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별 명칭 | |
<colbgcolor=#f5f5f5,#191919> 한국어 |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
영어 | Treaty of Peace San Francisco (Treaty of Peace with Japan) |
일본어 | 日本国との平和条約 (해석: 일본국과의 평화조약)[1][2] |
전문링크(영어) | #UN 조약 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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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양 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을 포함한 48개국이 강화 회의 후 체결한 일본과 연합국 간의 조약이며 1952년 4월 28일 발효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대일강화조약 등으로도 불린다. 이 조약으로 연합군의 점령하에 놓였던 일본이 공식적으로 국권을 회복하였다. 또한 일본이 자국 독립의 조건으로 한반도에 관한 모든 권리를 명시적으로 포기하면서 한국의 법적, 외교적 독립을 확인하였다.또한 같은 날,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체결되었다.
조약 전후 당시 한국 언론 등지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테지를 따서 '상항강화조약(桑港講和條約)'이라고 칭했다.
2. 전문
2.1. 평화
제1조(a) 일본과 각 연합국들과의 전쟁 상태는 제23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일본과 관련된 연합국 사이에서 현 조약이 시행되는 날부터 중지된다.
(b) 연합국들은 일본과 그 영해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완전한 주권을 인정한다.
2.2. 영토
제2조(a)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비롯한 한국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b) 일본은 타이완과 펑후제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c) 일본은 쿠릴 열도에 대한 그리고 일본이 1905년 9월 5일의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주권을 획득한 사할린의 일부와 그것에 인접한 도서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d) 일본은 국제연맹의 위임통치제도와 관련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하고, 신탁통치를 이전에 일본의 위임통치권 하에 있었던 태평양 제도에 이르기까지 확대하는 1947년 4월 2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를 수용한다.
(e) 일본은 일본 국민의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건, 아니면 그 밖의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건 간에, 남극 지역의 어떤 부분과 관련된 어떠한 권리나, 소유권 또는 이익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
(f) 일본은 남사군도와 서사군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3조
일본은 남서제도와 대동제도를 비롯한 북위 29도 남쪽의 남서제도와 (보닌 제도, 로사리오 섬 및 화산열도를 비롯한) 소후칸 남쪽의 남방제도, 그리고 오키노토리 섬과 미나미토리 섬을 유일한 통치 당국인 미국의 신탁통치하에 두려는 미국이 유엔에 제시한 어떤 제안도 동의한다. 그러한 제안과 그에 대한 긍정적인 조치가 있을 때까지 미국은 그 영해를 포함한 그 섬들의 영토와 주민들에 대한 일체의 행정, 입법, 사법권을 행사할 권리를 가진다.
제4조
(a) 이 조항의 (b)의 규정에 따라, 일본의 부동산 및 제2항에 언급된 지역의 일본 국민들의 자산 처분 문제와, 현재 그 지역들을 통치하고 있는 당국자들과 그곳의 (법인을 비롯한) 주민들에 대한 (채무를 비롯한) 그들의 청구권들, 그리고 그러한 당국자들과 주민들의 부동산의 처분과 일본과 그 국민들에 대한 그러한 당국자들과 주민들의 채무를 비롯한 청구권들의 처분은 일본과 그 당국자들 간에 특별한 협의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그 당국이나 거류민의 재산의 처분과, 일본과 일본국민을 상대로 하는 그 당국과 거류민의 청구권(부채를 포함한)의 처분은 일본과 그 당국간의 별도 협정의 주제가 될 것이다. 제2조에서 언급된 지역에서의 어떤 연합국이나 그 국민의 재산은, 현재까지 반환되지 않았다면, 현존하는 그 상태로 행정당국에 의해 반환될 것이다.
(b) 일본은 제2조와 제3조에 언급된 지역에 있는 일본과 일본 국민 자산에 대해, 미군정의 지침이나 이에 준해서 제정된 처분권의 적법성을 인정한다.
(c)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과 일본을 연결하는 일본이 소유한 해저 케이블은 균등하게 분할될 것이다. 일본은 일본측 터미널과 그에 접하는 절반의 케이블을 갖고, 분리된 지역은 나머지 케이블과 터미널 시설을 갖는다.
2.3. 안전
제5조(a) 일본은 유엔헌장 제2조에서 설명한 의무를 수용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의무이다.
(ⅰ) 국제 분쟁을 평화적 수단에 의해 국제 평화와 안전 및 정의를 위태롭게하지 않도록 해결한다.
(ⅱ) 국제 관계에서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어떠한 국가의 영토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대한 것도 또한 국제 연합의 목적과 양립하지 않는 다른 어떠한 수단으로도 자제한다.
(ⅲ) 국제 연합이 헌장에 따라 제출 잡는 어떠한 행동에 대해서도 국제 연합에 어떤 도움을 주고 한편, 국제 연합이 방지 행동 또는 강제 조치를 취할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원조 공여를 자제한다.
(b) 연합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엔 헌장 제2조 원칙을 지침으로 해야 할 일을 확인한다.
(c) 연합 국가로는 일본이 주권 국가로서 국제 연합 헌장 제51조에서 내거는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가 있음과 일본이 집단적 안보 협정을 자발적으로 체결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제6조
(a) 연합국의 모든 점령군은이 협약의 발효 후 가능한 신속하게, 한편 어떠한 경우에도 이후 90일 이내에 일본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연합군을 한편으로 하고, 일본 또는 기타 쌍방간에 체결된 또는 체결되는 양자 또는 다자 협정 결과로 외국 군대의 일본 지역에 주재 또는 주둔을 막는 것은 아니다.
(b) 일본 육군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며,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의 9항의 규정이 아직 실시 완료가 되지 않았다면 실행하는 것으로 한다.
(c) 아직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모든 일본 재산은 점령군의 사용에 제공되고, 한편, 이 협약 발효 시에 점령군이 점유하고 있는 것은 상호 합의에 의해 달리 약정을 하지 않는 한 상기 90일 이내에 일본 정부에 반환하여야 한다.
2.4. 정치 및 경제
제7조(a) 각 연합국은 자국과 일본 사이에 이 협약이 발효한 후 1년 이내에 일본과의 전쟁 중 두 나라 간 조약 또는 협약을 이어가는 것이 유효한 지 또는 부활시키는 것을 원하는지 일본에 통보하여야 한다. 이렇게 통보된 조약 또는 협약은 이 협약에 적합함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정을 하는 것만으로도, 연속적으로 활성화 되거나 또는 부활된다. 이렇게 통보된 조약과 협약은 통보일로부터 3개월 후에, 계속해서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또는 부활되며, 한편 국제 연합 사무국에 등록되어야 한다. 일본에 이렇게 통보되지 않는 모든 조약 및 협약은 폐기된 것으로 본다.
(b) 이 조의 (a)에 근거해 시행되는 통보에 있어서 조약 또는 협약의 실시 또는 부활에 관하여 국제 관계에 대해 통보하는 국가가 책임지는 지역을 제외시킬 수 있다. 이 제외는 제외 신청을 일본에 통보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제8조
(a) 일본은 연합국이 1939년 9월 1일에 시작된 전쟁 상태를 종료하기 위해 체결된 또는 앞으로 체결하는 모든 조약 및 연합국이 평화 회복을 위해, 또는 이와 관련하여 수행하는 다른 협정의 완전한 효력을 승인한다. 일본은 또한 이전의 국제 연맹과 상설 국제 사법 재판소를 종결하기 위해 수행된 협정을 수락한다.
(b) 일본은 1919년 9월 10일 생제르망 앙레우의 협약 및 1936년 7월 20일 몽트뢰 해협 조약의 서명국인 것에 유래하는 그리고 1923년 7월 24일에 로잔에서 서명된 ‘터키와의 평화 조약’의 제16조에서 유래하는 일체의 권리와 이익을 포기한다.
(c) 일본은 1930년 1월 20일 독일과 채권국 간의 협정 및 1930년 5월 17일 신탁 협정을 포함한 그 부속서 및 1930년 1월 20일 국제 결제 은행 협약 및 국제 결제 은행의 정관에 근거하여 얻은 일체의 권리, 소유권 및 이익을 포기하고 또한 그들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의무를 면제한다. 일본은 이 조약 최초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이 항에 규정된 권리, 소유권 및 이익의 포기를 파리 외무부에 통보하여야 한다.
제9조
일본은 공해상의 어업의 규제나 제한, 그리고 어업의 보존 및 발전을 규정하는 양자간 및 다자간 협정을 체결하기를 바라는 연합국들과 즉각 협상을 시작한다.
제10조
일본은 1901년 9월 7일에 베이징에서 서명한 최종 의정서의 규정들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이익과 특권을 비롯하여, 중국에 대한 모든 특별한 권리와 이익을 포기한다.그리고 모든 조항들과 문안 그리고 보충 서류들은 이로써, 이른바 요령, 조항, 문구, 서류들을 페기하기로 일본과 합의한다.
제11조
일본은 일본 안팎의 극동 및 기타 국가의 연합의 전범 재판소의 국제 군사재판 판결을 수용하고 이로써 일본 내 일본인에게 선고된 형량을 수행한다. 형량감경이나 가석방 같은 관용은 정부로부터 사인별로 형량을 선고한 연합정부의 결정이 있을 경우 또한 일본심사결과가 있을 경우 이외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극동 지역에 대한 국제 군사재판에서 선고받은 피고인 경우 재판소를 대표하는 정부 구성원이나 일본심사결과상 과반수의 투표가 있을 경우 이외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제12조
(a)일본은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거래와 해상무역을 위하여
(!)연합군과 조약을 맺거나 협상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신속한 협정에 임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선언한다.
(b)관련 조약이나 협정상 합의사항 보류 시 현행 협정사항이 효력을 얻는 초년도부터 4년 기간 동안 일본은 연합군의 권력과 선박들을 수용한다.
(i)최혜국 협정을 수용하여 관세율 적용과 부과, 제한사향 그리고 기타 물자수출입과 연관해서는 관련 규정을 따른다.
(ii)해운, 항해 및 수입 상품에 대한 내국인 대우, 다시 말해 그러한 대우는 세금의 부과 및 징수, 재판을 받는 것, 계약의 체결 및 이행 (유, 무형)재산권, 일본법에 따라 구성된 자치단체에서의 참여 및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사업활동 및 작업활동의 수행에 관한 모든 사항들을 포함한다.
(2)일본 공기업들의 대외적인 매매는 오로지 상업적 고려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보장한다.
(c)하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 일본은 관련된 연합국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게 경우에 따라 내국민 대우나 최혜국 대우를 주는 범위 내에서만, 그 연합국에게 내국민 대우나 최혜국 대우를 주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상호주의는 연합국의 어떤 비수도권 지역의 생산품, 선박 및 자치단체, 그리고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리고 연방정부를 가지고 있는 어떤 연합국의 주나 지방의 자치단체와 그 주나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한 지역이나, 주 또는 지방에서 일본에게 제공하는 대우를 참조하여 결정된다.
(d)이 조를 적용함에 있어서, 차별적 조치는 그것을 적용하는 당사국의 통상조약에서 통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예외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또한 그 당사국의 대외적 재정 상태나, (해운 및 항해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국제수지를 보호해야 할 필요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또는 긴요한 안보상의 이익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러한 조치가 주변 상황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의적이거나, 비합리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서, 내국민의 대우나, 최혜국 대우를 허용하는 것과 상충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e)이 조에 의한 일본의 의무는 본 조약의 제14조에 의한 연합국의 어떤 권리 행사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이 조의 규정들은 본 조약의 제15조에 따라 일본이 감수해야 할 약속들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제13조
(a)일본은 국제 민간항공운송에 관한 양자간, 또는 다자간 협정을 체결하자는 어떤 연합국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즉시 해당 연합국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b)일본은 그러한 협정들이 체결될 때까지, 본 조약이 최초로 발효된 때로부터 4년간, 항공 교통권에 대해 그 효력이 발생하는 날에 어떤 해당 연합국이 행사하는 것에 못지 않는 대우를 해당 연합국에 제공하는 한편, 항공업무의 운영 및 개발에 관한 완전한 기회균등을 제공한다.
(c)일본은 국제민간항공조약 제 93조에 따라 조약의 당사국이 될 때까지, 항공기의 국제운항에 적용할 수 있는 동 조약의 규정들을 준수하는 동시에, 동 조약의 규정에 따라 동 조약의 부속서로 채택된 표준과 관행 및 절차들을 준수한다.
2.5. 청구권 및 재산
제14조(a)일본이 전쟁 중 일본에 의해 발생한 피해와 고통에 대해 연합국에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생존 가능한 경제를 유지하면서 그러한 모든 피해와 고통에 완전한 배상을 하는 동시에 다른 의무들을 이행하기에는 일본의 자원이 현재 충분하지 않다는 것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1.일본은 즉가 현재의 영토가 일본군에 의해 점령당한 그리고 일본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연합국들에게 그들의 생산, 복구 및 다른 작업에 일본의 역무를 제공하는 등, 피해 복구 비용의 보상을 지원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한다. 그러한 협상은 다른 연합국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원자재의 제조가 필요하게 되는 경우, 일본에게 어떤 외환 부담이 돌아가지 않도록 원자재는 해당 연합국들이 공급한다.
2.(Ⅰ), 아래 (Ⅱ)호의 규정에 따라, 각 연합국은 본 조약의 최초의 효력 발생 시에 각 연합국의 관할 하에 있는 다음의 모든 재산과 권리 및 이익을 압수하거나, 보유하거나, 처분할 권리를 가진다.
(a)일본 및 일본 국민,
(b)일본 또는 일본 국민의 대리자 또는 대행자,
(c)일본 또는 일본 국민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단체,
이(Ⅰ)호에서 명시하는 재산, 권리 및 이익은 현재 동결되었거나, 귀속되었거나, 연합국 적산관리 당국이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는 것들을 포함하는데, 그것들은 앞의 (a)나 (b) 또는 (c)에 언급된 사람이나, 단체에 속하거나 그들을 대신하여 보유했거나, 관리햇던 것들인 동시에 그러한 당국의 관리 하에 있던 것들이었다.
(Ⅱ)다음은 위의 (Ⅰ)호에 명기된 권리로부터 제외된다.
(ⅰ)전쟁 중, 일본이 점령한 영토가 아닌 어떤 연합국의 영토에 해당 정부의 허가를 얻어 거주한 일본의 자연인 재산, 다만 전쟁 중에 제한 조치를 받고서, 본 조약이 최초로 효력을 발생하는 날에 그러한 제한 조치로부터 해체되지 않은 재산은 제외한다.
(ⅱ)일본 정부 소유로 외교 및 영사 목적으로 사용한 모든 부동산과 가구 및 비품, 그리고 일본의 대사관 및 영사관 직원들이 소유한 것으로 통상적으로 대사관 및 영사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개인용 가구와 용구 및 투자 목적이 아닌 다른 개인 재산
(ⅲ)종교단체나 민간 자선단체에 속하는 재산으로 종교적 또는 자선적 목적으로만 사용한 재산
(ⅳ)관련 국가와 일본 간에 1945년 9월 2일 이후에 재개된 무역 및 금융 관계에 의해 일본이 관할하게 된 재산과 권리 및 이익, 다만 관련 연합국의 법에 위반하는 거래로부터 발생한 것은 제외한다.
(ⅴ)일본 또는 일본 국민의 채무, 일본에 소재하는 유형재산에 관한 권리나, 소유권 또는 이익, 일본의 법률에 따라 조직된 기업의 이익 또는 그것들에 대한 증서, 다만 이 예외는, 일본의 통화로 표시된 일본 및 일본 국민의 채무에게만 적용한다.
(Ⅲ)앞에 언급된 예외 (ⅰ)로부터 (ⅴ)까지의 재산은 그 보존 및 관리를 위한 합리적인 비용의 지불을 조건으로 반환된다, 그러한 재산이 청산되었다면, 그 재산을 반환하는 대신 그 매각 대금을 반환한다.
(Ⅳ)앞에 나온 (Ⅰ)호에 규정된 일본재산을 압류하고, 유치하고 청산하거나, 그 외 어떠한 방법으로 처분할 권리는 해당 연합군의 법률에 따라 행사되며 그 소유자는 그러한 법률에 의해 본인에게 주어질 권리를 가진다.
(Ⅴ)연합국은 일본의 상표권과 문학 및 예술 재산권을 각국의 일반적 사정이 허용하는 한, 일본에게 유리하게 취급하는 것에 동의한다.
(b)연합국은 본 조약의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연합국의 모든 배상 청구권과,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본 및 그 국민이 자행한 어떤 행동으로부터 발생된 연합국 및 그 국민의 다른 청구권, 그리고 점령에 따른 직접적인 군사적 비용에 관한 연합국의 청구권을 포기한다.
제15조
(a) 본 조약이 일본과 해당 연합국 간에 효력이 발생된 지 9개월 이내에 신청이 있을 경우, 일본은 그 신청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1941년 12월 7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일본에 있던 각 연합국과 그 국민의 유형 및 무형 재산과, 종류 여하를 불문한 모든 권리 또는 이익을 반환한다. 다만, 그 소유주가 강박이거나, 사기를 당하지 않고 자유로이 처분한 것은 제외한다. 그러한 재산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부과될 수 있는 모든 부담금 및 과금을 지불하지 않는 동시에, 그 반환을 위한 어떤 과금도 지불하지 않고서 반환된다. 소유자나 그 소유자를 대신하여, 또는 그 소유자의 정부가 소정 기간 내에 반환을 신청하지 않는 재산은 일본 정부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 그러한 재산이 1941년 12월 7일에 일본 내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반환될 수 없거나 전쟁의 결과로 손상이나 피해를 입은 경우, 1951년 7월 13일에 일본 내각에서 승인된 연합국 재산보상법안이 정하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으로 보상된다.
(b) 전쟁 중에 침해된 공업 재산권에 대해서, 일본은 현재 모두 수정되었지만, 1949년 9월 1일 시행 각령 제309호, 1950년 1월 28일 시행 각령 제12조 및 1950년 2월 1일 시행 각령 제9호에 의해 지금까지 주어진 것보다 불리하지 않은 이익을 계속해서 연합국 및 그 국민에게 제공한다. 다만, 그 연합국의 국민들이 각령에 정해진 기한까지 그러한 이익을 제공해 주도록 신청한 경우에만 그러하다.
(c) (i) 1941년 12월 6일에 일본에 존재했던, 출판 여부를 불문하고, 연합국과 그 국민들의 작품에 대해서, 문학과 예술의 지적재산권이 그 날짜 이후로 계속해서 유효했음을 인정하고, 전쟁의 발발로 인해서 일본 국내법이나 관련 연합국의 법률에 의해서 어떤 회의나 협정이 폐기 혹은 중지되었거나 상관없이, 그 날짜에 일본이 한 쪽 당사자였던 그런 회의나 협정의 시행으로, 그 날짜 이후로 일본에서 발생했거나, 전정이 없었다면 발생했을 권리를 승인한다.
(ii) 그 권리의 소유자가 신청할 필요도 없이, 또 어떤 수수료의 지불이나 다른 어떤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1941년 12월 7일부터, 일본과 관련 연합국 간의 본 협정이 시행되는 날까지의 기간은 그런 권리의 정상적인 사용 기간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추가 6개월의 기간을 더해서, 일본에서 번역판권을 얻기 위해서 일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정해진 시간에서 제외될 것이다.
제16조
일본의 전쟁포로로써 부당하게 고통을 겪은 연합국 군인들을 배상하는 한가지 방식으로 일본은 전쟁기간 동안 중립국이었던 나라나 연합국과 같이 참전햇던 나라에 있는 연합국과 그 국민의 재산, 혹은 선택사항으로 그것과 동등한 가치를, 국제적십자 위원회에 이전해 줄 것이고, 국제적십자위원회는 그 재산을 청산해서 적절한 국내기관에 협력기금을 분배하게 될 것이다. 공정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논리로, 과거 전쟁포로와 그 가족들의 권익을 위해서, (앞 문장의 일부분) 본 협정의 제14조(a)2(Ⅱ) (ⅱ)부터 (v)까지에 규정된 범위의 재산은, 본 협정이 시행되는 첫 날, 일본에 거주하지 않는 일본 국민들의 재산과 마찬가지로 이전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이 항의 이전조항은 현재 일본 재정기관이 보유한 국제결제은행의 주식 19,770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동시에 양해한다.
제17조
(a)어떤 연합국이든 요청하면, 연합국 국민의 소유권과 관련된 사건에서 일본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일본 상벌위원회의 결정이나 명령을 재검토하거나 수정해야 하고, 결정이나 명령을 포함해서 이런사건들의 기록을 포함한 모든 문서의 사본을 제공해야 한다. 원상복구가 옳다는 재검토나 수정에 나온 사건에서는 제15조의 조항에 관련된 소유권이 적용될 것이다.
(b)일본정부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서 일본과 관련된 연합국간의 본 협정이 시행되는 첫날로부터 일년 이내에 언제라도 어떤 연합국 국민이든지 1941년 12월 7일과 시행되는 날 사이에 일본법정으로부터 받은 어떤 판결에 대해서도 일본 관계당국에 제심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것은 그 국민이 원고나 피고로서 제청을할 수 없는 어떤 소추에서라도 적용되어야 한다. 일본정부는 해당국민이 그러한 어떤 재판에 의해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그 사람을 재판을 하기 전의 상태로 원상복구시켜 주도록 하거나, 그 사람이 공정하고 정당한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제18조
(a) 전쟁 상태의 개입은, (채권에 관한 것을 포함한) 기존의 의무 및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금전 상의 채무를 상환할 의무, 그리고 전쟁 상태 이전에 취득된 권리로서, 일본의 정부나, 그 국민들이 연합국의 한 나라의 정부나, 그 국민들에게, 또는 연합국의 한 나라의 정부나, 그 국민들이 일본의 정부나, 그 국민들에게 주어야 하는 권리에 영항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쟁 상태의 개입은 전쟁 상태 이전에 발생한 것으로, 연합국의 한 나라의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해, 또는 일본 정부가 연합국의 한 나라의 정부에 대해 제기하거나, 재제기할 수 있는 재산의 멸실이나, 손해 또는 개인적 상해나, 사망으로 인한 청구권을 검토할 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항의 규정은 제14조에 의해 부여되는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
(b) 일본은 전쟁 전의 대외채무에 관한 책임과, 뒤에 일본의 책임이라고 선언된 단체들의 채무에 관한 책임을 질 것을 천명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그러한 채무의 지불재개에 대해 채권자들과 협상을 시작하고, 전쟁 전의 다른 청구권들과 의무들에 대한 협상을 촉진하며, 그에 따라 상환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의향을 표명한다.
제19조
(a)일본은 전쟁으로부터 발생했거나, 전쟁상태의 존재로 말미암아 취해진 조치들로부터 발생한 연합국들과 그 국민들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모든 청구권을 포기하는 한편, 본 조약이 발효되기 전에 일본 영토 내에서 연합국 군대나 당국의 존재나 직무 수행 또는 행동들로부터 생긴 모든 청구권을 포기한다.
(b)앞에서 언급한 포기에는 1939년 9월 1일부터 본 조약 효력 발생 시까지의 사이에 일본의 선박에 관해서 연합국이 취한 조치로부터 생긴 청구권은 물론 연합국의 수중에 있는 일본 전쟁포로와 민간인 피억류자에 관해서 생긴 모든 청구권 및 채권이 포함된다. 다만 1945년 9월 2일 이후 어떤 연합국이 제정한 법률로 특별히 인정된 일본인의 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
(c)일본정부는 또한 상호 포기를 조건으로, 정부간의 청구권 및 전쟁 중에 입은 멸실 또는 손해에 관한 청구권을 포함한 독일과 독일 국민에 대한(채권을 포함한) 모든 청구권을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위해서 포기한다. 다만, (a)1939년 9월1일 이전에 체결된 계약 및 취득한 권리에 관한 청구권과, (b)1945년 9월 2일에 일본과 독일 간의 무역 및 금융의 관계로부터 생긴 청구권은 제외한다. 그러한 포기는 본 조약 제16조 및 제20조에 따라 취해진 조치에 저촉되지 않는다.
(d)일본은 점령 기간 동안, 점령당국의 지시에 따라 또는 그 지시의 결과로 행해졌거나, 당시 일본법에 의해 인정된 모든 작위 또는 부작위 행위의 효력을 인정하며, 연합국 국민들에게 그러한 작위 또는 부작위 행위로부터 발생하는 민사 또는 형사 책임을 묻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제20조
일본은 1945년 베를린 회의의 협약 의정서에 따라 일본 내의 독일 재산을 처분할 권리를 가지게 되는 제국이 그러한 재산의 처분을 결정하거나,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그러한 재산이 최종적으로 처분될 때까지 그 보존 및 관리에 대한 책임을 진다.
제21조
중국은 본 조약 제25조의 규정에 관계없이, 제10조 및 제14조(a)2의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한국은 제2조, 제4조, 제9조 및 제12조의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2.6. 분쟁 해결
제22조본 조약의 어떤 당사국이 볼 때 특별 청구권 재판소나, 다른 합의된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본 조약의 해석 또는 실행에 관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 그러한 분쟁은 어떤 분쟁 당사국의 요청에 의해 그러한 분쟁에 대한 결정을 얻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된다. 일본과 아직 국제사법재판소 규정상의 당사국이 아닌 연합국은 각각 본 조약을 비준할 때에, 그리고 1946년 10월 15일의 국제연합 안전보장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특별한 합의 없이, 이 조항에서 말하는 모든 분쟁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전반적인 관할권을 수락하는 일반 선언서를 동 재판소 서기에게 기탁한다.
2.7. 최종
제23조(a)본 조약은 일본을 포함하여 본 조약에 서명하는 나라에 의해 비준된다. 본 조약은 비준서가 일본에 의해 그리고 호주, 캐나다, 실론, 프랑스,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필리핀, 영국과 북아일랜드 그리고 미국 중 가장 중요한 점령국인 미국을 포함한 과반수에 의해 기탁되었을 때, 그것을 비준한 모든 나라들에게 효력을 발한다.
(b)일본이 비준서를 기탁한 후 9개월 이내에 본 조약이 발효되지 않는다면, 본 조약을 비준한 나라는 모두 일본이 비준서를 기탁한 후 3년이내에 일본정부 및 미국정부에 그러한 취지를 통고함으로써 자국과 일본과의 사이에 본 조약을 발효시키게 할 수 있다.
제24조
모든 비준서는 미국정부에 기탁해야 한다. 미국정부는 제23조(a)에 의거한 본 조약의 효력 발생일과 제23조(b)에 따라 행해지는 어떤 통고를 모든 서명국에 통지한다.
제25조
본 조약의 적용상, 연합국이란 일본과 전쟁하고 있던 나라들이나, 이전에 제23조에 명명된 나라의 영토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던 어떤나라를 말한다. 다만, 각 경우 관련된 나라가 본 조약에 서명하여, 본 조약을 비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본 조약은 제21조의 규정에 따라, 여기에 정의된 연합국이 아닌 나라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나, 소유권 또는 이익도 주지 않는다. 아울러 본 조약의 어떠한 규정에 의해 앞에서 정의된 연합국이 아닌 나라를 위해 일본의 어떠한 권리나 소유권 또는 이익이 제한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
제26조
일본은 1942년 1월 1일의 국제연합 선언문에 서명하거나, 동의하는 어떤 국가와, 일본과 전쟁 상태에 있는 어떤 국가, 또는 이전에 본 조약의 서명국이 아닌 제23조에 의해 명명된 어떤 국가의 영토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어떤 나라와 본 조약에 규정된것과 동일하거나, 다만 이러한 일본의 의무는 본 조약이 최초로 발효된지 3년 뒤에 소멸된다. 일본이 본 조약이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주는 어떤 국가와 평화적인 해결을 하거나, 전쟁 청구권을 처리할 경우, 그러한 이익은 본 조약의 당사국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제27조
이 조약은 미국 정부의 기록에 기탁된다. 동 정부는 그 인증 등본을 각 서명국에게 교부한다.
이상의 증거로, 아래 서명자의 전권 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했다.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동등하게 정본인 영어, 프랑스어 및 스페인어 및 일본어로 작성했다.
아르헨티나 대표
Hipólito J. PAZ
오스트레일리아 대표
Percy C. SPENDER
벨기에 대표
Paul VAN ZEELAND SILVERCRUYS
볼리비아 대표
Luis GUACHALLA
브라질 대표
Carlos MARTINS
A. DE MELLO-FRANCO
캄보디아 대표
PHLENG
캐나다 대표
Lester B. PEARSON
R.W. MAYHEW
실론 대표
J.R. JAYEWARDENE
G.C.S. COREA
R.G. SENANAYAKE
칠레 대표
F. NIETO DEL RÍO
콜롬비아 대표
Cipríano RESTREPO JARAMILLO
Sebastián OSPINA
코스타리카 대표
J. Rafael OREAMUNO
V. VARGAS
Luis DOBLES SÁNCHEZ
쿠바 대표
O. GANS
L. MACHADO
Joaquín MEYER
도미니카공화국 대표
V. ORDÓÑEZ
Luis F. THOMEN
에콰도르 대표
A. QUEVEDO
R.G. VALENZUELA
이집트 대표
Kamil A. RAHIM
엘살바도르 대표
Héctor DAVID CASTRO
Luis RIVAS PALACIOS
에티오피아 대표
Men YAYEJIJRAD프랑스 대표
SCHUMANN
H. BONNET
Paul-Émile NAGGIAR
그리스 대표
A.G. POLITIS
과테말라 대표
E. CASTILLO A.
A.M. ORELLANA
J. MENDOZA
아이티 대표
Jacques N. LÉGER
Gust. LARAQUE
온두라스 대표
J.E. VALENZUELA
Roberto GÁLVEZ B.
Raúl ALVARADO T.
인도네시아 대표
Ahmad SUBARDJO
이란 대표
A.G. ARDALAN
이라크 대표
A.I. BAKR
라오스 대표
SAVANG
레바논 대표
Charles MALIK
라이베리아 대표
Gabriel L. DENNIS
James ANDERSON
Raymond HORACE
J. Rudolf GRIMES
For the Grand Duchy of Luxembourg:
Hugues LE GALLAIS
멕시코 대표
Rafael DE LA COLINA
Gustavo DÍAZ ORDAZ
A.P. GASGA
네덜란드 대표
D.U. STIKKER
J.H. VAN ROIJEN
뉴질랜드 대표
C. BERENDSEN
니카라과 대표
G. SEVILLA SACASA
Gustavo MANZANARES노르웨이 대표
Wilhelm Munthe MORGENSTERNE
파키스탄 대표
ZAFRULLAH KHAN파나마 대표
Ignacio MOLINO
José A. REMON
Alfredo ALEMÁN
J. CORDOVEZ
페루 대표
Luis Oscar BOETTNER필리핀 대표
Carlos P. RÓMULO
J.M. ELIZALDE
Vicente FRANCISCO
Diosdado MACAPAGAL
Emiliano T. TIRONA
V.G. SINCO
사우디아라비아 대표
Asad AL-FAQIH시리아 대표
F. EL-KHOURI
터키 대표
Feridun C. ERKIN남아프리카 연방 대표
G.P. JOOSTE영국과 아일랜드 대표
Herbert MORRISON
Kenneth YOUNGER
Oliver FRANKS
미국 대표
Dean ACHESON
John Foster DULLES
Alexander WILEY
John J. SPARKMAN우루과이 대표
José A. MORA베네수엘라 대표
Antonio M. ARAUJO
R. GALLEGOS M.베트남국 대표
T.V. HUU
T. VINH
D. THANH
BUU KINH
일본 대표
요시다 시게루 (吉田 茂)
이케다 하야토 (池田 勇人)
토마베치 기조 (苫米地義三)
호시지마 니로 (星島二郎)
토쿠가와 무네요시 (徳川宗敬)
이사토 이치마다 (一万田尚登)
3. 조약에 의해 규정된 국가들
3.1. 특별 상태국
Special Status Nations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비준하기에 앞서, 이 조약을 주도한 미국 측은 1947년 8월 4일자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1757호와 1951년 1월 9일 2136호를 통해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 상태국을 정의했다. 이들 국가에는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3], 발트 3국[4], 태국, 조선[5]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6]
3.2. 중국
제21조 중국은 본 조약 제 25조의 규정에 관계없이, 제10조 및 제14조(a)2의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 한국은 제2조, 제4조, 제9조 및 제12조의 이익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
3.3. 조약에 준거한 연합국
이 조약에서는 제 14조에 따른 배상 문제 또한 논의되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조인한 일부 연합국들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액을 이 조약을 통해 산정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국가 (45개국)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아르헨티나 | 호주 | 벨기에 | 볼리비아 | 브라질 합중국 |
캄보디아 | 캐나다 자치령 | 칠레 | 콜롬비아 | 코스타리카 |
쿠바[7] | 도미니카 공화국 | 에콰도르 | 이집트 왕국 | 엘살바도르 |
에티오피아 제국 | 프랑스 | 그리스 왕국 | 과테말라 | 아이티 |
온두라스 | 이란 제국 | 이라크 왕국 | 라오스 왕국 | 레바논 |
라이베리아 | 룩셈부르크 | 멕시코 | 네덜란드 | 뉴질랜드 |
니카라과 | 노르웨이 | 파키스탄 자치령 | 파라과이 | 페루 |
사우디아라비아 | 남아프리카 연방[8] | 실론 자치령 | 시리아 | 터키 |
영국 | 미국 | 우루과이 | 베네수엘라 | 베트남국[9] |
※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 이후 일본과 강화조약을 체결한 국가 (2개국)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인도네시아[10] | 필리핀[11] |
※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는 참가하였으나 강화조약은 체결하지 않은 국가 (3개국)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 폴란드 공화국 |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12] |
※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 초청받았으나 불참한 국가 (3개국)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버마 연방[13] | 인도[14] |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 |
※ 그 외 국가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국가명 |
중화민국[15] | 이탈리아[16] | 포르투갈[17] |
4. 일본의 영토 및 독도 문제
일본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 그 근거 중 하나로 이 조약을 활용한다. 한국의 독립과 영토에 관련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renounces all right, title and claim to Korea, including the isls of Quelpart, Port Hamilton and Dagelet.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
사실 1947년에 작성된 초안에는 위에 언급된 섬들과 함께 독도도 포함되었다. 이는 연합군이 제작한 지도 등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1949년의 개정판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 항목으로 이전되었다. 그리고 1951년 6월의 개정판에서는 일본의 영토에 대한 항목이 통째로 삭제되었고, 한국 정부는 독도와 파랑도(이어도)를 문장에 추가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최종판에서는 위에 적혀있는 문장으로 동결되었다. 즉, 이 조약에는 다른 굵직한 섬들은 논의되었음에도 정작 양국 사이에 분쟁이 오가던 독도만은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문제는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러스크 서한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수정안 등을 볼 때 미국은 이 조항을 통해 독도를 한국에 귀속시킬 생각이 없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일단 태평양 전쟁의 승전국은 미국이며, 따라서 연합국이 주체인 미국이 전후 일본의 영토 문제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의 일방적 조약 수정에 연합국들은 항의했으며, 심지어 캐나다는 '일본의 처벌 정도가 약하며 이를 수정하기 위해 일본의 4개 섬을 제외한 모든 섬을 일본 영토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스크 서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을 참조.
상황을 보았을 때 미국은 1949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개정할 당시 한국이 소련의 영향력 하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독도라도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일본에 넘겨주려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도는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한국이 위태로워 보이자 더욱 노골화했다. 그러나 전선이 안정화되고 휴전이 가시화되자 이러한 입장을 은연중에 철회하고 조약 체결 무렵에는 SCAPIN677호 포고령의 입장으로 돌아갔다고 추측된다. 이는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18]
여기에서 일본 측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SCAPIN677호 포고령에는 일본의 영토를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문구가 존재하며, 샌프란시스코 조약상에서 일본이 돌려주어야 한다고 명기된 한국의 섬에는 독도가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독도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논리대로라면 조약에 언급된 울릉도, 제주도 등 3~4개의 섬을 제외한 모든 섬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울릉도가 언급되었으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기에 울릉도를 반환받으면서 독도도 반환받았다는 입장을 견지한다.[19]
끝으로 일본이 러스크 메모와 SCAPIN677호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는 독도가 일본령으로 결정되었다는 명시적인 내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연합군 사령부의 모든 지령을'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Article 19.(d)항 조항이 있을 뿐이다. 일본은 위 포고령에서 "패전국 일본 영역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된 구절을 빌미로 677호에서 일본 영역에서 제외된 독도의 일본령 잔류를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명령의 6조는 단순히 677호 이후로도 얼마든지 영토를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이것으로 인해 해당 명령이 무효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해당 명령의 5조에서는 이 명령은 연합군 사령부의 모든 지시, 명령에 대해서 유효하다고 하였다. 만약 사령부가 이를 수정하려 한다면 추가로 명령을 내려 수정했을 것이지만 그런 명령은 군정 종료 당시까지 내리지 않았다.[20]
결과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대로 Article 19.(d)에는 677호를 비롯한 점령군 당국의 모든 조치를 인정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포고 당시에는 영역으로서의 의미가 없었던 677호가 51년의 최종 합의된 이 조항으로 이때부터 비로소 패전국 일본의 영역획정의 준거자료로 활용되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한마디로 의미가 추가된 것이다. 즉 677호로 확정된 영토는 강화조약 체결 당시까지도 유효하였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19.(d)조에 의해서 완전히 확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도는 이미 677호 명령에 의해 일본령이 아니게 되었고 이것이 확정되었으니 일본은 이를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Treaty of Peace with Japan, San Francisco, Article 19 (d) :
Japan recognizes the validity of all acts and omissions done during the period of occupation under or in consequence of directives of the occupation authorities or authorized by Japanese law at that time and will take no action.
점령기간 동안 점령군 당국의 지령하에 또는 그 지령 결과로 실시된 모든 조치 및 부작위(不作爲)의 효력을 인정한다.
Japan recognizes the validity of all acts and omissions done during the period of occupation under or in consequence of directives of the occupation authorities or authorized by Japanese law at that time and will take no action.
점령기간 동안 점령군 당국의 지령하에 또는 그 지령 결과로 실시된 모든 조치 및 부작위(不作爲)의 효력을 인정한다.
SCAPIN 제677호 제5조
The definition of Japan contained in this directive shall also apply to all future directives, memoranda and orders from this Headquarters unless otherwise specified therein.
본 지령내에 들어있는 일본의 정의는 달리 지령내에서 특별히 규정하지 않는 한 본 총사령부에서 발동하는 장차의 모든 지령, 각서 및 명령에 적용된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일본은 미국의 압박으로 한국에 독립 축하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원금을 제공하는 등 한일관계에 있어 한국의 발전이라는 요소를 중시하던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어업협정 등으로 타협하고 독도에 대한 실력행사를 포기했고 이 상태로 이미 수십 년이 지나버린 상황이다. 국제재판소에서 영토분쟁을 중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실효지배 여부이기 때문에 조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승전국인 미국이 독도를 일본에 돌려주라고 안 했으며 이미 7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났기에 한국의 영토이다. 조약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이것이 무력 점거가 아니고서야 외교・행정적 절차로 일본이 독도에 일장기를 꽂는 시나리오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The definition of Japan contained in this directive shall also apply to all future directives, memoranda and orders from this Headquarters unless otherwise specified therein.
본 지령내에 들어있는 일본의 정의는 달리 지령내에서 특별히 규정하지 않는 한 본 총사령부에서 발동하는 장차의 모든 지령, 각서 및 명령에 적용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명백히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인 1951년 12월 5일에 SCAPIN 제677호가 발령되면서 쐐기를 꽂았다.
일본의 영유권 주장 반론
5. 관련 문서
- 테헤란 회담
- 카이로 회담
- 카이로 선언
- 얄타 회담
- 포츠담 회담
- 포츠담 선언
- 모스크바 3상회의
- 독도
- 평화선 - 위의 한국일보 기사 댓글에서는 이승만이 평화선을 세우고 일본에 강경하게 나간 이유가 남한이 샌조약의 조약 서명국으로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 연합군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
- 러스크 서한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 한일기본조약
[1] 조약 원문에서 일본어 부분에 있는 공식적인 명칭이다.[2] 「サンフランシスコ条約」「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条約」 등으로도 불린다.[3] 전쟁 연간에는 이탈리아 왕국, 1947년은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 정부.[4]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나치 독일령 연간에는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로 나치스 정부에서 분류.[5] 대한민국은 자국 헌법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아닌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하고 있으며 조선총독부와의 법률적 연속성을 부정하지만, 1910년 병합조약을 인정하고 전후 미군정으로 한반도를 지배한 연합국인 미국은 그 주장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초안에는 분명히 대한민국도 서명 참가국에 있었지만, 요시다 시게루가 100만이 되는 재일 한국인의 배상 요구로 인해 일본이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대미 로비를 시도하였고, 이에 덜레스 등 미국 일부 고관들이 납득한 이래 미끄러졌다는 주장이 있다. #, 일부에서는 요시다 시게루의 로비 명분인 재일 한국인 위험요소(?)에 소련-김일성정부-북한 스파이가 포함되었기 때문에 냉전 체제를 준비하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만 미국 측에서는 배상 주장을 철회하는 조건으로 참여시키는 의견이 있었으나 일본과 영국이 영일동맹의 잔향? 각각 한국이 전후에 해방된 국가라는 이유와 연합국이 아니며 중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반대한 사실은 존재한다.#[6] 인터넷, 특히 독립운동사에 대한 역사수정주의 경향이 나타나는 일부 보수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서방 연합국 측에서 추축국에 부역했다고 생각한 나라들'(하필이면 이탈리아는 구 추축국이었고, 오스트리아도 안슐루스 이후 종전까지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독일 본토 NSDAP의 똘마니로서 전쟁범죄에 상당수 가담하였고, 발트 3국도 시민사회에서 '풀뿌리 부역자'가 많았다. 반대로 핀란드와 이탈리아는 추축국이었지만 손절 및 시민들의 저항 등으로 사실상 탈추축국이 되었다) 을 묶은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엄밀한 학술적 근거는 없다.#(해당 citation은 부흥 카페 회원만 열람가능) 특별상태국에 대해 1757호와 2136호에는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에 속하지 않는 제4분류의 국가들로만 적혀있을 뿐, 이 두 지령(SCAPIN)은 물론 관련된 지령 어디에도 추축국에 부역한 국가들이었다고 명시하는 등의 부연 설명은 없다. 당장 SCAPIN 2136호에 특별 상태국으로 분류된 나라들에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 실론(현 스리랑카. 인도제국이라는 명백하게 추축군에 소속된 적 없이 온전한 연합군 소속이었던 국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7] 공산 혁명 발생 이전.[8] 舊 남아프리카 아파르트헤이트 정부.[9] 남베트남 정부이며, 북베트남(월맹) 정부는 강화 회의에 초청되지 아니함. 당시는 베트남 공화국 수립 이전으로, 프랑스의 괴뢰국인 베트남국이 남부에,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북부에 있었다.[10] 배상금 문제로 인하여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비준을 거부하여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서는 강화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추후 1958년 1월에 일본과 배상금 문제를 매듭짓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였다.[11] 배상금 문제로 이견을 보이다가 1956년 5월에 배상금 문제가 합의된 후 그해 7월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비준하였다.[12] 조약 내용이 미국과 영국의 입장을 지나치게 반영한다는 이유를 문제삼아 체결을 거부하였으며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오늘날까지 일본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과 러시아 두 나라의 쿠릴 열도 분쟁이 진행 중이다.[13] 오늘날의 미얀마[14] 인도는 회의를 주최한 연합국(승전국)이 전쟁 책임을 무조건 일본에만 지운다는 이유로 반발하여 회의에 불참하였다. 그 대신 인도는 1952년 6월, 일본과 별도의 강화조약을 체결하였다.[15] 장제스의 대만 정부이며, 중국은 엄연한 연합국임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의 중화민국 정부와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모두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에 초청받지 못했다. 다만 대만 정부는 1952년 4월 중일화평조약(공식적으로는 Sino-Japanese Peace Treaty)을 통하여 일본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972년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이 중일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자, 중화민국 정부가 일본과의 단교 조치를 취함으로써 효력이 중지되었다.[16] 반파시스트주의자인 피에트로 바돌리오 내각이 종전 직전인 1945년 7월 14일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지만, 승전국가로 볼 수 없다는 연합국의 결정으로 인해 초청받지 못했다.[17] 태평양 전쟁 당시 자국의 영토였던 동티모르가 일본의 침략을 받았으나,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한 까닭에 초청받지 못했다.[18] SCAPIN677호의 주요 내용은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패전국 일본이 토해내야 할 주요 섬들 중 일부를 열거한다.[19] 비슷한 예시로 "제주도"에는 부속도서인 우도와 가파도, 마라도와 가거도 등의 섬들이 포함된다.[20] 677호 이후로는 SCAPIN1033이 독도 주변 12해리에 대해서 일본의 항해금지를 규정한다. 즉, 독도 주변을 한국의 영해로 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