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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초크 & 드 뫼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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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Herzog & de Meuron
헤르조그 & 드 뫼롱[1]
파일:external/static.dezeen.com/dezeen_Herzog-and-de-Meuron_1a.jpg
파일:Medal_of_Pritzker_Architecture_Prize_(front).gif 200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본명 Jacques Herzog / 자크 헤르초크 (왼쪽)
Pierre de Meuron / 피에르 드 뫼롱 (오른쪽)
출생 1950년 바젤
국적
[[스위스|]][[틀:국기|]][[틀:국기|]]
직업 건축가
학력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경력 Herzog & de Meuron Basel Ltd.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헤르초크 & 드 뫼롱 / 교수)
하버드 대학교 (헤르초크 & 드 뫼롱 / 교수)
코넬 대학교 (헤르초크 / 교수)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건축물3. 영향4. 수상

[clearfix]

1. 개요

헤르조그 & 드 뫼롱은 스위스건축가이다. 건축사사무소는 스위스 바젤에 있다.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는 1950년 4월 19일 생이며,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은 1950년 5월 8일 생이다. 둘의 생일 차이는 한달도 되지 않는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으며,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 함께 입학하여 같은 년도에 졸업해 1978년 함께 건축 사무소를 열었다. 이후로 30년 넘게 함께하고 있다. 그야말로 죽마고우.

ETH Zurich 학부당시 공학적 장인정신의 학풍속에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거장 알도 로시의 가르침을 받았다. 초기에는 스승으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했던 탓인지 공식석상에서 역사성에 대한 부정과 건축의 독립성을 줄곧 주장해왔다.[2] 하지만 근래 작업들은 과거 알도 로시를 연상시킬 만한 작품들로 회귀하고 있다. 물론 알도 로시의 영향력은 그들의 작품활동 전반에 걸쳐 존재해왔고, 과거에는 외피 디자인으로 이를 감추었고 지금은 덜 감추고 있을 뿐이다.

미국의 ETH라 불리는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 스쿨에서 두명 모두 1994년 부터 1999년 까지 교수직을 맡았다. 실제로, 그 당시 두 학교사이에 교환학생제도가 이루어졌었는데, 너무나 다른 성격간의 교류였기에 흥미로웠다고 한다. (다소 과장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하버드 건축대학원의 낭만적인 학풍과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교함을 추구하는 ETH의 장인+공학적인 학풍.) 이후에는 본인들이 나온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다.

200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 미국 타임지는 이들의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 설계 사무소"라고 칭하였다.

표피 건축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단순히 표피를 조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구조와 시공과 형태를 결합해내는 근원적인 건축으로 회귀하는 것, 그들의 건축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초기에는 현대적이면서도 단순한 건축 설계를 주로 하였다. 현재에는 건축 재료의 물성을 이용하여 정교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반영한 건물의 외면을 만들어 내는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입면 건축가, 외피 건축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제는 단순함을 넘어서 기하학적고 복잡해 보이기 까지 한 건축물의 외면을 설계해 낸다. 게다가 구조부터 재료까지 직접 다루는 토탈 디자인 경향 혹은 일각에서 장인정신을 들키기 싫은 내숭쟁이로 평가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초창기에 지은 건축물들은 아직도 얼마전에 준공한듯한 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렘 콜하스의 많은 건축물들이 급속하게 노후화되고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띈다. 이처럼 건축 재료의 성질을 잘 이용하여 놀라운 외피의 건축물을 설계해낸 것이 그들의 성공의 비결이라고 평가하지만, 프랑스의 저명한 건축역사학자이자 비평가인 Jaques Lucan의 최근 강의에 따르면, 그들의 외피 디자인은 그들의 능수능란한 공학적 능력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위장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평가한다. 물론, 본인들은 건축을 예술로 보는 것은 매우 싫어한다. 예술을 하고 싶은데 예술가보다는 장인과 엔지니어로서 존재하고 싶어하는 오묘한 심리가 작품속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 이는 이들의 다재다능한 건축적 행보 중에서도 꾸준하게 관찰되어 존재하는 맥락이다. 단순히 외피디자인 혹은 변덕심한 괴짜 건축가 정도로 한동안 잊혀졌다가, 높은 품질의 건축물이라는 것이 시간을 통해 증명되고 있기에, 다시금 인기를 끌지 못하던 유럽에서도 회자되는 건축가들 중의 하나이다.

2. 건축물

이들의 건축 방식은 역사도 이론도 형식도 없이 각각의 프로젝트의 대지와 기능, 재료에 대해 탐구해서 매번 다른 해답을 창조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매 프로젝트를 다르게 작업한다고 하지만 헤르초크와 드 뫼롱은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파일:attachment/signal.jpg

1998년에 지은 시그널 박스. 통신시설 건물로 지어졌으며, 물리학의 '패러데이 상자'원리를 그대로 건물에 적용시켰다. 패러데이 상자란 충전된 도체의 전하는 도체 표면에만 분포하며 상자 내부에는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것. 즉 건물 내의 각종 신호시설을 외부 전파에서 보호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구리판으로 감싼 것이다. 이 엄청나게 단순하고 강력한 건물은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파일:attachment/hdm1.jpg
파일:attachment/hdm2.jpg

1993년에 지은 빌라의 경우 전체 입면은 바로 앞 인도의 배수구 뚜껑의 무늬를 보고 그대로 디자인하였다.

파일:attachment/wr41_4_popup.jpg

1997년에는 도미너스 포도주 양조장을 지었다. 이 건물로 헤르초크와 드 뫼롱은 건축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데, 고속도로같은 토목구조에나 사용되던 돌망태를 건물의 외벽으로 사용했다. 이 돌망태는 구멍이 숭숭 나 있기에 공기와 빛이 통하고, 와인 숙성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조건을 자연스럽게 형성한다. 시공에 사용된 돌들은 전부 주변에서 채취했다.


파일:attachment/2162926386_04d4158276_z.jpg
기자: 전형적인 엄격한 미니멀리즘적 건물에 온통 사진을 덮었다. 정신분열 증세에 가까운 것 아닌가?
헤르초크: 정신분열증은 아니다. 아마 역설일 듯? 그 건물은 인습을 타파하는 면이 있고 동시에 아주 생기가 있다. 기묘하게 매력적이어서 우리가 세운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을 만 하다.

1998년에는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의 사진 이미지를 콘크리트에 직접 인쇄해 건물 전체를 덮었다.

파일:external/cdn.ltstatic.com/SV995497_942long.jpg

2000년에는 그들의 대표작인 영국 런던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완성하였다. 원래 'Bankside Power Station'이라는 낡은 발전소를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 건축물이다. 과거 이 지역은 런던 내에서도 개발이 오랜시간동안 지연된 낡고 가난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통해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미술관처럼 템즈 강변을 금융도시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또한 건축물의 성공적인 리모델링 통해 지역을 되살린 좋은 사례로도 알려져 있다.

파일:external/aasarchitecture.com/Tate-Modern-Extension-by-Herzog-de-Meuron-04.jpg

이후에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 증축 공사의 설계를 맡았다. 2016년 완공되었다.

파일:attachment/250px-Allianzarenacombo.jpg

2005년에는 2006 독일 월드컵 개막전이 열린 알리안츠 아레나를 지었다. 연고팀이 두 곳이어서 FC 바이에른 뮌헨이 경기할 때는 경기장 전체가 붉은 조명이 켜지고 TSV 1860 뮌헨이 경기할 때는 파란색 조명이 켜진다. 더비 매치땐 보라

파일:attachment/250px-Allianz-Arena.blue.red.jpg

사실 태극무늬도 가능하다.

파일:external/www.blogcdn.com/61-beijing-birds-nest-getty-images.jpg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작으로는 새둥지 모양의 2008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인 베이징국가체육장이 있다.[3] 10만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용인원과 함께, 거대한 크기, 6천억원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공사비로 인해 큰 관심을 끌었다. 새 둥지를 연상시키는 외부의 철제 프레임과 함께, 내부의 좌석 어디에서나 사각지대 없이 경기장을 볼수 있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파일:external/cdnassets.hw.net/?url=http%3A%2F%2Fcdnassets.hw.net%2F39%2F4a%2F5a61a48344d3a994236e5b2485fa%2F0527-bordeaux-7.jpg
파일:external/cdn.wallpaper.com/03_Stadium.jpg

마트뮈 아트란티크 경기장.

파일:PRADA AOYAMA.png

프라다 아오야마점.

파일:2021020102642_0.jpg

서울 청담동 송은아트센터. 중앙일보 인터뷰

3. 영향

2001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였다.

이렇게 현 시대의 스타 건축가로서 입지가 굳건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이들에 대한 '외피 건축가' 라는 편향된 해석은 실제 건축적 이해능력이 떨어지는 미국학계의 식견을 여과없이 유통한 한국학계의 영향... 특히 건축잡지에서는 정말 조금씩만 다루는데, 이유는 케바케의 작업 스타일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건축풍토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까지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축가.

2023년 12월,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서울시에서 진행한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국제설계공모에서 당선되며 한국에서도 서서히 다뤄지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는 대지면적 5,800m², 연면적 19,500m²에 조성비(공공기여비) 1,260억을 투입하여 2028년 개관을 목표로 지난 9월 8일 국제설계공모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유현준 등이, 해외로는 노먼 포스터 등이 참여한 큰 설계공모전이었으며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거쳐 이들의 작품이 당선되었다.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2024년에는 더현대 광주의 설계를 담당하여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상업 건축물 설계를 선보였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설계안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4. 수상

프리츠커상(2001), RIBA 로얄 금메달(2007), Prix de l'Équerre d'Argent (2001), Schock Prize (1999), Stirling Prize (2003)


[1] 건축잡지 등에서 '헤르조그 & 드 뮤론'이라고 표기하지만 잘못된 표기다. 국내 건축 언론의 영어 의존도가 높아서 잘못된 표기가 정착되어 버린 경우다. 때문에 전공자가 메이저 언론에서의 외국 건축가 이름 표기를 보고 생소해하는 경우가 생긴다. 혹은 한국어 메롱과 비슷한 어감을 줄 수 있다고 느껴 번역가가 저렇게 번역을 한 것일지도.[2] 알도 로시의 결정론적인 교습법으로 많은 학생들은 존경과 동시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3] 설계에는 설치미술가 아이웨이웨이가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