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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1-20 15:09:08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nopad> 파일:유비로 천하쟁패.jpg
장르 대체역사, 빙의
작가 간절히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문피아
카카오페이지
리디
네이버 시리즈
원스토리
연재 기간 2024. 12. 09. ~ 2025. 08. 08.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특징5. 등장인물6. 개변된 역사7. 평가8. 논란
8.1. 느린 전개 및 분량 늘리기8.2. 절도사 체제 도입 논란

1. 개요

한국의 삼국지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간절히.

약칭은 유비쟁패.

2. 줄거리

촉빠였던 곽선호

유원지에 생긴 싱크홀에 빠져 후한 말 군웅 중 한 사람인 유비의 몸에 빙의하게 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략

강대한 조조, 견고한 기반을 가진 손권과 대결해 천하쟁패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4년 12월 9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2025년 2월 3일부터 유료화 되었다.

2025년 4월 24일 카카오페이지에서 115화까지 일괄 업로드 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2025년 6월 12일 리디에서 149화까지 일괄 업로드 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2025년 7월 2일 네이버 시리즈에서 163화까지 일괄 업로드 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2025년 7월 7일 원스토리에서 166화까지 일괄 업로드 되어 연재를 시작했다.

2025년 8월 8일에 올라온 190화 에필로그와 후기를 끝으로 완결되었다.

4. 특징

중국 중세사 석사 학위까지 받고 대학원을 졸업한 20년 진성 촉빠 곽선호가 웹상에서 촉빠들이 위빠오빠들의 공세에 밀리기 시작한 상황을 한탄하다가 싱크홀에 빠져서 입촉 직전의 유비에 빙의하는 소설.[1]

이전 작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등장 인물들의 행동 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나 주역들이 모두 군주이다 보니, 이들의 행동원리가 자세히 조명된다. 지금까지의 작품에는 흔치 않았던 묘사다.[2] 조조가 말년에 찬탈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손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유비를 배신하는지, 관우는 왜 무리를 감수하고 북진을 했어야만 했는지, 곽선호가 빙의한 유비가 백년 뒤의 오호십육국시대라는 참극을 막기 위해 당장 비효율적인 선택지를 고를 수밖에 없는지, 역사속 유비는 왜 실패 했음에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았는지 이유를 하나의 사건이 생길 때마다 적절한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곽선호가 빙의한 시점은 유비가 익주 가맹현에서 한중의 장로를 친다면서 출병은 안하고 와병하는 척 군대와 물자를 모으던 건안 17년(212년)쯤 시점이다. 빙의한 곽선호는 일견 보기엔 제갈량의 융중대가 주장한 입촉이 합리적 전략 같지만 실제론 단점이 명확하다는 점을 파악하고[3][4] 입촉 대신에 유장과의 약속대로 장로의 한중을 공격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삼국이 완전히 정립되고 마주칠 전선이 굳어진 이후의 이야기인 내마속은 유비-조조 시대에 활약한 쟁쟁한 무장들은 소수만 남기고 전부 퇴장한 대신 초반부터 1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하고 한 번 전투에 수만씩 맞부딪치는 데 반해 삼국 정립 직전에 시작되는 본작은 쟁쟁한 1세대 네임드들이 활약하는 대신 조조군 본대를 제외하면 한 번에 동원하는 병력 규모가 적은 편이다.[5][6][7]

213년에 시작해서 219년의 집중 호우를 하이라이트로 잡고 있다보니 진행 속도는 간절히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제목이 천하통일이 아니라 '쟁패'고, 작가의 전작인 내마속과 헉조괄에서 주인공 대에 비통일 엔딩을 낸 사례가 있다는 점, 조조와 유비의 수명 문제 때문에 유비 생전에 천하를 통일하지는 않을 거라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185화에서 조위를 멸망시키면서 천하통일이 이뤄지고 187회에서 유비가 한나라 황제로 즉위하게 되었다.

에필로그에서 '계한서'라는 정사 역사서가 있는 것을 보아 21세기가 되기 전에 유비 왕조가 망한 건 확정이다. 유비 본인도 자신의 이런 조치로도 왕조 교체가 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외적의 침공으로 한족 왕조가 멸망한 사례도 여럿 있음을 고려하면 찬탈이 아니라 외적의 침공으로 멸망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유라시아를 휩쓴 죽음의 공포가 있으니 늦어도 13세기 중후반에는 멸망했을 것으로 보인다.[8] 그래도 원 역사의 오호십육국 시대에 비하면 훨씬 더 평화롭고 길게 존속했음은 분명한데 후일 북중국에서 남중국을 배후지로 해서 오호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유비의 천하통일로 인해 유씨 왕조의 권위가 일본 덴노급 수준이라 왕망, 조조처럼 무리해서 찬탈을 시도하기보다는 덴노처럼 꼭두각시로 놔두고 막부로 나라를 굴리는 게 더 편한 것도 있다.[9]

5.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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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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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평가

전작 '강감찬 천지를 껴안다'의 실패로 절치부심하던 간절히가 비장의 수로 '유비 빙의물'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많다. 간절히 작가의 경우엔 그 동안의 삼국지물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들을 선택한 적은 많았어도 이렇게 삼국 군주 중 하나인 유비 같은 거물을 주인공으로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10] 어쨌든 이 덕분인지 연재 15화만에 선작 1100명을 넘고 유료화 첫날 구매수 1000을 찍는 등 초반부터 화제는 제법 끌어 유지하는 중이다. 또한 진무의 첩 순장 사건이나 오환왕 노석의 사랑을 위한 탈영 사건 등 이전까지 한국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정사 삼국지의 에피소드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대의, 도리라는 껍데기 아래의 속물 근성을 정면으로 들추는 것도 서술상의 특징이다. 거창하게 말하는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생존과 부귀영화를 원해 고른 선택지를 포장했을 뿐이며 명사라는 껍질도 허상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몇 번이나 유장을 말리며 유비를 경계했던 황권의 속내는 유비보다 더 강한 조조에게 투항해 익주 호족의 이권을 보장받으려는 것이었고, 그 반대편의 동주병들도 충성보다 성도의 농장을 더 중시했다. 효를 내세워 유비군을 떠났던 전예는 사실은 계속 있으면 전장에서 죽을 것 같아서 떠난 것일 뿐이고 명사 곽현신이 압송되어 가면서도 당당했던 건 부끄러움이 없이 깨끗하게 살아와서가 아니라 그냥 위나라 윗전에 인맥이 많아서 풀려나올 자신이 있어서였다. 한수처럼 아예 대놓고 백성들을 이용해 정치질을 일삼는 부류도 있다. 유비와 조조는 이 속물 근성을 이용해 세력을 키우면서도 한편으론 거부감을 내비치는 인물상으로 세력의 강약과 성향 차이로 대응이 달라진다.

다만 유비가 지나치게 경박하고 격식없는 말투를 사용해서 원 역사 유비의 출생(유협 출신)에 현대 젊은이 곽선호의 영혼이 빙의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어색하다는 불평이 있다. 속으로 하는 거야 현대인이라 그렇다고 봐도 되니 상관이 없는데 양부의 고모를 대할 때처럼 대놓고 그러는 경우가 많다는 것. 사실 이는 백이잇 시절부터 제기되는 작가의 고질적인 문제기도 하다. 결국 양부 고모 파트는 유비가 정중하게 말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그 외에도 캐릭터성에 대한 부분도 아쉬운데 전작인 내마속에서 보여줬던 여러 다양하고 개성적인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들이 적으며 매력적이지도 않다. 심지어 제갈량, 위연, 장합, 사마의, 육손 등 전작 캐릭터들도 전작과 다른 모습에 신선하다는 반응은 있어도 무언가 특별히 기억날만한 캐릭터성은 희미하다. 그나마 관우 정도가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무신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모습을 묘사해주긴 했지만 대신 이쪽도 능력을 너프시켜 적들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11][12]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도 그랬지만 조위와 싸울 때보다 동오를 팰 때의 필력이 걸출하다는 평을 듣는다(...). 상대적으로 재미없다는 평을 들었던 조위 파트도 조조 사후 조비를 중심으로 진영이 재편된 뒤부터 필력이 올랐다는 평을 들으면서 그냥 조조 진영의 캐릭터성이 작가와 상성이 안 맞았던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13] 특히 전작에서부터 나오던 오까로서의 면이 제대로 폭발해서 오까 1티어 소설로도 꼽힌다.

간절히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엔딩 문제도 다시 일어났는데, 특히 본작에서는 독자들의 기대와 완전히 다른 엔딩(절도사제 도입)이 날 것처럼 흘러가면서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아졌다. 단순히 엔딩이 이상하다 못해 주인공의 캐릭터성 붕괴 논란까지 이어졌기 때문. 그러나 이후 어느정도 수습되긴 했다.

전체적으로 장점도 없지는 않으나 작가의 전성기로 꼽히는 아! 내가 마속이다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과 같은 작품 이후 작가의 하향세에 쐐기를 박은 작품으로 꼽히는 등, 전체적인 평은 좋지 않다.[14]

그래도 이후 절도사 논란은 잘 수습되었고 유비의 사망씬은 잘 뽑아내면서 비록 다사다난했지만 마무리는 잘 지었다는 평을 들으며 어느 정도 수습에 성공하면서 헉조괄마냥 아예 용두사미까지 가지는 않았다.

8. 논란

8.1. 느린 전개 및 분량 늘리기

그 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219년 대홍수를 기점으로 작품을 질질 끈다는 지적이 나왔다. 회수로는 90회부터 154화까지이다.

쓸데없는 분량 늘리기와 느린 전개에 대하여 독자들이 불만이 쌓이던 중 103회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문빙에 대한 설명으로 분량의 절반을 할애하거나 104화에서 불필요한 엑스트라의 죽음에 대한 묘사로 결국 독자들이 폭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창 대홍수에 따른 유비의 반격, 조조의 현실 부정, 손권의 폭주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뜬금없이 나온 장면인데다가 심지어 그 죽음의 과정 중 절반은 또 과거회상이었다. 그 전에도 주인공 측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조조 체제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묘사는 종종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냥 두세줄 묘사면 충분할 걸 회차 절반이나 할애하며 분량 채우기를 한 것은 금요일 절단마공을 위한 분량 늘리기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엑스트라 군관의 죽음 대신 손권의 폭주라도 보여줬다면 이렇게까지 여론이 폭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작가는 그 전에도 금요일마다 중요한 장면에서 끊어버리는 행위를 종종 했었다. 물론 작가 입장에선 독자들을 잡아둬야 하기에 어느 정도 필요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일부러 어디에서 자를지 정해놓고 글을 쓰면서 분량을 맞추니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온 셈.

이에 독자들은 유료화 시작 때 안했던 연참을 지금이라도 하라며 독촉했고 작가는 다음날 바로 연참을 진행하며 여론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결정적인 장면을 원할 때에 넣기 위해 분량 및 비중을 조절하고 있다는 불만은 남아있다.[15] 한번 터진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 만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개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선 원래 예정에 없던 작품을 급작스럽게 준비하느라 이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16][17]
이후 127화에서 수몰된 번성에 3개월 넘게 갇혀 사실상 전투력을 상실했을 조인이 황권, 장임, 부융, 위연, 조운을 상대로 연전을 펼치며 분전하는, 누가봐도 억지로 분량을 늘리기 위해 개연성을 포기한 어이없는 장면이 나오며 민심은 다시 수직으로 내리꽂혔다.[18][19]

이미 유비의 북벌을 기점으로 간절히 답지 않은 질질끄는 서술[20]과 무가치한 전개에 지쳐있던 독자들은 그나마 관우의 무쌍과 촉한 어벤져스 어셈블같은 촉뽕 맛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억지로 조인에게 버프를 먹인 이 회차를 기점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폭발하고 만다. 그 결과 무려 대역소설 최초로 망작 공인인증수표라는 소갈비 레시피가 댓글로 달리며 압도적인 추천을 받기까지 했다.

작가도 뒤늦게나마 수습해야한다는 판단이 든 것인지 128화에서 조인을 황급히 자살시키고 번성을 이제야 함락시키는 등 이전화보단 빠른 전개를 진행했지만 정작 어떻게 조인이 그렇게 쌩쌩한지는 하나도 설명이 안 된채 허무하게 가버린데다 뒤이은 조휴와 허저는 철기를 이끌고 돌진했음에도 뻘밭이 그세 말랐는지 번성과 한참 가깝던 유비와 거의 동시에 도착해 돌격을 때려버리는 등[21] 개연성을 무시한 편의주의가 난무하면서 페가수스 기병대장 조휴, 드래곤 라이더 허저, 진삼국무쌍 플레이블 조인, 네크로멘시 만총 등 조조군은 이세계인들이라는 드립이 난무하고 기어이 다시 소갈비찜 레시피가 박제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22]

결론적으로 이 128화는 127화가 분량 늘리기용 회차였다는 걸 작가가 자인한 회차가 되었다. 실제로 126화에서 바로 128화로 넘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런 127~8화에서 보여준 추태에 대해 일정 회차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스토리를 끌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만일 이번 유비의 북벌 파트가 끝나면 메인 빌런인 조조가 죽어버리고 기세를 탄 유비를 손권이 막을 수 있을리가 없는지라 사실상 유비의 승리가 굳어져버려 이야기를 끌고 나갈 동력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그나마 유비 vs 조조라는 메인 이벤트가 진행중인 유비의 북벌을 질질 끌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이에 대해선 간절히가 시대를 잘못 골라 소설 전개를 질질 끌 수 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전 작들과 달리 유비의 입촉 시기면 유비에게 주어진 시간 자체도 적을 뿐더러[23] 형주 공방전이 끝나면 딱히 변수가 될 만한 사건도 없는 상황이다.[24][25] 그래서 시대상 빠른 완결이 날 수 밖에 없는데 편당 구매수가 네 자릿 수를 꾸준히 넘기는 작품의 조기 완결은 출판사에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결국 출판사 눈치를 봐서라도 편수를 최대한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26] 소설 최신화 시점인 219년이면 주인공인 유비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년, 메인 빌런인 조조는 1년도 안된다. 즉,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메인 인물에게 주어진 시간 자체가 촉박하다보니 사실상 유비쟁패의 두 메인 인물이 겪을 마지막 빅 이벤트가 될 형주 공방전을 질질 끌 수 밖에 없었다는 것.[27] 차라리 대부분의 유비 대역이 그랬듯이 탁군이나 서주 스타팅으로 진행했다면 시간이 넉넉하기에 질질 끌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129화는 무난한 전개가 펼쳐졌지만 유비군이 분명 한중을 통해 보급받는 것이 주라고 이전까지 밝혔음에도 은근슬쩍 형주 보급이 주가 된다고 바꿔 억지 위기를 조성하려 하는 듯한 편의주의적 전개는 여전한 모습이고[28] 이에 따라 댓글창도 작가를 옹호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으로 나뉘어 난장판이 나는 등 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간절히도 딱히 이를 해소할 생각은 없는 듯 연참이나 독자들에게 사과를 하는 대신 묵묵부답으로 나오고 있었지만[29] 130화에서 한중의 군량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어 더 가까운 형주가 근래는 주요 보급로가 되었다는 설명을 넣는다는 정면돌파 방식을 택했다. 다만 대체적인 평은 설명이 너무 늦었다는 평이 지배적이며 차라리 양번 공방전이 한창 진행 중 일때 설명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 의견을 내고 있다.[30]

그나마 131화의 전개는 모처럼 호평을 받으며 비판 여론은 어느정도 사그러 들었고, 오나라 파트도 무난하게 쓰면서 안정화되나 싶었지만...다시 위나라 파트가 시작되자마자 귀신같이 분량 늘리기가 시작되고 이어진 전면전에서도 주인공이 조조의 일갈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거나 단조롭고 지리멸렬한 전투묘사로 평이 나빠졌다.[31] 차라리 말싸움으로 끝내되 신삼국의 한중 공방전처럼 유비와 조조의 인상적이고 강렬한 말싸움이라도 보여줬다면 큰 하락은 없었겠지만 이도저도 못한 전개로 인해 다시금 민심이 떡락했다. 그나마 뒤이은 전투신들은 무난무난하게 전개하고 152화에서 다량의 촉뽕을 선사하면서 어느정도 민심이 수습되긴 했다.

8.2. 절도사 체제 도입 논란

주인공이 손오 정복으로 천하통일이 다가와지자 통일 후 중국의 정치체제 모델로 당나라의 절도사 체제를 본따 나라를 산산조각내놓겠다는 정신나간 계획을 대안이랍시고 내놓으면서 마지막까지 작품성을 나락으로 처박았다는 비난이 일었다. 주인공은 지금 자기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해도 강남 오나라 지역은 그동안 손오 정권의 경제개발로 인해 민심이 화북의 한나라 황제에게서 완전히 떠나 후일 육조시대로 화북과는 다른 문화권을 형성할 것임과, 곧 기후변화와 기근으로 인해 북방민족들이 대거 중국으로 쳐들어와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이 터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일단 헌제에게 명목상의 한나라 정권을 반환하되 자신이 강남의 왕이 되어 구 촉, 오 영토를 차지하고 경제 개발에 매진하는 한편 중원은 당나라식 절도사 체제로 개편하여 각 절도사들이 완전 독립하지는 못할 정도로 목줄을 잡은 상태에서 일종의 백신 효과처럼 미리 '통제된 분열'을 일으켜 여러 절도사국들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잡으며 북방민족이 화북에 쳐들어와도 원역사 오호십육국처럼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고 당나라 절도사 체제가 안사의 난 이후에도 130년 더 버틴 것처럼 버티면서 북방민족들을 점차 문화적으로 동화시키는 연착륙 전략으로 대응하고, 유비의 후손들은 그동안 강남을 잘 지켰다가 혼란이 지나간 후 중원을 재통일 하겠다는 100년을 바라보는 장기전략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작가는 당나라가 안사의 난, 토번과 위구르의 침입에도 130년을 더 버틴 것은 절도사 체제의 상호 견제 균형의 효과라고 생각하고, 송, 명이 북방민족에게 패배를 거듭한 것은 지나친 중앙집권적 군사체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작중에 유비의 입을 빌어 서술하고 있는데, 막상 역사가 말해주듯 중국에서 저런 의도로 지방분립 시켜놓은 체제의 결말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전부 내전 엔딩으로 자멸이었다. 또한, 당나라가 개원의 치라는 전성기를 마감시키고 멸망의 위기에 놓이게 된 사건인 안사의 난과 복고회은의 난, 그리고 위기를 틈탄 토번 등 외세의 침입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방의 군권을 가진 절도사가 중앙 정권에 불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위기를 타파한 건 (물론 절도사 간의 상호 견제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 국난을 극복하면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존재로 부각된 곽자의가 당 조정에 맹목적이다시피 충성을 바침으로써 당 조정이 곽자의를 매개로 절도사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32] 반면, 황소의 난으로 인해 급부상한 주전충은 곽자의와는 다르게 당 황실을 휘어잡은 끝에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함으로써 절도사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33]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절도사의 기원이 되는 시스템은 후한 광무제 대부터 조위를 거쳐 서진 대까지 확인된다.# 그럼에도 작가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 이미 조조가 찬탈 직전까지 다다른 상황인 데다 헌제는 치적이 없어 후한황실의 권위 역시 파탄나버렸기에 지방에 분립된 절도사들이 중앙 정부에 충성할 당위성이 있냐는 것이다. 당장 해당 링크의 예시에 나온 조진, 조휴, 하후상, 장패의 경우 조진/조휴/하후상은 사실상 조씨/하후씨 일족 우대 정책에 힘입어 조위에 충성하던 인물들이라 당위성이 충분했고, 장패는 조조에게 가장 결정적이었던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불리한 형세에도 불구하고) 조조를 지지하여 청주를 견제했고 이후로도 조위에 충성하는 제스쳐를 꾸준히 보내주었기에 통 크게 절도사로 임명해 포용한다는 증거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반면, 후한 황실의 경우 군웅할거를 거치며 무능함이 드러나 권위가 땅바닥까지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절도사 체제를 도입핫녀면 후한 황실의 권위를 올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에도 이 과정은 수행할 생각도 없어 보이는 데다 정작 후한 황실과 절도사들의 매개가 될 수 있는 유비가 촉-오 지방으로 가버리면 절도사들이 과연 후한 황실을 따르겠냐는 것이다. 즉, 중앙정부에 충성을 바칠 명분이 없는 절도사들이 후한 황실을 방치할 우려가 커졌으며, 결과적으로는 북방민족으로 후한 황실을 차도살인하는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빙비가 제시한 재통일의 기간에 원 역사에서는 독발수기능의 난(270~279)과 영가의 난(308~316)이 벌어졌는데, 독발수기능의 난은 호열이나 견홍을 비롯한 지방군 지휘관들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커진 난을 중앙에서 파견된 사마준과 문앙 등이 수습하였으며 영가의 난은 팔왕의 난으로 권력 투쟁을 일삼던 군권을 쥔 왕족들이 북방 민족을 끌어들인 결과 벌어진 사태였다. 절도사 체제는 독발수기능의 난과 영가의 난을 억제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역사에 나온 난을 키운 원인들을 방치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것에 가까우며, 이러한 우려 사항들을 '역사학도'인 곽선호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개연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이 그동안 '역사 지식을 활용해 유비가 가진 이상을 유비스러운 모습으로 실현'하던 그 동안의 행보와 일치할 지도 의문이다. 후한 황실에 대한 어떠한 보험도 없이 방치해버리는 절도사 체제와, 촉-오에 기반을 다진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후한 황실을 팽개치고 강남에 정권을 수립하려는 전략을 과연 유비가 행할만한 것인가에 대한 개연성 역시 독자들이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나는 중국이 좋다. 그래서 여러 개였으면 더 좋겠다.

이러한 문제는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는 물론이고 기어이 작품의 댓글창마저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이후 작가의 서술을 보면 작중의 오리지널 유비가 처음부터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젊은 시절 유비의 부하였다가 조조의 편으로 갈아탄 진군의 평에 따르면 유비는 오환족과 현지 호족들 같은 각종 세력들을 적극적으로 제어할 의지가 없었고 적당한 수준의 중재만 하며 부임지를 통치했고 사람들을 잘 챙겨줘서 인기는 많았지만 이민족이나 현지 호족들의 기세가 너무 강해서 자치권이 필연적이었던 변방의 왕이나 어울리는 사람이지 천하를 통치하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사마의도 그런 유비의 행동에 대해 나라를 공중분해시킬 짓이라고 깠을 정도. 다만 직후 진군과 사마의가 '동생은 형에게 죽어야 하고 변방은 중앙을 위해 죽어야 한다'는 망언을 남겼다는 게 문제...

그 외에 유비가 그리 원리원칙적으로 나라를 굴리는 인물도 아니다.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 유비는 자신의 아들인 유선을 믿지 못해 제갈량에게 사실상 국가를 넘기다시피 했고, 제갈량이 죽기 전 유비가 자신에게 자기 아들이 못 미더우면 그냥 네가 황제 해라고 했을 때 립서비스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진심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 것이나, 작중에서 유비가 조조와 사마의의 찬탈 수법을 깠지 찬탈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등 유비 자체가 변방의 시골 출신 임협의 사고방식을 못 벗어난 인물이라는 설정은 꽤 일찍부터 있었던 듯하다. 유비 곁에 있다가 '이대로 가다가는 죽겠다' 싶어서 떠났던 전예는 유비는 동시대 다른 군벌들과 달리 자신을 떠나는 것을 막지도 죽이려 들지도 않고 그냥 보내주는 등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안 막는 성향이 있어서 대하기는 편했지만 그렇기에 유비는 천하를 쥐면 안 된다고 평하기도 했다. 전작인 내마속에서는 이런 촉한의 풍토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났지만, 본작에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조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작가가 전개 터진 김에 그냥 각 잡고 피카레스크로 가려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사실 간절히 작가가 민주공화제-지방분권을 꽤 좋아하는지 소설상에 나오는 주인공의 국가들의 결말을 이리 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도 별 생각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지방분권을 엔딩으로 쓰려 했다가 본인의 생각보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작가가 독자들의 논란을 의식했는지 178화 이후에는 은근슬쩍 절도사 체제를 묻어버리는 것으로 전개를 바꾸었다. 그러나 절도사제를 지지하던 독자들은 이런 작가의 변화에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고 다른 독자들은 그런 독자들을 비판하며 댓글창이 또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이후 작가는 185~187회에서 조비가 모두의 눈 앞에서 헌제를 시해한 뒤 본인도 곧바로 자살하고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는 것으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기존의 지방분권 구상을 사실상 버렸음을 보여주었다.

결국 유비는 절도사 체제를 크게 축소, 중원과 각 요충지는 계속 중원이 쥐고 있으나, 강동, 서량, 파촉, 교주, 요동, 유주 총 6개의 절도사를 설립하기로 한다. 강동절도사 유봉, 서량절도사 방덕(마대), 촉군 절도사 황권 등이 유비가 황제에 즉위 이후 새로이 임명된다. 각 절도사들은 유봉을 제외하면 모두 해당 지역 토박이로 각 지역에서 십 년 이상 일하면서 각 지역을 발전시킬 것을 임무로 받는다. 또한 절도사들은 격대지정 원칙으로 차기를 추천할 수 없고 차차기만 추천하도록 하고 서량은 방덕과 마대의 가문, 탁군은 관우와 장비의 가문 등 각 2개 가문이 교대로 절도사에 오르도록 하여 한 가문이 고인물이 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강동의 경우는 합비, 파촉의 경우는 한중, 서량의 경우는 관중 등 각 지역을 제어할 수 있는 지형의 요충지는 낙양의 유비 조정에서 쥐고 있다. 공손연이 독립을 꿈꾸는 요동은 유비 사후 불온한 움직임이 보이면 토벌해서 공손씨를 멸망시키고 절도사직을 회수할 예정이며, 마지막으로 북방 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탁군(유주) 절도사가 신설되어 관우와 장비의 후손들이 담당하게 되면서 모든 체제 성립은 마무리된다. 이에 대한 독자들의 평은 처음부터 이렇게 설정했어야 한다는 평이 지배적이다.[34][35]
[1] 박사학위를 못 따고 빙의한 것에 자격지심이 있는지 임상대치 중에 박사였으면 또렷한 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2] 전작인 내마속의 제갈량과 손권 등도 이런 묘사는 있었으나, 주인공이 대등하게 속내를 파악해볼 상대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신하이자 장수라서 직접적인 적수가 아니다보니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아예 조조, 손권 시점에서도 이들의 생각과 목적이 묘사된다.[3] 유비가 유표 사후에 형주 장악에 실패하였고, 적벽대전에선 주역이 아닌 객장으로 참여하면서 손권에게서 남군을 빌리는 형식으로 형남 장악을 시작하면서 시작부터 꼬여버린 상태였는데, 입촉 과정에서 의인으로 소문난 유비의 평판이 크게 깎인데다 3년간 파촉 장악에 집중하느라 위-오 전쟁, 위-서량 전쟁 등 천하의 대세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한 시점에 관여할 수 없었으며 유비가 파촉을 점령한 직후 위가 장로가 차지하고 있던 한중과 파동을 점령해버리고, 기껏 유비가 자력으로 차지한 형남 4군 중 장사와 계양, 2군은 익양대치로 오에게 양보하는 등 여러모로 손해를 많이 봤다. 인재 시점에서도 손해인 게 유비를 따라 입촉을 보좌하던 책사 방통이 전사함에 따라 형주를 방어하던 제갈량과 장비를 불러들여야 해서 형주를 관우 1명에게 맡겨야 했고, 한중공방전의 주역으로 맹활약한 황충과 법정도 220년에 죽기에 210년대 초반에 3년이나 되는 시간을 파촉을 차지하는 일에 낭비할 수 없다.[4] 사실 일단 큰 틀에서는 제갈량의 전략도 어느 정도 따른 것이긴 하다. 제갈량은 익주와 형주를 아우르고 서쪽의 융족(혹은 양주 군벌 마초)와 접촉하면서 관중으로 유비가 진격하면 된다고 했는데 그 대전략 자체는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 사실 그렇기 때문에 원 역사에서도 방통이 바로 유장 참수작전으로 입촉에 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고 제안했는데, 문제는 유비가 그걸 거부하고 벌인 익주 정벌전쟁에 시간을 너무 끌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시 익주에서 유비군을 관찰한 여대가 유비군이 대패해 백제성으로 도망갔다는 증언을 하는 등 유비 본인이 익주의 군사적 역량을 잘못 재는 실수를 한 것이다. 주인공이 이 점을 대놓고 지적하면서 원 역사 유비의 선택을 까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정한 것이나 유비의 군사적 능력이 대놓고 별로라는 서술한 것으로 보면 간절히 작가 역시 유비가 굳이 방통의 중책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실책이라고 보는 것으로 보인다.[5] 때문에 서량 전역이 격해질 무렵에도 양군은 합쳐도 5만 내외에 주력군은 3만 내에서 정리되는 데 반해 삼국지를 한번만 읽어봐도 기억하는 네임드들이 대거 출정해서(유비군만 해도 오호대장군 중 형남에 있는 조운을 제외한 4명(관우, 장비, 황충, 마초)외에도 방통과 법정, 위연 등도 네임드다. 조조군도 하후연, 서황, 장합, 조홍 등 삼국지연의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네임드 장수들이 출진한다.) 위화감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다. 결국 유비와 조조가 총력을 기울인 대군 대치도 탐색전으로 끝난다. 물론 이 지구의 연의에선 10배 뻥튀기 될 예정이다.[6] 특히 내마속에선 각 국가의 중진이자 베테랑으로 묘사되는 제갈량, 위연, 장완, 장합, 사마의, 육손 등이 여기서는 1세대 네임드들이 건재해서 일종의 짬찌처럼 묘사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감회를 느끼는 독자들도 있다.[7] 애당초 유비는 조조가 전력을 내지 못하는 빈틈을 노리고 있고, 조조는 조조대로 유비가 힘을 기르는 걸 방해하려는 걸 전제로 두고 있어서 서로의 노림수가 먹히는 바람에 이렇게 되는 것.[8] 가장 유력한 시기는 원역사에서 남송이 멸망한 1279년이다.[9] 막부 체제의 원조는 한나라로 원 역사 전한-후한-촉한 모두 막부 체제가 매우 자주 나타났다. 21세기 학계에서는 조조, 제갈량, 사마의 정권도 막부 체제로 분류한다.[10] 삼국지 관련 작품이 4개(연중 포함)인데, 처음 두개의 작품은 아예 가상인물이었고 실존인물도 마속과 간옹(연중작인 삼국지: 신도부터 시작하는 교주생활의 주인공)으로 이 둘은 밈화로 유명은 할지언정(마속은 등산왕, 간옹은 간손미) 거물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는 인물들이다.[11] 그 외에도 장비, 마초, 조운 등도 무력이 너프되어 적장들이 이들을 우습게 보는 묘사도 들어가며 적들에게 고전하는 모습도 자주 나온다. 반대로 조인 같은 경우엔 인간 무쌍을 찍으며 버프를 받아 오히려 오호대장군들보다 더 강한 모습을 보인다. 촉한 절세기의 무장들이 모였음에도 이러한 매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12] 그나마 관우 같은 경우 작가도 잘못된 걸 인식 했는지 내용이 전개되면서 무신 이미지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우해준 편이다. 그외에는 황충도 원 역사의 하후연에 더해 곽회까지 죽이는 등 원역사보다 공을 더 세웠고 명궁이라는 캐릭터성도 나름 살려지는 등 꽤 대우가 좋다.[13] 겉보기에는 군자, 호걸 같더라도 내면에 속물 근성 있어 희화화하기 좋은 캐릭터, 흑막 캐릭터는 능숙하게 조형하는데 진중한 악역 캐릭터를 다루는 데는 애를 먹는 모습이 보인다.[14] 103화 이전까지만 해도 무난히 흘러가는 듯했다. 물론 캐릭터성의 문제가 있긴 했으나 주인공인 유비의 비중이 일단 확보되어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비중이 내마속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어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103화~104화의 뜬금없는 엑스트라 인물의 일화 삽입, 127화에서 누가 봐도 말이 안될 정도의 조인의 분전 등 억지 분량 늘리기라는 논란이 슬슬 제기되면서 조위 파트가 계속 질질 끌린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끝내 유비라면 절대로 시도하지도 않았을 절도사 제도 도입이라는 초대형 폭탄을 제시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논쟁으로 커뮤니티까지 불태워버리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15] 2번이나 크게 패했는데도 큰 피해없이 퇴각했다는 장합. 아무리 유비의 기병 전력이 떨어진다지만 마초를 위시한 서량 세력을 포용한 현 시점에서 조조를 상대로 가장 필요한 기병 전력을 갖추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이를 단순히 전력이 떨어져 피해를 주지 못했다라고 얼버부리니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몇번이나 무너질 위기였는데도 조조가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결국 버틸 것으로 보이는 번성 역시 문제였고, 실제로 작 중에서 조조가 올때까지 버텼다.[16] 실제로 결말이 좀 허무하다 평 받은 전생런, 헉조괄이 이런 케이스였다. 둘 다 원래 다른 작품을 연재하려다 인기 저조로 연중하면서 그 땜빵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 이번 유비쟁패도 강감찬 천지를 껴안다가 연중되며 그 땜빵을 메우고자 나온 작품이다.[17] 5월 6일(화)에 작가가 개인적인 일로 휴재를 냈는데 이 부분도 비축분이 없는 당일치기 연재로 진행되기에 휴재를 한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참고로 휴재 공지글은 5월 2일(금)에 올라왔으며 5월 5일(월) 연재는 정상적으로 올라왔다. 말하자면 3일의 시간이 있었기에 작가가 마음만 먹었으면 연재가 가능했던 부분. 6월에도 공휴일에 연재를 쉬면서 작품을 진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전개나 스토리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기에 당일치기라는 추측에 힘을 더하고 있다.[18] 상식적으로 수몰된 번성에서 어찌저찌 군량을 수습했다고 해도 물에 젖은 물자들이 없을 리가 없고, 당연히 보존되는 기한 또한 급격히 줄어든다. 물론 조인이라는 확실한 종친 구심점이 있으니 정신력으론 어찌저찌 버틸 순 있겠지만 밥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싸울 힘이 제대로 날리가 없고, 홍수가 났으니 전염병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 126화까지도 이런 묘사가 나왔었으니, 그나마 조인 출성 후 최후의 구심점이었던 만총이 죽은 순간 번성은 무너져야 정상이지만 갑자기 뻘밭이 되서 위연군의 진군이 더뎌졌다는 핑계로 조인이 번성에 돌아오는 건 누가봐도 억지일 수 밖에 없다. 특히 아무리 급하다지만 형주 출신인 위연과 방통이 홍수의 여파에 전혀 대비하는 모습이 안 보이는 것도 개연성이 없는 또다른 요소. 더구나 차라리 조인이 어떻게든 성에 돌아오려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실패하고 이왕 이리된 거 조조가 올 때까지 시간을 끌겠다며 번성과 유비군 본대 사이에서 끝까지 분투하다 죽는 전개였다면 이렇게까지 욕을 먹진 않았을 것이다.[19] 백번 양보해서 조인의 무쌍이야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있는데로 끌어다 썼다 칠 수 있고, 실제로 가후가 조조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전개까지만 해도 127화의 전개는 나름 괜찮았다. 그러나 갑자기 위연이 뻘밭에 발목 잡혔다 하는 순간서 삐걱이더니(그래도 이것까지는 아슬아슬함을 위한 전개로 봐줄만은 했다. 문제는 뒤에 나오듯 조인이 기어이 성에 들어왔다는 것.) 기어이 조인이 돌아오는 장면이 나오며 완전히 무너진 것.[20] 형주 공방전에서 유비(곽선호)가 짜둔 판 자체가 원 역사에 비해 유비 측에 극도로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했는데, 정작 조홍과 장합, 곽회에게 먹인 2번의 패배를 제외하면 홍수가 나는 219년 7월까지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도 못했다. 게다가 원 역사의 형주 공방전에서 관우 측의 일시적인 우세를 이끌어낸 홍수를 끼고 촉의 모든 역량에 관우까지 끼고도 원 역사의 우금 항복 외에는 서황의 전사로 인해 번성을 구원할 군대를 역으로 격파한 것밖에 추가적인 전과가 없다. 더구나 후음의 난에 호응하여 결국 홍수 이후 점령한 완성은 정작 형주 공방전의 전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어 이럴거면 그냥 원 역사처럼 홍수를 틈타 양번을 기습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21] 그나마 원래부터 형북에 주둔하면서 지형 숙지 시간이 있었던 조인과 달리 조휴와 허저는 양번공방전 이전까진 단 한 번도 형주에 와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기에 지형 드립도 안 통한다.[22] 결국 이 부분은 촉한군이 남긴 참호로 인해 조위 원군의 진격이 둔화된 사이 번성과 더 가까이 있던 촉한군이 일찌감치 인의 방벽을 쳐서 허저와 조휴가 끝내 뚫는데 실패했다는 내용으로 수정되었다.[23] 소설 시작 시점인 213년에서 7년 뒤에 조조가 죽고 10년 뒤에 유비가 죽는다. 즉, 다른 작품들에 비해 메인 빌런인 조조와 주인공인 유비가 활약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유비는 이릉 패전의 충격이 사망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큼 이릉 패전이 사라지면서 수명을 늘릴 여지라도 있지만 조조는 빼박 자연사라 그것도 불가능하다.[24] 양번을 뺏긴 채 조조가 죽으면 조조 세력은 후계 갈등으로 순식간에 내부분열이 일어나 원소 꼴이 나버릴 가능성이 크며 심지어 다음 군주인 조비도 일찍 죽기에 혼란이 또다시 예정되어 있다. 거기에 손권은 조조보다 세력이 약하니 조조급 빌런 역할은 기대할 수 없다.[25] 반란을 다루려 해도 그나마 해볼만한게 남중 반란인데 이것도 유비 사후 2년 뒤에나 벌어진다. 그리고 원역사에서도 제갈량이 1년도 안되서 제압한 반란이라(물론 이후 추가 반란이 터지긴 했지만) 끽해야 위와 오의 수명 연장 수준이지 큰 변수가 되긴 무리다.[26] 특히 이전작인 헉조괄도 200화를 못 넘긴채 완결나고(간절히가 200화를 넘긴 작품은 봉포, 내마속, CM29 정도인데 그나마 봉포는 후기 포함이라 간신히 200화를 채운 것이다.) 강감찬, 천지를 껴안다의 실패로 인해 출판사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27] 형주 공방전에서 유비가 이겨버리면 이릉대전도 빅 이벤트라 볼 수 없다. 만일 유비가 형주를 온전히 다 먹는다면 동오 역시 유비의 상대가 못 되기 때문.[28] 물론 계속되는 혼란으로 인해 작가가 정신이 없어서 놓쳤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다만 굳이 밥을 굶는다보다는 보낸 원군이 박살난다면 강릉이 사실상 고립되고 유용한 퇴로도 끊기는 것이니(이전화에서 밝혀졌듯 상용 루트는 진군로로는 적합하지만 퇴로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비도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면 편의주의적 전개로 보이진 않았을것이니 이건 간절히가 잘못 선택한게 맞다.[29] 같은 화에서 후원에 대한 감사 인사는 제대로 썼다.[30] 사실 이것도 따지면 억지 위기 조성에 가까운데 강릉-번성과 상용-번성간의 거리는 별차이가 없을뿐더러(다만 강릉-번성이 상용-번성보다 거리상으론 더 가깝긴 하다. 일직선 루트가 뚫린게 상용-번성이라 체감상 큰 차이가 안날 뿐.) 지류가 복잡하게 얽힌 강릉 방면과 달리 상용 쪽은 한수를 타고 쭉 내려가면 되기 때문. 한중의 식량이 부족해졌단 것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조조 수명도 알고 존버 메타로 계획짜던 주인공이 정작 식량확보를 소홀히 했다는거니 어느쪽이든 주인공 내려치기와 조조군 올려치기가 성립된다.(물론 한중에서 10만 대군이 1년 먹을 군량을 댄 것이니 그게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거기다 수송하는 인력과 가축들이 먹는 양도 생각하면... 아무리 많이 준비해도 부족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이는 후방이 반란으로 인해 뒤집어지고 있는 조조군도 큰 차이가 없다는 또 다른 문제가 나오는데 이것도 조조가 유비보단 늦게 출병했으니 군량 측면에선 조금 더 여유가 있다는 방식으로 설명 할 순 있다.)[31] 다만 말싸움만으로 끝내서 절단마공을 시전하는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던 판이라 작가가 그걸 의식해서 말싸움을 빨리 끝내고 그 빈 자리에 전투신을 넣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다만 그게 역효과가 났다는게 문제이며 이 주장이 사실일시 과거부터 보인 절단마공 행보가 이번 회차서 간절히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32] 곽자의가 받은 시호가 바로 분양 충무왕이다. 충무(시호) 문서에서도 드러나듯 무로써 나라에 충성한 인물에게 내려지는 시호다.[33] 주전충의 본명은 주온인데, 당나라에게 충성하라는 의미가 있는 전충(全忠)이란 이름을 내려준 것이었다. 당 황실에서 직접적으로 절도사를 제어할 수단은 없는 것을 인정하여 주전충에게 곽자의의 역할을 기대했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34] 처음 작중에 나왔던 절도사직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너무 많고, 두 번째로 절도사를 통제할 수 있는 권위가 중앙 정부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이다. 즉, 개선된 절도사 체제의 경우 사실상 후한의 체제에서 중앙 정부가 통제하기 쉽지 않거나(강동, 파촉), 변경과의 충돌이 너무 잦은 지역(서량, 교주, 요동, 유주)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절도사가 대물림되어 커지는 것을 방지했으며, 절도사가 반기를 들었을 때 막을 수단으로 한중과 관중, 합비 등의 요지를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등, 사실상 변경 지역을 제외한 핵심 지역을 중앙 정부의 아래에 놓으면서 기존의 의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중앙 집권 형태에 가까워졌다.[35] 공교롭게도, 원래 촉한의 강역인 형주 외에도 조위의 강역이었던 기주나 연주, 사례 등을 중앙 정부가 직접 행정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살생부를 통해 조위의 핵심 권력층을 죄다 학살해버렸기 때문이다. 한을 계승했다고는 하나 엄연히 촉한이 근본이었기에 해당 지역의 유력 세력들이 저항할 여지가 있었는데 그러한 세력들이 조위의 멸망과 함께 싸그리 멸절된 것. 원 역사에서 주전충이 당을 멸망시키며 기존의 지배층을 학살한 것 때문에 이후 송나라에서는 당나라 시기까지 지배층의 핵심 세력이었던 문벌귀족이 득세하는 일이 없어진 것과 같은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