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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5:43:51

괴력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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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괴이할 괴 힘 력 어지러울 란(난) 귀신 신

1. 개요2. 설명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공자의 언행을 제자들이 기록한 책인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
"子不語怪力亂神" (자불어 괴력난신)
선생님(공자)은 괴력난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을 의미한다. "괴력" / "난신"으로 끊어 읽어서 "괴이한 힘과 난잡한 귀신"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이상한 주장이 퍼졌으냐 명백한 사료 오독으로 허튼 소리이다. 이미 주자(朱子)가 해당 논어의 구절을 명백하게 괴이(怪異), 용력(勇力), 패란(悖亂), 귀신(鬼神) 등 네 가지로 풀면서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붙였다.

논어에 등장하는 원래 네 글자는 애초부터 별개의 개념들을 의미하는 것이며, 괴력/난신으로 끊었을 때 뭔가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연일 뿐이다. 주자의 풀이가 정립된 이래 현대까지도 한학에서 괴, 력, 난, 신이라는 4가지 별개 개념으로 이해하고, 해당 구절을 괴력/난신으로 끊어서 "괴이한 힘과 어지러운 신"이라고 읽는 법은 절대 없다.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힘 등을 뜻하는,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 괴력(怪力)은 해당 구절에서 파생된 먼 후대의 합성어일 뿐.

이는 바로 아래의 설명 항목에서도 등장하는, 괴력난신에 정확하게 배치되는 4개의 반대개념인 상, 덕, 치, 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또한 "상덕/치인"으로 "평상적인 덕"과 "사람을 다스림"으로 끊어서 해석할 수 없다. 한 자 한 자가 서로 배치되어 괴-상, 력-덕, 난-치, 신-인의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2. 설명

주자집주를 보면 괴력난신의 반대를 '상덕치인(常德治人)'으로 설명한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서들은 대체로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과 술이부작(述而不作)"에 입각하여 저술되었다. 재밌게도 이러한 이유로 삼국사기에는 삼국유사와 달리 단군신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걸로 김부식을 까기도 하지만, 마늘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다는 내용은 명백히 초자연적이고 현대인들도 이것을 일종의 비유라면 모를까 아무도 말 그대로의 실제 역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왕에게 받은 김부식으로서는 원칙적으로는 넣지 않는 게 합리적 선택이었던 것.[1] 다행히 현실성이 낮은 설화적 기록도 모두 수록한 일연삼국유사 덕분에 후대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조선시대 유림들은 무속신앙과 불교, 후대에 들어온 천주교개신교를 향해 괴력난신을 논한다며 공격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유교 교훈서인 오륜행실도에는 효자가 병든 어머니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리자 겨울철에 죽순이 돋아났다든가, 상제가 보낸 신인(神人)이 꿈에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다든가, 아버지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비가 된 효자를 천녀가 내려와서 구해주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든가 하는 초자연적이고 비합리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유교식 장례, 제사도 관점에 따라서는 괴력난신으로 여겨질 만한 요소가 있고.[2]
신하가 임금을 위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위하고, 아내가 남편을 위하고, 아우가 형을 위하고, 친구가 친구를 위하는 절박한 마음이 일호의 사사로움이나 거짓이 없어서 천리(天理)의 바름에 순수하게 부합하면, 여기서 느끼어 저기에 반응하는 이치가 그렇게 될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수가 있다. 주공(周公)이 금등(金藤)에 빌고, 검루(黔婁)가 북신(北辰)에 기도한 일, 왕상(王祥)이 얼음 깨고 잉어를 얻은 일, 맹종(孟宗)이 겨울에 대밭에서 울어 죽순을 나게 한 일 등이 있으니, 어찌 이치가 없다면 그럴 수 있겠는가?
남효온, <귀신론>
대가 오래된 먼 조상은 그 기(氣)는 비록 멸하였지만 그 이(理)는 멸망한 것이 아니니, 그러므로 또한 정성으로써 감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맑고 푸른 하늘에 본래 비가 올 기운이 없다가 갑자기 구름이 모여들어 드디어 큰 비를 내리는 것은, 비록 비가 내릴 기운은 없었지만 역시 능히 비가 내릴 수 있는 이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대(遠代)의 조상은 진실로 감응할 수 있는 기운이 없지만 지극한 정성으로 염원하면 마침내 감응하게 되는 것은, 비록 능히 감응할 수 있는 기운은 없지만 역시 능히 감응할 수 있는 이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이, <死生鬼神策>

애초부터 공자가 그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부정하고 냉담했기 때문에 괴력난신을 언급하지 않았던 건지부터가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버젓이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라'[3]거나,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땐 신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해라'거나, '우임금은 거친 음식을 드시면서도 귀신에게는 효성을 다했고 허름한 의복을 입으면서도 제사 예복은 아름답게 꾸몄으니 흠잡을 데 없다'거나, '고을 사람들이 역귀를 쫓는 굿을 할 때는 제사 예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계셨다'는 등의 구절도 분명 적혀 있기 때문이다.

사족으로, 후대의 유학자들이 기독교를 괴력난신이라고 비판했지만, 실제론 기독교 쪽에도 니콜 오렘이나 장 뷔리당 등 중세 신학자들이 마술이나 점성술 같은 '미신'을 비판한 적이 있으며[4], 기독교와는 무관하지만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에 근거한 자연과학적 설명보다는 허황되고 과장된 이야기에 현혹되는 민중들의 우매함을 경멸하기도 했다. 논어에는 이와 묘하게 비슷한 구절이 있는데, "子罕言利與命與仁."(선생님은 利와 命과 仁은 드물게 말씀하셨다.) 이 구절이 아이러니한 것은 논어는 仁에 대해 공자가 말한 내용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논어의 그 구절은 '초자연스러운 현상 자체를 말하지 않았다'고 해석하기보다는 (술이편에 수록된 것을 생각하면) '대중들을 현혹시킬 목적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미는 언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다. 실제 공자가 살던 시대였던 춘추시대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인신공양, 순장, 점복, 식인 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던 나쁘게 말하면 미개한 풍습이 남아있던 시절이였다. 그리고 이런 미개한 풍습은 보다시피 상당수는 오컬트와 관련된 것이었다.

즉, 괴력난신이란 바로 이런 비인격적이고 비합리적인 고약한 풍습들을 에둘러 말한 것 아니겠냐는 것. 여담으로 이런 풍습은 상나라 멸망 후 주나라의 초기 실권자 주공 단이 많이 교화하였다고 알려져있기 때문에 공자는 주공 단을 성인으로 모셨다. 또, 공자가 굳이 인과 예를 중시한 것도 이런 당대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데, 흔히 영국에서 신사도를 논하는 이유가 신사도가 없어서라는 농담이 있는 것처럼 당대에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내쫒고 아내가 남편을 속이는 등 문제가 심각했으므로 이를 바로세우기 위해 공자가 인과 예를 더 중시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 공자는 순장 풍습에 대해 비판을 넘어 거의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이렇게 볼 경우,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정교분리, 세속주의를 내세웠다고 볼 여지도 있겠다.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원문에서의 의미보다는 '엄청난 힘'(괴력)을 사용하는 초자연적 세력이란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1] 그런데 삼국사기는 삼국의 건국 신화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중요한 내용일 경우엔 수록했다. 술이부작의 원칙보단 애초에 고조선에 대한 내용 자체가 거의 없어서 단군 신화도 자연스럽게 빠진 쪽에 가까울 것이다.[2] 조선 성리학자들이 골치를 앓은 것도 이 귀신의 존재유무인데 귀신은 괴력난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기에 없다고 주장하는게 더 맞으면서도 귀신이 없다면 제사를 드리는 의미가 없는데 제사는 유교에 있어서 핵심 의례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저마다 의견이 갈렸다.[3] 이것도 귀신을 공경한 나머지, 생활 속에서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쉽게 말해 맹신하거나 광신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되곤 한다. 제자 자로가 귀신이나 사후세계에 대해서 물었을 때 "사람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판에 귀신은 알아서 뭐하게? 내가 살아있는 이 세계도 다 모르는데 사후세계에 대해 알려고 드는 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핀잔을 주는 구절과도 통한다. 아니면 귀신을 조상 쯤으로 여기는 해석도 있다.[4] 물론 유교 자체는 기독교처럼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아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