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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12:01:43

카멀라 해리스/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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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7월3. 8월4. 9월

1. 개요

I know Donald Trump's type.
저는 도널드 트럼프같은 타입을 잘 압니다.
대통령 선거 연설에서 매번 운을 뗄 때마다 말하는 발언[1]

미국의 제49대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는 당초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던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의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CNN이 주최하는 TV 토론회에서 바이든이 자신의 전임자이자 이번 대선 도전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상대로 심각하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도널드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까지 터져 더욱이 트럼프에게 밀리며 민주당 내에서는 후보 교체론이 갈수록 대두됐다.[2]

결국 해당 사건이 터진 지 일주일 만인 7월 21일, 조 바이든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며 해리스 지지를 표명했다. # 이후 사퇴한지 약 2시간 뒤 해리스가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바이든의 선거캠프를 물려받았다. 바이든 캠프를 물려받았기에 과반수의 선거인을 확보하여 사실상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이 확실시 되었고, 8월 22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식 후보로 추대되었다.[3] 해리스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를 꺾고 당선될 경우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의 아시아계 미국인 대통령, 두번째 흑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4]

2. 7월

바이든의 지지를 받은 이후 각 주별 민주당 대의원 및 주요 민주당 정치인들이 차례로 해리스에 대한 공식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을 대신해 트럼프와 맞붙을 후보로 당의 추대를 받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8월 1일부터 7일까지 진행되는 온라인 투표를 통해 대선 후보를 공식적으로 선출할 예정이며, 해리스 외 다른 후보는 나서지 않았다.

7월 22일, 바이든 대선 캠프를 사실상 거의 그대로 인수하여 대선 캠프를 출범했으며 하루만에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을 모두 확보하였다. 당초 바이든을 지지했던 대의원들인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 당내 주요 거물들은 이미 진작 해리스 지지선언을 마친 상태다.[5]

7월 23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선을 이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방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는 유세 일정을 이유로 면담하지 않기로 했고, 25일 결국 네타냐후를 만나서는 "나는 가자에 침묵하지 않겠다"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에 대해 보다 강경한 입장임을 명확히 했다. #

7월 한달간 3억 1000만달러(4226억원)의 선거자금을 모금해 같은 달 1억 3870만달러(1891억원)를 모았다고 밝힌 트럼프 캠프를 크게 앞질렀다.#

3. 8월

8월 2일, 부통령 후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났다. 부통령 후보는 백인 남성이 지명될 예정이며 이번 주말에 해리스가 러닝메이트 후보 6명과 면접을 가진다. 후보군은 앤디 배쉬어, J. B. 프리츠커, 조시 샤피로, 팀 월즈, 마크 켈리, 피트 부티지지이며 정황상 러스트벨트 지역인 펜실베이니아를 연고로 하는 조시 셔피로가 유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대교 신자이자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 적이 있는 셔피로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일부 존재하고 있다.##

8월 3일, 온라인 투표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기 위한 대의원 수를 확보해 사실상 공식 후보 지명을 받았다.[6]

8월 5일, 버지니아에 거주하는 66세 남성이 해리스를 비롯한 정계 인사들에게 잔인한 살해 협박을 보내 FBI에게 체포당했다. #

8월 6일 아침, 팀 월즈를 부통령 후보로 발표했다. # 그리고 같은 날 오후 민주당이 해리스와 월즈를 공식 후보로 선정했음을 발표했다. #

8월 7일,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친팔레스타인 운동가들이 구호를 외치며 연설을 방해하자 "도널드 트럼프가 이기길 원한다면 말하고, 아니라면 내가 말하겠다"며 강경히 대응했다. #

8월 9일, 애리조나 글렌데일 유세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또다시 연설을 방해하자 민주적인 목소리 존중을 이야기하며 "내 입장은 늘 명확했고 지금이 휴전협상과 인질협상을 할 때"라고 입장을 밝혔다. #

8월 10일, 라스베이거스 유세에서 에 대한 연방 소득세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

8월 11일, 애리조나 피닉스 유세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학교 폭격에 대해 '또다시 너무나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지 않게 할 중요한 의무가 있다'라며 규탄했다. #

8월 14일, 바이든의 공약 답습에서 벗어나 독자적 정책안들을 16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해리스 캠프가 밝혔다. 공개된 것 중 주된 내용은 기업 차원의 식료품 가격 부풀리기 차단, 처방약과 주택 가격 안정화 등이다. #

8월 15일, 메릴랜드에서 바이든과 첫 공동 유세를 진행했다. #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짧게 인사를 전하고 바이든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의 연설을 경청했다.

8월 20일, 위스콘신 밀워키의 파이서브 포럼에서 유세를 진행했다. 몇 주 전 공화당 전당대회 장소였던 이곳을 가득 채우며 해리스 캠프는 트럼프의 계속된 관중 수 언급 공세에 정면 돌파했다. #

8월 22일, 전당대회 마지막 날 40분간 후보 수락 연설을 펼쳤다. #[7]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미 대선후보 수락 행사에 가까운 심플한 행사가 도리어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수락식에서 쇼맨십을 보이고 1시간 넘게 연설하며 화려하게 진행했기 때문이다.[8]

8월 23일,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인 애리조나에서 케네디 가문 중 한명이자 무소속 대선후보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트럼프 지지 선언 및 10개 경합주 후보등록을 취소하며 단일화를 하였다. 다행히도 케네디 가문은 바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가문의 수치'라 비난하면서 절연을 선언, 해리스 지지선언을 하면서 민주당 표 이탈에는 문제가 없지만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에 실망해 관망하는 중도층의 표를 어떻게 가져오는지가 관건이 되었다.[9]

8월 26일, 조지 W. 부시, 존 매케인, 밋 롬니 등을 보좌한 공화당 보좌관 238명이 해리스 지지 선언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

8월 29일, 해리스와 월즈가 CNN과 진행한 독점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1 #2 #3

8월 31일, 트럼프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했다가 촬영 금지 구역에서 홍보 영상을 찍으려 해 국립묘지 직원과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X를 통해 공개했다. #

4. 9월

9월 2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바이든과 함께 유세를 진행하며 역사적 철강회사 US스틸일본제철에 매각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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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트럼프와의 첫 대선 토론에서 선방하면서 그동안 지적받던 불안한 토론 실력을 일부 불식시켰다.[10] 그리고 토론이 끝난 직후 테일러 스위프트가 해리스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9월 15일, 트럼프가 또다시 암살당할뻔한 사건이 벌어진 뒤 트럼프가 안전해서 다행이고 폭력은 설 자리가 없다며 다시금 암살 미수를 규탄했다. #


[1] 해리스는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검사 시절에 트럼프와 같은 타입의 범죄자들을 자주 상대해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가 범죄자라고 조롱하는 것. 이후 해당 발언은 해리스를 상징하는 구호로 미 전역에서 인기를 타게 되었다.[2] 실제로 트럼프 암살 미수 사건 이후 바이든은 모든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에게 밀리는 상황이었다.[3] 이로써 민주당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이후로 8년만에 다시 여성 후보를 내게 된다.[4] 거기에 더해,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그녀의 남편인 유대계 더그 엠호프는 미국 최초의 퍼스트 젠틀맨으로 기록될 것이다.[5] 바이든 대통령이 사퇴 선언을 한 이후 곧장 해리스 부통령을 공개 지지했던 다른 민주당 인사들과 달리 버락 오바마는 며칠간 아무 발언을 하지 않아 해리스를 대선 후보로 탐탁지 않아한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었지만, 26일 "카멀라가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하며 우려를 일축했다. #[6] 상술했듯 공식적으로 투표는 7일까지 진행되지만 이미 끝난 셈이다.[7] 지금까지 다른 민주당 미 대통령 후보와는 다르게 신냉전 상황인만큼 군인 표심을 얻기 위해 미군 확충을 공약하는 모습을 보였고, 중산층이야말로 미국 경제의 핵심 인원인만큼 가격통제를 통해 물가 상승을 줄여 중산층 진입을 쉽게하여 중산층 파이를 늘리겠다는 경제공약도 내세웠다.[8] 한편 트럼프는 해리스의 수락연설을 트루스 소셜에 생중계하듯 글을 올리며 "3년 반 동안 아무것도 안한 여자가 지금와서 뭘 하겠다는거냐, 중산층을 죽인건 해리스였다"라며 중계하는 내내 폄하하였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거나 "그녀는 조 바이든에게서 대통령 후보 자리를 빼앗은 찬탈자"라며 막말을 퍼부었다.[9]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의 지지층은 온건 공화당 성향 지지층도 겹쳐 있기 때문에 당연하지만 강경 공화당 성향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10] 해리스는 이 날이 트럼프를 현실에서 처음 대면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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