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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8:36:11

아이코 공주/가쿠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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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쿠슈인 유치원2. 가쿠슈인 초등과
2.1. 이지메 사건2.2. 이지메 극복 이후
3.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3.1. 부정적인 여론3.2. 거식증3.3. 위험 증상3.4. 뒤바뀐 여론3.5. 여자중등과 졸업
4.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4.1. 입학식4.2. 입학 이후4.3. 영국 단기유학4.4. 호의적인 여론 증가
4.4.1. 이유4.4.2. 원인4.4.3. 아키시노노미야 家와의 비교4.4.4. 상황 정리4.4.5. 2018년 12월
4.5. 진학 문제 및 결혼 문제
4.5.1. 공개된 우수한 성적
5. 황태자의 딸에서 천황의 딸로
5.1. 레이와 시대
6. 가쿠슈인대학

1. 가쿠슈인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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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유치원 입학 사진

2006년 4월 가쿠슈인 유치원에 입학, 2008년 3월에 졸업했다. 입학식에서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함께.

2. 가쿠슈인 초등과

2.1. 이지메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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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가쿠슈인 초등과 입학식에서

2008년 4월 가쿠슈인 초등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2010년 3월, 아이코 공주는 남학생공화주의자[1]에게 발로 차이는 등의 집단괴롭힘을 당하여 5일 동안 등교를 거부했고, 일본 황실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 황실·궁내청·가쿠슈인 측은 애써 큰 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주간지 기사에 의하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공무에 나서지 못하는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해 세금 도둑이라는 패드립까지 당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코 공주는 엿새 만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함께 등교했으나,[2] 이 일로 인해 2년 동안 모녀가 동반 등교를 해야 했던 것을 보면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딸과 함께 등하교를 하고 수업에 참관하는 등 각별히 신경을 썼다. 특히 이 무렵 마사코 황태자비는 적응장애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어서 외부 노출을 극도로 꺼렸는데, 그럼에도 마사코 황태자비가 직접 밖으로 나돌아다닐 정도로 딸을 보살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루히토도 이 시기 딸과 함께 등하교하는 모습이 자주 찍히곤 했다.

일각에서는 이 이지메 사건의 배후에는 숙모이자 히사히토때문에 아이코 공주를 적대시하게 된 키코 비가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해 남학생들 중 하나의 가족에 가쿠슈인대학 교수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학창시절부터 오랜 기간 동안 가쿠슈인대학 교수 사저에서 지낸 키코 비가 이 가족과 친분이 있던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구심이 발생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키코 비가 시집가던 날 당시 꽃을 전해준 가쿠슈인 여학생이 가해 남학생의 이모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

게다가 이 당시에 아이코 공주를 괴롭힌 남자아이들은 일본 황실을 포함해 누구에게서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계속 학교에 다니며 주변에 "내가 그때 아이코를 괴롭혔다!!"고 떠들고 다니고 있다. 일본인들이 황실에 대해 가지는 인식이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보통의 경우 결코 일어날 수가 없다. 때문에 외부의 힘, 그것도 황실 내부의 힘이 해당 사건에 개입한 것은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상태이다.

2.2. 이지메 극복 이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학교에 적응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과연 하버드 대학교, 도쿄대학, 옥스퍼드 대학교를 나온 희대의 수재인 어머니를 닮은 듯. 6학년이 되어서는 학교에서 방송부원을 맡았으며, 관현악부와 농구부 등에서도 활약했다. 또한 가쿠슈인 여대에서 하는 영어 강좌에 다니면서 영어 공부도 했다. 마사코 황태자비는 아이코 공주의 교육에 전심전력으로 매달려, 하루에 1~2시간 영어로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진다. 외교관으로 일했던 어머니에게 교육받아서 그런지, 언어에 특히 우수한 자질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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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웹 항간에 보이는 아이코 공주의 서예는 대단히 능숙하다.[3] 글씨체 역시 한자마저도 활자 수준으로 똑바른 정자체라, 공개된 아이코 공주의 글씨에 일본의 누리꾼들까지도 "마사코 황태자비가 대신 써준 줄 알았다"며 놀람을 금치 못하는 수준이다. 중학 입시 모의평가에서는 편차치 72[4]의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는데,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입시에 관심을 둔 될성부른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이기 때문에, 응시자들 대개가 고등학교 입시와 나아가 명문 대학을 노리는 우수한 아동들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아이코 공주의 향후가 기대된다는 평.

다만 도쿄대학에 입학할 경우에는 아이코 공주가 정말로 실력을 발휘하여 합격했다고 해도 일각에서 특혜 시비 내지는 일반인들의 기회를 침해했다는 주장까지 나올 수 있는지라, 하버드 대학교옥스퍼드 대학교 같은 외국 대학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A-Level(영국)/SAT(미국)에 직접 응시해서 논란의 여지를 아예 차단해버릴 것 같은데, 만약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받아온 세간의 못마땅한 혹평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사족으로 이 소문으로 인해 키코 비는 히사히토를 교육 문제로 달달 볶았다고 전해진다.

3.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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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8일, 무사히 가쿠슈인 초등과를 졸업했다. 4월에 같은 재단인 가쿠슈인 여자중등과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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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입학식에서.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함께.

아이코 공주는 일본 네티즌들에 의해 자폐아 설 등을 비롯해 근거가 부족한 음해설이 상당히 제기되고 있었는데, 한창 때에는 같은 2ch 내라도 다른 판에서는 "아이코 공주의 일본 야후! 연관검색어가 너무하다!!"는 스레가 세워질 정도였다. 그러다가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입학식 당시의 인터뷰를 계기로 제법 사그라든 듯하다.

기자들이 "(중학교) 입학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자 아이코 공주는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기자들이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니 아이코 공주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가 "대답해도 좋아요."라고 아이코 공주의 곁에서 속삭였다. 그러자 아이코 공주는 크게 "기대됩니다"라고 답했다. 아이코 공주가 언론 앞에서 직접 자기 기분을 표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기자들은 언론에 아이코 공주가 대답할 줄 몰랐다고 한다.

미성년자 황족들이 직접 답하거나 그 발언을 직접 음성으로 싣는 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대부분의 보도 영상 등에 미성년 황족들의 음성이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아이코 공주가 머뭇거린 것도, 본인의 성향도 있겠지만 그러한 규제 때문이기도 하다. 즉, 기자의 질문에 대답한 것도 부모인 황태자 부부가 "그 정도 발언은 괜찮다"고 허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패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천황을 위시로 한 성년 황족들도 이런 식으로 규제가 걸려 있었으나, 패전을 알리는 쇼와 덴노옥음방송 이후에는 성년 황족들에 대한 규제는 해제되고 미성년 황족에게만 규제가 남아있었다.

초등 고학년 시절에는 활발히 활동했던 반면, 중학교 진학 후로는 딱히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없고 반에서 겉돌고, 무단결석이나 지각이 잦아 빈축을 샀다. 5~10분 지각이 아니라 완전히 오후에 등교한다는 점에서 더욱. 가쿠슈인 관계자에 의하면,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에는 외부 초등학교에서 입시를 치르고 입학한 새로운 아이들이 많아, 아이코 공주는 경쟁심을 느끼고 공부하다 늦게 잠드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지각도 잦다고. 항상 5~6명의 경호원들이 붙어다니다 보니 아이코 공주를 너무 억압해서 그렇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국어 과목을 좋아하며, 모르는 한자가 생기면 사전을 찾아 한자 시험은 항상 만점을 받는다고 한다. 수학은 약하여 따로 개인 교사를 초청했다. 다만 못한다고 해도 다른 과목을 100점을 맞는 데 비해 수학은 90~95점 받는 정도. 특히 영어 발음은 원어민과 유사하며 회화도 할 줄 안다고 한다. 이에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는 "아이코의 영어 발음은 나보다 좋다"라고 했다고.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사촌 언니 마코 공주보다도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다.[5][6] 그리고 프랑스어도 배운다고 알려졌다.

중학교에서 처음 적응을 할 때는 환경이 달라져 애를 먹고 지각도 잦았다. 그러나 2학년부터는 지각이 줄어들고 학습 외 다른 활동도 활발히 하는 등, 학교에 적응을 잘 한 모양이다. 2016년 2월에 도쿄 디즈니랜드에 놀러갔다가 찍힌 사진이 알려졌다. 아이코 공주의 성장과 덩달아 마사코 황태자비의 공무량도 늘고 있어, 아이코 공주가 어머니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아이코 공주는 성장하면서 자신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를 많이 생각하고, 매우 의젓하다고 한다. 단독 취재도 하였고, 아직 어색한 모습이지만 부모와 함께 공무에도 많이 참석하고 있다. 아이코 공주를 취재한 기자들은 '제일 황족답다'며 호평이 자자하다고. 커가면서 우수한 성적과 의젓한 면모 등으로 가쿠슈인 학생들과 황실 관계자들의 칭송을 받는다고 한다. 딸의 이러한 성장은 마사코 황태자비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줬다고 한다.

2016년 2월 24일, 중3이 되는 아이코 공주의 진로에 대해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는 딸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일본 황실공주들이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자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 진학한 것[7]처럼, 아이코 공주도 고등학교나 대학을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학교로 진학할 수도 있다.

2016년 9월 26일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장기 결석 중이라는 주간지 기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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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할머니 미치코 황후를 점점 닮아가는 모습이다. 숙녀 티가 많이 난다.

3.1. 부정적인 여론

2016년 6월 23일,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에서 하는 아이코 공주의 수업 참관에 황태자 부부가 참여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비난과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와의 비교, 거기에 아이코 공주에 대한 우회적인 비난을 보도했다. 그런데 그게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처럼 열심히 공무하는 부모를 보고 자라지 못했다"는 식의 꼬투리뿐이다.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를 비롯한 외가의 스펙을 생각하면 학업 면에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되니까,[8] 공무 운운하며 그냥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안달하는 모양새라 보는 편이 옳다.[9][10]

키코 비의 친정 가와시마 집안도 좋은 편이고 키코 비도 우등생이었다지만, 키코 비는 가쿠슈인대학 출신이며 해외 대학에 유학한 경험은 없다.[11] 가쿠슈인대학을 높게 봐줘도, 하버드 대학교이나 도쿄대학보다 수준이 높다고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미히토 친왕, 마코 공주, 카코 공주는 공부 못하기로 유명했고, 대학 입학의 배경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즉 가정 내 면학 분위기에서 게임이 안 된다.

게다가 사촌 언니들인 마코 공주·카코 공주 자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응원하는 분위기라서 더 비교되었다.[12][13][14]

그래도 아이코 공주는 초등과에서의 왕따 문제와 여자중등과에서의 불규칙 지각 문제를 극복하고 좋은 교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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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함께 진무 덴노(초대 천황)의 능에 참배했다. 이걸 본 일본인들은 아이코 공주가 너무 예뻐졌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중3이 되면서 살이 쪄보이던 얼굴에서 눈에 띄게 젖살이 빠지고 '아버지의 피가 옅어지고 점점 어머니를 닮아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아이코 공주가 눈에 띄게 살도 빠지고 외모가 성숙해지자, 일본 야후와 유튜브에는 카게무샤[15]이 돌고 있다고 한다.

방학이기 때문인지 7~8월에 황태자 부부와 같이 밝은 표정으로 공무에 나왔다. 여전히 카케무샤 설이 돌긴 하지만, 시선이 좋든 나쁘든 아이코 공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3.2. 거식증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에서는 중간고사를 치르는 시점에서 아이코 공주는 4주째 장기 결석 중이라고 보도되었다.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의 말에 따르면, 궁내청으로부터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으며 그저 "건강이 안 좋다"고만 했다고 한다. 아이코 공주는 10월 6일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는 바쁜 공무 중에도 같이 다녀왔다고 한다. 일본 여론은 지나친 다이어트로 인한 거식증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다만 거식증을 원인으로 삼기에는 무리인 것이, 아이코 공주가 결석을 시작한 것이 2016년 9월 26일부터인데, 그 직전인 9월 19일 월요일에 일본 황실의 연례행사인 벼베기 행사에 무리 없이 참석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 미치코 황후와도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며, 관련 주간지 기사에 의하면 곧 있을 자신의 생일 행사에 아이코 공주가 참석해 주기를 미치코 황후가 기대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는데, 그 후로 아무 일도 없다가 갑자기 그 다음주 월요일부터 몸이 좋지 않단 이유로 일방적으로 외출이 금지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생일에 공개된 미치코 황후의 생일 기념 메시지에는 "모든 가족들이 건강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내 줘서 다행"이라고 되어 있으면서 마코 공주에 대한 칭찬은 했다고 한다. 미치코 황후가 맏손녀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크단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아이코 공주가 아프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분명히 보고를 받았을 텐데도, 그러한 내용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가족들이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상하며, 게다가 마코 공주 외의 나머지 손주들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단 것도 이상하다.

궁내청이 특별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상태에서, 10월 21일에는 외동딸의 간호를 핑계로 마사코 황태자비의 공무까지 일방적으로 취소시켰기 때문에 궁내청에 대한 의심의 시선 역시 만만치 않다. 궁내청이 과거 친 사고에 대해서는 궁내청 참고. 특히나 히사히토 탄생 이후로 알게 모르게 구박을 받아왔던 아이코 공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키히토와 미치코 황후는 황실 내부 문제에는 보수적이라 아이코 공주를 후계자로 인식하지 않고 히사히토를 후예로 여기지만, 양위선언을 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에게는 나루히토가 후미히토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이며, 아이코 공주는 나루히토의 하나뿐인 딸로서 신경을 쓴다고 전해진다. 미치코 황후는 선물을 살 때 아이코 공주와 히사히토 것을 같이 산다고 하며, 황태자와 사이가 어색해졌을 당시 아키히토는 황태자 부부와 다시 대면하기 위해 '손녀가 보고 싶으니 같이 좀 와라'고 하는 등, 차기 천황의 하나뿐인 자식으로서 나름대로 대우를 해주고 있다.

9월 26일부터 결석하던 아이코 공주는 6주 만인 11월 8일 오후부터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위장 장애와 어지럼증을 겪었다고 한다. 아마 학업 스트레스와 주변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추정된다. 다만 스트레스성 위장 장애라면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는 병으로 언론에 알려도 문제 없는 병인데도, 언론이나 가쿠슈인에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이러다 보니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한 아이코 공주에 대한 이미지를 더 나쁘게 하기 위한 궁내청의 공작이라는 소문도 있다. 위에도 적혀 있듯 일본 황실을 담당하는 부서인 궁내청은 유독 황태자 부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유명한 데다, 어린 시절 아이코 공주가 간염에 걸렸을 때 궁내청병원이 아닌 도쿄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단 사실 하나로도 궁내청이 상당한 수준의 깽판을 놓았던 전적도 있는지라,[16] 궁내청을 향한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편 고등학교 진학이 얼마 남지 않은 11월인 데다가 황실 문제 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큰 사건들이 제법 되는지라 일본 여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이렇게 궁내청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짙어지는 와중에 궁내청은 "조금씩 회복되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 당분간 상태를 지켜 보면서 등교하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코 님은 차를 탄 채로 가쿠슈인 여자중등과 교내까지 들어가고 있습니다. 결석 전에는 학교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서 교문을 지났으니까, 역시 회복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곧 에스컬레이터식 진학[17]으로 고등학교(가쿠슈인 여자고등과) 진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코 공주에 대해 "아이코 님은 조치대학(上智大学)에 진학하길 원하는 게 아닐까"라고도 전했다. 아이코 공주의 개인교사(과외 선생님)가 조치대학 출신의 여성인데, 그 선생님으로부터 조치대학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듣고 관심을 가진다는 듯하다.

사실 2013년에 아이코 공주의 우수한 성적이 언론을 통해서 공개된 이후,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갈 거란 소문은 있었지만, 아이코 공주는 동궁의 내친왕[18]이기 때문에, 사촌 언니들인 마코 공주나 카코 공주처럼 같은 내친왕이라도 방계 황족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대학을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여론은 "지금 학교나 제대로 다녀라"라는 평이 대다수이고, 아이코 공주의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도 가쿠슈인이 아이코 공주를 지나치게 특별 취급[19]하는 것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군다나 아이코 공주는 성적이 워낙 우수한 데다, 현재 가쿠슈인에 다니고 있는 유일한 학령기의 황족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가쿠슈인 측에서는 자신들의 황족, 화족들이 다니던 학교라는 명성을 드높일 마지막 희망으로서 아이코 공주를 대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라는 가쿠슈인 학부모들의 의견도 있다. 참고로 아이코 공주가 졸업하면 아직 [age(2006-09-06)]살인 히사히토가 결혼해 자녀를 낳아서 그 자녀를 가쿠슈인에 입학시키지 않는 이상, 추가 황족 입학은 없다. 하지만 유치원 때부터 가쿠슈인을 다니지 않은 히사히토가, 자신의 자녀를 가쿠슈인에 보낼지도 미지수이다.

사실 황태자 내외는 아이코 공주에게 무언가 문제가 일어났을 때 가쿠슈인의 대응이 늦다는 점에 불만을 내비친 적도 있고,[20] 이번 장기 결석 중에도 궁내청은 아이코 공주의 증상에 대해 가쿠슈인에 상세하게 전하지 않는 등 여전히 갈등의 골이 깊은 듯 하지만, 원인이 황태자 부부의 의지가 아니라 궁내청의 농간에 의한 것이었기에, 가쿠슈인과 황태자 부부의 관계는 나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3. 위험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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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016년 12월 1일, 15세 생일 기념사진. 정말 얼굴이 반쪽이 된 것을 알 수 있다.[21]

그간 아이코 공주를 탐탁찮게 보던 일본 여론은 이 사진이 나온 이후로는 어느 정도 아이코 공주를 동정하는 분위기로 전환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미치코 황후의 실어증 사건 이후 미치코 황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줄어든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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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 분위기[22]가 새로운 화제가 되던 아이코 공주였으나, 9월 말부터 아이코 공주는 위장 장애로 인해 학교를 6주 연속 쉬었다. 그런 아이코 공주에 대해 궁내청에서는 거식증의 가능성을 지적했다. 마음 건강 클리닉 원장이자 대인관계 치료 전문을 담당하는 의사 쿠노 노부히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궁내청병원 검사에서 아이코 공주의 병명을 찾지 못했던 것은, 기능성 위장 질환 정도의 증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위장의 부진'이라는 정도의 표현을 쓴 것입니다.

거식증의 진단은 마지막 순간에 되는 것입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경우에도 설사를 하고 식욕을 잃을 수 있습니다. 혹은 같은 연령대에서 발병하기 쉬운 염증성 장 질환의 일종인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을 것입니다. 원인 불명의 내장 질환, 빈혈에서도 먹으면 설사를 하기 때문에 먹게 되지 않는 증상이 있습니다.
한편 일본 여론은 아이코 공주를 동정하거나, 여전히 차남 아키시노노미야 家와 비교하면서 아이코 공주를 힐난하거나, 이런 사단을 유도한 궁내청의 부실한 대응 조치를 비난하는 등등 여러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3월에는 일본 언론은 거식증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사실 왕족 여성이 거식증에 걸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스펜서 前 왕세자비와 스웨덴빅토리아 잉그리드 알리스 데시리에 왕세녀도 거식증을 앓은 적이 있다.

한편 날이 갈수록 아이코 공주에 대한 보도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여론 역시 전반적으로 건강 면에서 적신호가 확실한 형태로 보인 아이코 공주를 걱정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으며, 궁내청 내부에서도 나루히토 왕세자의 57세 생일 사진에 아이코 공주를 넣어야 하냐 마냐로 논란이 일었을 정도라니, 아이코 공주에 대한 근심이 황실 내에서도 큰 모양. 차기 천황의 하나뿐인 자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판국이니, 당연히 걱정이 안 될 리가 없다.

보도 내용을 보면, 아이코 공주는 타인이 보기에 굉장히 말랐는데도 활동적인 듯 하다. 문제는 말랐으면서 활동적인 것 자체가 거식증이 위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신호이며, 어느 정신과 의사는 돌연사 위험까지 언급했다. 황족에 대한 보도 내용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보도하는 풍조가 지배적인 일본 언론에서 왕세자의 무남독녀에 대해 돌연사를 언급할 정도면, 그녀의 건강 상태가 정말 심각한 것이다. 또한 이 상태가 지속되면 고교 진학 후 성적이 계속 우수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등, 생활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 아이코 공주와 친한 학교 친구들은 "아이코 공주를 지켜야 한다"며 지지해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덧붙여 지금 일본 여론과 언론에서 벌어지는 아이코 공주에 대한 태도는, 할머니 미치코 황후가 실어증에 걸렸을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1993년 미치코 황후가 실어증에 걸렸을 때, 그전까지 황후를 때려댔던 언론에서 황후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를 일제히 멈췄다. 현재 일본에서도 아이코 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동정 여론에 묻히는 중이다. 극우 세력이 너무 판쳐서 그렇지, 일본인들도 아이코 공주의 주변 상황이 사춘기 소녀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편 아이코 공주가 병치레를 하는 와중에,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하게 되면 후미히토와 히사히토는 황태자 대우를 받는다고 발표되었다.

아이코 공주는 작년 11월부터 며칠째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무 중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 듯. 아이코 공주는 식단에서 고기나 감자를 전혀 먹지 않고 방 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가, 11월 말부터 다행히 국수처럼 먹기 편한 음식을 먹지만 여전히 고기는 손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코 공주가 어릴 때부터 적응 장애와 우울증을 겪은 이유에 대해,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이 아이코 공주에게 영향을 끼친 것 외에 일거수일투족 사사건건 떠들어대고, 시비를 거는 여론과 언론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참고로 이 사건 때 정작 아이코 공주의 어머니인 마사코 황태자비는 기사의 댓글에서 별 비난을 받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어머니가 아프니 아이도 아픈 거다.'라고 하면서 아이코 공주의 병이 마사코 황태자비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상 외로 큰 비난은 없었다. 사실 마사코 황태자비의 요양이 10여 년이 넘어갈 정도로 길어지면서, 일본인들이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23] 후일 키코 비가 마코 공주와 히사히토의 교육 문제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다만 이 시기 마사코 황태자비는 딸을 위해 공무를 재개하던 시절이었고, 딸의 교육만큼은 확실히 하고 있는 상태였는 데다, 키코 비는 이전부터 자녀 교육이나 본인 인성 관련 등 여러 가지 논란거리가 많았으나 황실 유일한 후계자인 히사히토 때문에 참아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3.4. 뒤바뀐 여론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식증 사건은 아이코 공주에 대한 일본 여론이 반전되는 계기였다. 이 시기는 아직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터지기 전이었고, 대신 카코 공주의 인기가 상승하는 한편, 물 밑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의혹들은 있어도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한 여론도 나름대로 좋을 때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코 공주의 병에 대한 기사가 잇달아 나오면서 일본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여름부터 시작해 겨울까지 날이 갈수록 말라가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생일 사진을 보면 뼈만 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아이코 공주에 대한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해 근거 없이 깎아내리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생일 사진이 공개되자 그 전까지도 비난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을 바꿨을 정도였다. 극우 꼴통으로 유명한 2ch에서조차 '이것은 여기 댓글을(아이코 공주의 외모나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트집을 잡는) 봤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본 거야!'라는 말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자신들 때문에 공주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니까 좀 쫄았던 모양. 자기들도 이 정도까지 사태가 심각해질 줄은 몰랐을 거다 심지어 이 직후부터 주간지조차 아이코 공주에 대한 기사는 어느 정도 자제하게 되었으며, 아이코 공주 관련 기사의 댓글 내용도 매우 온건해졌다. 학교 상황에 대한 비난과 부정적인 여론은 그대로였어도 분명 예전 같은 비난은 아니었고, 오히려 충고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그만큼 아이코 공주가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약 1년 뒤, 아키히토 덴노의 양위 발표로 나루히토 황태자의 승계의 확정되면서 아이코 공주가 장래 천황의 외동딸로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게 확실시되었다. 그리고 불과 몇 개월 뒤, 2018년 봄부터 그간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우호 여론을 이끄는 한 축이었던 장녀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 국민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킨 코무로 케이 집안에 대한 옹호에 열중인 후미히토 일가에 매우 실망했고, 그 반동으로 인하여 황태자 내외의 무남독녀인 아이코 공주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폭발했다. 2018년 12월 들어 아이코 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찾기가 아주 힘들어졌다. 아무래도 아이코 공주에게 거식증은 일종의 성장통이자 인생의 전환기였던 것 같다.

3.5. 여자중등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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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24]

2017년 3월 22일, 가쿠슈인 여자중등과를 졸업했다.

"지난 3년 동안 학교생활이 어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코 공주는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3년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답했다.[25] 영상을 보면 살이 이전에 찍었던 사진에서의 모습보다는 조금 찐 것 같긴 하다. 물론 보기 좋을 정도로 균형 잡힌 모습이다. 이대로 자라면, 옛날에 한 미모 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많이 닮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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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졸업 작문. 제목은 [세계의 평화를 염연하며].

2017년 4월에 가쿠슈인 여자고등과로 진학하였다.

4.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4.1.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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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8일 9시,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함께 가쿠슈인 여자고등과에 입학식에 등교했다. 기자들이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라고 질문하자, 아이코 공주는 "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충실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코 공주는 봄방학 스키 여행에서 약간 그을린 모습이었고, 3월 말에 나가노현에서 스키 여행하던 영상이 공개되었다.

한편 일본 언론은 "황족을 특별 취급하지 말라"거나, '현재 황태자의 외동딸이자 졸업 무렵에는 천황의 외동딸'이라는 신분을 걱정하거나, "중학교 때의 출석 부족은 어떻게 된 거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2017년 4월 가쿠슈인 여자고등과에 입학한 이후, 아이코 공주는 5월 8일 ~16일까지 (주말을 포함해서) 8일 동안 결석했다고 한다. 5월 11일에 예정된 츠쿠바 여행도 결석했다.

4.2. 입학 이후

아이코 공주는 5월 5일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와 함께 장애인 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공무 등을 하며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아이코 공주의 결석 소식을 들은 궁내청 담당 기자는 큰 충격을 받고 "어떤 증상입니까? 의사의 진단은 뭐라고 합니까? 작년과 같은 증상입니까?"라고 궁내청 측에 질문했다. 하지만 궁내청은 "불규칙한 날씨 때문에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졌다. 그러나 독서와 음악 감상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애매한 답변만 했다.

그리고 '차라리 새로운 환경으로 유학을 가는 게 어떨까?'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결석이 잦은 아이코 공주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많다. 그렇지만 여전히 "오죽하면 그러겠냐"는 동정 여론도 만만치 않고, 공주의 우수한 성적에 대한 기대 여론도 많다.

2017년 6월 6일 등교하는 모습이 사진이 찍혀 장기결석 상태는 아니다. 8월 기준으로 거식증을 앓기 전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9월 30일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와 여자고등과의 합동 운동회에 참석해서 드리블 경기를 했다. 이 경기를 위해서 1달 전부터 연습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속 팀이 실전에서 4위를 기록하자 그 결과가 분했던 모양인지 운동장에 앉은 채로 울었는데, 이 장면이 기자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26] 참고로 해당 운동회에는 황태자 내외도 참관해서 경기를 관람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7일, 4일 참석한 겨울방학 나가노 스키 합숙에서 독감에 걸렸다고 궁내청이 발표했다. 아이코 공주는 6일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돌아왔고, 의사의 소견에 의하면 차도가 있다고 한다.

2018년에 들어 궁내청 관계자에 의하면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수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코 공주는 히토쓰바시대학, 쓰쿠바대학, 조치대학, 가쿠슈인대학[27], 국제기독교대학과 해외 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학과는 사학과, 의대, 수의대 계열을 지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변에서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대학으로 진학했으면 한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다.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난 코무로 케이와 결혼하려다 문제가 생긴 것을 계기로, 관련자들 사이에서 "아이코 공주의 남편감은 웬만한 배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가쿠슈인에서 찾았으면 좋겠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는 "가쿠슈인이 황족을 수용할 수 있는 만큼, 아이코 공주가 학교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가쿠슈인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7월 22일부터 8월 9일까지 3주간 영국의 이튼 스쿨로 단기유학을 다녀온다. 사촌 언니인 마코 공주가 먼저 영국 유학을 다녀온 만큼 해외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고 있다는 궁내청 기사가 올라왔다.

여담이지만, 사적으로 친하다고 알려진 사촌 언니인 카코 공주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을 따라해, 아이코 공주가 황족 여성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 캐주얼 스타일을 고수하고 각종 파격적인 행동을 할까[28] 여러 모로 걱정했던 마사코 황태자비는, 마코 공주와 아이코 공주가 더 친해지면서 안심하고 있다고 한다.[29]

마코 공주 입장에서는 어머니와 자신의 결혼 문제 때문에 마찰이 극심해짐에 따라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는 과정에서, 영국 단기유학을 가려고 하는 사촌 여동생인 아이코 공주에게 유학에 대해 여러 가지로 조언하면서 더욱 더 친해진 것으로 보인다.

4.3. 영국 단기유학

2018년 여름에 아이코 공주는 영국 왕족 및 귀족 학교인 명문 이튼 스쿨로 3주 간 단기 유학을 떠난다고 한다. 아이코 공주에게는 첫 해외 단독 방문으로 황족이라는 특권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잘 마치고 온다면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2018년 8월 9일 별 탈 없이 3주간의 단기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후 동궁어소 정문에서 대기하는 동안 전용 차량에 탄 상태로 기자들과 아주 잠깐 정도 대화를 나누었을 때, 아이코 공주는 즐거웠다면서 웃으면서 대답했다고 한다. 그 대답 관련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유학 전 사진보다 얼굴 살이 제법 오르고 표정도 억지가 아니라 진짜로 즐거웠는지 자연스러운 것이 보여서 말처럼 상당히 즐거운 유학 생활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유학 기간 내내 이튼 학교 기숙사에서 근접 경호원들 없이 평범하게 생활했다고 한다.[30]

유학에서 돌아오고 얼마 안 된 8월 16일부터 8월 21일까지 황태자 내외와 함께 시즈오카현 시마다시에 위치한 황실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동궁으로 돌아와서 2학기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되었다.

2018년 8월 한 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아이코 공주에게는 가쿠슈인 초등과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 남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 남학생이 아이코 공주와 친하게 지내는 동급생 여학생들과 같이 황실 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증언을 바탕으로, "이 남학생이 아이코 공주의 남자친구가 아닌가"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해당 보도에 의하면 아이코 공주와 친한 이 남학생은 조선회사 창설자 자손이며, 어릴 때는 노진구처럼 생겼으나, 지금은 그러한 모습에서 벗어나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31]

4.4. 호의적인 여론 증가

아이코 공주의 단기 영국 유학과 더불어 한국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아이코 공주는 2019년 4월에 아버지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하면 말 그대로 현 천황의 외동딸이 된 상태로, 마지막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천황의 딸인 상태에서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상당히 독특한 이력 덕분에 국내외에서 굉장한 관심이 몰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오르는 것. 일단은 황실회의를 통해서 나루히토 다음에 후미히토 일가로 후계자가 정해지면서 사실상 차기 천황 후계자는 아니어도, 황족 여자 중 어머니 다음 서열이 되는 건 확정이기에 일본 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된 상태이다.

일각에서는 어머니인 마사코 황태자비가 건강이 다소 호전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인지라, 천황 즉위 이후에는 아이코 공주가 황후가 되는 마사코 황태자비가 소화하지 못하는 공무를 대신 수행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나, 문제는 아이코 공주 역시도 마사코 황태자비보다는 덜하지만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과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거식증으로 추정되는 장애로 인하여 급속도로 마르기 시작해서, 농담 아니라 일본 언론에서 대놓고 '저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 걱정했을 정도인데, 일본 언론은 황족 관련 보도에 있어서는 되도록이면 신중하고 과격한 표현을 자제하고 최대한 빙빙 돌려가면서 표현하는 걸 감안하면 이 정도 표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그러한 상태에서 지금의 상태로 회복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이코 공주가 2019년 이후 어머니인 황태자비의 건강상 문제로 황태자비를 대신하여 단독 공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32]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있다고 한다.

마사코 황태자비도 그걸 아는지, 2018년 말부터 자신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남편과 함께 공무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한다. 실제 주치의도 지금 상황이면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고 한다. 딸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황태자 부부가 그녀의 대학 진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4.4.1. 이유

2018년 8월에 접어들어 아이코 공주 관련된 보도의 댓글들을 보면 과거와 마찬가지 부정적인 여론이 있기는 하나, 긍정적인 여론 중에는 홀로 유학을 가는 아이코 공주를 걱정하는 모습까지 있다. 부정적인 여론이라 해도 어머니처럼 비난이 아니라 "학창시절에 하도 이래저래 좌충우돌이 많았던 터라 제발 안정적인 정서와 정신으로 정석적이고 사고 안 치는 황족으로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느껴진다. 특히 사촌 마코 공주의 결혼 관련된 사건 사고가 일본 전국을 뒤흔든 이래로, 이러한 감정은 강화되고 있다. 황태자 家보다 여러 모로 더 나아보였던 차남 家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나루히토가 무사히 천황직을 승계하게 되자, 그 반대급부로 아직 성장기고 성적이 상당히 좋은 아이코 공주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상승한 것이다.

4.4.2. 원인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오래 전부터 뛰어난 외모 등으로 일본 내에서 상당한 인기 있던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대학 진학을 시작으로 학업 부분에서 심한 허점을 보여주었고,[33] 특히 황족 여자 중 제일 인기 많던 마코 공주는 이번 결혼 논란으로 인하여 일본인들 사이에서의 인기가 바닥을 쳤다. 키코 비는 공무도 열심히 하고 황실에서 그렇게 바라던 남계 후계자(히사히토)까지 낳아 평가와 인기가 급상승했지만, 근래 들어 자녀 교육 문제와 자녀 결혼 문제, 본인의 인성 문제가 겹쳐 논란이 급속도로 커졌으며, 결국 시어머니인 미치코 황후에게조차 상당한 불신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4.4.3. 아키시노노미야 家와의 비교

게다가 히사히토는 물 밑에서 과잉 보호 등에 따라서 과거 아이코 공주에 대한 의혹 이상으로 부정적인 방면에서의 의혹들이 너무 많고, 이해 불가능한 과잉보호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 언론들에도 거의 2017년 황위계승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단순 동정 관련 보도도 잘 되지 않는 데다, 2대 후 천황이 될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강력한 정보 차단으로 인하여 일본 내에서는 아이코 공주만한 기대는 볼 수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2019년 자로 사실상 황태제가 되는 후미히토는 원래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던 망나니로 황실의 아픈 손가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으나, 황실을 유일한 남계 남자 황족인 히사히토 탄생으로 인하여 일본 내에서의 평가가 올라간 자이니 거품이 빠지면서 그러한 평가가 쉽게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아키시노노미야 家는 극우와 주간지와 그리고 황태자인 나루히토를 못 마땅하게 여기는 궁내청이 어거지에 가깝게 띄워준 경향이 더 커서, 형 나루히토보다 더 인기 있다고 하긴 심히 어렵다. 히사히토 탄생으로 인생역전의 드라마를 썼지만, 실상 허울만 좋고 실속 없는 개살구에 불과한 집안임을 이번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증명하고 만 것이다.[34] 제3자 입장에서는 차남 家에 대해 부모고 자식들이고, 뭘 더 기대하고 말고 할 게 거의 사라지고 이들에 대해서 강한 실망과 분노만 상당히 많아진 셈이다.

반면 아이코 공주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좌충우돌이 상당히 많았지만, 그러한 것에 비교하면 성적도 상당히 훌륭하고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중등부 이후 자주 보도되었으며, 미래에는 차기 천황의 유일한 자식으로 황실에서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또한 궁내청과 가쿠슈인 관계자들로부터 아이코 공주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을 때조차도 "제일 황족답다"는 칭송을 받고 있었고, 뉴스 댓글에도 "기품 있다"는 말이 많이 있었다.

오히려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기품 있다는 소리를 못 듣고, 심지어 히사히토에 대해서는 "황족답게 생기지 않았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었다. 이는 황태자 일가가 뭐만 하면 깎아내리고, 후미히토 일가와 관련된 일은 사소한 것도 엄청 띄워주던 궁내청이 이런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황태자 일가의 영향력이 다시 강해진 것 뿐만 아니라, 후미히토 일가의 문제점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요약하면 후미히토 일가에 대해서 밝혀진 문제점만 그 정도라는 것. 일반인들이 모르는 곳에서는 그 이상의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나쁜 평과 히사히토 탄생 후 노골적으로 시작된 궁내청과 주간지의 후미히토 일가 띄우기로 이미지와 대우와 격에 피해를 많이 입었지만,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의 천황 승계가 확정되고 마사코 황태자비가 전심전력으로 매달린 양육의 결과가 이번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에서 마침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35] 히사히토 탄생으로 차남인 후미히토 일가에게 쏟아지던 관심과 사랑은, 각종 논란 탓에 10년이 흐르며 결혼 문제가 촉발되기 이전에도 불평불만을 뒤에서 흘리곤 했다.

4.4.4. 상황 정리

그렇게 쌓여가던 이 불만들과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겹치면서 차남 家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불평과 안 좋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후계자가 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눈감아 주던 것들이 더 이상 가려질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셈이다.[36] 거기다 나루히토가 아키히토의 이례적인 생전 퇴위를 통해서 천황직을 공식적으로 승계하게 되면서, 41년만에 태어난 남자 황족으로 화제가 된 히사히토 탄생 후 대놓고 들러리 취급을 받던 마사코 황태자비 및 황태자 내외의 유일한 자녀인 아이코 공주에 대한 주간지와 궁내청의 태도가 180도 확 달라졌다.

미치코 황후도 다음 황후가 될 마사코 황태자비에게 여러 가지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동안 어느 정도 기대감을 주고 있다고 밝히고 있었던 키코 비에 대해서 과거에 비하여 여러 가지 방면에서 문제를 일으키면서 불신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본 대중 여론들도 후미히토 일가에 대해서 굉장히 나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아키히토의 양위 발표와 나루히토의 승계가 황태자 家에 대한 기대 심리와 관심과 애정이 높아지게 만들고, 후미히토 내외와 궁내청과 극우 계열 주간지들의 기는 꺾은 차에 그동안 후미히토 내외의 호평에 크게 기여한 장녀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이 점화되면서, 반대급부로 황태자의 무남독녀이자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일본 황실 관계자들도 인정할 정도로 상당한 성적을 거둔 아이코 공주의 인기가 올라가게 된 것이다.

4.4.5. 2018년 12월

2018년 12월 1일, 아이코 공주는 17세 생일을 맞았다. 생일 기념 기사에 달린 여러 가지 댓글들을 보면, 일본인들의 호의적인 여론은 여전하고 댓글에는 과거처럼 부정적인 내용이 과반수였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호의적인 내용들이 가득한 상태이다. 내용을 보면 아키시노노미야 家, 특히 마코 공주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일본인들이 아이코 공주를 황실의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글에서 마코 공주처럼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기품 있다. 우아하다. 아름답다"는 찬사 외에도 '미소'와 '웃음'에 대해서도 칭찬이 나온다.[37] 또한 예전과는 다르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많다. 일련의 소동으로 마코 공주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 전체에게 제대로 실망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천황의 외동딸이 되고 성적 우수로 황실에 드문 재원으로 손꼽히고 있는 아이코 공주에게 옮겨간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12월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11월 3일에 있었던 가쿠슈인 여자중등과와 여자고등과의 합동 문화제인 야에사쿠라제에서 아이코 공주가 2개의 댄스를 공연했는데,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엄청 몰려와서 공연장에 패닉이 발생하는 바람에 공연이 당초보다 30분 지연되었다고. 혼란이 수습되고 나서 지연된 댄스 무대가 끝나자 현장에 있던 다수의 관중들은 큰 환호성을 날리는 등, 그녀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한다.

또 다른 일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가쿠슈인에서 아이코 공주의 인기에 대해서, 가쿠슈인 관계자는 사촌 언니인 카코 공주가 미모와 활달한 성격으로 동급생이나 상급생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면, 아이코 공주는 인망이 좋아 하급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어머니인 마사코 황태자비는 2018년 12월 9일 자신의 생일기념 문서에서 자신의 유일한 자녀인 아이코 공주가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는 게 앞으로의 인생에서 있어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보고 있으나[38], 문제는 사촌 언니인 마코 공주 결혼 관련 사건으로 인하여 세간의 황실에 대한 인식이 여러 가지로 상당히 엄격해진 상황에서, 황태자비의 말처럼 되기에는 여러 가지로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4.5. 진학 문제 및 결혼 문제

아이코 공주가 중학생 때부터 꾸준히 논란이 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가쿠슈인대학 이외의 대학 진학에 관한 문제는 사촌언니인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 탓에 아이코 공주는 "코무로 케이 같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자격조차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는 들어올 수 없는 가쿠슈인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코 공주의 2019년 1월 보도 기준으로 도쿄대학 합격 안정권에 돌입할 정도로 성적이 높아서 가쿠슈인대학 진학 요구 여론 대신 현 상황을 지켜보자는 여론이 대다수.

하지만 차남의 딸인 마코 공주와는 달리 아이코 공주는 2019년 아버지 나루히토의 천황 즉위 이후에 3년 가량이 지난 2021년에 들어와서야 만 20세 성인이 되기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결혼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보여지며, 평소에도 신중한 편인 나루히토나 마사코 황태자비의 성격상 아이코 공주의 결혼과 관련해서는 2018년에 어머니 히사코 비의 지인과 결혼하게 된 아야코 공주처럼 엘리트 집안인 마사코 황태자비의 지인들 중 하나를 소개받아 이루어지게 될 가능성 혹은 궁내청이 보유하고 있는 부마 리스트[39]를 참고해서 적당한 인물과 결혼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2019년 4월 보도를 통해서 일본 황실 차원에서 이미 아이코 공주의 부마 후보들에 대해서 조사 등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부마 후보는, 구 황족들 중에서 현 황족들과 가장 가까운 히가시쿠니 가문의 두 남자아이라고. # 두 사람은 아이코 공주가 천황이 될 경우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여계 천황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에,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들 중 하나와 결혼할 것으로 보여진다.

4.5.1. 공개된 우수한 성적

2018년 12월 기준으로 아이코 공주의 성적은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문과 특별 진학 클래스에 소속되어 학년 탑급에 달하는 성적을 내고 있고, 아이코 공주가 마음만 먹으면 도쿄대학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평가를 주변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전에 아이코 공주의 성적이라고 언론 등을 통해서 공개된 편차치 72[40] 정도로는 도쿄대학 1차 커트라인에 걸리기 때문에, 2018년 말에 접어들면서 편차치가 도쿄대학 합격 안정권에 속하는 편차치 80 이상[41]으로 오른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2018년 여름 당시 일간지 보도에서는 아이코 공주의 대학 입학처로 거론한 곳은 그녀의 학교 성적상 소케이조치라 불리는, 일본 3대 사립대학 중 하나인 조치대학과, 국공립 명문으로 꼽히는 구 관립대학쓰쿠바대학히토쓰바시대학으로, 도쿄대학 커트라인에 아슬아슬한 수준이었으나 이후 그녀의 성적이 올랐다는 걸 의미한다.

우수한 성적이 처음으로 밝혀진 초등과 고학년생일 때부터, "황태자 부부가 40여 년 만의 남계 황족인 히사히토와 차기 황위 경쟁을 하려고, 아이코 공주를 도쿄대학에 보내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만약 아이코 공주가 진짜 도쿄대로 갈 경우, 히사히토는 어머니 키코 비로부터 지금보다 더욱 심하게 들볶일지도 모른다. 또한 새로 천황에 오르는 아버지 나루히토 황태자에게는 상당한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5월 아버지 나루히토의 천황 즉위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아이코 공주의 대학 진학에 대해서 일본인들의 관심이 지금보다 더 집중될 것으로 보이며, 본인도 이를 아는지 아이코 공주도 2018년 하절기 방학기간 중 영국 단기유학 이후 공부에 더욱 더 열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로 2018년 11월 학원제를 앞둔 시기에도, 학원제에서 보여줄 댄스 연습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바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할 정도로, 주변인들이 아이코 공주의 건강을 염려할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8년 12월에는 단어장을 보면서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코 공주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5. 황태자의 딸에서 천황의 딸로

2월 23일 나루히토 황태자는 자신의 59번째 생일 기자회견에서 "아이코 공주가 영국 이튼 스쿨에서의 어려운 경험이나 교토에서의 수학여행 등을 통해 세계관이 넓어지고 성장했으며, 대학 진학 등에 있어서 아이코 공주의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부모로서 상담을 하며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평소에도 신중하고 냉철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나루히토 황태자 부부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진 의견이었다.

도쿄대학 진학 안정권에 접어들고 마코 공주에 이어 카코 공주까지 결혼 상대 논란을 일으키자, 히사히토를 제치고 아이코 공주의 즉위가 대놓고 거론될 지경에 이르렀다. 일단 키코 비와 후미히토는 히사히토를 가쿠슈인보다 훨씬 상위로 보낼 계획이며, 정황상 도쿄대학으로 보낼 생각이지만[42] 현 상황에서 히사히토가 도쿄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정입학밖에 없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3월 17일 아카사카 어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천황 내외 결혼 축하 기념 행사에서, 아이코 공주는 사촌 남동생이자 2019년 5월 1일자부터 천황 서열 계승 순위 3위가 되는 히사히토와 함께 천황 내외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 아이코 공주의 꽃다발을 받은 할머니 미치코 황후는 기뻐하며 눈물을 보였다.[43]

3월 25일부터 황태자 내외와 함께 정양을 위해 나가노현에 머무르기로 했다.

4월 1일 신 연호가 레이와로 공개되면서 5월 1일 이후부터는 레이와 치세 천황의 외동딸이 된다. 일본 내부에서 구황족 부활에 부정적인 대신 여성 천황이나 여계 천황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강하며, 이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조차도 2019년 3월 20일 국회에서 구황족 부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변을 했기에 언론들 사이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신 천황 등극 이후 나루히토가 원한다면 여성 미야케 창설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 사실 여성 미야케 창설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 준황족이 되는 부마의 자격 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다. 이걸 해결하기 전에는 여성 미야케 창설을 두고 여러가지 말이 나올 것이고, 종국에는 이러한 것들이 천황제 폐지론을 더욱 더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4월 3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조만간 신 천황이 되는 부모님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진 것인지 황태자 내외가 외국 귀빈들을 아카사카 어소로 초빙하면 아이코 공주도 참석해서 귀빈들과 통역 없이 대화하는 장면이 자주 보이기에, 주변에서 "아이코 공주도 (예전 마코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성년이 되기 전에 단독 공무를 하는 게 아닌가"라는 기대 섞인 우려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도 5월 1일자로 천황의 유일한 자녀가 되는 아이코 공주가 공무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 "성인이 될 때[44]까지는 공부에 전념해 주었으면 한다"는 우려가 쏟아내고 있다.

2019년 4월 한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2019년에 들어와서 아이코 공주가 지각하거나 아예 학교를 쉬는 날이 대폭 늘어났다고 하는데, 어머니인 마사코 황태자비의 건강 상태가 차기 황후가 되는 데에 대한 강한 압박감 때문에 나빠짐에 따라서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보도 이후 공식 행사 등에 황태자비가 계속 참석하고 있고, 아이코 공주도 보도 이후 황궁을 방문하는 사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고, 가쿠슈인 재학생들도 아이코 공주의 건강에 대해서 별다른 말이 없는 걸 감안했을 때 "수세에 몰린 후미히토 파가 또 다시 황태자 일가를 건들려고 허위사실을 다시 유포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숙청의 씨앗을 만드는 후미히토 일당들

2019년 4월에 아이코 공주가 지난 나가노현 요양 과정에서 스키를 탄 영상과 사진을 궁내청이 정식으로 공개했다. 그런데 자료 공개 시점이 주간지에서 마사코 황태자비와 아이코 공주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던 시점이라서, 일본인들은 "아이코 공주를 음해하는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한 공개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5.1. 레이와 시대

2019년 4월 30일 아키히토 덴노의 생전 퇴위 행사가 열렸다. 아이코 공주와 히사히토는 미성년이라서 오후까지는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저택에서 대기[45]하다가, 퇴위 의식이 끝난 후에 아카사카 어소에서 나와서 황궁으로 가서 아키히토 내외에게 인사했다.

아이코 공주는 황궁으로 진입할 때 만면에 미소를 띄면서 황궁 입구에서 지켜보는 일본 국민들에게 손을 들어서 인사했다. 비슷한 시기 황궁에 들어간 히사히토의 경우 이러한 인사 없이 무표정으로 정면만 바라보면서 황궁으로 들어간 것과 대비되는 모습. 하지만 당시 히사히토에게 불과 얼마 전에 괴한이 자신의 교실 책상에다가 식칼로 만든 창 같은 물건을 올려둔 사건이 있었기에, 가뜩이나 소극적인 성격인 히사히토가 더욱 더 위축된 것으로 보고 일본인들은 그렇게까지 히사히토를 비난하지 않았다.

2019년 5월 11일 고쿄 내 후키아게고쇼[46]에 있는 상황, 상황후 내외[47]를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여 저녁 식사를 했다.

한편 레이와 시대 이후로도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가 질질 끌면서 계속해서 코무로 케이의 문제들[48]이 언론들에 의하여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반감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이 와중에, "아키시노노미야 일가는 신 천황 내외가 해외 공무를 하기 전에 각각 해외 공무를 하게 될 예정"이라고 궁내청이 정식 발표하는 순간,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서 공무라는 핑계로 해외로 나가는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비난이 폭주하는 동시에 이와 반비례되듯 아이코 공주의 여왕 계승의 찬성 여론이 80% 이상 넘어간다.[49] 이는 복수의 언론에서 동일한 내용의 여론 조사 결과라서, 이러한 조사가 처음으로 나왔을 때 언론조작 운운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던 극우들은 할 말을 잃은 건 덤.

2019년 6월 초 나온 기사에서 한 황실 전담 기자는 여전히 친구들과 사이가 좋은 아이코 공주는 주변을 향해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등, 부모의 신분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 전과 다를 바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상황 내외가 황실의 정통성을 잃지 않기 위해 새 천황의 외동딸인 아이코 공주를 여성 천황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치코 상황후는 아이코 공주의 의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며, "만일 아이코 공주 본인이 황위 계승을 바란다면 충분한 교육과 공무 경험을 쌓고 난 후에 황위 계승을 논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바로 아이코 공주를 황태녀로 인정하는게 아니라 일단은 성인이 되고 나서 한동안 공무 등을 통해서 아이코 공주의 의사를 확실하게 확인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안정적인 지지를 얻도록 하여,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아이코 공주를 황태녀로 삼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 황실의 상황을 감안하면 미치코 상황후의 발언대로 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아이코 공주가 성인이 되자마자 황태녀가 되지 않으면 현재 공백인 황태자 자리는 후미히토 일가에게 넘어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게 될 경우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에 대한 불신이 폭발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천황제 무용론이 대대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반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반대로 아이코 공주를 최대한 빨리 황태녀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2019년 6월 29일 보도에 의하면 아이코 공주는 문과 클래스에서 학년 톱을 항상 맡아서 하고 있으며[50], 9월 대학 진학에 가장 중요한 시금석이 될 실력 테스트[51]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종전 보도와 마찬가지로 아이코 공주의 성적으로 도쿄대학도 어렵지 않기에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외부 진학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건 아이코 공주의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2 때 도쿄대 진학 전문 클래스에 소속되지 않았기에 아마도 가쿠슈인대학 진학 후 부모님처럼 해외 유학[52]을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듯하다.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일본 황실과 궁내청은 아이코 공주를 내부진학을 통해, 황족 및 귀족 전용학교로 명성이 자자한 가쿠슈인대학에 보내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아이코 공주 이전에 아키시노노미야 3남매가 가쿠슈인이 아닌, 다른 학교에 다니면서 많은 문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코 공주와 카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에 진학하면서 온갖 문제들을 터트렸고, 히사히토 친왕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중학교에서 암살 미수 사건을 당했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황실과 궁내청은 황족이 가쿠슈인이 아닌 타학교에 다니는 것에 대해 많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두 공주는 외부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다. 애시당초 공주 자매가 받은 가정교육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사히토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서는 온갖 의문점들이 많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자작극 운운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외부대학 진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찌 보면 아키시노노미야 가문 때문에 계속 아이코 공주를 가쿠슈인대학으로 보내려고 궁내청이나 일본 황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키코 비후미히토가 아이코 공주의 앞길을 막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이코 공주는 인성 및 성적 논란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데다, 부모인 나루히토 덴노 내외 역시 흠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별다른 논란이 없다. 때문에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대학이 아닌 타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의 자녀들과 달리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터넷 여론은 대체적으로 "아이코 공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히사히토의 사건을 주로 들면서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냥 가쿠슈인대학으로 내부 진학하는 게 더 낫지 않냐"는 의견이 상당한 편인데, 이는 히사히토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코 공주가 도쿄대를 가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이 상당히 강했던 걸 감안하면 사건의 여파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코 공주의 선택이라 그 누구도 억지로 가쿠슈인대학 내부진학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2018년 가쿠슈인 여자고등과에서 가쿠슈인대학이나 가쿠슈인여자대학 외의 타 대학에 지원하는 비율은 대상자의 3분의 1 정도이며, 여기에서 도쿄대학으로 진학하는 데 성공한 학생은 3명이라고 한다.

이후 추가적인 보도에 따르면 마사코 황후는 외교관 출신이기 때문에 외국어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아이코 공주에게 영어를 철저하게 교육시켰다고 한다.[53] 현재 아이코 공주는 통역 없이 영어로 외국인들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이며, 영어 발음은 영국 유학 등을 경험해서 상당히 유창한 편인 아버지 나루히토 덴노조차도 "아이코가 나보다 더 영어를 잘 한다"고 할 정도로 수준급이라고 한다.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서 나루히토와 마사코 황후가 새벽까지 책을 놓지 않는 아이코 공주를 재우느라 힘들어 했다, 한자를 외우려고 노트북에다가 100번 이상 쓰기를 하고 있다거나, 항상 한자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바로 사전을 찾아보며 공부한 덕분에 국어 실력이 상당하다는 궁내청 관계자의 증언이 나왔다.

아이코 공주의 동급생들은 아이코 공주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며 잘 따르고 있다. 고2 수학여행 당시 다른 학생들의 생각과 의견을 듣거나 방문할 장소를 꼼꼼하게 조사해서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등 다른 반 학생들에게 '도시[54]의 반이어야 했다'는 말이 나오는 등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였다. 또한 영국 단기유학 당시 현지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했고, 현지에서도 같이 유학 온 일본인 학생들과 현지 학생들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고 전해질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보도에 일본인들은 "역시 천황의 피를 짙게 이어받은 아이코 공주야말로 천황에 어울리는 재목이다"라거나 "빨리 성인이 되셔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으로 천황이 가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는 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8월 1일 보도에 의하면 지난 7월 23일 페루, 볼리비아에서 귀국한 마코 공주가 나루히토, 마사코 황후에게 귀국보고 겸 인사를 하기 위해 아카사카 어소 내 저택[55]을 방문했고, 이 자리에 동석한 아이코 공주에게 해외 공무를 하면서 있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해주느라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20분가량 늦췄다. 황실 기자들에 의하면 아이코 공주가 이 자리에 동석하게 된 것은 "언젠가 해외 공무를 나서야 하는 아이코 공주가 여러 번 해외를 오갔던 마코 공주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 마사코 황후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으로, 아이코 공주는 마코 공주의 남미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8월 1일 밤부터 아버지 나루히토, 어머니 마사코 황후와 함께 정양을 위해 시모다 황실별장을 방문했다가 5일 도쿄로 돌아왔다.

8월 2일 아이코 공주가 여름방학 전 학교에서 진행하는 외부대학 진학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기에 가쿠슈인대학으로 내부진학을 사실상 결정한 게 아니냐는 여성지 보도가 나왔다.

가쿠슈인 관계자는 "아이코 공주가 특별 진학 클래스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도쿄대학을 지원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의 의견이 많았다. 때문에 이번 내부진학에 상당히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궁내청 관계자는 "황실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아이코 공주에게 마사코 황후가 "폐하와 같은 경험을 해야 한다"며 외부 대학 진학보다 내부진학을 권유했다"고 전했다.[56]

황실 전담 기자의 후속보도에 의하면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등 일본사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아버지 나루히토 덴노처럼 사학과 진학을 검토하고 있다는 듯하다. 내부 진학 결정 과정에서 마사코 황후가 아버지인 나루히토 덴노와 같은 경험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으로 보아 아이코 공주도 아버지처럼 대학 진학 후 해외 유학도 갈 가능성도 높다고 밝히고 있는데, 아마 해외 유학을 가게 된다면 어머니가 다닌 미국 하버드대학보다 영국 왕실과의 교류 등을 감안하면 아버지가 2년간 유학을 갔다 온 영국 옥스퍼드대학이 될 가능성도 높다.

8월 19일부터 8월 28일까지 열흘 간 나스의 황실 별장에서 아버지 나루히토, 어머니 마사코 황후와 함께 공식 정양을 위해 체류하였다.

2019년 8월 19일 아이코 공주는 아버지 나루히토와 같은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국제사회과학부를 지망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미 이미 학교 내에서 아이코 공주와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학생들도 국제사회과학부에 지원했다는 소리가 나온 걸로 봐서, 사실상 확정적인 걸로 보고 국제사회과학부에 진학하려고 하는 학생들이 대폭 늘어났다는 내용도 있다. 아이코 공주 또래 가쿠슈인 학생들은 단순한 학교 친구들이 아니라 중학생 시절부터 철저히 공주의 파벌로서 지원해줬으며, 어느 정도는 황실 권력 다툼과 연관된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이코 공주가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쿠슈인대학 국제사회과학부는 4주 이상 해외연수가 졸업 조건일 정도로 영어교육에 상당한 힘을 쏟고 있는 학과에, 국제 교류/친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학과이기도 하다. 학과를 선택한 배경에는 아이코 공주는 어머니 마사코 황후가 외교관으로서 활약한 모습을 동경하여 외교관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수 년 후 성인 황족이 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단독 공무에 나서야 하는데, 국제사회과학부 진학이 단독 공무 특히 해외 요인들을 맞이하는 중요한 공무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공무 요령을 알고자 논란은 많아도 공무에 익숙한 마코 공주의 조언을 따로 듣기도 했다. 이런 활동 등을 통해서 종국에는 현 황실전범에 금지된 여성 천황[57]을 없애서 자신이 천황 자리에 오르기 위한 기초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라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2019년 9월 6일 여성지 보도를 통해 아이코 공주와 가쿠슈인 초등과 때부터 친하게 지낸 남학생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더 나왔다. 이 남학생은 도라에몽노진구 같은 인상이었지만, 현재는 185cm 정도의 큰 키에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와 닮은 미소년이 되었고, 항상 아이코 공주와 여름 요양 때 찾아오는 5명의 친구들 중에서 유일한 남자인 동시에 유독 아이코 공주와 친해서 연인처럼 보이는 등 마사코 황후는 둘을 두고 "공인된 사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이쪽도 편차치 74 정도 되는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한 우등생이며, 아이코 공주와 성격이 많이 닮았다는 듯하다.

다만 그렇다고 이 둘이 결혼한다는 보장은 없다. 사회의 일반인들 중에서도 학창 시절 연인이었지만 결혼까지 가지 않은 경우는 흔하며,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간의 권력 다툼 문제 때문에 아이코 공주의 천황 즉위를 위해서는 구황족과의 결혼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물론 아이코 공주도 다른 공주들처럼 평범하게 혼인하고 하가(下嫁)할 생각이라면, 동급생과 연애하거나 결혼해도 별 상관은 없다. 다만 아이코 공주는 몇년동안 지속된 마코 공주의 결혼 논란과 그로 인한 국민들의 극심한 반발로, 황실의 존립까지 뒤흔들리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기 천황 자리를 노리는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결혼까지 생각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아이코 공주를 중학생 때부터 도와주면서 대학 진학까지 함께 하는 동급생들처럼 사회적으로 성공해 정치적으로 도와준다면 모를까. 아니면 이 남자가 구 황족 가문 혹은 구 화족(귀족) 출신자라면 그나마 결혼 가능성은 있으나[58] 과거 보도에 의하면 해당 남자의 가문은 일본의 조선소 창업주 가문이라는 것 이외에는 보도가 없던 걸로 봐서는 결혼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한편 2019년 10월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어머니 마사코 황후와 함께 부모의 언쟁으로 아카사카 고쇼로 피신해온 사촌 언니 카코 공주를 말 없이 위로해주고 있다.

2019년 11월 주간지 보도에 의하면 미치코 상황후의 생일 파티에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사촌 동생이자 잠재적 천황 경쟁자인 히사히토에게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몸을 움직여보자"면서 1,000번 가량의 펑고를 같이 하면서 히사히토의 스트레스를 건전한 방향으로 풀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한다.

이 2가지 보도 이후 일본 여론은 그야말로 역시 천황의 재목은 후미히토나 히사히토가 아니며, 아이코 공주야말로 미래의 일본 황실을 천황으로서 이끌고 갈 능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히사히토가 누군가로부터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 초등과 3학년 때 잠자리에 대해서 글을 쓴 게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아이코 공주에게 해당 작문을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한편 자신의 잠자리 관련 작문을 첨삭, 지도해달라고 부탁했고, 그 덕분인지 몰라도 히사히토의 해당 작문은 한 대회 중등부에서 도쿄도 중등부 부분 가작으로 입선할 정도라고.

6. 가쿠슈인대학

2020년 1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일어일문학과에 내정되었다. 한편 아이코 공주의 대학교 및 학과 진학후보처 중 일어일문학과는 없었기에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후 추가보도에서 아이코 공주가 사학과와 국제사회과학부 대신 일어일문학과를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일본의 고전과 자신의 뿌리를 탐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0년 들어와 부모의 공무에 따라나서기 시작하면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2020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시기에 맞춰서 단독 공무를 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닌가 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2020년 2월 21일 궁내청은 공식발표 자료를 내고 아이코 공주가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일어일문학과[59]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

2020년 3월 22일 도쿄 올림픽 1년 연기에 따라 순식간에 상황이 악화되어 축소된 가쿠슈인 여자고등과 졸업식에 혼자 참석한 아이코 공주는 마스크를 쓰고서 기자들에게 또렷하게 소감을 밝혔고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학급 친구들과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귀가했다. 이후 황궁을 방문하여 선대 덴노들에게 졸업을 보고하였다. 참고로 아이코 공주의 고교 졸업 논문 주제는 헤이안 시대 문학에 나오는 고양이, 개, 사람들 간의 관계성에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2020년 4월, 원래대로라면 가쿠슈인대학 입학식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하여 취소됐다.

2020년 5월 말 기준으로 제2외국어로 스페인어를 선택했다고 보도되었다. 아이코 공주는 가쿠슈인 초등과 저학년 무렵 6개월 정도 아버지 나루히토와 함께 스페인어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2020년 10월 24일, 가쿠슈인대학에 첫 등교를 했다.

2021년 12월에 성년이 되는 도시노미야 아이코 내친왕의 티아라가 궁내청 예산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게 3월 27일에 한 언론사의 특종보도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서 여러가지 억측들[60]이 인터넷 등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이코 공주의 고모인 구로다 사야코도 성년 때 궁내청 예산이 아니라 덴노 일가/황태자 일가가 사용하는 내정비를 이용해서, 티아라를 만들었던 전례가 있기에 아이코 공주도 이러한 고모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 해당 보도에 대한 궁내청 등의 공식 발표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 네티즌들은 코무로 마코 부부에게 쓸 돈으로 티아라를 제작하라는 의견과 코로나 시국이기에 경제가 안좋아 할머니어머니가 그랬던것처럼 다른 황족이 쓴 티아라를 물려받지 않을까라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는 상황이다.

2021년 11월 궁내청은 아이코 공주의 20세 성년 의식을 생일인 12월 1일이 아니라 12월 5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하였다. 12월 1일은 평일이라 아이코 공주의 대학 생활도 있고 해서, 휴일인 5일로 연기했다고. 그러나 대부분 국민들은 아이코 공주의 생일 하루 전날이 아이코 공주의 작은 아버지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생일인데 문제는 올해는 국민들 과반수의 의견을 완전히 묵살하는 걸 넘어서 언론 탄압 수준으로 찍어누르고서 후미히토 친왕의 장녀 코무로 마코의 결혼을 강행했으며 일반인이 되고 나서도 엄청난 수준의 특혜들을 남발하도록 묵인, 방조를 넘어서 적극 협력하고 있는 후미히토 친왕의 생일 회견에서 이에 대한 질문들이 나올 게 당연하고 후미히토 친왕의 성격상 코무로 마코 수준의 문제성 발언을 할 가능성이 높아[61], 언론들이 이걸 중심으로 보도할 경우 다음 날 아이코 공주의 성년의식이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높기에 뒤로 미룬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21년 11월 16일, 궁내청은 아이코 공주의 성년의식을 12월 5일에 하기로 결정함과 동시에 성년의식에 사용할 드레스는 새로 제작하되 티아라는 아이코 공주의 고모인 구로다 사야코가 소유하고 있는 티아라를 아이코 공주의 머리 사이즈에 맞게 수정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사야코의 티아라는 당시 덴노 부부의 사비용으로 마련해준 것이라서, 사야코의 사유재산이다. 이걸 궁내청에서 가져가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으나, 현행법상 일본 황실은 민간 재산을 가지고 오는 게 원칙적으로 매우 힘들기에, 궁내청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발표할 때 사야코의 티아라를 '빌려서' 사용한다고 밝혔다.[62]

이에 대해서 일본 내에서는 방계 황족[63]에서 일반인이 된 코무로 마코에게 막대한 비용[64]을 지불해놓고서는 정작 덴노의 유일한 자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에게는 돈 아끼는 저의가 뭐냐면서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이코 공주의 푸대접은 극우 자민당 정권이 아키히토 상황의 차남인 후미히토 친왕이 낳은 히사히토 친왕으로의 남성 황족으로의 계승[65]을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스가 요시히데 정권 시절에 황실 관련 유식자 회의에서 참석한 전문가들 대부분이 과거 황태자비 시절 마사코 황후를 비방중상하는 동시에 후미히토 일가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친화적인 발언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들이 황실 전문가들로부터 추가 의견 청취를 받을 때에도 초청된 황실 전문가들 중에서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 하나가 아이코 공주 관련 언급을 했음에도 현장에서 해당 발언을 제지당하고 의사록에서 의도적으로 해당 내용이 삭제하고도 당시 내각은 이러한 조치를 한 것에 대해서 언론측에 여러가지로 헛소리를 늘어놓는 등 대놓고 정권 차원에서 아이코 공주의 덴노 등극 여론 생성 자체를 거부하는 현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내청 발표에 의하면 티아라 신규제작 포기 부분은 아이코 공주가 직접 요청한 부분으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상황[66]을 고려하여 내린 결정으로 덴노 부부도 이에 동의했다고 한다. 또한 만찬회와 축하연회 등의 축하행사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생략하는등 성인식 자체를 최대한 축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궁내청의 발표에도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그동안 궁내청이 한 짓거리가, 특히 최근 코무로 마코의 복합성 PTSD[67]를 이용해서 대다수 국민들의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 반대 여론들을 허위사실에 기반한 '비방중상'으로 취급하면서 황족 신변보호를 이유로 궁내청 등이 대대적인 언론 탄압을 가하거나 아키시노노미야 가문도 오래전부터 주간지 등을 통해서 코무로 케이와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뿌리면서 정작 결혼 후에 보여준 행보는 결혼 반대가 아니라 결혼시키기 위한 연막이였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등, 앞뒤가 다른 행동들이 많았기 때문.

여담으로 아이코 공주의 티아라가 기존에 궁내청이 보유하고 있는 소유자가 상실[68]된 티아라들이나 키코 비가 보유한 2개의 티아라[69] 중 하나가 아니라 굳이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티아라를 빌린 이유는 바로 격식 문제가 있다.

현재 궁내청이 보유한 티아라는 대부분 친왕비 티아라 아니면 결혼으로 하가한 방계 여성황족들의 티아라가 대부분인데, 직계인 덴노의 딸이 쓰기에는 격식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남자였다면 황태자가 되었을 아이코 공주임을 감안해서 황태자비 티아라를 쓰라고 하기에도 여러모로 이상하다. 하지만 아이코 공주의 고모인 구로다 사야코의 티아라는 처음부터 덴노의 딸로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현 덴노의 딸인 아이코 공주가 쓰기에는 여러가지로 딱 맞는 티아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16일 궁내청 발표 이후 각지에서 쏟아진 항의 때문인지 몰라도, 궁내청은 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어디까지나 구로다 사야코의 티아라는 빌린 것이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는 아이코 공주를 설득해서 사야코의 티아라를 돌려주고 아이코 공주 전용 티아라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년 황족이 된 12월 1일에 감상을 올렸는데, 일본 국민들은 전문을 보고 감동이라는 반응이 많다.#

일단은 12월 5일 성년의식을 거행하는 건 현재 일본에서도 코로나 신종 변이가 발견된 상황 속에서도 유지될 예정인데, 이는 이미 해당 의식이 코로나 감염 방지를 위하여 최대로 축소했기 때문에 굳이 연기할 필요는 없는 걸로 보여진다.

2022년 5월 기준으로 아이코 공주는 덴노 내외에 대한 코로나 전염을 우려하여 등교를 자제하고 온라인 수업 위주로 활동하고 있어서, 사실상 가쿠슈인대학에 간 건 입학 반년 후 학교를 둘러본 게 전부라고 한다.하지만 아키시노노미야 부부가 여러가지로 비판 속에서 강행한 이세 신궁 방문을 계기로 덴노 내외도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등 황족들의 원격 공무를 해제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하면서 아이코 공주도 등교 및 직접 공무가 시작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2022년 11월 5일 황궁에서 열린 황실 악단 연주회에 사촌언니 카코 공주와 동반 관람을 하면서 성인이 된 이래로 최초로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1] 2~3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이들 중 하나는 가쿠슈인 초등과에서 이미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걸로 악명이 자자한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2] 나루히토가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코 공주를 강한 어조로 설득했다는 것으로 보아, 바쁜 상황에서 딸과 최대한 대화를 하면서 등교를 독려했던 것으로 보인다.[3]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궁내청에 요구해서 뛰어난 실력의 서예 강사를 정식으로 초빙해서 배우게 했다고 한다.[4] 성적에다 정규분포를 따를 때 백분위 약 98.61%. 전국 상위 1.39%라는 뜻이다.[5] 사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발음을 어느 정도만 맞춰 주면 잘 알아들으며 딱히 이상하게 보지는 않으나, 끝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의 특성상 일본인이 영어권 원어민과 유사한 발음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일이다.[6] 어머니가 전직 외교관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다만 어머니는 이과 과목을 상당히 잘했다.[7] 사촌 언니 마코 공주는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를, 칠촌 고모 쓰구코 공주아야코 공주는 각각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부, 죠사이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를 졸업했다. 쓰구코 공주는 가쿠슈인여자대학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그 역시 중퇴하고 와세다대학에 입학했다.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다니던 사촌 언니 카코 공주도, 중퇴하고 국제기독교대학 예술과학과에 입학했다.[8] 아이코 공주의 외할아버지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는 하버드 대학교, 뉴욕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 도쿄대학에서 교수로 일했고, 다른 곳도 아닌 ICJ 재판소장을 역임했으며(2009 ~ 2012), 2018년까지 ICJ 재판관을 역임하고 있을 정도로 세계 법학계 최고 권위자 중 하나다.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는 하버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도쿄대학도 다녔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수재 중의 수재. 외할머니 오와다 유미코(小和田優美子)와 큰이모 이케다 레이코(池田禮子)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작은이모 시부야 세츠코(澁谷節子)는 도쿄대학 출신이다.[9] 정치계에서 세습이 심하게 일어나는 것을 고려할 때, 마사코 황태자비가 나루히토 황태자와 결혼하지 않고 계속 외교관으로 일하며 업무를 보통 수준 정도로만 해냈어도, 일본 외교계·정치계의 중역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관계의 세습이 얼마나 심하냐 하면, 일본과 외국이 공인하는 함량 미달 정치인 아소 다로도 가문의 후광으로 의원과 수상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그 외에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같은 정치인들이 직접 세습으로 유명하다. 순국칠사묘 따위의 흉물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10] 도조 히데키기시 노부스케(56, 57대 일본 총리)가 친분이 있었고, 기시 노부스케의 동생은 사토 에이사쿠(61, 62, 63대 일본 총리)이며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가 그 유명한 아베 신조(90대, 96대, 97대(재임 중) 일본 총리)이다.[11] 키코 비가 공무와 육아를 하면서 석사과정(가쿠슈인대학)과 박사과정(오차노미즈여자대학) 공부까지 병행한 것은, 학구열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열등감 때문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키코 비의 박사학위 논문은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지 않고, 오차노미즈 여대에서도 비공개(열람 금지)라서, 그에 대한 말도 많다고 한다.[12] 마코 공주가 아버지 후미히토와 같이 공무에 나오면 '어른스럽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런 댓글들뿐만 아니라 "어떤 모녀와 비교된다!!"는 내용도 있다.[13] 카코 공주가 올해는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공무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는 대부분 이해한다는 반응들이었다. 실제로 카코 공주가 작년에 언니 마코 공주를 대신해서 엄청난 공무량에 시달렸지만 너무 아이코 공주와 비교된다.[14] 근데 이게 정작 마코 공주나 카코 공주에게 여론이 우호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마코 공주가 국제기독교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겠다고 하자, "나는 돈이 없어서 석사과정도 때려쳤는데, 황족들은 놀면서도 세금으로 박사학위 딴다!"며 비난하는 반응이 더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두 공주의 어머니인 키코 비에 대해선 "키코 비는 늘 돈이 없다고 하면서도 뒷돈으로 대학을 보내고, 뒷돈으로 학위를 따게 한다!!"고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아이코 공주가 자신의 두 사촌 언니 마코 공주, 카코 공주나 사촌 남동생에 비해 넘사벽으로 공부를 잘해서, 이들 후미히토네 3남매가 국민들에게 무진장 까이기도 한다.[15] 원래 과거 일본에서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가짜 군주'로, 군주와 닮은 사람을 선정하여 진짜 군주 대신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위장 대역이다. 요즘 식으로 하면 대리인.[16] 그런데 정작 아키히토 덴노가 비슷한 시기에 궁내청병원이 아니라 도쿄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궁내청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 때문에 아키히토가 가까운 궁내청병원을 놔두고 도쿄대학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과 해당 일이 전해지자 '얼마나 궁내청병원이 돌팔이면 죄다 도쿄대병원만 믿고 있냐'고 디스했다고 한다.[17] 일본의 명문 사립학교 재단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전 과정을 갖추고 있어, 한번 입학하면 별도의 수험 없이 쭉 상급 학교로 진학할 수 있다. 이를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이라 한다. 가쿠슈인도 그러한 사립학교 재단 중 하나다.[18] 천황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한다. 남자는 친왕/왕.[19] 게다가 그 특별 취급이라는 게 히사히토 친왕처럼 떠받들어주는 특별 취급이 아니라, 단순히 황족이란 이유로 이런저런 제약이 크다는 의미인 듯 하다.[20] 대표적인 사례가 초등과 시절 이지메 사건. 이때 가쿠슈인은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21] 한편 중학교 입학 이후 아이코 공주의 얼굴에서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의 얼굴이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22] 사실 본문 기사에는 활달한 분위기가 아니라 훤칠한(?) 분위기라고 되어 있다.[23] 실제로 댓글들을 보면, 비난하고 뭐라뭐라 해도 "오랫동안 아프니 어쩔 수 없다"는 투가 가득하다.[24] 파일:external/blogimg.goo.ne.jp/6734de28277d7af8f73851e92b1d575e.jpg 입학할 때와 졸업할 때의 비교.[25] 아이코 공주의 입장에서는 분명 사실이다. 중학교 3년 동안 우수한 학교 성적에, 외모까지 수려해지는 등 대외적 이미지를 크게 개선시켰기 때문이다. 여러 모로 자신의 인생에서 크게 득이 되는 시간이 되었을 것.[26] 당시는 아이코 공주에 대한 언론 등의 여론이 대체적으로 안 좋았던 시기였기에, 이 사진을 올려놓고 왜 우냐고 대놓고 아이코 공주를 비난하는 언론사도 있었다.[27] 의대수의대는 없다. 물론 이학부는 있다.[28] 카코 공주 항목을 보면 알지만 카코 공주의 과거 행적들은 일본의 황족 여성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사람으로 유명하다.[29] 한편 이런 보도가 카코 공주의 자유분방함이 일본 황실에서 얼마나 파격적인지, 마코 공주의 과묵한 성품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30] 아버지인 나루히토도 영국 유학 당시 기숙사에서 생활했는데, 나루히토도 근접 경호원 없이 지냈다고 한다.[31] 참고로 2013년 여름휴가 당시 황실 별장 근처 동물원에 친한 친구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같이 방문해서 시간을 보냈을 때에도 "아이코 공주 옆에 노진구처럼 둥근 안경을 낀 남학생 하나가 항상 있었다"는 보도가 있었다.[32] 2019년 1월 기준 17세인 아이코 공주라서 성인이 되어야 단독 공무가 가능하다는 황실 규정을 감안하면 어렵다고 볼 수 있으나, 사촌 언니인 마코 공주는 17세부터 단독 공무를 했다. 이를 보면, 부모의 허가가 있으면 미성년 황족의 단독 공무도 가능하다고 한다.[33] 이들의 아버지인 후미히토 자체도 성적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유명하긴 했지만 부정입학은 그렇게까지 심하게 한 게 아니라서 당시에 그냥 잠깐이지만 말만 나오고 사라진 정도로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이후 후미히토의 자녀들인 그녀들의 대학 입학 및 돌연 퇴학 후 국제기독교대학 입학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신점이 있었다. 이러한 입학 과정의 불신은 이후 마코 공주의 국제기독교대학 대학원(박사과정) 진학 등에서도 또 다시 발생하게 된다.[34] 사실 오래 전부터 아키시노노미야 家 관련 기사들이 나올 때마다 대체적인 댓글 논조가 이러한 것이다. 애시당초 이 집안 관련 기사들 중에서 많은 기사들이 부정적인 방면의 글이 많았다.[35] 실제 댓글에서 "마사코 황태자비가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몸이 안 좋아서 공무를 쉬고 집에 있는 와중에도 아이코 공주의 양육을 잘 했다"는 요지의 말이 나왔다.[36] 마코 공주의 결혼 소동이 특히 일본인들을 분노하게 한 이유는, 자신들의 세금이 상당히 이례적일 정도로 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마사코 황태자비의 평이 상당히 나빠진 이유도, "병명도 제대로 알려진 상태에서 단지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공무도 제대로 안 하면서, 집에서 쉬면서 국민들의 세금만 쓴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후미히토 내외는 그에 반해서 마사코 황태자비의 공무까지도 수행하면서, 당시 일본 국민들의 마사코 황태자비에 대한 감정을 더 강하게 악화시킨 적이 있었다.[37] 황태자 일가의 분위기나 미소에 대해서는 몇 년 전부터 '안심이 되는 미소'는 표현이 많았다.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가식적이고 사무적인 미소와는 분명하게 대조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이상적인 자식의 모습이라는 평.[38]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은 아이의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안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인 어머니 마사코 황태자비는 오랫동안 건강상의 문제를 앓았고,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몰라도 아이코 공주도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트레스성 질환로 추정되는 질병을 앓았었다. 매우 극심하게 마른 상태로 공개 석상에 등장해 일본 언론들이 대놓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황태자의 유일한 자녀인 아이코 공주가 사망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나올 정도로 심각했으니,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러한 심적 부담을 다시 줘서 가뜩이나 안 좋은 상태인 건강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최대한으로 자제하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일본 황실 규범에 의하면 성인이 되기 전에 단독 공무는 자제하도록 하는 편이나 사촌 언니인 마코 공주는 만 17세부터 단독 공무를 실시한 거 보면, 성인 직전이라도 집안의 허가가 있으면 제한적으로 단독 공무는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39] 해당 리스트에는 구 황족, 구 화족, 상류층 자제들에 대한 각종 정보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흥신소 등에 위탁하여 리스트 정보를 갱신하고 있다고 한다.[40] 전국 상위 1%대.[41] 전국 상위 0.1% 이상.[42] 후미히토는 고등학생 시절 가쿠슈인대학보다 훨씬 상위 대학으로 부정입학하려 하다가, 이를 안 아버지 아키히토의 반대 때문에 가쿠슈인대학에 진학해야 했다는 뒷소문이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것만도 부정입학인데, 오히려 수준 낮다고 불만을 가져서 자기 아들을 가쿠슈인에 안 보냈다고 한다. 황태자라서 가쿠슈인대학에 갔지만 대학 졸업 후 우수한 성적으로 2년 동안 영국 유학을 갔다 온 나루히토와 다른 모습.[43] 사실 이 기사처럼 미치코 황후와 아이코 공주의 화목한 모습에 대한 기사는 일절 나온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할머니가 손녀에게 줄 선물을 샀다는 것과 회견 때 아이코 공주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전부였다. 이런 기사가 나올 정도란 것은, 그만큼 황태자 일가의 위상이 굉장히 강해졌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리고 미치코 황후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으로 보아,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그만큼 아이코 공주를 많이 생각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44] 아이코 공주는 2021년 12월 1일에 성인(만 20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되더라도 대학생이기 때문에 마코 공주나 카코 공주도 그랬던 것처럼 대학 재학 중인 경우에는 보통은 주말이나 방학 때에 공무를 할 것이다. 참고로 황실에서는 학생 시기에 되도록이면 공무를 시키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게 해주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45] 단, 아침에는 어머니인 마사코 황태자비와 같이 있었으나 오후에는 혼자 있었다.[46] 고쇼의 별칭인데, 같은 구역 내에 있는 후키아게오미야 고쇼와는 별개의 건물이다.[47] 아직까지 임시 거처가 될 다카나와 황족저의 개보수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고쇼에 지내고 있다.[48] 불과 얼마 전까지는 주로 어머니 코무로 카요의 문제였으나, 현재 나오는 문제들은 대부분 코무로 케이 본인 문제.[49] 히사히토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이코 공주에 대한 여성 천황 찬성 여부는 60% 내외였던 걸 감안하면 이 수치는 엄청난 것이다.[50] 애당초 아이코 공주는 초등과 때부터 학년 톱을 맡아서 이를 꾸준히 유지했기에, 현 시점에서 가쿠슈인 내 모두가 아이코 공주가 학년 톱이 되는 걸 당연시 여기고 있다고 한다.[51] 테스트 결과에 따라서 가쿠슈인대학/여자대학으로의 내부진학을 할지, 아니면 가쿠슈인 이외의 타 대학으로의 진학할지가 최종 결정된다.[52] 유력한 장소로는 아버지 나루히토 덴노가 유학을 갔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 어머니 마사코 황후가 다녔던 미국하버드 대학교가 꼽히고 있다. 이중에서도 옥스퍼드 대학교로 유학을 갈 가능성이 크다.[53] 아이코 공주가 어렸을 때부터 조치대학 영문과 출신 영어교사 등을 초빙해 영어를 가르쳤다. 그것만으로 부족해서, 가족들과 있을 때조차도 일정 시간 동안에는 영어로만 대화하도록 했다고 한다.[54] 아이코 공주의 칭호인 도시노미야(敬宮)에서 따온 것이다. 칭호는 황태자의 자녀와 천황의 자녀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라서, 후미히토 '친왕'의 자녀들인 사촌 마코 공주, 카코 공주, 히사히토는 이런 게 없다.[55] 원래는 상황/상황후가 고쿄를 나온 다음 고쇼로 이사해야 하나, 상황/상황후가 건강상 문제 등으로 이사가 지연되면서 여전히 아카사카 어소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로 나루히토 일가가 고쿄로 이사하면서 비게 되는 자택은 리모델링 작업을 거친 후 상황/상황후 내외가 최종 거처로 삼을 예정이다.[56] 일본인들은 이러한 것도 있겠지만 도쿄대학 등 외부 학교로 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경호상의 문제와 더불어 진학 과정에서의 부정 논란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감안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참고로 아이코 공주는 5월 1일부터 천황의 유일한 자녀이기에 경호원이 추가적으로 늘어나서, 아이코 공주의 친구조차도 사전 허락을 받지 않으면 같이 놀러가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57] 사실 메이지유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성 천황은 부득이한 경우에는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역사상 10번 즉위했고 8명이며(역사적으로 지토 덴노 이전은 부정되는 이견도 있지만), 마지막 여성 천황은 에도 시대고사쿠라마치 덴노로 겨우 200년밖에 안 된다. 하지만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이 일본군 대원수를 겸하게 되면서 당시 기준으로 군대에 갈 수 없는 여성이 천황이 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58] 아이코 공주의 배우자는 나루히토 천황의 하나뿐인 사위라는 특수성과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때문에, 이젠 구 황족 혹은 구 화족급이 아니고서는 선택이 어려워진 상태다. 코무로 케이에게 단단히 데인 일본 국민들은 천황의 하나뿐인 딸 아이코 공주의 남편만큼은 제대로 골랐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59] 아이코 공주의 고모 구로다 사야코가 졸업한 학과이다.[60] 이는 2021년 3월 기준으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코 공주의 결혼 문제 등으로 아키시노노미야 가문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상상 이상으로 큰 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여전히 아이코 공주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그동안 관망하던 태도를 보이던 스가 요시히데 정권이 특례법 발의 6년만에, 향후 황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상황 속에서 튀어나온 보도이니 당연히 여러가지 억측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61] 애시당초 후미히토 친왕은 오래 전부터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장남 토모히토 친왕보다도 여러모로 황실 전체를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발언들을 형 나루히토 덴노한테 퍼붓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62] 사야코의 입장에서도, 하가 후에 쓰지 않고 보관만 하던 걸 빌려주고 대가를 일부라도 받는 게 나을 수 있다.[63] 일본에서는 덴노의 자녀 혹은 황태자의 자녀를 직계로 취급하고 그 이외 황족들의 자녀들을 방계로 취급한다.[64] 미국으로 갈 때까지 지낼 고급 맨션 1동을 통째로 빌리거나 30여명의 경호원들과 전담 심부름꾼을 거느리고 한동안 전용 차량까지 배치되었던 코무로 부부에게 최소 수천만엔 이상이 들어갔다.이거 말고도 미국행 비행기표(퍼스트 클래스)에 들어간 비용이나 미국에서 포착된 경호원 고용비 등을 합치면 억단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본 국민들의 대체적인 판단.[65] 사실 메이지 덴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방계 남성 황족조차도 찾을 수 없으면 여성 황족이라도 올려서 덴노로 삼은 전례가 제법 되었다.[66] 실제로 일본도 경제 성장을 해결하기 위하여 과거 스가 요시히데 정권에서 진행했던 To Go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시에 10만엔 지급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67] 해당 발언 이후의 코무로 마코의 행동거지 등을 보면 사실상 걸리지도 않은 병을 방패로 쓴 것에 불과하다는 걸 잘 보여주었다.[68] 보통 친왕비들의 티아라는 소유자의 사망에 따른 상실이지만, 내친왕/여왕들의 티아라는 결혼에 따른 소유권 상실인 게 대부분이다.[69] 친왕비 시절에 쓰던 것과 황사비가 되면서 승계받은 황태자비 티아라. 당연히 키코 비는 황사비가 된 이후에는 황태자비 티아라를 즐겨쓰는데, 이에 대해서 황사비는 절대로 황태자비가 아님에도 이를 착용하는 걸 두고 일본 내에서는 강탈된 티아라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코 공주가 티아라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 이후에 일본 내에서는 "강탈된 황태자비 티아라를 다시 가지고 오는 거냐"고 말하는 게 바로 이러한 사고에서 오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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