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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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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신3. 행적4. 기타5. 자손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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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신화의 신으로 오제 중 하나로 나왔다.

2. 출신

《세본》을 많이 참조한 《사기》<오제본기>에서는 황제의 손자로 나오고[2], 《산해경》에서는 증손자로 기록했다.[3] 그의 아버지는 창의이며, 그의 어머니는 촉산씨의 딸인 창박이라고 한다. 또한, 《사기》에 의거하면 하나라를 건국한 우왕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산해경》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창의는 하늘나라에서 죄를 범해 인간세계로 쫓겨나 약수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한류를 낳았는데, 한류는 생긴 것이 목이 길고 귀는 작으며, 사람의 얼굴에 돼지 입을 하고 있었고, 몸은 기린 같았는데 다리 두 개가 한데 붙어 있었으며 발은 돼지의 발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류가 요자씨의 딸 아녀를 아내로 맞아 낳은 아들이 바로 전욱인데, 생김새 또한 자신의 아버지인 한류를 닮았다고 한다.

3. 행적

《세본》의 서술을 따르는 유가 계열 책에서는 그렇게까지 폭군으로 그려지진 않지만, 《산해경》에 따르면 황제가 잠시 왕위를 물려줬는데 그가 한 정치는 당시 세계 내에서도 모든 존재, 특히 신들에게도 너무나도 가혹했다.[4]

인간과 신들의 구별을 위해 하늘과의 유일한 통로를 파괴하는 행위를 벌였다. 이건 중국의 고대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터닝포인트로 본다. 왜냐하면 대개의 고대 역사서는 물론 역사가들의 언급에서 이 행위를 기점으로 신정사회에서 체계화된 국가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해경》에서는 황제 공손헌원보다 도리어 전욱이 많이 언급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전욱이 이와 같은 이를 벌인 것은, 숙부인 소호 금천씨때 구려가 덕을 어지렵혀 민간의 신들이 뒤섞이게 되었기 때문[5]으로, 이때문에 을 남정에 임명해 하늘을 맡아 신을 속하게 하고, 에게 화정을 맡겨 땅을 다스려 백성들이 속하게 해 신과 사람이 서로 침해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은 천상(혹은 하늘)을, 여는 지상을 관장하게 되었으며, 여는 지상에 내려와 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열은 사람의 얼굴은 하고 있었으나 팔이 없었고 두 다리가 머리 위에 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황 서쪽 끝 일월산 오거천문 즉, 태양이 들어가는 곳에 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도와 태양 그리고 들의 운행을 다스렸다고 한다.

절지천통이 일어날 때, 별이나 별자리의 위치 모두 북유에 있게 했는데, 이 또한 전욱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하늘과 땅을 끊어버린 사건 이후로부터 신과 인간은 더이상 뒤섞이지 않고 질서를 되찾았으며, 인간세계와 하늘나라가 평안해졌다고 하지만, 인간들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고통을 받을 때 신들에게 직접 올라가 하소연할 수가 있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뜻하기에 마냥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로 인간은 자신들의 소망을 신에게 전달해줄 심부름꾼이 필요했고, 그 역할은 무사, 즉 바로 샤먼들이 담당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하늘과 땅을 끊어버린 것은 그야말로 신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한다.

아무튼 인간 입장에서는 천하의 개쌍놈으로 보였을 것이다. [6] 그러한 업보 때문인지 그의 아들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그후 인간한테 피해를 주는 요괴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 음악을 좋아하는 의외의 면도 나온다.[7]

더 나아가 자신의 조부가 평생에 걸쳐 우호를 지속했던 염제 신농씨 일족을 학살하고 핍박하여 신농 일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도 한다.

전욱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는, 같은 오제인 소호 금천씨가 동방 바다 바깥에 새들의 왕국을 세울 무렵에 당시 어린 시절의 전욱이 그곳에 놀러 갔으며, 그때 그는 숙부인 소호를 도와 국정을 돌봤다고 하는데, 이때가 전욱이 10살 때였다고 한다. 전욱이 어른이 되자[8] 중국으로 다시 돌아와 북방의 천제가 되었다고 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 그가 이르는 곳에 짐승들마저 꼬리를 살살 짓고, 나무도 가지를 설레며 반겨 맞았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천하를 잘 다스렸기에 명군으로도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고양씨'로 불리는 것은 처음에 고양에서 나라를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하며, 제구에 살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다른 전설상의 천자처럼 고결한 인간으로 묘사가 되며, 《사기》에 의하면 제사를 잘 거행한 군주로 묘사되고,
"인품은 고요하고 그윽하며 항상 심모를 갖추고 있다."
고 전한다.

그리고, 전욱의 보좌신으로는 우강이 있는데, 우강은 북쪽 바다의 신이자 풍신으로, 달리 '현명'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이는 전욱보다 많았으나, 전욱을 도와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북방 12,000리를 다스렸으며, 그의 아버지인 우괴는 동해에 사는 바다의 신이었다고 한다. 우괵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었으며, 노란 뱀 두 마리를 귀에 걸고 다른 두 마리는 발로 밟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우강은 후대에 '북서풍이 역병을 주관한다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점으로 인해 전염병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전욱은 78년 동안 재위하다가 91세쯤에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괴팍하고도 다면적인 성격을 지녔던 전욱은 죽고 난 뒤에 다른 천제들과 다르게 기이한 변화를 겪었다고 한다.《산해경》에
"반인반어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어부'라고 한다. 전욱이 죽어 부활한 것이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면 샘물이 바람을 맞아 솟구쳐 오르는데, 그때 뱀이 물고기로 변한다. 그것이 바로 어부로, 전욱이 죽어 부활한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전욱이 부활할 때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와 같은 모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기록의 의미와 상징은 아직도 해석이 분분한 편이라고 한다.

공공이 부상을 입혀 제곡 고신씨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내장이 터져 죽었다는 설도 있다.

4. 기타

음양오행설이 도입되자 북방을 담당하는 신으로 여겨졌으며, 중국 주변의 여러 이민족들을 황제 헌원씨의 후손으로 날조할 때 전욱 고양씨의 후손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결과 해당 이민족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신화와는 내용이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요,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족속들끼리 전욱의 후손으로 엮이는 웃기는 일이 벌어졌다. 고구려 왕도 자신이 전욱의 후손임을 자처했다.[9]

중국의 어용사학에서는 홍산 문명의 수장을 전욱으로 보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국수주의 유사역사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5. 자손들

그의 아들들 중 요괴가 된 자식들로는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거지 귀신, 도올(禱杌), 망량(魍魎鬼),[10] 학질을 옮기는 귀신인 학귀(瘧鬼), 어린이에게 경기를 일으키는 소아귀(小兒鬼)가 있었다.

이 중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나오는 아들들은 망량귀, 학귀, 소아귀이다. 좀 멀쩡(?)한 자식들로는 조왕신이 된 궁선[11], 음악의 신인 노동(老童)과 태자장금(太子長琴)이 있었으며, 그 외에 손자인 [12]가 있었고, 여의 아들인 시간의 신 , 궁선의 후손인 제순이 있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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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나라 왕실 종친 제후들은 황제(黃帝)의 직계 후손인 상나라 자성 왕실과 통혼으로 맺어졌기에 자신들도 황제의 후손이라 여겼다. 그래서 주나라 왕실 족보를 편찬할 때, 상나라 공주인 천자의 딸을 뜻하는 '희'(姬)로 기록하며 황제의 후손으로 가탁했다. 주의 왕실이 상의 왕실과 혈연 관계에 있었던 것은 맞지만 사마천이 기록할 때의 <오제본기>는 상나라 왕실 계보 기록을 바탕으로 했으므로 왕을 신격화한 상나라만의 독창적인 표현인 '제'(帝, 皇帝 명칭의 근원이다)전욱으로 기록했으며, 황제의 손자이며 창의의 아들이라고만 되어 있으니 공손성 외에는 희성이 아니라 상나라의 국성(國姓)인 자성(子姓)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 황제(黃帝)는 소전(少典)의 아들로 성은 공손(公孫)이다. 帝전욱은 황제의 손자며 창의의 아들이다. 帝곡은 황제의 증손이다. 殷(상나라)의 탕왕은 황제의 후손이다. -《사기》(史記)-[2] 황제의 아들 중 하나인 창의의 아들이 전욱이다.[3] 황제의 아들이 창의, 창의의 아들이 한류, 한류의 아들이 전욱.[4] 가혹한 정도는 해, 달, 별을 북쪽 하늘에 묶어놓아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고(한 쪽은 영원한 낮이, 한 쪽은 영원한 밤이 계속되었다.), 성차별의 경우 예법을 전한답시고 남자를 여자보다 우위에 두었는데 심지어 길에서조차 남자가 지나가면 여자는 무조건 비켜줘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만들었다.[5] 전국시대의 문헌에 나온 또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의 신들과 한 패가 되어 하늘나라를 어지럽히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아마도 황제 공손헌원과 치우의 전쟁에 인간인 묘족이 개입한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6] 황제 헌원씨 시절까지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성차별을 만든 것도 그렇고, 갑자기 해와 달과 별의 위치를 고정해버려서 어떤 곳에선 종일 낮만, 어떤 곳에선 종일 밤만 있는 식으로 하늘 상황을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기후가 엉망진창이 되어서 한 쪽은 가뭄이, 한 쪽은 추위와 작물이 자라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7] 그런데 이것도 별로 좋은 스토리가 없는데 저파룡 멸종의 원흉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저파룡을 갖다가 그 가죽을 북으로 삼아버렸기 때문이었다.[8] 이때가 20살이었다고 한다.[9] <고구려본기> -광개토대왕-조에서는 전욱의 후손으로, <백제본기> -의자왕-조의 논평에서는 제곡의 후손으로 나온다. 일반적으로 소호-교극-제곡 라인을 시조로 본다.[10] 이매망량할 때 그 망량이다. 전승에 따르면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유인하고 해쳤다고 한다.[11] 그런데 궁선의 상징은 바퀴벌레다. 상징이 매미라는 전승도 있지만, '매미처럼 생긴 붉은 벌레'라고 자세히 서술하는 것을 보면 바퀴벌레가 맞다.[12] 통로를 파괴한 뒤 남은 통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황제가 사용하는 다리였다. 그럼에도 전욱은 중과 여에게 명령하여 중에게는 하늘의 신이 함부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했고, 여에게는 땅의 인간들이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