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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fffff> 안도 다다오 [ruby(安藤,ruby=あんどう)] [ruby(忠雄,ruby=ただお)] | Ando Tadao | |
1995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 |
본명 | 안도 다다오 ([ruby(安藤 忠雄, ruby=あんどう ただお)], Ando Tadao) |
출생 | 1941년 9월 13일 ([age(1941-09-13)]세) |
일본 제국 오사카부 오사카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오사카부립 죠토 공업고등학교 (졸업) |
직업 | 1급건축사 (등록 번호 제79912호) |
가족 | 배우자 안도 유미코 |
수상 | 레지옹 도뇌르 훈장 (2021) 프리츠커상 (1995) AIA 금메달 (2002) RIBA 로얄 금메달 (1997) Alvar Aalto Medal (1985) Neutra Medal for Professional Excellence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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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현대 건축가.2. 상세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거장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건축계의 스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고 널리 알려진 일본 건축사일 것이다.노출콘크리트 건축으로 유명하며 이를 대중화 시켰다. 노출콘크리트 방식의 건축에 안도 다다오를 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 시키게 하였다. 그의 특유의 거친 언행과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고, 직감 위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인기의 요인이다.
1941년 9월 13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동안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안도 다다오의 어머니는 둘째 아들만 키웠기 때문이다.[1] 고등학교 시절을 아마추어 권투선수와[2] 트럭 운전수로서 보내던 중 헌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 도면을 보게 되고,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3]
오사카에 있는 헌 책방에서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이 적힌 책을 발견했다. 별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다가 이내 '이거다'하고 직감했다. 아무리 헌책이라도 나에게는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에 일단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감춰 놓고 나왔다. 결국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 안도 다다오
- 안도 다다오
고등학교 졸업 후,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대학을 가지 않고 세계를 여행하며 건축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전문적인 건축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예일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도쿄대학 등 세계 각지의 명문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69년 사무소를 차리고 토미시마 주택을 건설하면서 건축사를 시작했다.[4] 건축학적으로는 하중 지탱 같이 투박한 건축 재료였던 콘크리트를 장인적 정신을 담아 물성[5]을 살려내는 예술가에 가까운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디자인적 감성인 정갈함과 잘 맞물리기도 했다. 또한 서구적인 모더니즘 건축 안에 동양, 특히 일본의 건축적 요소 중 하나였던 비효율적인 동선과 이용자의 체험을 중시하는 요소를 절묘하게 융합했다는 측면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다만 그 명성에 비하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오사카를 중심으로 국내 활동을 많이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기작부터 주요한 많은 작품은 오사카와 고베에 몰려있다.
참고로 자서전에 따르면 콘크리트 타설 작업날이면 직접 현장에 가서 타설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싶으면[6] 과장을 보태 현장 인부 멱살을 잡고(...) 제대로 하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인부가 콘크리트에 담배꽁초를 던지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7]
3. 특징
그의 건축물은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에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흥미롭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때문에 관광명소로 인기있는 경우도 많다. 엄숙한 콘크리트 속에서 종교적인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며, 앞서 말한 동선 설계에서 여행하는 듯한 즐거움을 찾는 사람도 있다. 또한 노출 콘크리트만 쓰는 스타일이 꽤 특이해서 기억하기 쉽다는 점도 있다.70~80년대 건축계에서 배출한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다. 그의 주요 작품들을 보면 특별한 외장 없이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사실상 노출 콘크리트를 대량으로 쓴 건물이라면 안도가 참여했거나 그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다.[8] 이러한 건축은 단순한 외형과 달리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거푸집의 못자국 등이 남기 때문이며, 솜씨 좋은 장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일본의 콘크리트 품질도 한몫한다.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의 감동이 반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건축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건축사이다. 대통령상이나 건축상을 다수 수상한 한국의 유명한 나이있는 건축사들의 과거 작품을 보면, 이 사람 건축에
다양한 저서와 작품집으로 그를 만날 수 있고, 2013년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출품된 '무에서 영원을 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그의 건축을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2022년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출연[9]하여 건축혁명에 대한 강의를 했다.
4. 비판
안도 다다오에 대한 유효한 비판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사람에게 적합한 건축인지 의구심이 든다. 안도의 건축은 자연과 하나가 되는 부분을 강조해 감동적인 의미가 있지만 실사용에 있어 동선은 비효율적이며 춥고, 불편하다. 아즈마 하우스를 예로 든다면 방과 방을 지날 때는 무조건 외부로 나가게끔 되어 있다. 사실 이는 안도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 건축이 직면한 딜레마이기도 하다.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미스 반 데어 로에도 같은 비판을 받는다.
-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와 잘 맞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의 강점은 주로 작은 건축에 있어서의 아기자기한 요소들과 비효율적인 동선 등을 활용한 여정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런 요소를 큰 스케일의 건축에 적용하면 작은 요소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뚜렷한 활용없이 버려지거나 지나치게 큰 공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5. 주요 작품
5.1. 스미요시 나가야(스미요시의 연립 주택)
1976년 완공. 오사카의 스미요시 신사 근처에 있는 좁은 부지를 활용한 안도 다다오의 출세작. 일본의 전통적인 도시 주거 형식인 나가야를 신축한 주택으로, 집은 편해야 한다는 상식을 깬 작품이다. 집의 전면은 모두 콘크리트 벽으로 막혀 있고, 3등분된 가운데 부분은 천장 없는 빈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것이 자연과 직면해서 사는 길이라는 안도의 주장에 집주인을 포함해 다들 넘어가 버렸다. 때문에 기능면에선 단언코 최악의 작품이지만, 젊은 무명의 건축가의 철학이 확고했던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자미로콰이의 곡 Virtual Insanity의 뮤직비디오 세트는 이 건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5.2. 물의 교회
1988년 완공. 아주 단순한 건축물이지만, 고요하면서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 하나. 이 건물은 사진으로 흔히 나오는 경관도 중요하지만, 너무나 비효율적인 긴 동선을 통해 일본의 공간 개념[10]을 서구적인 건축 형식 안에 표현했다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다. 가수 보아의 메리-크리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쓰였다.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아니라, 결혼식장으로 쓰인다.[11]
홋카이도 중부의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 내부에 위치해 있다. 리조트 이용객에게는 결혼식 시간 외에 언제나 개방되며 그 외 관광객들은 20시 30분 ~ 21시 30분 사이에 관람이 허용된다. 돈이 충분하다면 토마무 리조트에서 숙박하면서 낮에 관람하는 게 좋으며 외부인으로써 삿포로에서 왕복한다면 23시 즈음 도착하는 상당히 피곤한 여정이다. 세키쇼선 토마무역에서 열차 시간에 맞춘 무료 셔틀버스로 연계되므로 교통편은 잘 구축되어 있는 편.
5.3. 빛의 교회
1989년 완공. 록코와 물의 교회에 이어 오사카 신도들이 모금한 소량의 비용으로 거의 자선사업 하듯이(...)[12] 만든 교회. 비록 저비용으로 협소한 공간에 만든 건축물이고, 내부 십자형 창이 너무 직설적이지만 특유의 건조한 노출 콘크리트와 무장식적인 공간이 잘 어우러져 경건한 느낌을 주는 것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덧붙여 목재바닥인데 신도들이 꾸준히 관리해나가고 있다고 한다.[13] 결혼식장으로 쓰이는 물의 교회와는 달리 빛의 교회는 실제로 기독교 신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종교시설이기 때문에 내부 관람을 원한다면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위치도 외진 곳의 리조트에 자리한 물의 교회와 대비되게 일반 주택가에 세워졌다. 영화 안도 다다오의 국내판 포스터로 사용되기도 했다.
5.4. 롯코의 집합주택(팔라마운트 롯코)[14]
전망 좋은 60도의 산 비탈과 절벽을 깎아 세운 외국인용 주택 단지로 평지에 정상적으로 짓겠다는 건축주의 의지를 꺾고 자신의 의도대로 설계했다.
안도의 '법을 돌파하는 능력'은 이 건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다만 이 건물의 공사는 당시 현행법상 법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불법이었다. 왜냐하면 제 1종 주거 전용 지역에 따른 법률에 의해, 만일 건물을 원래대로 지으려면 10층 높이가 되어야 하지만 법률상 10미터가 최대 고도였다. 그래서 관공서에서는 각종 법규를 들어 제재를 하려고 했지만 안도는 "경사면을 따라 올라가니 경사면 상승 3미터마다 기준면도 높아진다고 보아야 한다. 즉, 10미터 이하로 억제되는 것이다" 라고 법을 재해석하여 돌파구를 찾았다.
이 건물이 상당히 유명했다보니 산요전기 회장 동생과 연을 맺어 아래 법당을 맡게 된다. 그리고 독특한 외형 덕분에 영화 토니 타키타니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사실 건물 내부에서의 배경이나 풍경은 전부 안도가 의도했던것처럼 벽이 없어보이는 식의 느낌으로 촬영이 되었다.
5.5. 물의 절 (혼푸쿠지(本福寺)의 미즈미도)
과거 인도 여행 시절 수면을 뒤덮은 연꽃에 착안해 연꽃 연못 한가운데 있는 계단을 내려가 그 밑에 위치한 법당에 들어설 수 있게 만들었다. 처음에 이 설계에 대해 신도들이 당치도 않다며 반발했으나[15], 다이키 큰스님이 "연꽃은 불교의 원점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구조라니 아주 좋군" 이란 평을 하며 안도의 설계안을 지지했다. 이에 힘입어 1991년 완공될 수 있었다. 4년 후 발생한 고베 대지진에서도 무사했고, 연못의 물은 주변 생활용수로 쓰인다.
5.6. 네팔 어린이 병원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네팔 부토와르시에 건립한 병원. 드물게도 대다수의 콘크리트 면마다 벽돌을 쌓아 마무리했다.
5.7. 본태박물관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다. 2009년 설계를 시작하여 2012년에 완공하였다. 본태박물관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출콘크리트에 빛과 물을 건축 요소로 끌어들여 건축과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제주도 대지에 순응하는 전통과 현대’를 컨셉으로 설계를 진행하였다.
5.8. 유민미술관 (구 지니어스 로사이)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에 위치한 건축작품으로 2008년 완공되었다. 휘닉스 제주 섭지코지의 부속 시설 중 하나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CF 등에도 많이 출현하는 등 한국에 있는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원래 명상센터로 설계한 것인데 지니어스 로사이는 명상센터 시절의 이름이며, 이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2017년부터 홍진기의 유리 공예품 컬렉션을 상설 전시하면서 유민미술관으로 재개관하였다.
여담으로 근처에 위치한 글라스 하우스라는 작품은 평가가 좋지 않다. 건축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글라스 하우스가 위치한 섭지코지의 경관이 좋기 때문에 이를 망쳤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
5.9. 그 외 작품
위키백과에 작성된 그의 설계작 목록약 80~90채 정도의 한국과 일본에 위치한 안도 다다오 건물을 직접 순례한 사람이 쓴 포스트가 있다. #
5.9.1. 케이한신 지역
5.9.2. 일본 나머지 지역
- 롯폰기 21_21 디자인 사이트
- 도큐 전철 도요코선 시부야역
- 도큐 전철 오이마치선 카미노게역
- 도쿄대학코마바캠퍼스부속 코마바도서관
- 도쿄대학 혼고캠퍼스 후쿠타케 홀
- 도쿄 스카이트리
- 센가와역[18]
- 오모테산도 힐즈[19]
- 토요하시 철도 아츠미선 미카와타하라역
- 카가와현 나오시마의 미술관
5.9.3. 한국
- 가평 한화 인재경영원[20]
- 여주시 마음의 교회[21]
- 제주도 본태박물관
- 제주도 글라스하우스
- 재능교육 JCC아트센터, 재능교육 JCC크리에이티브센터 (약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 LG아트센터 서울[22]
- 원주 뮤지엄 산 [23]
- 여주 페럼 클럽하우스(페럼cc)
6. 경력
[1] 안도 성씨를 잇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다.[2] 본인의 말로는 건축과 권투 모두 한계를 향하여 가고 살아남기 위해 끝까지 집중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3] 이 때문에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는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 세계여행을 하던 시절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러 기차를 타고 프랑스로 갔으나 6개월 전에 사망 했었기에 만나지는 못했다. 안도는 자신이 기르는 반려견에게 그의 이름을 붙였다.[4] 최경원,'르 코르뷔지에 vs 안도 타다오', 숨비소리, 2007[5] 재료의 순수한 성질[6] 이유인 즉슨 그의 기법 자체가 거푸집에서 떼어낸 콘크리트에 타일이나 페인트, 미장용 시멘트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떼어낸 그대로를 노출시키는 것이기에 여느 건축가들과 달리 이것에 신경쓰는 것.[7] 이는 보기 안 좋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콘크리트의 품질과 강도를 저하시킬 수 있는 행위다.[8] 1986년 사망한 김수근 역시 노출 콘크리트에 한국적인 미를 더한 교회 건축을 남겼다. 다만 안도의 빛의 교회가 1989년에 완공된 반면, 김수근의 경동교회는 몇년 앞선 1981년에 완공되어 이 둘 사이 큰 상관은 없다. 그러나 안도의 유명세 때문에 이를 모르는 이들이 다른 노출 콘크리트 건물들과 함께 안도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9] 로그인하면 다시보기를 할 수 있다.[10] 일본은 선종 불교의 영향으로 발달한 '젠' 양식을 통하여 좁은 공간일지라도 시간을 소모하면서 오래 돌아보며 넓은 것처럼 느껴지게 감상하는 방향으로 건축과 조경이 발전해왔다.[11] 일본의 기독교 신자 비율은 1% 수준의 극 소수이지만 서양풍 생활양식에의 동경 때문에 결혼식은 교회(실질적으로는 교회풍 건물인 곳)에서 외국인 알바를 목사처럼 입혀 주례를 세워서 혼인성사나 결혼 예배를 흉내내는 형태의 웨딩이 무척 많으며 이런 결혼식들은 웨딩 전문 채플에서 주로 이루어진다.[12] 자서전에서도 공사를 하다보니 자금 사정상 지붕 덮을 여력이 없어 나중에 기금이 모이는대로 해주겠다고 했는데 어찌어찌 덮었다고 한다.[13] 다큐멘터리 '안도 다다오, 무에서 영원을 보다'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14] 국내 정발된 자서전에선 '롯코 집합주택'으로 불린다.[15] 대부분의 종교건축은 지붕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왔는데, 지붕대신 연못을 얹었으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16] 2010년 12월 이후로 폐관됐으나 전시를 위해 1,2,3층 갤러리만 열 때도 있다.[17] 아쉽게도 오래 전에 한 동이 철거되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카페가 있다. https://youtu.be/Vm3yuUNTjKg[18]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안도가 설계한 Tokyo Art Museum이 있는데 이 주변을 안도 다다오 마을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그가 설계한 건물이 7,8개 정도 몰려 있다. https://www.ohkaksan.com/2013/08/31/%E4%BB%99%E5%B7%9D%E5%AE%89%E8%97%A4%E3%82%B9%E3%83%88%E3%83%AA%E3%83%BC%E3%83%88%E3%82%92%E8%A1%8C%E3%81%8F/[19] 일본 최초의 아파트 단지인 도준카이(同潤会) 아파트를 딱 한 동만 남기고 상가건물로 재건축했다.[20]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21] 과거에는 관람 가능했으나 지금은 부지 출입 자체가 불가능하며, 1년에 1번 정도 하는 기업 행사할 때 가능하다고 한다.[22] 2022년 10월 완공. 서울식물원 내에 있다.[23] 2013년 5월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