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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24 03:48:05

장비(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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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능력4.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장비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젊은 시절 유비, 관우와 의형제 관계를 맺고 평생 함께하고 있으며 삼형제의 막내.

2. 작중 행적

입촉을 준비하던 유비가 관우와 함께 불러들인다. 명사를 우대하고 교류하기 좋아하는 성격답게 서량으로 떠난 마초를 만나지 못한 것을 크게 아쉬워한다.

익주 공략이 시작되자 기병 200기로 샛길을 타고 부성을 우회, 백마관에서 지원 오던 양회와 고패의 4천 병력을 급습한다. 훈련도가 낮은 익주군 보병이 대열을 갖추기 전에 난입해 진용을 무너뜨린 다음 양회를 참살하고 첫 전투를 승리로 장식한다. 백마관의 군사를 깨뜨린 뒤에도 퇴각하는 대신 길목을 차단한 채 아군의 수를 많아 보이게 하는 기만 전술로 부성에서 후퇴하는 유순의 군대를 붙잡고 있었고 유비가 뒤따라와 이들마저 격파해 백마관을 손쉽게 함락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관우가 법정의 초토화 전술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자칫 어색해질 뻔한 분위기를 끼어들어 수습해낸다. 유비가 파괴 행위는 지양하되 기병을 활용한 흔들기 자체는 시행하고, 동주병이 요격을 위해 출진하면 야전에서 격파하는 전략을 택하자 둘째 형과 나란히 자원했고 전력을 숨기는 낚시 전술을 통해 자신들을 요격하기 위해 출진한 1만 동주병을 형과의 협격으로 가볍게 박살내며 유장과 동주병의 군심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 이후 유비와 관우가 동오의 통수를 막기 위해 급히 형남으로 가있던 동안 1만 5천 병력으로 낙성을 지키며 유장군을 견제한다.

서량으로 출병할 때 황충, 위연과 함께 참전했으며 위수 도하 때 오환족을 유인해 위연의 도하가 쉽도록 돕는 한편 유비에게 정예기병 300기를 받아 병주로 탈영했다 사로잡히게 생긴 오환왕 노석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아 성공시킨다. 진창 전투 이후 조조군 본대가 장안에 도달할 타이밍에 북원에 도착하며 북원 대치 당시 직접 정찰을 나온 조조를 마초와 함께 습격한다. 유비의 한중왕 등극을 상언하는 막료들 사이에 끼어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논의가 얼추 마무리 된 뒤에는 관우, 방통, 법정과 함께 남아 유봉을 상용으로 보내자는 얘기를 꺼냈다.

유비의 촉한왕 등극 이후 사방장군 중 우장군에 임명된다. 남양에서 벌어진 조홍과의 교전에서 마초와 함께 기병대를 이끌고 후방에 대기한다. 중반까지 예비대로 대기하다 관우가 적의 주력을 붙든 사이 법정이 벌려준 틈으로 뛰어들어 위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대승을 이끈다.

이후 형북에서 10개월 가까이 대치하며 관우, 마초와 같이 기병을 이끌고 유격전을 벌이며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결국 퇴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라 의형과 같이 유비를 설득하던 와중 가을 장마가 시작된다. 가을 장마로 인해 대역전이 시작되어 유비군 본대가 다시 조홍군과 싸우게 되자 선봉장으로 나선 관우를 도와서 조홍군을 공격하기로 한다. 그리고 완성에 당도해서 마초, 황충과 함께 목책에 틈을 만들기 위한 공세를 지휘하며 그 과정서 장합과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 이후 관우가 전예와 염행을 뚫고 완성에 입성했음을 확인하자 때마침 군사를 물리는 장합을 뒤로 하고 완성과 유비군 간 통로를 확보하러 움직인다.
그리고 양번을 함락하기 위해 남하해 번성을 포위하고 조홍-은서의 위군 10만과 재차 대치한다. 이후 유비가 위군의 공격을 끌어낼 장수로 장비를 지목하자 직접 위군의 진영 가까이 가서 술까지 마시고 잠을 자는 도발을 하면서 이들을 끌어들인다.[1] 참다못한 은서와 수천의 병력이 뛰쳐나오나 수습 못할 정도로 많은 수를 끌어내기 위해서 계속 버텼고 그 결과 은서가 이끌고 온 5만 군세 중에서 3만 5천명까지 끌어내는데 성공하며 노련한 정예병들을 앞세워 황충과 함께 이들을 격파한다.

장료의 기습 때 가장 먼저 대처하여 장료에 의해 죽을 뻔한 뇌동을 구해낸 뒤 과거 여포에게 당했던 원한을 담아[2] 장료를 몰아붙이며 마초의 지원과 연계해 피해가 커지는 걸 막아낸다.

결전 시점에서도 일군을 이끌며 활약하는데 우선 장료를 집요하게 추격하며 그를 묶어두다가 마초가 위기에 쳐하자 곧장 구원하러 달려가 마초가 포위당할 위험을 저지하면서 조홍을 죽여버리고, 장합의 뒤를 습격한다. 결국 장합은 마초를 죽이기 전에 군사가 무너질 지경이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형제들과 함께 여남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이 중원에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이후 의형 관우가 연주 동군을 접수하러 가자 후방에서 이를 받치는 일을 시작으로 중원 접수를 돕는다.

221년 유비가 관우, 방통, 제갈량, 조운 등을 동원해 동오 정벌에 나서자, 마초와 함께 황권과 장임의 보조를 받으며 하북 위나라를 경계한다. 청주병들이 단체 탈영했다는 소문을 듣고 황하를 쉽게 넘을 기회라 생각하고 사자를 보내 회유하나 거절당하자 아쉬워한다.

북벌에서 위연과 함께 선비족을 상대한다. 4천의 기병을 지휘하면서 위연의 초승달진에 돌진이 막힌 선비족을 단창 투척으로 요격하고, 가비능인 선두에 나오자 돌격하여 일기토 끝에 가비능을 죽였다.

유비의 2차 북벌이 완수된 이후 표기장군에 임명된다. 유주 순방 중에 요동이 길목을 막으며 무례하게 나오자 대노하여 1만 기병만 주면 요동을 벌하겠다고 요청하나, 유비는 수명이 다해가는 와중에 또 전쟁을 할 수 없어서 말린다. 유비와 관우와 같이 고향에 도착하자 40년 전 탁군의 모습이 사라졌다면서 아쉬워한다. 그리고 관우와 같이 교대로 탁군 절도사로 임명된다. 다만 탁군 절도사가 되면 요동을 선제공격할 생각이라 유비는 일단 관우 다음으로 2대 절도사를 시키기로 정한다. 그 직후 유비가 붕어하면서 고명대신으로 부탁을 받는다. 유비가 붕어한지 4년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3. 능력

단순한 둘째 형과 달리 용맹하면서도 때론 약삭빠르게 행동할 줄도 알아 부하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 말고는 흠잡을 데 없는 명장. 관우와 마찬가지로 지닌 무력이 일기당천 수준이라서 대기병전을 준비한 동주병 군단이나 선비족 기병들을 압도적 차이로 격파해냈다.

관우가 본인의 무력 및 기병의 기동력과 충격력을 이용하는 정직한 힘싸움을 즐긴다면, 장비는 온갖 기만책과 적의 빈틈을 파고드는 우회 기동에 능숙한 게 특징이다. 타이밍 잘 잡는 건 기병 지휘관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지만 개중에서도 독보적이다. 익주에서 별동대를 이끌고 좁은 샛길을 파고들어 양회와 고패의 지원군을 격파했고, 병주에서 선비족 기병들을 격파할 때는 마치 유비군의 수만 병력이 온 것처럼 허세를 부려서 병주의 관료들이 유비군의 규모를 착각하게 만든 뒤 고작해야 1천 정도 밖에 안되는 기병으로 관중을 휩쓸고 돌아다니는 데 어떤 위협도 받지 않았다.

장료와의 추격전에서도 장료를 제대로 속였고, 조홍이 완강하게 저항하는데도 유격전을 벌인 끝에 그를 참했다. 교묘한 심계가 드러나는 장면.

이런 점 때문에 순간순간 기민한 상황 판단이 요구되는 별동대 임무나 특공 작전에 자주 투입된다. 이쪽도 은근히 작가가 묘사를 박하게 해주는 편으로, 본인이 원역사에서 이긴 장합과 전장이 다르다곤 하지만[3] 장합과 2번 이상 싸우면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입촉 이후에 명확한 킬 카운트가 없다가 149화에서 조홍을 죽이며 드디어 킬카운트를 추가했고 182화에서 가비능을 죽였다.

4. 기타

흔히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미지로 오해 받는 것과 달리 본작에서는 원 역사 장비가 가진 '군자라 여겨지는 자에게는 예의 바르지만 소인이라 여겨지는 자에게는 냉혈한' 면모가 잘 고증되었다.

평소 상류 문화에 관심이 많고 자신만의 독특한 필체를 갖고 있을 정도로 서예에 능해서 발굴된 죽서기년을 필사하는 일을 맡게 된다. 당연히 무장인 장비가 서예사의 위인인 종요를 능가할 순 없지만 자신만의 개성있는 필체 + 일찍이 만인지적으로 조위와 손오 양쪽에서 인정받은 장군의 글씨라는 점에서 화제성은 충분했다. 종요가 장비의 사본을 보고 난 후에 이정도면 꽤 좋은 글씨라 반응한 것을 보면 이런저런 단서 빼도 달필 소리 들을 수준은 되는 모양.

식자나 호족들에게 (설사 그럴 의사가 없어도)말이 거칠게 나가는 둘째 형에게 걱정이 많아 충고해주곤 한다. 실제로 법정의 계책에 관우가 대놓고 면박을 주자 앞장서서 분위기를 수습한 게 장비였다. 반대로 관우는 병사들의 작은 과실 하나까지 넘어가주는 일 없이 꾸짖고 처벌하는 동생에게 걱정이 많다.[4] 서로의 결점을 보완해 줄 수 있고,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틀어질 사이도 아니기 때문에 함께 다닐 때 시너지가 무척 좋다.

사람을 대할 때 능력에 따라 급을 나눠서 대하는데 자질이 인정할 만한 수준이라면 유파처럼 유비한테 대놓고 충성을 안 하는 인사라도 숙이고 예를 차리지만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명사건 뭐건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실제로 유파에 대해서도 능력 입증 전에는 실패하면 등뼈를 박살내겠다고 벼르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이때 상대를 향한 배려가 부족해서 원 역사처럼 유파와 험한 말 오가는 상황을 막고자 유비가 특히 주의를 주었다.

양번 전투 당시의 스스로의 심리묘사로, 어린 시절부터 명사를 만나서 뜻을 이루고 싶었지만, 그나마 탁군 촌동네에 있는 명사가 유비여서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감회되어 형님으로 따르게 되었으나, 그러면서도 결국 유비가 승리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고 한다. 관우가 은연중에 알고 있었듯이 장비는 처음부터 인의를 외치며 싸우는 것으론 한계가 금방 올거라고 생각한 것. 그런데 대홍수를 기점으로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자 점점 유비가 이길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1] 물론 인사불성이 되면 안되니 물 탄 술이다. 자기밖에 못 할 기만술인 건 인정하지만 자신도 좀 고상한 책략에 나서고 싶은데 맨날 이걸 시킨다고 참모진을 까는 건 덤.[2] 장료는 과거 여포 휘하에서 복무했었다.[3] 원 역사의 산악 사이에서 벌어진 유격전이 아니라, 정면 충돌.[4] 실제로 원 역사에서 둘 다 이 점이 원인이 되어 파멸했고, 유비도 그런 동생들의 행동 문제를 알고 있어 종종 경고를 했지만 결국 못 고친 끝에 그 사단이 났다. 다만 이들이 문제를 못 고친 건 유비도 돌아서면 둘을 오냐오냐한 것도 원인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