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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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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의 기원3. 역사4. 칼날5. 힐트(Hilt)6. 고전 세이버와 근대 세이버7. 착용법과 칼집8. 검술과 전투법
8.1. 관련 문서
9.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세이버10. 해당 검의 이름을 딴 무기
10.1. 현실10.2.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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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abre / Saber

근대 유럽을 대표하는 도검.

2. 명칭의 기원

직접적인 기원은 세이버를 처음 사용했던 지역인 헝가리 왕국언어인 szeble이지만 그 이상의 어원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튀르크어를 전공한 폴란드 야기에우워 대학교의 언어학자 마렉 스타쇼스키(Marek Stachowski)의 가설에 따르면 세이버란 단어는 궁극적으로 퉁구스어 *sele-me에서 기원한다. 그는 이 단어가 아바르족에 의해 유입되었거나 몽골 침공 이후 유입된 킵차크어에 의해 헝가리어로, 다시 독일어와 폴란드어로 전파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알렉산더 보빈은 이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퉁구스어족의 분기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퉁구스어 *sele-me에서 *sele "쇠"가 고대 한국어, 정확히는 고구려어 *sVli을 차용했다고 보았다. 보빈의 가설에 따르면 세이버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대 한국어에서 을 뜻하는 "쇠"가 몽골에 의해 유럽에까지 전파되어 만들어진 단어인 셈이지만 이 역시 확정된 것은 아니다.

3. 역사

세이버의 기원은 8~9세기경 프랑크 왕국의 변경, 지금의 오스트리아 지방을 침공한 마자르족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스텝 지방에서는 중국의 당태도(唐太刀)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미약한 휨을 가진 외날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마자르족은 기마민족으로서 스텝 지방에서 온 민족인데 동프랑크 왕국 침공이 동프랑크 왕국의 반격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좌절됨에 따라 지금의 헝가리 지방에 눌러앉아 살기 시작했다. 현재의 헝가리는 이들의 직계 후손이다.

헝가리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유럽의 군사문화를 받아들여 중세 내내 유럽식 아밍 소드(Arming Sword)를 사용하고 기존 유럽식의 갑옷을 입는 등 서서히 유럽국가의 일부로 녹아들었으나 기마민족 특유의 '곡도'와 '마상 활쏘기'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헝가리의 국기(國技)는 '전통 활쏘기'이며 국민 대다수가 향유하고 있다.

그랬던 헝가리에서 곡도의 전통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당대의 강적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발발한 대략 15세기부터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유럽식의 중기병 충돌 전법보다 중기병과 경기병을 혼용한 전술을 사용하고 기병의 전략적 기동전이나 경기병들에 의한 통상 파괴전 등을 병행했기 때문에 이에 맞서 기병 전술의 변화가 필요했다. 서유럽식을 지향하던 기존의 병법으로는 이에 모두 대응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다시 헝가리 전통의 병법이 부활하기도 했고, 또 오스만 제국을 통해 튀르크 문화가 전파되면서 곡도의 비율이 다시 높아지는데, 이때의 곡도를 사블라(Szabla)라고 부르며, 이 단어가 세이버라는 이름의 어원이 된다. 이때의 사블라는 훗날의 세이버와는 달리 단순한 십자형의 크로스가드(Crossguard)가 있으며 이슬람세계의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 손잡이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17세기에 이르러 중기병과 경기병이 나뉘어지고 기병의 전략적 기동이나 통상파괴전 등의 전법이 일상화되어 있었으나 유럽적 전통에 따라 기병의 도검은 여전히 중세 아밍 소드(Arming Sword)의 전통을 이은 양날의 곧은 브로드소드(Broadsword)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출신의 기마용병들에 의해 동유럽식 곡도는 경험하고 있었으며 이미 가까운 여러 나라, 즉 폴란드, 러시아 등은 헝가리의 사블라를 받아들여 주력 도검으로 삼고 있었다. 또한 스위스를 통해 유입된 사블라가 서유럽식으로 재해석된 양손도검인 스위스 세이버(슈바이처제벨:Schweizersäbel)로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보병화력의 우위가 명백해짐에 따라 권총과 기병총으로 보병방진과 교전하던 기존의 기병전술이 자취를 감추고 권총이나 검만을 휴대하고 기동전을 벌이는 형태의 전술이 정착된다. 이러한 전술에는 휘어진 곡도가 적당했고, 유럽의 기병 구분이 보다 덩치가 크고 무거운 중기병, 그리고 작은 키에 가볍고 빠른 말을 태운 경기병으로 이원화되면서 경기병에게 휘어진 칼을 주게 되는데, 그 롤모델은 폴란드와 헝가리의 동유럽 기병대였으며, 헝가리의 검과 검술을 도입함에 따라 유럽 전역이 사블라(szabla)를 채용하게 되면서 이 사블라라는 단어가 변형되어 세이버로 읽히게 된다. 근대 유럽의 대표 도검이 되는 순간이다.
파일:external/i79.photobucket.com/Saber-resized.jpg
예도로 세이버를 착용 중인 미합중국 공군 장병
18세기 이후의 군용 도검은 전통적인 서유럽 도검의 형태를 유지한 소드(Sword)와 휘어진 형태를 가진 세이버(Saber)로 이원화되며, 세이버도 직도형, 곡도형, 반곡선형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지게 된다.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총기의 발전 때문에 더이상 기병의 기동전과 도검이 이전보다 입지가 좁아지게 되면서 보병검술로써의 면 또한 커지게 됨에 따라 넓은 날을 가진 기존의 형태와는 다른 점차 좁아지는 칼날 폭과 거대한 컵가드를 가지게 되며 곡률이 크게 줄어드는, 요컨대 현대 펜싱 사브르와 비슷한 형태 또한 등장하게 된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을 선두로 찌르기 위한 세이버가 채택된 이후 1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세이버는 실전에서 완전히 물러나고 다만 예식용으로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4. 칼날

세이버의 칼날은 매우 다양하다. 일단 칼날의 휘어짐을 살펴보면 휨 0cm 내외의 직도 칼날에서부터, 1~3cm 정도의 반곡선 칼날, 3cm 이상의 휨을 가진 곡선 칼날 등 그 휘어지는 정도가 제각각이며, 날이 선 경우를 보아도 칼날이 칼끝부터 1/3정도가 양날인 펄스 엣지(False Edge)인가, 혹은 완전한 외날인가로 하여 나뉘게 된다. 휨이 없을수록 찌르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졌으며, 휨이 클수록 베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졌다. 반곡선형은 베기와 찌르기 모두에 절충된 형상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는 베기에도, 찌르기에도 그저 그렇다는 평이 많았다.

흔히 False Edge는 찌르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펄스 엣지를 채용한 대부분의 세이버가 곡선/반곡선형이 매우 많고, 따라서 날의 형태가 찌르기에 적합한 스피어 포인트(Spear point), 즉 칼끝이 칼날의 중앙축에 있어 좌우대칭인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찌르기에 최적화된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앞부분 양날은 베기에 저항을 발생시키는 칼등이라는 요소를 배제하여 연한 물체를 베는 데 더욱 성능을 높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휨각이 크고 앞부분에 펄스 엣지를 갖춘 세이버의 경우 베기 외에도 보병을 내리찍는 데 유용했다는 설도 있다.

세이버는 칼날을 파내어 경량화시킨 혈조(Bloodgroove)가 칼날의 2/3을 차지하고, 실제로 적을 베는 부위인 칼끝에서 1/3위치까지는 양날이며 혈조가 없다. 칼날의 두께는 가드쪽이 7~8mm에 달할 만큼 두껍지만, 칼끝 쪽은 5~2mm 정도이다. 벨 때의 저항을 줄이면서 칼날의 무게중심이 자루 쪽으로 오도록 한 조치이다. 칼날의 폭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경우도 있으나 효과적인 베기 성능을 위해 P1796 경기병도처럼 끝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퀴레시어 세이버처럼 찌르기를 전제로 한 직도 세이버의 경우 혈조가 칼날 전체에 있으며 그것도 한 면에 2개씩 파져 있다. 칼날의 길이는 기병용의 경우 보통 32~33인치(81.3cm~83.8cm) 정도로 일본도 기준에서는 장척도(長尺刀)에 해당하는 큰 길이다.[1] 개중에는 36인치(약91cm)에 달하는 칼날을 가진 것들도 존재한다. 보병 장교들이 사용하는 종류는 편의성과 컨트롤을 중시하여 30인치(76.2cm) 정도의 칼날 길이를 가진 것도 있다. 퀴레시어 기병들이 사용하는 찌르기를 전제로 하는 세이버는 칼날 길이만 90~99cm에 달하기도 했다.

곧은 칼날은 프랑스 퀴레시어[2] 기병도나 영국 P1796 중기병도, 프랑스 용기병도와 같은 비교적 중기병에 해당하거나 도보 전투를 전제로 하는[3] 기병들에게 주로 주어진 칼날이었다. 프랑스 퀴레시어의 경우는 베기보다 한 템포 빠르다고 여겨진 찌르기를 전제로 한 직도 세이버였으며, 다른 도검보다 한층 더 길다. P1796 중기병도는 중기병의 전제에 걸맞게 곧고 넓은 칼날이 곡도로는 불가능한 강력한 타격력과 충격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만들어진 것이다. 대체적으로 곧은 칼날은 찌르기를 전제로 하거나 혹은 곧은 칼날에서 나오는 강력한 타격력을 생각하고 만들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찌르기를 전제로 하는 곧은 칼날의 세이버는 실전용 세이버의 최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미육군 M1913 패튼 세이버나, 영국군의 P1908에서도 채용되는데, 모두 찌르기를 전제로 하는 세이버였다.

크게 휘어진 칼날은 주로 경기병이나 엽기병과 같이 기동전, 추격전을 장기로 하는 기병대들에게 주어졌다. 휘어진 칼날은 고속으로 진행하면서 물체를 벨 때, 그 반작용을 휘어진 칼날을 통해 상당부분 대각선으로 흘려내어 기수와 칼에 전해지는 충격을 덜하게 만들어주며, 그와 함께 칼날이 미끄러지면서 절삭력을 강화시키는 Slice작용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적에게 안겨주게 된다. 고속 전투에서 곧은 칼날은 반작용을 거의 다 받으므로 칼을 놓치거나 낙마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이러한 휘어진 칼날의 세이버는 대부분 고기동을 전제로 하는 기병대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대개 세이버 하면 떠올리는 것들이 바로 이 곡선형 칼날을 지닌 것으로 이 계통에서는 영국군의 P1796 경기병도가 명불허전의 명작으로 유명하다.

반곡선 형태는 이 두가지의 절충형으로 나온 것인데, 곧은 세이버가 타격력과 찌르기에서 낫지만 부드럽게 베지 못하고 반작용에 의한 충격으로 떨어트릴 우려가 있고, 휘어진 세이버는 베기에는 좋지만 찌르기와 타격력에서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1~3cm정도의 적당한 곡률을 채택한 것이다. 말만 들으면 다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좀 어중간한 면이 있었고, 강도를 추구하기 위해 파이프백[4]이 붙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베기성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M1840 중기병 세이버M1850 야전참모도 등이 이런 곡률을 채택했다. 특히 보병장교도 같은 지상전용 세이버가 이런 곡률을 채택한 경우가 많았는데, 마상에서의 속도와 위치에너지를 활용하기 어려운 보병검술에서는 너무 휜 칼은 타격력이 적어서 오히려 살상력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또 찌르기가 용이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M1902 세이버허턴 세이버같은 도보 결투를 전제로 한 세이버들도 이러한 곡률을 채택하였다.

5. 힐트(Hilt)

힐트(Hilt)란 손잡이와 가드를 포함한 손잡이 부분 외장을 총칭하는 것이다. 초창기 마자르인들이 들고 온 사블라는 당시의 유행을 따라 간소화되어 있었으며 이미 한손으로 사용하면서 손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칼자루가 굽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세이버는 이슬람세계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식의 크로스가드를 가지고 있었으나,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손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어 여러 종류의 힐트로 나뉜다. 크로스가드만 달린 오픈힐트(Open hilt), 손을 보호하는 너클 보우가 칼자루 끝과 완전히 연결된 클로즈드 힐트(Closed Hilt), 너클 보우가 칼자루 끝과 연결되지 않고 조금 떠 있는 것을 하프 클로즈드 힐트(Half closed hilt), 그리고 단단한 금속제 막대기 대신 쇠사슬 줄로 너클 보우를 만든 것들도 있었다.

동유럽에서는 17세기의 힐트의 전통이 유지되는 경향을 보였으나 서유럽에서는 단순히 쇠막대기 1개뿐인 전통적 너클 보우[5]에 만족하지 않고 3개의 바를 사용하거나 하는 식으로 손방어에 보다 신경쓰는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17~18세기에는 브로드 소드의 바스켓힐트를 도입한 물건도 있었다.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이탈리안 펜싱에서 영향을 받아 커다란 컵가드를 부착하여 손방어가 보다 완전해진다. 이러한 조치는 일장일단이 있는데 너클 보우가 간단하거나 오픈힐트라면 결과적으로 무게가 줄어들고 무게중심이 앞으로 나가므로 타격력이 좋아진다. 컵가드나 복잡한 가드를 장착하면 그만큼 손방어가 좋아지지만 무게중심이 뒤로 빠지므로 타격력이 약해지는 감이 있고 전체 중량도 늘어나게 된다. 19세기 중반 이전의 고전 세이버(Classical Sabre)는 전자를 보다 중시한 감이 있고, 19세기 중반 이후의 근대 세이버(Modern Sabre)는 후자의 경향이 강해진다. 이탈리안 펜싱의 검술경향을 받아들였기 때문.

손잡이(Grip)는 헝가리 사블라(Szabla)의 경우 풀탱[6][7](Full Tang)방식도 있었으나, 손에 전해지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문제 때문에 히든탱[8] (Hidden Tang)방식이 주종을 이루었다. 예로부터 히든탱 방식은 쓰다가 손잡이가 부서지거나 할 수 있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세이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손잡이 문제에 대응하였다.

가령 손잡이의 황동 혹은 철제 판인 백플레이트(Backplate:背金)는 물체와 충돌시 많은 압력을 받는 칼자루 등 부분을 보강하며, 이것이 슴베와 가드와 연결되어 하나의 견고한 칼자루 보강 금속판 체제를 형성한다. P1796 경기병도32식 부사관도 같은 경우는 여기에 측면 리벳까지 달아놓아 손잡이에 가해지는 충격을 사실상 백플레이트가 모두 받아내므로 목제 손잡이가 쪼개질 염려가 없다.

백플레이트가 없다 하더라도 나무 자루에 가죽이나 어피를 감고, 그 위에 황동 철사를 단단하게 감아 보강하기도 한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황동 철사가 감김으로써 백플레이트와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된다.[9] 개중에는 황동줄과 백플레이트를 둘다 끼운 것들도 있는데, 이 경우의 내구성은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구군도를 비롯해 이런 종류도 제법 볼 수 있다. M1840 중기병 세이버 이후의 미육군 세이버는 상당수가 백플레이트 없이 황동줄만 감았다.

개중에는 황동을 통짜 주물로 떠서 손잡이를 만든 경우가 있는데, 보병이나 부사관 등에게 지급되는 도검들 중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내구성은 더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쓸데없이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손잡이의 길이는 대부분 10cm대 초반이다. 한손으로 쓰는 칼이니만큼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구 일본군의 경우는 신군도제정 이전의 구군도의 경우 세이버 외장을 유지하면서도 일본 검술로 사용할 수 있게 손잡이를 18~26cm까지 늘려놓은 양손 세이버를 사용하기도 했다.

6. 고전 세이버와 근대 세이버

세이버는 크게 19세기 중반을 기준으로 고전 세이버(Classical Sabre)와 근대 세이버(Modern Sabre)로 나뉜다. 고전 세이버는 흔히 알려진 전쟁용의 넓은 칼날을 가진 세이버이며, 근대 세이버는 마치 펜싱검처럼 생긴, 폭이 좁은 칼날을 가진 물건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19세기 중반에 크게 발전한 총기의 위력을 들 수 있다.
파일:나폴레옹검.jpg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사브르
나폴레옹 전쟁 시대만 하더라도 강선을 판 라이플은 장전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므로, 대규모 집단전에서는 불리했다. 그래서 강선이 없는 머스킷이 주력으로 사용 되었고 70m를 넘어가면 명중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사거리 밖에서 근거리까지 신속히 도달만 한다면, 여전히 기병과 그들의 세이버가 활약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구경이 약간 작아지고 강선총에도 장전하기 쉽고 발사할 때는 화약의 압력으로 뒷부분이 퍼져 강선과 맞물려 회전이 되는 미니에 탄이 개발되면서 전 서양군의 총기가 모조리 강선총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유효사거리는 70m에서 200m이상으로 크게 길어졌으며, 발화방식 역시 플린트 락(부싯돌 방식)에서 퍼커션 캡(뇌관 방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발사속도도 늘어나, 이 시대의 대표적 전쟁인 크림 전쟁에서 기병들은 그 무력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을 넘기는 시점에서는 마침내 총구가 아닌 총열 뒤에서 직접 총탄을 장전하는 후장식이 등장하고 발화방식도 퍼커션 캡에서 뇌관식으로 바뀌면서 전통적인 기병들의 입지는 더더욱 추락하게 되며, 이에 따라 세이버라는 도검 자체도 과거의 격렬한 기병 검투에서 사용하던 내구성과 저지력 위주의 설계보다는, 비교적 경량화된 설계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술적 환경 변화와 더불어 근대 세이버의 등장 배경으로 이탈리안 펜싱이 있는데, 이탈리안 펜싱은 전형적인 민간 검술로써 당시 유럽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특히 결투에 특화된 듀얼링 세이버의 규격과 그 검술이 매우 인기가 높았다. 19세기 중후반 내내 수많은 군인들과 검객들이 수련하였는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이탈리안 듀얼링 세이버 검술의 검리가 녹아들기 시작했으며, 앞서 말한 전술적 환경 변화와 함께 총검 백병전도 점점 사라져가는 입장에서 더 이상 비교적 무거운 세이버(그래봤자 1kg내외를 조금 넘는 수준었지만)를 유지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무엇보다 18세기부터 보병장교들의 세이버는 지휘권과 권위의 상징이자, 장교들의 호신무기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여하튼 고전 세이버가 전쟁용의 군용검이었다면 근대 세이버는 호신용의 결투검으로써의 요소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고전 세이버의 날폭이 40mm~25mm정도였다면 근대 세이버는 30mm이하의 날폭을 가졌고, 실전검에서 예도로의 전환의 시작점으로 일컬어지는 미육군 M1902 세이버의 경우 유물을 근거로 할 때 가장 넓은 부분은 22mm, 그리고 적을 실질적으로 베고 찌르는 날 끝부분은 12mm(...)정도라는 심각한 날폭을 지니고 있다. 이정도의 날폭은 레이피어와 동일한 수준. 실제 현대에 생산되는 재생산품을 사용한 베기 결과에 의하면, 종이 박스나 물채운 페트병, 짚단 정도는 생각보다 잘 베이지만, 조금만 두꺼운 나뭇가지도 제대로 자르지 못한다고. 폭은 좁은데 날은 두꺼우니 날의 각이 둔해지고, 가볍다보니 칼날에 무게가 잘 실리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다. 혹자는 살은 베지만 뼈는 벨 수 없는 검이라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탈리안 펜싱의 듀얼링 세이버 검리를 적용한 물건이므로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다룰 수 있으며, 두꺼운 코트를 입거나 하지 않은 인간에게는 충분한 살상력을 가진다. 영국 브로드소드 검술과 이탈리안 펜싱을 수련했던 검객 앨프리드 허턴 대령은 이러한 경량 세이버야말로 쓸데없이 무거운 보통 세이버보다 더욱 다양하게 다룰 수 있다고 평했다.

7. 착용법과 칼집

세이버의 착용법은 크게 나누어 벨트식과 어깨매기(Baldric)으로 나뉘며, 벨트식은 다시 칼집에 연결되는 서스펜션 행어(Suspention hanger)의 숫자에 따라 각각 1,2,3 행어로 나뉜다.

어깨메기는 말 그대로 칼집의 고리에 긴 슬링(Sling)을 연결시켜 핸드백처럼 어깨에 걸어매는 것이다. 칼의 위치를 조절하기 위해 벨트버클이 붙어 있다. 이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별로 많지는 않지만, 러시아의 M1883 소드슬링이 이 방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벨트식은 말 그대로 허리에 메는 벨트에 세이버 칼집에 연결하는 서스펜션 행어(Suspention hanger)를 달아놓은 것. 행어의 재질은 가죽제, 금속제이며, 가죽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장 유서 깊고 대중적인 방식은 2개의 행어가 세이버 칼집에 연결되는 방식인데, 세계적으로도 옛날부터 도검은 으레 이 방식으로 패용했다.[10] 보통 앞쪽의 행어는 짧고, 뒷쪽의 행어는 길기 때문에 패용시 칼자루가 위로 올라가게 비스듬히 패용되는데, 수직에 가까울 만큼 서고, 칼자루가 허벅지께에서 왔다갔다할만큼 길게 내린다. 이는 마상에서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고, 칼을 뺄때 말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위로 올려 뺄 수 있도록 한 것. 그러나 땅에 내려서면 칼집이 질질 끌리는 수준을 떠나 거의 굴러다니다시피 하기 때문에, 앞쪽 행어에는 황동 등으로 만든 갈고리를 부착하여 칼집의 앞쪽 고리를 여기에 걸도록 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칼집이 땅에 끌리지 않고, 땅에서도 쉽게 발도할 수 있다. 갈고리가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는 그냥 들거나, 겨드랑이에 끼우고, 아니면 그냥 땅에 질질 끌고 다닌다.[11] 현존하는 기병대 중 하나인 영국 왕실 근위기병대도 이 벨트식을 쓰며 기병도를 길게 내려서 패용하는데 말에서 내려서 이동할땐 칼이 땅에 안끌리게 모두들 근위대 답게단체로 각잡고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서 이동한다. 행어는 길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벨트버클이 달린 것들도 있었다.

1-Hanger는 말 그대로 칼집을 잡는 행어가 1개밖에 없는 것. 이런 경우는 보통 칼집에도 고리가 1개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어를 채택한 곳은 많지 않은데, 현대에는 미육군의 예도 패용 제식이 그러하고[12] 근대에는 프로이센 왕국군이나 그 영향을 받은 일본 제국군이 명치유신 시절부터 1-Hanger방식을 채택, 1945년 패망할 때까지 고집스럽게 유지했다. 1-Hanger는 행어를 2개 달아봐야 큰 의미가 없고 행어가 1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방식인데 아무래도 안정성이 좀 덜했지만 행어가 1개인지라 거추장스러움은 좀 덜했던 듯. 2-Hanger식 벨트를 유지하던 일본해군의 해군육전대의 경우 1차 상해사변 당시 2-Hanger식 벨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육군의 1-Hanger식이 낫다는 보고를 올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이버 도검의 세계에서 많이 사용되지는 않은 형태이다.

3-Hanger는 사실 세이버에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스몰소드나 듀얼링 소드 등으로부터 유래된 육군 예식도검을 착용하는 데에 더 많이 쓰였다. 모양새는 2-Hanger와 동일한 2개의 행어에, 벨트버클 쪽에서 오는 또 하나의 행어가 칼집 아래쪽의 제3의 고리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 이를 위해 처음부터 3개의 패용고리를 가진 도검들도 있다. 물론 패용고리가 2개만 있어도 앞쪽 고리에 끼우는 것으로 가능하다. 이 방식은 역사적으로는 롱소드레이피어 등의 지상 패용을 전재로 한 도검들을 착용하는 데에 쓰였는데, 2-Hanger방식만으로는 도보에 맞게 처음부터 비교적 짧은 끈을 써도 칼이 왔다갔다하고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앞쪽에서 1개의 행어를 더 오게 하여 칼을 붙잡아줌으로써 안정적으로 패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외에 영국군 Sam Brown Swordbelt처럼 패용 고리가 아닌 가죽Frog에 칼집을 고정하고 칼이 지면과 수직이 되도록 세워지게 패용되는 만들어진 세이버 벨트도 있다. 해군용인 커틀러스의 경우는 거의 이 방식. 기병 한정으로 허리가 아니라 말안장에 패용되도록 만들어진 Saddle Mount라는 장비도 있다. M1913 패튼 세이버의 경우, 처음부터 허리 패용이 아닌 Saddle Mount에 부착하는 것만을 전제로 만들어진 경우이다. 안장에 칼을 패용하는 경우 손위치가 적절한데다 사람의 허리에서 대롱대롱 거리지도 않아서 매우 편한 방식이기도해서 중세에도 가끔 사용되는 패용법이긴 했지만 중세땐 기본적으로 허리에 한자루 차고 보조로나마 안장에 칼 하나 더 달거나 말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낙마 시 무기가 없으면 곤란하기 때문.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M1913 패튼 세이버는 그냥 칼한자루만 안장에 달고 사용했다.

벨트식이라고 해도 단지 허리에 두르는 것뿐만 아니라 벨트에 어깨끈이 연결되는 것들이 많은데, 세이버는 칼집까지 포함하면 2kg에 달하고, 벨트만으로는 한쪽이 내려가 제식이 무너지도 착용이 불편해지며 중량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을 수가 없으므로 어깨끈을 더해 중량을 분산하면서 벨트가 내려가지 않도록 잡아줌으로써 보다 편하게 착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어깨끈이 달린 벨트는 '샘 브라운 벨트'라고 하며 군 간부의 무기가 세이버에서 권총으로 바뀐 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특히 나치 독일군, 구 소련군, 북한군 장교들이 많이 착용하여 한국에서는 '악의 무리들 간부 상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이버 칼집은 가죽에 금속제 도장구를 결합한 것과, 금속제 칼집으로 나뉜다. 특히 많이 사용된 것이 바로 금속제 칼집. 어째서 금속제 칼집이 일반적으로 정착되었는가는 명쾌한 해답이 없으며 단지 발도시 칼날에 의해 칼집이 갈라져 다치는 사고라든가 전투시 사고로 칼집이 부서지는 일 등을 생각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실제로 국내 베기장에서도 볼 수 있는 사고 중 하나.

칼집은 철제와 황동제가 있으며 철제칼집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니켈도금이 실시되었다. 광택과 녹방지를 위한 것이며 20세기에 들면서부터는 다이상 니켈도금도 하지 않고 페인트로 채색하는 방식이 된다. 기도비닉과 위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도로써의 간지가 중요해진 현재에는 다시 니켈도금을 사용한 광을 내는 중이다.

금속제 칼집은 금속제 튜브로 구성된 겉부분과, 안에 들어가 칼날을 금속칼집과 닿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목제의 이너 스캐버드(Inner scabbard), 그리고 칼집 입구 부분이 따로 있다. 금속 튜브로 구성된 칼집 본체에는 다시 패용 고리와 팁 프로텍터가 붙는데, 팁 프로텍터란 세이버 칼집 끝에 보이는 바이올린 같이 생긴 돌출부이다. 땅에 끌릴 때 칼집 본체 대신 갈리라고 있는 몸빵부품. 칼집 본체에 이너 스캐버드를 집어넣고, 빠지지 않도록 칼집 입구부분을 끼운 다음 위아래, 혹은 옆에서 나사로 눌러 고정하여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면 완전한 금속제 세이버 칼집이 완성된다. 다만 이너 스캐버드가 존재하지 않는 칼집들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는 편이다.

금속제라고는 해도 멋을 이유로 본체는 철제이되 팁 프로텍터와 패용 고리, 칼집 입구를 황동으로 만드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으며, 가죽제 칼집에 도장구를 끼우는 방식일 경우 도장구는 황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철제칼집에 블루잉[13]을 한 경우도 있다.

8. 검술과 전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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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관련 문서

9. 나무위키에 항목이 있는 세이버

10. 해당 검의 이름을 딴 무기

10.1. 현실

10.2. 창작물



[1] 현대의 일본도는 대략 하바키(칼날 밑부분의 황동 부품) 포함하여 73~75cm 정도에 28cm 정도의 손잡이를 부착한다. 서양검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짧은 칼날에 너무 긴 손잡이를 부착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과거에는 2척(60.6cm) 이상을 대도로 분류했고 2척1촌(63.63cm) 정도의 칼날을 가진 것들도 많았다. 하바키를 포함하면 63~66cm 정도. 카타나보다 거대하다고 알려진 타치도 하바키 포함하여 75cm 정도이며 84cm 정도면 일본도에서는 상당히 큰 칼인 셈인데, 이걸 한 손으로 휘두르고 다니는 셈이다. 참고로 투핸드소드에 해당하는 노타치의 기준은 칼날 길이 90.9cm 이상이다.[2] 갑옷을 입은 기병, 갑옷이라고는 해도 권총탄 정도를 막는 것일 뿐인 흉갑과 투구 뿐이었다. 사실상 17세기의 전통을 지키는 명예직과 다름없었으며 그 누구도 흉갑이 실전에서 뭔가를 해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나, 나폴레옹은 갑옷을 입고 있음으로써 생기는 기병 백병전 간의 유리함과, 심리적인 안정감, 그럼으로써 더욱 과감한 돌격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하였으며, 퀴레시어를 그러한 용도로 아주 잘 써먹었다. 이들은 항상 용맹하고 과감했으며 기병은 보병을 못 이긴다는 상식을 깨고 러시아군의 보루 2개를 돌격하여 탈취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갑옷이 실전에서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것은 조금은 틀린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총포 기술이 더욱 발전해감으로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갑옷이 도태되어 갔을 뿐 나폴레옹 전쟁 시기 흉갑기병은 칼날이나 권총을 막을 수 있는(유효사거리 밖에서는 부분적이게 포도탄이나 머스켓 총탄도 방호해냈다.) 흉갑을 장비한 덕에 대기병전에서 큰 활약을 했다.[3] 말에서 내려 총쏜다는 관념과는 달리, 실제로는 용기병도 기동전이나 마상전투를 상당히 일상적으로 수행했다.[4] 칼날 중앙이나 등쪽에 불룩 튀어나온 등뼈 같은 걸 지나가게 해서 휘어지는 상황에 저항하도록 내구성을 높인 것. 중간에 장애물이 하나 있는 셈이기 때문에 베기 성능이 제법 떨어지게 된다. 주로 창 등에 쓰이는 방식.[5] 이 가드를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미국에선 D-guard라고 부르기도 하고, 형상에 따라 3-bar guard라고도 부르기도 하고...[6] 칼날의 슴베를 중심에 놓고, 나무 판을 양쪽에 부착해서, 위에서 보면 샌드위치처럼 보이는 방식이다. 칼자루의 여러 방식 중에서도 가장 최강의 내구성을 자랑하는 방식. 그러나 슴베가 노출되어 있으므로 칼날에 받는 충격과 진동을 거의 그대로 받게 되어 손이 쉽게 피곤해지고, 노출된 슴베가 땀 등에 의해 쉽게 녹슬 우려도 있었다.[7] 이슬람 계통에서 풀탱 손잡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 영향을 받은 동유럽에서도 풀탱 세이버가 간혹 존재했다.[8] 칼날의 슴베를 목제 등의 손잡이가 완전히 감싸서 슴베가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방식이다. 모든 도검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는 방식이자, 장검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방식. 이 히든탱이 아닌 도검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를 정도이다. 다만 손잡이가 쓸수록 소모되어 나중에 결국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9] 비슷한 경우로 외부를 균일하게 조이는 물체가 있으면 그 내구성은 엄청나게 강화된다. 가령 덕테이프나 투명 테이프만 감아도 쉽게 쪼개지던 저질 목검도 무시무시한 내구성을 자랑하게 되는데, 특히 나무의 경우 결따라 쪼개지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테이프 등을 강하게 감아 두면 결이 쪼개지려다가도 테이프의 강한 압력이 그런 변형을 저지해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무의 문제점을 보완하게 되는 것이다. 세이버의 황동줄 감기도 똑같은 원리이다. 같은 이유로 서양검도 자루에 마끈을 줄줄 감았고, 또 비슷한 원리로 활이 분해되거나 창자루가 자루를 쪼개고 튀어나오지 않도록 슴베식일 경우 등나무 줄기를 줄줄 감기도 했다. 동남아의 Dha라는 도검도 같은 이유로 등나무 줄기를 감는 경우가 있었다.[10] 서양 롱소드나 중세시대의 세이버는 물론, 이슬람의 도검들, 중국의 도검들, 조선 환도도 알려진 띠돈 방식 말고도 이 방식이 있었으며, 일본의 타치도 이 방식으로 패용했다.[11] 세이버 칼집을 보면 칼집 끝에 무슨 바이올린처럼 튀어나온 게 보이는데, 정체는 땅에서 질질 끌고 다닐때 철제칼집이 갈리다 구멍이 나니, 대신 갈리라고 있는 것이다.[12] 미군의 현용 예도인 M1902는 패용 고리가 2개인데, 이 때문에 사슬 행어는 두번째 고리에 끼우고, 첫번째 고리에 갈고리를 걸어두는 식으로 허전하지 않게 마무리한다.[13] 강철이 달구어졌을 때 수증기를 쐬이면 철과 산소가 반응하여 표면에 시커먼 산화피막을 형성하는 것을 이용하여, 녹이 더 파고들지 않도록 산화피막을 전체적으로 덮는 공정을 말한다. 색깔이 군청색이라서 블루잉이라고 부르는 것. 현대 군용 총기들은 여지없이 이 블루잉 처리가 되어 있다. 현대에는 화학약품을 통한 블루잉이 성행하는 중. 다만 녹을 완전 방어하지는 못하며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게 하는 수준이므로 험한 환경에 방치하면 제아무리 블루잉이라도 녹이 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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