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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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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란
鄭愛蘭
파일:JeongAeRan.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예대임(芮大任)
출생 1927년 4월 15일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서정리
(현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1]
사망 2005년 11월 10일 (향년 78세)
경기도 용인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가족 큰딸 김수옥, 작은딸 예수정
큰사위 한진희, 작은사위 김창화
손녀 3명
학력 화광여자중학교 (중퇴)
종교 가톨릭 (세례명: 마리아)
데뷔 1943년 연극 '망향'

1. 개요2. 생애3. 출연 작품
3.1. 영화3.2. TV 드라마3.3. 연극3.4. 라디오 드라마3.5. 광고
4. 수상 경력5. 참고 자료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우이며, 전원일기의 김 회장 어머니 역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었다.

2. 생애

1927년 4월 15일 경기도 진위군 송탄면 서정리(현 평택시 서정동)의 한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희광국민학교 시절 학예회에서 춤과 노래로 인기가 많았으며, 중학교 때는 연극부장까지 맡을 정도로 연기를 즐겼다. 1940년 중화민국 절강성의 화광여자중학교로 유학을 갔다가 2년 후 중퇴했다. 1943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악극단 '유락좌'에 입단해 연극 <망향>을 통해 데뷔했고, 성군, 청춘극장, 국립극단 등을 옮겨가며 무대 위에서 걸출히 활동했다.

1955년 이현 감독의 영화 <물레방아>(개봉은 1956년 8월 17일)에 출연한 후 은막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서 1964년 이만희 감독 작품 <마의 계단>과 <검은 머리>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고, <무덤에서 나온 신랑(1964)>과 <월하의 공동묘지(1967)> 같은 괴기물에도 나와 특유의 괴기스런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녀는 1980년 <전원일기> 이전까지 주로 악역을 맡았다.

영화와 연극 외에 라디오 드라마, TV 드라마 무대에서도 이리저리 발을 담갔으며, 1980년부터 22년간 MBC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의 어머니 역을 맡아 '국민 할머니'로 찬사를 받았다. 그 외에 KBS 대하드라마 <토지>를 비롯, KBS2 드라마 <청춘행진곡>과 <함 사세요>, MBC <왜 그러지>, SBS <청춘의 덫> 등에서도 어머니나 할머니 역 등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여성이 차별받던 때에도 음주나 흡연을 태연히 할 정도로 통이 컸다고 예수정이 회상한 적이 있다. 그녀는 생전에 화통하고 거침없는 성격이었다고. 연기를 천직으로 여겨 출산 후 몸 풀자 마자 무대로 달려갔고, 심지어 78년엔 급성 맹장염에 실려가놓고도 실밥도 뽑지 않은 상태로 무대로 달려왔다고 한다. <전원일기>에서는 1988년경 폐암 입원으로 2회를, 1989년에 4회를 각각 비운 것 빼곤 종영 시까지 거의 꾸준히 나왔다.

전원일기에서는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등과 함께 김회장댁 어머니 역할을 연기했는데, 특히 김수미의 일용 엄니와 친구라는 설정이었다. 실제로는 김수미가 해방 직후인 1949년생, 정애란이 일제강점기인 1927년생으로 20살이 넘는 나이 차였다. 심지어 김수미는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어떤 거냐 하면 자기 아들 역할을 한 박은수가 되려 김수미보다 2살 연상이다. 정애란은 계속 종영 때까지 같은 모습을 유지하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전원일기를 봐온 시청자들은 '저 할머니 되게 정정하시다' 생각한 사람들도 많았다. 1940년 생인 최불암과 모자관계로 나오는 캐스팅 자체는 별로 위화감이 없었다. 지금은 없어진 지식인 사이트 디비딕에도 이 배우 약력에 대해 묻는 꼭지가 있었다. 이유는 위에 쓴 것처럼 오래 봐왔는데 여전히 할머니라서 연세가 어떻게 되시느냐는 것. 80년대 KBS 드라마를 보면 9살 연하인 신구와 부부로 여러번 나오기도 했다.

전원일기를 주로 하면서도 1995년 SBS 창사특집 드라마 인생 3부작 등 부지런히 작품을 남겼으며 심오한 연기력으로 시청자에게 감동을 줬다. 이 작품에선 사위 한진희가 아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는 폐암을 발견한 후 2~3년여 간 투병생활을 했으나 대수술과 특유의 신앙심으로 이를 극복했고, 1996년 들어 전원일기에서 본인이 고인이 된 것으로 하고 하차하겠다고 했지만 2002년 12월 전원일기가 종영될 때까지 출연해 전원일기 최다회 출연자가 됐다.

<전원일기> 종영 후에는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2005년 11월 10일 아침 9시, 78세에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사후 그녀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선 최불암과 고두심, 김창숙, 손숙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고, 유해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어 인천 연안부두에 뿌려졌다.

윤여정이 SBS 집사부일체 2018년 2월 25일자에서 말하기를, 정애란은 촬영장에서 NG가 나거나 웃긴 상황이 벌어져도 '연기 흐름이 끊길 수 있다'며 절대 웃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는 본인이 웃음이 많다보니 그런걸로 유일하게 전원일기 촬영장에서는 저 원칙을 깨고 NG나면 내내 웃고 그랬다는 일화가 많다.

가족 관계로 큰 사위 한진희와 작은 딸 예수정이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성씨인 를 가져와 예명으로 삼았다.

3. 출연 작품

3.1. 영화

3.2. TV 드라마

3.3. 연극

3.4. 라디오 드라마

3.5. 광고

4. 수상 경력

5. 참고 자료



[1] #[2] '목걸이'의 옛말.[3] 문화영화[4] '아줌마'의 옛말.[5] 원래 1968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박정희 정권의 외압으로 개봉이 안 돼서 그런 것이다.[6] 1997년 제49회 이탈리아상 시상식에서 드라마부문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