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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 | 소련-유고슬라비아 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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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스탈린 초상화, 오른쪽이 티토 초상화. |
1. 개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과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이 수교를 중단한 사건으로 양측 모두 이념적 분쟁으로 표현했지만, 이 갈등은 발칸 반도의 지정학적 투쟁의 산물이기도 했다.2. 역사
2.1. 1945년~1947년까지 티토와 스탈린의 관계
나치가 점령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고슬라비아는 외국 군대가 지원하러 오기 훨씬 전부터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통제 하에 있었다. 1944년 9월에 첫 번째 외국 지원군을 받았을 때 그들은 이미 몇 달 전에 많은 지역에서 독일 국방군을 몰아냈다.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외부 원조에 거의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요시프 브로즈 티토 원수가 유고 슬라비아 해방에서 자신의 당 내부뿐 아니라 유고슬라비아 국민 전체에 걸쳐 지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티토가 자국의 더 큰 행동의 자유를 고집하게 만든 주요 이유 중 하나,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초기에 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사이가 좋았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동유럽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소련군 주둔을 허용하기까지 했으며 1946년에는 국제공산당 정보기구(코민포름)에 가입했다.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스탈린의 결의안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초기에 소련과 유고슬라비아는 사이가 좋았다. 그러나 1947년에 무기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약속을 소련이 어기자 양국의 관계는 조금씩 사이가 나빠지기 시작했다.한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고 슬라비아 와 서방 연합국 사이에 여러 건의 무장 사건이 발생했다. 전쟁 후 유고슬라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된 후 1920년대에 이탈리아가 점유하고 이탈리아인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이스트리아 반도의 이탈리아 영토와 자다르, 리예카를 합병하였고, 트리에스테도 자국의 영토로 편입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유고슬라비아와 서방은 충돌이 발생했는데 1945년과 1948년 사이에 최소 4대의 미국 항공기가 격추되었다. 스탈린은 서방에 대한 이러한 도발에 반대했는데, 티토는 이런 스탈린의 말을 무시하였다. 또한 스탈린은 퍼센트 합의에서 영국에게 줘버린 그리스 내전에 티토가 공산주의자들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했다.
2.2. 1948년 유고슬라비아의 코민포름 탈퇴
이렇게 티토가 자신의 말을 듣지않자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마침내 1948년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코민포름 총회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영구 제명시키기로 결의했다. 코민포름을 퇴출당한 뒤 분노한 티토는 친소파와 코민포름에 도움이 되었던 정치인들을 모조리 숙청했다.[1] 1949년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정부는 동시에 티토-스탈린 결별을 발표했다.3. 영향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모든 경제, 정치, 군사적 원조가 중단된 상태로 엄청난 재정 위기를 겪었다. 또한 스탈린은 유고슬라비아를 견제하기 위해 헝가리의 재무장을 독려하였다. 헝가리는 반항적이고 이단적인 공산주의 유고슬라비아 와의 가상 전쟁에서 중요한 세력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스탈린의 후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나중에 스탈린의 다음 목표는 한국 전쟁 이후 티토였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하지만 1949년부터 서방 쪽으로 다가서기 시작하였으며 유고슬라비아의 재정 상황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1961년 비동맹 국가연합을 창설하고 제3세계 국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