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중왕국/제2중간기 제11/12/13왕조 파라오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 Seankhibtawy Seankhibra | ||
|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휘 |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 (Seankhibtawy Seankhibra) | |
| 부왕 | 불명 | |
| 선대 | 불명 | |
| 후대 | 불명 | |
| 묘지 | 불명 | |
| 자녀 | 불명 | |
| 재위 | 이집트 파라오 | |
| 기원전 20세기 초 | ||
1. 개요
이집트 중왕국 11왕조 혹은 12왕조 또는 이집트 제2중간기의 13왕조 파라오이다.2. 증명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에 대한 유일한 고고학적 증거는 아이운 샴스(Ayn Shams)[2]에서 발견된 하나의 상인방이다. 해당 유물은 원래 개인 무덤의 일부를 장식하던 것으로 보이며, 이 파라오가 별도로 알려진 파라오인지, 아니면 13왕조의 다른 파라오의 변형된 이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3. 정체성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의 정체성은 이집트학에서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중왕국 시기에 이와 동일한 이름을 가진 다른 파라오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이 상인방의 양식은 확실하게 중왕국 시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유물에 등장하는 무덤 주인의 이름은 손상되어 있으나, 남아 있는 부분으로 보아 ‘헤니(Heny)’라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다섯 개의 이름으로 구성된 칭호 체계(titulary)를 사용했으며, 그 중 프리노멘이라 불리는 즉위명과 노멘이라 불리는 출생명은 기념비나 유물에 가장 자주 등장한다. 또한 호루스 이름 역시 중요한 명칭 중 하나이다.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는 발견된 유물에서 호루스 이름 ‘세앙크히브타위(Seankhibtawy)’와 프레노멘 ‘세앙크히브라(Seankhibra)’로 나타난다. 이 조합을 사용하는 다른 파라오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18년 기준으로, 동시대에 즉위명 ‘세앙크히브라(Seankhibra)’를 사용한 왕은 13왕조 초기에 재위한 아메넴헤트 6세뿐이다. 한 명의 파라오가 토리노 파피루스 상에 14왕조의 통치자로서 동일한 즉위명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는 동시대의 고고학적 증거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상인방의 정확한 출처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문서화되지 않은 발굴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유물에 처음 주목한 학자는 데틀레프 프랑케(Detlef Franke)로, 그는 이를 아메넴헤트 6세와 연관지었다. 이후 킴 라이홀트(Kim Ryholt)도 제2중간기에 대한 자신의 연구에서 같은 견해를 따랐다. 해당 상인방은 2005년 메이 자키(Mey Zaki)에 의해 완전한 형태로 공개되었으며, 이 역시 프랑케와 라이홀트의 해석을 따르고 있다.
한편, 이집트학자 윌리엄 켈리 심프슨(William Kelly Simpson)은 해당 유물을 11왕조 후기에 해당하는 멘투호테프 4세의 통치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멘투호테프 4세는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파라오다. 그러나 알렉산더 일린-토미치(Alexander Ilin-Tomich)와 같은 다른 학자들은 상인방의 양식에 근거해 이 유물이 12왕조 초기, 아메넴헤트 1세, 세누스레트 1세, 아메넴헤트 2세 재위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세앙크히브타위 세앙크히브라는 아직까지 별도의 존재로는 확인되지 않은 찗게 통치한 파라오일 가능성과, 혹은 상기 언급된 파라오들 중 누군가가 이름을 바꾸기 전 사용한 조기 칭호일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