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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7 12:49:52

연미당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명 연충효(延忠孝)
미당(薇堂)
본관 곡산 연씨
출생 1908년 7월 15일
만주 북간도 용정(龍井)
사망 1981년 1월 1일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생애2. 주요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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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독립운동가 연미당(延薇堂)은 석촌(石村) 연병환(延秉煥)의 맏딸로 태어났다. 조부는 연채익(延彩羽)이며 미당(薇堂)은 아호이다. 독립유공자 엄기선(嚴基善/嚴琪梅)의 모친이기도 하다.

2. 주요 활동

연미당은 1930년에 한국독립당의 여자청년 부분 단체인 상해여자청년동맹(上海女子靑年同盟/상해 한인여자청년동맹)이 창립되었을 때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출범한 상해한인각단체연합회(上海韓人各團體聯合會)에도 상해여자청년동맹 단체 대표로서 참가하면서 항일연합전선의 구축 운동을 주도하였다. 연미당은 각 신문사에 배일 전문을 송달하고 중국 신문기자들을 초대해 한인들의 입장을 전달하거나 동연합회 명의의 의연금[1]을 모금하는 작업을 이행했다.

1930년대 초에는 한인애국단 조직에도 동참하여 단장 김구(金九)를 지원했다. 1932년, 상해여자청년동맹(한인여자청년동맹) 임시위원 중 한 명으로 선출되었던 연미당은 매년 8.29 국치기념일에 「국치기념(國恥紀念)」이라는 제목의 전단을 각 방면으로 배포하며 항일민족의식의 고무에도 기여하였다.

1932년 4월 29일에 일어난 윤봉길 의거에 이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자싱(嘉興)으로 피신했던 연미당은 1936년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으로 선임되어 의원 활동을 전개했다. 재건 한국독립당이 창건했을 때는 남편 엄항섭과 함께 당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1937년 12월, 일본군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남경을 공격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호남성 장사(湖南省 長沙)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가 범한 남경학살(난징 대학살) 사건이 시행되기 직전에 간신히 장사(長沙)로 탈출했던 연미당은 그곳에서 1938년의 3.1절 기념식을 맞이하게 되었다.

연미당은 1938년 10월에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의 대원으로서 위문활동을 하였으며 1943년 2월 23일에는 50인의 여성들이 모여 재건한 한국애국부인회(韓國愛國婦人會)의 조직부 주임으로 복무하며 애국활동을 계승하였다. 중국전선에 끌려온 일본군 소속의 한적(韓籍) 사병들이 일본군 진영에서 탈출해 광복군으로 합류할 것을 적극 유도하는 초모공작(招募工作)을 전개하는 한편 국제동맹군과 한국 동포들에게 중국에서 자행되었던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였다. 또한 충칭(중경)의 투차오(土橋)에 소재한 일본군 포로수용소를 방문하여 한인 포로를 위문했다.

이후 광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종전 후 한국이 신탁 통치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한인들은 부당함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한국애국부인회를 비롯한 한국독립당,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무정부주의연맹, 한국청년회 등의 6개 대표 정당 및 단체들은 1943년 5월 10일에 재중국 자유한국인대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한국애국부인회 대표로 참석한 인물은 연미당이었다.

그들은 "한국은 마땅히 독립국이 되어야 하고, 한민족은 마땅히 자유민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자유한국인대회 선언문'과 "각 동맹국 영수들에게 민족의 영구한 생존발전과 전인류의 진정한 평화와 행복을 찾기 위해 신탁통치를 절대 반대한다"는 한민족의 결의를 표출하여 외세의 간섭과 억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전했다. 한국 민족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며 국제사회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이루어지면서 평화를 맞이하는가 했으나 머지않아 발발한 6.25전쟁으로 인해 연미당은 인민군에 붙잡히고 말았다.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분산되었으며 남편 엄항섭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연미당 역시 월북자로 오해를 받는 등 고된 여생을 보냈다.

1981년 1월 1일에 작고한 연미당(延薇堂)에게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출처1:공훈전자사료관
참고출처2: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내는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