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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03:21:49

빌 매클린

빌 매클린
Bill McLean
파일:Bill McLean.png
본명 윌리엄 '위 윌리' 매클린
William 'Wee Willie' McLean
이명 윌리 맥클린[1]
Willie McLean
출생 1904년 1월 27일
영국 스코틀랜드 클라이드뱅크
실종 1938년 여름 (당시 34세)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사망 1977년 11월 6일 (향년 73세)
미국 아이오와 주 대븐포트 주립 요양원
직업 축구선수
신체 163cm
등번호 없음[2]
포지션 아웃사이드 포워드
소속 풀만 FC (?~?)
시카고 캐나디안스 (?~?)
브릭레이어스 앤 메이슨스 (?~1932)
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 (1932~1934)
세인트루이스 센트럴 브루어리스 (1934~1935)
세인트루이스 샴록스 (1935~1936)
국가대표 2경기 (미국 / 1934)

1. 개요2. 생애
2.1. 축구 선수2.2. 실종2.3. 진실이 밝혀지다
3. 수상
3.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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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축구선수.

2. 생애[3]

2.1. 축구 선수

2.1.1. 클럽

1904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9세에 시카고로 건너온 후 시카고에서 풀만 FC, 시카고 캐나디안스, 브릭레이어스 앤 메이슨스 등의 팀을 거치고 1932년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활동했다. 스틱스, 바에어 앤 풀러에서 3년 연속 더블을 포함해 우승을 여러 차례 쓸어담았지만 1936년 리그 게임 도중 쓰러졌고 9개월을 요양원에서 보내야 했다.

2.1.2. 국가대표

그는 1930년부터 대표팀 명단에는 들었지만 실제 시합을 뛰지는 못했고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지역 예선1라운드 경기에 참가했고 1937년에 열렸던 멕시코와의 3연전에 다시 대표팀 명단에 들었지만 시합에 나서지는 못했다.

2.2. 실종

1937년 시카고로 다시 돌아온 그는 대중에 거의 잊혀갔고 가난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38년 여름에 시카고에서 실종되었고 누구도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실종 이후 가끔 미시시피 강에서부터 온 어머니의 날 카드를 받았을 뿐이고 1944년 11월에 애트나 보험사에서 그의 소재를 찾는 광고를 냈지만 끝내 매클린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의 행적은 80년 넘는 세월 동안 미스터리로 여겨져 왔다.

2.3. 진실이 밝혀지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언론 디 애슬레틱은 2022년 현지 당국의 보도를 인용해 그가 1977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그 특종의 내용이 충격적이었는데 매클린은 정신병원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폐인으로 살다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1938년 이후에도 시카고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1941년 주 경계를 넘어 시카고와는 지척인 아이오와 주의 대븐포트로 이사를 갔다. 하지만 이 무렵의 그는 과거에 축구선수로 뛰면서 무리하게 헤딩을 반복했던 것으로 인해 두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4][5] 이로 인해 1940년대 중반부터는 정신질환자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고 수술 이후 그 후유증으로 본인의 인지와 사고 능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의 폐인이 되었다.[6]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인이 직접 행적을 밝힐 수도 없었고 윌리엄 스튜어트 랭으로 이름까지 바뀐 상태라 병원이나 요양원측에서도 그 사람이 매클린인지 알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인근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하다가 1977년에 요양원에서 사망해 인근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수상

3.1. 클럽



[1] 빌 매클린은 피파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공식 보고서에 나온 이름이다. 위키백과에는 윌리 매클린으로 표기되어 있고 윌리 매클린으로도 이 문서를 열람할 수 있다.[2] 매클린이 살던 시기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매클린의 뇌손상은 그가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1938년 무렵에 이미 상당히 심각해졌을 가능성이 높다.[5] 초기의 축구공은 소가죽으로 만들어 굉장히 단단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축구공의 이미지는 1960년대부터 개발되어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공식화되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WWE의 크리스 벤와가 살인자로 전락한 이유도 머리에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아 뇌세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6] 1990년대 말엽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토요미스테리 극장의 에피소드 중에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꽤 남아 있는 것으로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의 이야기가 있다. 인권, 특히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권은 더욱 미비했던 1930년대에 미국의 일부 정신병원에서는 행려병자,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면서 그들의 치료를 위해 각종 실험적인 시술을 했다. 여러 시술을 시행했음에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던 환자들에게는 최후의 수단으로 전두엽 절제술까지 원시적인 형태로 진행했다. 당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실험 대상자가 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피실험자들의 영혼이 폐허가 되어 버린 지 오래인 웨스턴 스테이트 정신병원 터를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였는데 매클린도 이런 종류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