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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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TS, 사극 로맨스 |
작가 | 간절히 |
출판사 | KW북스 |
연재처 | |
연재 기간 | 2022. 02. 04. ~ 2022. 11.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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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후삼국시대 배경 대체역사물 웹소설. 작가는 간절히. 약칭은 cm29 또는 시29.2. 줄거리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로 진학한 선우.
막막한 취업의 현실 아래 어느 날, 씽크홀에 빠지게 되고......
깨어나 보니, 자신이 전공한 고려시대 호족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내가... 여자가 되었다고? 게다가 왕건의 아들, 왕무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이 결혼 안 해! 아니, 절대 못 해!!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파혼(?) 스토리.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 카카오페이지 작품 소개
TS되어 고려 혜종의 혼약자 미래의 의화왕후 임씨로 빙의되어 시작하는 충격과 공포의 파천황적 TS물 대체역사소설이다.막막한 취업의 현실 아래 어느 날, 씽크홀에 빠지게 되고......
깨어나 보니, 자신이 전공한 고려시대 호족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삶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내가... 여자가 되었다고? 게다가 왕건의 아들, 왕무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이 결혼 안 해! 아니, 절대 못 해!!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한 고군분투 파혼(?) 스토리.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 카카오페이지 작품 소개
3. 연재 현황
문피아에서 2022년 2월 4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동년 3월 28일에 유료화가 되었으며, 연재 주기는 월~금 오후 2시이다.2022년 6월 17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본이 발매되었다.
4. 특징
공산 전투 직전에서 작품이 시작된다.[1] 독자들의 이목을 있는 대로 끌어오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간절히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이며, 로맨스 웹소설, 아카데미물의 영향을 많이 받은 TS 착각물 분위기의 소설. 문피아, 카카오페이지, 네이버 시리즈 등 편당결제 플랫폼에서 보기 드문 TS물이다보니 장르 문법을 모르는 독자들이 흘러가는 전개와 주인공의 감정 묘사에 충격을 받는 경우가 꽤 있다. 2022년 기준 마법소녀 아저씨, 망겜의 힐러, 모스크바의 여명, 애기븝미쟝이 되었다와 함께 몇 안되는 편당결제 웹소설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TS 웹소설이다. 완결하지 않은 시점, 흥행 자체는 이전작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지만 댓글창에서 매우 폭발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주인공이 알게 모르게 왕후로서의 빌드업을 쌓아가며 서서히 여성화 되어가는 전개가 일품이다.
남초 성향이 강한 문피아, 그중에서도 보는 사람만 보는 대체역사물 장르임에도 로맨스물로서의 재미가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서 여성 독자 비율이 상당히 높다. 보통 대역물 여성 독자 비율은 10%정도인데 본작만 무려 30% 이상이 나온다.
제목의 전생(轉生)은 일본 라이트노벨 제목에 주로 사용되는 단어다 보니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2]
5. 등장인물
6. 개변된 역사
- 여요전쟁 승리
백두산 분화 및 후진과 요나라의 전쟁을 틈타 북진, 요나라 군을 대파하고 황실 최고 권력자이던 태후 술률평을 생포했으며 승상 술률노숙의 수급을 확보하는 등 대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고려는 발해 영토의 상당부분을 회복하였고, 요나라는 둘로 분열되는 등 양국의 정세가 크게 바뀌게 된다.
한편 후진도 연운 거란이 점유하던 연운 16주 중에 5개 주를 회복해 거란과 맞서고 타 경쟁국에 저항할 군사력을 확보하게 된다. 에필로그 시점에서도 거란이 고려에게 전면전을 시도하려고 수만에 달하는 군세를 모으는 걸 보면하지만 끝내 물러났다거란 자체는 화북 일부와 초원 상당수를 점유한 강국으로 남은 건 맞지만, 끝내 북중국을 통일한 군사강국은 못 되었고, 후진 등의 한족 국가도 남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왕무의 왕권 강화
임연우의 정치공작과 여요전쟁 승리를 비롯한 많은 업적 덕분에 유긍달을 비롯한 호족세력이 넘보지 못할 정도로 왕권이 강해지게 된다. 결국 왕위는 동생들에게 넘어가지 않고 무사히 자식에게 승계되고, 원역사의 혜종 대신 성조라는 묘호를 받게 된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역사적 승자에 속하는 고려 측에 속해 있기에 극적인 역사개변보다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어떻게 숟가락을 얹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다만, 고려가 역사의 승자라고는 해도 조물성 전투 이후 ~ 고창 전투 이전까지는 내내 후백제가 고려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었기에 유금필을 제외한 고려의 수뇌부들은 후백제의 기세등등함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주인공이 장담하는 대로 역사가 흘러가다보니 왕건의 용인 하에 주인공이 이런저런 주요 사건들에 모두 개입하게 된다. 즉, 주인공 본인은 숟가락만 얹으려고 했는데 정작 역사적 사건의 주요 인물이 되는 상황[3]이 펼쳐지는 것.
북벌 성공 이후 에필로그에서는 21세기 시점에서 역사서에 기록된 임연우를 설명하는 내용이라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역사서에 적힌 내용을 통해 몇 가지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 임연우는 특이한 일화가 많아서 후삼국시대 인물 중에서도 특히나 후세에 많은 신화와 전설, 기록이 남은 인물이라 영화, 드라마에 많이 나오며 현대 한국사 시험 문제에서도 자주 나오는 인물이다.
- 임연우의 시호는 '의화태후'였다. 원 역사의 의화왕후(義和王后)와 한자까지 동일한지는 불명. 고려시대 왕후의 시호는 왕의 시호와 한 자가 같도록 해서 혜종의 시호가 의공대왕(義恭大王)이었기 때문에 왕무의 시호에 '의'자가 들어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달리 왕태후의 신분으로 사망했을 때는 시호에 '왕태후'를 붙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왕무보다 나중에 죽은 임연우의 공식 시호는 '의화왕태후'였을 가능성이 높다.[4]
- 사서에서는 임연우를 주로 '임 태후'라고 불렀다.
- 삼국유사에서 '임 태후와 삼십삼천'이라는 설화가 나온다. 여기서 왕무의 묘호가 원 역사와 달리 '성조'였음을 알 수 있으며,[5][6] 왕무가 조(祖)의 묘호를 받을 정도로 고려 왕조에서 중요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태조(왕건) 말기 태조의 어의(주치의)가 정윤비 시절 약초밭의 약초를 캐러 숲에 왔다가 임 태후가 소나무 숲에서 외치는 말을 들었는데, 김씨 성의 흉노 선우가 거란 야율씨의 선조에게 암습을 당해 죽자 야율씨를 멸하겠다고 맹세하고 삼십삼천(이세계)을 거쳐 환생했다는 것이다. 어의는 정윤비가 전생을 기억하는 신인(神人)이라 여겨 태조에게 고했고, 태조는 어의에게 비밀을 지키고 있다가 고려가 거란을 무찌른 뒤에 밝히라고 말하였다. 태조가 이 어의를 잘 챙기라고 유언을 남겼기에 성조는 어의를 궁 밖에서 편히 지내게 하였고, 태조 사후 3년 뒤 거란과의 전쟁에서 이 어의도 종군하여 거란과의 전쟁에서 이기자 성조에게 이실직고하였다. 성조는 그 말을 듣고 "전생에 남자라서 7년간..."이라 허탈해했고, 임 태후는 "선우는 맞는데 이게 제대로 된 뒤처리인가?"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성조와 임 태후는 그때까지 비밀을 지킨 어의에게 큰 상을 내렸고, 이 소문이 민간에도 퍼지게 되었다.[7]
21세기 학계에서는 고려 '황실'에서 고려는 신라를 항복시키고 여진의 귀부를 받아들여 영토와 인구를 급격하게 확장했는데, 이 때문에 고려에 편입된 신라와 여진이 고려에 충성할 수 있도록 해당 설화를 창시한 것으로 본다. 신라 김씨 왕조가 흉노의 김일제를 선조라 자칭했고,[8] 여진족도 흉노를 자신의 전신 중 하나로 여겼기 때문에 고려 사회에 수월하게 편입되는데 도움이 되었다.[9]
이 시기로 가면 왕건과 왕무의 신화는 이미 완성된 이후였기 때문에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 임연우의 전설을 새로 만든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며, 임 태후와 삼십삼천 전설은 고려 조정이 급격히 영토와 인구를 늘리는 와중에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애쓴 증거라 여겨진다. 반대로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의 정사에서는 임연우가 "나는 전생에 김선우라는 남자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말한 원본이 실리지 않았다는 뜻이 되는데, 삼국유사를 보아 처음 전설이 퍼질 때부터 흉노 선우의 환생이라 와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그와 별개로 여진족이 고려에 확실히 귀부했다는 것을 보아 백두산 폭발 예측 때문에 많은 수의 여진족들이 고려에 충성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백두산 피해가 큰 여진족들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여진족들이 귀부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으나, 많은 여진 부족들이 백두산 폭발 트라우마 때문에 친고려 성향이 된 만큼 청나라는 몰라도 금나라는 건국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20세기 말 임연우의 발명품에 관한 수능 문제에서 지동의 문제가 큰 논란을 빚어 이후 수능에서 임연우의 발명품에 대한 문제는 아예 빼버리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사에서 임연우가 지동의를 개발해 백두산 지진을 예측했다고 나오지만 현대 과학계에서 현대 기술로도 불가능한 것을 10세기에 가능하게 했을 리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사학계에서는 거중기와 열기구 개발은 교차검증이 확실해서 정설로 여겨지고, 백두산이 폭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북벌한 것을 보아 백두산 폭발을 이미 예상한 게 아니었냐고 대답했지만 사학계 일부와 과학계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라며, 왕건 말년에 백두산에 척후를 보낸 기록을 발굴하여 왕건 말년에 백두산을 정탐하다 화산 폭발 전조를 발견해서 예측하고 움직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결국 엄청난 소송전까지 간 끝에 평가원은 과학계의 의견을 수용하였고, 임연우의 발명품 문제는 다시는 수능에 출제하지 않게 되었다.
또 고려사가 있다는 점에서 이성계의 왕조인지는 불명이나 왕조와 국호가 한 번 바뀐 적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사'라는 정사 역사서는 왕조와 국호가 바뀐 뒤에 편찬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정황상 몽골 제국의 침공, 원말명초기의 혼란, 홍건적의 난, 일본 남북조시대로 인해 일어난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그대로 일어나서 고려가 쇠퇴했고 이의 나비효과로 왕조 교체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원 역사의 고려는 대체 무슨 싸움을...
- 요사 고려전에서 '고려 무리들이 간교하기 그지없어 끝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원통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요나라의 멸망에 고려가 크게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요사의 문맥을 보아 요사 고려전을 편찬한 사관은 요나라 당대 사서 기록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원 역사의 요사는 원나라가 편찬하였는데,[10] 작중 고려의 역사 개변으로도 몽골 제국의 형성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본작에서도 원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고, 본작의 요사도 원나라가 편찬했을 가능성이 높다.
요사 고려전에 따르면 고려왕 건 말년에 사신을 보냈더니 사신들은 고려왕 건이 풍이 들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보고하였고, 이에 황제가 고려를 걱정하지 않고 중원에 올인했다가 고려왕 왕무와 그 처 임씨가 국경을 넘어 침공해 '돌을 띄워 강을 건너' 요나라군을 격파하였다. 그리하여 고려군이 태후를 사로잡고 요하 동쪽 수천 리를 강탈하였고, 이에 분노한 황제는 오보를 한(...) 사신들을 모두 주살하였다. 요사 고려전은 고려 초 역사의 교차검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고려사에서는 왕건이 거란 사신들을 만난 뒤에도 멀쩡히 정무를 처리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풍에 걸렸다는 요사의 기록은 왕건의 연기로 해석된다. '고려군이 돌을 띄웠다'는 부분은 현대에도 정확한 뜻을 파악하지 못했는데, '돌을 띄웠다'는 기록은 고려사, 삼국사기, 최지몽의 저서에서도 모두 일관적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당대인들의 눈에 그렇게 보일 만한 무언가가 있기는 했다는 것에는 학계에서 동의하고 있다. 아무래도 폭발한 백두산에서 부석을 채취해서 사용했다는 것이 정확히 기록에 남지 않아서 이런 논란이 생기는 모양이다.
- 고려사에서 임연우의 기록을 '임 태후 본기(!)'로 분류하였다.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군주의 정실을 독자적인 본기(本紀)에 넣은 것은 사기의 여후뿐이며,[11] 한국사에서는 사례가 없다. 임연우의 기록을 임 태후 본기로 독자적으로 분류했다는 것은 후대 왕조가 보기에도 임연우가 단순한 왕무의 아내로 간주할 수 없는 존재라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서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는 서술도 그렇고 사실상 공동 황제로 여겨졌던 모양. 원 역사의 한국사 전체를 보더라도 임연우처럼 왕후와 '공치'했다는 기록은 없다는 걸 고려하면 임연우가 얼마나 특수한 사례였는지 알 수 있다.[12]
임 태후 본기에 따르면 40년 동안 성조와 임 태후는 '함께 나라를 다스렸고' 성조가 붕어하자 사람들은 임 태후를 걱정하였으나 임 태후는 담담하게 정무를 처리하며 세종 황제의 즉위를 도왔다.[13] 왕무는 원 역사처럼 943년에 즉위했기 때문에 정확히 40년 뒤에 사망하였다면 982~983년에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원 역사의 성종 재위기에 속한다.[14] 40년이나 재위했다는 점에서 원 역사와 달리 말년까지 안정적으로 왕권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북벌에 성공하고 칭제건원하면서 호족들이 왕무의 권위를 노리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왕무가 칭제건원을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무가 원 역사와 달리 조(祖)의 묘호를 받은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발해 왕자 대광현과 정안국의 열만화를 '군왕으로 책봉하였다'는 작중 서술이 있는데, 왕건이 대왕호를 썼음을 고려하면 일단 군왕 위의 대왕을 쓰다가 내부가 안정되자 칭제건원한 것으로 추정된다.[15] 왕무가 붕어하자 거란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고려가 흔들린다고 여겨 군사를 일으켰고, 임연우가 군무를 못 볼 거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제장(諸將)들을 이끌고 압록강까지 나가자 거란이 그 말을 듣고 회군하였다.
임연우는 이후 국정에 손을 떼고 개경에 내려가 쉬려고 했지만, 세종 황제의 간청으로 계속 평양에 머물며 국정을 조언하였다. 그러다 3년 뒤 임연우가 중병에 들자 개경에 가고 싶다고 하여 친위군 3천의 호위 아래 개경에 돌아가였고, 나주원에 돌아와 "내가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이라 말한 뒤 얼마 후에 사망하였다.“지금 고려 땅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나만큼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야를 만나러 간다.” - 임연우의 유언[16]
당시 궁에 있던 고승들도 임연우의 초연한 태도를 보고 자신들조차 죽음을 앞두고 저리 초연할 수 없다고 감탄하였다 전해진다. - 고려사에 인용된 당대 고려 기록에는 임연우가 없었으면 삼국통일은 어려웠을 것이며, 북방에 나갔을 때 쇳물에 몸을 던지고 돌을 물에 띄워 강을 건너고 고려의 이름을 하늘에 휘날리게 한 공로를 누가 따르겠냐고 기록하였다. 당대인들이 임연우의 공을 얼마나 높게 보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왕무가 죽자마자 주변국들이 임연우를 얕보고 침공했다 임연우가 전방에 나오자마자 물러난 것과, 정무에 물러나려 했지만 후대 황제의 요청으로 정무를 계속 보았다는 점에서 임연우가 당대 고려와 주변국들에게 얼마나 특별하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다.
고려사에 기록된 임연우의 신화적 행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나, 몇몇 부분은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고 지적된다. 예를 들어 화엄종 통합 예언은 황룡사의 장기 대결을 임연우가 꾸몄고 고승 균여를 임연우가 직접 후원해서 해결했기 때문에 일단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예언을 해놓고 뒤에 처리했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신통하다고 여겨진 몇몇 행적들도 현대 과학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임연우의 행적은 교차검증이 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단순히 허무맹랑하다고만은 여길 수 없고 그 아래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7. 미디어 믹스
7.1. 웹툰
8. 기타
- 웹소설 커뮤니티에서는 TS+시어머니 29라는 제목때문에 TS-CM29, CM29, 전생시에미, 시어머니29, 시에미29, 시29, CME29, C29 등 별별 괴악한 약칭들이 한때 난립했었다. 길디 긴 제목과 제각각인 약칭 덕에 서치 난도가 극악이었으나 2022년 6월 이후부터는 cm29 또는 시29[17]라는 약칭이 대세가 되었다. 이 약칭에서 파생된 별명으로 시아버지인 왕건을 지칭하는 'CAB1', 지아비 되는 왕무를 지칭하는 ZAB1, 태어날 아기를 지칭한 BAB도 있다.
- 대체역사물에서는 드문 TS물이라는 특징 때문에 대체역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대체역사물 팬덤 커뮤니티인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보다[18] TS물 팬층이 두터운 DC 장르소설 마이너 갤러리, 아카라이브 TS물 채널 등 커뮤에서 훨씬 더 언급이 많이 되는 거의 유일한 작품이다.
-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과 함께 2022년 혜성같이 등장하여 로맨스가 드문 문피아 대역물에서 대역 로맨스를 표방하면서도 인기를 끈 양대 작품으로 꼽힌다.[19]
- 초반에는 제목의 시어머니 29명이란 구절에 충격과 공포를 호소하는 여성독자들의 덧글도 종종 보이지만 실제로 29명이 우글우글 나오는 건 아니고[20] 시어머니 중 나오는 인물은 한손에 꼽으며 거의 비중도 없다. 한 명과는 아주 여유롭게 유사연애 같은 백합 모습도 보여준다. 중반으로 갈수록 시어머니 열몇 명보다 시아버지 하나가 더 큰 트롤러라는 댓글이 많다.[21]
[1] 연우로 빙의한 시기는 공산 전투 2년 전이다.[2] 한국 웹소설에서는 전생보다 환생이라는 말을 더 널리 사용한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 환생이라기보단 빙의물에 가깝다. 다만 본작의 작가 간절히의 경우 전작인 전생 첫날 수도를 버리다에서도 전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본작도 전작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목을 정한 걸로 추정된다.[3] 유금필의 서라벌 구원이 대표적. 주인공 본인은 유금필이 승리할 걸 알기 때문에 굳이 내려가기 싫어했으나 견훤이 서라벌 조정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후백제를 건국했던 배경 + 공을 세웠던 유금필을 참소 때문에 곡도로 유배보낸 전력 때문에 왕건 이하 고려 수뇌부들은 유금필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어서 유금필과 친분이 있으며 왕권이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임연우를 같이 보내게 된다.[4] 이 전통은 조선 초기까지 남아있어 원경왕후의 첫 시호도 '원경왕태후'였다가 원경왕후로 정정하게 된다.[5] 성조(成祖)인지 성조(聖祖)인지는 나오지 않으나, 정황상 성조(聖祖)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조(成祖)는 중국사에서 영락제 이전까지 사용하지 않았지만, 성조(聖祖)는 당현종이 노자에게 준 묘호이며, 교류가 있었는지는 불명이나 동시대 전촉(前蜀)의 왕연이 주 희진에게 준 묘호라 사용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6] 성(聖) 자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데, 신라에서는 성골(聖骨), 성덕왕(聖德王), 열조 원성왕(元聖王), 소성왕(昭聖王), 문성왕(文聖王), 진성여왕(眞聖王)처럼 불교 또는 무속적인 신성성이 강조되는 인물들에게 주로 사용되었다. 왕무 본인도 독자적인 신화가 있었고, 후술하겠지만 왕무의 처 임연우가 환생을 기억하는 신인(神人)으로 알려져 있었음을 고려하면 군주의 신격화와 결부되는 성(聖) 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7] 삼십삼천 운운하는 건 작중에서 최치원이 죽기 직전 임연우와 대화할 때 "내가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면 믿겠나?" "신라인들은 지금도 김유신이 삼십삼천에서 온 사람이라 믿는다."고 대답한 것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김유신의 지혜가 당대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 삼십삼천의 지혜를 습득했다고 여겼듯이 임연우도 당대인들에게 삼십삼천의 지혜를 습득해서 신기를 부렸다는 뜻이다.[8] 고고학적으로 김씨 왕조는 서북한 고조선인이 3세기 중반 충주 금릉동에 남하했다 4세기 초반 백제에게 멸망하자 사로국에 재이주한 세력으로 보기 때문에 흉노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다.[9] 생물학적인 관계는 없지만 당대에는 여진족들도 불교의 영향을 제법 받았기 때문에 고대 흉노 선우의 환생이라는 것이 마냥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다 여진족들은 임연우가 미래를 예지하거나 거란과의 전쟁에서 기행을 벌이는 것을 보아서 비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10] 원 역사의 원나라는 요나라(요사), 금나라(금사), 송나라(송사)의 사서 전부 편찬했다.[11] 측천무후도 구당서, 신당서 본기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측천무후는 한때 진짜로 황제였다. 황제였던 적이 없는 황후-황태후가 본기에 들어간 것은 여후뿐이다. 중국사에서 황제가 못 되었지만 여후, 황후-태후 시절 측천무후만큼 황제에 준하는 위세를 가졌던 북송의 장헌명숙황후도 끝내 본기에 분류되지 못했다.[12] 원 역사에서 황제와 황후가 공치(共治)했다고 명시된 인물로 수문제-독고가라와 당고종-측천무후가 있으나, 수-당 초기는 선비족 유목 문화와 한족 문화가 섞여있어 선비족 문화의 영향으로 일어난 일이다.[13] 임연우는 원 역사 왕무의 최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4] 왕무는 912년생이기 때문에 71~72세 정도 살았다는 것이 되는데, 원래 왕무가 건장한 체구의 강골이었고 아버지 왕건이 66세까지 살았음을 고려하면 장수했다는 설정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15] 다만 바뀐 왕조가 황제 호칭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며, 고려 말 혼란을 원 역사와 동일하게 겪었다면 바뀐 왕조는 한동안은 황제 호칭을 안 썼을 가능성이 더 높다.[16] ○ 자는 왕무의 이름을 피휘한 것이다.[17] 이쪽도 서치가 힘들어서 사장되었고 사실상 cm29로 대동단결돠었다.[18] 물론 대역갤에서도 2022년 7월 기준으로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 임꺽정은 살아있다, 고려, 신대륙에 떨어지다,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 등의 작품들과 함께 많이 언급되는 인기 작품들 중 하나다.[19] 차이가 있다면 보모나인은 상당히 기존의 여성향 역사물 로맨스 소설에 가깝고, 전시구는 그래도 TS물이라는 장르가 장르이다 보니 남성향인데 로맨스가 섬세하다는 평이다.[20] 작중 시간대가 삼국통일이 되지 않아 시아버지가 정략결혼을 다 하지 않아 역사의 29명이 아니다.[21] 마치 전전작의 제갈량과 마속 같은 구도. 정치질로 보면 전작의 선조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으나 발암이 비교도 안되니만큼 이건 왕건에 대한 모독이다.[22] 문피아 망겜의 힐러 1화 작가 후기에 "삼한제일미소녀 연우쟝이 제게 용기를 주었어요!"라고 언급된다.[23] 여성서사를 중시하게 된 여성향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사도(邪道)에 '작가가 남자냐?'며 매장당하기 딱 좋은 소재고, 남성향에서도 높은 항마력을 요하는 씹덕 장르로 여겨진다. 여러모로 장르 이미지 자체가 판타지 갤러리, 장르소설 갤러리에서 환장하는 남성향 씹덕 이미지가 많이 강해졌다. 과거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도 종종 보이던 장르였지만(체인지, 아슈레이, 태양을 삼킨 꽃, 무법 레이디 등) 최근엔 그 분야에선 멸절하다시피 했고 현재는 남성향뿐이며 그것도 피폐(부디, 레오네라 불러주시길, 그래도 설원입니다)와 인방물((TS)그래도 살아간다.) 등 평범한 로맨스보디는 매니악한 장르로 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