김민성 (덕수정보고 / 내야수) | 내야 백업 및 팀의 미래 유격수로 기대받았으나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이적한다. 넥센에서는 벌크업을 통해 두자릿수 홈런 치는 3루수로 자리잡는다. 이후 LG로 FA 이적하여 내야 전포지션에서 활약중이다. 2024년 2번째 FA때 사인 앤드 트레이드로 14년만에 롯데에 다시 복귀했다. |
2차 3RD 20번 | 박세진 (충암고 / 투수) | |
2차 4RD 29번 | 손광민 (부산고 / 내야수) | 손광민 시절이던 2008년 좋은 활약을 보이며 기대를 받았고, 2009년 손아섭으로 개명 후 주전 외야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폭망. 개명 다음 해인 2010년부터 팀의 주전 외야수로 도약했으며, 5툴 외야수로 3회의 안타왕과 5회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개명 후 성공한 야구선수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10년 가까이 팀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였고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FA 직전 부진한 성적으로 비판을 받았고 라이벌 팀 NC로 이적하는 행보를 보여 주목받았다. |
2차 5RD 36번 | 이중훈 (야탑고-동의대 / 포수) | |
2차 6RD 45번 | 황진수 (공주고 / 내야수) | 입단 후 거의 10년 가까이 2군에 머무르며 1군에는 가끔 올라오는 선수였다. 그러다 2017 시즌 반짝 활약을 보이며 준플레이오프에서 주전 3루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2019 시즌 후 방출되었다. |
2차 7RD 49번 | 김용진 (김해고 / 내야수) | |
| 패스 | |
| 패스 |
4.1.5.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북일고 / 투수) | 지명 거부 후, 미국 진출(2015년 삼성 지명) |
최진호 (세광고-인하대 / 투수) | 지명에서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으로 뽑았으나 결과는...2011시즌 6월 개인적인 사고로 인하여 임의탈퇴 조치되었다. | |
2차 1RD 5번 | 김혁민 (성남서고 / 투수) | 이 해 지명자 중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 선발, 마무리로서 각각 잘한 시즌이 있으나 군 복귀 후에는 자취를 감췄고 2018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2차 2RD 12번 | 최연오 (휘문고-연세대 / 포수) | 2012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2차 3RD 21번 | 김강 (광주일고 / 내야수) | 1군에서 못 써먹을 수비실력만 보여주었다. 두산으로 이적하여 2016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 (북일고 / 투수) | 지명 거부 |
2차 5RD 37번 | 서정 (광주일고-성균관대 / 외야수) | 2010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
| (광주일고 / 내야수) | 지명 거부 후, 단국대 진학 |
| (북일고 / 포수) | 지명 거부 후, 고려대 진학(2013년 NC 신고선수 입단/은퇴) |
| (청주기계공고 / 내야수) | 지명 거부 후, 영남대 진학 |
| 패스 |
작년에 너무 큰 놈을 뽑아서 그런지 망했다.
4.1.6. SK 와이번스
SK 와이번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광현 (안산공고 / 투수) | SK-SSG의 토종 1선발이 된 프랜차이즈 스타. 1년차부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상대 에이스였던 리오스를 상대로 7.1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치고 승리를 거둬 이름을 알렸고, 2년차에 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이후로도 팀내 1선발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부상으로 공백기가 있었지만, 잘 회복하고 이전과 같은 활약을 하다가 2020년 포스팅을 통해 MLB로 진출했다. 이후 MLB 생활을 마치고 4년 151억이라는 역대 KBO 투수 최고액으로 친정팀에 복귀했다. |
(야탑고 / 투수) | 지명 거부 후 대학진학 | |
2차 1RD 6번 | 이창욱 (군산상고-고려대 / 투수) | 망했다. 8년동안 1군 출장 9경기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2014시즌에 처음 1군에 올라온 것. |
2차 2RD 11번 | 김기현 (마산고 / 투수) | 입단 후 타자로 전향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후에도 계속 투타전향을 계속하다가 결국 망하고 2016 시즌 후 방출당하였다. |
2차 3RD 22번 | 위대한 (부산고 / 투수) | 완벽한 흑역사. |
2차 4RD 27번 | 한윤기 (신일고 / 투수) |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없이 2010년 방출된 후 2011년 NC의 창단 트라이아웃에 합격해 NC다이노스 창단 멤버가 되었다. |
2차 5RD 38번 | 박윤 (인천고 / 내야수) | 백업 1루수로 가끔 출장하다가 방출되었고, 넥센으로 이적하여 선수생활을 마쳤다. |
| (성남서고 / 투수) |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2011년 LG 신고선수 입단) |
| 패스 | |
| 패스 | |
| 패스 |
4.1.7.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이용찬 (장충고 / 투수) | 2009년 KILL 라인의 일원으로 맹활약하면서 신인왕을 수상한 후 2010년에도 맹활약을 펼쳤으나 음주 뺑소니를 저질러 시즌을 마감했다. 음주 뺑소니를 저지른 바로 다음 해 복귀하였다. 복귀 후 선발-마무리로 괜찮은 활약을 하였다. 2020년 FA 신청 후 미아가 되었다가 2021년 5월 21일 NC로 이적하였다.[19] |
임태훈 (서울고 / 투수) | 2007년 신인상을 수상하고 KILL 라인의 일원으로 두산 불펜의 핵이었으나 김경문 감독 휘하에서의 혹사 후유증으로 인해 2010 시즌에 급하게 선발로 전향했지만 후반기를 말아먹으며 아쉬운 모습이었고[20] 2011년 강제추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금지어로 전락하였다. 이후 고질병이던 허리 통증이 겹치며 선수로서의 폼의 폭락과 함께 처참하게 몰락했고, 2015시즌 중 임의탈퇴 되었다. | |
2차 1RD 7번 | 이원재 (중앙고 / 투수) | 잦은 부상으로 1군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
2차 2RD 10번 | 이두환 (장충고 / 포수) | 큰 기대를 받았으나 1군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2011시즌 후 KIA로 이적하였으나 대퇴골 두육종으로 2012년 젋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
2차 3RD 23번 | 권영준 (중앙고 / 투수) | |
2차 4RD 26번 | 김강률 (경기고 / 투수) | 어느정도 기회는 받았으나 부상과 제구 난조로 기량을 피지 못하다가, 2017년에 포텐을 터뜨리며 팀의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17년에 무리한 여파로 2018년에는 다소 부진, 2019년에는 부상으로 쉬었으며, 2020년에 복귀해 2021년에는 마무리로 활약했다. |
2차 5RD 39번 | 이정민 (춘천고 / 내야수) | . |
2차 6RD 42번 | 이용호 (덕수정보고 / 투수) | |
2차 7RD 51번 | 조영민 (신일고- 홍익대 중퇴 / 투수) | |
| (경기고 / 내야수) | 지명 거부 후, 대학 진학(2013년 NC 입단) |
| (진흥고 / 내야수) | 지명 거부 |
4.1.8.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 ||
RD | 지명자 | 평가 |
1차 | 김동명 (대구고 / 포수) | 삼성에서 겨우 6경기에 출장을 하는 데 그쳤고, 2013시즌 후 2차 드래프트로 kt로 이적하였다. kt로 가서도 2군에선 무쌍을 찍는데 1군에만 올라오면 그 성적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하다 2018 시즌 도중 방출되었다. |
김상걸 (경주고 / 투수) | 부상으로 입단 1년만에 웨이버 공시되었다. | |
2차 1RD 8번 | 백정현 (상원고 / 투수) | 한때 만년 유망주라는 조롱까지 들었을 정도로 터지지 않는 선수였으나, 포텐이 터진 이후로는 2010년대의 삼성의 왕조 시절과 암흑기까지 꾸준히 선발 겸 불펜으로 활약했다. 특히 2021년에는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삼성 좌완 선발의 한 자리를 맡았다. |
2차 2RD 9번 | 추승민 (구미전자공고 / 투수) | 1군은 커녕 2군 경기에도 못 나오다가 2011년 처음으로 2군 경기에 출장하는데 성공하였으나, 투구중 어깨파열 부상을 당해 2011시즌 직후 방출당했다. |
2차 3RD 24번 | 임익준 (동성고 / 내야수) | 삼성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1 시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한화에선 육성선수와 정식선수 등록을 매년 반복하다 2018 시즌 도중에 방출되었다. |
2차 4RD 25번 | 김종호 (배재고-건국대 / 외야수) | 삼성에서는 딱히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NC의 창단으로 이적하면서 도루왕을 차지하는 등 초창기 NC타선의 리드오프로 활약했다. |
2차 5RD 40번 | 김상준 (안산공고 / 외야수) | 입단 8개월만에 어깨부상으로 방출당했다. |
2차 6RD 41번 | 이병용 (서울고 / 투수) | 입단 1년만에 방출당했다. |
2차 7RD 52번 | 이동걸 (휘문고-동국대 / 투수) | 삼성에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한화로 이적했다. |
2차 8RD 53번 | 정대욱 (대구고 / 내야수) | 입단 1년만에 방출당했다. 방출 후인 2011년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기도 했다. |
2차 9RD 59번 | 이종훈 (대구고 / 투수) | 입단 1년만에 방출당했다. |
4.2. 팀별 총평
- LG 트윈스: 불운과 삽질로 점철되었으며, 김유선과 봉중근이라는 LG팬에게는 잊지 못할 이름이 두명이나 등장한 그야말로 전설의 드래프트라 할 수 있다. 김유선은 덕수고 2학년 때 최고 구속 147km/h까지 기록하며 당시 강속구로 고교 무대를 평정했던 장충고 이용찬과 함께 1학년 때부터 팬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재목이었으나 3학년 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단 한번도 등판 하지 못한 상태로 원래 LG 트윈스의 계획에는 없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LG 트윈스가 진작부터 1차 지명자로 점찍었던 김강률이 전학생 규정에 걸리는 바람에 1차 지명이 불가능하게 된 데다가 서울고 에이스 임태훈과 장충고 에이스 이용찬을 둘러싼 두산 베어스와의 영입 경쟁에서 완패하면서 LG는 김유선의 1차 지명이라는 모험수를 감행하였으나 이는 대실패로 끝나고 만다.[21] 결국 김유선은 삽질만 하다가 신고선수로 전환된 뒤 2012년에 방출당했고, 2013년 kt wiz 트라이아웃에서도 떨어졌다. 이후 고양 원더스 테스트에서도 떨어지고 결국 은퇴하여 조선소에서 일했다. 은퇴 후의 인터뷰에서 본인 말에 의하면 팔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니 이건 명백한 스카우트들의 삽질이다. 2차 1순위였던 박용근의 지명 역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상위 지명이었다. 박용근이 신체 조건이나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다는 점 등 몇해전 똑같이 깜짝 지명을 받은 SK 와이번스의 정근우와 유사한 점이 많아 제2의 정근우 케이스를 노린 지명으로 평가받았다. 문제는 포텐셜 자체는 빵빵하다고 평가받은 정근우와 달리 박용근은 상위 지명감은 아니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으며, 이 평가 그대로 박용근은 1군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고 2015 시즌 도중 kt로 트레이드 됐고 2017년에 은퇴했다. 한편 LG의 이 뻘짓을 틈타 두산은 유력한 1차 지명자로 거론되었던 중앙고 투수 이원재를 지명하는 데 성공하는데 이어, 4라운드에서는 김강률의 지명까지 성공하면서 서울 내의 투수 유망주들을 거의 싹쓸이하는데 성공한다. 반면 LG는 이후 지명에서 장충고 2선발이었던 이승우의 지명 이외에는 대학행이 확정된 선수들을 지명하는 등의 헛지명을 남발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이 해의 드래프트 삽질 역시 LG의 암흑기를 길어지게 만든 원인이 됐다. 봉중근이 이 해에 국내 복귀를 선언해서 뽑을 수 있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지명.
- 한화 이글스: 1차 지명자인 장필준은 입단을 거절하고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친 후 도미하였다가 2015년 삼성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최진호는 2011년 뺑소니 사망 사고를 내서 흑역사화되었다. 김혁민을 뽑은 것이 그나마 수확이나, 18시즌을 끝으로 방출됐다.
- KIA 타이거즈: 양현종이 포텐이 터져 21세기 기아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로 거듭나는 등 초대박이 됐다. 김연훈은 2008년 전병두와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그나마 이호신이 간간히 1군에서 모습을 보였다. 성민규는 특이하게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드래프트에 참가했으며, 은퇴 후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 해설가로 활동하였다가 2019년 9월 롯데 자이언츠 신임 단장으로 부임했다. 한편 2차 5라운드 지명인 권윤민은 포수로 뽑혔지만 부상으로 내야수로 기용되었으며, 1년만인 2008 시즌 후 은퇴한 뒤 KIA의
악명높은스카우트가 되었다.그리고 2013, 2014 드래프트를 망치고 말았다.1차 지명인 정영일은 KIA와 계약 문제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면서 계약을 포기,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지명권이 소멸되었고 2014년 SK의 지명을 다시 받아 입단했다. 같은 1차 지명인 오준형도 별 활약을 하지 못한 채 2014년 은퇴를 선언하여 전력분석관이 되었다.
- 롯데 자이언츠: 손아섭 하나로 설명 끝. 4순위 지명을 받은 손광민은 2009년 손아섭으로 개명하고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골든 글러브+국대급으로 성장했다. 이상화는 이종운 감독과 함께 신나게 욕만 먹고 끝내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떠났다. 김민성은 넥센 히어로즈에 가서 포텐이 터졌다. 2차 1픽인 이웅한은 끝내 1군에 오르지 못하고 2015년에 방출당했다. 이후 웅스아카데미 대표로 아마야구겸 여자대표팀 투수코치를 2018년 지난해까지 하였으며 2019년 여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인터뷰기사 황진수는 긴 무명생활을 깨고 드디어 재기를 하나 싶었으나 2019년 시즌 이후 방출당했고 이재곤은 한때는 김수완과 더불어 롯데 선발진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결국 방출당했다.
- 두산 베어스: 이용찬이 2009년에 신인왕이 된 뒤 2012년에는 선발 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2013년에 팔꿈치 부상, 그리고 2014 시즌 마무리로 다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음주 뺑소니에 약물적발[22] 등으로 잡음만 남기고 상무에 입대했다. 전역후 두산의 선발의 한축을 담당하고 나서 FA를 통해 NC로 이적하여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입단 첫 해 맹활약하며 순수 신인으로 신인왕[23]까지 수상했던 임태훈은 2011년 본인이 야기한 최악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인해 금지어로 전락했고, 이후 따가운 시선과 함께 복귀했지만 예전과 같은 피칭을 다시 보이지 못했고 결국 2015년 임의탈퇴 공시되면서 야구계를 떠났다. 이두환 역시 탄탄한 두산 야수 백업 선수들 중에선 2군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하며 팬들의 기대를 받았지만 멘탈 문제로 인해 1군에서 별 활약을 못 보였다. 2011년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겼고, 결국 큰 포텐을 가지고 있음에도 1회 2차 드래프트로 KIA에 갔다. 하지만 KIA로 가서는 암(골육종) 판정을 받아 몸상태가 크게 악화되며 KIA 소속으로 단 1경기도 뛰어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두산과 KIA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선수 중 하나로, 이두환이 사망한 후에 양현종, 황재균이 모자에 쓴 DH가 이두환을 뜻한다. 이외에는 김강률만이 1군에 자주 나오는 수준. 이원재가 강속구로 기대를 받았으나 부상 등으로 기량이 저하되며 사실상 망한 수순이었고 결국 2018 시즌 후 방출. 김강률은 2015 시즌 시범경기 3월 14일 kt전에서 빠른공 최저구속 153km/h를 찍으며 팬들을 설레게 했는데, 5월 초 경기 도중 불의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아웃되었다. 시즌아웃되기 전까지만 해도 정말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안타까울 따름. 그러나 2017 시즌에는 다시 부상을 딛고 두산의 필승조가 되었다.
- SK 와이번스: 김광현이 KBO리그 역대급으로 제대로 터졌다. SK가 전 해에 류현진을 거른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김광현이었는데, 다행히 김광현도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에이스로 거듭났다. 박윤도 2군에서는 건실한 모습을 보였다만 그 정도. 하지만 나현수는 계약 대신 경성대로 진학했고 1차지명이라 지명권은 유지되었지만 1학년 때 14이닝을 던진 것을 마지막으로 더는 나오지 않다가 끝내 입단하지 못했다. 박윤 역시 몇년간 정체되었다가 2015시즌 후에 자진해서 방출을 요청했고 이후 넥센에 입단했지만기서도 2군 본즈 노릇만 하다가 2017 시즌이 끝나고 방출당했다. 그리고 김광현이 202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진출하면서 김광현이 국내 복귀하기 전까지 2007년 지명자는 SK에 단 한 명도 남지 않게 됐었다.[24] 그러나 김광현은 2022년 4년 151억이라는 대형 계약으로 다시 SSG의 품에 안겼다.
- 삼성 라이온즈: 1라운더인 백정현을 제외하고는 건진 선수가 없다. 김종호는 삼성이 아닌 NC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하여 터진 케이스이다. 1차 지명을 받았으나 계약금 8,000만 원에 입단한 경주고 투수 김상걸은 더딘 성장을 보인 데다가, 팔꿈치 부상까지 당해 수술을 받으면서 입단한 지 불과 1년 만에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이후 김상걸은 연천 미라클에서 활동했지만 프로 복귀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1픽인 김동명(김동욱으로 개명)과 2차 7라운더 이동걸 모두 부진하여 결국 2013년 2차 드래프트 때 각각 다른 팀으로 옮겼다. 다만 백정현이 성공사례로 남았는데, 사실 그 백정현도 2016년까진 중간계투로서는 추격조 수준이고, 선발로서는 등판할 때마다 꾸준히 4~5실점을 찍어서 1군 수준이라 보긴 힘들었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 갑자기 포텐이 터지며 선발 에이스로 급부상하여 백쇼로 진화했고, 2019년에는 커리어 첫 규정이닝을 달성하였으며 2021년에는 더욱 발전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 현대 유니콘스: 장효훈 말고는 딱히 설명할 만한 선수가 없다. 괜히 평가 문단에서 현대만 빠진 게 아니었다. 장효훈은 2013년 장시환으로 개명하고 2015년 kt wiz의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하여 1군 데뷔 첫 승을 올리는 등, kt 투수진의 기둥이 되었다가 롯데로 떠났고 다시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떠났다.
5. 이모저모
-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자인 장필준은 한화가 제시한 계약금에 이견을 보여 결국 협상이 결렬됐고, 북일고 졸업을 앞둔 3학년 겨울에 돌연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자진 입대한다.[25] 전년도인 2006년 한화 이글스는 1차 지명으로 뽑은 유원상한테 5억 원 이상을 질렀음에도 다음해 유원상보다 북일고에서 실질적 에이스였던 장필준에게 1억 5천만 원부터 제시하며 장필준의 자존심을 구겼다고 한다. 한편 장필준이 상무에서 전역한 뒤 한화는 다시 한 번 계약을 시도했으나, 장필준은 이를 거절하고 도미하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과 마이너 계약을 맺으면서 한화가 갖고 있던 장필준의 1차 지명권은 자동으로 소멸되었다. 정작 장필준은 메이저리그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고 2012년 마이너리그에서도 방출되었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갔지만 팔꿈치 부상을 당해 2경기에만 등판하고 귀국했다. 이후 소속팀 없이 2년간 재활하면서 유예 기간을 채웠고, 삼성 라이온즈의 2015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후 일찌감치 STC에 입소했다.
- 이 해부터 1차 지명 불가의 기준이 중학교 3학년 이후 유급을 했거나 타 구단 연고 지역 학교로 전학 또는 진학한 선수로 고정되었다. 대표적으로 위대한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 물론 전과탓에 롯데가 지명을 하지 않은것도 있지만, 애초에 지역 1차지명이 불가능했다. 이후 전면 드래프트로 바뀌면서 이 규정은 폐지되었으며 2013년 1차 지명이 부활과 함께 이 규정도 부활되었다. 대신 2013년 이전의 전학, 유급은 소급적용을 하지 않는다.
- 이 때문에 SK 와이번스는 성남서고 투수 김혁민, 이천웅[26]을 1차 지명하지 못하고 남은 한 자리에 야탑고등학교 투수 나현수를 지명했지만, 나현수는 SK 입단을 거절하고 경성대학교에 입학했다. 1차 지명이라 지명권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나현수는 경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27] 결국 지명권이 풀렸다.
- 삼성 라이온즈는 1차 지명의 경우, 포수 김동명 외에 당시 1차 지명감이 없어 그나마 체격만 좋았던 경주고 투수 김상걸을 뽑았다.[28] 하지만 김상걸은 이듬해 시즌 중 불과 1년 만에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당했다. 김동명도 군 복무를 마치고도 별 활약을 못 보이고 2013년 2차 드래프트 때 조뱀의 팀에 끌려갔다.
- 부산고에서 두명의 선수가 지명되었는데, SK에 3라운드 지명된 부산고 투수 위대한[29]은 학창 시절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야구 팬들의 질타를 받았고, 결국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SK에서 임의탈퇴 공시되어 그라운드를 떠났고, 진짜로 조폭이 되었다. 한편 또다른 부산고 4라운드 지명자 손광민은 개명 후 2024년 현재 역대최다안타를 기록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선수가 된 리빙레전드가 되었다. 두사람은 야구선수로 시작하여 살아가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 KIA에 4라운드 지명된 성민규는 최초로 지명된 해외 아마추어 선수다. 원래 홍익대학교에서 운동을 포기하면서 중퇴한 후 미국 내브래스카로 건너가, 그 곳에서 다시 야구를 시작한 것. 그러나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은퇴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미국에서 스카우트와 마이너리그 코치로 활동했다. 엠스플에서 메이저리그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그러다 2019년 롯데 자이언츠의 단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 한화에 4라운드 지명된 김경택은 지명 후 유급했으며 한화에 입단하지도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은 가운데 몇 년을 보내다 일본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2012년 귀국한 후 고양 원더스에 합류했으나 부상으로 1년 만에 선수 생활을 접었다.
- KIA에 5라운드 지명된 권윤민은 법정 싸움을 벌인 끝에 신인 지명에 참가할 수 있었다. 원래 규정대로라면 1년 더 기다린 후에 신인 지명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으로 은퇴하고 스카우트로 전업.
- SK 와이번스에 5라운드 지명된 박윤은 박종훈 당시 SK 수석코치의 아들. 잘하면 부자가 선수-코치로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는걸 볼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아버지 박종훈이 2006 시즌 후 SK를 떠나 두산 베어스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바람에 간발의 차로 엇갈리게 됐다.
- 두산에 7라운드 지명된 조영민은 대학 중퇴 후 바로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면서 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되자[30] 신인 지명에 참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7 시즌 후 방출당한다.
[1] 후에 김동욱으로 개명[2] 계약금 역대 최고액[3] 연고지 문제로 1차지명에서 제외[4] 주의해야 할 것은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5] 2013년 7월 장시환으로 개명.[6] 시카고 컵스의 극동 스카우트이자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2019년 불과 만 37세의 나이에 롯데 자이언츠 단장으로 전격 선임됐다.[7] 후에 최유건으로 개명.[8] 후에 손아섭으로 개명[9] 유급 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본 독립리그 등에서 뛰다가 2012년 고양 원더스에 합류. 2013년 퇴단해 일반 회사원으로 근무 중.[10] 유급 후 충청대, 원광대를 거쳐 2012년도 신인 지명에서 롯데에 지명.[11] 나성범의 친형, 4년 뒤 한화에 지명. 입단 1년만에 송신영의 보상선수로 LG로 이적.[12] 고려대 진학 후 4년 뒤 LG에 신고선수로 입단.[13] 4년 뒤 LG에 지명. 입단 후 김재율로 개명.[14] 고려대를 거쳐 경찰청 복무를 마친 후 NC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 1년만에 방출.[15] 6년 뒤 NC에 지명.(한양대 진학 후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 2011년 복학.) 2014시즌 후 방출.[16] 후에 정윤혁으로 개명.[17] 장시환으로 개명.[18] 방출 후 최유건으로 개명했다.[19] 그러나 이적후 두시즌은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그 이후에는 방화범으로 전락하여 최악의 투수가 되고 말았다.[20] 이는 선천적으로 고질병이던 허리 통증이 문제였는데, 실제로 2010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등판 당시 모자에 "허리야 버텨줘"라는 문구를 쓸 정도로 심각했다.[21] 김유선 지명의 미스테리에 대해 일부에서는 김유선이 2학년 때 미리 LG와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3학년 때 태업하였다는 주장을 하지만, LG가 임태훈, 이용찬 영입을 원했으며 실제로 계약을 시도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김유선이 고교 1, 2학년 동안 고작 6경기 등판에 5⅔이닝 투구에 그쳤다는 점을 봤을 때 더더욱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22]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약물 복용이고 이러한 사유는 실제 KBO에 신고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데 신고를 안했으니 문제...[23] 2017년 이정후가 신인왕을 수상하기 전까지 10년간 마지막 프로&고졸 1년차 신인왕이었다[24] 2차 지명 선수 중에서는 김기현이 그나마 제일 마지막까지 SK에 남아있었고 2016년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2007년 2차 지명자는 전멸.[25] 정확히는 세는나이로 19세였던 2006년 11월에 입대한 뒤 신병위로휴가를 나와 북일고 졸업식에 참석했다.[26] 고려대학교 졸업 후 LG 트윈스의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외야수로 전향했다.[27] 대학 4년 동안 1학년 때 14이닝을 던진 것 외에는 전혀 기록이 없다.[28] 2005년 1차 지명자 백준영처럼 계약금 8,000만 원에 입단하였다. 2005년 지명처럼 당시 대구·경북 팜이 얼마나 암울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29] 2009년 히어로즈 지명자와는 동명이인이다. 이쪽은 내야수다.[30] 원래 대학 중퇴생의 경우엔 1년 후에 프로 입단이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