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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소설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가후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2. 특징
현 시점에선 조조의 책사이지만 과거에는 동탁, 이각, 장수라는 동탁 계열 군벌들의 책사였으며 야심보다는 안위를 중요시하는 인물. 때문에 조조에게는 남들보다 더 대하기가 편한 인물이다.조조의 속내를 가장 잘 읽지만, 순욱이나 정욱처럼 조조와 서로 속내를 숨기거나 찔러보는 식으로 반목하진 않는다.[1] 조조가 자신의 속내를 훤히 읽는 가후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가후의 고향인 서량을 조조가 박살낸 데다가, 그 막장스러운 젊은 시절 이력 탓에 세력이라 할 것도 없어서 생각이 달라도 배신당할 염려가 없기 때문. 조조 曰, 숙청하고 싶어지면 적당히 주위를 부추기기만 해도 살해당할 정도로 적이 많다고... 거기다 현대 기준으로도 고령인 70 노인이라 조조보다 11살이나 많기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기도 하다. 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차도살인이 가능하며 그게 귀찮아서 놔두더라도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인물이라 오히려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 물론 조조가 양수한테 그러했듯이 위협이 아니라곤 해도 자기 속내를 읽는 가후를 마냥 편히 여기진 않으나, 어쨌든 가후의 지혜가 필요한데 굳이 불편한 내용을 말로 하지 않아도 눈치채는 것이 편해서 방치하는 것.때문에 후한 찬탈이나 대숙청 등의 악행을 저질러야 하는 말년의 조조는 가후의 지혜를 유난히 많이 빌리고 있다. 작중에서도 찬탈과 숙청 등의 지저분한 일에는 유독 가후가 많이 관여한다.
마인드가 좋게 말하면 근심 없이 오래 사는 마인드고, 나쁘게 말하면 양심 없이 뻔뻔한데 이각, 곽사를 충돌질해 삼보의 난을 촉발한 것부터 시작해[2] 자신의 계책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자신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었고, 자신이 아니었어도 나올 피해였으며,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저쪽에서 이쪽을 학살했을 거라면서 전혀 죄책감 하나 없이 흘려버린다. 살기 위해 양심을 속이거나 그런게 아니라 정말로 문제 의식을 전혀 못 느낀다. 심지어 조위가 흔들리는 기미가 보이자 조조마저 배신하여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다.
사전적인 의미의 사이코패스 내지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인물이라 볼 수 있는데, 보복 정신으로 유명한 법정은 삼보의 난에 말려들어 굶어죽을 뻔한 적이 있어서 가후에게 이를 간다. 단순한 사이코패스인 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혼자 살겠다고 가는 곳마다 대참사를 내는 재앙신 같은 인물인데, 생존을 위해 다른 수법을 택할 법도 한데 꼭 엄청난 파국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사건을 유도하고 본인은 거기에 아무 자각도 없다는 점에서 순수 악 그 자체다.
3. 행적
한중 공략과 서량 진출에 성공하고서 풍등을 날리며 조조 정권을 공격하는 유비에게 대응할 방법을 조언해준다. 바로 헌제의 칙서로 송건 같은 소군벌들을 공격하라 명하는 것. 유비에게 만일 명분도 옳은 헌제의 칙서엔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고민을 안겨주는 계책이었고 이에 유비도 풍등 날리기를 그만둔다.조조가 방치한 사이 유비가 급격히 세력을 키워 서량 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근본적인 조조의 전략(유비 아래 결집한 반대세력의 일소)은 변한 게 없다고 조언해준다. 조조가 진창 공방이 끝난 후에야 병력을 추스려 서량으로 향하면서 위수 이북의 서량 주민들을 강제이주시키자, 자신은 고향이 서량이기는 하지만 일가와 친인들은 이미 서량을 떠났기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답변한다.
서량 전쟁에서는 오장원으로 향한 조창을 보좌하며 황충, 법정과 대치한다. 법정은 본래 관중 미현 태생이나 가후가 불러들인 이각과 곽사의 삼보의 난 때문에 크게 고생했던지라 가후를 비난하나, 오히려 가후는 자신은 고향 서량 주민들이 왕윤에게 학살당하기 전에 선수를 친 것이라고 태연히 답변한다.[3] 이후 전공이 없어 다급해하는 조창에게 황충과 법정의 방비가 탄탄하니 공격하지 말 것을 조언하고 대치를 이어간다. 이흔 조조의 퇴각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속내를 알아채고는 후퇴 명령에 반발하고 있던 조창에게 이는 왕자들을 위한 것이니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한다 조언한 후 퇴각한다.자신의 말을 믿고 조조에게 투항했다 자살'당한' 장수의 아들 장천이 도움을 청하자 매몰차게 거절하면서 장천이 네놈의 꾀를 쓴 사람들의 말로는 모두 안 좋았다고 부르짖자 자신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주제에 왜 저러냐며 배은망덕하다는,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인다.[4] 유비의 촉한왕 등극 소식을 듣고 비웃는 다른 관료들과 달리 이것이 일이 꼬인 것임을 알고 있던지라 마냥 웃지 못한다.
남양에서 결전을 앞두고 민심을 무기로 삼는 유비에게 대응할 방안을 고민하던 조조에게 유비의 부하 출신인 전예를 추천한다. 조조가 묻기 전에 먼저 계책을 내는 법이 없던 그가 갑자기 선수를 친 것인데 유엽은 가후가 만약 조조가 유비에게 패한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각, 곽사를 도와 한 황실을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몰락시키고 헌제가 충신이라 여긴 왕윤을 죽게 만든 가후 자신을 살려둘 리 없음을 알고 생존을 위해 저런다는 것을 눈치챈다. 반대로 말하면 가후의 눈에 보인 유비의 기세가 그만큼 심상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후 조조의 OX퀴즈와 관료 학살을 보면서도 심드렁하게 장맛비가 내린다는 보고에 그깟 비가 어쨌다는 거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이는 강수량이 적은 서량 출신인지라 장맛비의 위험성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그려진다.
결국 홍수로 인해 조조가 총력전을 시작할 때 함께 낙양까지 와서 참모 역을 한다. 그러나 내심 조씨 왕조 개창이란 욕심 탓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다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조조에 대한 반감과, 조조가 돌이킬 수 없는 모험을 하게 된 만큼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 싹트기 시작하고 위풍에게 밀서를 보내, 실패할 거병 계획을 저지시킨다. 이는 단순히 조언이 아니라, 위풍과 장천 등을 손아귀에 넣어 후일 써먹기 위함이라고 한다.
속내야 어쨌든 일단은 충실히 조조의 책사 역할을 수행하나 유비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버티는 것에 의심을 품었다가 유비의 진짜 목표가 따로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이후 조조가 평소와 달리 다급한 것을 목도하며 조조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이후 번성 포위전이 막힌 상황에도 동오가 유비군의 후방을 끊었다면 조조가 이길 것이니, 위풍과 장천을 제거할 방도를 고민했으나 정작 유비가 동오 수군을 대파하고 문빙까지 포섭해 귀환하는 걸 보고 나선 위풍과 장천을 제거할 생각을 접는다.
조조가 남양 결전을 벌이며 막대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을 보고 정말 조조의 수명이 다해감을 확신하고, 이를 기준으로 조조를 계산하기 시작한다.[5] 남양군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위나라 군사들이 촉한의 군사들을 누르지 못하고 대등한 싸움이 펼쳐지자, 분노한 조조 대신에 공략할 방법을 내놓는다. 그것은 과거 모루인 경보병을 뚫지 못하고 기세가 죽었다가 철기에 의해 격파당한 마초의 동관대전을 재현하는 것으로 실제 마초는 조조의 경보병이 선두에 나서자 당황하고 그 사이를 장합이 철기로 들이쳐서 밀어붙이는 데 성공한다.
그렇게 대등하던 전황을 조조의 우세로 기울였으나, 관우와 장비가 각자 허저를 죽이고 조홍을 위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때 조조가 관우를 잡는 걸 포기하면서까지 유비를 쫓아가자 위의 안전을 위해 유비를 죽이려는 것을 눈치챈다. 그래서 조조의 능력 발휘 여부에 따라 결판이 날 것을 확신하지만, 미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조조가 직접 지휘하는 장수와 군사들이 유비를 잡지 못하고 막히자 그제서야 아까부터 느끼던 불안감의 정체를 확인한다. 그것은 위나라 병사들이 조조를 위해 죽기 싫어한다는 것. 과거 자신들이 관군이라 여기고, 상대를 반역당, 도적패라 여기고는 용감하게 싸우던 조조군은 이제 없었고, 신생 위나라군의 병사들은 한-위 교체기라는 극심한 혼란을 겪고는 이번 전장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여기고는 힘이 빠지고 있었던 것. 가후의 짐작대로 유비가 직접 병력을 몰고 돌격해오자 위군은 전력의 고저차 이상으로 빠르게 붕괴한다. 이에 속으로 미덥지 않은 세자를 위해 벌인 도박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이번 전역을 자평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책임질 소재가 생기지 않게 퇴각 의견을 개제하지 않았으며 이후 조조군 1세대 병졸들의 희생으로 기회가 생기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다.
그러나 조조가 토혈하고 쓰러지면서 정욱과 하후돈도 정신을 못 차리자, 유비에게 잡혔다가는 삼보의 난 때문에 죽을 게 확정이라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접 나서서 하후돈에게 퇴각을 지휘할 것을 요청하고 조조의 상태를 숨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때 속으로 조조를 위왕으로서의 호칭인 전하가 아닌 그의 자인 맹덕으로 부르며 사실상 조조에 대한 충심을 버린 모습을 보여준다.[6] 이 나이에 내가 조조 삽질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냐며 조조를 씹은 건 덤.
유비의 강동 정벌이 끝나자 오랜만에 등장하는데 유비가 쳐들어올 날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조씨 일족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자 선대왕이 자식 교육을 너무 잘 시켜 죄다 조조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물려받아 원소 시즌 2를 찍을 것을 예감, 슬슬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며 자신이 준비해놓은 패인 위풍과 장천을 써먹으려 한다.
그리고 촉한의 중신들에게 서신을 보내 모종의 제안을 하고는 본인도 위풍, 장천을 수족처럼 부리면서 작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차라리 가후가 위나라를 정상화시키는 게 낫지 않겠냐는 장천과 위풍에게 이제 조씨 삼형제의 내전은 확정적으로 조조가 살아있더라도 자식들이 싸우는 건 못 막을 지경에 빠르면 3개월 내로 일이 터질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촉한 중신들과 유비가 모인 자리에서 가후의 서신이 밝혀지는데 바로 헌제를 처리해주겠다는 것. 즉 가후가 유비가 황제가 되기 편하게 헌제를 독살할테니 조위를 멸망시킨 후에도 가후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 자리에 대한 야심은 커녕 중원의 미래에 대해 오히려 지방분권형 절도사 체제를 구상하고 있던 유비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가후의 서신을 바로 불태워버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가후는 경악한다.
유비에게 읽씹을 당하고 221년 유비가 생애 마지막으로 35만 대군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자 이번에만 막아내면 촉한도 잦은 전쟁 때문에 국력에 한계가 와서 최소 몇 년은 전쟁을 할 수 없고, 그 뒤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 것이기에 내가 죽을 때까지 편하게 살 수 있다며 기도메타를 돌리고 있다.[7] 그 뒤의 위나라는 알 바 아니고.
그 후 유비가 재차 북벌을 일으키며 곧 죽을 놈을 당장 죽일 이유는 없다며 '가후, 화흠, 치려에게 죄를 묻지 않겠다'는 서신을 업으로 보내 혼란을 일으킨다. 주위 사람들은 과거 가후가 친 삼번의 난 때문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서 들키지는 않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자신이 약점을 잡고 있는 위풍, 장천을 시켜 2천 명의 사병들을 끌어모으는데, 유협이 치려를 통해 과거의 죄를 넘어가줄 테니 자신을 도우라는 밀서를 보내자 유협이 유비 세력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 없어 위나라 세력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해 유비 세력을 견제하려는 것임을 확신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유비는 가후의 예상과 달리 파죽지세로 위군과 선비족을 섬멸하고 업성을 포위했으며, 사마의의 태업으로 업성이 무너지는 때 위풍과 장천, 2천명의 병력으로 유협 본인이 아닌 그 아내와 자식들을 확보한다. 이에 위풍과 장천이 의아해하자 자신만만해하며 속으로 자신의 심계를 밝히는데 바로 조비를 이용해 유협을 차도살인지계하는 것이었다. 유협이 맹탕이 아님을 잘 아는 가후는 유협의 용서가 언제든 뒤집힐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조비에게 조창, 조식 동생들에 대한 증오를 심어서 그가 유협을 살해하도록 조장했다.
이후 수십만 군사와 관료들이 유협의 사망에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미리 유협의 용서하겠다는 서신까지 받아챙긴 자신은 살아날 수 있음을 자신하며 웃는다. 그러나 유협의 죽음에 촉한군이 통제를 잃고 미쳐 날뛰고, 위의 중신들이 폭동에 휘말려 죽어나가는 와중에[8] 가후 자신은 유씨 황족들과 함께 있어서 제갈량이 죽이지 못했다. 원래 유비는 가후도 처리하려 했지만 가후가 후한 황족들을 살려줬다는 말을 듣고 가후가 유협을 죽이도록 상황을 유도했음을 눈치챘지만 어쨌든 가후 덕분에 후한 황족들이 살아남은 건 사실이라 죽이는 건 그만둔다.[9]
가후는 생존을 위해 후한 황족들에게 유비를 황제로 추대해야만 살 수 있을 거라 세뇌했고, 가후의 세뇌에 넘어간 조 태후를 비롯한 후한 황족들이 유비를 황제로 옹립하겠다고 애걸복걸하게 만들어 유비가 처음에는 도망치려 했지만 제갈량을 비롯한 신하들까지 애원하자 결국 지쳐서 될 대로 되라며 황제 즉위를 수락한다.[10] 유비는 어쩔수 없이 가후를 태상으로 승진시키고 식읍 1천호를 내렸으나, 기뻐하며 상을 받던 가후는 갑자기 쓰러지고 그동안 자신의 농간에 죽어나간 유협, 조비, 장수, 이각, 곽사, 왕윤 등 수많은 원혼들이 몰려와 가후의 생명을 거둬간다.
4. 기타
평판이 낮아서 대놓고 친교를 맺진 않아도 지모방략은 모르는 이가 없어 은밀하게 조언을 구하러 오는 이들이 많은데 혹시 모를 분란에 말려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절대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고 불가의 선문답처럼 두루뭉실한 말만 해준다.장수의 아들 장천은 가후에게 조비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도와달라고 했다가 무시당하고 오히려 협박당하자 "네 놈의 꾀를 쓴 자들은 하나같이 끝이 나쁘다"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이에 근 수년간 한실 찬탈과 후계자 선정 문제로 가후의 꾀를 가장 많이 쓰던 조조는 꺼림칙함을 느낀다.[11]
2010년대 삼국지 대역에서는 가후의 능력을 아까워해서 영입해 아군으로 써먹거나, 그저 적장 중 한명으로서 고평가하거나, 아니면 서량이나 장수, 한실과의 관계와 감정을 조명해서 선역으로 전환하거나 하는 등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는데, 본작의 가후는 단순히 유능한 책사가 아니라 능력 자체는 대단히 뛰어나지만 그 입에서 흘러나오는 조언은 모두 후일 감당할 수 없는 부작용을 가져오는 가치관 자체가 뒤틀린 인물처럼 그려진다.[12] 수십년을 한솥밥을 먹은 조조와 위나라에조차 일말의 미련없이, 필요하다면 위의 명줄을 끊을 계략도 꾸미고 있어 조조 다음의 히든 보스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13]
이후 독자들의 추측대로 지 하나 살겠다고 헌제 유협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유비의 대전략[14]까지 완전히 깨부수는 트롤링을 저질렀다.[15] 원래 황제가 되지 않으려고 했던 유비=곽선호가 가후의 꾀 때문에 얼떨결에 황제가 되었을 정도. 게다가 죽음도 유비를 받든 공신으로 상을 받는 자리에서, 실제로는 가후 때문에 죽은 수많은 원혼들이 와서 고통스럽게 숨을 거둬갔지만 겉보기에는 노령으로 인한 자연사로 죽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후대에도 명신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게 답답한 결말. 여담으로 본작의 다른 등장인물들과 달리 초현실적으로 사망한(...) 유일한 인물이다.
주인공의 대계를 망쳤을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 죽음으로 작품 막바지에 삼국지연의 테이스트를 느끼게 하는 등, 의도했든 안했든 주인공과 더불어 최중요인물이 되었다.
[1] 때문에 정욱은 가후가 조조의 속내를 훤히 읽는데도 조조가 별 신경 안쓰는 걸 신기하게 여긴다.[2] 인지도가 낮은 사건이지만 삼보의 난은 후한을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만든 사건으로 지적될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다. 자기안위만을 위한 가후의 무책임한 행동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나쁜 의미로 너무 심각한 게 많아서 가후는 현대 학계에게 조조 이상으로 비판받는다.[3] 법정은 가후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음을 알았으나, 독자들 입장에서는 바로 직전에 조조가 사실상 반죽음을 만드는 꼴인 강제이주를 시켜도 태연히 신경쓰지 않던 모습과 비교하면 자신은 고향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가후의 말을 신뢰하긴 어렵다.[4] 이것을 떡밥으로 보는 이들도 많은데 가후의 꾀를 쓰고 있는 사람에 조조도 포함되기 때문. 실제로 조조 본인도 장천이 저 말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찝찝해하는 묘사가 나온다. 원역사에서도 가후의 말을 듣고 조비를 후계로 골랐다가 결국 조위가 얼마 못가고 사마씨의 정변으로 망했던 걸 생각하면 결국 조조도 가후의 꾀를 따랐다가 망한 셈인데 거기다 이 소설은 유비가 주인공이라 위나라가 원역보다 더 비참하게 망할 것은 확정이라...[5] 남양군에서 학살을 벌이면서 전예가 한차례 단도리 해놓아 아군이 된 형북 호족들의 민심마저 버리면서 사실상 형주를 자기 대에 회복할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6] 중국의 예법으르는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그가 가진 지위로 불러야 하며 자를 부르려면 자신과 동급의 사람이거나 자신이 윗사람이어야 한다. 즉, 지위로 볼때 명백히 조조의 아랫사람인 가후는 작중 시점에서 위왕인 조조를 위왕 전하라고 호칭해야 하며 자인 맹덕을 부를 수 없다. 즉, 직위를 씹고 자를 부른 시점에서 가후는 사실상 조조를 섬길 생각이 없다고 속으로 선언한 것이다.[7] 원 역사의 가후는 223년에 사망했다.[8] 치려는 사면장을 보이며 살려달라 했지만 눈이 뒤집힌 촉한군에게 살해당했고, 사마의 사마부 형제와 유엽은 유비에 의해 사고사를 위장해 살해당했다. 심지어 종요와 왕랑, 진군은 자택에 있었음에도 유비의 살생부에 올라 꼼짝없이 죽었다.[9] 직접적인 묘사는 안 되지만 가후의 남은 수명이 1년밖에 없고 가후의 후손들이 원 역사에서 가후의 악명 때문에 그리 영달하지 못했던 것도 한 몫할 것이다.[10] 다만 유협이 허망하게 가버린 상황에서 남은 황족들 중에서 유비보다 제위에 걸맞는 인물이 없었을 뿐더러 유비의 신하들도 유비를 제위에 올릴 작정이었던지라 가후의 세뇌가 없었어도 남은 황족들이 유비를 옹립했을 가능성이 크다.[11] 가후가 후계자로 추천했던 조비를 가후 본인이 충동질해 유협을 죽이고 자살한다는 최악의 트롤링으로 돌아왔고, 그 결과 위나라의 기틀은 물론 조씨 가문까지 풍비박산나는 최악의 형태로 장천의 독설이 증명되고 말았다. 그리고 가후의 계책에 넘어간 조비는 헌제와 동반자살하는 것으로 조창과 조식의 동귀어진을 노렸으나 유비가 조창과 조식을 사면하는 바람에 가후에게 이용당한 희대의 개죽음이 되고 말았다. 물론 가후 입장에서는 조비가 헌제를 죽인다는 결과만을 얻으면 그만이었기에 조창과 조식은 단지 조비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바람잡이의 역할로 사용했을 뿐이었다.[12] 시쳇말로 현재를 위해 미래를 팔아치우고 자기는 등따습고 배부르게 살면 그만인 인물이라는 것. 또한 본인은 자신의 꾀가 그런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자각조차 없다.[13] 특히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가 조조를 대체할 보스감이 아님을 꾸준히 보여줬고 가후가 유비보다 3년을 더 살았다는 것, 그나마 가후를 제어할만한 조위 내 원로격 인사들인 하후돈과 정욱도 22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점, 손권 역시 이미 대차게 깨진 점, 삼국지 후반의 주인공인 사마의는 가후에게 짬에서 밀리는 걸 생각하면 소설 상에서 조조 사후 실질적인 보스로서는 가후만한 존재가 없다.[14] 유협에게 한나라 정권을 반환하되 유비는 강남왕이 되고 화북은 절도사 체제를 구축하여 5호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100년간의 장기 전략.[15] 다만 유비의 대전략이 소설을 완전히 망치는 원흉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판이라 독자들은 이를 트롤링은 커녕 망해가는 소설을 구한 영웅적 행위로 보고 있다. 절도사 체제 때문에 완결을 향해 달려가던 소설이 간절히의 역대 최악의 작품 중 하나로 기록될 위기에 처했는데, 가후가 절도사 체제의 핵심 인물인 헌제를 차도살인함으로써 절도사 체제를 불가피하게 뜯어고쳤는데 개편된 결과는 독자들이 나름 납득할만해서 내려가던 평가가 완화되었고, 유비의 최후를 잘 묘사한 덕분에 그래도 나름 평작 취급까지 올라왔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