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61943,#000000><colcolor=#fff,#dddddd> 앨런 홀즈워스 Allan Holdsworth | |
출생 | 1946년 8월 6일 |
영국 브래드포드 | |
사망 | 2017년 4월 15일 (향년 70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비스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내[1], 아들, 딸 |
직업 | 기타리스트, 작곡가 |
장르 | 재즈, 퓨전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 |
활동 년도 | 1969~2017년 |
소속 | 소프트 머신, U.K. |
레이블 | Manifesto Records |
관련 링크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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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재즈,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섬세한 기교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의 연주로 유명한 퓨전 재즈계의 거장이며 이런 그의 음악 스타일은 에디 밴 헤일런, 조 새트리아니, 잉베이 말름스틴 등 당대 굴지의 기타리스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생애
1946년 영국의 브래드포드에서 태어난 홀즈워스는 음악가였던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며 자연스레 많은 악기들을 접하게 되었고, 17세부터는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으며 후에는 이기 바텀이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프로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이후 nucleus, 템페스트 등의 밴드에서 활동하다 당대의 유명한 키보디스트 에디 잡슨, 베이시스트 존 웨튼 등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인 U.K.를 결성하게 된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 간의 음악적 식견 차이로 홀즈워스는 U.K.를 탈퇴하게 되고, 그 후 같은 그룹의 멤버였던 브루포드와 함께 동명의 밴드를 결성했으나 앨범 1장을 내고 밴드는 해체, 이후 1980년대 말부터는 솔로 활동을 중심으로 음악을 계속한다. 이 시기에 발매된 앨범이 바로 그 유명한 I.O.U.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법한 명반이다.
I.O.U.가 발매된 후 평소에 홀즈워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에디 밴 헤일런은 그가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이에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를 통한 첫 EP인 Road games가 나오게 된다.[2]
이외에도 신스액스라는 기타와 일종의 미디 컨트롤러를 합친 새로운 형태의 악기를 사용하여 여러 앨범들을 녹음했으며,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레이블과 계약한 이후로도 소프트 머신 등 여러 밴드들에서 활동하는 것과 동시에 솔로 활동도 왕성하게 진행하곤 하였으며 북미와 유럽을 광범위하게 순회하며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에 게스트로도 참여하기도 했다.
1990년대 즈음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하여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미국 국적을 획득하였고 결혼까지 하는 등 순탄한 인생을 살아가는 듯 하였으나..
사실 그 즈음의 홀즈워스는 심각한 알콜 중독과 마약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처자식들을 자주 폭행하는 등 심각한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이에 1999년 홀즈워스는 이혼하게 되었고 이후 양육권과 자신의 스튜디오, 음반 수익 대부분을 위자료로 내야 하는 법원 판결을 받고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flat tire 레코딩을 할 때엔 부득이하게 빼앗긴 스튜디오를 빌려 사용하였고, 잠잘 곳이 없어 스튜디오 바닥에서 자며 녹음을 끝마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3]
이후 생활비가 없어 자신의 기타 및 장비 등을 팔며 생활비를 충당하였다고 하며,[4] 때문에 수중에 기타가 한 대도 없어 공연을 하지 못할 뻔한 적도 있었으나 일본의 한 악기점에서 사정을 딱하게 여겨 장비들을 대여해 주어 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의 인터뷰에서는 적은 개런티만 준다면 어디든지 가서 공연하겠다고 말하기도 한 만큼 참으로 궁핍하게 살았으며,[5] 이후로 여러 곡을 작곡하고 앨범 홍보까지 진행했으나, 지병이었던 고혈압과 심장질환이 악화되어 2017년 결국 사망하였다.
그의 사후 그가 소속되어있던 레이블인 Manifesto Records에서는 아카이브된 라이브 앨범 6장을 발매하여 그를 추모하였다.
3. 음악 스타일
그의 작곡 스타일은 주로 인스트루멘탈로 이루어지지만 가끔 보컬이 가미되기도 하며, 특유의 긴 손가락으로 넓은 범위의 현을 운지하는 흡사 피아노 보이싱과 유사한 코드 보이싱은 그의 전매 특허이다.[6]또한 그의 음악은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요소를 결합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였고 리디안, 하모닉 메이저 상행, 하행 등의 스케일에서 파생된 스케일을 차용하여 슬라이드, 해머링, 풀링 등의 다양한 빠른 레가토 주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였으며,[7] 이 결과 특유의 유동적인 리드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피킹과 대조적으로 레가토에 대한 그의 집착의 원인 중의 하나는 피킹과 레가토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의 가장 뚜렷한 음악적 특징은 리버브, 딜레이, 코러스 등의 다양한 이펙터들과 핑거스타일을 총동원한 몽환적이고 어딘가 공허한 느낌이 들면서도 잘 들어보면 마치 관악기같은 느낌이 드는 특유의 기타 톤인데, 이는 그가 그 당시 가장 존경했던 찰리 파커등의 연주 기법에서 따온 것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통해 마치 호른이나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와도 같은 사운드를 내는 것을 추구했던 그의 성향에서 기인한다.
4. 음반 목록
1976: Velvet Darkness1982: I.O.U.
1983: Road Games (EP)
1985: Metal Fatigue
1986: Atavachron
1987: Sand
1989: Secrets
1992: Wardenclyffe Tower
1993: Hard Hat Area
1996: None Too Soon
2000: The Sixteen Men of Tain
2001: Flat Tire: Music for a Non-Existent Movie
2016: Tales from the Vault
라이브
1997: I.O.U. Live
2002: Live at the Galaxy Theatre (DVD)
2002: All Night Wrong
2003: Then!
2007: Live at Yoshi's (DVD)
2018: Live in Japan 1984
2019: Warsaw Summer Jazz Days '98 (CD & DVD)
2020: Frankfurt '86 (CD & DVD)
2021: Leverkusen '97 (CD & DVD)
2021: Leverkusen 2010 (CD & DVD)
2022: Jarasum Jazz Festival 2014 (CD & DVD)
콜라보
1980: Conversation Piece – Part 1 & 2, with Gordon Beck, Jeff Clyne and John Stevens
1980: The Things You See, with Gordon Beck
1988: With a Heart in My Song, with Gordon Beck
1990: Truth in Shredding, with Frank Gambale/The Mark Varney Project
1996: Heavy Machinery, with Jens Johansson and Anders Johansson
2009: Blues for Tony, with Alan Pasqua, Chad Wackerman and Jimmy Haslip (live double album)
2009: Propensity, with Danny Thompson and John Stevens (recorded 1978)
컴필레이션
2005: The Best of Allan Holdsworth: Against the Clock
2017: Eidolon: The Allan Holdsworth Collection
2017: The Man Who Changed Guitar Forever! The Allan Holdsworth Album Collection (box set)
5. 여담
술을 상당히 좋아한다. 이혼 전까지 소유하고 있었던 스튜디오 이름이 brewery(양조장)이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완벽주의에 가까운 소리에 대한 집착 때문에 라이브 음원이 극단적으로 적다. 롯폰기 PIT-INN에서 수록된 라이브 앨범 "All Night Wrong"은 본인이 적절하게 셋팅해 둔 마이크를 식사에 나간 사이에 마음대로 바꿔 격노했다고 한다. 그 때에는 "정말 음악계에서 은퇴할까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비아냥을 담고 제목을 "All Night Long(밤새)"을 바꾸어 "All NIght Wrong(밤새도록 잘못된)"으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일렉트릭 기타 브랜드 kiesel에서 본인의 시그니처 기타 모델인 'fatboy'를 출시하였고, 홀즈워스 본인은 이 기타에 대해 상당히 만족한다는 평을 남긴 적이 있다.
취미는 자전거 조립이라고 하며, 간간히 바이올린도 연주하였다고 한다.
[1] 하술할 이유로 인해 이혼[2] 그러나 정작 홀즈워스는 이 앨범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프로듀서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앨범 성향이 본래 홀즈워스가 지향하는 것과 완전 다르게 나왔기 때문.[3] 이런 자신의 처지를 바닥에 버려진 타이어에 빗대어 명명한 앨범이다. 당시 홀즈워스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4] 하지만 에디 벤 헤일런은 그를 불쌍히 여겨 생활비를 지원해 줬다고 한다.[5] 하지만 이 때문에 적은 개런티로 네임밸류 있는 아티스트를 부를 수 있어 일본,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라이브 행사에서 자주 초대되었다.[6] 이는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디 밴 헤일런의 라이트 핸드 주법도 홀즈워스의 이 주법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7] 흔히 빠르고 화려한 속주 기타연주의 개척자라고 불리는 잉베이 말름스틴도 홀즈워스의 이 주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