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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8:15:49

전원일기/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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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김 회장댁3. 복길네4. 병태네5. 마을 사람들6. 기타 인물들7. 참고 자료

1. 개요

《전원일기》의 등장인물 내용을 다루는 문서다.

2. 김 회장댁

3. 복길네

188화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용의 친가쪽 친척들은 전원이 이북에 있다고 한다. 일용의 큰아버지&큰어머니 등. 참고로 일용부가 삼형제 중 막내여서 일용엄니가 형님들한테 예쁨을 받았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정황상 일용부의 집안은 원래 전라도에서 살았지만 가난해서 만주 쪽에 갔다가 해방 후 하필 분단으로 인해 고향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북한 쪽에 정착했던 모양이다.

4. 병태네

5. 마을 사람들

6. 기타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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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참고 자료




김동 유규문 (유형준)김은동(임호) 아들 당시나이 2살
[1] 언급된 적이 거의 없어서 오죽하면 김혜자 배우도 김회장님 본명이 뭐냐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다 답 했을 정도. 단, 2회에서의 이름은 '김윤배'였다.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불명.[2] 마을 사람들이 종종 '회장님이 우리 같은 사람이랑 같나'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양촌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김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 김회장에게 꼭 인사를 올 정도로 양촌리 내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3] 최불암은 이 배역을 위해 정주영 회장에게 지게 지는 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4] 본인 소유의 과수원도 가시덤불에 자갈밭 투성이이던 땅을 손수 개간하여 얻은 것이다. 김회장이라는 호칭과 극중 대접 때문에 간혹 공무원 등을 하다가 땅을 구매한 것으로 오해하는 시청자들이 있다.[5] 단적인 예로, 라떼는 남은 밥 또는 상한 밥을 한 톨이라도 버리면 큰일 나는데 씻어서 다시 먹거나 돼지우리에 사료로 주라고 한다.[6] 주로 초~중기 에피소드에서 그러하다.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면, 또한 아들들과 대립되는 기성세대의 대변인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한 부분. 예를 들어 동네 머슴같이 살던 집의 아들이던 친구가 자수성가하여 동네에 부모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둥 유세를 부리려하자 술 먹고 싸우고는 과거 그 친구 부모님의 인심과 인내심이 참 좋았었다는 식의 회상을 하는 등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7] 이는 김 회장 본인부터가 본질적으로도 성실하고 자상한 편이지만, 부인 이은심의 희생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남편의 외도도 참았는데, 462회 <사돈 남 말 하시네> 편에서 극중 일용 엄니가 김 회장의 생일잔치에서 술이 취해 마을 여자들 앞에서 말한다. 이 때도 이은심 여사는 아니라며 김 회장이 인기가 많아서 따르는 여자가 많았을 뿐이라고 둘러대지만, 한 번은 김 회장이 가정까지 버리려고 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후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은심이 진짜 안 살고 짐싸서 도망가려고 했던 적이 두 번 있다고도 한다.[8] 늦장가 간 총각의 결혼식[9] 기홍과 희옥의 결혼식[10] 응삼과 기순의 결혼식[11] 이장이던 명석과 현숙의 결혼식[12] 당시 옛 신한국당 영등포구 을 대한민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예명이 아닌 본명 최영한으로 출마했으나, 그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민석 후보에 밀려서 낙선했다. 참고로 배우 이덕화도 같은 해 총선 때 신한국당 광명시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배우로 복귀했던 사례가 있다.[13] 선거법상에서 연기 배우라도 본인선거 출마를 하였을 경우에는 무조건 배우직에서 물러나거나 출연작에서 하차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는 선거중립상 및 정치적 활동 등을 배제하는 선거법 규정이다. 다만 92년에 전국구 의원이 되었을 때에는 하차하지 않고 광고 모델로 활동했는데, 이 당시 연예 활동과 의정 활동을 겸하던 이순재, 최불암, 이주일, 강부자 같은 연예인 출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규제가 생긴 것.[14] "세월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날아가고 흐르는 물결처럼 되돌릴 수 없다. 흐르는 물결은 머물고 갈지언정 거스르는 길은 아닌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왜 이렇게 굴곡도 많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는지."로 시작한 내레이션은, "세월의 흐름 따라 사람은 늙어 간다. 박수할 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정에 연연하다 보면은 그 기회를 잃고 만다. 그러나 어쩌리 그것이 또한 인생인 것을"이라는 멘트로 끝난다. 후에 이 배역 모티브를 다름 아닌 장욱진 화백이라고 밝혔다.[15] 2015년 12월 19일 무한도전에서 극중 이름이 이은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실은 전원일기 방영 중에도 이름이 이은심이라는 것이 여러 번 나왔다. 작품의 상영 기간이 오래되어 몇몇 곳에서 설정오류가 나오는데, 극 초반기에는 김은심이었다.[16] 최불암의 실제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최불암과 김혜자의 극중 인연은 의외로 오래되어 MBC 초기 드라마인 개구리 남편에서부터 부부로 출연했다.[17] 극중 잔칫날에 일용엄니가 용식엄니가 13살에 민며느리로 시집왔다고 말하자, 13살이 아니라 14살이고 민며느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300회 특집 '곳간 열쇠' 편에서는 본인이 시어머니 박부용에게 하소연할 때 18살에 시집왔다고 말한다. 설정오류인 듯.[18] 못사는 막내딸에 비해 며느리들은 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다, 철없고 입단속 못 하는 둘째 며느리와 고지식하고 배운 게 많은 첫째 며느리 덕에 본인도 마음고생 하는 게 겹쳤다.[19] 전원일기 신통력 편에서 일용엄니가 할머니에게 남자 목소리로 장난 전화를 할 때 밝혀졌다.[20] 다만 방송 시작할 때 당시의 나이는 53세로, 현재로 따지면 그냥 중년의 나이이다. 물론 1980년 당시로 치면 노인으로 봐도 무방하긴 하다. 재방송 기준으로는 주로 60대 ~ 70대 초반이다.[21] 드라마 초반에는 6급 주사에 속하는 계장이었으나, 이후 승진하여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과장, 즉 5급 공무원이 되었다.[22] 다만 80-90년대의 애처가이다. 노름에 빠져 석달치 급여를 다 날리고, 다방 레지와 좋아지내며 데이트를 하는 행위 등을 아들 영남이 돌도 되기 전에 해치우고 다녀 이혼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23] 310회 부녀회장 편에서는 이은영, 339회 '고양이 소주' 편에서는 김은영, 782화 '당신의 이름'으로 편에서는 박은영으로 나온다.[24] 제주도에서 꽤나 알아주는 부자로, 딸 집 냉장고를 바꿔준다든가 제주도 왕복 비행기표를 그 시대에 흔쾌히 사돈댁에 보내는 등 부유하다.[25] 오죽하면 이 모습을 본 서방님 용식조차 서울로 상경하라고 할 정도.[26] 1994년 방영된 677회 '아버지와의 추억' 편에서 형 용진의 대사에 의하면 농고 시절 나름 공부도 곧잘 하던 동생이 대학 학비 걱정에 당시 학비 면제인 교육대학(당시 2년제 시절)을 간다면 자신도 대학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원서를 접수하지만, 결국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대사가 나온다.[27] 그런데 이 설정도 극후반으로 가면 달라지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일용과 놀러다니기만 하다가 대학 못 간 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형제간에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설정오류.[28] 요새야 그런 걸 따지지 않지만 (사실 애초에 따질 만큼 자식이 많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부잣집이 아닌 이상 장남은 대학 보내고 나머지 아들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농고나 상고까지만 보내며, 딸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만 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동생들이 빨리 학업을 마치고 돈을 벌어서 맏이의 학비를 지원하는 구조.[29] 장남 공부만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동생들, 특히 여동생이 희생하는 모습은 MBC 드라마 육남매에 나온다. 극중 둘째이자 장녀인 숙희는 큰오빠이자 장남인 창희를 위해 다니던 중학교를 중퇴하고 바로 공장으로 취직하며 사회전선에 뛰어든다.[30] 물론 그 에피소드가 아내 고순영의 잘못도 있었지만 아내 앞에서 여자와 친구 둘 중 고르라면 친구를 고르겠다는 말을 했다. 어찌 보면 그 당시 남자들이 아내를 어느 정도 위치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31] 최불암의 일시 하차 기간이던 96년에 이장이 된다.[32] 촬영하다가 동네 어떤 치매 노인에게 걸려서 실제 유인촌이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씁쓸한 에피소드.[33] 박순영으로도 불렸다.[34] 가끔 냇가에서 함께 다정하게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35] 특히 수남이 임신 중에 그런 에피소드가 폭발하는데, 임산부라고 대신 빨래를 해 준 복길엄마에게 이제 돈 줄테니 앞으로 빨래를 해달라고 한다던가(지금도 아무리 드라마라도 좋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지만, 방영 당시에도 식모 취급 수준이라 더더욱 껄끄러운 문제였다.) 가족들 몰래 떡이니 빵이니 사다먹고 거짓말을 한다던가...[36] 1994년 군복무하던 그에게 선임병이 '금동이로 많이 떴냐' 고 묻자 '금동이 때문에 내 인생이 더 묻혀졌습니다' 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아역 때 그 이미지가 너무 컸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반항하는 성격을 지녔었다. "억대 가난뱅이" 편을 끝으로 잠정 하차 뒤, "돌아온 금동이" 편에서 돌아왔으나 불미스러운 일을 또 저지르게 되어 "시누 올케"편을 끝으로 하차했다.[37] 보약 편에서는 다음주에 방송할 금동이 편의 시놉시스였고 보약 편의 주된 내용은 박순천이 유인촌에게 보약을 지어주는 편이다.[38] '새끼 손가락' 편은 전원일기 900회 특집편이다.[39] 현재는 외식업체대표를 맡고 있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를 참조.[40] 참고로 남성진과 김지영은 실제로도 부부인데, 이 때의 역할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41] 아버지와의 추억 편부터는 안경을 쓰게 되었다.[42]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 해설가 및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강현종이 맞다.[43] 경쟁 작품이었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초반부 출연하였다. 김포 백구두 아들에서 김회장네 손자로...[44] "진짜 사나이" 편은 KTV에서 미방영, 엣지TV에서 141회로 방영되었다. 이후 2000년에 방영된 "우리 아들 육군 일병" 편에서 군복무하는 중에 나왔고 2001년에 방영된 "우리 아들 육군 상병" 편에서 휴가를 받고 오랜만에 다시 출연했다가 "사진작가 이복길" 편을 끝으로 다시 군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후 2002년에 방영된 '고향 앞으로' 편에서 말년휴가를 받고 잠시 출연했다가 이후 '언제나 마음은 청춘', '꽃바람', '아들의 애인', '산삼보다 귀한 것', '신혼 일기', '부부 학습', '생일선물', '여름 제사', '한여름 밤에 생긴 일', '물놀이는 자기들만 가나?', '비밀이 없어요', '메밀꽃 필 무렵', '가을 햇살 가득한 날', '복길이의 강적', '찬 바람 불어오면', '사랑을 나눠요', '잘 먹고 잘 사세', '외로운 계절', '가을 안개', '내 이름 석 자', '가슴앓이', '마음만은 부자', '아버지와 아들', '복순네 표 메주', '숨쉬는 흙', '선물',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 편에 나왔다.[45] 열심히 출연하던 도중, 영장이 날아와 감독에게 하차해야겠다 말했더니 "너가 갔다와도 프로그램이 끝날 것 같지 않으니 드라마에서도 입대한 걸로 하자."고 하여 입대와 제대, 드라마 복귀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46] 1993년 방영된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8살이라고 함.[47] 삐삐의 시대라 휴대폰 따윈 없었다. 결국 연락할 방법이 없던 남영이 방송실까지 뛰쳐가서 금동의 차를 빼달라는 안내방송을 요청한다.[48] 극중 이름은 유원식, 김정숙 작가의 여동생 김선숙의 남편 즉 제부의 이름을 사용했다. 극 중 우편물 주소 중 경남 진해시 경화동이 나오는데 실제 여동생네가 거주 하던 집 주소였다.[49] 전인택의 비중은 주로 농어촌 부채 문제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파탄에 이른 영농후계자로 쓰였다. 축산업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사료값이 오르고 소값은 떨어져 주로 절망하는 역 전문.[50] 이 때 죽은 큰딸 역할로 나온 배우는 윤여정.[51] 해당 에피소드에서 김회장 부부가 읍내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은심이 음식점 여주인의 나이를 묻는데, "올해 딱 마흔이네요"라고 대답하자, "그럼 뱀띠네?" 하면서 이은심이 대번에 알아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어려서 죽은 큰딸이 뱀띠였기 때문. 해당 에피소드 방영년도가 1992년이었으므로 당해에 마흔이라면 죽은 큰딸의 출생년도는 1953년으로 추정.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술에 취한 이은심이 오늘 뱀띠 우리 딸을 만났네하면서 집에 와서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병원에도 제대로 못 데려가고, 집에서 민간요법과 굿판 등을 벌이다가 허망하게 보낸 큰딸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일용엄니는 그 시절은 자식들 반타작만 해도 다행이었는데라고 한다.[52] 전원일기 224회 '동갑님네'에서 나왔다. 동갑으로 등장한 사람은 변희봉.[53] 314화에서 일용엄니가 "빨강물 들어 죽은"으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54] 그녀는 이것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했지만, 설마 했던 복길이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55] 물론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할 필요도 있는데, 이 시대에 태어난 노인들은 가난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기가 어려워서 저학력인 경우가 상당했고, 오히려 고졸도 고학력으로 취급받던 시대였다.[56] 301회에서 귀동과 함께 귀향, 그후 600회에서 엄마 명자가 돌아오기까지 무려 300회 분량을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였다[57] 더구나 극 초중반기 귀동은 성실한 캐릭터도 아니고 술과 친하며, 엄마 없이 자라는 아이 노마를 부지런히 건사하지도 못한다.[58] 29살부터 일용엄니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실제 나이는 1949년 생이라 방영이 시작될 때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2살, 만 나이로 해도 31살이었다. 지금이야 김수미가 75세까지 살았던 것 때문에 김수미 하면 원로배우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20대에 비하면 연상일 뿐 엄연히 젊은 나이인 30대였다. 이렇게 젊은 배우를 할머니 역으로 배정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딴 거 없고 노인 연기자가 없어서였다. 오히려 방송 시작할 당시 20대 후반 청년 역인 박은수가 2살 더 오빠였다. 1980년대 초반에는 노년은커녕 남성 50대 중년 연기자도 태부족이었다. 그 이순재신구도 그 당시에는 둘 다 아직 40대 후반에 불과했고, 최불암만 해도 20대 후반(!) 때부터 노년 전문 배우로 활동했을 정도인데, 여성 원로배우는 아예 눈 씻고 찾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은 지천명만 되어도 사실상 노년이랑 다름없었고 평균 수명환갑을 조금 넘던 시기인 것을 감안하면 50대 이후로는 적거나 은퇴한 경우도 있으며, 60대 배우는 현역에 거의 없었다. 2020년대가 된 현재 30대의 여배우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나 20대 초중반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남배우긴 하지만 김수미보다 2살 많은 박은수(당시 33살, 세는나이 34살)의 경우 실제 나이보다 7살 어린 20대 청년 '일용' 역을 맡아 20대 연기를 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설정상인 1925년생이라 해도 초기에 55세여서 할머니보다 아주머니가 더 맞지만, 당시에는 55세가 노인이었다. 물론 전원일기가 20년 넘게 해서 방송 도중에 김수미가 40/50대 중년이 되어가긴 했다.[59] 김수미가 현재는 70살이 넘어서 그렇지 젊은 시절에는 마치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황인종으로 옮겨놓은 듯한 그런 미녀였다. 배우 박시연 또한 매우 닮은꼴이다.[60] 2008년, 2013년, 2016년 등 여러 차례 사기 혐의에 휘말려 피소되거나 수감된 전과가 있다 보니 그 이후로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없어졌고, 요즈음은 주로 캬바레 등 밤무대에서 활동 중이라고 전해진다.[61]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아들인 일용이 역할의 박은수가 어머니로 나온 김수미보다 두 살 위다. 일반적인 포탈 프로필에서는 박은수가 1952년 생으로 나와서 1949년 생인 김수미보다 어린 걸로 알려졌지만, 김수미가 방송에서 박은수가 실제로는 1947년 생임을 밝힌 적이 있다.[62] 작중 기준 1954년 생으로, 방송 초기에는 27살의 혈기왕성 청년이었으나, 나이를 점차 먹으가면서 30대, 그리고 40대가 되어서 중년회장이 되었다. 종영 당시는 49살이었다. 실제 배우는 초반부터 30대 중반이며, 종영 당시 이미 50대 중반.[63] 결국 금동이랑 가출한 것 때문에 김 회장에게 호되게 야단 맞아서 그 소원을 이뤘다. 김 회장을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타입. 어머니와는 츤데레 관계.[64] 1985년에 방영된 '가을비' 편에서 결혼에 실패한 최명길이 인생유전으로 떠돌다 읍내 다방마담으로 오면서 우연히 재회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물론 일용이 사는 곳인지 모르고 온 것. 이후 최명길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65] 전원일기 자체가 방영 기간이 워낙 길었던 드라마여서 극중 주요 인물의 옛 첫사랑, 여자친구 에피소드는 일용 뿐 아니라 김회장댁 용진, 용식 등에게도 두어번씩 나왔다. 일용 역시 초창기의 최명길 이외에도 90년대 후반 다른 여인과의 에피소드가 또 나온다. 소재고갈로 어쩔 수 없었던 듯.[66] 301회 서울행 1부에서 집배원이 편지를 전해주며 내가 이 마을에서 연애편지 배달 제일 많이 한 곳이 일용이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용이 생사람 잡지 말라하며 시치미를 떼자, 마산아가씨(마산큰애기), 영월 처녀 등은 다 뭐냐고 너스레를 떤다.[67] 둘 다 욱하며 마누라에게 버럭하면서 밥상 엎어버리는 캐릭터. 다만 창수는 철없고 눈치없고 센스없는 아내를 챙기고 아내가 친 사고 수습하느라 바쁘지만, 일용은 이유불문 마구마구 욱한다는 게 차이. 물론 이 분야의 끝판왕은 귀동이지만, 귀동은 전체적으로 걍 망나니 기믹이다. 창수는 아내가 딸같고 반면 일용은 아내가 엄마같은 분위기.[68] 그래도 한 번은 아픈 부인을 위해 밥을 짓다가 어머니한테 부엌에 왜 들어왔냐고 꾸짖음을 받아도 묵묵히 밥을 짓기도 했다. 물론 어머니의 행패에 어쩔 수 없이 하다 멈추고 나갔지만 말이다.[69] 일용이의 결혼식을 다룬 편에서도 "소라도 한마리 잡아 주고 싶은데, 나라에서 돼지고기 먹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큰 돼지로 대체한다"는 김회장 부인의 대사가 있다.[70] 다만 종기 아버지의 폭력은 종기 엄마의 춤바람 에피소드에 얽혀 나오는 일이 많은데, 작품 내에서는 코믹하게 처리하면서 넘어가지만, 지금의 방송 기준으로는 가정폭력을 희화화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점이기는 하다.[71] 극초반에는 박혜숙.[72] 냉장고를 들여놓고도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냉동실 온도조절을 최하로 해놓는 바람에 얼음이 얼지 않아 이를 복길할머니가 고장으로 잘못 알고 AS를 부르는 에피소드도 나온다.[73] 식구들에게도 맨날 돈 없다고 인색하게 굴다가 지역농협에서 저축왕으로 선정되었다고 표창장을 준다고 하니, 식구들이 그렇게 통장 많이 모은 것을 알면 자기 욕 먹는다고 표창장 안 받겠다고 사정하는 에피소드도 나올 정도.[74] 복길네가 극중 여성 캐릭터로 알뜰함 1위라면 남자 캐릭터 중 돈에 가장 인색하게 그려지는 것은 개똥 아빠 창수. 이 쪽은 여자는 보통인데 남자가 구두쇠 기믹으로 그려져 여자가 돈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다.[75] 극중 김회장댁 용진도 영남 1명, 용식도 수남 1명, 창수도 재동 1명만 낳아 기른다.[76] 시대상의 변화이기도 한데, 70~80년대 가족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던 정부도 나라의 경제가 좋아지자 1994년 슬그머니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해버렸기 때문.[77] 2021년 5월 근황올림픽을 통해 오랜만에 근황이 알려졌다. 회사를 다니다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으며 결혼해 딸이 있다. 2개월 뒤 다큐 플렉스 전원일기에 딸과 함께 출연했다.[78] 극중 끝까지 결혼은 하지 않는다. 복길네와 절친한 김회장 댁이고, 극중 영남엄마 은영은 외려 동서인 수남엄마 순영보다 복길네와 더 친하고 속내를 털어 놓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복길네와의 사돈 맺기에는 뜨듯미지근하다. 이웃으로는 몰라도 아들의 결혼 상대로는 좀 더 좋은 환경의 처갓집을 얻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랄까?[79] 1980년대에도 일용의 아들이 한번 출생한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아시발꿈으로 처리했다.[80] 초반부에는 심양홍이 나오기도 했다.[81] 1994년에 방영된 '어머니', '황금알 둥지' 편에서 등장하였다.[82] 역시 전인택과 같이 농어촌 부채 문제를 고발하는 캐릭터이다. 설정상 축산업하다가 파산해서 빚에 쪼들리며 사는 사람들.[83] 공교롭게 장남 차광수와 차남 이진우는 전원일기 종영 후 2년여 뒤 제5공화국에서 쿠데타 동지로 재회한다.[84] 드라마 허준에서 유도지의 부인 역을 맡았다.[85] 극중 이름은 박복남이다.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편에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1985년 머슴들의 잔치에서는 양이쁜, 1998년 미스 양촌리 선발대회에서는 김말순이라고 한다.[86] 참고로 전원일기 출연자들 중 실제로는 제일 엘리트인 인물이다. 여자들의 대학진학률이 매우 떨어지던 그 시절에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87] 참고로 경북대 수의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이과 문과 부부 엘리트..[88] 이때부터 종기도 사실상 외동아들로 나온다.[89] 일반 부역도 손가락질을 받는데, 인민재판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마을사람들을 살육하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살인 내고 산으로 도망간..." 운운하는 이노인의 발언으로 보면 정황상 수복 후 보복을 피해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90] 2023년 2월 13일자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신충식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2000년대 초반 재회 당시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91] 극 초기에 쌍봉댁은 기홍 어머니의 호칭이었다.[92] 양촌리112라는 에피소드에선 강도 두 명이 가게를 턴다. 가게라는 특성상 강도 당하는 내용이 자주나오곤 한다(양촌리 112는 1995년 방영)[93] 여담으로 가격이 편의점 가격이다.[94] '양지뜸 명석이' 편에서는 읍내 식당 사장역으로, 1991년에 방영된 '고모 할머니' 편에서 용인 왕고모 할머니역으로 출연했다.[95] 서울에서 1년간 재수 생활을 했음이 언급됨[96] 사돈 남말 하시네 편에서 청년회를 그만두고 도시에서 대리점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설정상 하차하는데, 실제 배우인 김영두가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계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이다. 김영두는 현재 교회 목사를 맡고 있다.[97] 입바른 소리 잘하는 깍쟁이 서울여자 기믹은 보배엄마 하차 이후 슬기엄마 김자옥이 물려받는다.[98] 763회 '새로운 시작'편에서 스토킹을 하던 정육점 주인 오씨(유퉁)가 유부녀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며 호적등본까지 떼어본다.[99] 8살 차이 결혼 때 창수 34살 혜란 26살. 둘의 결혼과정에서 혜란 아버지의 반대로 약간 난관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용엄니와 용식어머니 등이 중간에서 두 집안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극중 김회장댁 노할머니의 대사로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한 동네 안에서의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한 동네 사람끼리 서로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알면 오히려 혼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100] 복길 엄마, 노마 엄마.[101] 초창기 방영회차들을 보면 정말 소녀적인 청순함이 자연스러운 미인이다.[102] 동네 청년회 멤버. 태어나면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라 형제지간에 가깝다. 그들의 아지트가 있으며 가끔 귀동이나 기홍도 낀다.[103] 용식과 응삼이 달려와 자살하려던 명석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용식은 화를 주체 못하고 그 농약병을 있는 힘껏 던져버린다.[104] 둘 다 귀동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였다.[105] '무지개를 찾아서'편에서 귀동이 폭행으로 체포된 부분이 있다.[106] 사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아이가 안쓰러워 한 번 보여주기만 하려고 데려온 것이지만, 명자도 귀동도 차마 내치지 못한다. 아이의 할아버지도 영영 아이를 맡기거나 명자를 데려갈 생각은 아니어서 되려 미안해한다.[107] 마지막 가정파탄의 이유도 사기계도 사기계지만 귀동이 주식으로 사채까지 끌어쓰고 날려버린 점, 그로 인해 가정폭력과 주취가 심했던 것이 주 원인이다.[108] 성인 노마역으로 출연하였다.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 천정명 주연의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대표곡은 '해요'.[109] 1993년에 방영된 "이웃 사촌"편을 끝으로 하차하였다.[110] 현재 한의사가 되었다. 2019년 10월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김수미와 재회했다. 영상[111] 타임워프 이후 고등학생 노마로 출연하다 노마네가 서울로 가면서 하차 했다.[112] 600회 이후 엄마 명자가 자신이 양촌리로 돌아왔음에도 복길네와 일용엄니가 지속적으로 노마를 케어해주자 이제 노마 키우는 것은 엄마인 자신한테 맡기고 신경 끄라는 식으로 하내며 서운해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113] 인천 화평동 냉면골목에서 냉면집을 운영중이다. 김노인 역할 때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고 가끔씩 실물로 만날 수도 있다[114] 284화에서 전래민요, 민담 채집을 온 대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등장[115] 444회 '긴 외출' 편에서 마을에서 제일 악명 높은 호랑방탕한 문태 아버지( 배우 최낙천 분)가 젊어서 술집여자와 바람나서 처자식 버리고 유랑하다가 몇십년만에 마을로 돌아왔다 도로 쫓겨가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박 노인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 대부분 반기지 않지만, 유독 김노인만 어릴적 친구가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매정하다며 편을 들어주며 반긴다. 이에 같은 친구이지만 박노인은 저놈이 사람새끼냐며 마을에 발을 붙히지 못하게 해야한다며 역정을 내는데, 김노인 저 녀석도 젊은 시절 문태 아버지와 같이 죽이 맞아서 많이도 따라 다니며 흥청망청 술집에, 계집질하고 다녔다며 타박하는 내용이 나온다[116]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역으로 출연하였다.[117] 김노인이 ‘자네는 자식 없어서 그런 마음 모른다’ 라고 말실수를 하여 대판 싸우는 에피소드. 분명 타임워프 이후에도 자식이 있거나 최소한 있었던 설정인데도 마치 처음부터 자식이 없었던 것처럼 나온다. 또 이노인 사후 김노인도 자식 집으로 가기로 하자 박노인 혼자 아무 피붙이도 없어 스스로 요양원으로 간다고도 한다.[118]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 1998년부터 2년여 간 탤런트실장도 역임했다가 2001년 8월 7일에 직장암 병세 악화로 사망하였다. 향년 51세.[119] 1989년에 방영된 '외상값'편에서 김회장 집을 방문한 손님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그래! 촌놈이다!' 편에서 일용을 조사한 형사역으로, 1999년에 방영된 '순영의 추석' 편에서 상인으로, 1997년 방영된 '볼펜농사' 편에서 용식에게 조언을 해주는 농부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 단역으로 여러번 출연하였다.[120] KBS 2TV 드라마 장희빈에서 무당 막례 역할로 출연했다.[121] 1984년에 방영된 '추수가 끝난 뒤' 편에서 공개되었다.[122] 이해 방영된 '양지뜸 사람들'편에 출연했다.[123] 재동이네가 농약을 많이 쳐서 부녀회장네 고추가 시들었다고 부녀회장이 주장했는데 남수가 지나가다 들려서 고추를 자세히 관찰하더니 농약때문이 아니라 비료로 인해 토양이 산성화 돼서 그런다고(...)[124] 실제 1999년 9월 12일에 방영됐으나 해당 화는 KTV에서 미방영, 엣지TV에서 140회로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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