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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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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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薛罽頭
(? ~ 645)
1. 개요
신라 출신의 당나라 장수.2. 생애
신라 6두품 출신이다.[1]어느 날 친구 4명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각자 자신의 뜻을 이야기하는데, 설계두는 골품제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중국에 유학해 공을 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진평왕 43년인 621년에 배를 통해 밀항하여 당나라에 발을 들였으며, 645년에 당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하자 스스로를 천거해 좌무위과의가 되었다.
이후 주필산 전투에서 적진에 깊숙이 들어가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에 당태종이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나라 사람도 죽음이 두려워 뒤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지만 외국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무엇으로 그의 공을 갚겠냐고 했다. 당태종이 종자에게 설계두의 소원을 듣고 어의를 벗어 덮어주었으며, 설계두를 대장군의 관직에 제수하고 예를 갖추어 장사를 지냈다.[2]
3. 창작물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본인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그의 이름과 동시에 후손이라 자칭한 인물이 나와 당나라의 간첩 역할을 한다. 배우는 이달형. 다소 끓는 목소리에 어리벙벙한 모습을 보이지만 싸울 때는 뛰어난 무인이다.[3]후반부, 흑수돌이 사로잡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혼자 술병을 들고 찾아와 '싸우면서 정 든다던데 칼 몇 번 섞은 것도 인연인가보다, 주인이 달랐을 뿐 네가 싫지만은 않았다'며 술을 나누기도 했고, 흑수돌이 '죽으면 내 머리를 형님들 계시는 천문령 쪽으로 달아달라'고 부탁하자 감정이 복받쳐 술을 들이키다가 "에잇... 다 처먹었네!"하고 짜증을 내고는 흑수돌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같이 슬퍼해주었고 흑수돌이 처형된 이후에는 그를 향해 애도의 자세를 표하기도 했다.
흑수돌과 라이벌 포지션이면서도 그와 더불어 진지한 분위기의 이해고 진영 중 개그 캐릭터로서[4] 드라마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나름 인기를 모았으며 작중에서는 천문령 전투에서 대패하고 패주한 이해고를 피신시킬 시간을 벌기위해 남은 패잔병들을 이끌고 대조영과 대적하다 전사한다.
[1] 실제로 같은 설씨로 추측되는 원효와 설총도 6두품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설계두 본인이 아예 후술할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2] 이때 살아남아 공을 세워서 출세한 또다른 설가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설인귀. 물론 설인귀는 수백년 전 여포 부하였던 설란의 후손으로, 대대로 한족이라 신라와는 관계가 없다.[3] 특히 힘이 아주 대단해서 감옥에 갇혔을당시 쇠사슬을 끊어내버리자, 이해고가 놀라기도 한다.[4] 미모사의 계책으로 몰래 움직이던 계필사문과 퉁소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심하게 처다보며 '오느라 수고했다'며 심드렁하게 말하는 장면 등 단순하고 어리벙벙한 모습 덕에 개그 장면에도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