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챠 추 Kostya Tszyu | |
<colbgcolor=#000000><colcolor=#aa9872,#8c7a55> 본명 | 콘스탄틴 보리소비츠 추 Konstantin Borisovich Tszyu |
출생 | 1969년 9월 19일 ([age(1969-09-19)]세) |
소련 러시아 SFSR 세로프 | |
국적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호주| ]][[틀:국기| ]][[틀:국기| ]] |
권투 전적 | 34전 31승(25KO) 2패 1노콘테스트 |
체급 | 라이트웰터급 |
신장/리치 | 170cm / 170cm |
스탠스 | 오소독스 |
링네임 | Thunder from Down Under |
1. 개요
러시아 출신 호주 복싱선수.2. 커리어
2.1. 어릴적
추는 1969년 러시아의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세롭에서 한국-몽골계 아버지[1]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공소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어린 시절 워낙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것을 보다 못한 아버지가 동네 복싱체육관에 내보낸 것을 계기로 복싱을 시작하였다.2.2. 아마추어
동네 체육관에 워낙 어린나이에 들어간 탓에 체육관에서는 주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과 어울려 운동을 했는데, 그모습을 본 아마추어 팀 감독에 눈에 띄어 소비에트 연방 아마추어 복싱 세계순회 캠프(Soviet Union's amateur boxing travelling training camp)에 들어가게 되었다. 각국을 순회하며 대진을 잡는 곳이었기 때문에 들어간 후 30개국을 방문하였고, 1년 중 250일을 수련에 매진하여 각종 세계대회에서 참가하여 여러차례 우승하였다. 1987년 쿠바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준우승 하였으나,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3라운드에 아깝게 져서 메달은 따지못하였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한국계 콘스탄틴 추라고 보도했었다.1989년에는 20세가 되어 병역이 부과되었지만, 추는 성적이 우수한 엘리트 체육인이었으므로 병역에서 면제되었고, 1989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여하여 3위에 입상하였다.
1991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세계 선수권 대회에 다시 참여한다. 여기서 금메달을 따며 우승을 거두는데, 처음 가본 호주에 깊은 인상을 받아,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자 여자친구와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2]
2.3. 프로
2.3.1. 초기(1992 ~ 1997)
호주로 이민을 오고난 다음해인 1992년 맬버른에서 경기를 치르며 프로로 데뷔하였다. 상대는 88서울올림픽에 참전한 바 있는 대럴 하일즈(Darrell Hiles)였다. 초장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더니 1라운드만에 TKO로 승리를 거둔다. 경기영상4번째 경기에서는 전 페더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후언 라포르테(Juan Laporte). 라포르테는 전설적인 멕시코 인파이터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가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을때 똑같은 인파이팅으로 맞붙어 판정까지간 몇 안되는 복서였다. 코스챠가 라운드 중앙을 잡고 공세를 펼친 탓에 10라운드 판정승을 거뒀다.
6번째 경기에서는 역시 차베스와 10라운드 판정까지 가며 치고받으며 맞붙었던 세미 푸엔테스(Sammy Fuentes)를 상대하였는데, 프로경기를 35번이나 뛰었던 세미와 달리 추는 고작 이경기가 6번째였을 뿐인데, 1라운드만에 넉아웃시키며 허무하게 이겨버렸다. 원투 콤비네이션을 두번정도 내질렀는데 바로 다운을 뺏었고, 기세를 타 몰아붙이자 TKO가 선언되었다. 이경기 이후 맞이하는 3명의 복서를 죄다 1~2라운드에 초반라운드에 넉아웃시켜버렸다. #
1994년 1월 헥터로페즈#와, 바로 다음달에는 차베스에게 도전했던 앙헬 헤르난데즈#, 도미니카 공화국의 페드로 산체스#와 붙어 모두 이기고, IBF 라이트 웰터급 타이틀 도전권을 얻게된다.
1995년 1월 챔피언인 제이크 로드리게즈를 상대로 타이틀전을 가졌다. 경기는 초장부터 링 중앙을 차지하며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며 챔프를 압박한 가운데 6라운드 내리 추가 중앙을 먹고 로드리게즈를 몰아넣는 형세로 전개되더니 6라운드 TKO로 추의 승리로 끝이 났다. 추는 IBF 라이트 웰터급 챔프가 되고 나서 로저 메이웨더를 포함한 타이틀 방어전을 5차례 치르면서 무효인 한경기를 제외하고 전부 승리하며 타이틀을 지켜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2.3.2. 중기(1997 ~
잽과 원투 등 짦은 리치에도 탁원한 거리감과 타격센스로 높은 KO율과 화끈한 경기로 전성기를 구사하였지만, IBF타이틀을 두고 빈스 필립스[3]를 맞은 경기에서 추는 극심하게 고전하게된다. 평소와 같이 라운드 중앙을 차지하고 빈스 필립스를 몰아붙였어나 그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고, 초반라운드에서 부터 강타를 주고받는 난타전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경기양상 자체는 비슷하게 치고박는 모양새였고, 실제로 TKO선언이 되기 전까지 실제 점수는 87-85, 85-86, 85-85 정도로 빈스 필립스가 1점 정도 앞서는 상황이었다. 결국 10라운드 1분 30초, 지친 추에게 빈스 필립스가 연속으로 라이트 콤비네이션을 성공시키고 심판에 의해 TKO선언이 되며 패배하였고, 이 경기로 추는 라이트 웰터 타이틀을 잃게 되었다.
전설인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와 2000년 7월 29일에 맞붙었다. 그러나 노화의 탓인지 전반적으로 기량이 떨어진 차베스와 대조적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내보인 끝에 TKO로 승리했다. 차베스는 이날 커리어 최초로 2번째 다운을 맞고, 이후 TKO로 졌는데 전반적으로 컨디션, 기량, 스피드 어느것 하나에서도 두드러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실망스러운 경기였다. 이름값 높은 둘의 대진이었지만, 이름값에 비해 경기내용은 조금 뒤떨어지는 편이다.
2.3.3. 후기
2001년 당시 27승(22KO) 무패 가도를 달리고 있던[4] 잽 주다와의 경기. 이 경기에서 24세의 떠오르는 별 잽 주다를 2회 KO로 물리치고 기존 WBC, WBA 외에 IBF 타이틀까지 획득하였다. 1라운드는 잽 주다가 적극적인 선제공격으로 점수를 많이 벌었으나 세컨의 주문 때문인지 2라운드부터는 아웃복싱으로 스타일을 바꿨는데 결국 이것이 패착이 되었다.
2005년 새로운 신예 리키 해튼[5] 과 맞붙어 싸웠으나, 아쉽게 11라운드 종료 TKO로 패배하였고 IBF 타이틀을 잃었다. 36살이 나이 때문인지 체력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결국 코스챠 추는 이 경기를 끝으로 은퇴하였다.
3. 파이팅 스타일
인파이터의 교과서로 차베스가 있다면, 짧은 리치에도 원투를 중심으로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갈 때 나가는 정석적인 경기를 펼치는 교과서적인 복서로는 코스챠 추가 있다. 리치가 짧고 흔하디 흔한 오소독스임에도 잽과 원투의 활용이 매우 좋아 복싱의 기본기술인 원투 스트레이트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모범적인 복서로 꼽힌다.이는 거리감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인데, 특히 프로무대에 데뷔하기 전 버논 포레스트와 가진 아마추어 복싱경기에서 두드러진다. 버논 포레스트는 키 183cm에 리치 185로 신장이나 리치 모든 면에서 추보다 10~15cm이상이 더 컸고 나중에 프로무대 데뷔후에는 WBC, IBF, WBA등의 세계복싱 기구에서 3체급이나 제패했던 강자였다. 그런데 더 작은 키의 추는 그런 버논을 상대로 초반부터 긴 탐색전 없이 바로 공격거리를 파악, 패링과 스웨이, 가벼운 위빙이 가능한 거리에서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여 흘려보내거나 빗겨낸 뒤 카운터 연타를 여러차례 맞추었다. 오히려 긴 리치의 버논이 추에게 거리감에서 밀려, 펀치가 닿지 않는 거리에서 헛손질을 하는 등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였다. 이게 무서운 점은 아마추어 복싱 특성상 그날 하루에 결승전과 준결승전을 치르고 한달에 여러차례의 경기를 치르느라 상대방을 일일이 분석할 시간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첫눈에 생판 많이 접해본 적도 없는 큰 상대방을 살펴본 뒤 펀치거리를 가늠하여 그에 맞춰 상대했다는 이야기인데, 어지간히 천재적인 감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