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서가[14]는 1층과 2층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위치에 따라 배치된 도서의 종류가 다르다.[15]
운영 시간 : 10:00-18: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연락처 : 052-211-0300
울산시립미술관은 지관서가의 인생테마를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한다. ‘아름다움’은 비단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나'를 비롯한 세계를 인식하는 시선과 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예술가들을 위한 이 서재에 앉아 ‘아름다움’의 참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며 더 나아가 ‘아름다운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스스로 재정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한다.
울산동헌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며,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 편액하였다. 1763년(영조 39) 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어 반학헌(伴鶴軒)으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울산군청으로, 해방이후에는 울산군청 회의실로 사용하였다. 1981년 복원이 이루어졌으며, 동헌과 내아, 오송정, 학성도호부아문(鶴城都護府衙門)만을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좌우에 2칸씩의 방을 두었다. 그리고 왼쪽 방 앞의 툇마루 주위에는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처마는 부연을 둔 겹처마이고, 기둥 위에는 익공(翼工) 형식의 포(包)를 올렸으며, 추녀마루가 길게 뻗은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아는 온돌방 4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씩을 둔 ㄱ자형 건물이다. 이 ㄱ자형 평면은 조선시대 울산지역 상류주택의 一자형 안채에 사랑방과 누마루를 덧붙인 형식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1동(棟)의 건물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동헌의 정문인 학성도호부아문은 학성도호부관아의 문이란 뜻이며, 이 문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가학루(駕鶴樓)[25]라는 정면 3칸 중층 문루가 위치하고 있었다.
울산광역시의 중심인 중구 북정동에 자리한 해남사는 1936년 근대의 고승인 통도사(通度寺)의 구하천보(九河天輔) 스님이 울산지역의 포교를 위해 세운 통도사 울산포교당이다.
당시 우리 국민들이 일제치하에서 갖은 학대를 당하며 망국의 서러움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불법(佛法)으로써 민생을 구제할 것을 서원(誓願)하여 포교당을 열게 된 것이다. 스님의 뜻대로 포교당을 연 후 많은 스님들이 뒤를 이어 불법의 심오한 진리를 설하는데 힘썼고, 지역사회의 불자들을 교화하여 많은 신행단체가 구성되는 등 활발한 포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앙동 시계탑은 1966년부터 현재까지 울산 시민들에게 원도심을 상징하는 구조물이자 추억의 장소로 인식되어 있다.
인구 7만여 명의 농어촌이었던 울산시는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빠르게 공업 도시로 변모해갔다. 도로 등 각종 기반 시설과 공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시가지의 상권도 활성화되었다. 당시 울산의 중심지는 중구 중앙동(당시 성남동)이었는데, 1966년 중앙동 사거리에 시계탑이 설치되었다. 이후 울산 시가지의 상징물이자 시민들의 약속 장소로 사랑받았던 시계탑은 시계의 대중화와 시가지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1977년에 철거되었다. 시계탑이 철거된 이후에도 시계탑이 있던 사거리는 ‘시계탑 사거리’로 불렸으며, 이름만 남아있던 시계탑은 1998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초기에 울산광역시가 시립미술관의 건립 부지를 확정하는 과정[27]에서 몇몇 논란이 발생했다. 울산시는 당시 구 울산초등학교 부지에 이 미술관을 건립할 시도를 취했으나, 2015년 공사 도중에 외국 사신이나 중앙 관리가 묵는 객사유구가 발견되었다. 울산시는 이에 대하여 미술관의 건축물 중간 부분을 오목하게 들어가는 형태로 짓거나 혹은 일부를 지하화 해 유구가 건축물에 가려지지 않게 함으로써 객사가 갖고있는 역사적 가치와 미술관이 지향하는 예술적 가치를 한 공간에서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으나, 이후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 복원으로 사용에 제한이 있어 서쪽으로 이전 건립하라는 조건부가결을 받았다. 이후 울산 중구성남동을 중심으로 한 부지와 중구 혁신도시 내 클러스터 용지 등을 검토하였는데, 성남동 일대는 매장문화재 유존 지역으로 문화재 발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막대한 토지보상비와 이에 따른 장기화 등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중구 혁신도시 내 클러스터 용지도 부지 넓이로는 문제가 없으나 접근성이 다소 저하되며 부지를 이전할 경우 모든 행정절차를 처음부터 재이행해야 했기에 사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되며 무산되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2145894?sid=102
[1][2]파일:울산시립미술관 1전시실.jpg[3][4][5][6][7] 울산시립미술관의 XR랩은 공공미술관 최초의 실감 미디어아트 전용관이다.[8][9]파일:울산시립미술관 주차요금무인정산기.jpg[10][11][12][13] 울산광역시 지자체에서 공간을 제공하고, sk에서 재원을 기부하여 공적으로 운영 중인 카페 브랜드이다. 울산대공원 그린하우스, 장생포2호점, 선암호수공원점, 유니스트점, 시립미술관점과 송정 박상진 호수공원점의 총 6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14] 울산시립미술관 지관서가는 현재 중구시니어클럽이 운영하고 있으며, 노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지원하여 사회참여, 건강유지, 노후소득 보장을 돕고 있다.[15][16][17][18] " 현대 근현대미술의 흐름전 <시대 울림>은 190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세기에 걸친 한국미술의 전반적인 흐름을 미술사적맥락에서 조명하는 전시이다." -울산시립미술관[19] 삼성 故이건희 전 회장의 컬렉션과 가나문화 재단 컬렉션 일부를 포함하여 국궁립 미술관 및 박물관등 미술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110 여점을 선보이는 전시[20] 유의사항: 미취학 아동은 입장 불가 (초등 3학년 이하는 부모 동반)[21] "아이는 부모에게서 배운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우리가 반대로 아이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 언제든 아이가 될 수 있다 아이들과 우리는 서로 번갈아 가며 안고, 안기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울산시립미술관[22] "<빛, 시간의 춤>은 1990년 후반부터 미디어 아트의 매력에 관심을 갖고 미디어 설치 영상 작업에 전념해 온 류재하 작가가 참여하여 몇 년간 실험하고 연구했던 다양한 표현 기법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XR랩의 구조적 특성에서 잘 드러나는 착시와 공감각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생성형 인공지능과 3D 모델링 기술을 접목하여 이번 전시를 준비하였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도시 울산이 품고 있는 자연환경과 다양한 삶의 풍경을 소재로 제작한 몰입 영상을 통해 울산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울산시립미술관[23] 미술관 지하 2층에도 주차가 가능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로 시간은 동일하다.[24] 주차장은 원래 무료로 운영되었지만 2023년 8월 1일(화)부터 유료화 되었다.[25] 가학루는 울산동헌의 고각루(鼓角樓)로, 시간과 유사시 긴급 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했다. 가학루의 초창 연대는 미상이지만 고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1600년대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이 가학루가 1847년에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아예 허물고 1859년 도호부사 이충익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실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가학루는 1981년 동헌 및 내아, 오송정과 함께 평삼문 형식의 학성도호부아문으로 조성되었으나 옛모습과 달라 원형에 대한 복원 필요성이 대두되어 2013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울산동헌 가학루 유리원판 사진을 토대로, 가학루가 소실된 지 80여년만인 2017년 12월에 복원되었다. 가학루는 팔작지붕의 중층누각으로 2익공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모로단청을 올린 형식이며 2층 누마루에는 대북이 설치되어 있다. 가학루 현판은 발견된 사진을 전사(轉寫)하여 그대로 제작된 것이다.[26]파일:울산시립미술관 샛길.jpg[27] 울산시립미술관의 사업규모는 부지면적 6,182㎡, 연면적 12,770㎡의 지하 3층과 지상 2층으로 사업비는 총 658억 8천 9백만 원이 나왔다. 반려동물문화센터 건립, 울산전시컨벤션센터 건립과 같은 새로운 사업 건립이지만 저 중에선 가장 사업비가 적게 나온 사업이다.[28][29] 임시 공간에서는 약 5만 여권만 보관하고,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나머지 약 30만 권의 도서는 울산도서관 보존 서고 등에서 보관했다고 한다.[30] 새 도서관으로의 탈바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원래 중부도서관이 보유하던 책들을 울산대학교에서 대신 보관해주던 중이었으나, 이 책들을 다시 찾아가지 않아 헌책이 아닌 새책을 원하는 도서관측이 기존 책들을 짬처리한게 아니냐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