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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30 18:10:57

손권(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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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손권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작중 시작 시점에서는 동오를 다스리는 거기장군 → 대장군.[1] 그러나 당대인들은 사실상 손권을 '오나라'의 군주로 여기고 있다.

212년 유수구 전투가 시작되어 7만 병력을 이끌고 조조와 대치 중이었다. 유비에게 일부 빌려준 강릉 땅에 몇 배로 이자까지 붙여서 형남 전역을 돌려받을 생각이며, 유비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애당초 형남을 손권이 빌려줬다는 전제 자체가 억지라면서 분개한다. 안 그래도 열세한 전력 탓에 피 말리는 중인데 유비가 전력을 다해 돕기는 커녕 입촉을 노리자 분노하지만, 유비가 21세기 역사학도였던 곽선호에게 빙의되면서 생각을 바꿔 한중을 공격해 장로를 몰아내고 한중을 점거하는데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자 안도하고 조조군에게 화살 서신으로 이를 알려 조조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한다.

원 역사를 보면 손권이 먼저 유장을 치자고 유비에게 제안했었는데 유비가 '지금 조조와 맞서 싸우는데 같은 반조조연합인 유장을 치면 안 되고 또 유장은 자신과 동족이니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면서 군사를 동원해 길을 막고 '나는 유장을 치느니 머리 풀고 입산하겠다' 드립을 쳤었다. 그런 인간이 이제는 대놓고 유장의 통수를 치고 자기가 입촉을 하면서 손권의 통수도 같이 쳤으니 손권 입장에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본 소설에서는 곧이어 현대인이 빙의된 유비가 당초 표면상 목적대로 유장의 구원과 장로의 정벌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해버렸기 때문에 그 정도로 손유동맹의 사이가 파탄나지는 않은 것으로 묘사되었고, 실제로 조조의 위공 즉위와 순욱의 자살을 손권 측에서 유비에게 알리는 식으로 동맹이 아직은 건재함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유비가 실질적으로 한중 하나만 들고 있어 여유가 없다는 점을 고려해 한동안은 기다려주고자 한다. 한중 일대가 또 형남의 기준에선 월경지이기도 하기에 누가 봐도 유비를 기다려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

그러나 유비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익주를 장악해 성도 함락을 코앞에 두자 원역사보다 더 빠르게 선공을 날려 본인도 형주 파구의 후방인 육구까지 와서 지휘하고 있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유비군의 대처가 너무 빨라서 장사군의 점령이 절반뿐인 성공으로 끝나자, 단기간에 장사와 계양군까지 빼앗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장사의 선박을 불태워 유비군의 기동을 방해하는 한편 임상에서 대치에 들어간다.[2]

결국 유비에게 장사와 계양을 양도받긴 했으나, 손권이 원 역사대로 219년이면 분명히 배신할 것이라 확신한 유비는 이를 대비해 쇠사슬 작전을 준비한다. 인간성을 떠나서 강남 왕조는 생존을 위해 양번에 매달릴 수 밖에 없고 익주에서 형주를 지원해주는 건 장강 삽협에 가로막혀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는 제갈량이 빈틈없이 사수하니 망설이더라도 219년에 북벌이 시작되어 수비군이 줄면 (설사 유비와 아무 문제가 없었어도) 배신 가능성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유비는 원역사의 손권을 배신자라고 생각은 하지만 손권이 죽는 순간 동오가 해체당하는 것도 알기에 조조에게 조기에 멸망하지 말라고 300기의 서량 군마를 선물로 주어서 친위대의 강화를 권했다. 합비 공방전은 손권이 무려 10만 대군을 몰아 친정했으나 장료, 악진, 이전의 7천 정병에게 야습당해 목숨만 건져 겨우 도망쳤을 정도로 크게 패한 전쟁인데, 하필 원래대로라면 이 전투에서 맹활약해 손권을 구해줬어야 할 감녕과 그 부곡들이 임상대치 과정에서 죽었기 때문에 손권이 죽을 가능성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의기양양하게 벌인 합비 공방전에서 원역사와 다를 바 없이 장료와 악진에게 대패한다. 유비가 준 군마 덕에 무사히 도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미 임상대치에서 별 성과가 없었던 판에, 적의 몇 배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한 합비 공방전마저 대패해 권위에 타격을 입는다. 이에 군민의 시선을 패전의 책임 소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고심하다 전사한 장군 진무의 장례식에 그가 아끼던 애첩을 순장하는 조치를 취한다.[3]

찬탈 준비에 모든 걸 건 조조는 자신에게 전권이 주어져야 할 분위기를 만드는 외부의 적으로 손권을 골라 2년에 한 번 꼴로 합비 방면으로 대군을 이끌고 대치 국면을 조성한다. 그때마다 호족들의 협력을 구하고 대군을 편성해 나가는 것이 위보다 국력이 약한 손오에는 큰 부담인데 조조 측에서는 적대적 공생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적벽처럼 실적으로 바꿀 수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손오 전체의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무난히 확장을 거듭하는 유비를 향한 질투를 유발해 손유 동맹을 깨려는 조조의 계략이었는데 손권은 보기 좋게 넘어가 쳐들어오는 조조가 아니라 유비에게 질시 어린 시선을 던진다.

이는 조조가 손권의 성격을 간파하고 한 계책이었으며 실제 역사에서도, 또한 본작에서도 조조와 손권은 유수구에서 여러차례 대군을 이끌고 살벌하게 대치하면서 피를 보는 와중에도 계속 서신을 주고받는다.[4] 유비(곽선호)의 평으로는 이 시기 조조와 손권 사이의 서신을 보면 서로 동맹 관계가 아닌가 헷갈릴 정도로 둘의 내적 친밀도가 높았다고 한다.

이 서신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유비군 참모들은 부친 손견이 천자를 구한다고 맹활약한 반동탁연합의 맹장이고, 형 손책은 생전 조조를 박살내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는데 손권이 아버지와 형의 유조를 어겨가며 조조 좋은 일만 시켜줄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아무리 그래도 배신은 안 할 거라 믿고 있지만, 유비는 모사들은 너무 매사를 '상식적으로' 보는 면이 있다고 혀를 찼다.[5]

217년 유수구 전투에서 제대로 조조군과 싸우기도 전에 전염병이 돌아 노숙, 능통이 쓰러진다. 그리고 서량 전쟁의 결과로 유비가 서량까지 조조군을 몰아내고 차지하면서 이제는 유비와의 역학 관계가 뒤집혔다.

노숙이 죽고 나서는 그에 슬퍼하면서도 내심 이제 오왕인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신하가 남지 않은 것을 기뻐하면서,[6] 후임으로 노숙 비판에 앞장섰던 엄준을 임명한다. 그리고 기존의 전략안을 버릴 것을 선언하고 때맞춰 북원 대치가 유비의 승리로 끝나 힘 관계가 뒤바뀌었음을 깨닫고 더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엄준이 도독 자리는 맡지 않는다고 물러나면서 여몽이 도독에 임명된다.[7] 이후 여몽에게 형남을 완전히 빼앗을 것을 명령하나, 제갈량이 철저히 경계하면서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대신 건업에 항의하는 서신을 보내서 손권의 밀명을 모르는 서생들을 흔들면서 여론전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유비가 왕을 칭했다는 소식에 자칭 거기장군에 불과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먼저 태어난 조조, 유비가 좋은 작위를 쓸어간다며 울분을 토하는 한편 형주가 우리 땅인데 무슨 명분이 필요하냐며 장수들을 채근한다. 그러다 유비가 한중에 병력을 모으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조조가 타이밍 좋게 표기장군 직을 내려주자 잔뜩 고무되어 유비가 양양에서 조조와 맞붙고 제갈량이 지원할 때 강릉을 대신 지켜준다(?)는 핑계로 배신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유비측을 방심시키기 위해 대도독 지위에서 물러나겠다는 여몽의 제안을 가납한다. 유비가 말 한 필이 아쉬운 상황에서 몇 번이나 군마를 지원해 주어 합비에서 살아나온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운 지 오래.

적벽에서 함께 싸운 유비보다 맞붙은 조조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는데 이게 유비가 빙의 전에 인성질한 것도 있지만 원래 강대한 조조가 계속 잘 나가는 걸 막을 능력은 없으니 비굴하게 숙이고 한때 자기보다 아래였던 유비가 자기보다 잘 나가게 되는 건 못 참아서 어떻게든 걸어 넘어뜨리려는 심보 탓도 크다.

남양의 결전이 다가오자 지금이라도 강릉을 쳐야 한다며 성급히 움직이려는 걸 여몽과 고옹이 가까스로 뜯어 말린다. 이후 어느 정도 진정된 손권에게 유비가 남양에서 패하면 그때 전력이 비게 될 형주를 우리가 지킨다는 명분으로 비집고 들어가자는 여몽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익주까지 자기 땅이 되리라는 생각에 신나 한다.[8]

조조가 신아현 전투 이후로 219년 초반에 여남의 만총까지 형주로 이동시키면서, 조위의 동오 방어선이 상당히 약해졌는데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제갈량도 동오의 배신 의도를 확신하게 된다.

219년 가을 장마로 양번이 위험해지자, 사마의는 강하군을 손권에게 뺏기더라도 일단 문빙을 빼서 양번을 막자는 의견을 낸다. 그러나 조조는 그랬다가 손권이 형남의 욕심을 잃고, 북진할 거라면서 이를 기각한다. 손권 입장에서도 유비가 점유한 형남을 얻은 후에도 장강 방어선의 안정화를 위해 양번이나 강하를 탐낼 여지가 크기에, 강하를 비우면 손권이 선후관계를 뒤집고 강하부터 노린다는 선택지가 생긴다. 강하를 빼앗기게 된다면 조조 입장에서는 기껏 손권의 관심을 합비에서 형주로 돌려놓고 마지막 오판으로 계략을 실패하게 되는 셈이라 문빙을 빼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조조가 자신의 정신적인 아들(...)을 굳게 믿고 있으며 자기 친아들들이 손권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속으로 아들들을 까는 게 압권이다.

실제로 장마 소식을 들은 손권은 잠깐이나마 형남 침공 계획을 접고 조조를 쳐야하나 고민하지만 결국 오랜기간 갈망해온 형남이란 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형남 침공을 결의하나 여몽의 반대에 부딪혀 그와 설전을 벌이던 찰나 전령이 전해온 우금군 전멸 소식에 멘탈이 작살난다. 한동안 전전긍긍하며 향방을 주시하다 어떻게든 손권을 끌어들어야 했던 조조에게 대장군 관직을 제수받아 한껏 고무된 채로 조유 양측의 힘이 완전히 빠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고 양양성이 촉한군 손에 떨어졌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이제는 유비를 쳐야한다는 여몽의 간언을 받아들여 그를 대도독으로 삼고 서성, 정봉, 반장, 주연을 부장으로 삼은 5만명의 군사를 일으켜 강릉으로 진군 할 것을 명한다.

그러나 여몽과 육손의 선봉 2만이 등지의 수비로 강릉을 넘지 못하고 고전하던 차에 육구에서 대기하다가 여몽의 의견대로 조조에게 편지를 보낸 끝에 강하군을 통해 양번 북쪽에 동오군을 진출시켜 길목을 막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여몽이 얼마 못 버티고 병사, 남은 장수들의 의견 마찰이 시작된다.

손권은 여몽의 뒤를 이을 육손이 대호족인 점이 꺼림칙했는지 아니면 자기가 발탁한 친위 세력들을 고루고루 키워줄 생각이었는지 여몽과 육손 아래 서성, 반장, 주연 같이 대호족이 아닌 무장들을 배치했는데[9] 여몽이 중도에 병사해버리자 뒤를 이은 육손은 손권에게 정식으로 대도독에 임명받지 못해 친위세력 위주로 구성된 무장들을 통솔할 권위가 없었고 같은 호족으로서 동질감에 호소하거나, 강동 육가의 위엄으로 찍어 누를 수도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려 군의 운용이 극도로 비효율적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강동 호족들도 인정한 지도자가 손가고 중앙에서 번듯한 정식 장군직도 받은 이상 단순한 패배라면 제2의 순장 같은 극약처방이라도 해서 메꿀 수 있지만 대호족인 육손에게 세작 혐의가 걸린 상태에서 손책 시절부터 육성한 손씨 친위세력의 사병들만 너무 많이 상해서 운신에 제한이 크게 걸렸다.

참패 소식을 접하자마자 모든 책임을 죽은 여몽에게 떠밀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손권 자신이 학문을 배워보라고 권했던 여몽을 오하아몽이라 부르며 일련의 배신을 전부 여몽이 손권을 군사적으로 위협해 벌인 독단으로 우긴다. 대놓고 고깝게 여기던 친유비파 노숙을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퍼포먼스는 덤.[10][11] 그리고는 제갈근을 사신으로 보내 여몽의 독단임을 공식화하고 여몽의 가솔들을 유비에게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한 다음 여몽의 가산을 적몰한다.

이런 졸렬한 책임 전가가 가능했던 건 여몽이 예주 여남 태생이기 때문. 군주의 권위에 흠집이 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손권과 강동의 물자는 강동 사람이 강동을 위해 쓰는 게 맞다 여기는 강동 호족들이 여몽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토사구팽해 버리는 데 이해가 닿은 것. 장소는 이것이 충신을 박대하는 행위라고 반대하려 했으나 호족들의 방해에 막혔다.[12]

본래는 조조가 양번에서 진다고 해도 중원 사방에 병력을 보내서 유비를 막으면 전쟁이 연 단위로 길어질 테니 그 사이 수습해볼 생각이었지만, 조조의 사망과 위나라의 전면 후퇴로 유비가 중원을 먹는 게 확정되자 경악한다. 자신에게 굽신대던 유비에게 항복할 수는 없다고 오기를 부리나, 조조보다 더욱 위험해진 유비를 당해낼 것 같지 않아 속을 앓는다.

이후 하구를 막을 대도독을 뽑기 위해서 군부 제장들과 중신들을 모아 회의를 여나 딱히 중론이 모아지는 후보도 없어서 고민하다가, 서성과 육손을 두고 고민한다. 손권에게는 실적의 정도를 떠나서 둘 다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서성은 오의 사성에게 핍박당한 시절에 원한을 가지고 서주파의 자리를 늘리고 싶어하며, 육손은 이미 오나라에 막강한 힘을 가진 오의 사성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었다.

누가 대장군이 되던 간에 손권은 자신을 위협하는 넘버2가 탄생하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고민하다가 서성을 우도독, 육손을 좌도독으로 임명한다. 장소가 과거 주유와 정보가 같은 도독 작위를 가지고 마찰했다고 상언하나, 그럼에도 두 도독들은 적벽과 형주를 거쳐가며 연승했다고 답하며 진행시킨다.[13]

서성과 육손 두 도독과 5만의 병력을 하구로 보내서 수비를 갖추게 만들고 본인도 남은 3만여 병력으로 유수구를 방비한다. 본래 10만 대군을 동원할 수 있는 강동이지만, 형주 원정 패배로 아득바득 끌어모아도 8만여명 언저리가 한계인 상황에[14] 게 유비가 북과 서쪽에서 동시에 들어오자 아무리 생각해도 만전의 태세를 갖출 수 없는 상황이라 조조 때보다도 훨씬 더 압박감을 느끼며 주유와 노숙이 옳았고, 자신이 틀린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이기면 된다면서 떨쳐낸다.

그렇게 3만 병력과 여대, 주태 등을 거느리고 유수구에 주둔하며 장강에 진입한 제갈량과 대치한다. 제갈량이 싸우지 않고 군영만 지어올리자 그 속도와 규모에 놀라지만 주태의 싸우러 나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에 안심하며 군심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제갈량이 그대로 군영 근처 주민들을 끌어들여 생업에 종사시키고, 시장을 열어주고, 재판까지 관장하기 시작하자 초조함을 느끼고 똑같이 하려고 하지만 주변의 반대로 실패한다. 이에 할 수 없으면 남의 것도 부순다는 심정으로 시장에 나가는 백성들을 참하자는 주태의 작전을 승인하지만 제갈량의 대비로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마침 군중에 있던 제갈량의 친형 제갈근에게 왜 제갈량도 남쪽으로 데려왔냐며 제갈량 업고 내려오느라 등판에 제갈량 고추 자국 묻었을 텐데 등판은 괜찮냐라는 기상천외한 폭언을 퍼부으며 좌중을 침묵시킨다.[15] 아무 생각 없이 막말한 것은 아니고 동오의 제갈 가문이 이에 분노해서 수상한 행동을 하면 바로 반역죄로 붙잡아서 조리돌림할 생각으로 한 말이었는데, 제갈근은 이를 간파하고 참았지만 제갈각이 분노해서 숙부인 제갈량과 내통하려다 이를 노린 손권군에게 바로 체포당하고 장대에 매달리게 된다. 손권은 제갈량의 유수구 쪽이 주공이라 생각하고 공세를 유도하기 위함이었지만 제갈량은 뻔한 인질극임을 알고 무시해 버리고, 주공인 유비 쪽은 서성과 육손을 이간질한 뒤 열심히 공세를 퍼붓고 있어 뻘짓이 되었다.

이후 하구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주 촌놈과 애송이가 굳이 뛰쳐나가 일을 망쳤다고, 자신이 있었다면 막았을 것이라며 한탄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협상으로 자리라도 보존하는 것임을 깨닫자 급히 제갈근을 풀어주어 그를 협상에서 써먹을 생각을 한다. 이 와중에 유비가 제갈량을 총애하니 제갈근을 이용하면 협상에 성과가 있을 듯한데 제갈근이 사람이 좋으니 며칠만 달래면 지난 일을 묻어줄 거라는 황당한 발상을 해서 독자들의 어이를 날려버렸다.

이후 시간벌이를 위해 매일마다 적벽대전 당시 유비와 함께 싸운 인물들을 사신으로 보내며 스팸 짓(...)을 했고,[16] 유비는 스팸이라는 걸 간파하고 혀를 차면서 공격 속도를 늦추지 않았지만 어쨌든 받아주었다. 이때 오나라가 사실상 독립세력이라지만 정식으로 나라가 완성된 건 아니라서 도독 같은 지위를 가지지 않은 호족들이 궁지에 몰리자 생존을 위해 유비군에게 곧장 항복한 것이라고. 유비군이 건업성까지 도달하자 제갈근을 보내는데, 제갈근은 놀랍게도 진심으로 손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제갈근의 말에 따르면 강동 독립을 위한 근성만은 초월적인 인물이라 강동인들이 손권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것이고, 제갈근같은 이방인들도 손권의 인성 문제와 별개로 손권의 그런 초월적인 집념에 감화되어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곽선호가 확실히 손권도 영웅은 맞다고 평할 정도.

제갈근은 유비에게 손권의 안위를 보장해달라 사정했고, 유비는 처음부터 여러 사정상 손권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손권은 좀 더 확실한 보장이 필요하다며 제갈근을 다시 보냈고, 유비도 어차피 적당한 봉토와 병사 정도는 줄 생각이라서 강동의 5개 현과 군사 3천, 가신들을 약속하고 이 이상은 내가 네 안위를 보장 못해준다고 선을 그으며 서면으로 약속한다. 제갈근을 통해 유비의 확약을 받은 손권은 유비는 환갑 된 노인이고(161년생, 59세) 자신은 아직 38세인 만큼(182년생) 유비가 죽은 뒤 다시 세력을 모아 20~30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재기하고 말겠다며 야망을 불태운다.[17]

그러나 미래인이 빙의한 유비는 손권의 장수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었고 이에 한 조정과 자신은 손권이 무슨 일을 당해도 돕지 않겠다는, 손권을 한의 호모 사케르[18]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손권은 이를 제대로 이해 못하고 3천의 정병이 붙어다니고 과거 동탁 시절부터 조정의 보호는 없었다며 이 조치에 찬성한다.[19] 그리고 부임지인 회계로 가는 길에서 폭음을 하다 한당의 아들인 한종의 원한을 사고 과거 진압한 산월족들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데도 손권에게 선제공격할 기회를 주지 않는 식으로 약속이 적용되기 시작한다. 수천의 산월족은 몇달 몇년을 기다리는 한이 있어도 손권이 호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죽이겠다고 벼르는 중.

물론 손권도 멍청이는 아니라 산월족의 반응을 보고나선 유비의 진짜 의도를 깨닫고 이를 가는데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하릴없이 술만 마신다. 그러다가 먼저 쓰러진 우번을 보곤 이놈이 뺑끼 친다며 창으로 찌르려다 유기가 말리는데 술기운에 판단력이 흐려진 데다 조금 전의 불안까지 겹쳐 유기를 찔러 죽이는 대형사고를 치고 만다.

결국 강동에서 인망 있던 유요의 아들인 유기를 죽인 데다가 산월의 위협 등이 겹쳐 손권의 세력은 차차 와해되어 가고 방통과 제갈량 등은 이제 손권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유비가 천하통일을 하고 황제로 즉위한 뒤에 원 역사에서 끝내 실패한 술 끊기에 성공하고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유비는 유봉을 강동절도사로 파견해 손권을 감시하되[20] 손권의 의지력 자체는 감탄하면서 건업과 오군을 제압한 이상 10년이 지나면 풀어주라고 말해놓는다. 사실, 또다시 강동 제패에 성공한다면 그것 자체가 분권체제를 의도한 유비의 복안에 맞으니 탄압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합비를 통해 건업을 향한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확보한 이상 손권이 각성해서 전성기 손책 같은 활약을 하더라도 유봉이 무력하게 당할 확률은 없다시피 하기 때문.

그리고 정말로 10년을 버텨내어 사면을 받았으나 기쁘다고 다시 술을 먹고 시종들을 구타했다. 이 때문에 또다시 손권에게 시달릴것에 질색한 시종들은 기회를 노리던 한당의 아들 한종과 손을 잡았고 끝내 손권은 10년을 버틴 보람도 없이 한종과 시종들에게 허무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유봉은 손권이 아직 칙사에게 사면장을 받기 전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10년 안에 손권을 죽여도 죄를 묻지 않겠다는 유비의 명이 유효하다 주장하며 그들을 사면해준다.

3. 기타

간절히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 노년의 모습으로 나오던 인물인데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21] 본작에서도 졸렬하다는 평을 듣는다. 유비의 평가로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정면으로 도전하는 당당한 간웅인 조조와 달리 뜸 들이고 간을 보다 나중에 슬그머니 조조가 걸었던 길을 답습해서 품격이 떨어진다고 한다. 심지어 다른 매체에서 거의 묘사되지 않던 순장 사건까지 묘사되어서 더 비판을 받았다. 손권이 참 오래 살기는 했다고 평한 독자도 있다. 내마속에 나오는 노년의 손권과 비슷한 면모를 보이는 점이 있다면, 촉한이 자신의 세력보다 커지는 걸 절대 원하지 않으며 이를 막으려고 뒤통수를 친다는 것. 내마속이나 유비쟁패 모두 이러한 손권의 성향을 아는 주인공이 미리 대비를 해둔다.

의형이나 마찬가지인 주유, 자신에게 충성한 노숙과 여몽에게도 마음 속에선 늘 그들을 의심하고 불편히 여기는 것으로 나온다. 그들의 충성심과 능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조조 같은 절대적인 전제군주가 되고 싶은 손권에겐 겁먹지 않고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중신들의 존재 자체가 불편한 것.[22] 주유와 노숙과는 달리 뒷배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여몽은 이 점을 잘 알고 손권의 심사를 최대한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며 피치 못하게 '손권 맘에 들지 않는' 의견을 내야 할 때는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는 반면, 대호족 출신으로 떠받들어지는데 익숙한 육손은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23]

이런 손권의 성격과는 별개로 손권에 대한 강동 호족들의 충성심은 매우 확고한데, 진한시대 이래 늘 중앙 조정에게 수난을 당해온 강동 독립정권의 군주이기 때문이다. 할거에 필요한 기반 마련을 위해서라면 비겁한 짓도 주저하지 않으며 다소 모험적일 정도로 개발 정책에 진심인 손권과, 중원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후한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강동 호족들의 합의로 손씨 정권이 유지되는 것.[24] 이는 아버지인 손견, 형인 손책과 다른 부분으로 손견은 활동 시기상 한 왕조의 복귀에 관심이 컸고 손책은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천하통일과 협천자에 더 관심이 컸다고 한다. 반면 손권은 아버지, 형과 달리 강동의 자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차가 거듭되면서 점점 혐성을 쌓고 있다가 오촉동맹 편을 기점으로 한수를 능가하는 극혐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그나마 고옹과 여몽이 말려서 당장 선을 안 넘었다 뿐이지 원역사에서도 쳤었던 뒷통수를 치지 못해 안달이 난 수준으로 서술되다보니 독자들은 위나라보다 오나라가 먼저 망하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사실 굳이 강동을 정벌할 필요 없이 강하만 유비측이 빼앗아도 형주로 들어가는 물길이 막혀서 손가락만 빠는 신세가 되긴 한다.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도 손권의 혐성질은 꾸준히 나오지만 그때는 상황이 좀 더 나아서 덜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나이도 젊은 데다 상황도 더 나쁘다 보니 추함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다만 작가가 손권을 일방적으로 깎아내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제갈근은 손권에게 그리 당하고도 끝까지 손권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서 유비조차 이해를 못 했지만, 손권이 가진 특유의 집념과 근성에 감명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손권에게 진심으로 충성한다 묘사되고, 곽선호도 확실히 손권이 영웅은 맞다고 평했다. 비록 손권은 천하의 영웅이 될 자질은 아니었지만, 강동 독립에 대한 집념만은 누구보다 초월적이었기 때문에 강동인들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 작중에서도 10년이고 20년이고 버티고 버텨서 유비가 먼저 죽으면 재기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그 집념을 보여준다. 다만 유비는 손권의 수명과 집념을 잘 알고 있기에 조조가 유비에게 한 것마냥 정말로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은 낮았고 실제로 손권을 호모 사케르, 즉 건드려도 무방하다는 선언을 하며 차도살인하거나 최소한 집 밖으로는 못 움직이게 하는 계책을 세웠다. 그러나 근성의 손권답게 원 역사에서 실패한 술 끊기에 성공했고, 유비도 유선에게 자신의 사후 10년 지나면 풀어주라며 손권을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술을 먹게 되어 자기 명줄을 자기가 끊고 만다.

조조와의 관계도 여러 번 묘사되는데, 조조와의 내적 친밀감을 '상호 간'에 느끼고 있다. 조조의 손 중모 같은 아들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한 온갖 서신에 쓰인 칭찬은 단순히 유비와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이간질이 아니라 진심으로 손권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는 후계자인 조비가 여러모로 눈에 차지 않는데다가, 직감이 가리키는 후보인 조식조차 평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조조가 정말로 자기 자식들이 손권 정도만 했어도 걱정이 없었을 거라고 한탄까지 한다.

작품 내내 신나게 돌려진 인물임에도 간절히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은 손권을 꽤 좋아한다고 밝혀 읽는 사람들을 기함하게 했다.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차기작으로 오나라 배경 삼국지물을 써보라며 권하는 팬들이 많다. 최고작 중 하나인 CM29에서 왕건을 정말 맛깔나게 사용한데서 보듯이 혐성 넘치는 1인자 밑에서 구르는 전개에 정말 능숙한 작가기 때문.

[1] 원 역사에서 손권의 오왕 즉위는 221년. 오황제 즉위는 229년이다.[2] 이때 유비의 마인드는 협상에 응하려는 생각과 별개로 이 임상대치에서 손권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어 후에 재차 배신할 때 망설이게 만들 계획이다. 또한 215년이라서 곧 조조가 2차 유수구 전투를 벌일 시점이 다가오기에 손권, 노숙, 여몽 셋 다 계속 형주에 있을 수는 없다.[3] 이 사건은 후대 역사가인 손성이 '임금이 할 행동이 아니다' 라며 비판하기도 했던 실화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었던지라 이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되어 충격을 받은 독자가 많다.[4] 손권에 대한 평가 중 유명한 조조의 칭찬인 "아들을 낳으려면 손중모 같아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들은 개돼지 같구나!" 라는 말도 이 시기에 나온 말이다.[5] 그나마 유비의 모사들 중에서 손권의 진면모를 일부라도 알고 있는 것이 제갈량뿐인데, 제갈량은 형 제갈근을 통해 동오 조정의 분위기를 짐작하는데다 형주를 지켜내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손권이 분명히 배신을 할 거라고 짐작하고 있다.[6] 주유와 노숙은 손권이 어릴 적부터 손씨와 강동에 헌신해온 공신이자 대호족인 데다가 권위를 대물림했기에 둘이 대놓고 반대하면 손권도 무시할 수 없었다.[7] 엄준을 도독에 임명하려던 사유를 제외하면 모두 원 역사에서의 행보 그대로이다.[8] 완성에서 위촉이 전력 격돌하는 상황이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합비와 수춘을 삼킬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지만 강동 정권의 할거만 생각하면 지키기 힘든 합비-수춘보다 양번이 더 필요한 곳이긴 하다. 무엇보다 형남은 유비가 가로챈 자기 땅이라는 인식이 너무 확고했다.[9] 주연은 양주 출신 호족이 맞긴 하지만 강동 토박이 호족이라고 보기엔 어려우며 원래 성은 시씨였는데 손견-손책 시절 친위세력이었던 주치의 양자로 입적하였기에 친위세력에 가깝고, 서성과 반장은 손책-손권 대에 발탁되어 실력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인물들이다.[10] 앞서 언급했듯 노숙의 대전략 자체를 부정하여 노숙 사후 후임으로 노숙을 비판했던 엄준을 대도독에 임명하려던 것이 손권 본인이다.[11] 웃긴 건 그 와중에 '여몽이 학문을 배워 총명해졌다고 노숙이 그랬다'는 멘트를 덧붙여서 여몽을 후임 대도독으로 임명한 책임을 자신이 아닌 노숙에게 전가했다.[12] 그 와중에 고옹은 장소에게 연고주의에 찌든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가 장소가 서주 사람임을 깨닫고 황급히 서주와 강동은 하나라는 말로 무마하려 하는 촌극을 벌인다. 당연히 장소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이라 답변을 하지 않았다.[13] 도독이 두 명이라는 점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상황이다. 주유는 삼공만 2명을 배출해 강동이건, 타향 출신이건 모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명문가 도련님이었고 마찰을 빚은 정보조차 나중엔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인품이 빼어 났으며 군사적 능력은 공세에 약한 동오 육군으로 조인을 물리치고 수전에선 조조마저 싸먹을 정도였다. 게다가 경쟁자인 정보도 먼 북방 유주 출신이라 둘이 알력을 빚어도 파장이 아주 커지진 않았다.[14] 사실 이것도 강동의 저력이 있어 가능한 것이다. 동오는 210년대 중반부터 유수구 전투, 임상대치, 합비 공방전, 형주원정까지 수만 단위 동원을 4번이나 했다. 그나마 후자인 합비와 형주는 엄청난 대패를 겪었다. 만일 유비의 촉한이 이 정도 연전을 치렀다면 후유증이 엄청났을 것이다.[15] 근친상간 섹드립이다. 남동생과 비역질 하느라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업고 지켰냐는 것.[16] 다만 협상 조건 자체는 갖춰놓았는데 이번 전쟁의 사령관 역할을 한 서성과 육손의 전범화, 손권 본인의 후일 유비 산하 종군, 손 부인의 촉한 복귀 등이었다. 물론 유비 입장에서는 조조마냥 처음부터 손권과 끝장을 볼 생각이 없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퇴각해서 손권에게 협상 지키라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그냥 손권을 잡아 꿇리는 게 더 쉬웠기에 무시했다.[17] 실제로 원 역사의 손권은 220년에서 32년이 더 지난 252년까지 산다.[18] 고대 로마의 제도로 이렇게 불린 사람은 무슨 범죄를 당해도 공권력이 보호해주지 않으며 이에 따라 이 사람에게 해를 끼친 범죄자도 죄가 없는 셈 취급 받는다.[19] 동오의 모든 신하들은 이 약속의 속내를 알아채곤 복잡한 표정을 지었으며, 특히 제갈근은 급히 약속을 무르라 청하지만 손권이 동의하며 손권이 호모 사케르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20] 유비도 유기 사망 사건을 들었을 때 손권이 끝내 살아남아 재기한다면 그때는 자신이 뭘 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21] 182년생이므로 작품시작 시점인 213년에는 32세, 218년에도 38세로 아직 40을 안 넘었다.[22] 손책의 유지와는 별개로 주유와 장소의 지지가 있었기에 손권이 군주가 될 수 있었던 점, 주유와 노숙의 전략 덕에 장소를 비롯한 주화론을 물리치고 적벽과 남군에서 승리를 거둔 덕분에 지금의 입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점을 모두 감안한다면 유비쟁패의 손권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평가해도 무방한 수준. 노숙이 아닌 손권 본인이 전략을 주도했다면 곽선호의 회귀에도 불구하고 손권의 침략을 견제하느라 홍수를 기회로 한 북벌은 훨씬 가능성이 희박해졌을 것이다.[23] 아버지를 여의고 친척이 손책에게 해를 입는 일은 있었지만 그게 육손 본인의 처지를 어렵게 만들거나 하진 않았기 때문. 상급자의 미묘한 심기를 살피고 대처하는 법을 배울 기회도, 필요성도 없었다. 작가의 전작인 내마속에서도 육손은 혼자 손권의 성격에 대해 착각하다 마속(빙의)의 계략에 넘어가 손권에게 갑질을 당하고 나서야 자신의 착각을 깨닫고 화병으로 죽는 인물로 묘사된다.[24] 이 부분은 자신의 악행을 천하안정을 위한 것으로 정당화하는 조조 정권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