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울산성 전투. 조명연합군이 일본군이 농성 중인 울산성을 포위하고 있다.
包圍, siege, envelopment.
사전적 의미는 상대의 주위를 에워싸는 것. 합성어로 포위망, 포위작전, 포위공격 등이 널리 쓰인다. 군사적으로는 포위 자체가 단순히 둘러싸는 행동을 넘어 공격의 개념까지 포함한다.
고대부터 존재한 전술이며 현대에도 전쟁에서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적을 섬멸하고 승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전술 중 하나이다. 포위를 당한 쪽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점점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되고 결국 전멸[1] 또는 항복[2]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된다. 적에게 포위된 경우 아무리 잘 대처해 포위망을 뚫고 퇴각에 성공해도 큰 손실을 면할 수 없다.
2. 이점
포위된 쪽이 불리한 이유는 위의 그림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위 그림에서 포위한 쪽과 포위당한 쪽의 병력(각각 빨간 점과 검은 점점)은 22개로 동일하다. 그러나 양측의 대치 면적의 차이로 인해, 포위 당한 쪽은 내부에서 낭비되는 병력이 있는 반면, 포위한 쪽은 전 병력은 모두 투입하여 실제 대치 병력은 포위한 쪽이 우세를 점하며 2:1의 우세가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세의 상황에 놓인 검은 점 1개은 빠르게 제압될 것이고[3] 검은 점 1개를 제압한 빨간 점 1개[4]~2개[5]는 인근의 또 다른 검은 점과 싸움을 시작한다. 2:1, 3:1, 심지어 4:1의 상황까지 발생한 갈수록 검은 점들이 제압되는 속도에 점점 가속이 붙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포위당한 집단이 붕괴하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른 것은, 포위당했다는 심리적인 요소(불안감, 절망감) 못지 않게 이런 물리적이고 산술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칸나이 전투 등과 같이 포위망이 완성된 후에는 전투라기보다는 거의 학살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 포위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전투를 해서 섬멸하지 않는 선택지도 있다. 포위된 부대는 보급선과의 연결이 끊기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굶어죽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성 또는 도시를 포위할때는 방어의 이점을 가진 상대를 무리하게 공격하여 손실을 입기보다는 상대의 보급을 끊어 말려죽인 후 항복을 받아내는 방법이 자주 쓰인다. 이 경우는 이른바 '봉쇄'에 가깝다. 성이나 도시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거나 물을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쓰면 더욱 효과적이다.
3. 어려움
손자병법에서는 아군과 적군의 병력 규모 차이에 따라 다른 전술을 적용하라고 설명한다.[6] 아군이 적의 10배일 때 적을 포위하라고 하는데, 이는 아군이 충분히 많은 경우 아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술을 행하라는 의미이지만, 동시에 그런 전술을 행하려면 상당한 수적 우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충분한 전투력 없이 포위를 수행하는 것은 적은 한 곳에 뭉쳐있는데 아군은 적을 포위한답시고 분산배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철저하게 계산된 시간 내에 칼같이 배치가 되어야 포위망이 형성 되는 것인데, 그게 불가능하다면 오히려 각개격파만 될 뿐이다. 그렇기에 사기와 숙련도가 높은, 충분한 수의 정예 병력이 뛰어난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 상황에서 기동력까지 갖추고 있어야 제대로 된 포위가 가능한 것이다. 기껏 포위가 성공하나 싶었더니 적 수뇌부가 상황을 금방 깨달으면 혼란에 빠지기전에 충격력을 이용해서 포위망을 돌파하여, 오히려 포위 병력을 양분하고 각개격파하며 참혹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7]예를 들면 체스에서 자기가 폰을 전진시켜 본들 상대방도 폰을 똑같은 움직임으로 대응하면 포위는 커녕 전술적인 이득이 하나도 없다.
이렇듯 포위는 효과가 좋지만 그만큼 실현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누구나 포위의 이점을 알고 있어도 실제 전투에서 포위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순신조차도 조선 수군이 건재했을 시기에나 학익진으로 대표되는 포위 전술을 대성공시키며 왜군을 몰살시키기를 밥먹듯 하였지, 사실상의 패잔병만 거느리고 있던 명량 해전에서는 그냥 정직한 방어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포위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라이트노벨 최하위 직업에서 최강까지 출세하다 ~꾸준한 노력은 치트였습니다~에 등장한 포위섬멸진 문서에서 더욱 자세하게 다룬다. 해당 작품에 등장한 '포위섬멸진'이 엉성하고 비현실적인 점을 비판하기 위해 포위의 여러 요건과 제한사항, 사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포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서술도 섞여 있어 학술적인 이를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서술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포위는 반드시 아군의 병력으로 적의 부대나 방어시설, 도시 따위를 밀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의 기동이 제한되는 자연장애물(산악이나 하천, 바다, 절벽 등)을 이용해 적이 기동할 수 있는 공간에만 병력을 배치해 병력을 절약한다면 비교적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적을 포위할 수 있다. 자연장애물이 없다면 인공장애물을 설치, 구축해도 된다.
4. 현대적 의미
많은 군사용어가 현대 군사학에서는 고전적 의미와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포위도 현대 군사학에서는 단순히 적의 사방을 둘러싸는 전술을 뜻하지 않는다. 미군은 포위(Envelopment)를 "공자가 방자의 적 방어 주력을 회피하기 위해 측후면을 공격하여 방자가 둘 이상의 방향에 싸우도록 강요하는 공격기동형태"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반드시 적의 전방위를 둘러싸지 않아도 포위가 성립할 수 있다. 동일한 정의를 미군의 영향을 받은 여러 국가의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다.이러한 포위의 방법은 일익포위(single envelopment), 양익포위(double envelopment), 수직포위(vertical envelopment)가 있다. 일익포위와 양익포위는 적의 주력을 회피해 기동하는 부대를 각각 적의 한 쪽 측면, 양쪽 측면에 운용하는 방법이고, 수직포위는 공수나 공중강습을 통해 적의 측후방을 공격하는 방법이다.
고전적 의미의 포위는 전술임무과업 고립(Isolate, Isolation)에 가깝다. "적의 부대를 지원부대로부터 분리하여 효율성을 감소시키고 패배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되며 실현하는 방법은 흔히 알려진 포위처럼 사방에 병력을 배치하고 장애물, 화력을 이용해 내부 적의 탈출을 막고 바깥에서 접근하는 적을 저지하는 것이다.
5. 포위전으로 이름난 명장들
- 알렉산드로스 3세
- 한니발 바르카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유명한 포위전술전인 칸나이 전투를 지휘한 장군.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한신
- 이순신
해전에서 포위전을 사용해 대승을 거두었다. - 강감찬
한국사에 몇 안 되는 대규모 회전인 귀주 대첩이 바로 포위섬멸전. - 하인츠 구데리안
폴란드군과 소련군을상대로 포위전을 이용해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폴란드와 반대로 소련은 방어에 성공하며 전세가 역전되었다
6. 사례
6.1. 성공
6.1.1. 야전
- 안읍 전투: 한신은 본대가 적군과 대치하는 사이 별동대를 우회시켜 위표의 본거지를 공격했고, 위표가 당황하여 군을 돌리자 양쪽에서 포위하여 승리했다.
- 정형 전투: 한신은 배수진으로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것으로 조나라의 병력을 유인하고, 마지막 국면에서는 미리 분리해둔 별동대를 활용하여, 열세한 병력으로 포위 작전을 벌이며 조나라 병력을 섬멸했다.
- 해하 전투: 한신은 항우의 맹공에 뒤로 물러났다가 좌익과 우익으로 삼면에서 포위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 귀주대첩
- 워털루 전투
- 장평대전
- 목야대전: 제신과 그의 대군이 있는 영토를 향해서, 주 무왕이 이보다 소수의 병력으로 전방위 포위하고 선동전으로 승리하였다.
- 칸나이 전투 : 포위섬멸전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며 각국의 사관학교 등에서 제일 먼저 가르치는 가장 모범적인 고전(古傳)이다.
- 자마 전투 : 바로 위 칸나이 전투의 승자인 한니발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신도 포위섬멸전으로 완패해서 몰락하게된 전투이다.
- 바르샤바 전투(1920년)
- 비아위스토크-민스크 전투(1941년)
- 키예프 전투(1941년)
- 폴란드 침공
- 브주라 전투
- 프랑스 침공
- 하틴 전투
- 봉오동 전투
- 팔레즈 포위전
6.1.2. 해전
6.1.3. 對 도시
- 평양성 전투(668년)
- 병자호란 때 청군의 남한산성 포위 → 항복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 → 항복
- 제20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 함락
- 세바스토폴 공방전
- 베를린 공방전
- 마리우폴 전투
6.2. 실패
6.2.1. 야전
- 장진호 전투
- 사르후 전투
- 디라키움 공방전
- 미카타가하라 전투
-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 쿠르스크 전투
- 청산리 전투 후반부
- 크웨이러스(Kweires) 공군기지 포위 (시리아 내전)
2013년부터 2015년 11월까지 시리아군 병력 수백여 명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에 포위되었었다.
6.2.2. 對 도시
- 알레시아 전투
- 합비 전투(215년) - 7천 수비군이 10만 공격군을 상대로 버텨내었다. 심지어 장료는 800인 결사대를 이끌고 손권 코앞까지 돌격했는데, 이전의 도움에 힘입어 포위망을 다 뚫고 합비성으로 복귀했다.
- 번성 공방전
- 안시성 전투
- 평양성 전투(661년)
- 흥화진 전투(1010년) - 3천 수비군이 40만 공격군을 상대로 버텨내었다.
- 레닌그라드 공방전
- 보스니아 내전 - 사라예보 포위전 무려 1425일이나 이어진 포위를 버텨 내었다.
- 누블, 알 자흐라 포위 (시리아 내전)
2012년 7월 19일부터 2016년 2월 3일까지 알레포 주 북부의 시아파 거주 2개 읍인 누블, 알 자흐라(합쳐서 인구 3만 5천~6만)가 자유 시리아군, 알누스라 전선, 이슬라믹 프론트에 포위되었었다. 결국 시리아군과 헤즈볼라가 작전을 펼쳐 포위 해제. - 데이르 에조르 포위 (시리아 내전)
2014년 7월 14일부터 2017년 9월 5일까지 3년 1개월간 IS에 포위된 시리아 정부군의 점령 도시였다. 이 포위 기록은 레닌그라드 공방전 때의 레닌그라드보다 아홉 달쯤 더 길게 포위를 견딘 것이다. - 체르니히우 전투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도시 체르니히우 포위.
6.3. 역포위
포위를 했다가 되려 역으로 포위를 당하는 경우.- 알레시아 전투
카이사르는 갈리아 연합군의 결전을 강요하기 위해 베르킨게토릭스가 도망친 알레시아를 포위했고, 알레시아 공격보다는 포위망 방어진 강화에 주력하는 등, 의도적으로 역포위 상황을 유발했다. 그리고 이겼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소련군이 독일군을 1년간 버티다가 소련의 천왕성 작전이 성공하면서 오히려 독일의 제 6군이 포위당했다
- 데이르에조르 포위
데이르에조르를 3년 넘게 포위하던 IS는 2017년 시리아 군에 의해 역포위를 당하고, 얼마 못 가 결국 괴멸되고 만다. - 호스토멜 공항 전투
3월 22일부터 우크라이나의 대대적인 역포위 작전의 성공으로 호스토멜을 포함한 이르핀, 부차의 러시아군이 포위당했다.
6.4. 대중매체
6.4.1. 성공
- 스타워즈
- 얼음과 불의 노래
- 은하영웅전설
- 포위섬멸진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고 완성도도 낮은 최하위 직업에서 최강까지 출세하다 ~꾸준한 노력은 치트였습니다~라는 라이트 노벨에서 300 VS 5000을 300이 포위섬멸진이라는 진영을 펼쳐서 이겼다는 서술이 나왔다.(...) 덕분에 일본 2ch는 물론이거니와, 타입문넷, 루리웹에서 '이게 뭔 미친 소리냐?'며 네타거리가 되었고, 포위섬멸전만 쳐도 검색 페이지가 이걸로 도배가 될 지경이 됐다. 이후 워낙에 욕을 쳐먹은 나머지 5000을 500으로 수정하는가...... 싶더니만, 서적판에서는 990 VS 6000으로 재조정을 해놨다(...) 17배 조금 안 되는 차이에서, 6배 조금 넘는 차이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건 무슨....
무려 1500명으로 4만 명을 포위 격파했는데, 병력 수 비율만 보면 밑의 포위섬멸진보다도 황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설정은 논란조차 된 적이 없는데, 이는 저 1500명은 철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중기병이었으나, 4만 명은 실상 9할이 피난민인 데다 무장도 청동기 수준인 잡졸이었기 때문. 작중에서도 중기병 측이 저 잡졸들을 우월한 기동성을 이용해 들키지 않고 포위한 후, 충격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공황 상태에 빠트리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다만 병력 수 격차는 뒤집을 수 없어서, 지휘부만 기습적으로 죽이거나 사로 잡았을 뿐 휘하 병졸들은 대부분 와해만 시키는 데 그친다.
6.4.2. 실패
- 아스타테 성역 회전
- 폴라리스 공방전 - 폴라리스 랩소디
7. 관련 문서
[1] 성공적으로 적을 섬멸전 단계까지 이끈 포위전은 흔히 포위섬멸전이라고도 부른다.[2] 항복하고도 몰살당한 사례도 있다. 장평대전 문서 참고.[3] 어떠한 싸움에서건 수적 열세에 놓인 쪽의 전투력이 극도로 강하지 않다면 열세를 극복하기가 어렵다.[4] 빨간 점 1개와 검은점 1개가 동귀어진했을 경우.[5] 실전에서 2:1이상의 열세를 보인 쪽은 우세를 보인 쪽에게 변변한 손해도 끼치지 못 하고 제압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6] 조조는 손자병법에 "아군의 역량이 적군보다 훨씬 우월하면 굳이 10배의 병력까지는 필요없다"고 주석을 단 바가 있는데, 이는 그 동안 전술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예화의 수준이 손자병법이 지어질 시점보다 훨씬 올라가 포위에 필요한 병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7] 이런 포위 돌파를 현대전에서 실현한 예시로는 크레이튼 에이브람스와 루이스 풀러가 있다.[8]을 통해 아군의 충격력을 집중하여 포위망을 돌파하는 심리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