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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19:38:01

제네트릭스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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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3. 운용 방식4. 결과5. 여담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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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네트릭스 계획(Project Genetrix)은 1950년대 미국의 정찰 작전이다. 기상 관측용으로 위장한 풍선이 제트기류를 타고 소련 영공을 통과하며 고고도에서 첩보 사진을 촬영했다. 1956년 1월 10일부터 정찰 임무를 시작했으나, 낮은 회수율과 소련의 항의로 27일만에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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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구도가 본격화되면서, 미국은 소련의 군사력을 크게 경계했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첩보 활동을 강화했으나, 소련은 매우 폐쇄적인 통제 사회여서 첩보원이 내부에 침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많은 첩보 작전이 고안되었다. 제네트릭스 계획도 그 중 하나였다.

미군은 1940년대부터 풍선을 활용한 정찰 기구를 개발해왔다. 풍선 정찰 사업은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제네트릭스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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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운용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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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는 정찰 풍선을 기상 관측 장비로 위장했다. 실제로 당시 미군은 세계 각지에서 기상 관측 임무를 수행중이었고, 항공 촬영에서 상당수는 구름이 같이 찍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변명에 소련이 속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뺌할 정도는 될 것으로 보았다.

정찰 풍선의 발사 지점은 독일, 터키, 노르웨이, 영국 등 NATO 회원국의 협조를 받아 마련되었다. 미국 공군 기상관측부대로 위장한 운용인원들이 기상 상황을 고려해 풍선을 발사했다. 맞는 기류를 탄다면 7~10일에 걸쳐 동유럽, 러시아, 중국을 지날 수 있었다.

풍선 하부에는 정찰 장비등이 포함된 탑재체가 달렸다. 장비의 제어는 대부분 타이머에 의존했다. 장비가 켜지면 카메라는 일정한 시간마다 사진 촬영을 반복했다. 비교적 정밀한 첩보 사진을 촬영하는 주 카메라와, 좌표 계산을 위해 주변 지형을 넓게 촬영하는 보조 카메라가 함께 작동했다.

공산권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신호기가 켜졌다. 일본, 알래스카의 미군 기지에서 풍선 신호를 수신하면 C-119를 보냈다. 항공기가 풍선을 확인하고 신호를 보내면, 풍선이 분리되고 탑재체의 낙하산이 펼쳐졌다. 조종사는 떨어지는 탑재체의 낙하산 줄을 낚아채는 고난도 비행을 해야 했다.

이러한 방식은 날씨와 운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최상의 상황에서도 높은 회수율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미국은 풍선을 2500개 발사하면 500~600개 정도가 태평양의 회수 구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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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결과

파일:a563.jpg
1956년 1월 10일부터 미국은 공산권을 향해 정찰 풍선을 날렸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회수율을 보였다. 예상보다 많은 풍선이 중도에 추락하거나 격추되었다. 작전 기간 동안 발사된 516개 중에서 44개만이 회수되었으며, 사용 가능한 사진이 촬영된 것은 32개였다.
소련이 공식적으로 항의하고 비행 중단을 요구하자, 미국은 2월 6일 풍선 발사를 중단했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기상 관측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소련에도 기상 관측 장비 반환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낮은 회수율과 외교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부나마 소련 내부 촬영에 성공하며 고고도 정찰의 위력을 확인했다. 제네트릭스 이후 소련 영공 침투 작전은 같은 시기에 개발 중이던 U-2 정찰기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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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고고도 풍선에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고해상도 카메라와 특수 필름, 공중 회수 기술은 초기 정찰 위성에도 적용되었다.

소련은 추락한 풍선 장비를 다수 회수했는데, 특히 사용되지 않은 특수 필름은 루나 3호에 장착해 세계 최초로 달 뒷면을 촬영하는데 사용되었다.

제네트릭스 계획은 기밀 작전이었기 때문에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은 풍선을 목격해도 정체를 알 수 없었고, 추락한 잔해를 발견해도 정부 요원들이 아무 설명 없이 회수해갔다. 이는 UFO 괴담에도 영향을 주었다.

6.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