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color=#fff> 촉한 | 유비 · 관우 · 장비 · 제갈량 · 방통 · 마초 · 황충 · 장완 · 법정 · 유파 · 황권 |
| 조위 | 조조 · 조비 · 조창 · 조식 · 조인 · 조홍 · 가후 · 정욱 · 사마의 · 우금 · 장합 · 서황 · 전예 · 문빙 · 염행 | |
| 손오 | 손권 · 여몽 · 육손 · 반장 | |
| <colbgcolor=#000> 기타 등장인물 | 유장 · 후음 | |
| 설정 | 개변된 역사 · 유비의 입촉 · 서량 전쟁 · 유비의 1차 북벌 · 유비의 2차 북벌 | }}}}}}}}} |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오호대장군의 일원인 마초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후한의 개국공신이자 광무제의 사돈이었던[1]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자 강족과의 혼혈로 서량 출신이다.
2. 작중 행적
서량의 반 조조 군벌. 211년 관중제장의 난 당시 서량연합군 5~10만을 이끌었으나, 한수를 비롯한 다른 군벌들이 마초를 견제한다고 말을 안 듣는 바람에 전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위수 전투에서 끝내 조조에게 패배했다. 배송지의 기록으론 10만. 작중에선 5만 내외로 서술한다. 아무래도 작가는 전근대 병력 서술이 늘 그렇듯이 이 당시 10만을 호왈십만으로 본 듯하다.그 후 2년 만에 재차 거병해 1만 병력을 몰아 위강과 하후연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천수군을 점령한다. 그러나 양부를 비롯한 친조조파 서량 호족들이 대적하며 들고 일어나자 그들과 끝없는 싸움을 벌이다가 몰려서 후퇴하게 된다. 비록 적인 양부가 계속 호족의 지원을 받아 밀렸지만, 양부의 친척 일곱이 참살당하고 양부도 죽기 직전에 살아남는 혈전이었다.
본래는 이 시점에서 기성의 왕이에 의해 가족들을 잃고 서량에서 쫓겨났으나, 유비가 원군을 보내준 덕에 가족들을 구한 데다 친조조 호족 연합까지 격파하며 서량을 평정할 기회를 얻게 된다. 유비에게 아내와 자식들의 목숨을 구원받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데다 노성 전투에서 패하며 하나의 세력으로서는 아직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대등한 동맹 같지만 실제로는 유비에게 서서히 종속되어 가는 중이다.
이는 강서의 어머니이자 양부의 고모로 원 역사에서 한 성질 하는 걸로 유명했던 노파를 유비가 데려와서 서량 호족 대부분이 마초를 배신한 이유가 동관대전에서 마초가 조조에게 패배할 때 조조가 너무나도 강대한 것을 실감했고, 이때 너무 큰 피해를 입어서 또다시 조조에게 개겼다가는 정말 다 죽을 것 같다는 이유임을 직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노파를 의대조 사건이라는 단어 하나로 데꿀멍 상태로 만들어 버리며 마초가 조조와 싸울 때 필요한 명분을 유비 자신이 쥐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마초의 입장에서 봐도 유비의 도움 없이 자기 혼자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해준 것이다.
이후 장완을 책사로 두고 서량을 재차 평정하던 중 유비가 익주 정벌에 나설 낌새를 보이자, 한중의 유비군이 빠지면 자신의 후방과 명분이 불안해지기에 급하게 한중까지 와서 자신의 병주 우회를 통한 장안 공세 계획을 밝힌다. 마초는 역사에서 거병 와중에 갑자기 병주목을 자칭한 일이 있었는데 본래부터 조조의 방어라인을 우회해 병주를 통해 장안을 칠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비가 위연을 한중에 남겨 원호하겠다는 답을 해주자 안도하며 두 아들을 한중에 남겨두고 떠난다. 자신을 믿지 못해 인질을 남기는 거라 생각한 유비는 좋은 말로 거절했으나 이내 마초가 자신에게 아들들을 맡기는 진의가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임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이후 기성에 웅거한 채 상규성의 관우와 연계하여 한수의 세력을 대부분 흡수한 염행과 위수를 경계로 대치하다 진창 공방전 이후 북원에서 조조군 본대와 대치하던 유비에게 합류한다.
황권과 관우가 수군을 데리고 진창성에 가버린 판에 휘하 호족들이 조조군에 의해 강제 이주 당하고 있는 위수 북부의 동포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도하를 했다간 조홍과 곽회에게 털리는 게 확정이라 동포들을 어차피 구할 수가 없는데(방통과 법정도 안타깝지만 이들을 구하는 건 포기해야 한다 했을 정도.) 호족들이 강짜를 부리는 통에 골치 아팠다고.
이후 유비 산하의 최정예인 장비와 같이 조조군의 예봉을 꺾으러 출격한다. 이들의 돌격은 조조측 친위기병의 재빠른 대응으로 막혔으나 여론전으로 다시 조조를 흔든 끝에 조조가 퇴각하고 서량을 완벽히 수복하자 감격해 눈시울을 붉힌다.
종전 이후 진창성을 경계로 조조군을 막기로 하는 것으로 확정된 이후 밤중에 익주계, 형주계와 같이 유비를 찾아가 한중왕 등극을 마지막으로 지지한다. 명목상으로는 대등한 관계인 마초까지 유비의 한중왕 등극을 지지하는 것으로 의견일치를 보여준 것. 유비의 촉한왕 즉위 이후 좌장군에 임명된다.
양양 원정이 시작되자 본인과 주력군을 데리고 한중으로 들어와 함께 싸우게 된다. 후음의 난이 터지자 유비의 명에 의해 완현으로 향하여 남양태수 동리곤과 종자경을 포로로 잡는데 성공한다.
본래 마초는 아예 완성에 들어가서 후음과 반군을 지휘해서 버텨보겠다고 했으나, 유비는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두 우두머리가 한 공간에 존재하면 불협화음이 일어나 제대로 된 지휘가 이뤄지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황권에게 지원받은 물자를 후음 측에 전달해 장기간 농성할 여건을 마련해준 다음엔 성 밖에서 위군이 포위망을 형성치 못하게 휘젓는 역할을 맡도록 한다.[2]
이후 조홍군의 선봉대인 곽회와 남양 북측에서 교전하다가 퇴각해 유비의 주력군에 합류, 신야현 전투 중에 황충과 법정이 열어준 틈으로 장비를 이어서 돌격해 조위군을 무너뜨렸다.
완성 구원전에서는 장비, 황충과 함께 관우의 돌입을 위한 틈을 만드는 역할을 맡아 공세를 진행하며 그 과정에서 전예와 맞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량 기병의 기세가 꺾여가 사실상 붙들어두는데만 목적을 두던 찰나 관우가 달려오며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관우를 도와 전예군을 완전히 박살낸 뒤 장비와 합류해 장합을 몰아붙인다. 양번 공방전에서도 활약은 이어져 장비와 함께 장료의 급습을 저지해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고 거짓 후퇴 작전때도 관우와 함께 조홍을 급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전 시점에서는 관우, 장비, 황충과 함께 전선의 한 축을 맡지만 마초의 트라우마를 이용한 조위군의 작전에 휘말려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방덕의 지원으로 간신히 버티고 곧이어 장비가 조홍을 죽이고 지원하며, 패하는 줄 알고 도망쳤던 서량 기병들도 승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다시 돌아오면서 위기를 극복한다.
종전 이후 유비가 중원을 접수할 때는 기존에도 장안 공략을 여러 번 시도하던 서량군벌인 만큼 마초와 방덕에게 장안 공략이 주어진다. 유비는 장안 정도 요충지라면 조조의 정병이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전투는 없었는지 무사히 접수한 후 복귀해 장비와 함께 하북 위나라를 견제하고 있다.
스스로 천하통일을 하는 대신 절도사 체제를 시행하기로 결정한 유비가 마초를 가장 먼저 서량 절도사로 임명해 천수군의 자치권을 인정해준다. 교주, 요동과는 급이 다른 체급과 유비의 세력에서 중요한 위치로 후일 오호의 공세를 막을 주요한 역할을 맡긴 것이라고.
또 유비는 마초는 병사한 인물인지라 수명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222년 유비의 하북 정벌 시점에도 병세 없이 멀쩡해서 장수할 것 같다고 생각을 바꿨다.
하북정벌에서는 서량군 5만을 지휘해 병주 전선 공세를 지휘한다. 병주에는 과거 강제이주시킨 강족, 조조가 복속시킨 흉노족이 들어와 있는데 당연히 근래 약해진 위나라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이들과 말이 통하는 마초가 담당하게 된 것. 여기에다 유비가 2세대의 중역이 될 강유, 등애, 장완, 비의까지 부관으로 붙여준다.
조위 멸망전 때 흉노족의 배반으로 무너진 병주의 위군을 격파한 후 쉽사리 병주를 점령하고 기주로 들어와 휘하의 기병을 동원해 장비와 위연에게 패전하고 흩어지던 선비족을 추격해 궤멸시킨다. 그리고 선비 잔당 처리가 끝나자 업군으로 들어와 북문을 공격한다. 남문이 뚫리면서 업성 내의 위군이 북서쪽 동작대로 몰리자 병력이 빈 북문을 돌파해 위왕궁을 점령하고, 장완이 미처 도착하지 않은 틈을 타 조조가 죽인 마씨 가문 200명의 복수라는 명목으로 조조의 남자 친척 200명을 끌어내 참수하는데 그나마 유비 휘하에 있으면서 그 영향을 받은 덕에 여자와 아이들은 살려준다. 이후 자신의 몸을 묶고 유비에게 벌을 내려줄 것을 자청하나 유비가 황제로 추대되면서 대사면령 대상이 되어 풀려나고 근신 처분을 받지만,[3][4] 복수가 끝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원역사의 수명보다 더 오래 살아서 그런지 바로 중병으로 쓰러지고, 유비에게서 차차기 서량절도사를 마대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유비가 유주 순행을 준비하는 도중, 사망한다.
에필로그에 따르면 마초의 사후 세월이 한참 지나 독발수기능의 난이 일어났을 때 마초의 아들 마강이 독발부를 궤멸시켰지만 그 자신도 전사했다고 한다. 작중 초반에 유비에게 구조된 마초의 아들로 당시 8살이었고, 독발수기능의 난 당시에는 70살에 가까운 나이였다고.
3. 능력
관우, 장비 등과 비등한 최상위권 지휘관이다. 훈련 없이도 강병을 뽑아내는 서량에서도 마초의 군대는 동향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환비를 몇 배씩 뽑아낸다. 방통은 마초를 두고 현 세대 최고의 병법가 중 하나라고 평했다.다만 상황이 받쳐주질 않는 데다가, 대진운이 워낙에 좋지 않은 것이 문제. 장합, 곽회 등의 병법가와 염행, 장료, 장패 등의 떨어지지 않는 무장들과 싸우니 킬 카운트가 없다. 그럼에도 유비군의 주력장수 중 하나로서 패전 한번 없이 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서량이 그 특성상 동오보다 더 결집력이 낮은 호족연합체제라서 조금만 불리해진다 싶으면 다 도망가버리는 것도 패배의 이유 중 하나다. 남양 결전 당시에도 이 단점 때문에 다들 도망가 버렸다가, 상황이 좀 나아지니까 바로 돌아와서 전투를 계속하는 바람에 장합이 욕했을 정도. 잘 흩어지지만 모종의 구심점만 있으면 곧장 응집한다고 언급되는데 유목 제국과 유사한 부분이다.
4. 기타
유비는 마초를 실패한 버락 오바마에 비유했다. 마초는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며 강족의 피가 섞여 이민족들과도 연줄이 있었고, 무엇보다 군재도 뛰어났으니, 만일 동관대전에서 이겼다면 적벽에서 이긴 손권처럼 서량의 군주가 되었을 거라고 한다. 이렇듯 뛰어난 능력과 가문, 소수민족의 핏줄까지 가졌다는 점을 오바마와의 공통점으로 엮은 것이다. 다만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까지 되며 승승장구했지만 마초는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실패한 버락 오바마라 한 것.유비와는 종속적 동맹 관계이며, 이는 다른 유비군 소속 무장들과 다른 특수한 경우다. 일단 유비군에 전적으로 협조하며 군부에서 한손에 드는 좌장군이라는 높은 직위에 있지만, 독자적으로 대군을 거느린 서량의 독립 군벌로서의 세력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조조, 손권 산하에서는 트집잡히기 쉬운 요소지만[5] 임협 시절 기풍이 강한 유비군 내에선 그걸로 마초를 트집잡는 사람은 없으며 마초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유비가 마초를 처음 만났을 때의 평에 따르면 강족 혼혈이라 백인처럼 생긴 걸로 유명했던 아버지 마등처럼 마초도 혼혈 티가 확 나는 미남이라고 한다. 강족은 티베트 계통의 민족이지만 티베트인도 중원인 기준으로는 다소 이질적으로 생긴 편이기도 하고, 당대 서량을 비롯한 중국 서부 일대는 백인계도 많이 살아서 오히려 현대보다 코카소이드 및 유라시안 유전자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기 때문에 설정상 유라시안일 가능성이 높다.
이 혼혈이라는 점이 유비가 마초를 특별히 대우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데, 오호의 진입을 북과 서에서 완전히 틀어막는 건 어려운데 마씨 가문은 이미 강족과 혼혈화가 진행되어 있어 한호 화합의 가교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원 호족명사들은 강족 혼혈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도 많지만 서량과 관중에서는 충분히 먹히고도 남는 명문 혈통임은 부정할 수 없다. 에필로그에서도 독발수기능의 대군에게 기성이 포위당했을 때도 마씨 가문이 끝까지 버틸 기세로 나오자 인근의 강, 저족들이 목숨을 걸고 합세해 싸워준 것만 봐도 마씨 가문이 서량에서 갖는 위상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중원인들도 반오랑캐라 디스하기는 해도 마원의 후손이라서 마냥 무시하지는 않고 본작에서는 마초와 마대가 계한의 개국공신이 되면서 개국공신 가문의 위상이 그대로 이어졌다. 조위의 편을 들었다 몰락한 다른 전한-후한 개국공신 가문이 대숙청으로 몰락한 것을 고려하면 본작의 마씨 가문은 줄을 잘 타서 지방에서라도 승승장구한 셈.
작중 제일의 복수귀 캐릭터로, 복수심이 강조되는 모습이 많으며 원 역사에서도 복수를 위해 싸우다가 실패하고 파멸을 맞이한 인물이었지만 본작에서는 유비 덕분에 복수를 성공한다.
[1] 마원의 딸 명덕황후 마씨의 남편인 후한 명제의 아버지가 광무제이다. 명제는 후한 제2대 황제로 사후 황제의 장인 신분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개국공신이지만 운대 28장에 들어가지 못했다.[2] 실제 제갈탄의 난 당시 제갈탄과 오나라 지원군 지휘관인 문흠이 갈등을 빚다가 제갈탄이 문흠을 죽여버리면서 파국으로 끝난 사례가 있다. 물론 아예 면식도 없던 마초-후음과 달리 제갈탄-문흠은 문흠이 위나라 장수였던 시절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즉 이미 면식이 있다는 차이가 있다.[3] 조조의 딸인 조 태후 때문에 조씨 가문을 어찌 처리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마초가 대신 처리해줘서 신하들은 오히려 좋아했다고...[4] 실제로 마초가 일을 저지른 직후에도 유비는 당황은 할지언정 전혀 분노하지 않았고, 장비는 오히려 왜 죄인이냐면서 마초를 일으키려고 했다. 방통과 제갈량 등은 오히려 내심 좋아할 정도였다.[5] 그나마 본래부터 호족 사회가 강한 동오라면 좀 강한 사병을 거느렸다고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다른 직할지와는 다른 차별성까지 가져오면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