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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8 23:03:17

전멸

1. 개요2. 군사 용어
2.1. 정의
2.1.1. 원인2.1.2. 파생 단어
2.2. 기준2.3. 영향2.4. 전멸을 피해야 하는 이유
3. 여담

1. 개요

전멸()은 모두 죽거나 망해서 사라짐을 가리킨다. 유의어로 궤멸(潰滅), 괴멸(壞滅), 절멸(絶滅) 등이 있다.

2. 군사 용어

전멸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달리 군사 용어로서의 전멸은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키므로 단어의 사용법이 아예 다르다.

2.1. 정의

통상적으로는 '군대의 전멸' 등으로 자주 사용되나, 실제 군사학에서는 정의되지 않는 말이다. 전멸을 군사 용어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군사학에서는 일반적인 전멸의 의미를 지칭하는 단어는 적의 부대를 영구적으로 전투력 상실 상태로 만드는 것을 뜻하는 격멸(擊滅, destroy) 등이 사용된다. 창작물에서 흔히 묘사되는 전투원 전원이 전사하거나 지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는 무력화(neutralization), 전투효율성 상실(combat-ineffective), 부대 파괴(unit destroyed, unit destruction) 등으로 부른다. 이들 영어 단어들에 대응하는 한국군 공식 군사 용어는 없으며, 한국 군대에서는 '적 무력화', '제압' 또는 단순히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 정도로만 언급된다.

군사 용어상의 전멸은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수준으로 전투력이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 보통 '전멸'이라고 하면 부대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투력을 표현하는 단어로써의 전멸은 그런 의미보다는 부대가 전투력 또는 전투효율성(combat effectiveness)을 어느 수준 이상 잃어 더이상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2.1.1. 원인

전멸이 일상적인 의미와는 달리 군사 용어로는 전투력 상실로 임무수행 불가능이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격파(擊破)와 마찬가지로 전멸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는 구체적인 수치나 상황이 상세하게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원인은 불분명하다. 원래 군사 용어는 단어의 뜻이 매우 정확하고 세밀하게 지정되며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만들어지는데 전멸은 이런 추세와는 정반대로 운용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군사 계급이 정립되면서 과거의 봉건제적 잔재로 지역에서 병력을 모집해서 지휘관이 된 지방 유지같은 고위 계층은 군사적인 지식과 경험이 없고, 지휘관을 보좌하는 전문적인 군인들이 참모 역할을 수행하면서 지휘관이 제대로 알아듣도록 과장된 단어를 쓴 경우다. 원래 지휘관이 군사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추지 못했으면 전황이 불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채 말 그대로 최후의 1인까지 병력을 전선에 내보내서 부대를 모두 믹서기에 갈아먹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참모가 이런 지휘관의 생각을 빠르게 다른 곳으로 돌리려면 전투효율성(combat-ineffective) 상실 처럼 전문적인 군사 용어라서 해당 지식이 없다면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보다는 우리 부대가 전멸당하고 있다는 식의 초보도 알아듣기 쉬울 정도로 쉽고 간단한 일상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서도 군사(軍師)로 흔히 불리는 책사들이 비슷한 경우를 많이 당했으므로 전멸이라는 단어가 일상 용어와 군사 용어의 뜻이 달라지는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2.1.2. 파생 단어

군사 용어로서의 전멸은 일상 용어로서의 뜻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유의어를 사용해서 부대의 타격 수준과 심각성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정식적인 군사 용어는 아니며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용법이 다르며 전멸 이외에는 단어간의 의미가 바뀌거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한다. 아래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 예시를 들만한 사례를 기록한 것이다.[1]
단어 정의 해설
전멸(全滅) 전투력 저하로 임무수행 불가
(전투력 30% 손실)
재편성후 전투력 회복이 가능함
궤멸(潰滅) 부대 인원 대다수의 손실
(전투력 50% 손실)
재편성해도 숙련인원 부족으로
신규부대 수준의 전투력만 보유함
괴멸(壞滅) 부대 편제 완전 붕괴 및 수습 불가
(전투력 70% 손실)
원래 부대로 재편성 불가
패잔병 상태라서 급조된 혼성부대만 조직 가능
절멸(絶滅) 모든 장비를 상실하고 생존자 없음
(전투력 100% 손실)
완전한 전멸상태
(포위당해서 모두 포로로 잡힌 경우도 포함)

2.2. 기준

부대 전투력이 어느 정도 손실되어야 전멸, 즉 임무수행 불가로 간주하는지는 국가별로 다르다.

애초에 손실의 기준이 국가별로 다르기도 하다. 보통 손실은 전투 병력은 후방으로 후송되어야 할 수준의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상태, 장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를 나타낸다. 미군의 경우 병력이 손실되었는지의 기준은 퍼플 하트의 수여 기준과 거의 일치한다.

미군은 2010년 이전까지 전투력(strength) 30% 이상 손실 시 임무수행이 어렵다고 보았다. 미군 지휘관이 휘하 편제의 전투효율성을 빠르게 판단하는 용도로 썼던 검볼 차트(Gumball Chart)에는 전투력이 69~50%만큼 남은 부대는 전투효율성 상실로 간주하고 적색으로 표시하며,[2] 50% 미만으로 남은 부대는 흑색으로 표시한다. 전투력이 70% 이하인 경우 다음 임무 이전에 재편성해야 한다고 명시한다.[3] 그리고 전투효율성(combat effectiveness)은 부대가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으로 인원, 탄약, 무기체계 따위가 평가 대상이다. 미군은 군사적결심수립절차(Military Decision-Making Process, MDMP) 중 방책분석 시 수립한 방책이 부대의 전투효율성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지 확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10년 개정 FM 5-0부터 전투효율성을 군사용어로 정의하지 않고 MDMP에도 사용하지 않으며 검볼 차트, 전투효율성 따위가 모두 교리에서 제외되어 교리적으로는 임무수행이 어려운 전투력 수준이 얼마라고 정하지는 않는다.

미군의 영향을 받은 많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30% 이상의 사상자 발생 시 일반적으로 전투병력의 전투 의지 상실로 이어져서 전투력 상실/전멸로 간주하였다. 한국군도 2011년도 기준으로 연대, 사단급 전술훈련에서 같은 기준을 사용했다. 편제율 69% 이하 제대는 훈련통제실 전광판에 적색으로 띄우는 것도 똑같았다. 현재의 한국군은 교리에 수치를 정하지는 않지만, 전술임무과업 파괴[4]의 요망수준을 30% 이상 피해 유발로 제시하는 점으로 볼 때, 마찬가지로 30%를 기준으로 본다고 추측할 수 있다.

소련에서는 70%까지 손실되기 전에는 편제에 전투 의지가 남아있다면 제파식 전술을 통해 작전 수행을 도울 수 있어서 전멸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이런 극단적인 수치는 핵심지역에 제파식 공세를 통해 전략/전술적으로 인력을 갈아넣다시피 했던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현장지휘관 관점에선 극단적인 공세를 통해 휘하병력의 70%가 소실되는 상황보다 가능하면 상부에 허락을 구하고 중간에 후퇴하여 재편성과 휴식을 원하는 심리는 동일했다. 드물게 30% 이상의 전투 인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작전을 수행할 전투 의지와 장비가 남아있고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예측되면 전멸 상태가 아닐 수도 있으나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므로 가능한 한 빠르게 손실을 보충해줘야 한다.[5]

그리고 전투력 손실은 물리적 손실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병력의 사기와 전투 의지도 전투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투 의지가 높은 집단은 더 많은 물리적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도 전투 지속과 임무수행이 가능하지만, 전투 의지가 처음부터 낮은 집단은 약간의 손실만을 입거나 손실을 입을 상황에 직면하기 전부터 이미 전멸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납득[6], 보급에 대한 만족도, 지휘관에 대해 갖는 신뢰와 존경심, 훈련을 통한 낯선 상황에 대한 대비와 적응력 등 단순한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인적인 부분과 심리상태 또한 전투력(전투 역량)에 큰 영향을 끼치고[7] 전멸 여부를 따질 때는 이러한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멸 상태로 판단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공성전이나 시가전에서 방어자가 탈출이 불가능함에도 전투를 계속 할 의지가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방어자는 공격자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끄는 것이 목표가 되므로, 항복해도 좋다는 상층부의 허가가 없거나 항복해도 목숨을 보전한다는 보장이 없다면 마지막 한 명이 궤멸될 때까지 싸우게 된다. 양양 공방전이나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처럼 사례가 많으며, 현대전에서 대표적인 예로는 마리우폴 포위전이 있다. 물론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 부대를 갈아내는 것이므로 목적은 달성했지만 말 그대로 부대가 완전히 전멸당해서 생존자가 없거나 남은 병력이 모두 포로로 잡히면서 완전 전멸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2.3. 영향

전멸 판정을 받을 정도로 전투력 손실을 입은 부대는 전투력 복원을 거쳐도 기존만큼의 전투력을 지닌다는 보장은 없다. 한 번 끊어진 고무줄은 이어묶어도 예전의 길이까지 늘릴 수 없듯이, 오히려 많은 경우 전멸 이후 부대 전투력은 아무리 보충병을 받아 완편 상태로 복구되었다 하더라도 기존보다 낮아진다. 전멸로 숙련된 장교와 부사관을 잃은 경우 이들을 대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보충 병력도 대부분 전투 경험이 적어서 기본적인 전투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보충 병력을 이끄는 나머지 장교와 부사관들도 같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일선에서 더 적극적인 지휘를 해야 하기에 더 큰 손실을 입을 확률이 높다.[8]

그리고 전투력을 다시 복구하려면 신병이 숙련되어야 하는데, 기존의 고참병들이나 잔존 병력들이 경험이 적은 신병과 함께 실전 투입되는 것을 꺼리거나 함께 작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 단순히 번거롭다는 문제가 아니라 고금을 막론하고 실전에서 경험이 적은 신병의 실수로 고참병들 목숨마저 위험해지는 일은 흔하기 때문이다. 신병들이 장시간 고참병들과 함께 훈련하며 상호신뢰가 쌓이고 숙련도가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문제이지만 전시의 급박한 상황에서 부대가 장시간 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 번 큰 손실을 입었거나 전멸한 부대는 이후 전투에서 전멸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하지만 전쟁 중에 새로운 부대가 기존의 역량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지휘관은 재편성 직후 취약한 부대를 어떻게 보전할지, 전투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임무를 부여할지에 대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9]

물론 전멸 수준인 상태에서도 전투를 지속한 부대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신속한 후퇴와 교대가 불가능한 중대전술기지 같은 고립지,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져 예비대의 여력이 없는 경우, 적진에 침투한 상황이어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특수부대 등 부득이하게 전투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고, 상식적인 지휘관이라면 예비대를 투입한 후 해당 제대는 후방에서 재편성 후 예비대로 전환하는 게 보통이다.

독소전쟁 등의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다 보면 겨우 30% 정도의 손실로 전멸이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현대 사단이나 연대의 편제에는 상당한 수의 지원 부대[10]가 편성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의 군대일수록 종합전투력 증강과 전투가능시간의 유지를 위해서 지원 부대의 규모는 커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만큼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전투 병력의 비율이 줄어든다. 사단본부가 기습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전사자는 지원 부대보다는 전투부대에서 많이 나온다. 따라서 사단 병력 30% 손실은 사실상 전투병력의 절반 가량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 거기다 중장비를 다루는 특성상 정원이 모두 생존해 있어야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는 제대(박격포반, 견인포반, 기관총수 등)도 있는데 이런 제대는 한 명만 전사해도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일도 흔하다. 즉, 100명인 중대에서 30명이 전사했다면 날아가는 전투력은 30%가 아닌 50%, 70%가 된다.

전투 노하우에 대한 계승과 전이 역시 중요사항이다. 실전을 여럿 거친 10명으로 구성된 분대에서 2~3명이 전사 후 보충병으로 2~3명이 들어온다면 기존 고참병 7~8명이 전투상황에서 그 보충병들의 멱살을 잡고 끌고다니며 케어해주면서 생존확률을 올리고 직접적인 전투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10명 중 5명이 사망하고 5명이 보충된다면 고참 5명이 보충병 5명에게 가르치고 케어할 수 있는 정도에 한계가 생기게 되고 결국 전투경험은 전이되는 것이 느리거나 아예 불가능해지며, 많은 경우 신병 5명을 케어하느라 정작 고참병들이 전사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미국은 실전에 숙달된 부대가 그 실전경험을 보충병들에게 전이시켜가며 보존할 수 있는 마지막 손실선을 부대인원의 30%라고 본 것.

영화나 대중매체 등에서는 전멸 상태까지 몰려도 계속 그 자리에서 계속 사상당하며 싸우다 갑자기 증원군이 나타나 싹 쓸어버리거나, 독소전쟁형벌 부대처럼 막 쥐어주고, 마구 돌격시키고, 마구 사상당하는 진흙탕 싸움을 주제로 하기에 사람들이 왜곡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것은 한정된 상영시간이나 분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중매체의 특성상 캐릭터성, 카타르시스 등을 위해 극적인 요소가 강한 전쟁의 승패와 직결된 절대 져서는 안되는 전투라는 예외만을 다루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이다. 현실에서 이런 막장 전투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대량의 인명피해와 함께 장기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크게 깎아먹는 행위이므로, 가능하면 즉각 후퇴나 교대시킨다. 당장 싸울 순 있지만 싸워봤자 적에게 타격은 제대로 못주면서 희생만 많아지고 성과가 안좋을 게 뻔하니까. 즉, 괜히 독전을 강요해 부대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보다 좀 많이 얻어맞았으면 뒤로 물러나 후방에서 재정비시키고 예비대로 전환하거나 재투입시키는 게 훨씬 적은 손실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후퇴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만든 주범인 독소전쟁에서도 소련은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보고 패배가 확실해지면 다음 전투를 위해 포위당하지 않은 병력들은 즉각 후퇴시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치 독일군이 소련군의 방어진을 뚫고 후방지역을 박살내는 것은 기본이고, 상황이 심각하면 후방부대까지 포함한 대규모의 포위섬멸진을 만들어서 소련군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바르바로사 작전 초반의 비아위스토크-민스크 전투, 스몰렌스크 전투(1941), 키예프 전투(1941년)등에서 현지사수를 고집하다가 포위망에 걸려서 대규모의 병력과 장비 손실을 본 후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조차도 무조건적인 현지사수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전쟁이 진행될수록 게오르기 주코프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같은 군사 전문가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을 유연화했다.

다만 영화에서 이런 전투를 다루면 관객들은 "에이, 후퇴했다가 다시 재도전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는 작중 긴장감과 핍진성을 망가뜨리고 작품의 흥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전쟁의 승패와 관련된 중요한 전투를 다루고, 현실에서도 이런 전투에서는 인력을 갈아넣으면서 싸운다. 대다수의 대중매체가 다루는 전쟁의 전환점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모스크바 공방전를 다루는데 이 두 전투는 각각 대규모 부대의 보급 문제를 좌지우지하거나[11] 수뇌부가 노출되어 지휘체계가 박살날 수 있는 중대한 요충지를 방어해야 하는 경우라 만일 적에게 이곳을 빼앗기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즉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사실상 배수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도 다른 전투는 몰라도 이 두 전투에서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소련군은 궤멸당하는 한이 있어도 인력을 갈아넣으면서 피 터지게 싸워야만 했고 소련군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악명높은 명령 제227호가 나왔고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4. 전멸을 피해야 하는 이유

결국 위 단락의 내용을 요약하면 한 번 전멸을 겪은 부대는 재편성 후 완편시켜도 이전만큼의 전투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전술적 차원(각각의 전투)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전략적 차원(전쟁 그 자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고대부터 모든 국가의 군대는 어른들의 사정으로 내부에 주력 부대와 아닌 부대의 구분이 발생한다. '정예부대', '근위사단', '레인저', '직할군', '창끝 전력' 등 명칭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자국군 내에서도 평균 이상의 훈련도를 갖추고 우선적인 투자를 받은 부대는 있기 마련이다. 현대 미군처럼 평균적인 전투력의 질 자체가 높은 군대더라도 내부에 '그 중에서도 정예인 부대'는 존재한다. 전면전은 결국 땅따먹기 형태로 전개되고, 군사적으로 나에게 먹음직스러운 지역은 적 입장에서도 빼앗기면 안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내가 빼앗는데 진심인 만큼 상대도 지키는데 진심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요충지를 둘러싼 전투는 양자가 서로의 주력 부대[12]를 밀어넣는 식으로 전개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전쟁은 자잘한 전투로 구성되어있고 전세를 결정하는 전투는 결국 서로의 주력 부대 간의 힘겨루기인데, 한 번 전멸을 겪은 부대는 보충되어도 이전의 전투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이에 발생하는 공백이 스노우볼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대부분의 전쟁이 나름 팽팽하다가 어느 전투를 기점으로 갑자기 한 쪽이 대책없이 밀리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 여기엔 요충지를 빼앗겨 추후의 모든 전투에서 지속되는 패널티를 안게 되는 지형적인 요인, 공세측이라면 작전한계점의 경과 등등 다양한 변수가 있겠으나, '우리의 정예도 못이긴 상대의 주력을 2선급 병력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는 지극히 일차원적이고 단순한 논리로도 명료하게 설명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정예부대가 아닌 일반부대라도 전쟁전에 편성을 완료해놓은 병력은 가급적 소모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전쟁이 진행될수록 국력이 저하하고 군복무가 가능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복무 부적격자에게 2선급 장비를 숫자도 부족하게 지급한 후에 전선에 투입해야 하는 막장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13]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정예부대에 비해서 숙련도가 낮고 장비의 품질이 떨어지는 일반부대라도 전쟁이 터지기 전이라면 20대 나이로 체력이 전성기 상태인 현역복무가 가능한 인원이 기본장비를 완전히 지급받고 기초군사훈련주특기훈련을 완수했기 때문에 전쟁이 한참 벌어지는 기준으로는 정예부대로 취급받을 수준으로 귀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 전에 편성한 부대를 상실하면 재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 가혹한 현실인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국가는 전쟁 초기에 상대국의 주력 부대를 먼저 두들겨놓고 시작하는 식의 작계를 수립한다. 아예 싹을 먼저 자르고 시작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므로. 현역 병사를 열받게 하는 파스트 페이스 훈련이 주둔지 이탈을 위한 물자분류가 첫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잠재적 적국도 전쟁 개시와 동시에 아군 주력을 밟아놓고 시작하고 싶어할 것이므로 일단 위치를 옮겨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쟁의 승패는 결국 서로의 주력을 전쟁 내내 얼마나 온전하게 보존해가며 알뜰하게 사용하느냐로 결정되고, 따라서 다시 완편되어도 이전의 전투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준 밑으로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휘관 능력의 척도가 된다.

당장 패배한 건 패배한거고, 해당 부대가 전쟁 내내 가용한 아군 전력 리스트에서 아예 지워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따라서 부대가 전멸을 바라보는 손실을 입었다면, 후퇴건 패주건 건질 수 있는 병력과 장비는 최대한 건져서 부대를 빼내야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3. 여담

6.25 전쟁 당시 백석산 전투 1차전은 안개 및 동쪽에서 병행 중인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전투로 화력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해 전투 가능 인원이 7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치른 전투다. 그나마 해당 상황은 고지전의 시작이라서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경우고 개전 극초반의 상황에서는 국군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군도 제24보병사단이 오산 전투부터 대전 전투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축차투입된 소수의 병력으로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한반도에서 지연전을 수행하며 중과부적의 상황에 빠진 결과 윌리엄 F. 딘 사단장이 포로로 잡히고 전시 정원인 18,900명은 고사하고 평시 정원인 12,500명에도 한참 모자란 8,660명으로 병력이 줄어들고 장비 손실도 막대해서 전투력을 상실했으나 상황이 다급해서 그대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여해서 창녕·영산전투에 긴급투입되는 등 엄청난 고생을 했다.

실제 상황이 아닌 게임에서는 일부러 빠른 전멸을 하기도 하고, 전멸노가다 등을 하기도 한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라는 게임은 제목부터가 '완전 전멸'이다.

학교에서 과반수의 애들이 졸 때 전멸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카더라.

PUBG: BATTLEGROUNDS에서 전멸은 한 스쿼드에게 모든 스쿼드원이 킬을 대주고 탈락한 경우로 한정한다. 그래서 e스포츠 중계 볼 시 한 팀에게 몰살당했을 경우 탈락과 함께 전멸 메세지가 뜬다. 당연히 1명이 적 한 스쿼드를 모두 처치해도 전멸이다.


[1] 군사행정 실무에서는 일반인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인원편제상 대부분의 손실은 '궤멸'이라는 표현을 쓴다. 보고서를 써올리는 장교라면 전멸과 궤멸을 혼동해서 썼다간 바로 안면으로 지휘봉이 날아오므로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2] 즉, 31% 이상 손실을 전투 역량 상실로 간주한다.[3] FM 101-5-1, Operational Terms And Graphics, p. C-1.[4] 적 인원, 장비 등이 재편성하지 않고는 전투력 운용, 기능 발휘가 제한되도록 하는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행동[5] The Relationship Between Battle Damage And Combat Performance, Leonard Wainstein, Institute for Defensive Analysis, 1986, p. 6-7.[6] 방어자는 고향과 가족을 지키는 것, 공격자는 성공적인 공격을 통한 보상을 받는 것. 이런 양상은 고대의 전쟁에서부터 반복되어 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는 것까지 포함된다.[7] Wainstein, ibid., p. 14, 19, 26.[8] 실제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다수의 러시아군 장성들이 최전선에서 전투병들을 독려하다가 우크라이나군이 감청과 연계한 정밀 타격을 가하여 사망했다.[9] Wainstein, ibid., p. 3.[10]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전투지원, 전투근무지원, 군수부대 등. 포병, 화생방, 의무, 군수, 군사경찰 등이 지원 부대다.[11] 스탈린그라드를 빼앗기면 돈 강이 차단되고 바쿠 유전의 상실로 소련의 석유공급이 막혀서 전시경제가 마비될 위험이 있었다.[12] 이 주력은 양적주력이 될 수도 있고 질적주력이 될 수도 있으나 질적주력은 결국 양적주력으로 수렴하므로 양자를 구분해서 따지는 실익은 없다.[13] 결호작전으로 일본 본토를 수비하기 위해 편성한 일본군의 신편부대나 국민돌격대를 보면 심각한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