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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4:06:52

플로이드 메이웨더

플로이드 메이웨더
Floyd Maywe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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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8ba><colcolor=#fff> 본명 플로이드 조이 메이웨더 주니어
(Floyd Joy Mayweather Jr.)
출생 1977년 2월 24일 ([age(1977-02-24)]세)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거주지 네바다라스베이거스
직업 복싱선수
복싱 전적 50전 50승(27KO) 0무 0패[1]
스타일 오소독스[2]
신체 173cm / 183cm[3]/ 260mm
체급 슈퍼페더, 라이트, 라이트 웰터, 웰터, 슈퍼웰터
가족 아버지: 플로이드 메이웨더 시니어[4]
삼촌: 제프 메이웨더, 로저 메이웨더[5]
2남 3녀 중 장남[6]
링네임 Pretty boy[7][8], Money[9][10], TBE[11], 스피드 데몬, 기본기의 신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커리어
2.1. 불우했던 유년 시절2.2. 커리어
3. 파이팅 스타일4. 성격과 쇼맨십5. 비판
5.1. 지루함을 유발하는 경기 스타일5.2. 더티플레이5.3. 복싱계 역대 최고를 다투는 불량 어그로꾼5.4. 무패 커리어에 흠집내지 않으려는 상대 선정
6. 매니 파퀴아오와의 악연7. 어록8. 기타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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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복싱 선수. 사상 최초로 5체급을 무패로 제패[12]하였으며, 50승 0무 0패 무패 연승 커리어를 달성한 선수이다.

여러 논란도 있지만 실력과 더불어 무패라는 상징성, 적극적인 이슈메이킹과 SNS를 이용한 셀프 마케팅으로 복싱과 엔터테인먼트의 관계를 보다 노골적으로 앞세운,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복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큰 선수다.

2. 생애 및 커리어

2.1. 불우했던 유년 시절

미국 중북부 미시간에서 태어난 메이웨더 주니어는 5살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와 삼촌은 복서였으나 결코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고, 5평 남짓 방 하나짜리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도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집안에서 총기사고도 있었을 만큼 거친 집안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부업으로 마약상을 했고,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였다. 이모 중 한 명은 AIDS로 죽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빈민가 흑인 청년들처럼 메이웨더도 막장인생을 살 뻔했으나, 아버지는 그 와중에서도 아들을 체육관에 데려가 계속 복서로서 훈련시켰다고 한다. [13]

그러나 16세에 아버지가 마약 문제로 3년 반을 복역하게 되면서 메이웨더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 기간에 그의 할머니가 매우 헌신하여 그를 복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때문인지 메이웨더는 할머니가 원하는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한다. 처음 큰돈을 벌자마자 한 일도 할머니에게 큰 집을 사준 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로 불행한 환경에 놓인 소년들이라면 대부분 나쁜 길로 빠지는 반면 메이웨더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복싱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헌신했다.

2.2. 커리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플로이드 메이웨더/커리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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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이팅 스타일

본래는 적극적인 공격형 복서였으나 체급을 올리면서 방어형 복서가 되었고, 아웃복싱에 있어선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 특히 숄더롤이라는 기술의 정밀함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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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웨더의 아웃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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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웨더의 숄더롤

숄더롤이란 위 짤처럼 어깨로 상대방 펀치를 방어 혹은 흘려버린 후 카운터를 노리는 기술인데, 메이웨더만 쓰는 게 아니라 원래 널리 알려져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이것을 만화에나 나올 법한 무적의 방어술로 체화한 인물은 복싱 역사상 메이웨더 주니어가 유일하다.

물론 숄더롤도 단점이 있는 기술이다. 일단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상대방 펀치의 궤적을 어깨로 흘려버리는 게 말이 쉽지 실전에선 시전이 매우 힘들다. 예를 들어 에이드리안 브로너의 숄더롤을 보면 상기한 단점에 그대로 노출되어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부로 가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14] 그리고 방어적으로 나가다가 오히려 난타를 맞고 대미지를 입는 등 노련함이 없으면 불리해질 수 있는 기술이다. 사실상 숄더롤 자체가 정타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위의 움짤처럼 간단해 보이는데 메이웨더라 가능한 것이다. 타고난 반사신경과 회피, 그리고 집중력을 잃지 않는 체력으로 세계 정상급들의 펀치도 거의 안맞는 것이다.

숄더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전에서는 해설자들이 숄더롤 숄더롤 숄더롤만 외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코너에서 슬립/스웨이중인 웨더가 숄더롤을 하는 중이라고 말하질 않나. 전체적으로 수준이 바닥이었던 해설진들의 해설에서 유난히 오류가 많았던 부분이다. 파퀴아오와의 경기에선 숄더롤은 거의 쓰지도 않은 데다 스웨이로 정타 다 피하고 슬립으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장면이 더 많았다. 사우스포의 복서 스타일인 파퀴아오에게 숄더롤로 경기를 풀어 나가는 게 애초에 메이웨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사우스포와 만나면 하이 가드의 비중이 높아진다.

숄더롤 외에도 복싱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방어기술을 적절하고 안정적으로 구사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몰리질 않는다. 경기를 보다 보면 의외로 링사이드에 몰리는 일이 잦긴 하는데, 링사이드에 몰려도 냉정하게 상대를 관찰하고 뛰어난 회피 기술로 정타를 맞지를 않는다. 구석에 몰아넣고 펀치를 쏟아내던 상대가 포인트 하나 못 얻고 되려 메이웨더에게 정타를 허용하거나 클린치를 당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공격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피 튀기는 난타전보다는 점수를 따는 것에 집중하는 경기 운영을 한다. 빈틈을 찾아 유효타를 날리는 민첩함이 매우 뛰어나며, 공간 활용능력(링 IQ)만큼은 복싱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라고 인정받고 있다. 공격할 때도 단발성 공격이긴 하나 꾸준하고 정확한 공격을 시도하며, 또 상대 공격에 대해 카운터를 날리는 재주도 매우 뛰어나다. 그와 싸운 복서들의 공통된 후기는 전반적으로 그다지 공격적이진 않으나 점수를 따고자 할 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그와 두 번이나 싸웠던 아르헨티나의 터프가이 마르코스 마이다나의 말마따라, 엄청나게 강하거나 어려운 상대라고 느껴지진 않지만[15] 경기 자체를 이기기는 힘든 복서라는 표현이 아주 정확한 묘사다.(심지어 마이다나도 상당히 영리한 복서다.)

그리고 라운드 당 수 백발의 펀치를 쏟아내는 펀처는 아니나 공격성향 자체가 적은 선수는 아니다. 그의 경기를 보다 보면 경기 이미지에 비해 펀치 개수나 유효타가 상당히 많다는 데 놀라게 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보기엔 공격적인 타입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도망만 다니는 복서라고 까이기도 한다.[16]

또 다른 메이웨더 승리 공식은 바로 긴 리치다. 웬만한 미들급 ~ 라이트헤비급 선수들 정도의 긴 리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 리치를 공략 못해서 파퀴아오, 마르케즈 등 수많은 선수들이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거기에다가 원체 발놀림이 빠르고 거리감각이 훌륭한 스타일이라 체감상 느끼는 리치 차이는 더욱 지대할 것이다.

복서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인 잽을 보자면 역대급 잽의 보유자이다. 아이크 쿼테이만 한 파워는 없지만[17] 잽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한다. 메이웨더는 얼굴 중에서도 주로 미간에 잽을 날리는데 상대방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서라고. 견제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의 타이밍을 적재적소에 빼앗고 특히, 잽 페이크는 믿기지가 않는 수준. 머리에 페이크성 잽을 날리고 손을 다시 회수한 뒤 바디에 꽂는 레프트 바디 스트레이트는 최정상급 선수들조차 제대로 반응도 못한다. 콤비네이션의 정석은 바디에 펀치를 주고 가드를 내려서 상단을 치는 거다. 상단 후 바디로 내려가는 콤비네이션을 1 옵션에 가깝게 쓰는 최정상급 선수는 몇 없다.



우리나라 나이로 40살이 넘어간 은퇴한 선수의 핸드 스피드. 해당 동영상을 보면 메이웨더의 왼손 스피드를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다. 메이웨더가 직접 언급한 바에 의하면 20대 후반부터 피지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하니 전성기 때는 어떨지 감이 안간다.

메이웨더는 언론이 오는 훈련에서는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 스파링도 대충대충 하는 걸로 유명하다. 아마 복싱부터 계산하면 커리어가 20년이 훌쩍 넘어가는 선수임에도 전력으로 샌드백을 치는 영상이 은퇴 후 공개된 위 영상을 제외하면 없다시피 하다. TV로 시청시 투닥투닥거리는 걸로 보일 수 있으나 실제 경기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저런 주먹이 정확히 미간으로 들어온다.

추가하자면 공격적으로 경기를 안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주먹이 잘 박살나기 때문이다. 카넬로 전 때는 거친 클린치에서 벗어나는 중에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다고 할 정도로 맷집과는 별개로 강골이라고 할 수는 없는 선수다. 실제로 7라운드에 주먹이 박살 나서 사실상 한 손으로만 12R까지 뛴 적도 있다. 주먹은 한 번 깨지면 그 다음에는 더 쉽게 깨지는 부위이다. 그가 고사리 손에다가 핸드랩만 30분 감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괜히 메이웨더가 손 보호가 잘 되는 위닝 글러브를 선호하는 게 아니다.

종합하자면, 극한의 경지에 오른 방어와 회피 기술을 기반으로 빈틈을 노려 정타를 완벽하게 때리는 전형적인 아웃복서다. 들어가서 공격을 하면 다 피해버리고, 조금만 펀치를 크게 휘두르면 바로 카운터를 꽂고. 그렇다고 안 들어가면 팔이 몹시 길고 잽싼 메이웨더와 거리싸움을 해야 된다. 그렇다고 자기가 백스텝 밟으면 아웃복서 주제에 박스아웃을 하러 들어온다. 그렇다고 후반으로 경기를 끌고 가자니 체력에서도 이길 수 없고 메이웨더만큼 12R까지 경기를 많이 가져가는 선수는 드문 만큼 경험에서도 압살 당한다.

이러한 메이웨더의 복싱 스타일이 현재 20년대의 최신 복싱판에 끼친 영향은 매우 상당한데 이는 메이웨더가 활동하던 00년대부터 10년대 중반까지의 웰터급 복서들의 스타일을 보면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당시의 웰터급 복서들의 파이팅 스타일을 보면 매우 다양하고 각자만의 뚜렷한 색깔이 있었다. 파퀴아오, 오스카 델 라 호야, 모슬리, 마르코스 마이다나, 미구엘 코토, 마르케즈, 클로티, 브랜든 리오스, 리키 해튼 등등 모두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갖춘 선수들이다. 하지만 메이웨더의 열화 버전으로 유명한 애드리언 브로너의 등장 이후로 여러 체급의 복서들의[18] 파이팅 스타일은 점차 메이웨더식으로 바뀌어가게 된다. 소위 스윗 사이언스[19]로 불리는 웨더식 아웃복싱 전략을 카피하고 체화해서 나오는 선수들이 대거 양성되었고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 흑인 복서들이다. 대표적으로 데빈 헤이니[20], 샤커 스티븐슨, 키숀 데이비스, 자론 에니스, 프랭크 마틴 등등이 있고 백인 복서 중에는 슈퍼 미들급의 케일럽 플랜트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이 메이웨더식 스타일을 탑재한 선수들이 현 복싱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앞으로도 점점 그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21] 어찌보면 일종의 상향평준화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상향평준화의 오리지널 버전이자 아버지가 바로 메이웨더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향평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 어떤 메이웨더의 아들격인 복서들 중에서도 메이웨더식 복싱의 완성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선수는 없다. 이는 역설적으로 대다수 선수가 메이웨더를 따라 할 만큼 그의 복싱 스타일은 보편성과 완성도를 갖추고 있지만 메이웨더급 재능[22]이 없다는 말도 된다. 시대가 흘러 메이웨더를 능가하는 천재가 나온다면 그는 제 2의 메이웨더라 불릴 것이다.[23]

4. 성격과 쇼맨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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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스포츠계 제1의 갑부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아닌 그의 물불 가리지 않는 화끈한 성격과 쇼맨십이다.

비교적 재미없는 스타일의 방어형 복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경기는 언제나 천문학적인 대전료의 흥행몰이를 하는데, 그 첫걸음은 복싱 역사에 남을 오스카 델라 호야와의 경기전에 24/7이라는 경기 준비를 담은 다큐였다. 그 프로그램을 방영함으로써 기대를 고조시키고 복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리얼리티 형식으로 조명하였고, 24/7의 호응이 폭발적이 였는지 오스카 델라 호야나 메이웨더를 전혀 모르던 복싱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이들의 경기는 누가 이길지 기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젠틀한 외모에 영웅적 이미지의 델라 호야와는 정반대로 메이웨더는 스스로 악역을 자처했고 호야를 이길 것이라고 떠들고 다녔으며, 이런 드라마틱한 설정에다가 실제로 호야를 판정으로 이기는 경기를 펼침으로써 그가 흥행을 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24]

그는 경기 전에 도발을 거의 필수적으로 하는 편이고 쓸데없는 말도 많이 하는 편이다. 트위터에는 온갖 허세스런 사진들이 즐비하며 웬만한 힙합스타는 명함도 못내미는 사치스런 생활을 자랑한다.

한국 인터넷에서도 그의 경기는 본 적 없더라도 그의 허세샷은 유명할 정도로 화려한 사생활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빠와 까가 공존하는 악동 이미지를 만들었다.[25]

그러나 이런 그의 행동은 흥행을 위해 어느정도 계산된 행동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가 튀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건 주로 경기 날짜가 다가오면서부터이고 이는 복싱 비즈니스에 관련된 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으론 그야말로 이상적인 복서인 셈이다.

모든 톱클래스 운동 선수가 그렇지만 그도 대단한 노력파이다. 천재로 불리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한다는 걸 언제나 강조한다. 실제로 , 담배는 입에도 안댄다고 한다. 콜라같은 탄산음료패스트푸드는 즐기는 편으로 메이웨더 본인은 이런 식습관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또한 스폰서 노리고 하는 비즈니스 부분도 어느 정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식습관을 즐긴다는 게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몸관리를 꾸준하게 유지해낸다는 건데 이는 엄청난 훈련의 결과물이다. 트레이너가 훈련량 좀 줄이라고 충고할 정도로 무식한 훈련량을 자랑하는데 이에 대한 본인의 자부심도 대단해서 허세좀 그만 부리라는 네티즌이나 기자들의 인터뷰에 'X발 니들은 나만큼 노력하기라도 했어?'라고 응수하기도 한다.

허세스러운 쇼맨쉽과 달리 메이웨더를 15년간 보좌한 비서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본 성격은 상당히 나약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면이 있다고 한다. 시합이 잡히면 대전 상대에 대해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고 불안해하여 눈물까지 보일 정도였다고. 그리고 그는 이런 불안감에 잠을 설쳐가며 집착 수준으로 독하게 매일같이 훈련했다고 한다. 이런 나약해 보이지만 독한 그의 성격이 그를 무적의 챔피언으로 만든 듯.[26]

쇼맨십 이전에 복싱 비즈니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선수인 것은 확실하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온 뮤지션 프로모터 출신인 앨 헤이먼과 합동으로 대규모 자본을 끌어모아 다른 선수들과는 수준이 다른 자금동원, 경기흥행 능력을 보여준 선수. 어쩌면 기량도 기량이지만 이런 프로모션, 매니징 능력으로 복싱 역사에 기록될 지도 모른다.

5. 비판

이렇게 전설적인 복서임에는 틀림없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5.1. 지루함을 유발하는 경기 스타일

10가지 테크닉

먼저 스타일의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수비적인 복싱 스타일 때문에[27] 복싱팬들 사이에서는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화끈한 경기를 기대하는 팬들의 기대와 다르게 이 선수는 아웃복서로선 만렙에 가까운 방어능력을 가져서 웬만한 경기에서 얼굴에 정타 한번 맞는 일 없을 만큼 뛰어난 방어와 회피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절대 먼저 들어가질 않는다.

펀치력이 딸려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27KO를 폼으로 찍은 건 아니다.[28] 그래서 퍼넬 휘태커 이후 최악의 아웃복서라는 평을 듣는다.

즉 실력이 안 돼서 우주방어형이거나 재미 없는 아웃복싱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굳이 혐영을 한다는 것. 지키기만 하면서 하는 경기마다 계속 링 로프쪽으로만 가 상대 선수 툭툭 쳐서 약 올리는 복싱으로 판정으로 무패 행진을 하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 시원한 맛도 없고 열이 안 받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29] 특히 강력한 라이벌 중 하나였던 매니 파퀴아오의 시원시원한 파이팅과 극단적으로 대비되기 때문에 더 안티가 많다.

즉, 쉽게 말해서 경기 내용 하나하나를 전략적인 측면에서 분석하는 매니아들에게는 그의 기술의 편린이 보여서 재미가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닌 화끈한 경기를 원하는 라이트팬들에게는 극심한 답답함만 유발하는 발암 선수나 다름없다.

5.2. 더티플레이

거기다가 더티플레이도 종종 구설에 오르는데 2007년 리키 해튼과의 경기에서는 팔꿈치를 썼다는 의혹을 받았고[30], 2011년 9월 WBC 챔피언 빅터 오티스와의 대결에서 점핑 버팅을 당했다. 이에 따른 경기중단 후 재개과정에서 오티스가 사과의 의미로 메이웨더를 포옹하고 떨어지는 순간에 기습 펀치KO 시켜버렸다.

이에 아나운서 래리 머천트는 "내가 50살만 젊었어도 패버렸을 거야!"(If I was 50 years younger, I'd kick your ass!)"라고 말하기도.[31]

거기다 2009년 후안 마누엘 마르케즈와의 대전때는 계약조건에 2파운드 이상 계체량 오버시 1파운드당 30만 달러 벌금이 걸렸는데 경기 당일 정확히 2파운드 오버해 60만 달러의 벌금을 내고 경기했다. 상대인 마르케즈가 4kg이나 불리며 올라온 상대라 처음부터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교묘하게 계약 규정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고의라는 의혹도 일었다.

5.3. 복싱계 역대 최고를 다투는 불량 어그로꾼

또한 이런저런 싸가지 없는 언행으로 유명한데 한번은 UFC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뭉개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가[32] 공개 사과하기도 했고 위의 오티스전을 마치고 기자회견에서도 "나는 정정당당하게 이겼다."고 시종일관하여 많은 복싱팬들의 빈축을 샀다. 그밖에도 돈 밝히는 언행과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33][34], 아버지와도 돈 문제로 분쟁을 일으켜 의절하는 등 여러 구설을 사고 있다.

여자친구를 패서 경찰서 신세를 지거나, 지속적인 폭행사건을 일으키는 건 미투 운동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슈 몰이를 하여 PPV 판매량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트위터로 상대 복서들에 대한 견제구를 꽤 많이 던지는 편이며 상대를 조롱하는 유치한 합성사진도 자주 업로드 한다. 엄청난 돈자랑과 차고 넘치는 자신감은 논란이야 어찌됐든 비지니스적인 측면에선 확실히 흥행력있는 캐릭터긴 하다. 이런 언행을 두고 흥행을 위한 캐릭터 만들기라는 끊임없는 옹호가 나오고, 메이웨더의 흥행력은 업계의 거물인 밥 애럼 밑에 있을때가 아니라 독립하여 혼자 힘으로 일궈낸 것이다. 참고할 만한 다큐멘터리

5.4. 무패 커리어에 흠집내지 않으려는 상대 선정

메이웨더의 흥행력은 거의 전적으로 무승부 하나 없이 클린한 전승 전적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누가 될 지 주목받기 마련이고, 조금이라도 격에 맞지 않거나 타이밍상 적절하지 않은 선수가 상대로 꼽힌다면 "적합한 상대를 놔두고 전승 기록 유지를 위해 떡밥성 상대를 골랐다."는 비판을 받기가 쉽다.

마르코스 마이다나전 이전에는 팬투표를 통해 상대를 정하겠다고 공표하고 나서 압도적인 차이로 팬들이 원했던 상대인 아미르 칸을 버리고 마르코스 마이다나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마이다나가 기대 이상으로 메이웨더를 궁지로 몰기는 했지만 자기가 좀 더 요리하기 쉬운 타입의 선수를 골랐다는 의심을 받기 충분했다. 아미르 칸은 유리턱이라는 단점 말고는 마이다나보다 경기력이나 흥행성 모두 뛰어난 복서이기 때문이다.

메이웨더를 저평가하는 이들은 호야를 잡고 나서 웰터급-슈퍼웰터급 리니얼 챔피언 자리에 오른 뒤, 그가 격에 맞는 상대를 상대한 것은 45전째인 사울 알바레즈전밖에 없다고 혹평하기도 한다. 파퀴아오의 프라임 타임이었던 08~11년에는 메이웨더 시니어와 메이웨더 주니어는 그와의 경기를 대놓고 회피했고, 마르케즈와의 경기엔 아래 체급에서 올라온 그를 상대하면서 체중을 2파운드 오버해서 출전했으며, 셰인 모슬리는 전성기가 지난 상대였다. 빅터 오르티즈나 로버트 게레로, 마르코스 마이다나는 냉정히 말해 메이웨더와 어울리는 상대는 아니다. 리키 해튼이 상당한 강자였지만 직전 경기까지 슈퍼라이트급에서 뛰다가 처음으로 웰터급으로 월장한 상대였으며, 메이웨더와의 경기 후 매니 파퀴아오는 원래 해튼의 체급인 슈퍼라이트급에서 그를 2라운드만에 정리해버리는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또한 카스티요와의 1차전을 포함해, 2006년 4월 잡 주다와의 경기부터 2015년 9월 은퇴전까지 모든 경기를 자신의 홈링인 네바다에서 치렀다. 홈 어드밴티지의 영향이 큰 스포츠인 복싱에서 항상 어드밴티지를 먹고 들어간 셈이다.

간단히 말해 언제나 자신의 홈에서, 자신이 유리한 체급과 시점을 택해, 최대한 룰을 유리하게 활용하면서 경기를 치른 것. 전쟁에서야 이겨 놓고 싸우는 게 미덕이라지만, 메이웨더는 장수가 아니라 스포츠 선수다.

무패라는 훈장이 흥행성을 담보할 수는 있어도 복서 평가에서 그리 중요한 요인은 아니기 때문에, 은퇴 후에 과연 메이웨더가 그의 공언대로 알리나 레너드를 뛰어넘는 평가를 받을 지는 지켜볼 일이다. 알리는 소니 리스튼,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당대 최고를 넘어 역대 최고라 꼽히는 복서들을 상대로 패하기도 하고 승리하기도 하면서 복서로서의 평가를 높여왔고, 메이웨더와 직접 비교되는 80년대의 F4들은 상호 대결을 피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우열을 가렸으며, 그 대결에서 패했다고 그들의 평가가 추락하지도 않았다.

타이밍이야 어찌 됐건 파퀴아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논란이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파퀴아오, 메이웨더 같은 PPV스타와 붙을 수 있다면 슈퍼웰터급으로 내려올 수도 있다고 공언한 게나디 골로프킨이나 이미 한 번 물을 먹였던 아미르 칸, 혹은 키스 서먼 등 아직 상대할 만한 강자를 놔두고 퇴물급 복서인 앤드리 버토를 은퇴전 상대로 고르면서 다시 복싱팬들에게 비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버토와의 경기는 물론 미스매치가 분명하나, 보통 프로 복서가 커리어를 마감할 때 언더독을 선택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베르토전을 제외하더라도 어쨌든 메이웨더는 5체급을 넘나들며 매니 파퀴아오를 포함한 당대 최강자 및 당시 세계 챔피언들과 전부 싸워 이겼고, 이렇게나 화려한 숙적들로 커리어를 장식한 복서는 역사상 거의 없다. 상기에서 비판한 오스카 델라 호야 이후 제대로 싸운 숙적이 카넬로밖에 없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호야전 이후 카넬로 이전까지 싸웠던 상대인 리키 해튼[35], 마르케즈[36], 모즐리[37], 잽 주다, 오르티즈, 코토, 게레로는 전부 엄연히 당대 최고로 인정받은 강자들이다. 오르티즈와 게레로는 유명하지 않아서 저평가 될 순 있지만 당시 오르티즈도 분명 강자축에 드는 복서였고, 게레로는 당시 세계 챔피언이었다. 메이웨더는 앤드리 버토와 147파운드(66kg)에서 싸웠고, 2013년 카넬로 알바레즈전 이후 마이다나 1, 2 차전과 파퀴아오전을 웰터급에서 치렀다.[38] 그러나 골로프킨은 보통 160파운드에서 싸우며, 메이웨더와 싸우기 위해선 서로 체급을 맞춰야 한다. 다시말해, 내츄럴 슈퍼웰터도 아니고[39] 나이도 40살이 다 된 메이웨더에게 당장 증량해서 골로프킨과 붙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최고로 인정못한다는 건 몇 년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시의적절하지 않은 요구다.

그러나 게나디 골로프킨 논란의 주된 원인은 메이웨더가 은퇴 순간에도 캐치 웨이트로 붙으면 느려터진 골로프킨을 가지고 놀 수 있다며 먼저 도발을 한 것이며, 메이웨더 본인이 직접 말한 것을, 일방적으로 팬들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탓하는 것도 무리다. 결국 메이웨더는 체급을 하향할 수도 있다는 골로프킨의 제안을 애써 무시하고 퇴물인 베르토를 골랐다. 그리고 단순히 당대 최고의 복서가 아닌 역대 최고가 되기 위해선 골로프킨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에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골로프킨이 왕년 F4의 정신적 후계,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 받을 가능성도 있을 정도로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성기가 지난 골로프킨이 드디어 잡은 빅매치에서 전성기 카넬로 알바레스를 상대로 매우 좋은 시합을 한 것만 봐도 더욱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골로프킨이 카넬로를 상대로 1무 1패를 하기는 했으나, 1차전과 2차전 모두 판정 논란이 거셌고, 심지어 카넬로는 1차전 이후 약물 의심 이슈까지 발생했다. '골로프킨 vs 카넬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게나디 골로프킨 문서와 카넬로 알바레스 문서 참조 바람.

6. 매니 파퀴아오와의 악연

웰터급의 세기의 대결로서 예전부터 파퀴아오와의 대전이 추진되었으나 메이웨더는 "파퀴아오가 약물을 하는 것 같다"는 언플질로 파퀴아오 측에 도발을 하다가 경기 이틀 전까지 피를 뽑는 무작위 혈액검사를 하자는 조건을 내걸어서[40] 파퀴아오와의 협상을 파토냈다. 그 이후에도 파퀴아오와의 대진은 계속 추진되고는 있으나 메이웨더가 파퀴아오를 피하려고 이런저런 조건과 언플질을 한다는 소문이 있다. 다만 파퀴아오가 혈액검사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다고는 해도, 공정한 시합을 위해 도핑검사를 하자는 것은 틀린 주장은 아니다.

다만 무패의 챔피언이라는 점 그리고 매니 파퀴아오와 함께 웰터급 ~ 슈퍼웰터급의 초강자라는 점에 천문학적인 대전료를 기본적으로 받아낼 수 있는 흥행보증수표라는 것은 확실하다. 파퀴아오를 상대로 한 언플질 역시 대전료 상승을 위한 기싸움이라는 해석도 있다. 확실한 건 매니 파퀴아오 vs 플로이드 메이웨더전이 성사된다면 역대 대전료 신기록 경신은 기정사실이라는 예상이 팽배하다. 심지어 파퀴아오의 프로모터인 밥 애럼에게 1억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메이웨더의 언플 때문에 예상 대전료가 엄청나게 치솟긴 했다.

하지만 2015년 1월 7일 메이웨더-파퀴아오의 슈퍼매치를 추진하던 프로모터 악바르 무하마드는 "메이웨더에게 했던 1억 2,000만 달러의 대전료 제안을 했으나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메이웨더는 2014년 11월 복싱 프로그램인 "쇼타임"에 나와서 파퀴아오에게 "한번 맞붙자"고 제안했고, 이에 따라 UAE 투자처를 끼고 있는 악바르 무하마드는 이 둘의 매치를 추진했으나 메이웨더의 소극적인 태도로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무하마드는 "하지만 메이웨더는 겉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사실상 이번 경기는 무산됐다."면서 "나와 투자그룹은 진지한 협상을 통한 결론을 원했으나 실망스럽게도 그와는 그렇지 못 했다. 메이웨더측과 협상이 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안은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메이웨더가 이런 슈퍼매치를 원하는 것처럼 언플했지만 실제로는 여러 조건을 달아서 파퀴아오와의 대결을 피한다는 것이다. 프로모터 무하마드가 메이웨더가 소극적이라는 것을 폭로하자 대부분 메이웨더의 우세를 점치던 복싱팬들은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복싱팬들은 파퀴아오는 몇번의 패배는 있었지만 8체급 석권이라는 만화[41]같은 위업을 달성했기 때문에 만일 메이웨더에게 진다고 해도 별 타격이 없는 반면, 메이웨더는 한번이라도 패하면 무패복서의 위명에 금이 가기때문에 소극적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메이웨더도 이미 전성기가 지나서 반사신경이 둔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메이웨더의 아웃복싱이 특히 인파이터인 파퀴아오의 저돌적 스타일과는 상성이 안맞아서 메이웨더가 소극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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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마이애미 히트밀워키 벅스의 NBA를 관람 중 우연히 만난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등 역사적인 세기의 대결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결국 정식으로 성사되었다.# 그 결과는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참조.

7. 어록

"힘든 훈련, 헌신"
"모든 좋은것 중에 가장 유용한 것은 지혜이다."
"명예를 위해서냐고? 물론. 돈을 위해서냐고?물론. 모든것은 하나로 통한다.누구도 나를 위해 그들의 글러브를 내러놓지 않는다.누구도 나를 위해 거리에 자신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수 마일을 뛰고 또 뛰어주지 않는다. 누구도 출혈을, 부숴진 갈비뼈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내가 그 모든것을 해왔다.아버지의 말씀을 경청하고, 숙부의 말씀을 경청하며.내가 사는동안 나는 TBE로 기억될 것이다."
"사람들은 알리를 욕을 하다가 그가 은퇴하고 진가를 알아봤죠. 나도 떠나가면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아끼고 사랑해줘요."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그리고 역사에 남기 위해 싸웁니다."
"복서의 아들로 태어나 복서로 자라났고 선택의 여지도, 행복한 일상도 없었다. 나에게는 단 한 순간도 어린시절이라는 게 없었다. 친구와 늦게까지 놀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투정도 어리광도 부리는 그런 어린시절...나는 다른 평범한 아이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의 부와 유산은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나의 화려한 지금의 모습만을 보고, 지난시간 나의 눈물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지옥길을 거슬러 올라온 것을 알지 못한다. 나는 사실 지금보다도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
"시합을 마치고 이틀째부터 훈련으로 돌아간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그 시절의 지옥같은 훈련으로.하루 2세트 6~8시간의 훈련, 500번의 싯업, 8km의 로드웍,그리고 1만번의 샌드백을 친다. 그렇게 소년시절 부터 지금까지 매일 매일을 해왔다."
"나의 아이들, 나의 아이들의 아이들은 나와 같은 고생의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매일같이 지옥같은 훈련을 견딘다."
"복싱은 매우 쉽지만, 인생은 매우 어렵다."
"링 위에 오르는 순간, 나는 무적이다. 그 어느곳보다 내가 빛나는 곳이다."
"맥그리거를 TKO로 이기고 사람들의 환대가 달라졌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다 KO시켜버리는 건데"[42]
"(맥그리거전 이후) 뒷뜰에서 동전을 주웠는데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요즘은 쇼핑보다도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정원을 가꾸는 게 더 즐거운 나다."
"심리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도록 하는 겁니다. 저와같이 대중의 시선을 많이받는 자리에 있으면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죠.저에게 있어 가벼운 훈련은 명상과 같습니다."
"나는 무하마드 알리슈거 레이 로빈슨보다 위대한 최고의 복서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만한 게 없다."
"나를 건방지고 재미없는 복서라고 욕해도 좋아. 언제나 앞에선 까불거리고 천진난만 하지만 난 내일이 오기가 두려울 정도로 하루하루 끔찍한 훈련을 하고있어. 난 천재가 아니야 진짜로... 내 노력만큼은 인정해줘. 한 대라도 좀 맞혀봐."
"격투의 목적은 자신은 때리면서 상대한텐 안 맞는 것이지, 상대방을 다치게 하는것이 아니다."
"내 장점은 대단한 상황도 평범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로 최대한 적게 다치면서 최대한 큰 상금을 벌어라. 현명하게 투자하면서."
"나를 좋아하는 팬들은 내가 시합에서 이기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나를 싫어하는 팬들도 내가 시합에서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돈을 낸다. 그들은 내게 돈을, 나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지불한다. 나는 단순한 운동선수가 아닌 엔터테이너니까."
"마이크 타이슨은 전설 입니다. 그런 사람에겐 모자를 벗어서 존경을 표하고 싶군요. 오늘의 제가 있게 해 준 롤모델 중 한 명입니다." [43]
"28초부터"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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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와이트와 함께. 순식간에 흑린이가 되어 버린 메이웨더의 모습이다.[46]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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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링 매거진 선정 올해의 선수
에반더 홀리필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파울리 아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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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링 매거진 선정 올해의 선수
매니 파퀴아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매니 파퀴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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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매거진 선정 역대 P4P 랭킹 1위
버나드 홉킨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2005. 7.18 ~ 2008. 6.9 )
매니 파퀴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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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매거진 선정 역대 P4P 랭킹 1위
매니 파퀴아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
(2012. 12.11 ~ 2015. 9.15 )
매니 파퀴아오


[1] 은퇴 이후 치른 나스카와 텐신, 로건 폴, 아사쿠라 미쿠루와의 경기는 공식 경기가 아닌 시범 경기이므로 공식 전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포함시키면 53전 52승 1무가 된다. 그러나 이 1무는 체급의 차이 때문에 공식 경기로 인정받지 않아 생긴 무승부로 본래 정식 경기였다면 메이웨더의 승이였다.[2] 왼손이 앞을 향하고있는 오른손잡이 스타일[3] HBO에서 한쪽 팔길이만 측정하는 arm length 에서 26인치가 나왔다. 이는 웬만한 미들급~라이트 헤비급 선수들 수준의 팔길이이다.[4] 1952년생. 복싱선수였으며 통산전적은 33전 28승 6패 1무 은퇴 후 아들의 트레이닝을 담당했다. 60대의 나이로 인터넷 찌질이인 찰리 젤레노프를 스파링에서 일방적으로 참교육시키기도 했다.[5] 1961~2020. 통산전적 72전 59승(35KO) 13패.https://boxrec.com/en/box-pro/485 현역시절에는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 코스챠 추와 맞붙었던 적이 있으며 은퇴 후 메이웨더의 경기때 트레이너와 세컨으로 나섰다.[6] 집안의 장남으로, 위로는 누나 한 명이 있고 밑으로는 두 명의 여동생과 한 명의 이복동생이 있다.[7] 이 별명은 '머니'라는 별명이 붙기 전부터 쓰이던 별명인데, 경기가 끝나고 난 후 상대방 선수들은 얼굴이 대부분 상처투성이인데 반해 메이웨더는 상대적으로 말끔해서 붙은 것이다.[8] 자신은 밥 애럼이 붙여준 이 닉네임을 굉장히 싫어했는지 밥 애럼을 떠난 뒤에 바로 "머니"로 변경한다.[9] '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건 단순하게 돈이 좋아서라고 캐쥬얼한 팬들은 생각 하지만, 메이웨더는 비즈니스적인 부분에서 이 캐릭터를 매우 잘 활용하여 미국 운동 선수로서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를 이어 $1Billion Club을 달성했다.[10] 통상적으로 메이웨더하면 이 링네임을 떠올리며 미국에선 Money May라고들 많이 부른다.[11] The Best Ever[12] 무패 5체급 챔피언으로 최초이지, 5체급 챔피언 자체가 최초는 아니다. 역사상 최초의 5체급 챔피언은 1988년에 5체급 달성에 성공한 슈거 레이 레너드.[13] 아버지로서 메이웨더 시니어는 0점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나, 복싱에 대한 그의 열정만큼은 대단했다.[14] 거기에다가 무게가 좀 나가는 복싱 글러브와 그 안에 있는 수중량의 무게 그리고 몸에서 나가는 펀치의 무게감으로 인하여 어깨의 근육이 매우 빠르게 피로해지면서 근육 파열이 쉬워질 수 있는 것도 메이웨더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복서들이 안 쓰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15] 심지어 경기 자체는 아미르 칸보다 덜 힘들었다고 했다.[16] 격투기에선 가드당하지 않고 클린하게 타격한 것을 유효타라고 보는데, 그 위력과는 상관없기 때문이다. 메이웨더는 상대방을 때려눕힐만큼 강한 펀치를 많이 날리진 않지만, 이런 식으로 점수를 따내는 펀치는 정말 많이 먹이고(따라서 점수가 많아 항상 이기고), 그런 펀치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제대로 때렸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주먹도 안 날리고 깔짝대면서 도망만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17] 은퇴전 상대인 안드레 버토는 메이웨더의 주먹을 '날카롭다'고 묘사했는데, 돌주먹보다는 약하지만 계속 맞아주다보면 쓰러질 수 있다고 인지할 정도의 펀치력이라고 설명했다.[18] 웰터급 뿐만 아니라 모든 체급에 걸쳐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났다.[19] 본인은 때리고 상대에게 맞지 않는, 테크니컬한 아웃 복싱을 이르는 말.[20] 전 라이트급 언디스퓨티드 챔피언[21] 위에서 언급한 대놓고 메이웨더식 복싱을 구사하는 선수들 외에도 현대의 거의 모든 선수들이 메이웨더의 기술과 전략을 일부 카피해서 경기 중에 사용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22] 체급 대비 긴 린치, 타고난 동체시력, 전광석화 같은 잽, 상황파악 능력, 체급을 올려 파워는 떨어져도 이를 이길 수 있는 기술 등 파퀴아오의 원초적인 천재성과 다른 체계적인 천재성을 가졌다.[23] 메이웨더의 뒤를 잇는 인기 스타인 카넬로가 인파이터에서 카운터 펀처로 전향한 이후에도 메이웨더와는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아웃복싱도 개인차에 따라 스타일이 세분화되는 것이다.[24] 이전까지 그의 PPV(Pay-Per-View: 팔린 방송 수)는 평균 35만 정도였으나 오스카 델라 호야전은 무려 240만으로 치솟았다. 그 후로 100만에서 150만 사이로 꾸준히 기록하다가 최근 경기인 카넬로 알바레스와의 경기에선 220만이 팔렸다.[25] 여기에 대해 그는 "내가 이기는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돈을 내고, 내가 지는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돈을 낸다(즉, 니들이 날 좋아하던 말던 난 계속 돈번다)"라는 어록을 남긴다.[26]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UFC 라이트헤비급에서 10여년간 무적에 가깝게 군림한 존 존스가 있다. 악당스러운 그의 폭군 이미지와 달리 존스도 매일같이 잠을 설쳐가며 상대방의 경기를 보고 또 보며, 자신이 누구에게도 패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누구보다 많은 걱정을 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27] 사실 펀치력이 체급에 비례하는 복싱의 특성상 월장하면서 변화된 스타일이긴 하다.[28] 다만 KO승은 대부분 아래 체급에서 이룬 것이고 웰터 라인으로 올라온 현재는 스타일의 변화 때문도 있지만 KO율은 낮은 편이다. 지난 10년동안 KO승이 단 4차례에 아래 언급된 해튼전, 오티즈전의 두 KO승은 반칙과 더티플레이 논란까지 있다.[29] 근데 메이웨더는 이걸 이용한것이 자신의 철칙적인 경기운영 중 중요한 일부분이자 자신의 중요한 흥행보증수표라고 했다.[30] 카스티요와의 1차전에서도 팔꿈치 사용으로 감점 받은 바 있다.[31] 그냥 나온 말은 아니고 래리 머천트와 인터뷰 도중 메이웨더가 당신은 항상 나에게 불공정한 인터뷰만 한다며 당신은 복싱에 대해서 쥐뿔도 모른다는 대화가 오간 후다.[32] UFC 선수들이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데이나 화이트가 션 셔크와의 경기를 주선하겠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지기는 힘들었고, 실제로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후에 코너 맥그리거와의 복싱 경기가 성사됐다.[33] "난 내가 (무하마드 알리슈거 레이 레너드를 능가하는) 최고의 복서라고 생각한다"라고 발언을 했다.[34] 그러나 메이웨더는 5체급에서 챔피언을 지냈으므로 전혀 근거없는 자신감은 아니다.[35] 당시 리키 해튼 역시 무패였고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절정의 기량을 보이고 있었다.[36] 파퀴아오와 4차전까지 간 그 선수를 일방적으로 이겨버렸다.[37] 전성기는 지난 상태였지만 스피드스타 중 한 명이다[38] 심지어 카넬로전 조차도 슈퍼 웰터급 한계 체중(69.9kg)에서 한참 못미치는 150.5파운드(68.3kg)에서 경기를 치렀다.[39] 메이웨더의 트레이너인 메이웨더 시니어는 슈퍼웰터가 메이웨더에게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체급이라고 했다.[40] 파퀴아오는 에릭 모랄레스와의 1차전 직전 체육위원회에서 파퀴아오의 혈액샘플을 분실하는 바람에 경기 직전에 추가로 혈액을 채취했던 적이 있고 혈액채취 직후에 구토, 빈혈등 극심한 컨디션 저하를 보이다가 경기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다.[41] 더 화이팅타카무라 마모루의 목표가 6체급석권인데 파퀴아오는 이를 능가했다. 물론 타카무라 마모루는 미들급에서 올라가는 것이므로 파퀴아오의 위업을 능가하는 건 불가능하긴 하다. 미들급 위의 체급이 8개를 넘지 못한다.[42] 그의 기량과 별개로 당연히 이건 허세다. 메이웨더가 상위 체급으로 올라오고부터 KO가 거의 없었던 건 그가 상위체급 복서들을 줄줄이 KO시킬 수 있는 파워까진 없었던 탓이며, 이 때문에 특유의 점수를 따내서 이기는 스타일을 장착한 것이다. 맥그리거야 당연히 복서가 아니니 TKO가 쉽게 가능했던 것이고. 물론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KO를 상위 체급에서 거의 못 땄다고 해도 메이웨더는 역대급 복서가 맞다.[43] 메이웨더는 타이슨과 여러 차례 영상을 함께 촬영하기도 했다. 둘은 현역 시절 많은 인기와 안티를 가진 복싱계의 아이콘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화끈한 경기로 유명한 타이슨과 아웃복서 타입의 메이웨더는 정 반대의 경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타이슨이 여러 차례 메이웨어의 경기 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했다.[44] 다만 일반인을 재미 삼아 패기 위해 권투를 대충 배운 유튜버 찰리가 나대서, 어쩔 수 없이 상대해준 경기에서 시니어가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을 보면 어지간한 아마추어 복서들이 이길 수 있는 실력은 결코 아니다. #[45] 총 전적은 72전 59승 13패로 WEC 라이트급 챔피언 4차 방어까지 한 복서이다. 은퇴 후 뇌 충격으로 고생하다 2020년 3월 17일에 별세했다.[46] 프로필 기준으로 폴 와이트는 7피트(213cm)에 441lbs(200kg)로 메이워더와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압도적인 체격을 지녔다. 그나마 이 체중도 2006년 12월 복서 데뷔를 준비하며 감량한 것이다. 원래 그의 체중은 500lbs(227kg)에 달했다.[47] 이 때가 1차 은퇴 후 정식 복귀한 날이었다. 때문에 많은 환호를 받았고 폴 와이트도 처음에는 선역스러운 마이크웍을 하며 선역으로 활동하는 듯 했다.[48] 실제로 메이웨더와 친분이 있다.[49] 메이웨더는 간단한 펀치를 날리려고 했으나, 폴 와이트가 흥행을 위해 코 쯤은 부러질수 있다며 진짜로 치라고 했다. 하지만 체격차가 크기 때문에 폴 와이트가 연기를 가미해서 일부러 과장된 행동들로 메이웨더를 도발했고 때리기 좋은 각이 나오게 무릎을 꿇는데, 이에 보답하듯이 메이웨더는 제대로 된 연타 펀치로 폴 와이트의 코를 부러트렸다. 후에 폴 와이트가 말하길 자신은 실제로 네 대를 맞았지만 세 대를 맞았다고 기억할만큼 펀치가 빨랐다고 한다.[50] 사실 대립 명분도 별건 없었다. 펀치를 맞은 것 말고도 폴 와이트가 "네가 최고의 파이터라고? 나, 폴 와이트도 이겨야 그 소릴 듣지 않겠어?"라며 도발한 게 전부. 여담으로 메이웨더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폴 와이트도 2006년에 1차 은퇴를 한 뒤에 복싱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51] 참고로 빅 쇼는 메이웨더와 이벤트성 대립을 시작한 때부터 자신의 주력 피니쉬 무브초크슬램에서 WMD로 바꾸었다. 원래 빅 쇼는 프로레슬링을 접고 복싱 쪽으로 새롭게 진출하려 했으나, 지나치게 비대한 체급과 고령의 나이 문제 때문에 진출이 좌절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꽤 한이 맺혔다.[52] 당시 WWE빅 쇼의 빈 자리를 그레이트 칼리에게 맡겨 보려 했으나, 알다시피 칼리는 빅 쇼에 비하면 덩치만 산 만했지, 절망적일 정도로 프로레슬링 실력이 형편 없었다.[53] 복싱 선수이지만 프로레슬링팬이기도 하다.[54] 여담으로 해당 레슬매니아는 '태양 아래 가장 거대한 레슬매니아'란 부제도 있었다.[55] 동시에 소년시절 다니던 교회의 자선단체나 빈민수용시설은 물론, 소아암 환자를 위해 꾸준히 거금을 쾌척하거나 상대 선수였던 게나로 헤르 난데스와의 1번의 인연으로 그의 아버지 장례식 비용 전액을 대신 내주는 대인배다.[56] 그것도 그냥 CCXR이 아니라 전세계 3대 한정판인 Trevita다.[57] 몇년전에는 7,000~8,000억원 수준이다. 쇼핑하는걸 워낙 좋아하는데다 그 한번의 쇼핑에서 한화로 몇천만원 지출은 기본에 한번 구입한 제품도 초고가가 아닌이상 적당히쓰다 남한테 주거나 버렸다. 친한 지인한테도 선심쓰듯 보석이나 옷, 시계 등을 선물하며 흥청망청 쓰는 편이다. 신용카드를 싫어해서 현금뭉치로 쓰는걸 좋아한다고 하는데도 지출통제가 안되는듯 하다.[58] 조던은 2021년 기준 16억 달러로, 한때 21억 달러까지 찍었으며 스포츠 스타 출신 중 유일한 억만장자며 타이거 우즈는 8억 달러가 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