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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22:46:26

황권(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1. 개요2. 작중 행적3. 능력4.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황권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익주 토박이 출신의 군인. 익주의 기재라고 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인물로 유비의 배신을 예상해 눈여겨보고 유장에게 조언하나 유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거기다 유비를 견제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백제성에 동주병을 파병하고자 하나 장송의 여론전에 밀려 동주병에게 경계 대상이 되는 등 마음 고생을 하는 중이며 그의 유능함을 잘 아는 유비는 어떻게든 포섭하고 싶어 한다.

결국 유비의 압박이 현실화되자 자신은 유관장을 이길 수 있으니까[1] 나가서 먼저 싸워야 한다고 유장을 설득한다. 그러나 유장은 일부 병력을 데리고 가는 건 허락하되 주력인 동주병은 끝내 성도에 남긴다.

결국 유비군이 면죽을 넘어 낙성까지 도달해 성도까지 단 한 줄의 방어선만 남게 되어 어쩔 도리가 없게 된 다음에야 황권의 의견이 전부 옳았음을 인정하고 방어 책임을 부여받게 된다. 성도와 유비군 사이를 가로막는 마지막 방어선인 낙성과 광한성을 장임과 나누어 지키며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서 조조나 손권이 유비를 치기를 바라자는, 일종의 비나이다 메타의 작전을 낸다.

관우, 장비가 이끄는 기병이 성도 방면으로 침투했다는 소식을 듣고 법정이 제안한 초토화 작전을 바로 파악하지만 양식을 빼앗긴 백성들이 다소 고통을 겪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성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 그러나 관우와 장비가 백성들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 성도를 향해 진격하자 유비의 한중 정벌 이후로 두 번째로 경악한다.

낙성이 함락되고 자신은 광한성에 갇혀 위태위태한 상황일 때 임상대치가 일어나 기도메타가 성공하는 듯했으나 3개월의 여유 동안 유장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무의미해졌다. 결국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한 뒤 자연스럽게 유비 휘하에 배속된다.

이후 직백오수전 논의 과정에서 도강언 보수 및 시장 관리 인사권이 주어지자 익주의 일을 익주 사람이 정할 기반이 형성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동안 익주 호족들이 동주병들의 깽판에 얼마나 불만이 많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2]

군사 정책 논의에선 법정의 병호제를 지지하였으나 유비는 병호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각하고 징병제를 밀어붙였다.[3]

이민족 기병의 지원을 받은 염행이 서량에서 공세를 시작하자 마초와 관우를 지원할 선발대의 주장으로 임명되어 익주군 1만과 함께 서량으로 떠난다. 이후 진창 공방전에서 관우와 함께 조홍의 견제를 뚫고 진창의 유비군 본대에 합류한 뒤 관우와 함께 도주하는 서황군을 쫓다가 마지막 퇴로를 지키고 선 서황에게 말을 거는 관우에게 답답해하지만 입지 차이가 있어 막지는 못한다. 이후 관우가 건넨 항복 권유에 서황이 응하기는 커녕 불화의 씨앗을 심자 당황하지만[4] 싸움이 시작되고 나선 관우를 제대로 보좌해 서황군의 마지막 저항을 격파한다.

3. 능력

유비 본인은 바빠서 몰랐지만, 유비를 몇번이나 몰아붙일 뻔한 능력의 소유자다. 초반에 장송이 막거나, 유장이 망설이다가 흐지부지 되는 등의 경우가 없었다면 유비의 한중 우선 공략 후 입촉이라는 전략은 황권의 후방 기습으로 인해 크게 실패했을 것이다.

작중 익주군은 동주병을 필두로 실전 경험이 부족해 중원의 정예들과 싸우면 결국 한 수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데, 황권은 예외로 유비가 황권이 동주병 주력 3만 정도만 맡으면 유비고 장로고 박살났다고 장담하거나, 서량에서 마초-관우와 합을 맞춰 조위를 막거나, 오자양장 서황이 황권의 능력을 조위의 양장들에 지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4. 기타

작품 초반에 유비는 유장이 황권을 시켜서 동주병 수많을 처음부터 작정하고 투입시켰으면 유비라도 그냥 죽었을 텐데 끝까지 등용하지 않은 걸 두고 멍청하다고 생각했지만 작품이 진행되면서 왜 황권이 유비를 불신하는지, 그런 황권을 왜 유장은 믿지 못하는지 드러나는데 황권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권이 유장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소설상 묘사로 자주 드러나는데 유장이 좋은 통치자가 아님을 잘 알고, 유장의 비호를 받는 동주병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분쟁을 조장하거나 호족들을 누르려 드는 성격이 아니기에 섬겼으며, 세력이 약한 주제에 천하패권에 뜻을 둔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면 익주인들의 피(더 정확히 말하면 호족들에게 예속된 농민과 물력)로 북벌에 나설 것이 뻔하기에 처음부터 적대적이었던 것. 유비를 물리치고 중원의 군사가 촉땅에 발을 디디면 그땐 두 말 없이 투항할 생각이었다.

즉 유장에 대한 고려 없이 철저히 익주 토착 세력의 이익만 대변하는 것으로 유장 입장에선 몸값 더 비싸게 쳐줄 사람에게 자신을 바쳐 영달을 누리겠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황권이 무슨 옳은 말을 해도 군권을 맡길 수가 없었다.

틀을 깨는 캐릭터 작법으로 유명한 간절히 작가답게 상당히 인상적인 각색을 보여주는데 연의가 만든 비운의 충신 이미지에 작가의 이전작 내마속에서 황권의 아들 황숭이 굉장히 호감형으로 등장했던지라 황권도 당연히 선역으로 나올 거라 예상한 독자들이 많았는데 정반대로 유능하지만 목적을 위해 백성의 목숨은 물론 모시던 주군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냉혹한 면모를 보여줘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당대 시대적 배경과 폐쇄적인 지형인 익주의 토착 호족 출신이라는 점, 황권이 원 역사에서 주인을 여러 번 바꾸는 것에 별 주저가 없던 점을 들어 매우 현실적인 해석이라는 평을 듣는다. 시대적 특성을 감안하면 본작의 황권은 전형적인 지방 토착호족 성향에 가깝다.

물론 황권도 할 말이 있기는 한 게 익주가 후한 말 전란 이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는 거지 유언과 동주병들의 깽판, 이민족들의 난립 때문에 익주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편이었던지라 익주 토착 호족들이 폐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리고 원 역사의 황권은 이릉대전의 패배로 조비에게 항복하기는 했지만 유비와 황권 모두 마지막까지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유비에게 귀부한 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가설도 있다.


[1] 물론 정말 이긴다는 확신은 없었으나, 황권은 이대로는 익주 지방세력이 무력하게 무너질 게 뻔하다고 짐작하고 있기에 자기 목을 걸고 허장성세를 부린 것이다. 다만 유비도 황권에게 동주병 주력군을 맡기면 1만 명 정도의 유비군으로는 못 버틴다 확신할 정도니 2만의 유비군이라도 치열한 혈전을 벌일 수 있었을 것이다.[2] 주인공은 유비가 장로를 몰아낸 이후 익주를 빠르게 복속시킬 수 있던 건 이놈의 동주병들이 큰 원인이었을 거라고 추측했다.[3] 병호제의 비인도성 문제도 있지만 작중 초반에 조조의 병호제로 인한 공포통치도 20년이 넘자 한계가 와서 조조군 사병들이 가족들이 죽든 말든 대규모 탈영을 벌여 조조군이 탈영법 개정을 할 정도로 고민했던 것도 있다.[4] 사실 은근히 황권이 생각하는 것을 콕 집은 상황이라 놀란 것도 있다. 황권은 중원을 기준으로 변경에 서북방 같은 군사력도 없던 파촉 지역의 힘으로 천자를 세워서 파촉이 천하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