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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8:00:18

천하무적 야구단

파일:KBS 2TV 로고.svg 토요일 저녁 6시대 프로그램
스펀지
(2003년 11월 8일 ~ 2009년 4월 18일)
천하무적 토요일
(2009년 4월 25일 ~ 2010년 12월 25일)
명받았습니다
(2011년 1월 1일 ~ 2011년 5월 28일)
파일:external/www.finalfantasia.com/3ajUORVbKMShL6z69otWYbR7ABij7oS.jpg

1. 개요2. 전개
2.1. 꿈의 구장 프로젝트2.2. 경기 전적
3. 멤버4. 포지션 경쟁5. 종영 이후 리그 참여6. 기타7. 관련 문서

1. 개요

KBS 2TV를 통해 토요일 오후 6시 30분부터 7시 55분까지 방영되었던 예능 프로그램이자 아마추어 사회인 야구단. 해피선데이 같은 예능 묶음 프로그램이었던 '천하무적 토요일'의 코너로 시작했지만, 다른 코너였던 삼촌이 생겼어요[1]가 빠르게 종영하면거 사실상 이 프로그램이 천하무적 토요일의 단독 코너로 방영하는 꼴이 되었다.[2] 이 코너의 종영과 함께 천하무적 토요일도 바로 종영되었으며, 그 뒤 명받았습니다를 거친 뒤, 자유선언 토요일로 넘어갔다가 불후의 명곡을 단독 방송하는 걸로 바뀌었다.

자사 케이블 채널 KBS N SPORTS를 통해 '풀 매치'라고 실제 경기를 하는 경기 부분 위주로 정규방송에서는 편집된 부분들까지 다 추가해 재편집해서 90분 분량으로 재방송하고 있다. 일종의 감독판.

2008년 한국 야구 대표팀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이듬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자 당시 전국에는 야구 붐이 일었는데, 이런 야구의 폭발적인 인기와 맞물려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을 때는 한 때 10% 이상의 시청률이 꾸준히 나와준 적도 있었다.[3] 경쟁 프로그램들인 무한도전놀라운 대회 스타킹이 각각 16 ~ 20%와 10 ~ 15%를 차지하고 있기에 사실상 경쟁까지 가능했으며, 종전에 방영되던 스펀지[4]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보여줬었다. 하지만 전성기가 지난 뒤인 2010년 8월 이후의 시청률은 잘 하면 5% 이상이고, 못 하면 4% 이하인 수준까지 떨어졌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의 컨셉은 제목 그대로 야구를 하는 것으로, 초기에는 말 그대로 멤버들의 야구팀 구성기로 이루어졌다. 멤버를 영입하거나, 직접 클럽 하우스를 청소하고 이를 꾸미는 모습으로 야구보다는 이들의 야구단 구성 모습 위주로 꾸려졌다. 초기 멤버들로는 김창렬, 이하늘, 임창정, 한민관, 마르코, 마리오가 고정으로 나왔고, 이 이후 멤버들은 초기 멤버들이 직접 섭외한 멤버들이다.

초기 멤버들 대다수가 연예계에 소문난 양아치들이라서 기타 프로그램 갤러리에선 "왜 이렇게 양아치가 많은 거야?"라며 '양아버라'라는 명칭을 붙였다. '혹시 멤버들끼리 야구하다 싸움 나는 거 아냐?'라며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첫 화에서 PD가 "제발 부탁이니 이동 중에 욕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았는지, 결국 품행점수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욕하면 벌점 50점, 촬영 전 날 음주는 벌점 20점, 지각은 분당 벌점 1점, 기타 나쁜 짓은 벌점 10점이 주어지며, 벌점이 100점 이상이 되면 지옥훈련을 받게 된다.[5]

본방과 재방 시청률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재방 시청률이 거진 본방 시청률과 같았다. 일요일 오전 재방의 경우 꾸준히 10%를 넘었었으며, 그건 대세 프로나 가능했던 현상인데...? 그럼 이 프로도 대세 프로였다는 거야...?[6][7] 거기에다 여러 야구용품 회사들이 스폰서를 해 줬다. 대표적인 회사가 데쌍트. 유니폼 일체와 선수 한 명당 글러브 하나씩. 그리고 넥워머를 제공한다. 맥스에서는 야구공을 무제한 제공. 원래 경기용 야구공은 개당 정가 8,000원이다. 야구방망이는 따로 협찬을 받지 않고 멤버들이 직접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하늘이 이스턴 Z2K[8]을 구입한 직후 다들 그 배트를 돌려쓰고 있다. 한민관과 동호만 무게 때문에 학생용 배트를 사용하고 있다.

야구에 관한 룰과 감독, 스태프들간에 운영 등을 간접적으로 만나볼수 있었고, 더 나아가 프로야구를 통해서 유명 야구 선수들과 응원 문화릉 접할수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이 방송으로 본 시청자들이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방송으로서 한국야구계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된 첫번째 프로그램이라 할수 있으며, 이후에 방영되는 최강야구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다.

2. 전개

A급이 자주 바뀐다. 김준은 A급 취급을 받다가[9] 오지호가 오자 찬밥이 되어버렸다. 위키백과에서는 이들은 하나의 팀으로 서술되어 있다. 5월 23일 방송분에서 드디어 조기축구팀을 상대로 한 발야구 게임에서 5:0으로 이겨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받았다.

모처 폐교가[10] "팔릴 때까지 이용해도 좋다" 라는 조건으로 클럽하우스로 쓰기 위해 하루종일 청소까지 다 해놨는데.... 팔렸다.[11] 그래서 임시 클럽하우스는 고깃집 별채가 됐다.

초기 방영분에는 주장이었던 마르코가 야구상식을 상당히 많이 모르는 관계로 팀의 장비를 걸고 야구상식을 맞히는 마르코 퀴즈라는 게 존재했었다. 이걸로 굴삭기까지 얻어서 한민관이 운동장을 다 갈아 엎었지만 클럽하우스가 고깃집 별체로 바뀐 이후로는 이 퀴즈가 없어졌다.

이들의 좌우명은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12]의 줄임말인 난니기모할을 사용한다. 뭐할은 어감이 안 좋다나... 백지영 단장이 취임한 이후 "난 백지영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모든지 할 수 있어"의 줄임말인 난백기모할을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이것과 함께 일타일생(一打一生)이라는 슬로건을 같이 사용한다. 난니기모할이나 난백기모할은 예능적인 장면에서 가끔 나오고 주로 일타일생을 외친다. 일타일생이 좌우명 자리까지 차지

조마조마와의 첫 승 이후 제주도 전지훈련에 가게 되었고, 여기서 제주도 사회인 야구대회에 참여를 결정하게 되면서 그 이후로 팔도 원정을 돌게 된다. 사실상 이 기점으로 프로그램 형식이 야구 경기 위주로 전환되게 되는데, 매주 경기가 방영되면서 매니아 층에서 일반 야구팬들을 흡수하였다. 팔도 원정 초기 이현배와 이경필 코치를 영입하고 서포터즈를 뽑았으며 워스트를 선출해 다음 경기에 선발로 뛰지 못하는 룰을 만들었으나 김성수노라조의 조빈 영입 이후로는 자체적인 선발 경쟁으로 사실상 룰이 없어졌었다. 못하면 바로 다음경기 벤치 신세. 하지만 몇 차례의 새 멤버 영입과 일부 멤버의 이탈을 거치며 다시 워스트 룰이 생겼다. 야구를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채점을 해서 감점이 많은 멤버는 다음 경기 열외.[13] 그런데 수비 부담이 큰 배터리와 일부 내야진에서 감점이 많이 나와서 이 룰에 의미가 있는가가 의문시 된다. 저 룰을 고대로 적용시키면 누굴 갖다놔도 그보다 못하는 팀에서 잘하는 선수를 빼야 하는 꼴이기 때문. 결국 워스트 선정자에게 지옥훈련 미션을 부여하고 해당 미션을 완수할 경우 다음 경기에 참가할 수 있게 변경 되었다. 미션은 워스트 선정 당시 지적된 문제점에 대한 보충 훈련.

팔도원정은 2승 1무 6패로 마무리되었으며, 11월 20일 전국대회에 참가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팀이 3부리그 팀이 아닌 선출 제한 없이 그냥 구성된 팀이 절반이 넘어서 1회전 통과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고 결국 1회전 콜드패로 경기를 마감하게 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비판받는 몇가지 요소가 있다. 일단 끊임 없는 조작논란[14]이 가장 큰 비판거리. 특히 팔도 원정 초기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어느정도 경기 패턴이 비슷했기 때문. 일단 천무단은 초반에 불안불안하게 무너진다. 하지만 방송출연이기에 에이스급만 투입할 수 없는 사회인 팀이 선수를 대량 교체(투수도 전문 투수가 아닌 감독이나 외야수로.)한다. 이때 상대팀 집중력이 약해지면서 천무단이 득점하고, 그럼 사회인 팀에서는 에이스를 내보낸다. 그러면 아쉽게 패배. 조작 논란이 일었던 것도 항상 이러한 경기 내용이 문제였다. 대체적으로 사회인 팀들은 방송 출연을 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너무 경기를 유리하게 끌어가지도 못하고 일부러 질질 끄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러한 모습이 논란이 되었던 경기가 공주블루스카이전. 하지만 이 경기는 이후 난타전 끝에 첫 승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논란이 많이 있었던 경기였는데, 경기의 양상 자체가 천하무적 야구단이 일방적으로 발리다가 너무 발리니까 공주 블루스카이 팀원들이 방송을 타야한다는 의식을 하며 일부러 헛스윙을 하고 태업 플레이를 펼치다 난타전이 되고, 결국 천하무적 야구단의 승리로 마무리된 경기였다. 얼마나 태업 플레이를 티나게 했으면[15] 보다 못한 이하늘"왜 봐주냐고요??"라고 울분에 차서 항의를 하기도 했고, 최재형 PD가 직접 공주 측 더그아웃으로 찾아가 "이런 식으로 하시면 방송 못 나갑니다!"라며 대놓고 경고했을 정도. 초기 천하무적 야구단의 경기력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 경기는 투수조에서 그나마 좋은 볼을 가지고 있던 김성수가 경기 전 날 녹화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16][17] 출전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은 해야겠지만........

또한 출연진과 제작진의 언행에 관련된 부분, 그리고 편집과 불필요한 예능 요소로 프로그램이 중간중간 붕 떠버리는 문제점까지 가지고 있다. 다만 조작논란은 최근 어느정도 실력이 상승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그라들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실력이 급하락하면서 조작 의혹조차 소멸.

기프갤 중심으로 주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인기 덕분인지 전용 갤러리가 생겼다.

일구회 시상식에도 참여해서 공로상을 받았다. 같은 테이블에 볼 빨간 국민감독님 김인식 전 감독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멤버들이 졸라대서 결국 명예총감독으로 모시는데 성공했다.(...) 과연 볼빨간 감독님이 늙은 사자를 재활용?(...)

또한 이 자리에서 김성근, 선동열 감독 등으로부터 겨울 특별 훈련을 받기로 약속 받았다.[18] 2009년 12월 제1회 골병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김C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퇴를 선언하고 하차.

김C 퇴임 전인 2009년 12월까지의 행보는 본격 레알 아마추어 야구단 성장기 다큐 드립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야구에 매진했지만, 김C 퇴임 이후 분량은 점차 예능스러워졌었다. 경기력도 본격적인 지도자들(전/현직 프로야구 감독들)에게 지도받았음에도 오히려 엄청나게 퇴보한 듯 포풍 에러와 잔 실수로 내주지 말아야 할 점수를 내주면서 말아먹는 경기를 지속했었다. 그 땐 다큐 드립을 칠 수 없을 정도로 경기가 막장이었다. 김C가 있을 땐 1~2점차 석패나 역전패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젠 그냥 콜드 혹은 관광. 제작 스탭들은 소원대로 본격 예능 찍어서 속이 시원할듯 베이징 올림픽과 2차 WBC 효과도 떨어졌는지 인기도 많이 떨어진 듯 하다. 예전 같으면 천무단 쪽 한정이라지만 자리를 꽉꽉 채웠던 관중석이 텅 빈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기다 위키 갱신도 정체상태.

오죽하면 2010 시즌에 롯데 자이언츠가 막장플레이를 하자 이를 천하무적 야구단에 비유한 기사까지 나올 정도이다. # 하지만 롯데의 수비를 보면 어떤 면에서는 천하무적보다 못하다. 어?

전지훈련에 7개구단 감독들을 찾아다니며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았는데 머슬 메모리가 전혀 안 되는 건지 그 다음주만 되면 원래의 한심한 모습으로 돌아가버려[19] 3부 리그 수준 이하의 막장 경기를 펼쳤었다.

결국 내려진 특단의 조치가 20경기 중 10승을 하지 못하면 팀 해체란 결정.[20] 하지만 PD가 과연 뇌가 어떻게 된 건가라고 싶을 정도의 무모한 조건이라 2010년 안에 천하무적 야구단이 막을 내린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막장 경기력인데 5할 승률이 가당키나?[21]

그런데 철도 대장정 직전 치러진 대동단결과의 경기에서 막장경기를 펼쳤지만 뭔가 멤버들에게 각성효과를 가져왔는지 철도 대장정의 첫 경기인 천안 우체국과의 경기에서 그간의 막장스러웠던 부분이 상당히 날아가버린 야구다운 야구를 하는 경기를 보여주며 첫승을 거두었고, 대구로 가서 영광 파이터즈와 가진 두번째 경기에선 사상 처음으로 끝내기 안타까지 나오며 2연승을 달렸다. 이거 다시 조작시비 붙는거 아닌가?

그러나 코레일과의 경기에서 철도대장정 첫 패배를 기록. 초반 2연승 이후 자만이 하늘을 찌르며 방심한 것이 문제인듯. 결국 3연패를 찍으며 승률이 50%를 밑돌았으나, 전주 헌터스와의 경기에서 프로그램 최초로 콜드 승을 거두며 희망고문 가까스로 5할을 회복했다. 좀 이기라고! XX들아!

이후 석탄공사 시컴스와의 대결에서 2연승, 게다가 모두 콜드승을 거두고 김동희는 2번이나 완투승을 거두는 실적을 세웠으며 승률이 5할을 넘기게 되어 조금은 여유가 있어졌다.

아무튼 최근 실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이하늘이 주전포수로써 기량을 확실히 키워나가고 있으므로 포수 자원이 2명이 되었고. 김동희라는 나름대로 철벽 에이스가 생겼다. 타격이나 피칭에서는 옛날만큼 잘해주진 못하지만 유격수라는 포지션을 무리없이 소화해 내는 김성수도 있고.. 타격은 부진할지언정 수비만큼은 최상급이었던 좌익수 김준은 타격 포텐을 뻥뻥 터뜨리며 6연타석 안타를 폭발시켰다.

2010년 11월 철도 대장정을 사실상 접고 꿈의 구장 기금마련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야구는 안 하고 있다. 또, KBS 내부에서 종영이 결정되었으며, 2011년 초에 꿈의 구장이 완공되면 종영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일단 KBS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다지만... 그리고 2010년 12월 드디어 종영이 공식 결정되었다. # 하지만 꿈의 구장과는 관련 없으며, 꿈의 구장에 관해서는 비정기적 방영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2010년 12월 25일 방송에서 전국대회 준결승전에서 패하는 모습[22]을 보여준 뒤 제2회 골병든 글러브 시상식 방영을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이후 2010년 KBS 연예대상 시상식 때 멤버 전원이 불참한 뒤 그 날 DJ DOC 콘서트를 열었으며, 이 때 이하늘이 대놓고 KBS를 욕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멤버들은 최소한 철도대장정 20전이나 꿈의 구장 완공까지 종영하지 않는다고 알았다가 갑자기 종영 소리를 들었다고...

후속 프로그램은 명받았습니다.

2.1. 꿈의 구장 프로젝트

2.2. 경기 전적

2.2.1.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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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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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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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포지션 경쟁

한동안 9명(+ 땜빵 1명)만으로 팀을 꾸려왔으나, 땜빵 멤버였던 이현배를 정식 단원으로 승격시켰고 조빈과 김성수의 투입 이후 아직 여유 수준은 아니지만 그나마 기용할 수 있는 카드의 폭이 넓어진 관계로 김C 감독이 주전 경쟁 체제를 선언했다. 일단 에이스 임창정, 포수 이현배, 1루수 오지호를 디폴트로 하고, 필요에 따라 선수들을 돌려 쓰고 있다.

2009년 12월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체로 투수-임창정, 1루수-오지호, 2루수-동호가 고정이 된다.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포지션 이동을 보여준다.

임창정이 투수를 볼경우 3루수-김창렬 유격수-김성수가 기본적으로 위치하게 된다.

김창렬이 투수를 볼 경우 3루수-이하늘 유격수-김성수,임창정이 기본적으로 위치하게 된다. 김창렬이 선발일 경우 임창정이 주로 보며 김창렬이 구원일 경우 이하늘이 주로 보게 된다.

이하늘이 투수를 볼 경우 3루수-김창렬 유격수-김성수가 기본적이다.

이 외에도 초창기에는 한민관이나 마리오를 종종 1루에 투입하고, 이현배를 유격수 훈련에 투입했으나 이 들 모두 내야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각자 포지션으로 이동하게 된다.

외야의 경우 김준과 조빈이 좌익수 경쟁을, 마리오가 중견수로 거의 고정되고, 유사시에는 한민관이 투입된다. 김준이 좌익수로 갈 경우 조빈이 우익수로 가고, 한민관, 마르코가 후보로 대기한다.

포수의 경우 이현배 전담/마리오 백업.

투수 자원의 경우 임창정-이하늘-김창렬이 위치하고 있으며 김성수는 마무리로 투입된다. 이경필 코치는 김준과 마리오, 마르코와 동호가 투수훈련을 받고 있으며 김준과 마리오는 2010년 봄부터는 주전 투수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고정된 투수진에서도 차후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왼손 투수인 마리오의 투입은 이하늘-김창렬과 계투진부분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뜻. 이리저리 차이는 이하늘

보통 타격 순서는 1번 임창정 - 2번 동호 - 3번 김창렬/마리오 - 4번 오지호 - 5번 김성수 - 6번 김창렬/마리오 - 7번 조빈 - 8번 이현배 - 9번 우익수가 투입되는 경우가 일반적. 김창렬과 마리오는 당일 컨디션에 따라서 결정되며, 6번과 7번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사실 11월 이전만 하더라도 동호의 경우 완벽한 후보 선수였으나 뜬금없이 각성하면서 소년가장을 차지하게 됐다. 이전만 하더라도 위에 동호라고 써있는 부분은 그냥 이하늘로 적혀있었다.

2009년 12월 21일 경기도중 이현배가 부상을 입어서 내야진의 이동이 있었다. 이하늘이 포수로 이동했으며 동호가 3루수로 이동했고 후보였던 김창렬은 2루를 다시 맡게 되었다. 부상이 큰 편이라 당분간은 이러한 체제로 갈 듯 하다.

2010년 1월 말 현배의 부상에 이어 2월 임창정의 휴식까지(5월 5일 복귀하기로 약속했다)다시 멤버가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한동안은 현배의 형 이하늘이 포수를 했지만 여러가지 훈련과 포지션 테스트 및 훈련을 통해 포지션을 이동, 조빈이 이하늘의 백업포수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군체제를 도입한다면서 탁재훈,임형준,조동혁,김현철을 영입했는데 조동혁은 전국대회 이후 나갔고 나머지 세명이 정식멤버로 확정되었다. 여기에 투수력 보강 차원에서 김동희가 영입된 상황. 조빈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인해서 포수불가 판정을 받아 백업포수 문제가 심각해지게 되었다. 사실상 이하늘 혼자서 포수를 봐야될판이 돼버린것.

여기까지가 2010년 초 기준이고 5월 철도원정 이후의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예비 혹은 백업, 강조는 주전 혹은 확정급(나머진 다 불안하다고 보면 된다.)

투수 - 김성수, 김동희, (오지호, 임형준, 탁재훈, 이하늘, 김창렬)
포수 - 이하늘 (이현배, 김창렬)
1루수 - 오지호 (김준, 조빈, 이현배)
2루수 - 동호 (김현철, 탁재훈)
유격수 - 김성수 (탁재훈, 김동희, 이하늘, 김창렬)
3루수 - 김창렬 (이하늘, 탁재훈, 임형준, 김동희)
중견수 - 마리오 (한민관, 탁재훈, 임형준, 김동희)
좌익수 - 김준 (한민관, 탁재훈, 임형준)
우익수 - 조빈 (한민관, 임형준)

이현배의 경우 7월 이후에나 선수로써 활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임창정이 스케쥴과 향후 문제로 완전 하차. 선발 투수진의 보강이 절실해졌다.

천하무적 야구단 마지막 수비위치
투수 오지호
포수 김창렬
1루수 이하늘
2루수 동호
3루수 김동희
유격수 김성수
좌익수 김준
중견수 마리오
우익수 조빈

마지막 경기 선발 라인업
투수 임형준
포수 이하늘
1루수 오지호
2루수 동호
3루수 김창렬
유격수 김성수
좌익수 김준
중견수 김동희
우익수 조빈

5. 종영 이후 리그 참여

프로그램은 개박살 나버렸지만 야구를 워낙 사랑하던 사람들인지라 남양주의 챔프리그 일요 루키 1리그에 천하무적 야구단 이름으로 등록을 했다! 여기서 확인 일요일마다 경기를 하는 듯. 장소는 청원 고등학교 야구장이며, 흙 구장이다.

11년 2월 27일 역사적인 첫 경기는 우천 취소 크리. 기상청 예보가 맞다니

다음은 챔프리그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2011년 천하무적 야구단 일정이다.
일자 대진 점수 결과
3월 20일 천하무적 vs 시리우스 우천취소
4월 6일 천하무적 vs 그레이인터스 8:13 패배
4월 20일 천하무적 vs 호텔신라 15:13 승리
5월 4일 천하무적 vs 그랜드힐튼 0:7 패배
5월 18일 천하무적 vs 롯데야구단 20:7 승리
5월 25일 천하무적 vs 그리핀스 11:2 승리
5월 29일 천하무적 vs 한얼야구단 22:9 승리
6월 8일 천하무적 vs 그랜드인터스 10:10 무승부
6월 22일 천하무적 vs 그리핀스 0:7 패배
6월 29일 천하무적 vs 도브스 0:0 무승부

이후 일요루키 1리그와 호텔리그 양쪽에 참여중인 듯 하다. 그런데 경기결과 자료가 미비한 것인지, 경기 진행이 어긋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리그에서 팀마다 진행경기 수가 차이가 커서 리그 성적으로 그들의 실력을 가늠하기는 힘들 듯.

이후 방송 당시의 일부 구성원들이 나가고 다른 멤버들이 추가로 가입했다. 그리고 이경필 코치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21년에는 마녀들과 맞붙기도 했다. 결과는 6점 차 압승. 9화 10화

현재에도 아마추어 리그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중이다.[25] 현재 멤버는 김창열, 김준, 김동희, 마리오, 한민관, 신동호, 이병진, 허준[26] 등 8명만이 남아 있다. 게스트까지 하면 제갈성렬 역시 소속되어 있다. 더욱 자세한 것은 천하무적 야구단 게임원 페이지를 참조.

유튜브에 쳐보면 2024년에도 활발히 활동하는 경기 영상이 올라와 있다. 확인되는 생존 멤버는 김동희김창열 둘. 나머진 다 그 시절 이후 멤버다.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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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2008년 한국 영화 과속스캔들아역 배우였던 왕석현이휘재가 100일 동안 삼촌과 조카 역할을 하는 관찰형 프로그램. 당시 유행했던 우리 결혼했어요의 관찰형 예능 형태에 삼촌과 조카라는 역할형 육아를 결합한 형태였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별 반향이 없었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왕석현이 코너의 얼굴마담(?)이었을 정도. 결국 100일을 채우며 종영. 그리고 이휘재는 몇 년 뒤 진짜 아들로 대박을 친다.[2] 요즘으로 치면 일밤이 정식으로 종영된 것은 아니지만 MBC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라디오 스타가 사실상 일밤과 황금어장을 계승해서 단독 코너이자 단독 프로그램으로 방영하는 것과 같은 격이다. 만일 종영되거나 시간대가 옮겨지면 이 둘도 이 천하무적 토요일이 그랬듯 자연히 긴 역사를 마감하고 공식 종영될 것이다.[3] 초반에는 5% 정도의 저조한 시청률이었지만, 경쟁력과 실력 있는 멤버들을 모집하고 유니폼도 맞추고, 프로 선수들에게 코치를 받는 등 점차 야구단의 구색을 맞춰가자 시청률과 인기가 반등했다.[4] 스펀지는 무도와 스타킹의 양강 구도 속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결국 2009년 봄개편으로 평일인 금요일로 이동했다. 사실 스펀지의 부진은 두 프로의 틈바구니 속에서의 경쟁도 경쟁이었지만 이미 2005년 하반기부터 이런저런 문제점들로 인한 추락이 실질적인 이유였다.[5] 지옥훈련은 세 번 나왔는데, 이하늘과 김창열이 두 번씩 받았고, 마르코와 한민관이 한 번씩 받았다. 특히 김창열과 한민관은 지각 사유만으로 발점 100이 넘어가 지옥훈련을 했다. 첫 번째는 이하늘과 마르코가 자전거, 오리배 따라잡기, 화생방 훈련을 받았고 두 번째는 얼음 냉탕에서 욕하지 말자! 스킬자수, 세 번째는 타이어와 한몸이 되어 하룻동안 돌아다니기였다. 꿈의 구장 건립계획 발표 후에는 벌금으로 바뀌었다.[6] 사실 의외로 간단한 문제인데, 이 방송의 방영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6시 30분은 알다시피 저녁 5시에 시작되는 프로야구 토요일 경기와 겹치는 시간대다. 즉, 이 방송 시청자층 중 상당수인 야빠들은 본방 시간에 야구 중계를 보거나 아예 경기장으로 직관을 가고, 대신 재방을 보게 된다는 것.[7] 실제로 본방송에선 사회인 야구만이 아니라 레슨을 위해서 또는 친선경기 등의 이유로 현역 야구선수 및 레전드들이 자주 등장을 했었기 전 구단 팬들을 시청 대상으로 잡는 게 가능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차라리 프로야구의 휴식일인 월요일에 편성하거나 하다 못해 시간대라도 좀 다르게 배정을 했으면 시청률 확보가 더 쉬웠고 자연히 좀 더 오래 갔을 거라고 아쉬워 하는 팬들이 꽤 됐었다.[8] 98년 발매된 알루미늄 배트의 사기작. 보통 타격 거리에 비해 5m 이상 멀리 나가게 만든다고... 드롭 이라는 단위를 쓰는데 배트의 길이-무게 값을 드롭이라고 표기. 즉 32인치에 27온스배트가 5드롭. 배트 스피드가 느린 사회인 야구에서는 높은 드롭값을 가진 가벼운 배트를 선호하기 마련. 높은 드롭의 배트는 가벼우나 내구성과 반발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모델은... 사회인야구에선 이걸 보고 '도깨비 방망이'라고 부르고 레어품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이걸 썼나?! 이후 강력한 성능 때문에 각종 대학야구에서는 사용금지가 된 이후 단종돼 신품 구매가 힘들다.[9] 그런데 사실 꽤 오랫동안 무안타였다.[10] 주변에는 묘지까지 있었고마르코 : 잠깐만, 저, 저 묘 있어!!!! 내부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11] 사실 지자체가 체육용지 변경 및 야구장 건설을 거부하면서 쫓겨났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12] 원래는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 에서 주인공 오혜성의 좌우명 같은 것.[13] 연예인 야구단 대동단결과의 경기에서는 북일고 야구부원들이 나와서 채점했다. 그 이후로도 주로 학생들이 평가를 해줬으며, 그 중 북일고 선수들이 가장 많이 나왔다.[14] 시합을 뛴 사회인 야구단들은 조작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몇몇 시합의 경우에는 '방송에 나오고 싶어서 봐줬다'라는 식의 글을 게시판에 쓰기도 했다.[15] 어느 정도는 편집이 들어가기 마련인 방송에서도 공주 측 선수가 팀 동료에게 "일부러 안 잡기?"라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을 정도였다. 이하늘의 분노 섞인 항의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16]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김성수는 유격수와 마무리 투수를 겸업하고 있었다. 이도류?[17] 철봉을 발차기로 건드려서 떨어뜨리는 게임 이었는데 점프와 발차기 이후 좌반신부터 떨어져 왼쪽 옆구리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18] 올스타전 때 획득한 3회 특별 훈련권이 있긴 하지만...[19] 원래 축구, 야구 등의 종목은 15살 정도가 넘으면 기본기 습득이 힘들며, 머슬 메모리도 잘 되지 않는다. 유소년 축구, 야구 지도자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기본기를 최대한 많이 습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0] 12년 후 이 컨셉을 이어받은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최강야구. 다만 최강야구의 경우는 반대로 전 프로 선수들이 모였기 때문에 10패 시 팀 해체를 걸었다.[21] 이 이야기가 나온 게 2010년 3월 27일 방송분인데, 2010년 7월 24일 방송분까지 딱 7전 했다. 이 추세라면 2010년 다 지나가도 15~16전 근처에서 간당간당하다. 11월과 12월에도 야구를 한다는 가정하에. 5할을 찍을 수 있건 없건 일단 20전은 해야 할 거 아닌가? 그리고 2010년 7월 24일 방송분까지 4승을 달성했기 때문에, 15전 정도로 2010년을 넘긴다고 보고 1승만 더 하면 2010년 내에 천무단 문 닫을 일은 없을 듯 했지만 반토막낸 상태로 문 닫았다...[22] 이 때 천무단 멤버들이 평소보다 더욱 더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에 임했으나 결국 패배하자 이상하리만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알고 보니 그 경기가 천무단의 마지막 경기였다. 언론 등을 통해 미리 그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사전정보 없이 방송을 보던 사람들은 얘네 왜 이러나... 싶다가 방송이 끝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랬다.[23] 이 가운데서 1인 출연 경험이 있는 백지영은 전반전과 후반전 모두 최후의 2인에 들었으나 마지막에 아쉽게 고배를 마셨고 역시 1인 출연 경험이 있는 김준도 최후의 2인까지 남을 정도로 선전했다.[24] 공식적인 개장 기념식을 했다는 뉴스는 검색되지 않음[25] 현재는 위의 두 리그를 제외하고 고양 한스타 SBO리그가 확인된다.[26] 프로그램 당시는 캐스터였지만 종영 이후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27] 차회 예고 BGM으로 주로 쓰였다.[28] 그러나 무가사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