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디시인사이드 클래식 갤러리에서 만들어진 짤방.사실 이 '최악의 조합'은 작곡가들 말고도 여러 주제로 만들어진 짤방 시리즈다. 당신을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와 비슷한 상황. 지금와서는 정확히 어떤 것이 원조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2. 설명
- 텔레만의 히트곡수/작곡수: 항목 참조.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역사상 최다 기악곡 다작 작곡가이나 오늘날 그의 대표적인 작품 멜로디를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 헨델의 표절: 헨델은 당대 작곡가들의 멜로디를 몰래, 혹은 자기 음악에 차용했으며, 오히려 자기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가 이 멜로디를 써주는게 영광 아니냐며 뻔뻔하게 나왔다고 한다.
- 륄리의 지휘봉: 궁정 무용가를 겸하던 륄리는 지휘하다 그만 지휘봉으로 자신의 발을 찧고 마는데, 이것이 파상풍의 원인이 되어 사망하게 된다. (당대의 지휘봉은 1m가 넘었으며, 이 육중한 지휘봉을 바닥에 쿵쿵 찧는 방식으로 지휘를 했다.)
- 모차르트의 스카톨로지: 모차르트는 'Leck mich im Arsch (내 엉덩이를 핥아줘)' 같은 제목의 카논을 작곡하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스카톨로지 성향을 드러냈다.
- 베토벤의 애인과의 계급차: 베토벤은 평생 귀족 가문의 여성들과 정을 나누었으나 어느 누구와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 슈베르트의 질병: 교과서에 기록되는 슈베르트의 사인은 '장티푸스'로 언급되지만, 매독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 살리에리의 라이벌: 모차르트를 열폭하여 유명. 단 실제 살리에리는 딱히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고,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질투했다는 건 희곡 아마데우스의 각색이라고도 한다. 피터 섀퍼의 희곡 '아마데우스' 이전에도 푸시킨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은 작품이 있었고, 살리에리 생전에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시기하여 살해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때문에 살리에리 본인도 생전에 '내가 모차르트를 싫어하긴 했지만 절대로 그를 죽이지 않았다. 나 말고도 모차르트를 싫어하는 사람은 널렸다.'라고 해명한 적이 있었다.
- 스메타나의 장애 라이벌: 스메타나도 후일 청각을 상실했으나, 악성 베토벤에 밀려서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창작열을 불태웠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 페르골레지의 수명: 26세의 나이로 사망.
- 차이코프스키와 소년의 관계: 위의 슈베르트처럼 공식적으로는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동성애자임이 들통나 러시아 음악원으로부터 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설이 있다.
- 브루크너의 로리: 평생 어린 소녀들을 사랑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 브람스의 플라토닉 러브: 은인이자 선배인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평생 짝사랑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 알캉의 책장: 말년에 은둔하며 살던 그가 탈무드를 찾다가 책장에 깔려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이시도르 필립의 주장이며, 부엌 찬장(kitchen cupboard) 주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설도 있다. 확실한 사인은 알 수 없다.
- 슈만의 정신건강: 말년에 정신질환이 도져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다 결국 추운 날 강물에 빠진 후유증으로 사망.
- 파가니니의
도벽도박 중독: 파가니니의 경우 도벽이 아니라 도박 중독이 맞다. 짤방 작성자가 도벽과 도박의 차이를 잘 몰라서 도벽으로 올린 것으로 보이는데, 이 둘은 발음만 비슷할 뿐 거의 관계가 없다. 그는 도박에 빠져서 자신의 비싼 바이올린을 전당포에 맡겨놓았다고도 한다. - 바그너의 무개념빠: 아돌프 히틀러가 바그너의 광팬이라 나치 선전용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악용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바그너를 연주하는 것이 아직도 금기시되어 있어, 유대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자 이스라엘 의회까지 나서서 바렌보임을 비난하기도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바그너를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바그너의 무지성빠들 보고 신물난 것이었다.
- 바그너의 인간성: 바그너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인간성은 형편없는 인간으로, 은인이나 제자의 아내를 뺏어가는 등 가정파괴를 일삼았다.
- 베를리오즈의 똘끼: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약혼녀를 죽이러 니스까지 쫓아갔다가, 니스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휴양하고 돌아왔다고 한다.[1] 약혼녀는 벨기에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 모크였고, 그녀와 결혼한 카미유 플레옐은 쇼팽이 그렇게 좋아하던 피아노 브랜드 '플레옐' 의 공동 대표였다. 플레옐은 요제프 하이든을 사사했던 음악가 이그나츠 요제프 플레옐이 런칭한 피아노 브랜드로, 카미유는 이그나츠 플레옐의 아들이다.
- 무소륵스키의 알콜 사랑: 알코올 중독이 심각해서 말년에 생계가 크게 궁핍해지고 건강도 나빠져서 4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 라흐마니노프의 우울증: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우울증을 상당 부분 치료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이 우울함이 진하게 남아 있다.
- 보로딘의 작곡 속도: 보로딘의 작곡 속도는 대단히 느려서 <이고르 공>은 20년 동안이나 작곡하고도 끝내 미완성작으로 남을 정도였다. 이건 보로딘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너무 바빠서였다. 보로딘은 본업이 화학자여서 평소에는 화학 연구에 매진하고 주말의 남는 시간에 작곡을 해야 하는 데다, 병약한 부인의 간호에다 손님 맞이까지 해야 해서 도저히 작곡하는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 윤이상의 조국: 북한. 윤이상은 독일에서 활동하던 중, 중앙정보부의 간첩단 조작 사건으로 서울로 납치되어서 옥살이를 하는 등 심한 고초를 겪었다. 이후 윤이상은 대한민국에 대한 반발심리의 발로에서인지 급격하게 친북 성향으로 기울었으며 말년에 들어서는 김일성을 찬양하기도 했다.
- 쇤베르크의 공포증: 숫자 13을 매우 무서워해서 작품 <모세와 아론>의 제목 글자 수까지 바꿀 정도. 정작 본인은 13일에 태어나서 13일에 만 76세(7+6=13)의 나이로 죽었다.(1874년 9월 13일 출생, 1951년 7월 13일 사망)
- 말러의 자식운: 큰 딸 마리가 병으로 일찍 죽자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매우 소심해졌고, 이는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 안익태의 아이러니: 애국가 작곡가인데 친일의혹이 있다.
- 쇼스타코비치의 조국: 쇼스타코비치는 소련 출신이고, 특히 쇼스타코비치가 본격적으로 음악인 생활을 하던 시기였던 대숙청 시기에는 작품이 소련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비난을 당하고 작곡을 아예 하지 못할 뻔하기도 했다. 그 후로는 독소전쟁으로 작곡은 커녕 목숨이 위험했던 적도 있다.
- 슈트라우스의 정치 의혹: 나치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
- 시벨리우스의 귀차니즘: 시벨리우스는 1930년 이후 작곡 활동을 중단하였고 1957년 사망할 때까지 작곡을 재개하지 않았다. 중간 중간에 짧게 시도했다는 증거는 있으나 완성한 곡은 전혀 없다.
- 바일의 탄생, 서거 연도: 바일은 1900년에 태어나서 1950년에 사망하였는데 이 때문에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년인 2000년이 딱 '밀레니엄', 즉 새천년으로 이목이 쏠리는 해여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 로시니의 식탐: 대단한 미식가로, 부와 명성을 쌓은 이후 식도락을 즐기기 위해 37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로시니가 식탐만 좀 덜 했더라도 열일해서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을 듯.
- 드보르작의 덕후끼: 철덕후 기질이 충만하여서, 미국에서 강의 중에 열차가 들어오는 걸 보기 위해 휴강을 때렸다고 전해진다.
- 리게티의 메트로놈: 리게티 죄르지의 악곡 중에는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적 시'라는 작품이 있다. 이게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100개의 메트로놈을 동시에 작동시킨 뒤 그 진자음으로 만든 음악이다. 이 정도면 '음악'이 아니라 '행위 예술'에 더 가깝다.
- 번스타인의 담배: 번스타인은 지독한 골초여서 죽을 때까지 담배를 달고 살았다. 사망 원인도 흡연으로 인한 폐암.
- 케이지의 실험 정신: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4분 33초'부터 시작해서 백남준의 피아노 박살내기, 벡사시옹의 발굴 등 기행 수준의 실험이 여럿 있다.
- 슈톡하우젠의 미학: 9.11 테러를 두고 '음악에서는 결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단 한 순간에 이뤄낸 것'이라고 호평을 하다가 뭇매를 맞았다.
- 크럼의 악보: 조지 크럼은 특유의 원형 악보를 사용했는데, 이 특성상 가독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 바흐+헨델의 안과의사: 바흐와 헨델은 존 테일러(John Taylor)라는 안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는데, 문제는 이 자가 자기 실력을 잘 떠벌려서 유능한 의사로 포장한 주제에 정작 실력은 돌팔이라서 여러 사람의 눈을 망가뜨렸다. 바흐와 헨델도 이 자 때문에 결국 실명했다.
- 쇼팽의 심장: 쇼팽이 사망한 후 시신은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했고 심장은 고국인 폴란드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했다. 이후 쇼팽의 사망 원인이 과연 통설대로 결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심장을 조사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결핵이 맞다는 소견이 나왔으나 더 정확한 조직 검사는 폴란드 측에서 강하게 반대해서 이뤄지지 못했다.
- 로트의 최후: 음악에 바그너적 성향이 강하게 묻어있다는 이유로, 바그너를 싫어한 브람스에게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다. 결국 브람스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 말할 정도로 심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26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 하이든의 생일: 하이든이 태어난 날은 3월 31일이지만 세례성사를 행한 날이 다음날인 4월 1일, 즉 만우절이다. [2]
- 멘델스존의 민족: 멘델스존은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바그너를 비롯한 반유대주의자들의 강한 비방을 받다가 20세기 들어와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정책으로 인해 그의 작품들이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등 존재 자체가 말살된 흑역사가 있다.
- 드뷔시의 이마: 머리뼈의 이마 부분이 유난히 튀어나온 외모였다.
- 브루크너의 완벽주의: 곡을 완성한 뒤에도 이를 다시 개정하는 작업이 굉장히 빈번해서 같은 곡이라도 버전에 따라 내용이 크게 다른 경우가 많았다.
- 푸치니의 부인: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는 의부증 기질이 있던 여자로서, 하녀가 푸치니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오해하여 하녀를 몰아세워 결국 하녀를 자살하게 한다. 사후 검시를 하자 하녀가 처녀였음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 라벨의 학창시절: 파리 음악원에 다닐 시절에는 성적이 상당히 좋지 않았고 당시 교수진에게 미운 털이 박혔다. 파리 음악원에서 시상하는 로마 대상에 도전하였지만 여러번 낙방했는데, 이게 라벨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음악원 측에서 일부러 주지 않았다는게 드러나서 크게 논란이 일어났다.
3. 후보자
짤방에 공식적으로 들어가 있진 않지만 당시 이 게시물이 나왔을 때 댓글에 거론된 인물, 혹은 들어갈 법한 인물들을 말한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머리색: 당시 빨간 머리는 저속함, 악마를 상징했다. 그런데 비발디의 본업은 하필 성직자.
- 에드바르 그리그의 키: 그의 키는 153cm에 불과했다. 현대인 기준으로도 굉장한 단신이지만, 당시 기준으로도 단신이었다. 심지어 그는 평균 신장이 높은 편에 속하는 노르웨이인이다. 내심 작은 키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어 키 크고 잘생긴 남성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남성상이 주인공인 입센의 희곡 '페르 귄트'의 모음곡을 작곡하게 되었다.
- 주세페 베르디의 입시 실패: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고자 했지만 나이 커트라인에 걸려서 탈락. 아이러니하게도 그 음악원은 후일 주세페 베르디 국립음악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 진은숙의 남동생: 작곡가 진은숙의 남동생이 바로 진중권. 세계적으로는 진은숙이 더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진중권의 인지도가 넘사벽으로 높다.
- 프란츠 리스트의 여성편력:
근데 이건 최악이 아니라 최고의 조합인듯 - 호아킨 로드리고의 장애 라이벌: 호아킨 로드리고는 3살 때 시각을 잃었는데, 프란시스코 타레가 또한 그때쯤 시력을 잃었으며, 말년엔 오른팔도 마비됐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 클로드 드뷔시의 여성 편력: 프란츠 리스트 못지않게 여성 관계가 복잡했다. 그의 애인의 자살 시도까지 있을 정도.
- 요한 아돌프 하세의 예지력: 1771년, 그는 "이 소년은 나중에 우리 모두를 잊혀지게 할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하였는데, 훗날 이는 현실이 되었다.
- 요한 아돌프 하세의 라이벌: 바로 위에 상술했듯이 56살 차이가 나는 손자뻘이다.
- 안토니오 로티의 기일: 1667년 1월 5일 출생 ~ 1740년 1월 5일 사망. 즉 자기 생일에 사망했다.
- 에바리스토 펠리체 달라바코의 기일: 1675년 7월 12일 출생 ~ 1742년 7월 12일 사망. 이쪽도 자기 생일에 사망했다.
- 벤저민 브리튼의 병역: 전쟁을 반대한 브리튼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 병역기피를 했다.
- 졸탄 코다이의 부인과의 나이 차: 무려 60살 차이가 넘는다.
- 프로코피예프의 운수: 쇼스타코비치의 경우의 업그레이드 버젼. 데뷔 후 작곡가 경력 초기에는 스트라빈스키한테 밀리고 이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하지만 당시로선 구시대 음악인이였던 라흐마니노프에게 밀리고 다시 소련으로 이주했지만 쇼스타코비치에게 밀릴 뿐더러 스탈린에게 탄압을 받고 심지어 스탈린과 같은 날에 서거해 장례가 조촐히 치러졌다. 사후까지 그 운수가 이어졌는데 그의 출생지인 우크라이나에서 그를 기려 그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을 만들지만 다들 알다시피...
[1] 다만 실제로 서양음악사 역사상 실제로 살인을 저지른 작곡가가 있는데, 카를로 제수알도이다.[2] 다만 부조니, 라흐마니노프 또한 생일이 4월 1일로,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