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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9:56:33

전두엽 절제술

로보토미 수술에서 넘어옴
파일:attachment/tumblr_lj6t3l9Hkk1qaskkro1_500.jpg
과거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송곳을 이용한 시술 매뉴얼[1]

1. 개요2. 용어의 오류3. 역사4. 문제점
4.1. 개량
5. 여담6.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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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Lobotomy

인간두뇌에서 전두엽을 제거하는 시술. 19세기 말에 어떠한 수단으로도 치료할 수 없고 폭력성이 너무 강해서 통제가 되지 않던 중증 정신질환자들을[2] 치료하는 수단으로 많이 쓰였다. 손상을 입히는 부위가 인지 및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두엽이다 보니 뚜렷한 부작용으로 사람의 인간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고 기능과 지각력의 태반이 제거되는 심각한 문제가 뒤늦게 드러났다.[3] 폭력성이 치료되기는 해서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는 1949년 노벨생리학·의학상까지 받았지만, 가벼운 뇌 손상조차 지극히 위험함을 알게 되어 시술 빈도가 크게 줄었다. 현재는 여전히 부작용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다고 예상될 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2. 용어의 오류

전두엽 전체가 아니라 전전두엽에만 수술을 진행하고 절제(잘라서 제거함)하는 것이 아니라 절개(자름)하기 때문에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용어는 전전두엽 절개술(prefrontal lobotomy)의 잘못된 표현이다. 절개라는 단어도 지나치게 온건하며 소파술(搔爬術, curettage, 긁어냄)에 더 가깝다.

전두엽의 일부를 잘라서 제거하는 전두엽 절제술(frontal lobectomy)이라는 수술도 있지만 신경외과 수술(neurosurgery)이며 본 문서에서 말하는 정신과 수술(psychosurgery)인 전전두엽 절개술과는 무관하다.

이는 나무위키뿐만 아니라 한국에 널리 퍼진 오류이며 본 문서에서는 절개와 절제, 전두엽(frontal lobe)과 전전두엽(prefrontal lobe)을 혼동해 서술하고 있으니 열람 시 주의가 필요하다.

3. 역사

시술 자체는 1890년 고틀리프 부르크하르트(Gottlieb Burckhardt, 1836~1907)가 처음 고안하였다. 1891년까지 약 50%의 성공률을 보였지만 환자들이 시술 중에 죽거나 시술을 받은 후에도 뭔가 석연치 않게 죽는 경우가 많아서 당시 널리 상용화되지는 못했고 그가 고안한 방식은 결국 완전히 퇴출되었다.

근대적인 전두엽 절제술은 1935년 에가스 모니스(António Caetano de Abreu Freire Egas Moniz, 1874~1955)의 시술을 최초로 보고 있다. 어떠한 수단으로도 치료되지 않고 완화시키기도 곤란했던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얌전해지는 결과를 얻자[4]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그 결과 정신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9년 노벨 의학상이 수여되었다. 전두엽 절제술의 등장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의 치료법은 사실상 없었으며, 기껏해 봐야 환자를 평생 구속복을 입힌 채 통 속에 쳐박아두거나 진정제나 마약을 사용해 계속 혼수상태에 빠뜨려(deep sleep therapy) 날뛰는 것을 막는 무식한 방법밖에 없던 시절이다.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정신질환자를 평생 감금하고 가축처럼 대우하는 실태에 반발하고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방법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환자를 의도적으로 말라리아에 감염시키거나(malarial therapy)[5], 전기충격을 가하거나(electroconvulsive therapy)[6], 저혈당성 쇼크를 유발하는(insulin shock therapy) 등 멀쩡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술로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니 당시로서는 정말로 획기적인 방법이 맞았다. 조현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두엽 절제 수술 전/후 행동양식 비교 영상(1944년 제작)

정확한 통계는 잡혀 있지 않지만,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최소 수 만에서 수십 만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술을 받았던 유명인으로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마리 케네디(1918~2005)와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하시드가 있다. 로즈마리 케네디의 경우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지적장애(3급으로 추정)를 갖고 있었는데[7] 아버지인 조지프 패트릭 케네디[8]가 억지로 전두엽 절제술을 강행했지만 시술 후 가족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폐인이 되었다. 결국 조지프는 로즈마리를 정신병원에 집어넣고 없는 자식 취급했다. 역설적으로 케네디가 구성원 중에서는 장수한 편으로, 60여년 간 정신병원에 있다가 2005년에 사망했다. 요제프 하시드는 1941년 조현병 발병으로 정신병원에서 장기간 투병하다가 이 시술을 받고 후유증으로 인해 26세의 나이에 요절했다.

4. 문제점

시술이 계속되면서 점차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정신질환으로 인한 공격성은 확실하게 치료가 되었지만 환자의 가족들로부터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사례가 다수 보고되었다. 전체적으로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내거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감정을 느끼지 못했으며 때로는 감정 통제에 실패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까지 있었다. 다만 이 영상에서 주장하는 멀쩡한 일반인까지 납치해서 수술했다는 사실과 무마취 치료를 했다는 사실은 지어낸 이야기다. 그가 비인간적인 치료를 행한 건 사실이나 일반인을 납치해서 강제 수술시켰다는 사실은 그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위키백과, 더 가디언, Physician's Weekly 등). 일반인을 납치했다는 소문은 신뢰도가 부족한 인터넷 커뮤니티(reddit) 등지에서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괴담으로 돌고 있는 상황이며 이마저도 인지도가 없다. 처음부터 마취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도 와전된 사실이다. 그는 전기충격요법으로 환자들에게 마취를 시도했지만 그 과정에서 제대로 마취가 되지 않은 환자가 있었고, 그게 아예 마취를 안했다고 와전된 것이다. 즉,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사실에 의거해 각색된 이야기다. #1, #2, #3

그 외에도 수많은 부작용이 보고되었으며, 이러한 정보들을 조합해 본 결과 전두엽 절제술은 겉보기엔 정신질환 증세가 완화되거나 치료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환자의 인지/사고 능력이 상실되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왜냐하면 전두엽이 인간의 감정이나 행동을 제어하는 부분인데 이걸 무식하게 후벼파고 괴사시키거나 잘라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에 비해 안전하다고 자부하던 송곳을 이용한 시술법도 간간이 뇌혈관 파열로 환자를 사망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9] 이래저래 여론이 악화되었고, 결국 소련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무분별한 전두엽 절제술이 금지되었다. 다만 미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일부 주를 제외하면 딱히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물론 1967년 환자가 수술 도중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로는 시행되고 있지 않다.

용어의 오류 문단에서 지적되었듯이 실제 시술법은 절제(잘라서 들어냄)가 아니고 단순한 파괴에 가까웠다. 맨 처음의 전두엽 절제술은 측두부에 구멍을 뚫고 전전두엽에 주사기로 알코올을 주입해 괴사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이 방법은 알코올이 여기저기 스며들며 뇌가 광범위하게 손상되기 때문에 쓸 수 없었고, 측두부의 단단한 뼈에 구멍을 뚫는 대수술이었기 때문에[10] 시술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후 도구를 사용한 파괴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해 눈꺼풀을 들추고 안와 안쪽에 눈금이 새겨진 얼음송곳과 비슷한 전용 도구(orbitoclast)를 박아넣은 후 좌우로 한번씩 흔들어 전전두엽의 신경을 뭉개서 잘라버리는[11] 시술법이 등장하였는데 이게 전두엽 절제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안 전두엽 절제술(transorbital frontal lobotomy)이다.

경안 전두엽 절제술이 개발되면서 전신마취와 철저한 사후 관리가 필요한 대수술이었던 전두엽 절제술은 부분마취와 10분 가량의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술이 되었고, 그 간편함 때문에 원래의 임상 사례와 상관 없는 온갖 증상에 남용되었다. 원래는 수술 전후로 많은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중증 환자에게만 시행했지만, 경안 전두엽 절제술의 등장으로 마치 이빨 하나 뽑듯 즉석에서 시술한 후 바로 퇴원시킬 수 있을 만큼 절차가 간편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의사는 수술의 편리함과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양손으로 각각 다른 환자에게 동시에 수술을 진행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시연할 정도였고, 환자와 보호자도 간단한 수술 한 번에 정신질환이 바로 낫는 기적의 치료법이라고 여겨 오히려 의사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요구할 정도로 당시에는 전두엽 절제술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수술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 오히려 지나친 남용을 낳으며 위험해져버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파일:Lobotomy_1.jpg
Walter Freeman이 개발한 American leucotomy
경안 절제술과 더불어, American leucotomy(또는 American Lobotomy)라고 하여 눈과 귀 사이의 중심점에서 6cm 가량 위로 올라간 부위에 해당하는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고 도구를 넣어서 휘젓는 방식도 널리 쓰였다. 1942년 조지 워싱턴 대학의 전두엽 절제술(American leucotomy) 교육 영상(시청 주의) 아래 여담 문단의 다큐멘터리에 있는 참전용사 할아버지가 받은 것도 이 시술이다. 시술 위치가 브로카 영역과도 상당히 가깝다.

4.1. 개량

현대 의학에서는 옛날처럼 무식하게 이물질을 쑤셔넣어 뇌를 파내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만 정확히 제거해내는 외과 수술법을 통해서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만드는데, 이러한 방법은 특히 뇌전증 치료에 많이 쓰인다. 뇌전증의 특성상 발작을 일으키는 뇌파가 특정 부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그 부분만 정확히 잘라서 제거하면 치료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이 있으며 환자가 사실상 폐인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뇌전증으로 인해 죽을 것이 확실한 정도가 되어야 실행된다.[12] 생물의 뇌는 절대 컴퓨터 부품마냥 기능이 정확히 분할되어 있지 않은 데다 여러 부위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역할에 대한 정확한 연구조차 미비한 수준이기 때문에 주로 교모세포종처럼 뇌암, 양성이면서 악질인 뇌종양 정도는 되어야 전두엽 절제술을 고려한다. 이런 사례에서는 방사선 절개가 불가능하다면 병의 경과를 멈출 방법이 없으니 부득이하게 한다. 폐인이 되는 것은 똑같지만 일단 죽음은 면할 수 있다. 꼭 치워내야 하는데 다른 치료로 종양 조직을 없앨 수 없다면 수술로 제거하는 것은 피할 수 없기도 하고...

이 시술과 부작용 때문에 의사들이 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장기 기억 보존을 담당하는 해마의 존재와 자세한 역할이 이 시술로 인해 발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고.

5. 여담

6.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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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미권, 특히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다. 아무래도 원한령 개념은 주로 개인 대 개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동아시아권과 달리 구조적 문제로 인한 억울한 희생자를 중점에 둔 것이 원인인 듯 하다. 아무 죄도 없는데 끔찍한 실험을 당해 죽어간 사람들이 무더기로 묻힌 감옥 뺨치는 정신병원과 인체실험을 자행하는 매드 닥터 소재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다.

[1]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만들 때 이 방법을 써서 뇌를 제거했다. 물론 전두엽 절제술이 실시되던 당시에도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매우 원시적이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시 외과 기술의 한계상 두개골을 상처 없이 열었다 닫을 만큼의 정밀도는 없었기 때문에 눈 위의 뼈가 가장 얇다는 것을 이용해 전두엽만 손 대기 위해 이 방법을 썼다.[2] 그중에서도 특히 정신분열증(오늘날의 조현병) 환자들이 많이 받았다.[3] 물론 지식이 부족했던 그 시대에는 전두엽 절제에 따른 문제를 잘 몰랐기 때문에 의도한 영향은 아니었다. 열악하기 그지없던 당시의 해당 병원에 수용돼 평생 구속복 신세일 사람들의 속은 알 수 없지만 그걸 했더니 이전보다는 다루기 쉬워졌다고 느꼈을 테니 폐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부작용이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뇌량 분리나 전두엽 절제를 대규모로 해보고 나서 환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함에 따라 그 부분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4] 에가스 모니스 본인도 전두엽 절제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했고, 실제로도 초반에는 전신마취를 비롯해 준비할 것이 아주 많은 대수술이었기 때문에 중증 질환자에게만 사용했다. 전두엽 절제술이 아무렇게나 남용되기 시작한 건 경안 전두엽 절제술이 등장한 후이다.[5] 오스트리아의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가 개발한 치료법으로, 매독으로 유발된 마비성 치매 환자에게 인위적으로 말라리아를 감염시키고 발열을 유도하여 증상 완화를 가져왔다. 야우레크는 이 공로로 1927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맥락없이 21세기 시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미치광이 치료법에 노벨상을 준 정신나간 시상 케이스로만 보인다. 하지만 이 당시 매독성 마비 치매 환자의 치사율이 심각히 높은데(매독이 이 지경까지 진행되면 그저 죽는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딱히 대책은 없던 상태에서 개발된 유일한 치료법이었고, 정신질환 치료사에 있어서 발열요법과 쇼크요법을 과학적 임상실험을 거쳐 체계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경우라 할 수 있으며, 이미 이 당시 말라리아는 키니네를 이용하여 상당히 통제 가능한 질환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로선 통제된 조건 아래에서 환자의 질환을 조절 및 완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이었다. 물론 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부터는 굳이 위험천만하게(말라리아 요법으로 인한 사망율은 15%에 달했다. 매독성 마비 치매에 걸리면 죽기만을 기다리던 시절보다야 훨씬 나은 수치라지만 그럼에도 치료로 인한 사망율치고는 너무 높다.) 인위적으로 말라리아를 감염 안시켜도 훨씬 안전한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미 20세기 중반부터도 사장된 과격한 치료법이긴하다.(다만, 야우레크의 모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도 시행되었다고 한다.)[6] 현재에도 전기경련요법은 시행되고 있지만, 전신마취 상태의 환자에게 안전한 양의 전류를 최대한 짧고 정확하게 흘리는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해졌고, 실제로 수많은 연구와 개선에 의해 의학적인 효과가 검증된 정상적인 치료법이 되었다. 반면 이 당시의 전기경련요법은 그냥 환자를 전기고문해서 얌전하게 만드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7] 스트레스를 받으면 난폭해지는 등의 감정 조절 장애도 있었다고 한다.[8] 케네디 가문은 본래 아일랜드 출신으로 미국에 정착했을 때는 매우 가난했으나 케네디 대통령의 할아버지 덕분에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아버지 조지프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큰 돈을 벌어서 상류층으로 편입했다. 특히 조지프는 그냥 돈만 많은 상류층이 아니라 정계 쪽으로도 진출할 생각으로 9명의 자식들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게 했는데, 그 바람대로 한 명은 대통령이 되었으며 나머지 자식들 중에서도 법무부장관이나 상원의원이 나왔다.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지적장애가 있는 큰딸이 탐탁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 큰딸이 나머지 형제들의 앞날을 가릴 것을 걱정했을 것이다.[9] 다만 송곳 시술법이 나온 가장 큰 이유가 뇌혈관이나 다른 뇌 부위가 손상될 가능성이 가장 낮아서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시술 자체가 금지될 때까지는 계속 쓰였다.[10] 두개골의 밖으로 드러난 부분 중 측두부는 그나마 가장 얇고 강도가 약한 부위이지만, 그래도 머리통이기 때문에 얇은 골조직만 한겹 있는 안와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뼈가 두껍고 단단했기 때문이다.[11] 살짝 녹은 아이스크림에 젓가락을 꽂고 죽 그으면 아이스크림이 잘라지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12] 실제로 뇌전증 환자 13명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실시한 결과 10명은 발작이 사라졌으나 3명은 계속 발작이 일어났다. 뇌파가 발생하는 부분을 절제한다고 해도 일부 경우에는 수술 결과가 부정적이며, 검사로 병변 부위가 확정되지 않으면 광범위하게 전두엽 절제를 실시해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5명 중 1명은 폐인이 될 것을 알면서 시술을 해도 효과가 없으니 정말 최후의 수단이라고 봐야 한다.[13] 후술하겠지만 정황상 조현병으로 추정[14] 강제로 인슐린을 주입해 저혈당 쇼크를 일으키고 다시 포도당을 주입하는 것으로 과거 정신병 치료에 쓰였으나 부작용이 심해 지금은 쓰지 않음[15] 빅 대디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이다. 서브젝트 델타는 초기형 알파 시리즈라 몸을 거의 건들지 않아서 이 시술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멀쩡하게 생각도 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16] 비장의 카드를 얻기 위해 엘리자베스 컴스탁아틀라스가 고문할 때 쓰려 한 방법 또한 바로 이것.[17] 이곳 의사가 쉐도우의 협력자이다. 이 외에도 여러 곳에 그의 협력자가 존재한다.[18] 땀 흘리다가 퀘이드에게 걸려서 끔살 당한 아저씨로, 당연히 같은 배우가 연기했다.[19]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20] 해석하면, '조심해라. 루니의 우호도를 잃으면 엿될 줄 알아라'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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