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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3-20 20:19:31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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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구조와 성능4. 기타

1. 개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쓰던 운반 도구. 단어 형성법은 '(을) 지다'의 어간을 어근으로 한 '지-' + 도구 접미사 '-게'[1]이다. 일반적인 전통가방의 개념 같지만 실제론 매우 다양히 쓰이던 만능 도구였다.

2. 역사

지게의 최초 사용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기록으로는 1690년 <역어유해>에 배협자(背狹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유물로는 무안 양장리 유적에서 지겟자루가 출토되었고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도 지게의 부품인 지게 발채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학계에서는 <위지 동이전>의 삼한조에 "나라 안에 공사가 있거나 관가에서 성을 쌓을 때는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가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새끼줄로 한 발(丈)이나 되는 나무를 꿰매고 온종일 외치며 일을 한다. 아파하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일 잘하고 건장한 것으로 여긴다."는 기록을 지게를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 이로 미루어보면, 최소 삼한 시대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지게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6, 70년대만 해도 도시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씨티 100이 보급되기 이전만 해도 도시 골목골목으로 쌀, 연탄, 이불, 이삿짐 등등 여러 물건을 나를 때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그 당시 달동네는 오토바이(당시에도 오토바이나 삼륜차가 있었다)가 올라가지 못하는 계단 골목이 많았고 이런 곳은 지게꾼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지게꾼은 오늘날 퀵서비스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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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등산용품으로 지게배낭(프레임배낭)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미군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에서 호랑이를지고갖다

3. 구조와 성능

몸체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처음부터 사용자의 체구에 맞게 제작했다고 한다.

몸체를 연결시켜주는 '세장'은 밤나무와 박달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몸체는 가지가 Y자형인 자연목 두 개를 마련하여[3] 사다리꼴 형태로 세운 다음 그 사이사이 3~4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죈 다음 사개를 맞추어 고정시켰다. 짚으로 멜빵을 만들어 세장과 목발에 위 아래로 멜빵을 걸어줌으로 지게를 등에 질 수 있는 구조. 무게는 보통 5~6kg 내외로 썼다고. 지게작대기는 물미작대기라고도 불렀는데, 지게를 내려놓으면 삼각대 구조가 되어 넘어지지 않게 세워둘 수 있고 이동시에는 지팡이가 되어 하중 지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 또 지게를 메는 짐꾼들이 잠깐 쉴 때는 지게를 아예 내려놓으면 다시 들어올리기가 힘이 들어 물미작대기를 지게의 세장에다 받쳐 서서 쉬었다. 이러면 다시 출발할 때 물미작대기만 빼면 되므로 힘도 거의 들지 않기 때문이다.

파일:지게.jpg

지게의 원리는 단순하지만 매우 실용적인데, 허리를 강제로 곧게 펴게 만드는 구조라 요추 관절 모멘트가 거의 생기지 않아 척추에 가해지는 부담이 거의 없고 고스란히 둔부 근육으로만 적재물을 지탱할 수 있게 해준다.[4] 그러면서도 무게중심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아서 허리를 살짝 숙였을 때 상체가 앞으로 쏠리지도, 뒤로 쏠리지도 않게 되어 있는 구조이다.

써본 사람들은 알지만 신기하게도 제 힘의 몇 배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보부상들은 100kg 정도 들고선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비록 대단한 얼개는 아니지만 조상들의 수고를 꽤나 덜어준 건 어느 정도 사실인 셈이다.

잭 런던 역시 조선 보부상들의 차력쇼를 보고 크게 놀라 자신의 기록에 감상평을 남긴 바 있다.

당시엔 지게가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단순 짐가방부터 배달부의 필수품이요 이동식 좌판이자 사람을 태우는 가마의 역할도 했다.[5] 위에서의 설명처럼 시신도 싣고 다녔다. 일본에도 지게가 유입되었지만 보통 바구니를 애용했고,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써먹은 것은 조선이 유일했다. 거의 현실판 데스 스트랜딩이다.

지게는 한국 전쟁을 통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얼핏보면 단순하고 원시적인 구조인데 심지어 작은 소년들조차 어마어마한 무게를 나를 수 있는 것을 보고 미군을 비롯한 많은 연합군 군인들이 경악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로 지게의 모양을 따서 'A-Frame carrier' 혹은 그냥 'A-Frame' 이라 불렀으며 일부는 지게라는 발음 그대로 'jiggy'나 'Chiggy' 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게에 대한 인상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의 수기를 보면 지게 얘기가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지게의 유용성에 감명받은 일부 미군들은 물자를 운송할 때 지게를 직접 활용[6]하기도 하였다.
한국인 비전투원들은 우리가 좋아했다. 바로 고지로 보급품을 지고 올라오는 일명 'Chiggy Bears'. 일부 멍청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꽤 용감했다. 60이 넘은 노인이 지게(A-frame)에 55갤론[7] 드럼통을 지고 올라오는 것을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 한국전쟁 참전 미 해병 Jerome Stanley Bonkowski의 수기 #
동부에서 서부로 사단이 이동할 때 서울을 지나며 민간인들을 봤다. 서울은 폭격되었고, 많은 민간인들이 주로 논에서 일하고 있었다. 작은 소년들이 지게로 엄청난 양의 짐을 지고 가는 것도 봤다.
-한국전쟁 참전 미 해병 Herb Wong의 수기 출처
파일:korea-jige.jpg
한국전쟁에서 지게를 이용하여 물자를 수송하는 미군



한국전쟁 당시에는 이 지게를 활용한 수송부대, 일명 지게부대가 존재했다. 영어 명칭은 앞서 언급한 지게의 영어 명칭대로 A Frame Army.[8][9] 한국전쟁 당시 주 임무는 지형을 가리지 않는 수송. 주로 차량이나 군마(레클리스 하사가 대표적)가 드나들 도로가 없는 고지전 때 탄약, 식량, 식수를 고지로 보내주고 고지에서 부상자, 전사자를 후송했다고 한다. KSC의 임무도 현대화 및 기계화했을 뿐 수송과 후방지원 임무인 건 별반 다르진 않다.

전후 삼림이 황폐화되면서 지게로 쓰일 수 있는 나무가 부족해지자 철제 지게틀에 각목이나 굵은 나뭇가지를 끼운 조립식 지게나 수도 파이프와 철근을 용접해 만든 철제 지게가 나오기도 했다.

공사장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현대에서는 나무 대신 플라스틱 파이프나 쇠파이프로 만든 지게를 쓰기도 한다. 짐 싣는 부분이 옆에서 보아 L자 모양으로 생기고 각목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지게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는 소규모 건설 공사장에서 벽돌,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옮기는 데 쓴다. 이것도 그런 작업장에서 인력으로 짐을 옮기는 유일한 운반 수단이며, 별 기술 없이도 쓸 수 있기에 공사장에서 가장 낮은 일당을 받는 초급 단계의 일꾼이 쓰는 도구다. 그만큼 쓰기 쉽고 효과적이다.

오늘날도 산속 암자들은 헬기라도 띄우지 않는 한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이다. 건축자재부터 냉장고까지 죄다 지게로 나른다.

이런 등 부분에 짐이 올라가는 표준형의 지게 외에 어깨 높이쯤 부분에 가로로 긴 막대를 대고 그 양쪽 끝에 운반할 물건을 담는 용기를 하나씩 매단 지게도 있는데, 물을 넣으면 물지게, 인분을 넣으면 똥지게, 떡을 담은 상자를 매달면 떡지게[10]라고 불렀다. 80년대까지는 거리와 시장에서 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표준형 지게와는 모양과 짐 싣는 위치가 좀 다른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건너 온 일본 것(나무 통이 일본식이다.)과 20세기초부터 해방 후까지 쓰인 미국제 석유초롱의 양철통이 섞여 쓰인 것으로 보면 프레임 형상 자체는 전통 지게를 개조한 후 외국에서 도입된 통을 연결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지게모양이 아니라 긴 나무 막대기를 한 쪽 어깨에 메고 양 끝에 짐을 매달아 운반하는, 우리 지게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짐 나르는 도구를 많이 썼기 때문. 이런 개조 지게와 전통 지게의 가장 큰 차이는 지게 다리가 짧아서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세워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것이든 지게라는 것이 거의 사라진 현재는 그 개조 지게의 기원과 쓰인 기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게에 대한 논문이 나와 있다.

4. 기타


[1] '집게' 등.[2] 참조자료:<한국의 농기구>,어문각[3] 그런데 크기와 굵기로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Y자 목재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산에서 지게감으로 적당하게 Y자로 가지가 뻗은 나무를 발견하면 그와 비슷한 꼴의 다른 나무를 발견할 때까지 산을 돌아다녀야 했다. 산업혁명 이전엔 플라스틱은 없고 금속은 비싸고, 원하는 용도에 맞는 목재를 구할 때까지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4] 인간의 하체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인체 구조상 무거운 물체를 들 때 (허리가 굽으면서) 무게가 하체보단 척추에 많이 집중되기 때문에 그 강한 하체 힘을 활용하지 못해서 체감상 훨씬 무겁다고 느끼는 것이다. 26개의 척추관절에 전부 모멘트가 작용해 20kg짜리 물건도 500kg 가까이 무겁게 느껴지게 된다.[5] 지게위에 판을 깔고 그 위에 사람을 태웠다. 기록에는 사람이 넘어가지 말라고 새끼줄로 일종의 안전밸트를 만들어 묶었다고 한다.[6]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은 더더욱 산지가 많고 도로도 잘 깔리지 않았을 시절이라 보급을 하긴 해야 하는데 차량이 지나갈 길이 없다면 지게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7] 약 208리터, 내용물을 휘발유라고 가정하고 비중을 0.725을 적용하면 약 150KG, 빈 드럼통 무게는 15KG정도니까 165KG이 넘는 무게다[8] 이 부대의 후신이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KSC: Korean Service Corps)이다. 제50보병사단동원훈련 받으러 간 간부 예비군 중 소수가 간혹 여기서 훈련 받는 때가 생긴다. 훈련이래 봤자 미군기지 구경하는 거지만. 한국군 동원부대 간부들은 여기에 예비역 간부를 빼줘야 하는 걸 엄청 싫어한다. 이 예비역들은 전쟁이 나면 미군 소속이 되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미제 장비 일체를 새것으로 지급받는다. 미군에 고용된 민간인 신분으로. 민간인이기 때문에 이때는 비무장이다.[9] 최초의 현대식 A프레임은 1800년 후반 노르웨이에서 발명된 배낭이다.#[10] 나무로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주로 망개떡 장수가 애용하였다.[11] Mobile Utility Lunar Excavator의 약자이나, 'mule'(노새)를 의식하고 지은 역두문자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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