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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2-11 12:25:50

임태훈(야구선수)/선수 경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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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 2011년 5월 7일3. 송지선 사건
3.1. 2011년 5월 7일 ~ 5월 22일3.2. 2011년 5월 23일 ~ 5월 24일
4. 사건 이후

1. 개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임태훈에 대한 평가가 급격히 나빠져, 그동안 쌓은 이미지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기곰, 임탱 등 본래 있던 긍정적인 별명도 모조리 임삿갓 등 부정적 별명들로 대체되었다.

2. ~ 2011년 5월 7일

2009년까지 공포의 불펜진인 KILL 라인의 중심축이었던 임태훈은, 2010년에 선발로 전향하자 방어율이 급상승하면서 두산은 임태훈을 선발로 넣었다가는 실점만 쌓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결국 김경문은 임태훈을 마무리로 기용하기로 작정하였다. 4월 19일 기준으로 7경기 중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무리로 등판, 1승 5세이브를 기록했다. 당시 두산 팬들은 어쩌면 손승락과 비견될 수 있는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대했다.

하지만 5월 3일 LG 트윈스전에 구원 등판해 박용택에게 결승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더니 다음날에는 이병규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블론도 많아 5월 7일 기준 4개로 공동 1위였다.

3. 송지선 사건

3.1. 2011년 5월 7일 ~ 5월 22일

2011년 5월 7일 새벽에 올라온 송지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다이어리 글에는 임태훈과 사실상 성행위를 연상한 말이 적혀 파문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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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송지선이 올린 전문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2010년 1월, 임태훈은 운동을 마치고 송지선의 차에 탔다. 커피를 사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임태훈은 BJ를 해 줄 것을 강요했고 송지선은 어쩔 수 없이 해줬으나, 그 후 임태훈은 송지선과 사귄다고 하면서도 성욕 해소용으로 그녀를 대했다. 그리고 며칠 후 전지훈련을 떠나자마자,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연락을 끊었다.

트위터에는 송지선의 자살을 암시하는 글이 올라왔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잠작케 할 수 있는 멘트도 발견. 김민아가 수면제를 먹고 쓰러진 송지선을 발견했다는 기사도 올라오자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이로 인해 야갤에서는 2군행 짤이 나돌았지만 KBO 홈페이지 확인 결과 2군행은 루머로 판명되었다.

야갤에서는 임삿갓, 임어깨, 임숄더, 임오랄 등으로 부르는 한편,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글이 해킹인지 아닌지에 대해 네티즌들은 왈가왈부했으나, 송지선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언론 보도에서는 트위터만 본인 작성이라고 나왔으나 곧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글 역시 본인 작성으로 보도했다.

보도 후 대부분은 임태훈을 비난했지만, 송지선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에서 쓴 글인 데다 태도가 상당히 극단적이라 100% 신용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도 있었다. 이에 대해 임태훈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멘탈적으로는 흔들렸는지 사건 당일 롯데전에 등판해 이대호[1]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제대로 맞으며 완전히 무너졌고, 결국 9회말에 두산이 재역전에 실패하여 최종 스코어 7:8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와중에 허구연은 "오늘 홈런에는 의미가 있지요"라면서 타이거 우즈 드립을 시전, 간접적으로 디스했다. 거기에 경기 MVP 이대호에게 "이대호 선수가 애처가니까 부인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라는 말도 했다. 이 날 낮에 해당 사건으로 프런트와 긴급 회의를 가졌다고 한다.

스포츠서울에서는 임태훈이 "일부분 틀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 맞는 사실"이라며 인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이에 1년 전 기사가 현 상황을 예견했다며 성지가 되기도 했다.

결국 5월 9일자로 2군으로 강등당했다. 대신 김상현이성열이 콜업되었다.

5월 22일 '지난 1년간 임태훈과 교제중'이라는 기사가 뜨자 송지선의 해명 기사와 함께, 5월 22일자로 1군에 복귀했다. 캡쳐 올라온 당일 삼성 라이온즈과의 대구 경기에서 1이닝을 투구했다.

해명 기사와 콜업이 같은 날에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을 미루어 보아 송지선의 해명은 임태훈의 1군 복귀를 위한 두산 베어스와의 합의를 통해 나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으나, 임태훈은 두산 홈페이지를 통하여 '사실무근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라는 반박을 하였다.

3.2. 2011년 5월 23일 ~ 5월 24일

해명 기사와 임태훈이 1군으로 복귀한 바로 다음 날인 5월 23일, 송지선이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렇게 되자 임태훈은 1일 뒤인 2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두산 감독 김경문기사에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밝혔으며, 임태훈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했다. 그렇잖아도 불펜이 상당히 약한 데다 끝없는 추락을 하는 팀에게 임태훈의 이탈은 상당한 악재가 되었다.

한편 임태훈은 실시간으로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자신을 욕하는 댓글을 지웠다는 의혹을 받았다. #

송지선의 빈소에 와 조문을 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으나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정신적 충격으로 빈소에 조문을 못하겠다고 두산 구단에 통보했다고 한다. 그러자 조문하여 고인에 대한 예우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이 여론을 장악했다. 가는 사람 마지막 길마저 피했다는 의견이 많다 보니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유가족들과의 충돌이 있을 수도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유가족 측에서는 그래도 와야 되는 거 아니냐는 원망이 담긴 인터뷰를 했다. 임태훈의 소속팀 두산에서도 어떠한 애도의 표현이 없었으며, 야구계 쪽에서는 강민호가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올리고 KIA 타이거즈LG 트윈스에서 조화만 보내 주었을 뿐이다.

두산 구단 측에서는 일체의 징계는 없다고 언급해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1군에 올리려는 의도가 보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물의를 빚은 만큼 방출이나 영구제명을 해야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폈는데, 불과 몇 주전에 LG 트윈스가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린 오상민을 방출한 사례가 있었다.

4. 사건 이후

이 사건은 가뜩이나 비틀대던 두산에 빅엿을 먹였고, 결국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김경문의 감독 사퇴로 이어졌다.[2] 사건 여파와는 별개로 5월 25일 두산의 잠실 홈경기는 14년만의 화요일 매진 경기가 되었다.[3]

6월 들어 두산 락커룸에서 짐을 다 빼버렸고, 본인의 의지인지 프런트의 지시에 따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2군 훈련도 전부 불참하며 집에서 칩거하다 6월 23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다.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되었기에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만 받았고, 퇴소 이후인 8월 24일 3개월 여만에 2군 경기에 등판해 2이닝 무실점을 거뒀다.

9월 17일과 9월 18일 잠실 롯데전에 복귀 예정이라는 기사가 올라왔고 이 경기에 등판하며 1군으로 복귀했다. # 복귀전 이후 각종 포털 사이트 스포츠 뉴스 댓글란은 실로 아비규환. 기자들은 대체로 쉬쉬하며 짤막한 기사만 몇 개 올렸으나 해당 기사마다 댓글에는 네티즌들의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임태훈이 1군에 복귀하자 김민아는 본인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베이스볼 투나잇 야'에서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다. 김민아, 임태훈 향한 쓴 소리? "야구만 잘하면 될까요?"

복귀 후 인터뷰에서 "(팀에게)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송함을 느끼고 있다. 나 한 명의 부재가 전력 상으로 큰 공백은 아니었겠지만 팀 분위기를 극도로 가라앉혔다는 점이 너무 죄송했다."고 밝혔고 팬들의 비난에 대해서는 "앞으로 야구를 하면서 계속 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수하면서 열심히 하겠다. 그저 나가서 열심히 하고 열심히 던지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끝내 송지선에게는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았다.

전년 대비 평균자책점은 5.30에서 3.79로 개선되었으나, 1승 1패 7세이브에 머물렀다.
[1] 당시 이대호는 페르난도에게 사구를 맞아 감정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2] 사실 김경문은 5월 초부터 구단에 자진 사퇴를 요청했다.[3] 1997년 4월 29일 LG-두산전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