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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루포드 Bill Brufor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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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본명 | 윌리엄 스콧 브루포드 William Scott Bruford |
출생 | 1949년 5월 17일 ([age(1949-05-17)]세) |
영국 잉글랜드 켄트주 세븐오크스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드러머, 작곡가, 프로듀서 |
소속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장르 | 록,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퓨전 재즈 |
사용 악기 | 드럼, 전자드럼, 퍼커션 |
활동 기간 | 1967년 – 2009년 · 2023년 – 현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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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드러머.예스의 창립 멤버이자, 킹 크림슨의 중후반기 멤버로 유명하며, 재즈 밴드 브루포드, 어스웍스와 U.K. 패트릭 모라즈와의 솔로 협업등 다양한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1949년 5월 17일 잉글랜드 켄트주 세븐오크스에서 태어났다.13살 무렵 브루포드는 BBC2의 재즈 TV 시리즈인 Jazz 625에서 미국의 재즈 드러머를 본 후 드럼을 치기로 결심하고, 그 무렵 그의 누나가 생일선물로 드럼 브러쉬를 선물로 주었고, 브루포드는 그의 집 다락방에서 이것으로 악기를 연습하였다. 초반엔 스네어 드럼 하나만 주어졌지만, 점차 드럼 키트를 구성해 갔다고 한다. 브루포드는 훗날 이를 "완벽한 교육"이라고 회상했다.
2.1. 예스 (1968 ~ 1972)
학창시절부터 여러 밴드를 거처간 브루포드는 1968년 멜로디 메이커 잡지에 구인 광고를 통해 존 앤더슨과 크리스 스콰이어의 연락을 받게 된다.이들은 훗날 토니 케이, 피터 뱅크스와 함께 예스라는 그룹을 결성했으며, 이후 스티브 하우, 릭 웨이크먼이 가입하면서 Fragile, Close to the Edge로 예스는 음악적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 사이 브루포드는 Harold Land, Yours Is No Disgrace, Heart of the Sunrise, And You and I 곡 작곡에 기여했으며, 변박을 사용한 35초곡 Five Per Cent for Nothing을 단독 작곡하기도 했다.
밴드에서 그의 역할은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가 종종 고음역에서 베이스를 연주할 때 드럼이 "들리게" 하는 것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특이한 비트 배치와 여러 박자 기호를 포함하는 스타일을 개발했다
멤버들과 출신, 성향 차이, 음악적 견해차이로 멤버들과 갈등을 겪게되어 1972년 Close to the Edge 레코딩이 끝난 직후 예스를 떠나게 되었다.
2.2. 킹 크림슨 (1972 ~ 1974)
위와 같은 이유로 예스를 떠나게 되어 빌 브루포드는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인 킹 크림슨으로 오게 된다.빌 브루포드의 킹 크림슨 가입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당시 빌 브루포드는 예스와의 음악적 견해차이로 힘들어 하고 있었고 기분전환이나 할겸 친구들과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온 폭우때문에 잠시 몸을 말리려 급하게 음악소리가 들리는 어떤 집에 잠시 들어갔는데 그 집이 바로 로버트 프립의 집이었던 것. 당시 한창 잼 세션 중이었던 프립은 빌과 그의 친구들에게 세션에 같이 참여할 것을 요청했고, 거기서 빌이 드럼을 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은 프립은 빌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전화로 빌에게 멤버로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의 극히 건조하고 절제된 드럼 연주는 중반기 이후 킹 크림슨의 음악과 완벽히 부합한다. 로버트 프립이 두 번째로 오래 붙잡아두고 있던 멤버.
브루포드는 킹 크림슨 초반 같은 멤버로 있던 프리 재즈 성향이 강한 드러머 제이미 뮤어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훗날 뮤어가 Larks' Tongues in Aspic 제작 직후 갑작스럽게 탈퇴 했을때, 브루포드의 드럼 세트에는 뮤어 스타일에 퍼커션 세트가 대폭 추가되었다. 1974년 Starless and Bible Black과 Red 발매 이후 더 이상 킹 크림슨 활동의 흥미를 잃은 리더 로버트 프립은 킹 크림슨을 해산 시킨다. 훗날 브루포드는 자신에 연주가 만족스럽게 녹음된 음반중 Red를 뽑기도 했다. 그외 자세한 사항은 킹 크림슨 항목 참고.
2.3. 솔로 활동, U.K. (1974 ~ 1980)
1974년 킹 크림슨 해체 직후 브루포드는 잠시 여러 밴드를 거쳐 활동을 이어갔다.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공의 드러머 로리 앨런이 마약소지 문제로 체포 당하면서 그를 대신해 공의 투어에서 드럼을 잠시 연주하기도 했으며, 이후 1975년 예스의 전 동료 스티브 하우의 Beginnings, 크리스 스콰이어의 Fish Out of Water과 싱어 로이 하퍼의 음반 HQ과 제네시스의 필 콜린스가 참여했던 재즈 퓨전 밴드 Brand X에서 게스트 뮤지션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인연으로 당시 1976년 제네시스에서 탈퇴한 싱어송라이터 피터 가브리엘 대신 기존 드러머인 필 콜린스가 리드 보컬을 담당한 첫번째 음반인 A Trick of the Tail의 투어에서 게스트 멤버로 참여했다. 이는 제네시스가 장기 세션 드러머를 구하기 전까지 대타로 참여한 것이다.[2] 이때 당시 공연 실황은 Genesis : In Concert라는 콘서트 영화로 개봉되었다.
제네시스의 투어를 마치고 브루포드는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도하면서 솔로음반을 준비한다. 이 음반엔 기타의 앨런 홀즈워스, 베이시스트 제프 벌린, 키보드 데이브 스튜어트가 참여했으며, 이 네 사람은 함께 뭉쳐서 브루포드의 이름을 딴 브루포드(Bruford) 라는 이름의 풀타임 밴드가 되었는데 , 여기에는 보컬의 애넷 피콕, 플루겔호른을 맡은 케니 휠러 , 리듬 기타를 맡은 존 굿솔 도 포함되어 있었다..
밴드 브루포드의 첫 음반 Feels Good to Me은 1978년 발매되었는데,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퓨전 재즈 명반으로 인정 받고 있다.
이후 홀즈워스와 함께 킹 크림슨에서 같이 활동했던 존 웨튼, 록시 뮤직 출신 키보디스트 에디 좁슨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U.K.를 결성해서 동명의 음반을 발매 했다. 원래 이전에 릭 웨이크먼과 존 웨튼과 새 트리오 밴드 결성을 계획했지만 웨이크먼의 소속사인 A&M 레코드가 반대해서 무산되었고 웨이크먼을 대신해 에디 좁슨과 홀즈워스를 대려온것이다. U.K.의 음반은 영국 차트 43위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1집 활동 직후 음악적 견해 차이로 브루포드는 홀즈워스와 함께 U.K.를 탈퇴했다.
1979년 밴드 브루포드의 활동을 재개해서 음반 One of a Kind을 발매했다. One of a Kind는 Feels Good to Me 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싱글 커트된 수록곡 Hell's Bells가 유명하다. 이후 밴드 브루포드의 마지막 스튜디오 음반인 Gradually Going Tornado가 1980년 발매되었다.
2.4. 킹 크림슨, 솔로 활동 (1981 ~ 1985)
1981년 기존 로버트 프립과 더불어 에이드리언 벨류, 토니 레빈과 함께 새로 정비된 킹 크림슨으로 돌아왔다. 브루포드는 원래 밴드 브루포드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제프 벌린을 추천했지만 "지나치게 손을 바삐 놀린다" 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킹 크림슨은 1981년 Discipline, 1982년 Beat, 1984년 Three of a Perfect Pair을 발매하고 해체할때 까지 활동했다. 자세한 사항은 킹 크림슨 항목 참조.이 시기부터 브루포드는 기존 어쿠스틱 드럼 셋과 더불어 당시 육각형 드럼으로 유명했던 시몬스(SIMMONS) 전자드럼을 전면 배치하여 연주하기 시작했다.
1983년 이전에 크리스 스콰이어 솔로 음반에서 함께 연주한 바 있는 (당시 무디 블루스 멤버 였던) 키보디스트 패트릭 모라즈와 듀오를 결성하게 되었다. 당시 브루포드는 이미 패트릭을 60년대 예스 시절때 부터 알고 지냈지만, 그의 집이 있던 서리 주 인근에 모라즈의 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자주 만나며 즉흥연주에 대한 취향을 키워나갔다. 모라즈 - 브루포드 듀오는 Music for Piano and Drums (1983)와 Flags (1985) 두 음반을 발매했으며, 2년 사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 투어를 다녔다. 투어가 끝나고 잠시 지미 페이지와 폴 로저스가 있던 더 펌에 합류 제안을 받지만 스타일이 안맞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2.5. 어스웍스 MK1 , 예스 재결성 (1986 ~ 1993)
1986년 10월 브루포드는 재즈 퓨전 밴드 어스웍스 (Bill Bruford's Earthworks)를 결성했다. 멤버로는 색소폰의 이안 발라미, 피아노, 키보드, 테너 호른의 장고 베이츠, 더블 베이스의 믹 허튼으로, 모두 영국 재즈신을 기반으로 활발히 활동해온 뮤지션들이였다. 브루포드는 자신의 시몬스 전자드럼을 전반적으로 활용해서 멜로디나 코드를 연주하는 등 여러 실험을 하기도 했다. 1987년 데뷔 음반 셀프 타이틀 Earthworks를 발매했고 이 음반엔 과거 브루포드 밴드에서 활동했던 데이브 스튜어트가 프로듀서와 일부 신디사이저 연주로 참여했다. 음반 발매 직후 열린 어스웍스의 공연은 호평을 받았다.이후 1988년 투어를 재개했지만 발라미와 허튼 사이 불화와 발라미의 여자친구가 말기암 진단을 받으면서 결국 발라미가 여자친구의 말년을 같이 보내기위해 취소되었고, 마지막 몇몇 공연은 발라미 없이 트리오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후 믹 허튼이 탈퇴했고 스틸아이 스팬의 멤버 팀 해리스가 합류하여 2집 음반 Dig?을 발매했다.
1988년 말 예스의 전 동료 존 앤더슨의 초대로 크리스 스콰이어가 빠진 예스 최전성기 시절 라인업 재결성인 앤더슨 브루포드 웨이크먼 하우(ABWH)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름만 다를뿐 사실상 70년대 예스의 재결성이였다. 브루포드는 처음에 앤더슨에게 연락을 받았을때 앤더슨의 솔로 음반에 녹음을 하는 줄 알았었다가, 공항에서 과거 예스의 메니저 였던 브라이언 레인을 보고 예스의 재결성임을 직감했다고 한다. 브루포드는 베이시스트로 킹 크림슨에서 같이 활동했던 토니 레빈을 초대했다.
1989년과 1990년은 ABWH와 어스웍스 활동을 병행했다. ABWH 투어에서는 브루포드가 스튜디오 음반으로만 참여했던 예스의 Close to the Edge의 수록곡들을 처음 라이브로 연주하기도 했으며, 어스웍스와 마찬가지로 시몬스 전자드럼을 전면에 배치해서 사용했다. 라이브 음반 / 영상이 촬영된 An Evening of Yes Music Plus 공연에서는 토니 레빈이 질병으로 불참하는 바람에 대신 브루포드 밴드에서 활동했던 제프 벌린이 참여하게 되었다.
1990년 ABWH 후속음반을 준비하던 도중 모종에 사유로 기존 예스와 밴드가 합쳐지게 되었다. 브루포드는 이에 반대했지만 결국 합류하여 기존 예스 멤버였던 크리스 스콰이어, 토니 케이와 오랜만에 재회했으며, 그의 후임인 앨런 화이트와 트레버 래빈과 처음 합을 맞추게 되었다. 그러나 이 라인업으로 1991년 발매된 예스의 음반 Union은 완전한 8인 체제 예스가 아닌 ABWH와 기존 예스의 곡들을 섞은 음반이 되었으며, 브루포드는 이 음반에 대해 "그것은 아마도 제가 드럼을 연주할 수 있었던 가장 부정직한 타이틀일 뿐만 아니라, 제가 녹음한 최악의 앨범일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사이 어스웍스의 3번째 음반 All Heaven Broke Loose가 발매되었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예스의 Union 투어를 위해 브루포드는 어스웍스의 투어를 잠시 뒤로 연기했다. 그렇게 최초이자 유일한 8인 체제 예스의 투어인 Union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투어에서 기존 드러머 앨런 화이트가 어쿠스틱 드럼을 전면 배치한 반면 브루포드는 기존 사용했던 시몬스 전자드럼을 전반적으로 사용했다. 둘은 공연 중간에 즉흥 드럼 듀엣을 선보이기도 했다.
6월 15일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에서 앨런 화이트와 드럼 듀엣중 그가 사용하는 시몬스 전자 드럼이 완전히 멈췄고, 임시방편으로 브루포드는 자신의 드럼 키트에서 어쿠스틱 하이햇, 스네어, 심벌즈만 연주했다. 이 사태는 그가 한동안 즐겨 사용하던 전자 드럼에 대한 회의감을 처음 느끼게 했다. 예스 투어가 잠시 쉬는 사이 브루포드는 어스웍스 투어를 이어나갔다. 1992년 까지 진행된 예스의 투어를 끝으로 브루포드는 예스를 다시 탈퇴했다.
1993년 어스웍스 투어를 이어나갔지만, 브루포드는 더 이상 시몬스 전자드럼의 한계점에 부딪혔고 더 이상 이 시몬스 전자드럼이 재즈 연주에 필요한 유연성에 어긋난다는 결론을 내면서 어스웍스를 해산한다.
2.6. 킹 크림슨, 어스웍스 MK2 (1994 ~ 2009)
1994년 브루포드는 킹 크림슨이 재결성하면서 참여하게 되었다. 이전과는 다른 더블 트리오 구성의 6인조였으며, Vrooom (1994), Thrak (1995)을 발매했다. 그러나 로버트 프립과 불화를 겪었고 결국 1997년 사이드 즉흥연주 프로젝트인 ProjeKct One 참여를 끝으로 킹 크림슨을 탈퇴했다. 자세한 사항은 킹 크림슨 참조.킹 크림슨 탈퇴 직후 브루포드는 어쿠스틱 드럼 키트로 다시 돌아갔고, 재즈 연주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다중악기 연주자 랄프 타우너, 빌 에반스 트리오 출신 베이시스트 에디 고메즈와 If Summer Had Its Ghosts 음반을 녹음했으며, 이후 애시드 재즈 밴드 인코그니토 출신의 색소폰의 패트릭 클라하르, 피아노 스티브 해밀턴, 베이스 제프 가스코인과 새로운 어스웍스를 결성했다. 이전에 86년 결성된 어스웍스 MK1은 시몬스 전자드럼과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전자악기가 활용된 재즈 퓨전 그룹이였다면, 1997년 새로 결성된 어스웍스 MK2는 철저히 어쿠스틱 악기 위주의 재즈 그룹이였다. 이 시기 브루포드는 대칭 방식으로 독특하게 구성된 어쿠스틱 드럼 키트를 사용했다.
첫 콘서트 직후 베이스가 마크 호지슨으로 바뀌고 음반 A Part, and Yet Apart을 녹음했다. 이 음반은 다른 멤버 작곡 비중이 높았던 과거 어스웍스의 음반들과는 다르게 브루포드가 거의 모든 곡들을 작곡했다. 이시기 브루포드는 어스웍스의 밴드 리더, 작곡, 드럼 뿐만 아니라 매니저, 예약, 홍보 담당까지 직접 맡아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밴드를 이끌어 나갔다. 이 시기 여러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열었으며 호평을 받았다. 어스웍스 음반은 킹 크림슨의 레이블인 Discipline Global Mobile으로 발매되었다.
이후 퓨전의 대부로 알려진 래리 코리엘과 공연을 가지기도 했으며, 2001년 두번째 음반 The Sound of Surprise를 발매했다. 이 시기 활발한 활동으로 처음으로 재정흑자를 내기도 했다. 이후 칙 코리아와 활동한바 있는 색소포니스트 팀 갈랜드로 교채되었고, 브루포드는 2004년 Discipline Global Mobile 레이블에서 독립해 작은 상호 연관된 레코드사인 Summerfold와 Winterfold를 설립했다.[3] 이후 피아노가 귀림 심콕으로 교체되고 팀 갈랜드가 이끄는 9중주단 더 언더그라운드 오케스트라와 같이 공연을 열기도 했다.
이후 2008년까지 공연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브루포드는 몇몇 드럼 클리닉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더 이상 어스웍스 활동과 비즈니스 운영을 유지할수 없고, 체력고갈과 그에 대한 불안감이 커저만 가면서 브루포드는 2009년 1월 1일 모든 드러머 활동에 대해 은퇴를 선언한다.
2.7. 은퇴 이후, 현재
2009년 음악계에서 은퇴를 선언한 이후 자서전을 작성했으며, 2016년에는 서리 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따기도 했으며, 다양한 기사, 책, 라이너 노트를 작성하고, 유럽과 북미의 대학, 각종 음악 기관에서 초대 강의를 다니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2017년 예스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현액되어 시상식에 참석했지만, 따로 수상 소감이나 기념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021년 들어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추가적인 "생각과 일화"와 함께 예스, 킹 크림슨, 어스웍스, 솔로 작업 등등 여러 활동들 부터 레슨 영상들 까지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다. 프록 팬이나 브루포드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볼 가치가 있으니 들어가 봐도 좋다.
2023년 존 웨튼의 추모 공연에서 특별출연해 공연을 하기도 했으며, 2024년 최근 Pete Roth Trio에 합류하면서 약 15년 만에 라이브 드러머로 복귀하게 되었다.
3. 음악적 스타일 및 평가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록 드러머이자 동시에 명실상부한 최고의 드러머중 한명으로 꼽힌다.
브루포드는 가장 영향을 받은 드러머로서 맥스 로치, 아트 블래키, 조 모렐로 그리고 진저 베이커를 언급한 바 있다. 여기서 보여지듯이 그의 스타일은 재즈에 영향을 짙게 받았으며 즉흥연주적인 성향이 짙었다. 그가 이끌던 70년대 밴드 브루포드나 이후 어스웍스에서 재즈 퓨전 음악들을 선보이며, 프로그레시브 록 뿐만 아니라 재즈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의 드러밍의 가장 큰 특징은 정박과 엇박을 자유롭게 구현하는 특유의 정교하고 절재된 그루브와 파라디들이며 이러한 그의 스타일은 그가 몸담았던 예스와 킹 크림슨의 음악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브루포드의 이러한 드러밍 방식은 이후 러시의 닐 피어트, 사운드가든, 펄 잼의 맷 캐머런, 드림 시어터의 마이크 포트노이, 툴의 대니 케리등 수많은 후대 드러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3.1. 사용 악기
빌 브루포드의 스네어 드럼은 다른 드러머들의 연주에선 들을수 없는 독특한 톤을 가지고 있다.[4] 브루포드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드럼이 마이크가 울리기 전 다른 앰프 악기들과 밸런스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인해 꽤 꽉 조율된 스네어의 헤드 중앙과 림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림샷을 두드려 더 많은 울림을 냈다고 한다.브루포드는 각 연주 마다 다양하고 독특하게 드럼세트을 배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기 별로 사용된 배치가 궁금하면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직접 정리한 자료를 참조하라.
1960년대 70년대 초창기 예스, 킹 크림슨시절부터 브루포드는 루드윅 14x 6½ 스네어와 Zildjia, Paiste 심벌과 댜양한 메이커의 드럼을 이용해 왔다. 이후 킹 크림슨 시절 제이미 뮤어에 영향으로 공, 우드블록, 토킹 드럼 같은 여러 다양한 특수 타악기들을 사용했다.
1980년대부터 브루포드는 육각형 드럼으로 유명한 Simmons 전자드럼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제 브루포드는 Simmons SDS5를 BBC 방송에서 직접 시연할 정도로 Simmons를 많이 애용했으며, 킹 크림슨의 Waiting Man에서 SDS5를 프로그래밍해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 1980년대 말 어스웍스나 예스의 재결성인 앤더슨 브루포드 웨이크먼 하우에서는 스네어와 심벌, 공을 제외하고는 모두 Simmons SDX 전자 드럼 키트를 배치할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5]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브루포드가 킹 크림슨을 탈퇴한 시점 부터 다시 어쿠스틱 드럼 세팅으로 돌아왔다. 브루포드 웹사이트에 따르면 당시 전자 드럼 메이커들이 전문적으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전자드럼보단 내장 사운드 위주의 입문용 가정용 전자드럼을 생산한다는 사실에 좌절했으며, 당시 Simmons가 파산했고, 유지 관리 문제와 프로그래밍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4. 여담
[1] 1976년 제네시스가 장기 세션 드러머를 구하는 1년 동안 대신 라이브 세션 맴버로 활동했었다.[2] 이로서 브루포드는 5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중 3개의 밴드를 모두 거처간 거의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3] Summerfold는 1987년 이후, Winterfold 1987년 이전 브루포드의 음반들을 관리했다.[4] 당장 예스의 명곡 Roundabout만 들어도 그의 독특한 드러밍과 스네어 연주를 느낄수 있다.[5] Simmons SDX는 당시 무려 4만달러나 호가했던 가장 비쌌던 드럼 키트로 Fairlight CMI 같은 샘플러 방식의 거의 유일한 워크스테이션 전자드럼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