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원일기》의 등장인물 내용을 다루는 문서다.2. 김 회장댁
- 김민재[1](최불암)
마을의 대주격 인물[2]로, 젊은 시절 농촌 운동에 헌신하고, 농촌 조합 회장을 역임했다.[3] 어린 시절 머슴 살이를 할 정도로[4]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다가 자수성가했기 때문에 굉장히 근검절약을 중요시한다.[5] 극중 이미지 덕분에 '국민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는데, 대외적으로는 이상적 인간상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부장적이며 위선적인 면모도 종종 보인다.[6] 그래도 양촌리에서 가장 그나마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며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7] 젊은시절 읍내의 기생 도화와 사랑에 빠지고 그 후로도 여러번 여자를 만나서 이은심 여사가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고, 딸을 낳고는 일용엄니와 함께 김회장이 만나고 있는 여자를 찾아가 치맛자락을 잡고 통곡할 정도로 김회장이 젊은 시절에는 여자 문제가 좀 있었다. 극중 결혼식 주례를 여러 번 했는데, <주례> 편[8]과 <꽃바람> 편[9], <당신을 위하여> 편 2부[10]과 <노총각 이장 장가 보내기> 편[11] 등에서 주례를 여러 번 하였다. 1996년에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관계로 잠정 하차했는데[12][13] 허리를 다쳐서 일본으로 잠시 요양을 간 것으로 처리되었다가 최불암 본인이 선거에서 낙선하게 된 후 <동업자> 편으로 복귀하였다. 마을 주민을 중심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지만, 초반에는 주인공으로 설정된 만큼 마지막회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 편에서 최불암의 내레이션으로 드라마가 끝난다.[14] 최불암은 1940년 생이나, 배역 나이는 그보다 10살 정도 더 많다. 그 탓에 노인으로 나온다.
- 이은심[15](김혜자)
김회장의 부인. 이 드라마 때문에 실제로도 최불암의 부인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다.[16] 참고로 어린 나이에 시집왔다.[17]
젊은 시절에 남편의 여러 여자 문제로 꽤나 마음고생 심하게 했다. 특히 읍내에서 제일 유명했던 도화라는 기생 때문에 나이가 든 지금도 도화의 도자만 들어도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싫다고 한다. 1989년에 방영된 441회 '아픈 손가락' 편에서 딸의 편지로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극중 김회장의 대사로 올해 결혼 36년이라는 대사로 비추어 1953년에 결혼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나, 다른 에피소드에서 장남 김용진 밑에 어려서 죽은 딸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죽은 딸이 뱀띠라는 설정이 있다. 뱀띠는 53년 생이므로 이는 살짝 설정오류에 해당. 장남 김용진의 나이 등을 계산하면 1950년 전후 정도가 김회장 부부의 결혼 시기로 보인다.] 자식들도 잘 키워내고 며느리들에게도 자애로운 시어머니이며, 복길 할머니와 절친하다.
다만 초기 에피소드에서는 굉장히 인간적이고 소시민적인 성격도 많이 보여주는데, 딸에게 없는 돈으로 소꼬리탕을 끓여줬는데 사위와 사돈이 눈치없이 먹자 아까워한다던가, 며느리들이 마음에 안 들어[18] 살림 아끼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상한 가지무침을 억지로 먹고 배탈이 난다던가... 그런 면모가 오히려 진짜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김정수 작가 집필 시절에는 은심을 비롯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이처럼 살아숨쉬는 실제인물 같은 입체성을 갖고 있었다. 연속극이라기 보다 매 회 다른 에피소드를 그려내면서 극중 등장인물을 다양하게 활용해 그야말로 전원일기를 보여주던 시절이다. 김정수 작가 하차 후 작가가 자주 바뀌게 되면서 캐릭터 붕괴에 건전드라마 정부시책 PPL이 더해지며 다양한 극중인물을 활용한 성격드라마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결국 종영으로 이어진 것.
며느리들에게는 여자가~ 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오히려 남편에게만큼은 굉장히 선구적인 성평등관을 보여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한다.
참고로 남편에 대한 호칭은 '영애 아버지'이다.
- 박부용[19](정애란)
김회장의 어머니로, 고정 출연진들 중에선 최고령이다. 그런 연유로 극이 진행되는 사이 건강 악화 등으로 인해 빠지는 횟수도 좀 있었다. 1988년 8월 경 들어 담당 배우가 폐암을 치료하려고 하차하면서 동월 16일자 <뭐가 무서워> 외 2편에선 서울에 사는 딸네 집에 며칠 다니러 간다는 식으로 처리되었고, 1989년 9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4회 연속으로 잠시 빠지기도 했다. 1991년 5월 21일자 <할머니, 할머니(519회)>부터 치매 증세를 앓게 되는 식으로 다루려 했으나 시청자들의 항의로 1992년 1월 14일 <큰나무 그늘(553회)> 편에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입원하며 치료를 성실히 받고 외국산 신약을 복용해서 호전되었다는 설정으로 복귀했다. 극중 나이는 1991년 위 519회에서 일용엄니의 대사에 올해 여든셋이시라는 것으로 계산하면 1908년이나 1909년생, 즉 일제강점기 이전 대한제국 시기에 출생하셨다는 얘기. 그 설정대로라면 종영 시기의 나이는 94세에 달하지만, 1996년 781회 편에서 타임워프를 할 때, 극중 김회장부터 용진, 용식 등의 나이까지 10세 정도씩 낮추었다. 또 나중에 타임 워프 시점에서 하차할 예정이었으나, 시청자들의 성원으로 계속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월의 메아리 편에서 이산가족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고, 1023회에서 황해북도 사리원시가 고향이라고 나왔다. 말기에는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그야말로 병풍 수준의 비중으로 그냥 대화하거나 방에 누워 있는 역할을 자주 했다. 극중 용진과 용식에게는 조모이며, 영남과 수남에게는 증조모라 노할머니라고 불렸다. 실존인물 정애란 선생은 2005년에 타계. 배우의 나이는 1927년 생으로, 이 쪽은 김수미와 달리 진짜 노인이었다.[20]
극중 그녀는 겉으로는 인자해 보이지만,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킨다. 예를 들면 여름인데 겨울에 먹는 손이 많이 가는 수수부꾸미와 같은 무리한 간식을 요구한다. 먹고나서는 "에잉~ 그 맛이 안 난다" 라며 짜증을 내는 식. 심지어 아들이 자기 어머니 편을 들기에 온전히 며느리만 힘들다. 시어머니인 며느리 앞에서 손주며느리들 편을 든다던가. 그래도 의외로 며느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가끔은 며느리 마음을 헤아리는 에피소드도 있는 편. 일용엄니에게는 자주 일침을 날려 삐치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용엄니도 참지 않는다. 은심을 피말리는 시모짓을 대놓고 지적하는 사람도 일용엄니 뿐이니. 그때마다 내가 언제 그랬냐며 화를 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일용엄니의 일침 쪽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고 남의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를 훔쳐 캐와 아들에게 먹일 정도로 매우 가난했던 모양. 아무래도 아들의 고지식한 면은 이 할머니에게서 온 듯하다. 당대 노인들이 그렇듯 옛날 것들에 집착이 몹시 강하여 믹서기 대신 맷돌을 쓰며, 가족들이 전기펌프를 들이려 하자 전기세 나간다고 완강히 거부했다. 그래도 전화기나 가스렌지 등 일부 현대 문물들은 호기심으로 좀 받아들이는 편이다.
젊은 시절 김회장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남편이 기생 봉화랑 사랑에 빠져서 고생 꽤나 했었다. 505화에서 시누이가 나와서 하는 말이 오빠가 기생 봉화에 푹 빠졌어서 박부용이 그녀의 집에 찾아가서 대문에 돌을 던졌다고 한다. 게다가 부전자전이라고 김회장도 기생 도화에 빠져서 아내를 꽤나 고생시켰다.
또한 젊은 시절에 15살 때부터 시누이한테 시집살이 꽤나 당했다고 한다. 505화에서 나오는데, 시누이가 집에 놀러온 상황에서 증손주까지 있는 박부용이 시누이한테 기를 못 피고 여전히 고생하는 모습이 나오며, 예를 들어 요강을 직접 씼어서 가져 오라던지 저녁마다 요강수발을 하던지 시누이가 여기서 계속 살겠다 하자 아들 김회장만 조용히 불러내 니 고모가 여기서 살면 본인은 집 나가겠다고 한다. 그래도 나름 시누이가 본인 잘못을 알고 있었는지 본인이 죽으면 좋은 곳에 못 갈 거라고 박부용한테 말한다. 그리고 둘은 나름 화해한다.
- 김용진(김용건)
김회장의 장남. 직업은 군청 공무원이다.[21]
국문학과 출신으로, 시도 쓰지만,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다지 재능은 없는 듯 하다. 그저 동인지 정도에서 시를 발표한 정도이다. 원칙적이고 간혹 융통성이 없어서 동네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기도 하고, 오지랖이 쓸데없이 넓어서 그다지 친하지도 않은 민폐 친구가 보름이나 자신의 집에서 뭉개며 분란을 일으키고 다녀도 뭐라 말하지도 못한다. 여자 동창생을 도와주다 군청 직원들 사이에서 불륜(간통)이라는 헛소문이 나서 투서를 받기도 했다. 대다수가 농사를 짓는 양촌리에서 지식인으로 통한다. 군청 공무원이라는 지위로 동네사람이나 지인들에게 종종 청탁을 많이 받아 난처해지는 에피소드가 많다. 그때마다 원리원칙을 지키려는 고지식함으로 인해 상대방들이 서운해하는 전개. 이는 하필 아들 영남도 경찰이 되면서 똑같이 대물림된다. 참고로 초창기 김용건이 젊었을 때의 출연 장면을 보면 실제 장남 하정우가 아버지를 빼닮았음을 알 수 있다.
초기 에피소드들에서는 장남이라 그런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동생 용식이나 일용이에게 가려서 그렇지 이 쪽도 엄청나게 성격이 불같다. 남자와 밤을 새고 왔다고 오해받은 영애에게 플라잉 싸다귀를 날린다던가, 어머니와 할머니와 심지어 제수씨도 보는 앞에서 동생의 뺨을 친다던가... 그래도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만큼은 매우 커서 아닌 척 해도 온가족은 물론 동네사람들까지 다 챙겨주고 신경쓰는 천성만큼은 착한 사람. 부인을 무시하며 가부장적이게 나올 시절에도 본인의 아내에게만큼은 부모님한테 거짓말하고 읍내 나와 데이트 하자고 할 정도로 부인을 아끼는 애처가로 나온다.[22]
- 박은영[23](고두심)
용진의 부인. 동서들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일용처와 절친하다. 다만 가끔씩 욱하는 성격이 보이기도 한다. 남편처럼 대졸 출신이라는 설정. 그 옛날에 보기 드문 명색이 대학 나온 엄연한 고등교육 받은 여잔데, 그런 사람이 시골 촌구석에서 시집살이를 하는 좀 말이 안 되는 캐릭터. 동서의 친정[24]과 비교되는 가난한 친정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 철없는 동서 때문에 먹지 않아도 될 욕을 시어머니에게 먹는다든가 고난에 처하는 등 고생이 많은 캐릭터. 고졸은 커녕 중졸/초졸/무학이 상당수인 마을 아낙네들 가운데 대졸인 설정. 애초에 친정이 어려운데 대졸일 수가 없지만, 겨우겨우 집안 기둥 갈아서 졸업했다 치더라도 그 후에 촌으로 시집와서 살림만 하고 산다는 게 모순적인 인물. 나이 순으로도 종기네/섭이네/숙이네 아줌마 그룹에 끼기도 뭐하고, 수남이네/보배네/개똥이네 등과 어울리기도 애매한 나이라 복길엄마를 제외하면 마을에 마실 가서 놀만한 또래 친구가 없다. 가뜩이나 대가족 맏며느리로 집에 묶여 있는데, 동네 친구도 적다는 설정. 거기에 동네 아줌마들 역시 영남엄마가 대졸이라는 점 때문에 약간 어려워 한다.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 편에서 부녀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종기엄마에게 14표로 한 표 차로 낙선했다. 물론 승복하였다. 1996년에 방영된 '풍금이 있는 풍경' 편에서 양촌리 아이들을 위해 풍금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여줬다. 대학 선배로부터 학원상담 교사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고 본인도 무척 하고 싶어 했지만, 살림공백을 우려한 시어머니와 남편의 반대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시어머니조차 시골에 있기엔 아까운 인물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안 살림에서 맏며느리가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컸었던 듯. 본인도 방영 기간 내내 중간중간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고 도시 여성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현타를 느끼는 장면이 많다.[25] 이런 자신의 삶에 대한 아쉬움과 한이 아들에 대한 기대와 교육열로 투영된다. 그래서인지 영남이 시골에서 말단 경찰이나 하는 것을 내심 못마땅해하고 있으며, 또한 영남이 복길이랑 교제하는 것도 그리 탐탁지 않아 한다.
- 김용식(유인촌)
김회장의 차남. 직업은 농부로, 학창시절 형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공부도 곧잘 했지만, 대학생을 둘이나 뒷바라지 하기 힘든 농촌의 현실과 부친의 농사일을 도와야 한다는 맘에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26][27] 극중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은 인물. 그래서 극중 형제간에 우애가 두터움에도 불구하고 대졸자인 형에게 어느 정도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며[28][29], 농사에 관해서는 형이 하는 충고를 모조리 고깝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극중 농업고등학교를 2등으로 졸업했다. 일종의 주인공 보정이지만, 극중 일용과 함께 농사일에 관해서는 편법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캐릭터. 다른 친구들이 농약 문제 등에서 현실과 타협해서 양심을 속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용식과 일용은 힘들어도 정도를 지키려는 일종의 이상적인 농부의 상을 보여주는 역할. 물론 열악한 우리 농촌 현실 하에서 특히 90년대 초중반 에피소드에서는 당시 첨예한 사회문제였던 우루과이 라운드 등과 관련해 격앙된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보다 친구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기는 듯 하다.[30] 그렇다 해도 마을 남자들 중 아내와 가장 다정하고 재미있게 사는 부부이다. 초반부터 종영 직전까지도 용식 부부는 대판 싸우는 에피소드 외에는 대체로 다정하고 사이가 좋다. 용식은 아름다운 아내를 늘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순영은 믿음직하고 열심히 일하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을 자랑스러워한다. 나중에는 1996년에 방영된 "새 이장" 편에서 마을의 이장이 된다.[31][32]그리고 훗날에는…
- 고순영[33](박순천)
용식의 부인. 제주도 출신. 보배 엄마와 함께 최강 트러블 메이커. 본인이 주역이 아닌 에피소드에서도 빌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뒷담화 전문가에 금수저 며느리라는 설정이며, 촐싹대며 철이 없는 성격. 유독 샘이 많아 큰 동서와의 사이에 자잘한 사고를 많이 치는 인물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두심과 잘 지내게 되었다.[34] 형님 은영과는 잘 지내나 아랫동서와는 자주 다툰다. 아랫동서가 시집올 때 집안 사정이 안 좋다고 반대한 적이 있었기 때문. 사실 다투고 자시고 할 나이 차이가 아니다. 아랫동서 남영의 남편 금동은 처음 데려왔을 때 김회장 부부가 아닌 용진 부부에게 입양을 권했을 만큼 나이 차이가 꽤 난다. 거진 자식뻘에 가까운 나이 차이의 막냇동서인 셈. 배우의 출산 관계로 친정 아버지 병문안 가는 걸로 잠깐 하차했었다. 아들에게 기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속물적이며 이기적이기고 욕심이 많고 배려심이 없는데[35], 그래도 천성이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다. 대가족 농촌 시집살이임에도 귀여움과 예쁨을 받는 며느리 역할이다. 때때로 철없는 언행을 하지만, 악의가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럭저럭 잠깐 혼나고 넘어간다.
- 김금동(양진영[36], 97년 이후 임호)
김회장의 양아들. 본명은 김상호. 원래 떠돌이 고아였다가 '버려진 아이' 편에서 김회장의 배려로 양자가 되었다. 다시 가출을 했다가 97년에 방영한 금동이[37] 편에서부터 다시 등장해 정착하고 "새끼 손가락" 편[38]에서 결혼도 하였다. 최불암 시리즈의 단골 등장인물 중 한 명. 배우에 대한 시청자들의 뒷 이야기가 좀 있었는데 금동이라는 임팩트 때문에 가출했다 귀가한 금동이 역 배우에 뭔가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배우(현재 기준이라면 거진 소지섭 수준)가 올 줄 알았는데 고작 임호 밖에 안 된다고 실망한 시청자들이 있었다. 남한테 빌려준 돈 달라는 등의 싫은 소리를 못해서 남영이 답답해 한다.
- 김영남(김기웅[39], 1996년 이후 남성진)
용진의 아들. 나이는 1996년 전까진 1980년 생이며, 권이상 PD의 저서 <전원일기 이야기>에 따르면 제9회 '흙소리' 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996년부터는 1975년 생이다. 나중에 순경으로 재직하다가 경장으로 진급하고는경무대로 특진하게 된다복길이와 러브라인이 이어지지만, 드라마 종영까지 결혼은 끝끝내 하지 못했다.[40] 복길네를 이웃으로는 친하지만 막상 복길을 며느리감으로는 환영하지 않는 듯 하는 영남엄마의 태도가 좀 있어서이다. 영남 역시 (극중 긴장을 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이겠지만) 부친의 직장인 군청의 부하 공무원 등 두어명과의 연애 플래그가 서는 등 약간씩 흔들리는 에피소드들이 나오며, 그 때문에 극 후반부 애인 복길의 애를 태운다. 타임워프 직후 복길이 선을 보려하자 "난 너밖에 안 보여!" 식으로 훼방을 놓고는 이후에는 "넌 귀여운 여동생 같은 존재야!" 라고 하며 어장관리를 한다.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말단 경찰이 된 것에 대해 은영은 아쉬워하는 눈치지만 이후의 경제 상황을 보면 탁월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 애비와 닮아서 여성들에게 우유부단함도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952회에서 복길이와의 선약을 깨고 미란이라는 여성이 본인의 생일이라고 전화해서 거짓말하고 만나기도 해서 복길이한테 걸리기도 했다. 미란이에게는 복길이와는 좋은 동생 오빠 사이라고 해놨었는데 복길이와 마주쳐 거짓말했단 걸 들켰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십분 활용해 아버지 용진이 젊은 시절 군청 공무원으로서 원리원칙대로만 일을 처리해 마을의 원성을 샀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는 에피소드가 많다.
- 김수남(김경수[41], 1996년 이후 강현종[42][43])
용식의 아들. 1986년에 방영된 '생명' 편에서 출생하였다. 1996년에 강현종으로 교체되었고 1997년에는 '부전자전' 편에서 노마에게 주먹 맞은 사람이 수남을 노마로 오인하고 파출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839화 <아버지와 아들> 편에서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된다. 1999년 9월 19일에 방영된 "진짜 사나이" 편을 마지막으로 실제로 군입대한 관계로 완전 하차하였다.[44][45] 나이는 96년 전까진 1986년 생[46], 96년부터는 1981년 생(가짜). 본인이 가야 할 길을 못 정해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춘을 대표하는 캐릭터.
- 이남영(조하나)
금동의 부인. '차 좀 빼주세요' 편에서 농협 공판장에 세워뒀던 자신의 트럭 앞에 금동이 트럭을 대놔서 가로막은 것을 계기로 시비가 붙는다.[47] 이후 돌아오는 길에 트럭이 고장나서 멈춰있던 것을 금동이 고쳐주자 이를 계기로 호감을 갖게 되어 "새끼 손가락" 편에서 결혼까지 가게 된다. 친정이 가난하여 콤플렉스가 있다. 그런 것치고는 예식장을 예약하고도 취소하며 전통혼례를 올리자고 스스로 금동에게 제안했다. 이유는 초대할 하객이 적어서 혼인날까지 초라해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런데 전통혼례란 신부측에서 대부분을 준비한다. 남영은 가난하며 아픈 어머니를 두었으면서 제안했다. 금동은 전통혼례 제안을 김회장부부에게 의논하고, 김회장부부는 남영의 친정에서 전통혼례라는 큰 행사를 치를 비용과 인력이 있을지 염려해 비록 전통으로는 신부측에서 준비하는 것이나, 신랑측에서 준비하겠다고 결정한다. 이에 대해 남영모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어떻게 사돈댁에 떠맡기느냐며 송구해했지만, 막상 제안자인 남영은 잘되었다며 받아들이자고 좋아한다. 동서보다는 나이차이 적게 나는 이모고모쯤의 나이차이인 동서들이 본인 결혼에 이를 갈며 노동할 것이 분명하고, 제안자가 본인임에도 알게뭐냐 나는 결혼만 하면 된다는 식. 금동과의 결혼 전에는 튼튼하고 농업에 진심인 여성이었지만 금동과 연애 플래그가 서면서부터 캐릭터붕괴. 원래는 1톤트럭을 몰고다니며 버섯농사를 혼자 지어 출하하고, 오빠가 있지만 결혼해 사는 오빠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머니를 돌보며 사는 소녀가장의 캐릭터였다. 그런데 결혼 난임 등의 에피소드를 위해 쥐어짜내진 결과 갑자기 결혼후 몸이 워낙 약하게 되었다. 결혼은 했지만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말하는 것이 직설적이라서 때때로 동네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때가 있다. 아름엄마와 단짝. 병든 홀어머니의 외동딸(남영 출연 초기에는 결혼한 오빠가 있었지만 어느새 사라짐)로 결혼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싶어하고, 금동도 동의했지만 그 어머니가 남동생에게 신세를 지고 사는 게 편하다 하여 모시지 못한다. 21세기의 시각으로는 아픈 홀어머니를 외삼촌에게 의탁하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90년대까지는 결혼한 딸보다 남동생에게 신세지며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여러가지로, 이 드라마 내에서는 젊은 세대의 캐릭터지만 온갖 설정의 붕괴가 몰려있다.
- 그 외에 세 딸(엄유신(영옥), 김영란(영숙), 홍성애(영애))와 사위들(박광남, 임채무, 전인택[48])이 있는데 초창기엔 레귤러 멤버로 등장했으나 결혼한 이후에는 명절, 생신 등 가족행사에 등으로 이벤트성으로 출연이 잦았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즈음부터는 출연빈도가 많이 줄어들어 거의 등장하지 않게 된다.[49] 큰딸 영옥은 98년 864회 '딸"편에 오랜만에 등장하는데, 출가한 딸들 중 경제적으로 가장 윤택하던 딸이지만 IMF 시기 맏사위의 사업실패로 회사부도 후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한 것을 고향집에 숨겼는데, 마침 어머니가 며칠째 꿈자리에 큰딸이 나온다며 서울에 상경했다가 우연히 알게 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김영란과 임채무는 2000년 마지막 해에 방영된 '어긋난 만남' 편에 오랜만에 출연했다. 김영란은 2001년에 방영한 '형수님 나의 형수님' 편과 2002년에 방영된 '어머니의 봄' 편에 다시 출연했다. 한편 엄유신은 2002년 방영된 '고향 앞으로' 편에서 오랜만에 출연하였다. 그 뒤에 '비밀이 없어요' 편에서 다시 출연하였다. 막내딸은 같은 동네 출신 개똥엄마 이혜란과 동갑내기 친구로 나온다. 이 중 큰딸은 어머니와 성격이 비슷하게 나오고, 둘째딸은 직설적이고 유쾌한 성격이며 막내 영애는 샘많은 깍쟁이 시누이로 나온다. 만만치 않은 성격의 둘째며느리 순영에게 내 손수건좀 빨아라는 등 21세기 기준으로는 한대 쥐어박혀도 할말없는 손아래 시누이. 특히 영애의 비중이 높은데, 남편 유원식이 하는 일이 잘 안 되어 항상 가난하고 힘든 걸로 나와 김회장 내외의 아픈 손가락이다. 이런 환경이다보니 영애가 자격지심에 화내는 에피소드도 있다.
- 위의 세 딸과 양자 금동이까지 극중 3남 3녀로 나오지만, 장남 용진의 위로 김춘순이라는 큰딸이 있었다. 극중 어려서 홍역으로 만 2세때 잃은 것으로 나온다. 금동이를 양자로 들이기 전 이은심의 꿈에 나와 금동이의 양자 입적을 간곡히 부탁하는 에피소드가 있다.[50] 또한 595회 '동짓달 초하루'편에서 큰딸이 죽은 기일이 동짓달 초하루인 것으로 나온다.[51]
- 김인경
금동과 남영의 딸. 2001년 12월 30일 생.
3. 복길네
188화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일용의 친가쪽 친척들은 전원이 이북에 있다고 한다. 일용의 큰아버지&큰어머니 등. 참고로 일용부가 삼형제 중 막내여서 일용엄니가 형님들한테 예쁨을 받았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정황상 일용부의 집안은 원래 전라도에서 살았지만 가난해서 만주 쪽에 갔다가 해방 후 하필 분단으로 인해 고향에는 영영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북한 쪽에 정착했던 모양이다.- 김소담(김수미)
일용 엄니.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시골 꼰대 할머니. 작중 만악의 근원 1호. 을축(1925년) 생[52]이다. 동네 오지랖 넓은 할머니. 수다쟁이에 귀가 얇아 삐지기도 잘 하는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이다. 전원일기를 대표하는 신 스틸러로 매우 유명하며, "아이고~ 복길아~"라고 부르는 특유의 말투는 수많은 개그맨들이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바로 옆집에 사는 은심 및 부용과 매우 친하여 매회마다 놀러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그녀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었는데, 17살에 일용이 부친을 만나 시집을 갔으나 한국전쟁으로 삼팔선 이북에 잔류하게 된 시가와 헤어져 의지할 곳 없는 이산가족으로 한평생을 지내왔다. 친정 역시 전쟁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두 남동생 중 첫째는 조선인민군에 부역했다가 죽었고[53] 둘째 남동생 김점안(점바우)은 공습으로 사망했으며, 함께 월남한 남편은 노름빚으로 패가망신[54]한 끝에 일찍 죽고 말았다.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일용을 데리고 밥을 빌어먹으며 입에 풀칠만 겨우 하였다. 이런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철길에 몸을 던지려 했으나, 엄마를 찾아 우는 일용이가 눈에 밟혀 끝내 죽는 것도 포기한 후로는 보따리장수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다 양촌리 김회장 댁에 왔을 때 은심과 부용이 빈방이 있으니 불때넣으면 지낼만 할 것이라며 붙잡아 양촌리에 정착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모자에게는 김회장 댁이 평생의 은인인 셈. 은심의 차남 용식은 일용과 형제처럼 자라 일용에게는 형이라고 칭하면서도 일용의 친구들인 창수나 명석과도 친구로 지낸다. 이게 이상하다는 대사가 금동처로부터 나오기도 하는데, 은영이 설명을 하려다가 "아이 그건 그냥 그런거야!" 식으로 퉁친다. 거의 일용네와 김회장네는 친척이나 다름없어 몇달 먼저라도 용식이 일용을 형으로 삼았다는 뜻으로 보인다. 사촌끼리는 아무리 단 하루 차이라도 형동생 하듯이 말이다. '낫 놓고 기역자' 편에서 뒤늦게 글을 깨우칠 정도로 까막눈이었다.[55]
어쩔 땐 쿨한 시어머니 같다가도 가끔씩 화나면 정말 무섭고 표독스런 호랑이 시어머니로 돌변한다.
또한 며느리만 잡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와도 불같이 막 싸운다. 아들 일용과 싸우면 온 동네사람들이 다 몰려와 말릴 정도로 대판 싸우고, 손녀 복길이도 쥐잡듯이 후들겨팬 적도 있다. 그저 무뚝뚝하고 둔한 며느리와 기분파인 자신이 상호간에 코드가 안 맞으니 자주 대립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들 일용이 부인을 때리는 줄 착각했을 때는 자다 일어나 내복바람으로 며느리를 몸으로 막아주기도 했었고, 한 번은 술에 취해 아픈 상태의 며느리를 밤새도록 안마시켰다가 끝내 쓰러지자 죽을만큼 아프지 않으면 내버려두라고 했던 반응과 달리 오열하며 자신이 독했었다며 후회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사실은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 불같은 성격 탓에 역시 대다수의 에피소드에서는 못된 시어머니에 만악의 근원. 오죽하면 그 일용이조차 "엄니는 그냥 말을 좀 하지 마세요!"라고 하소연할 정도.
질투심이나 물욕도 강한 편이라 오죽하면 극 중 손녀의 남자친구 영남에게 "뭐 복길 할머님이야 남이 이쑤시개 하나 들고 있는 것만 봐도 부러워할 분이시니까요."라는 평을 들을 정도.
전원일기는 욕만 없다 뿐이지 과부인 소담 본인이 은심과 김회장의 부부사이라든가를 언급할 때 노년부인들끼리 며느리가 듣는 데서 나누기는 불편한 농담을 소많이 하고, 은심은 질색하며 일용엄니 노망났나보다며 슬쩍 위로 흘겨보는 표정이 있는데, 그러면 소담은 더 폭주해서 더 심한 농을 걸곤 한다. 결국 부용이 불편한 노구를 출동해야 비로소 정리되는 소담.
극중 김회장댁은 일종의 고향의 이상향 같은 가족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고부갈등 같은 소재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수위와 제약이 어지간히도 많다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의견 충돌이나 갈등의 에피소드는 주로 일용엄니와 복길모간의 사건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한국적 어머니의 이상형으로 그려지는 김회장댁 은심에 비해서 일용엄니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많이 본다. 나이값 못하고 푼수짓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이다. 그래도 본성은 착하고 따뜻한 캐릭터이고, 오지랖이 넓은 만큼 마을 내 다른 집의 갈등이 생길 때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노인 댁 자식들의 불효 에피소드나, 숙이네의 모녀갈등 에피소드 등에서 일용엄니가 총대를 메고 입바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즉흥적이고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고 푼수끼 있는 전형적인 시골 할머니 캐릭터이지만, 그만큼 전통적인 사회상과 어울리는 가치관과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바로 이웃과의 "정"이다. 때론 다투고 삐지고 하지만, 이웃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누구보다도 먼저 팔 걷어부치고 나서는 캐릭터. 극중 엄마없이 자라는 귀동의 아들 노마[56]는 사실상 일용엄니가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다. 홀아비 귀동이[57] 노마를 잘 챙기지 못하지만, 귀동이 일하러 가고 없는 낮시간 점심과 때론 저녁식사까지도 일용엄니가 챙겨준다. 명절 때가 되면 귀동이와 노마를 챙겨주는 건 일용엄니다. 명절에 썰렁한 집에서 궁상떨지 말고 와서 떡국먹고 가라하고 음식 챙겨다주는 건 일용엄니 몫이다. 귀동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일용 엄니와 친했고, 귀동도 친구 어머니지만, 일용엄니를 친 어머니처럼 잘 따른다.
일용엄니 자식으로는 아들 일용만 나오지만, 416화에서 5살 때 홍역으로 죽은 딸이 있다고 한다. 일용엄니의 꿈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한복을 입고 나오는데, 그 아이가 바로 어릴 때 죽은 딸이며, 이름은 옥선. 일용엄니가 꿈에서 깨서 "아가, 너가 내 딸이냐?" 하면서 옥선이라고 부른다.
노인 역할이지만, 배우 김수미는 처음 이 역할을 할 때 겨우 30대 초반으로 노년은커녕 중년도 안 된 젊은 나이였으며 그렇기에 백발이나 주름은 다 분장이다.[58]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 이미지를 고정시키긴 했어도 김수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배역이라고 할 만 하다. 또한, MBC 탤런트 선배인 박은수와의 모자 연기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목소리가 독특하여 개그맨들의 단골 성대모사 소재로 잘 쓰인다. 암벽등반을 매우 잘 하신다. 김수미가 이 일용엄니 역할을 맡으며 성대가 엄청 상했다. 원래는 지금처럼 걸걸한 목소리가 아니었다고 한다.[59] 사실 이 역할은 김수미에게 엄청난 인기를 가져다 주었으나 정작 일용 엄니 역할이 하기 싫어서 제주도로 도망친 적도 있다고 한다. 김수미 본인에게 일용 엄니 배역이 어떤 의미였냐 하면 한 마디로 군복무 수준으로 느낄 정도로 싫어했다. 하기사 30대 초반 젊은 여성을 걸걸한 노인네로 만드는데 좋아할 리가 없긴 하다. 현재 다시 봐도 웃긴 대사를 많이 친다. 김수미 특유의 연기톤이 들어간 대사들이 일품이다. 연이어 방송해주는 2020-2023년 방송분을 보고 있으면 소담의 대사는 절반은 배우의 즉흥연기라는 것이 눈에 띈다. 80년대 연기스타일이나 2020년대 연기 스타일이나 거의 같다. 30대인 80년대 때는 노인 분장으로, 70대인 2020년대는 실제 노인이 되어 연기를 하기 때문.
- 이일용(박은수[60][61])
전통적 가부장적 캐릭터의 전형인 양촌리 청년회장.[62] 생일은 응삼보다 늦지만 맏형 노릇. 응삼, 창수와 동갑. 귀동, 명석보다 한살 형. 원래는 원양어선을 타면서 금방 하차할 배역이었으나, 그냥 눌러앉아 끝까지 갔다. 약간 개그스러운 이름으로 인해 개그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며 최불암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약간 욱하는 성질이 있어 평소에도 화내거나 하는 장면이 어지간히 많다. 금동이랑 가출하는 에피소드에서 고백하듯이 자신을 엄하게 야단치는 아버지가 한 사람 있는 게 소원인 인물.[63] 왕년에 여자를 꽤나 만나고 다녔으며, 과거 여자친구로 '마산 큰애기(최명길)'가 등장하기도 했다.[64][65][66] '따뜻한 겨울' 편에서 밝혀진 사실이 양촌리 청년회장이다. 등장인물 중에서 전투력 1위라는 의외의 스펙이 있는데, 성인이 된 금동이가 패거리들에게 시달릴 때 그 패거리들을 혼자 주먹으로 퇴치했을 정도였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편에서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게 밝혀졌다. 응삼과 함께 2001 알까기 제왕전에 출연. 참고로 당시 8단.
극중 시대상을 감안해봐도 등장인물들 또래 중 개똥 아빠 창수와 함께 유독 가부장적이고 구시대적이고 보수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다.[67][68] 본인은 어머니 속을 많이 썩히는 주제에 부인이 어머니한테 조금이라도 소홀한 듯 하면 바로 분노조절장애가 오는 선택적 효자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남편으로서는 최악의 캐릭터. 손톱만 한 일만 생겨도 아무 이유 없는 부인에게 꼭 성질을 버럭버럭내 보는 시청자들을 다 어리둥절하고 화나게 만들 정도로 답 없는 진짜 이상한 성격이다. 극중 유복한 김회장댁과 달리 80~90년대 낙후된 농촌 현실을 반영하는 캐릭터의 특성상 극중 여러번의 고난을 겪는다. 돼지 키우면 돼지값 폭락하고, 소 키우면 소값 폭락하고, 닭 키우면 사료값 폭등하거나 계란값 폭락하고 비닐 하우스로 상추 키워놨는데 출하 하루전에 하우스에 불 나고 등등 농촌사회의 시기별 이슈를 반영하는데 거의 다 얽혀있다. 이쯤되면 영원히 고통받는 캐릭터.
극 중반인 1992년 599회 '서울로 가는 길' 편에서 서울로 이사할 뻔 했으나 포기하고 고향에 남은 일이 있다. 사실상 극중 일용은 농촌에 남은 게 신기할 정도인데, 물려받은 농토를 가지고 어느 정도는 넉넉하게 농사짓는 다른 원주민 친구들(응삼, 기홍, 창수 등)과 다르게 애초에 떠돌이 행상을 하던 어머니와 함께 타향에서 흘러 들어와 밭 한뙈기도 없이 남의 논밭 소작이나 일을 해주고 근근히 먹고 살아온 외지 출신으로 양촌리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극중 억척스런 아내의 조력으로 야금야금 땅을 늘려가며 자리를 잡아가지만, 애초에 보유한 농토가 적어 양돈이나 양계 등 토지효율이 높은 다른 일을 더 많이 하던 처지. 비슷한 처지의 귀동이 대책없이 서울로 상경해버려서 도시빈민으로 유입되던 것과 비교된다. 한 마디로 일용 캐릭터는 어느 정도 농촌계몽 성격을 띄던 전원일기의 특성상 어려워도 농촌에 남아달라는 당시 정부 당국의 바램을 나타내는 캐릭터라 볼 수 있다.[69]
욱하는 성격과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성격 역시 극중 당시까지의 전형적인 기성세대 가장들을 대변해주는 캐릭터로 볼 수 있다. 복길엄마와 심하게 싸우다 보면 다짜고짜 손부터 먼저 올라가기도 하는데, 극중 단편으로 등장하는 길수 아버지, 조연격인 종기 아버지 순만과 함께 부부싸움 중 폭력을 사용하는 캐릭터이다. 부녀회장이 한번만 더 복길 엄마에게 폭력을 쓰면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다만 시대가 변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감에 따라 극 중후반에 가서는 폭력을 쓰지는 않는다. 극 후반까지 아내를 폭행하는 캐릭터는 종기 아버지 정도.[70]
욱하고 더러운 성격만큼이나 고집불통인 것으로도 나오는데, 반대로 그 우직한 고집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다. 전원일기가 워낙 장기 방영 프로다 보니 비슷한 소재가 일정 주기로 반복되는 경우가 은근히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소재가 농약 에피소드이다. 농촌 계몽 성격도 지니는 드라마의 특성상 거의 1~2년에 한번씩은 농약이 다뤄진다. 열무나 배추 등 채소의 출하 직전에 벌레 먹지 못하도록 농약을 치는 것이 문제되는데, 극중 때로는 수집상이 농약을 좀 쳐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복길엄마가 값을 좀 더 받기 위해 일용 몰래 농약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일용은 우직한 성격답게 농약 에피소드에서는 한결같이 사람 먹는 음식에 절대로 장난 칠 수 없다며 (김회장댁 용식과 함께)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역할로 그려진다.
- 일용처(김혜정)
일용의 부인. 작중 이름은 서흥 김씨 김혜숙.[71] 생활력이 강하며 알뜰하다. 거기에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지 일용처가 아프자 온 동네사람들이 놀랐을 정도. 양촌리에서도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다. 일용처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시집 오기 전까지 시가(媤家)에는 밭 한 뙈기도 없었다고 하며, 일용처가 부지런히 곗돈을 붓고 남의 집 농사도 해 주며 돈을 모아 집도 마련하고 논도 샀다. 그래서 일용의 친구들은 일용에게 장가를 잘 갔다고 하지만, 정작 시댁에는 그 흔한 냉장고나 TV도 없는데다 너무 아낀다고 불만이 많다. 알뜰을 넘어 억척스러울 정도로 돈에 연연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없는 살림에 열심히 살아보려고 전기료, 난방비, 수도료 등등에 전전긍긍하는 캐릭터로, 극중 일용네는 양촌리에서 전화도 가장 늦게 설치하고, 남들 다 가스레인지로 바꿀 때도 끝까지 석유곤로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당연히 냉장고, 세탁기도 다른 집보다 늦게 들여 놓았다.[72]
나중에 어느 정도 살림이 피고 나서도 억척스러움은 변하지 않아서 돈에 관해서 연연하다가 정작 돈을 잃어버린다거나, 온 마을에 복길네 돈을 안 쓴 집이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 일수돈을 놓고 다닐 정도인데도, 상환일을 잘 지키지 않는 집에는 잘 안 빌려주는 등 일용처와 돈이 관련된 에피소드만 해도 십 수편에 달할 정도로 자주 그려진다.[73] 그 와중에 돈 문제만 나왔다 하면 궁상 좀 그만 떨고 인색하게 살지 말자는 남편 일용과 다투는 에피소드도 자주 그려지며, 심심치 않게 경제적 문제로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려 안 그래도 다혈질인 일용과 심하게 싸우는 경우도 빈번하다. 하도 돈에 집착하다 보니 채소값 좀 더 받아보겠다고, 일용 몰래 출하 직전에 독성이 강한 농약을 치기도 하는 등의 문제도 자주 일으키는데, 당연히 농사일에 관해서는 우직한 일용과 큰 싸움으로 이어진다. 억척 캐릭터로, 당연히 본인을 꾸미거나 옷도 안 사 입고, 성격도 남편에게 애교같은 것은 체질적으로 떨지 못하는 뚱한 곰같은 캐릭터로 그려지기에 이로 인한 다툼도 잦다. 그러나 이런 복길엄마 덕분에 갈수록 집안 형편이 많이 나아진다. 부자까진 아니어도 꽤 먹고 살만해진 듯.[74]
방영 초기의 한국 사회는 가족계획을 전 국가적으로 권장하던 시대인데,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였다.[75] 그래서 복길네도 딸 복길이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였는데...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남아 있던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듯이 일용엄니는 딸만 낳은 복길네에게 은근 스트레스를 많이 준다. 집에 손자가 있어야 대들 이을 것 아니나며 지속적으로 복길네에게 둘째를 가질 것을 종용하는데, 복길네는 어려운 형편에 둘째를 가지면 부담스러워 계속 둘째의 임신을 미룬다. 복길네 경제적 상황으로는 아이들 양육비도 양육비이지만, 억척스러운 복길네 성향상 임신을 또 하게 되면 대충 2년 정도는 자신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경제적 손실이 많기 때문. 그러나 이후 '황금알 둥지' 편에서 순길을 임신한 것을 알았고 '은자동아 금자동아' 편에서 순길이라는 늦둥이 아들을 출산하였고, O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76]
- 이복길(96년 이전 아역 노영숙[77], 1996년 이후 김지영)
일용의 딸. 1984년 첫 방송분인 '일용이 아버지 됐네' 편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의 성격은 다소 산만하며 어딘가 맹하여 모자란 듯이 행동했다. 거기에 되도 않는 자존심과 질투 등 조모와 부친의 안 좋은 면들만 다 물려받은 듯. 노마와 놀다 같이 밥먹는데 일용엄니가 노마에게 생선도 먹으라며 권했더니 생선반찬을 자기 앞으로 옮겨서 우리 생선이니 나만 먹을 거라는 등 할머니는 노마만 이뻐한다면서 밥 안 먹는다고 아집을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하지 말라는 불장난을 노마와 함께 했다가 비닐하우스가 다 타서 큰 화가 올 뻔해서 된통 혼났었다. 또다른 에피소드에서는 노마와 짧은 말싸움을 했는데 때리지도 않았음에도 집에 가서 노마가 때렸다고 모지리마냥 울면서 거짓말을 하는 등 복길이 엄마만큼 성격이 좋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성인일 때의 에피소드에서는 약간의 도끼병과 대성공한 친구에게 열폭을 하는 등 못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성인이 되어서 복길이는 부동산 경리, 사진관 종업원 등으로 일하며 영남과 사귄다.[78]. 성인 캐릭터로 바뀐 이후 자신과 영남의 교제를 두고 (딱히 반대를 하지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미온적인 영남엄마의 태도에 속 끓이는 에피소드가 자주 나온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얻은 애인 영남에 비해 본인의 직업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나이는 1996년 전까진 1984년, 96년부터는 1979년 생(가짜)이다. 김지영이 다른 역으로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애칭이 복길이일 정도로 이 역의 인상이 깊었다. 이 이미지는 훗날 결혼해주세요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 이순길(류덕환)
일용 엄니의 손자이자 일용과 혜숙의 아들이자 복길의 남동생. 늦둥이이다. 1995년에 방영한 '은자동아 금자동아' 편에서 출생. 1996년 전까진 신생아~3세(1994년생 아역 조창연), 1996년부터는 1991년 생.[79]
4. 병태네
- 박상태(임현식)
귀농인. 1997년 825회 "빈 집 있습니까?" 편에서부터 등장. 도시에서 공장을 하다가 망하여 양촌리에 들어왔다. 1999년 924회 "이사 가던 날" 편을 끝으로 다시 도시로 가는 설정으로 하차했다. 고정출연 이전에는 1985년에 방영된 '허풍선'편에서 옥경의 아버지 역으로, 1987년에 방영된 '증인'편에서 상출과 화투로 법정에 간 봉수 역으로, 1992년에 방영된 '사주팔자'편에서 사주쟁이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날 불러주오'편에서 일용의 친구인 병삼 역으로 단역 출연을 하였다.
- 송민자(김자옥)
상태의 부인. 어찌보면 양촌리 최악의 빌런 중 한 명으로, 생각없이 내뱉는 말 때문에 분란의 주범이다. 병태네 가족 유입 전 이 분야 최강자는 보배네(김혜옥)와 수남이네(박순천)였는데 그 수남이 엄마를 걸핏하면 열받게 만들 정도의 막말빌런이다. 양촌리에 정착할 당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우아하게 살던 사모님이라는 식의 거짓말을 많이 했는데 그것이 들통나고서도 적반하장 왜 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냐는 식의 태도. 배우가 워낙에 공주느낌의 사랑스러운 중년여성이라 넘어간 편이다.
- 박병태(최종환)
상태의 동생. 상태가 도시로 다시 이사 간 후에도 양촌리에 남았다. 나이가 비슷한 금동네와 친하다. 봉제공장을 했었다가 망한 후 형님네와 같이 양촌리로 온다. 덩치가 크다. 망한 자체도 상태의 잘못인듯. 병태처 윤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동서에게 싫은 내색 없이 잘 지낸다. 착하고 마음씨 곱지만 때때로 아내와 싸우기도 하는데 누가 크게 뭘 잘못했다기보단 그놈의 가난 때문에 불행한 에피소드가 많다.
- 윤희(조현숙)[84]
병태의 부인. 아름이 엄마. 금동이 처와 친하다. 동네 사람들도 인정할 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졌다. 그러나 외모와 달리 집안이 망해 갖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는 불쌍한 캐릭터. 그래서 우는 장면이 많다. 친정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금동이 처의 친정엄마에게 부모처럼 의지한다. 남동생은 미국에 있다. 결혼 전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했고,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했던 전적도 있다. 노래방 도우미가 정말 노래만 도와주는 줄 알았다고 변명하긴 했는데, 술집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노래방 도우미가 뭘하는지 몰랐다는 변명은 말이 안 된다. 물론 병태는 그걸 알면서도 결혼했다. 그런거에 별로 연연하지 않아하는듯. 동네에서 장사를 하다가 과거 술집에서 일하던 동료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동네에 소문이 퍼지게 된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알면서도 쉬쉬한다. 알게 모르게 이기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는 캐릭터다. 싫다는 순길이에게 자기 딸을 억지로 맡겨놓고 밭일을 나가서 숙제를 못하게 된 순길이 혼나게 되는 등의 에피소드가 많이 있다.
- 박재영(채민희)
상태의 장녀로, 은행원이었다. '이사가던 날'편에서 하차했으나, '진짜 사나이' 편에서 수남이 입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역으로 마중나오며 다시 출연하였다. 공부를 곧잘 하였으나 집안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주유소 알바 등을 하다가 새마을 금고 임시직으로 입사한다. 심지어 수능에 아예 응시하지 않는 걸로 진학을 포기한다. 재영의 높은 학업성취만이 유일한 자랑이던 민자는 수능 미응시를 알고 깊이 상심하며 절망한다.
- 박슬기(유현지)
상태의 차녀. 순길이 좋아했다. 그래서 이사 가자 크게 아쉬워했다.
- 박아름(여혜진)
병태의 딸이다. 1998년 1월 31일에 출생하였다. 병태 내외가 군고구마 장사를 나간다든지 밭일을 한다든지 바쁠 때면 임신중인 금동의 처나 복길이네에서 맡아 돌보곤 한다.
5. 마을 사람들
- 부녀회장(이수나)[85]
종기 엄마. 부녀회장이다 보니 마을 공동구매나 구판장 문제 등으로 가게집을 하는 쌍봉댁과 자주 싸우게 되지만 매번 이내 화해한다. 숙이엄마, 섭이엄마와 친하며 가끔 철없는 행동으로 남편의 분노를 사기도 하는데 가장 큰 아킬레스 건이 춤바람. 읍내 캬바레에서 스탭 좀 밟아본 전력이 있는데, 극중 춤바람으로 종기 아버지 순만과 다투고 눈탱이가 밤탱이되는 에피소드가 몇번 나온다. 전임 부녀회장(이장의 아내)이 양촌리를 떠난 이후,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편에서 용진의 부인인 은영을 한표 차로 꺾고 부녀회장에 당선됐다. 상태네가 온 뒤에 출연을 계속 하였다. 가끔 부녀회장에서 실각할 위기에 몰렸던 적이 있었다. 1988년에 방영된 '시시비비'편에서 쌍봉댁의 문제제기로 잘못을 시인하고 그만둔다고 발언했으나 마을사람들 지지로 다시 부녀회장직을 떠맡았고 1999년에 방영된 '그들만의 선거'편에서 순영이 출마하면서 내려올 위기가 있었으나 순영이 물러나면서 종영할 때까지 부녀회장에 재임하였다. 마을에서 김회장댁, 창수네와 더불어 나름 부농이지만, 자식들이 워낙 많아 자식들 학비, 생활비 뒤치다꺼리로 의외로 항상 돈에 쪼들린다.[86] 극중 가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로 웬만한 가수 이상으로 노래를 잘한다.
- 종기 아빠(신충식)[87]
종기의 아버지이자 부녀회장의 남편. 나이가 김회장보다는 젊고 김회장의 아들 용진이보다는 위인 장년이라 용진, 용식, 일용, 응삼, 창수 등 청년들은 순만형님이라는 적당한 존칭으로 부른다. 여러번 설정이 뒤바뀌어서, 초창기에는 6남매 중 4명을 대학까지 보냈다는 성실한 농군이었으나 어느순간부터는 도통 농사일에 흥미를 붙이지 못해 민방위 훈련이다, 읍내에 일이 있다 요 핑계 조 핑계를 대며 농사를 종기엄마에게 떠맡기고 시내로 나가 놀다가, 2000년 중순께부터 농사는 종기엄마에게 미뤄버리고 종기아버지는 읍내에 "신흥사" 라는 업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게를 차려 운영을 하는 모습으로 나온다.[88] 이름도 박순만 -> 박혁수 -> 신순만 -> 박순만 -> 신순만 등 성이 여러번 바뀌었으며, 동네 주민들은 대충 종기 아버지 아니면 순만 형님으로 퉁쳤다.
이 동네 사람들 특성인지 성격이 불같아 부인에게 여자가 말이야~ 라면서 내로남불적인 발언과 툭하면 손올리는 버릇이 있는데, 주로 종기네 갈등은 종기엄마의 춤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나 본인도 동네에 퇴폐업소가 개업하자 마을 청년들을 꼬드겨 단골이 된 적이 있었고 그럼에도 자기 잘못한 것에 대해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다. 종기아버지가 어느 정도 겉도는 데에는 마을 청년들보다 나이도 애매하게 많은 것도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80년대 초중반에 방영된 전원일기 초기 에피소드에서는 아버지(종기 할아버지)가 조선인민군에 부역해서 어릴때부터 빨갱이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고 자라났기 때문[89] 도피하다가 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이 있었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90년대 부터는 마을출신 토박이가 아니라 종기 엄마가 인근 근동 출신이고, 종기 아버지는 종기 엄마와 결혼 후 양촌리로 들어온 외지인이기 때문으로 좀 납득이 가게 바뀌었다. 어려서부터 한 마을에서 자란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마을 청년들과 아주 친밀하지는 못하다는 설정.
1996년에 방영된 '면허증 좀 봅시다'편에서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적이 있었고 '용감한 종기 아버지' 편에서는 동네에 숨어든 탈옥수를 얼떨결에 우격다짐으로 붙잡아 표창을 타기도 했다.
- 종기(김재강[90])
부녀회장의 아들로 금동이와 동갑. 1980년대에 주로 등장하였으나, 1990년 7월을 끝으로 하차해 가끔씩 부모들의 입에 언급만 된다. 이쪽도 금동이 못지 않은 개구쟁이라 한때는 저금통을 털어 오락실을 갔다가 엄마한테 걸려 귀때기잡혀 끌려오는 모습을 보였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회사도 다닌다는 언급이 있고 종기 선자리라도 알아봐 줘야 할텐데...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금동이와 달리 그럭저럭 밥벌이는 하는 듯.
- 쌍봉댁(이숙)송내댁 -> 쌍봉댁[91]
가게집 주인. 극중 이름은 이윤덕이었다가 이명숙으로 개명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 가게를 열면서 고정 배역이 됐지만, 그 이전에는 단역으로 여러 회에 출연(주례 편에서 신랑의 형수 역할이나 동네 총각들의 맞선녀, 동네 아낙 등)하였다. 방영 초기에는 송내댁으로 불리기도 했다.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이혼당하고 이후 양촌리에 정착한 여성이다. 본가는 어렵지 않게 사는 편인지 사촌오빠 등이 꽤좋은 재취자리 선을 주선하기도 한다. 아내없이 아이를 키우는 귀동을 애처롭게 여기고 노마를 유난히 이뻐해 귀동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하지만, 600회 '재회'편에서 노마 엄마 명자가 돌아와 재결합하면서 맘을 접는다. 이후 트럭행상 등 이런저런 남자들과의 연애 플래그가 서지만 그때마다 무산되거나 사기를 맞으며 혼자 계속 살아가다 나중에 2002년 4월 28일에 방송된 '응삼과 쌍봉의 결혼식'편에서 응삼과 결혼한다. 사기도 당하고 가게도 자주 털린다.[92][93] '양촌리 크리스마스'편에서 이명숙이라는 본명이 밝혀졌다. 워낙 길게 방송한 드라마여서 누군가 짝이 없지만 총각은 아닐때 거의 쌍봉댁과 연애플래그가 섰다.
- 박응삼(박윤배)
1954년 말띠 생. 작중 일용엄니의 뒤를 이은 개그캐릭터이자 만악의 근원 2호. 일용, 창수와 동갑이나 창수보다는 생일이 2달 빠르다. 농고 원예과 졸업하고 농사를 짓고 있는데 성적은 영 좋지 못했던듯 하다. 극중에서 두 번 결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일용 엄마가 물너머 한의원에 갔다가 그집의 노처녀 딸 귀순 (안명숙)과 중매를 서서 1988년 392회 '당신을 위하여' 2부에서 결혼했으나 1년쯤 나오고 안 나오다가 하차하면서 이혼으로 처리되었다. 이후 파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숙이와의 연애소동이나 여러 차례에 걸쳐 맞선을 보지만 번번히 인연이 이어지지 못한다. 1996년 이후에 읍내에서 노래방을 경영했으나 상태네가 떠난 뒤 노래방을 정리하고 농사를 다시 지었다. 1997년에는 극중 친구 기홍의 사망으로 과부가 된 기홍처 보배엄마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했으나 거절 당하기도 하였다. 결국 2002년 4월 28일에 방영된 '응삼과 쌍봉의 결혼식'편에서 쌍봉댁과 가정을 이루었다. 이 드라마가 응삼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하다못해 거의 착취한 부분이 있다. 대개의 청년남성들 사이의 갈등요인이나 문제는 응삼이 일으킨다. 기순과의 결혼과 이혼까지는 개인의 일이나 죽은 친구 기홍의 처 보배네에게 구혼하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며, 결국 부부가 되는 쌍봉댁은 친구인 귀동과 오랫동안 썸을 탔던 여성이다. 지나치게 독거농촌노령 남성의 짝짓기에 과몰입한 결과로 응삼은 죽은 친구의 처에게 구혼하거나, 친구의 아이를 키워주고 싶다는 제안까지 했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이는 캐릭터가 되었다. 일용과 함께 2001 알까기 제왕전에 출연하였다.(당시 8단)
극 중에서는 개그 캐릭터 수준으로 입이 가볍고 행실도 영 좋지 못한 청년으로 성적으로 무지하던 당시 시대의 한계라 그런지 요즘 같았으면 진작에 수갑차고 감빵에서 썩었을 내용도 종종 보인다. '청실홍실'편에서는 시기가 시기이다보니 펜팔이 활성화되자 시집간 여동생을 팔아 가짜 펜팔 편지를 쓰면서 넷카마질을 하는데 그 증거 사진으로 친구 아내 사진을 보낸다던가 '미세스 양지뜸' 편에서는 친구들 아내가 개울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하고 대놓고 훔쳐보고선 그걸 대놓고 유방에 점이 있네 뭐가 있네 식으로 떠벌리거나 옷을 훔치기까지 하는 오늘날로 치면 빼도박도 못한 성범죄인 장면도 있으며 기혼 친구들을 가리켜 너 부인은 3등이다 1등이다 뭐다 하면서 픔평회를 하다가 어이구 3등 친구왔구먼 하고 과하게 놀리는 등 당시의 시각으로도 선을 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에는 용식이가 화를 내며 "여자에 걸신들렸다" 라면서 뭐라하고 가버렸는데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괘씸하다고 짜증내며 내로남불의 절정을 보여준다. 결국 술을 마시고 일용이네로 찾아가 용식이를 불러놓고 사과하라고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남의 아내들한테 저러다 바람나는 거 아니냐며 신나게 떠들다가 정작 본인한테는 결혼식장 들어가기 전까지는 안심 못 한다고 맞장난을 치자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더군다나 입만큼이나 주먹도 싸서, 전원일기에서 가뭄에 콩나듯 사내들끼리 주먹질하는 장면이 나타나면(마누라 치는 종기아빠나 귀동이, 길수 아빠 빼면) 십중팔구 일용이 아니면 이 양반이다. 심지어 노름빚 관련해 독촉받는 씬에서는 아무리 상대방이 폭력배라지만 절구공이를 들고와서 조지려 든다. 이런 만행을 일삼는데도 손절당하지 않는 게 용할 따름. 그래도 장남으로서 동생들을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내고 가장역할을 톡톡히 했다. 어느정도 중년이 된 2000년대에도 성질은 좀 누그러졌지만 선거 후보에게 술을 얻어먹고 그걸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한다던가, 아내 쌍봉댁 몰래 가게의 복권을 몽땅 긁었다가 된통 혼나는 등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여전하다. 그런 행실 때문인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응삼이가 무언가 할라치면 친구 창수나 기홍이가 지적하는 장면이 반드시 등장하고 마지막 회에서 양촌리 대표로 누가 나설지에 대해 논의할 때 은근슬쩍 자신이 해보겠다고 하자 다들 무시하거나 장난치지말라고 성을 내는 것만 봐도 마을사람들이 그를 보는 시선을 알 수 있다.
- 응삼엄마(유명순, 김영옥)
김영옥은 예전 회차에서는 응삼엄마 역 겸 단역으로 출연했다[94] 911화에서도 응삼엄마로 출연. 그 후에는 전부 유명순이 출연하였다. 배우가 누구든지간에 응삼을 결혼시키지 못해 속이 끓다 썩는 중으로 그려진다. 그 와중에 혼사가 이루어지는 쌍봉댁은 사사건건 퉁박을 놓는다. 응삼이 왜 이혼했는지, 왜 재혼이 늦어졌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배역.
- 이기홍(김영두)
보배 아빠. 고등학교 때 합창반. 극중 양촌리에서 김회장댁과 더불어 제일가는 부농의 아들. 희옥과 1985년 말에 서울행 1부에서 농촌 총각과 도시 처녀의 단체 맞선에서 만났고, 1986년에 방영된 '꽃바람'편에서 결혼하였다.[95] 희옥과의 사이에 오랜 기간 아이가 없다가 1989년 '보배나무'편에서 보배를 입양한다. 97년에 방영된 "모녀 이야기"편에서 보배가 무덤가에 갔던 걸로 봐서는 극중에서는 이미 사망했다고 본다.[96] 다만,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농집안이기 때문에 그의 사후에도 희옥과 딸 보배는 별다른 생활고는 겪지 않으며, 읍내에서 화장품 장사 등을 하며 윤택하게 지낸다. 아내 희옥이 그 시절 농촌과 생활수준 차이가 컸던 서울출신이라 결혼 초기 소소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부농이다 보니 시집온 희옥이 냉장고, 세탁기 등 세간살이를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여 놓고 자주 바꾸는데, 보수적이고 남의 이목을 많이 신경쓰는 농촌사회이다 보니 마을에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도 한다. 기홍의 집안은 부농임에도 불구하고 50~60년대 어렵던 보릿고개 시절에 집 곳간에 쌀이 있어도 굶는 마을 사람들 이목을 생각하여 쌀밥 대신 죽을 해 먹었을 정도로 있는 집 티를 내지 않고 살던 집이었는데, 서울서 온 희옥은 그런 눈치를 보지않고 씀씀이가 커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당시 낙후된 농촌과 도시의 생활수준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
- 김희옥(김혜옥)
보배 엄마, 일명 서울댁. 1985년 말에 방영된 252회 '서울행' 1부에서 단체 맞선녀 '박희옥'으로 처음 등장하였고, 1986년에 방영된 '꽃바람'편에서 '기홍'과 결혼하였다. 당시 나이 28살(1959년생) 오랜 기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 아파하다가 결국 1989년 '보배나무'편에서 보배를 입양한다. 양촌리로 시집 온 초기 서울출신이다보니 마을 아낙들로부터 텃세 등을 겪기도 하는데, (기홍네가 마을에서 손꼽히는 부농인 이유도 있지만) 농촌 사람들보다 큰 씀씀이로 각종 전자제품과 살림살이를 제일 먼저 사거나 자주 갈아치워 수남 엄마와 개똥 엄마 등 마을 또래 아낙들에게 부러움과 시샘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극중 캐릭터도 서울깍쟁이 기믹으로 마을 일에 입바른 소리를 잘하며 수남 엄마와 다니며 마을 여자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킨다.[97] 혜란을 왕따시키는 등 편가르기 한 것 때문에 남편에게 혼난 적도 있다. 수남 엄마의 뒷담화를 활용해 상대방 환장하게 만드는 실력이 남다름.
기홍이 서울로 가는 것으로 하차한 이후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으로 그려지다가, 기홍과의 이혼 이후 읍내로 이주하여 미용실을 운영한다. 이때 보배 엄마를 짝사랑하는 정육점 주인 오씨(유퉁)에 의해 기홍과 이혼한 것이 밝혀진다.[98] (기홍은 이후 사망한 것으로 또 바뀐다.) 타임워프 이후 화장품 가게를 운영한다. 1994년에는 '은자동아 금자동아'편에서 순길을 출산하자마자 일용처의 수혈을 자원하며 혈액형이 O형임이 밝혀졌다. 기홍의 사망 이후 응삼에게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으나 (그 과정에서 보배가 업동이임을 알게되어 가출하려 하는 등 아픔을 겪게 되고) 보배를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지막 출연은 1997년 822회 "배우 지망생"편이었고 이후부터 새로운 출연진(상태네와 병태네)이 출연한 관계로 나오지 않은 걸로 보아 하차했으며, 이후 1999년 상태네의 하차 이후 기존 조연진들의 복귀 때도 복귀하지 못하고 영구 하차하였다.
- 이창수(이창환)
개똥 아빠(재동 아빠). 최강 츤데레 공처가. 10살 어린 미모의 아내를 둔 능력자. 감나무집 혜란이는 극중 청년회원들 모두의 여동생같은 존재로 다들 귀여워했지만 창수는 특히 다정해서 좋았다는 혜란의 대사가 있다. 1954년 말띠 생(일용, 응삼과 동갑 친구. 혜란과 8살 나이 차이. 결혼 시점 창수 34살, 혜란 26살. 그러나 2002년 시점은 1081회 창수 대사 '내가 열살이나 더 먹었으니' 10살 차이 부부) 귀동, 명석보다 한살 위. 용식을 후배라 언급하는 것을 보면 동네에서 친구처럼 자랐지만 나이는 창수, 응삼이 더 많은 설정인듯. 양촌리 공식 애처가. 공공연하게 '난 당신밖에 없다' 발언(587회 영지버섯 편) 및 동네 아낙들의 발언들을 '아직도 신혼이야?', '사랑해' 문자 등 보면 욱하고 틱틱거리지만 혜란에 대한 아내 애정은 남 다른듯. 잘생긴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고등학교 시절 좋은 학업 성적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여실히(202회) 드러냈다. 고등학교 때 규율반. 성적도 좋았고 본인도 대학에 뜻이 있었으나 경제적 사정으로 진학을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한다.
신혼 때는 빨래터에서 아내를 돕고, 개똥이 출산 때 매우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다정한 면모를 보임(연애는 돌직구 직진남) 극 후반으로 갈수록 구두쇠 자린고비 설정에 보수적인 설정으로 옛날 아버지들처럼 무뚝뚝하고 말을 툭툭 뱉기도 하지만, 아내가 맹하고 순진해서 당하고 속는 여러모로 속터지는 일이 많아 어쩔 수 없는 상황. 아내에게 외제 영양 크림이나 생일날 립스틱을 선물하는 등 아내를 꽤 걱정하고 챙기는 전형적 츤데레. 아내가 애정 표현을 하면 받기 쑥쓰러워 하지만 내심 매우 좋아서 얼굴에 확확 티가 난다. 서울 새댁 김혜옥이 동네 아낙들 편가르기로(401회) 혜란이를 따돌리자 친구들을 혼내며 적극 중재를 하기도 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아내들 사이의 일에 대해 친구들을 탓하는 모습으로 보일 정도. 너희들 마누라들은 뭐가 그렇게 잘났나! 똑바로 못가르쳐?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또 자신의 아내를 개잡듯 끌고간다.
탄탄한 농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며 젊은 시절에도 농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될수록 아내를 착취하는 가부장 진상의 모습만 나와 안타까운 캐릭터. 상태네가 양촌리에 산 기간에 일시 하차한 뒤, 상태네가 떠난 뒤 '가을의 문턱에서'편에서 복귀하였다. 복귀 전에는 부농 설정으로 돈고생하는 모습은 거의 없었으나 복귀 후에는 재동이기 돈 사고를 치거나 버섯농사를 망치거나 친구들이 보증을 서준 대출을 갚지 못해 오래 대대로 일군 논밭을 병태 친구 남수에게 팔아야 할 만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 혜란(이상미)
1962년생~64년생 추정. (김회장 막내 영애 단짝 친구. 1985년도 24살, 남편과 8살 차이 설정. 그러나 2002년 시점은 1081회 창수 대사 '내가 열살이나 더 먹었으니' 10살 차이 부부) 양촌리 아낙 중 최초 휴대폰 소유자(967회 전화소동 편) 속칭 감나무집 딸. 개똥 엄마로 또래 마을 아낙 중 유일하게 양촌리 출신이다. 김회장댁 막내딸 영애와 동창이며, 중학교 2학년 중퇴 이후 서울로 가 공장에 다니며 집안살림을 도왔다. 이때문에 학력에 콤플렉스가 있다. 어린 시절 주인집 딸 교복을 입어봤다가 교복 도둑으로 몰린 적도 있을 정도. 85년 240회 '감나무'편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청년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된다(24살). 이후 집안 살림이 아직 덜 피었다고 생각해 다시 서울로 가 1년 정도 더 일을 하게되고, 다시 돌아와 1987년 320회에서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랐던 마을오빠 창수와 결혼한다.[99] 아들 개똥이(재동)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있다.
첫 등장때는 집안을 이끄는 야무진 소녀가장 이미지였으나...결혼 후 순진하고 맹한 성격으로 변모되었다. 초반의 캐릭터 붕괴라 별 문제는 없었다. 2021년 방송된 다큐플렉스 전원일기 편에서 혜란 역 배우가 캐릭터 설정을 고민할 때 김회장댁 이은심 역의 김혜자 배우의 조언으로 느린 말투로 대사하여 순하고 조금 맹해보이는 캐릭터로 설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마을 청년들에게 결혼후, 출산 후에도 오빠라고 부르며 허물없이 대하지만, 때론 그런 점 때문에 남편 창수와 다투기도 한다. 창수의 친구들이자 혜란의 동네 오빠들인 응삼, 용식, 일용, 명석 등도 혜란이.. 아니 창수 처 라고 고쳐부르는 등 호칭을 내외하며 조심해주는데 혜란은 개똥이가 꽤 자란 이후에도 용식오빠 일용오빠 한다. 한번씩 수남이 엄마인 용식의 처가 혜란으로 인해 신경이 긁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는 듯. 자린고비 남편이 생활비도 자신이 직접 관리하며 경제권을 주지 않아 불만이다. 그러나 허술한 본인보다 남편이 더 좋은 관리자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입장. 보배엄마, 수남 엄마와 늘 몰려다니지만 늘 둘에게 치인다. 눈치가 없고 맹하고 순진해서 셋이서 한 이야기를 본인이 죄책감을 느끼며 꼭 상대방[100]에게 해서 분란을 일으킨다. 번번히 이 일로 남편에게 꾸중을 듣기도 한다. 보배네와 수남네와 달리 나긋나긋한 말투로 초치는 스타일이며 일명 양촌리 눈새로 분위기도 못 읽고 내뱉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가끔 보는 사람을 열받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창수 스트레스 원천. 상태네가 출연한 시기에는 출연이 없었으나, 상태네가 떠난 뒤 '가을의 문턱에서'편에서 복귀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복순네 표 메주" 편이 전원일기 마지막 고정 출연이 되었다. 말투가 상당히 나긋나긋하고 귀엽다. 접시만한 눈을 가졌다는 양촌리 공식미녀 수남이 엄마에는 못해도 상당한 미인으로 그려진다. 실제 배우도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미인이다.[101] 특히 견미리와 도플갱어 수준으로 쏙 빼닮은 배우로 유명하다.
- 정명석(신명철)
용식, 일용, 창수, 응삼과 친하다. 귀동과 동갑. 일용, 응삼, 창수보다 한살 어림.[102] 인물이 훤하고 효자지만(효자라서) 귀동처럼 아내가 도망갔다. '양지뜸 명석이' 에피소드에서 순진한 명석이가 술집여자와 결혼했다가 그 여자가 시골 살이를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는 것이 밝혀졌다. 선술집에서 남자들의 말벗이 되어주는 떠돌이 여자 김해숙에게 반해서 결혼하자고 하지만 명석의 신세를 걱정해서 떠나버렸고 명석은 또 혼자가 되었다. '색시야 색시야'편에서는 집안의 패물을 들고 도망간 여자와 결혼했다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103] 극중 화훼농가를 하고 있다. 1992년부터 96년초까지 양촌리 이장으로 활약했으며, 1996년 초에 이장직에서 물러났다. 1995년에는 양희경과 결혼했으나, 얼마 지난 뒤, 양희경이 하차하면서 홀아비로 설정이 되돌아갔다. 1989년에 방송된 446화 '속사정' 편에서는 점쟁이(박용팔 분) 집앞으로 경운기를 같이 타고 온 일용네가 짱구네 할머니에게 명석이를 부면장 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 이귀동(이계인)
1984년에 방영된 '김칫국부터 마시네'편에서 용식의 농고 동창으로, 1985년 가을에 방영했던 '자린고비'편에서 최고비의 처남인 노경수역으로 단역 출연하였으며,[104] 초창기에 나쁜 놈으로 시장에서 옷을 팔다 동업자를 폭행하여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갔으며[105], 용진이 교도소로 면회오면서 아들 노마의 출산사실을 알게 됐다. 출소 후 양촌리를 떠난다. 1986년 연말특집 301회 '서울행'에서 일용이와 용식의 서울 방문 에피소드에서 아내 명자는 도망가고 아들인 노마 데리고 알콜중독 폐인으로 사는 걸 용식과 일용이가 양촌리로 데리고 오는 걸로 복귀했다. 이후 1987년 333회 '떠난 사람 보낸 사람'편에서 노마엄마 명자가 양촌리로 돌아오지만, 다른 남자와 눈 맞아 도망간 여자는 필요없다며 받아주지 않았고 명자는 다시 서울로 떠난다. 이후 홀로 노마를 키우며 이런 저런 궂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귀동의 처지를 불쌍하게 생각한 숙이 엄마가 노마네 빨래를 해주며 이를 본 동네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내기도 했다. 1989년 441회 '아픈 손가락'편에서는 논/밭 각 5마지기씩을 조건으로 정신지체 장애인(이 역할은 권은아가 맡았는데 후에는 김회장댁 큰며느리의 대학 친구 역도 맡았다)과의 혼사가 들어오기도 하고, 1992년 568회에서는 섭이네의 중매로 선을 보기도 하였지만 번번히 노마를 위해 포기한다. 1992년 600회 특집 '재회'편에서 드디어 노마엄마 명자가 돌아와 재결합하여 함께 살게된다. 노마 엄마와의 재결합 직전에는 쌍봉댁이 노마를 잘 키워줄테니 외로운 사람끼리 함께 살자며 프로포즈를 받기도 했다. 이후 상태네 가족이 양촌리에 산 기간에 출연하지 않았으며, 그 기간에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다 IMF로 위기를 겪고 주식과 경마 노름으로 패가망신한 뒤에 명자는 다시 집을 나가고 상태네가 떠난 이후 "귀동의 아들, 노마"편에서 노마와 함께 복귀하였다. 2001년 1023회 '꽃을 든 여자'편에서 맞선을 보게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영 직전 서울에서 대기업에 취직한 노마가 아버지를 모시겠다고 하지만, 자신은 친구들이 있는 양촌리 고향이 좋다며 남게된다.
초창기 귀동의 캐릭터는 1970년대 이후 가속화 되는 이촌향도의 대세 속에서 대책없이 도시빈민으로 유입되었다가 다시 귀향을 반복하는 캐릭터로 농촌사회의 붕괴를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실제 1980년대 중반 이후 농촌총각 들의 결혼문제 등은 점점 심화되어 1990년대 초중반에 이르면 농촌 총각들의 농약 음독자살이 연이어 보도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절이다.
우직한 성격으로 그려지나, '저수지에서 생긴 일' 에서 뇌물과 같은 돈을 받고 저수지의 낚시터 개발을 찬성하는 걸 보면 속물적인 걸 알 수 있다.
- 명자(이미지)
귀동의 아내이자, 노마의 엄마. 1985년에 방송된 "새해 첫 손님" 편에 첫 출연하여 김 회장 댁에서 노마를 출산하였다가 극중 귀동과 함께 서울로 간다. 그러나 서울에서 사업실패 후 알콜중독 폐인이 된 귀동의 폭력과 의처증에 견디다 못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간다. 1987년에 방영된 "떠난 사람 보낸 사람" 편에 다시 등장하였으나 귀동의 완강한 태도로 노마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그 후 1992년에 방송된 "재회" 편에서 복귀해 귀동이와 다시 화해를 하였으며 마을회관에서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살아간다. 도망간 동안 술집에서 일하기도 했고,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전처의 자식인 영식이라는 아이를 키우기도 하였고, 딸아이도 낳지만 폐렴으로 어릴 때 일찍 죽는 등 여러가지 일들로 곤란을 겪는다. 돌아와서도 술집에서 일할 때 동료를 읍내에서 만나기도 하고, 도망간 시절 지내던 남자의 아이 영식이라는 아이가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계속 찾아 할아버지가 양촌리로 찾아오는 등[106] 이런저런 일로 귀동과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귀동이와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귀동과의 재결합 초기에는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엄마와 서먹한 노마때문에 속상해 하는 에피소드도 많다. 그 과정에서 복길과 또래인 노마의 끼니를 항상 챙겨주고 보살펴주었던 일용네와 복길엄마 등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제 노마엄마는 자신이니까 노마에게 신경 좀 끄라는 말. 그러나 "배우 지망생"편을 끝으로 새로운 출연진(상태네와 병태네)이 출연한 관계로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하차했다. '귀동이 아들, 노마'편에서 노마의 증언으로 다시 도망갔다고 한다. 사기계에 걸려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다. 여기까지 설명을 보면 행실 개판인 정신나간 여편네처럼 보이고 실제로 처음 돌아온 뒤에는 술집 경력 등으로 동네 여자들의 뒷담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후에 ‘귀동이 아들, 노마’ 편에서는 온 동네 여자들이 입을 모아 “노마엄마 정도 되니까 그만큼이라도 귀동씨와 살았다”고 할 정도의 여인. 극중에서도 주로 자식 아끼고 말수없고 인내심 많은 성격으로 나온다. 특히 상경 직전까지도 살림 불어나는 재미에 억척스럽고도 화목하게 잘 살았다고 하여 더더욱 안타까워들 했다.[107]
- 노마(정인호[108], 임진욱[109], 김태진[110], 김상현[111])
귀동의 아들. '새해 첫 손님'편에서 명자가 김회장의 집에서 낳은 아이다. 1997년에 방영된 '부전자전'편에서 다른 사람이 어버지 귀동을 욕한 것이 문제가 되어 주먹질을 하였다. 참고로 귀동은 이씨다. 대학에 복학하기 위해 택시기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극중 어린 시절의 노마는 굉장히 우울한 모습으로 많이 나오는데, 301회 '서울행'편에서 용식과 일용이 서울에 가서 명자의 가출 이후 폐인처럼 지내는 귀동과 노마를 데리고 양촌리로 귀향한다. 이후 600회 특집에서 엄마 명자가 돌아올 때까지 무려 300회 분량을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 역할인데, 귀동은 귀향 이후에도 한동안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고, 이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후에도 하는 일마다 안 풀리는 캐릭터. 자연히 집에서 거친 아버지의 술주정과 눈치를 보며 자라는 노마는 마치 자폐아로 보일만큼 말수가 없고 내성적이며 어른 눈치를 보는 아이였다.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불안해서 밤에 자다가 몽유병처럼 일어나 맨발로 집밖을 서성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해서 아버지 귀동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귀동이 일하러 나간 시간 노마를 실질적으로 양육해준 것은 일용엄니다. 끼니 때 되면 (자신들의 형편도 넉넉치 않음에도) 군말없이 노마를 데려다가 복길과 함께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키워줬다. 어린 시절의 노마는 복길과 남매처럼 컸다고 보면 된다.[112] 이런 불우한 시절을 견디고 자란 노마는 다행히 성장해서는 (비뚤어지지 않고) 매우 성실한 아이로 컸는데, 공부도 잘해서 대학도 가고 모 전자 대기업 기술 연구부서에 입사해 아버지를 봉양하는 등 극 후반부 명자의 재 가출 이후론 혼자 된 아버지 귀동에 대한 효심도 갖춘 캐릭터로 성장했다. 오히려 수남이보다 공부도 잘하고 성실해서 수남모 순영이 셈을 낼 정도.
- 양촌리 노인들 3인방
양촌리에 사는 노인들. 이름은 잘 안 불리고, 3인방끼리는 주로 성씨로 부르고김가 박가 이가동네사람들은 ○○집 어르신으로 부른다. - 김노인 (정대홍[113])
본명은 김봉필[114]. 김회장의 먼 친척. 정확히는 9촌 삼종숙부로 김회장보다 1살 많다 . 일명 대추나무집 어르신. 슬하에 9남 2녀를 두었지만, 모두 도시나 타지에 가서 산다. 겉보기는 김회장이나 김노인이나 비슷한 연배로 보이지만 이런 설정 때문에 김회장은 세 노인을 만나면 깍듯하게 인사를 올리고 세 노인은 인사를 받으며 대충 하게체 정도를 쓴다. 세 노인중 가장 유쾌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웬만해선 허허 웃고만다. 그 대신 나잇값을 못하고 덜렁대는 기믹이 있는지 제법 마을에서 분란을 일으킨 에피소드가 제법 있다. 노인 3인방 중에서 젊은 시절에는 제일 방탕하였던 것으로 나온다. 주색잡기로 어느 정도는 가산을 탕진하고 노년을 궁핍하게 지내는 설정이다.[115] 사실 자식 설정이 자주 바뀌는데 아들이 빚을 지거나 어려운 형편에 타지로 나가 고생해서 늘 그리워 한다는 내용은 일관적이다. - 박노인 (홍민우[116])
본명은 1987년에 방영된 '지각예물'편에 따르면 박칠복. 일명 새터집 어르신. 박응삼의 7촌 재종숙부이기도 하며, 친구인 이노인과도 먼 사돈 친인척뻘이다. 슬하에 7남매를 두었으나 대부분 일찍 죽거나 대만등 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막내 아들은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전사한 막내아들의 동료가 현충일에 맞추어 박노인을 찾아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분명 과거 에피소드에는 한 집에서 사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까지도 있었으나 후에는 아예 사고무친인 것처럼 나온다.[117] - 이노인(정태섭[118])
이귀동의 친가 7촌 서얼 재종백부(再從伯父)이자 최만순(섭이 부)의 외가 5촌 외종백부(外從伯父). 김회장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 중 나름 교육수준이 높은 설정. 때문에 세 노인중에서도 가장 기품있고 근엄하고 동네에서도 가장 존중받는데, 이게 가끔은 꼰대처럼 나올 때도 있다. 극중 초중기까지는 노인 3인방 중 유일하게 혼자가 아니라 재취로 들인 처가 있는 설정. 극중 92년 할머니가 사망. 김회장과 더불어 마을 어르신들 중 한학에도 밝고, 침술사 역할도 하고 있으며, 노인 3인방 중에서는 경제적으로 제일 부유하다. 슬하의 자식들도 서울에서 성공한 것으로 그려진다.
이노인의 와병으로 서울에 있는 자식들이 내려와 모인 자리에서 일용엄니의 대사로 일제강점기부터 근동에서 나름 부유한 양반가 후예인 것이 밝혀지는데, 부유함에도 아랫사람들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 가풍 덕에 한국전쟁시(극중 인공치하라고 나온다. 이는 인민공화국을 말하는 것) 에도 집안의 종들이(악질 지주라고 고발하기는 커녕) 자진해서 숨겨줘서 대지주임에도 인민재판에 끌려가 죽지않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인격자 집안으로 나온다.
1992년 배우자의 사망 이후 서울의 장남이 모셔가지만, 답답한 서울살이에 대한 염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귀향하여 5촌 조카며느리인 섭이네의 부양을 받으며 살아가는데, 나름 부농이었던 배경으로 보면, 조카며느리에게 부양을 받는 대신에 토지 증여등으로 경제적 보상을 해주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죽은 남편의 5촌 숙부를 시부모처럼 봉양하고 사는 섭이네도 대단한 것이다. '날 저무는 하늘에'편에서 서울 아들네 집에서 와병중 사망했다고 처리되며 하차하는데, 이는 다름아닌 배우 정태섭의 실제 별세로 인해 나온 설정이다. 극중 이노인의 장례식은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정말로 배우들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한 모습이며, 영정사진도 실제 영정을 썼다.
- 만순(홍순창, 김호영)
섭이 아빠. 1980년대 초반에는 홍순창이 만순 역으로 출연했으나 그 이후 다른 배역으로 단역에 출연하였다.[119] 1989년에는 김호영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 숙이네 김귀순(김명희[120])
부녀회장과 삼인방. 숙이 엄마는 사연이 많은 인물로,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어 시할머니, 시할아버지, 중풍 환자였던 시아버지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집에서 수발을 들었다. 양촌리에서 이름난 효부. 옆동네 남자와 한때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불쌍한 시어머니와 숙이를 생각해 그 남자(상대배우는 김인문)와 헤어졌다. 이후에도 슬픈 찻주전자 등의 에피소드에서 방물장수와 거의 마음을 합칠 뻔했다가 포기하는 등 과부 신세로서의 에피소드는 거의 숙이네 전담이다.(해당 에피소드의 방물장수역은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초기 책사를 맡았던 배우 정진)
- 섭이엄마(김정)
만순의 아내, 딸과 며느리 편에서 동네에 들어서는 김회장네 장녀 영숙이(엄유신) 를 보면서 동갑이라고 했다. 노인 3인방중 이노인의 조카며느리이다. 정황상 극중간에 남편도 여의고 혼자 섭이를 키운 여인인데, 이노인이 그녀의 5촌 시백부. 그 시백부의 자녀들은 도시에 살고 있어 노인이 병이 들자 병원과 집으로 모시려 했으나 노인이 굳이 양촌리에 계속 살고 싶어해 섭이네가 본인도 힘이 들지만 노인을 위해 계속 끼니를 챙기고 돌보아 드리겠다고 해 노인도 양촌리로 돌아온다. 시부모도 아닌 5촌 시백부를 삼시세끼 해바치며 계속 곁에서 돌보는 인내의 여인. 때때로 이노인이 섭이네에게 봉투를 건네는 등 돌봄을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5촌 조카 처인 질부임에도 하게체가 아닌 얘, 야, 너라고 부르는 등 교육받은 양반이라는 이노인의 설정에도 불구하고 하대한다. 그나마 이노인의 자식들은 섭이네에게 마냥 고마워하기는 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
- 송갑수[121](김상순)
방영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양촌리 이장으로 출연하였고, 그 후 양촌리를 떠나면서 하차하였다. 자식농사편에서는 10년째 이장이라는 언급도 있었다. '추수가 끝난 뒤'편에서 이장직 그만 한다고 발언했다가 곧바로 추대되었다.경찰서에서 김회장의 부하였으며 양촌리에서 이장하다가 김포로 이사간 뒤 놀부 소리를 들었다.
- 갑수의 부인(박원숙)
1980년대에 출연하였다. 당시 출연한 많은 자료가 현재 남아있지 않아 1984년에 방영된 부분부터 등장한다. 1984년에 방영된 '자식농사'편에서 이장과 부부사이로 나온다. 방영초기에는 양촌리 부녀회장이었다. 복이 많은 여인으로 그려졌는지, 혼수이불은 장만할 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가 첫 땀을 놓는 것이 좋다면서 김회장댁 막내딸 영애의 혼수 이불 첫 땀을 갑수 처가 놓는 장면이 있다. 1986년[122] 이후 하차하면서 부녀회장 자리는 종기엄마가 당선된다.
- 의사(한규희)
의사로 가끔씩 등장. 그 외에 1986년에 방영된 '세월'편에서 수족을 못 쓰는 귀염의 남편 역으로, 1992년에 방영된 '친정 오빠'편에서 사업에 실패해 양촌리로 피신한 순영의 오빠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그 여름의 끝'편에서 군청 감사실장 역으로 단역출연하였다.
- 김회장 조카(김기현)
초기에 등장.(1985년 《열두달을 일년같이》편 외) 이후 1988년에 방영된 '확실히 해둡시다'편에서 냄비장수 역으로 출연하였다.
- 남수(양동재)
농과대학을 졸업했으며, 그 때문인지 첫 등장때부터 재동이네와 부녀회장 사이에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123] '가을의 문턱에서'편[124]에서 본격적으로 양촌리로 이사온 귀농인이며 병태의 친구다. 그러나 2002년에 방영된 "보릿고개도 아닌데"편에서 병중에 있는 아버지 사업을 돕기위해 서울로 가게 되면서 하차한다. 고정출연 이전에는 1994년 '홑이불 도깨비' 편에서 양촌리에 피서왔다가 쫓겨나는 양아치 역할로, 1996년에는 '남과 여' 하편에서 응삼과 김씨와 싸움으로 두 사람을 조사한 파출소 경찰 역으로 출연하였다. 병태와 금동과 친하다. 사람좋고 배려심도 많고 선한 인물이지만 이따끔씩 병태와 금동을 술집으로 꾀어서 데리고 가는 바람에 남영과 윤희에게 눈총을 받는다. 서울로 떠기 전 날에도 술값 28만원을 금동이 내게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걸 다 불어버리는 주사를 가졌다. 그리고 본인은 기억을 못한다...복길이 친구 선희와 연결 될 뻔하다 선희 오빠의 반대와 본인의 의지로 선희에게 만나지 말자고 해버린다.
- 보배(최진애)
극중 기홍과 희옥이 입양한 딸로 나온다. 성인 무렵부터 등장하다 825 빈집 있습니까 편 끝으로 하차하였다.
6. 기타 인물들
자세한 내용은 전원일기/등장인물/기타 문서 참고하십시오.7. 참고 자료
김동 유규문 (유형준)김은동(임호) 아들 당시나이 2살
[1] 언급된 적이 거의 없어서 오죽하면 김혜자 배우도 김회장님 본명이 뭐냐는 질문에 그건 모르겠다 답 했을 정도. 단, 2회에서의 이름은 '김윤배'였다.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는 불명.[2] 마을 사람들이 종종 '회장님이 우리 같은 사람이랑 같나'라는 말을 할 정도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양촌리에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김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부에서 손님이 올 때 김회장에게 꼭 인사를 올 정도로 양촌리 내에서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표현된다.[3] 최불암은 이 배역을 위해 정주영 회장에게 지게 지는 법 등을 배웠다고 한다.[4] 본인 소유의 과수원도 가시덤불에 자갈밭 투성이이던 땅을 손수 개간하여 얻은 것이다. 김회장이라는 호칭과 극중 대접 때문에 간혹 공무원 등을 하다가 땅을 구매한 것으로 오해하는 시청자들이 있다.[5] 단적인 예로, 라떼는 남은 밥 또는 상한 밥을 한 톨이라도 버리면 큰일 나는데 씻어서 다시 먹거나 돼지우리에 사료로 주라고 한다.[6] 주로 초~중기 에피소드에서 그러하다.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면, 또한 아들들과 대립되는 기성세대의 대변인이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한 부분. 예를 들어 동네 머슴같이 살던 집의 아들이던 친구가 자수성가하여 동네에 부모의 송덕비를 세운다는 둥 유세를 부리려하자 술 먹고 싸우고는 과거 그 친구 부모님의 인심과 인내심이 참 좋았었다는 식의 회상을 하는 등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7] 이는 김 회장 본인부터가 본질적으로도 성실하고 자상한 편이지만, 부인 이은심의 희생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남편의 외도도 참았는데, 462회 <사돈 남 말 하시네> 편에서 극중 일용 엄니가 김 회장의 생일잔치에서 술이 취해 마을 여자들 앞에서 말한다. 이 때도 이은심 여사는 아니라며 김 회장이 인기가 많아서 따르는 여자가 많았을 뿐이라고 둘러대지만, 한 번은 김 회장이 가정까지 버리려고 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후에 다른 에피소드에서 이은심이 진짜 안 살고 짐싸서 도망가려고 했던 적이 두 번 있다고도 한다.[8] 늦장가 간 총각의 결혼식[9] 기홍과 희옥의 결혼식[10] 응삼과 기순의 결혼식[11] 이장이던 명석과 현숙의 결혼식[12] 당시 옛 신한국당 영등포구 을 대한민국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예명이 아닌 본명 최영한으로 출마했으나, 그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민석 후보에 밀려서 낙선했다. 참고로 배우 이덕화도 같은 해 총선 때 신한국당 광명시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하여 배우로 복귀했던 사례가 있다.[13] 선거법상에서 연기 배우라도 본인이 선거 출마를 하였을 경우에는 무조건 배우직에서 물러나거나 출연작에서 하차해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는 선거중립상 및 정치적 활동 등을 배제하는 선거법 규정이다. 다만 92년에 전국구 의원이 되었을 때에는 하차하지 않고 광고 모델로 활동했는데, 이 당시 연예 활동과 의정 활동을 겸하던 이순재, 최불암, 이주일, 강부자 같은 연예인 출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자 규제가 생긴 것.[14] "세월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날아가고 흐르는 물결처럼 되돌릴 수 없다. 흐르는 물결은 머물고 갈지언정 거스르는 길은 아닌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왜 이렇게 굴곡도 많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되는지."로 시작한 내레이션은, "세월의 흐름 따라 사람은 늙어 간다. 박수할 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고, 정에 연연하다 보면은 그 기회를 잃고 만다. 그러나 어쩌리 그것이 또한 인생인 것을"이라는 멘트로 끝난다. 후에 이 배역 모티브를 다름 아닌 장욱진 화백이라고 밝혔다.[15] 2015년 12월 19일 무한도전에서 극중 이름이 이은심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지만, 실은 전원일기 방영 중에도 이름이 이은심이라는 것이 여러 번 나왔다. 작품의 상영 기간이 오래되어 몇몇 곳에서 설정오류가 나오는데, 극 초반기에는 김은심이었다.[16] 최불암의 실제 부인은 탤런트 김민자다. 최불암과 김혜자의 극중 인연은 의외로 오래되어 MBC 초기 드라마인 개구리 남편에서부터 부부로 출연했다.[17] 극중 잔칫날에 일용엄니가 용식엄니가 13살에 민며느리로 시집왔다고 말하자, 13살이 아니라 14살이고 민며느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300회 특집 '곳간 열쇠' 편에서는 본인이 시어머니 박부용에게 하소연할 때 18살에 시집왔다고 말한다. 설정오류인 듯.[18] 못사는 막내딸에 비해 며느리들은 편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던 데다, 철없고 입단속 못 하는 둘째 며느리와 고지식하고 배운 게 많은 첫째 며느리 덕에 본인도 마음고생 하는 게 겹쳤다.[19] 전원일기 신통력 편에서 일용엄니가 할머니에게 남자 목소리로 장난 전화를 할 때 밝혀졌다.[20] 다만 방송 시작할 때 당시의 나이는 53세로, 현재로 따지면 그냥 중년의 나이이다. 물론 1980년 당시로 치면 노인으로 봐도 무방하긴 하다. 재방송 기준으로는 주로 60대 ~ 70대 초반이다.[21] 드라마 초반에는 6급 주사에 속하는 계장이었으나, 이후 승진하여 마흔이 갓 넘은 나이에 과장, 즉 5급 공무원이 되었다.[22] 다만 80-90년대의 애처가이다. 노름에 빠져 석달치 급여를 다 날리고, 다방 레지와 좋아지내며 데이트를 하는 행위 등을 아들 영남이 돌도 되기 전에 해치우고 다녀 이혼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23] 310회 부녀회장 편에서는 이은영, 339회 '고양이 소주' 편에서는 김은영, 782화 '당신의 이름'으로 편에서는 박은영으로 나온다.[24] 제주도에서 꽤나 알아주는 부자로, 딸 집 냉장고를 바꿔준다든가 제주도 왕복 비행기표를 그 시대에 흔쾌히 사돈댁에 보내는 등 부유하다.[25] 오죽하면 이 모습을 본 서방님 용식조차 서울로 상경하라고 할 정도.[26] 1994년 방영된 677회 '아버지와의 추억' 편에서 형 용진의 대사에 의하면 농고 시절 나름 공부도 곧잘 하던 동생이 대학 학비 걱정에 당시 학비 면제인 교육대학(당시 2년제 시절)을 간다면 자신도 대학을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원서를 접수하지만, 결국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대사가 나온다.[27] 그런데 이 설정도 극후반으로 가면 달라지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일용과 놀러다니기만 하다가 대학 못 간 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형제간에 다투는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설정오류.[28] 요새야 그런 걸 따지지 않지만 (사실 애초에 따질 만큼 자식이 많지도 않지만) 옛날에는 부잣집이 아닌 이상 장남은 대학 보내고 나머지 아들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농고나 상고까지만 보내며, 딸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만 보내는 일이 허다했다. 동생들이 빨리 학업을 마치고 돈을 벌어서 맏이의 학비를 지원하는 구조.[29] 장남 공부만 열심히 뒷바라지 하고 동생들, 특히 여동생이 희생하는 모습은 MBC 드라마 육남매에 나온다. 극중 둘째이자 장녀인 숙희는 큰오빠이자 장남인 창희를 위해 다니던 중학교를 중퇴하고 바로 공장으로 취직하며 사회전선에 뛰어든다.[30] 물론 그 에피소드가 아내 고순영의 잘못도 있었지만 아내 앞에서 여자와 친구 둘 중 고르라면 친구를 고르겠다는 말을 했다. 어찌 보면 그 당시 남자들이 아내를 어느 정도 위치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31] 최불암의 일시 하차 기간이던 96년에 이장이 된다.[32] 촬영하다가 동네 어떤 치매 노인에게 걸려서 실제 유인촌이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한다. 지금과 비교하면 씁쓸한 에피소드.[33] 박순영으로도 불렸다.[34] 가끔 냇가에서 함께 다정하게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35] 특히 수남이 임신 중에 그런 에피소드가 폭발하는데, 임산부라고 대신 빨래를 해 준 복길엄마에게 이제 돈 줄테니 앞으로 빨래를 해달라고 한다던가(지금도 아무리 드라마라도 좋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이지만, 방영 당시에도 식모 취급 수준이라 더더욱 껄끄러운 문제였다.) 가족들 몰래 떡이니 빵이니 사다먹고 거짓말을 한다던가...[36] 1994년 군복무하던 그에게 선임병이 '금동이로 많이 떴냐' 고 묻자 '금동이 때문에 내 인생이 더 묻혀졌습니다' 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아역 때 그 이미지가 너무 컸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반항하는 성격을 지녔었다. "억대 가난뱅이" 편을 끝으로 잠정 하차 뒤, "돌아온 금동이" 편에서 돌아왔으나 불미스러운 일을 또 저지르게 되어 "시누 올케"편을 끝으로 하차했다.[37] 보약 편에서는 다음주에 방송할 금동이 편의 시놉시스였고 보약 편의 주된 내용은 박순천이 유인촌에게 보약을 지어주는 편이다.[38] '새끼 손가락' 편은 전원일기 900회 특집편이다.[39] 현재는 외식업체대표를 맡고 있다. 자세한 기사는 여기를 참조.[40] 참고로 남성진과 김지영은 실제로도 부부인데, 이 때의 역할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41] 아버지와의 추억 편부터는 안경을 쓰게 되었다.[42]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 해설가 및 리그 오브 레전드 감독 강현종이 맞다.[43] 경쟁 작품이었던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서 초반부 출연하였다. 김포 백구두 아들에서 김회장네 손자로...[44] "진짜 사나이" 편은 KTV에서 미방영, 엣지TV에서 141회로 방영되었다. 이후 2000년에 방영된 "우리 아들 육군 일병" 편에서 군복무하는 중에 나왔고 2001년에 방영된 "우리 아들 육군 상병" 편에서 휴가를 받고 오랜만에 다시 출연했다가 "사진작가 이복길" 편을 끝으로 다시 군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 후 2002년에 방영된 '고향 앞으로' 편에서 말년휴가를 받고 잠시 출연했다가 이후 '언제나 마음은 청춘', '꽃바람', '아들의 애인', '산삼보다 귀한 것', '신혼 일기', '부부 학습', '생일선물', '여름 제사', '한여름 밤에 생긴 일', '물놀이는 자기들만 가나?', '비밀이 없어요', '메밀꽃 필 무렵', '가을 햇살 가득한 날', '복길이의 강적', '찬 바람 불어오면', '사랑을 나눠요', '잘 먹고 잘 사세', '외로운 계절', '가을 안개', '내 이름 석 자', '가슴앓이', '마음만은 부자', '아버지와 아들', '복순네 표 메주', '숨쉬는 흙', '선물',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 편에 나왔다.[45] 열심히 출연하던 도중, 영장이 날아와 감독에게 하차해야겠다 말했더니 "너가 갔다와도 프로그램이 끝날 것 같지 않으니 드라마에서도 입대한 걸로 하자."고 하여 입대와 제대, 드라마 복귀까지 할 수 있었다고 한다.[46] 1993년 방영된 에피소드에서 엄마가 8살이라고 함.[47] 삐삐의 시대라 휴대폰 따윈 없었다. 결국 연락할 방법이 없던 남영이 방송실까지 뛰쳐가서 금동의 차를 빼달라는 안내방송을 요청한다.[48] 극중 이름은 유원식, 김정숙 작가의 여동생 김선숙의 남편 즉 제부의 이름을 사용했다. 극 중 우편물 주소 중 경남 진해시 경화동이 나오는데 실제 여동생네가 거주 하던 집 주소였다.[49] 전인택의 비중은 주로 농어촌 부채 문제가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인해 파탄에 이른 영농후계자로 쓰였다. 축산업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사료값이 오르고 소값은 떨어져 주로 절망하는 역 전문.[50] 이 때 죽은 큰딸 역할로 나온 배우는 윤여정.[51] 해당 에피소드에서 김회장 부부가 읍내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은심이 음식점 여주인의 나이를 묻는데, "올해 딱 마흔이네요"라고 대답하자, "그럼 뱀띠네?" 하면서 이은심이 대번에 알아맞추는 장면이 나온다. 어려서 죽은 큰딸이 뱀띠였기 때문. 해당 에피소드 방영년도가 1992년이었으므로 당해에 마흔이라면 죽은 큰딸의 출생년도는 1953년으로 추정.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술에 취한 이은심이 오늘 뱀띠 우리 딸을 만났네하면서 집에 와서 가슴 아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병원에도 제대로 못 데려가고, 집에서 민간요법과 굿판 등을 벌이다가 허망하게 보낸 큰딸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일용엄니는 그 시절은 자식들 반타작만 해도 다행이었는데라고 한다.[52] 전원일기 224회 '동갑님네'에서 나왔다. 동갑으로 등장한 사람은 변희봉.[53] 314화에서 일용엄니가 "빨강물 들어 죽은"으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54] 그녀는 이것을 어떻게든 잊어보려 했지만, 설마 했던 복길이가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55] 물론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할 필요도 있는데, 이 시대에 태어난 노인들은 가난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기가 어려워서 저학력인 경우가 상당했고, 오히려 고졸도 고학력으로 취급받던 시대였다.[56] 301회에서 귀동과 함께 귀향, 그후 600회에서 엄마 명자가 돌아오기까지 무려 300회 분량을 엄마없이 자라는 아이였다[57] 더구나 극 초중반기 귀동은 성실한 캐릭터도 아니고 술과 친하며, 엄마 없이 자라는 아이 노마를 부지런히 건사하지도 못한다.[58] 29살부터 일용엄니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실제 나이는 1949년 생이라 방영이 시작될 때의 나이는 한국 나이로 32살, 만 나이로 해도 31살이었다. 지금이야 김수미가 75세까지 살았던 것 때문에 김수미 하면 원로배우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단지 20대에 비하면 연상일 뿐 엄연히 젊은 나이인 30대였다. 이렇게 젊은 배우를 할머니 역으로 배정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딴 거 없고 노인 연기자가 없어서였다. 오히려 방송 시작할 당시 20대 후반 청년 역인 박은수가 2살 더 오빠였다. 1980년대 초반에는 노년은커녕 남성 50대 중년 연기자도 태부족이었다. 그 이순재와 신구도 그 당시에는 둘 다 아직 40대 후반에 불과했고, 최불암만 해도 20대 후반(!) 때부터 노년 전문 배우로 활동했을 정도인데, 여성 원로배우는 아예 눈 씻고 찾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은 지천명만 되어도 사실상 노년이랑 다름없었고 평균 수명이 환갑을 조금 넘던 시기인 것을 감안하면 50대 이후로는 적거나 은퇴한 경우도 있으며, 60대 배우는 현역에 거의 없었다. 2020년대가 된 현재 30대의 여배우가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나 20대 초중반 연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남배우긴 하지만 김수미보다 2살 많은 박은수(당시 33살, 세는나이 34살)의 경우 실제 나이보다 7살 어린 20대 청년 '일용' 역을 맡아 20대 연기를 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설정상인 1925년생이라 해도 초기에 55세여서 할머니보다 아주머니가 더 맞지만, 당시에는 55세가 노인이었다. 물론 전원일기가 20년 넘게 해서 방송 도중에 김수미가 40/50대 중년이 되어가긴 했다.[59] 김수미가 현재는 70살이 넘어서 그렇지 젊은 시절에는 마치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황인종으로 옮겨놓은 듯한 그런 미녀였다. 배우 박시연 또한 매우 닮은꼴이다.[60] 2008년, 2013년, 2016년 등 여러 차례 사기 혐의에 휘말려 피소되거나 수감된 전과가 있다 보니 그 이후로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없어졌고, 요즈음은 주로 캬바레 등 밤무대에서 활동 중이라고 전해진다.[61] 이제는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아들인 일용이 역할의 박은수가 어머니로 나온 김수미보다 두 살 위다. 일반적인 포탈 프로필에서는 박은수가 1952년 생으로 나와서 1949년 생인 김수미보다 어린 걸로 알려졌지만, 김수미가 방송에서 박은수가 실제로는 1947년 생임을 밝힌 적이 있다.[62] 작중 기준 1954년 생으로, 방송 초기에는 27살의 혈기왕성 청년이었으나, 나이를 점차 먹으가면서 30대, 그리고 40대가 되어서 중년회장이 되었다. 종영 당시는 49살이었다. 실제 배우는 초반부터 30대 중반이며, 종영 당시 이미 50대 중반.[63] 결국 금동이랑 가출한 것 때문에 김 회장에게 호되게 야단 맞아서 그 소원을 이뤘다. 김 회장을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타입. 어머니와는 츤데레 관계.[64] 1985년에 방영된 '가을비' 편에서 결혼에 실패한 최명길이 인생유전으로 떠돌다 읍내 다방마담으로 오면서 우연히 재회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물론 일용이 사는 곳인지 모르고 온 것. 이후 최명길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65] 전원일기 자체가 방영 기간이 워낙 길었던 드라마여서 극중 주요 인물의 옛 첫사랑, 여자친구 에피소드는 일용 뿐 아니라 김회장댁 용진, 용식 등에게도 두어번씩 나왔다. 일용 역시 초창기의 최명길 이외에도 90년대 후반 다른 여인과의 에피소드가 또 나온다. 소재고갈로 어쩔 수 없었던 듯.[66] 301회 서울행 1부에서 집배원이 편지를 전해주며 내가 이 마을에서 연애편지 배달 제일 많이 한 곳이 일용이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용이 생사람 잡지 말라하며 시치미를 떼자, 마산아가씨(마산큰애기), 영월 처녀 등은 다 뭐냐고 너스레를 떤다.[67] 둘 다 욱하며 마누라에게 버럭하면서 밥상 엎어버리는 캐릭터. 다만 창수는 철없고 눈치없고 센스없는 아내를 챙기고 아내가 친 사고 수습하느라 바쁘지만, 일용은 이유불문 마구마구 욱한다는 게 차이. 물론 이 분야의 끝판왕은 귀동이지만, 귀동은 전체적으로 걍 망나니 기믹이다. 창수는 아내가 딸같고 반면 일용은 아내가 엄마같은 분위기.[68] 그래도 한 번은 아픈 부인을 위해 밥을 짓다가 어머니한테 부엌에 왜 들어왔냐고 꾸짖음을 받아도 묵묵히 밥을 짓기도 했다. 물론 어머니의 행패에 어쩔 수 없이 하다 멈추고 나갔지만 말이다.[69] 일용이의 결혼식을 다룬 편에서도 "소라도 한마리 잡아 주고 싶은데, 나라에서 돼지고기 먹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큰 돼지로 대체한다"는 김회장 부인의 대사가 있다.[70] 다만 종기 아버지의 폭력은 종기 엄마의 춤바람 에피소드에 얽혀 나오는 일이 많은데, 작품 내에서는 코믹하게 처리하면서 넘어가지만, 지금의 방송 기준으로는 가정폭력을 희화화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점이기는 하다.[71] 극초반에는 박혜숙.[72] 냉장고를 들여놓고도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냉동실 온도조절을 최하로 해놓는 바람에 얼음이 얼지 않아 이를 복길할머니가 고장으로 잘못 알고 AS를 부르는 에피소드도 나온다.[73] 식구들에게도 맨날 돈 없다고 인색하게 굴다가 지역농협에서 저축왕으로 선정되었다고 표창장을 준다고 하니, 식구들이 그렇게 통장 많이 모은 것을 알면 자기 욕 먹는다고 표창장 안 받겠다고 사정하는 에피소드도 나올 정도.[74] 복길네가 극중 여성 캐릭터로 알뜰함 1위라면 남자 캐릭터 중 돈에 가장 인색하게 그려지는 것은 개똥 아빠 창수. 이 쪽은 여자는 보통인데 남자가 구두쇠 기믹으로 그려져 여자가 돈 문제로 스트레스 받는다.[75] 극중 김회장댁 용진도 영남 1명, 용식도 수남 1명, 창수도 재동 1명만 낳아 기른다.[76] 시대상의 변화이기도 한데, 70~80년대 가족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던 정부도 나라의 경제가 좋아지자 1994년 슬그머니 산아제한정책을 폐지해버렸기 때문.[77] 2021년 5월 근황올림픽을 통해 오랜만에 근황이 알려졌다. 회사를 다니다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으며 결혼해 딸이 있다. 2개월 뒤 다큐 플렉스 전원일기에 딸과 함께 출연했다.[78] 극중 끝까지 결혼은 하지 않는다. 복길네와 절친한 김회장 댁이고, 극중 영남엄마 은영은 외려 동서인 수남엄마 순영보다 복길네와 더 친하고 속내를 털어 놓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복길네와의 사돈 맺기에는 뜨듯미지근하다. 이웃으로는 몰라도 아들의 결혼 상대로는 좀 더 좋은 환경의 처갓집을 얻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랄까?[79] 1980년대에도 일용의 아들이 한번 출생한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아시발꿈으로 처리했다.[80] 초반부에는 심양홍이 나오기도 했다.[81] 1994년에 방영된 '어머니', '황금알 둥지' 편에서 등장하였다.[82] 역시 전인택과 같이 농어촌 부채 문제를 고발하는 캐릭터이다. 설정상 축산업하다가 파산해서 빚에 쪼들리며 사는 사람들.[83] 공교롭게 장남 차광수와 차남 이진우는 전원일기 종영 후 2년여 뒤 제5공화국에서 쿠데타 동지로 재회한다.[84] 드라마 허준에서 유도지의 부인 역을 맡았다.[85] 극중 이름은 박복남이다. 1987년에 방영된 '회장님'편에서 이름이 공개되었다. 하지만 1985년 머슴들의 잔치에서는 양이쁜, 1998년 미스 양촌리 선발대회에서는 김말순이라고 한다.[86] 참고로 전원일기 출연자들 중 실제로는 제일 엘리트인 인물이다. 여자들의 대학진학률이 매우 떨어지던 그 시절에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87] 참고로 경북대 수의학과를 나온 엘리트다. 이과 문과 부부 엘리트..[88] 이때부터 종기도 사실상 외동아들로 나온다.[89] 일반 부역도 손가락질을 받는데, 인민재판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마을사람들을 살육하는데 앞장섰다고 한다. "살인 내고 산으로 도망간..." 운운하는 이노인의 발언으로 보면 정황상 수복 후 보복을 피해 조선인민유격대에 가담했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90] 2023년 2월 13일자 tvN STORY <회장님네 사람들>에서 신충식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2000년대 초반 재회 당시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91] 극 초기에 쌍봉댁은 기홍 어머니의 호칭이었다.[92] 양촌리112라는 에피소드에선 강도 두 명이 가게를 턴다. 가게라는 특성상 강도 당하는 내용이 자주나오곤 한다(양촌리 112는 1995년 방영)[93] 여담으로 가격이 편의점 가격이다.[94] '양지뜸 명석이' 편에서는 읍내 식당 사장역으로, 1991년에 방영된 '고모 할머니' 편에서 용인 왕고모 할머니역으로 출연했다.[95] 서울에서 1년간 재수 생활을 했음이 언급됨[96] 사돈 남말 하시네 편에서 청년회를 그만두고 도시에서 대리점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설정상 하차하는데, 실제 배우인 김영두가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계에서 은퇴하였기 때문이다. 김영두는 현재 교회 목사를 맡고 있다.[97] 입바른 소리 잘하는 깍쟁이 서울여자 기믹은 보배엄마 하차 이후 슬기엄마 김자옥이 물려받는다.[98] 763회 '새로운 시작'편에서 스토킹을 하던 정육점 주인 오씨(유퉁)가 유부녀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며 호적등본까지 떼어본다.[99] 8살 차이 결혼 때 창수 34살 혜란 26살. 둘의 결혼과정에서 혜란 아버지의 반대로 약간 난관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용엄니와 용식어머니 등이 중간에서 두 집안을 맺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극중 김회장댁 노할머니의 대사로 3대가 덕을 쌓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한 동네 안에서의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한 동네 사람끼리 서로 속속들이 사정을 다 알면 오히려 혼사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100] 복길 엄마, 노마 엄마.[101] 초창기 방영회차들을 보면 정말 소녀적인 청순함이 자연스러운 미인이다.[102] 동네 청년회 멤버. 태어나면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라 형제지간에 가깝다. 그들의 아지트가 있으며 가끔 귀동이나 기홍도 낀다.[103] 용식과 응삼이 달려와 자살하려던 명석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용식은 화를 주체 못하고 그 농약병을 있는 힘껏 던져버린다.[104] 둘 다 귀동이 아닌 다른 인물로 등장하였다.[105] '무지개를 찾아서'편에서 귀동이 폭행으로 체포된 부분이 있다.[106] 사실 아이의 할아버지는 아이가 안쓰러워 한 번 보여주기만 하려고 데려온 것이지만, 명자도 귀동도 차마 내치지 못한다. 아이의 할아버지도 영영 아이를 맡기거나 명자를 데려갈 생각은 아니어서 되려 미안해한다.[107] 마지막 가정파탄의 이유도 사기계도 사기계지만 귀동이 주식으로 사채까지 끌어쓰고 날려버린 점, 그로 인해 가정폭력과 주취가 심했던 것이 주 원인이다.[108] 성인 노마역으로 출연하였다. 2001년 1집 앨범을 발표. 천정명 주연의 뮤직비디오도 나왔다. 대표곡은 '해요'.[109] 1993년에 방영된 "이웃 사촌"편을 끝으로 하차하였다.[110] 현재 한의사가 되었다. 2019년 10월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김수미와 재회했다. 영상[111] 타임워프 이후 고등학생 노마로 출연하다 노마네가 서울로 가면서 하차 했다.[112] 600회 이후 엄마 명자가 자신이 양촌리로 돌아왔음에도 복길네와 일용엄니가 지속적으로 노마를 케어해주자 이제 노마 키우는 것은 엄마인 자신한테 맡기고 신경 끄라는 식으로 하내며 서운해하는 장면도 나올 정도.[113] 인천 화평동 냉면골목에서 냉면집을 운영중이다. 김노인 역할 때의 사진이 크게 붙어있어서 금방 찾을 수 있고 가끔씩 실물로 만날 수도 있다[114] 284화에서 전래민요, 민담 채집을 온 대학생들과의 인터뷰에서 등장[115] 444회 '긴 외출' 편에서 마을에서 제일 악명 높은 호랑방탕한 문태 아버지( 배우 최낙천 분)가 젊어서 술집여자와 바람나서 처자식 버리고 유랑하다가 몇십년만에 마을로 돌아왔다 도로 쫓겨가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박 노인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 대부분 반기지 않지만, 유독 김노인만 어릴적 친구가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매정하다며 편을 들어주며 반긴다. 이에 같은 친구이지만 박노인은 저놈이 사람새끼냐며 마을에 발을 붙히지 못하게 해야한다며 역정을 내는데, 김노인 저 녀석도 젊은 시절 문태 아버지와 같이 죽이 맞아서 많이도 따라 다니며 흥청망청 술집에, 계집질하고 다녔다며 타박하는 내용이 나온다[116]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역으로 출연하였다.[117] 김노인이 ‘자네는 자식 없어서 그런 마음 모른다’ 라고 말실수를 하여 대판 싸우는 에피소드. 분명 타임워프 이후에도 자식이 있거나 최소한 있었던 설정인데도 마치 처음부터 자식이 없었던 것처럼 나온다. 또 이노인 사후 김노인도 자식 집으로 가기로 하자 박노인 혼자 아무 피붙이도 없어 스스로 요양원으로 간다고도 한다.[118] 1973년 MBC 6기 공채 탤런트로 입사. 1998년부터 2년여 간 탤런트실장도 역임했다가 2001년 8월 7일에 직장암 병세 악화로 사망하였다. 향년 51세.[119] 1989년에 방영된 '외상값'편에서 김회장 집을 방문한 손님 역으로, 1996년에 방영된 '그래! 촌놈이다!' 편에서 일용을 조사한 형사역으로, 1999년에 방영된 '순영의 추석' 편에서 상인으로, 1997년 방영된 '볼펜농사' 편에서 용식에게 조언을 해주는 농부역으로 출연하였으며 1980년대 이후 단역으로 여러번 출연하였다.[120] KBS 2TV 드라마 장희빈에서 무당 막례 역할로 출연했다.[121] 1984년에 방영된 '추수가 끝난 뒤' 편에서 공개되었다.[122] 이해 방영된 '양지뜸 사람들'편에 출연했다.[123] 재동이네가 농약을 많이 쳐서 부녀회장네 고추가 시들었다고 부녀회장이 주장했는데 남수가 지나가다 들려서 고추를 자세히 관찰하더니 농약때문이 아니라 비료로 인해 토양이 산성화 돼서 그런다고(...)[124] 실제 1999년 9월 12일에 방영됐으나 해당 화는 KTV에서 미방영, 엣지TV에서 140회로 방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