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2:06:09

베니스의 개성상인/등장인물

1. 개요2. 16~17세기
2.1. 조선2.2. 일본2.3. 명나라2.4. 이탈리아
2.4.1. 베니스(델 로치 상사)2.4.2. 피렌체2.4.3. 나폴리(나폴리 왕립공작소)
2.5. 스페인2.6. 잉글랜드 왕국2.7. 포르투갈 왕국2.8. 오토만 제국(오스만 제국)2.9. 교황청과 성직자들2.10. 실존인물
3. 20세기
3.1. 한국(정명그룹)3.2. 이탈리아(베니스)3.3. 미국

1. 개요

오세영의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등장인물 일람.

2. 16~17세기

2.1. 조선

2.2. 일본

2.3. 명나라

2.4. 이탈리아

2.4.1. 베니스(델 로치 상사)

2.4.2. 피렌체

2.4.3. 나폴리(나폴리 왕립공작소)

2.5. 스페인

2.6. 잉글랜드 왕국

2.7. 포르투갈 왕국

2.8. 오토만 제국(오스만 제국)

2.9. 교황청과 성직자들

2.10. 실존인물

3. 20세기

3.1. 한국(정명그룹)

3.2. 이탈리아(베니스)

3.3. 미국

3.3.1. 미합중국 해군

CV-61 USS 인디펜던스 항공모함의 함장으로 걸프전에 참전하여 항공모함을 지휘하는 함장. 계급은 대령. 베트남 전쟁에서 라인배커 작전에 동원되어 미그기를 격추시킨걸로 나온다. 작중에서는 로버트슨 대위와 함께 이라크군 미그기를 한 기 격추시킨다.


[1] 원래 안토니오는 자신을 델 로치 상사에 일하게 해준 루이지 델 로치의 은혜를 갚기위해 30년 전쟁에서 투자실패로 위기에 있었던 조르지오를 대표로 앉힌 것이다. 실권없이 그냥 남은 인생 편하게 보내라는 뜻으로. 하지만 조르지오가 끝내 다시 경영일선으로 복귀하고 사업구상까지 하자, 그때까지는 예를 갖춰 대했으나 그 후로 그의 뜻을 꺾기 위해 매우 냉정하게 대한다.[2] 로렌제티 자작이 "내가 에스파냐 왕실의 인척이기는 합니다만, 에스파냐 왕실의 일이 내 일은 아닙니다.라고 했음[3] 이 시기의 나폴리는 예술성이 뛰어난 곳이지만 산업화 등의 경제력에서 밀리는 까닭에 촌놈이라고 무시당했다. 그 때문에 번번이 로마 교황청 진출에 실패했으니 이번 기회를 계기로 베네치아 유리를 앞세워 유리납품에 성공한다면 이를 교두보 삼아 나폴리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4] 어느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전문가를 부르는 칭호. 우리나라식으로 쉽게 표현하자면[5] 승업은 세례성사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다. 만약 승업이 조선으로 돌아갔다면 분명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6] 이때 꽤 있던 노자도 날려 먹는다.[7] 로렌제티 자작이 정식으로 교황청 유리 납품 입찰 경쟁에 응하자,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3세 폐하"의 인척인 로렌제티 자작을 무시할 수 없고, 서류를 갖추어 교황청 사무처에 서류를 제출하여 트집을 잡을 수 없는터라 여장부인 루시아니 공녀가 로렌제티 자작을 설득하려는 협상을 나선 것. 교황청 유리 납품 입찰 경쟁에서 빠진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에 메디치 가에 변제해야 할 이자 200만 두카트를 조건 없이 내년으로 이월시켜주겠다는 것.[8] 성 베드로 대성당 유리 납품 입찰이 나폴리가 로마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것. 예술적 감수성은 풍부하지만 매번 경제 발전도에서 북부에 밀려 촌놈 취급 당하던 나폴리의 서러운 현실을 안토니오에게 제대로 짚히면서 루시아니 공녀의 제안을 거절하고 안토니오의 손을 잡았다.[9] 지금으로 치면 영국 총리의 보좌관이 된 것이었다. 이는 영국 총리의 기원이 재무장관이었기 때문. 총리라는 직책이 영국 정부 내에서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재무장관은 내각 장관들 중에서 수석장관이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총리 역할을 수행했었다. 지금도 재무장관의 의석 서열이 총리보다 높다.[10] 공짜로 준 건 아니고 안토니오의 사르가소해 횡단 정보와 맞교환하되, 은유적인 표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에서 5만 플로린의 군자금을 개신교 연합에 매월 제공하고 있다는 걸 '최근 한 달 사이에 플랑드르만 다섯 번을 왔다갔다 했다.'라고 돌려서 표현한 것.[11] 고증 오류에 가깝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잉글랜드와 오스만이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은 일은 있으나 이것도 잉글랜드가 먼저 제안을 한데다, 고위 공직자들인 대신들의 중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모후의 자격으로 정치에 무관심한 아들 메흐메트 3세를 대신하여 사실상 국정을 운영하고 있던 사피예 술탄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오스만은 지중해에서의 패권을 둘러싸고 베네치아, 스페인과 대립하고 있었는데 잉글랜드는 바로 그 스페인과 앙숙이었으니 동맹으로 얻을 이점도 명확했다. 단 1593년부터 1606년까지 합스부르크 제국과 전쟁이 벌어지면서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같은 기독교도니 다 같이 못 믿을 놈들 아니냐' 라고 보는 공직자들이 많아지고 있었던데다 1603년에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하고 손자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하면서 사피예 술탄의 영향력도 끝났기 때문에 동맹이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다.[12] 육군 참모총장 부관이나 비서실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맞지 않다. 오스만군 하면 예니체리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예니체리는 일종의 특수병으로, 전체 군사의 10퍼센트 안팎인 것이 불과했기 때문. 17세기 초, 중엽인 당시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는 있었지만 그 이전까지 오스만 제국의 주력군은 시파히였으며, 그 밖에도 전쟁 시 무슬림을 상대로 모집하는 자원병인 아자브, 비정규 민병 기병대인 아큰즈 등 다양한 병사들이 있었다. 따라서 예니체리군 총사령관의 부관을 육군 참모총장 부관이나 비서실장으로 생각하는 건 맞지 않으며, 차라리 특전사 부사령관에 더 가깝다.[13] 국교가 이슬람이었던 일 칸국이나 크림 칸국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추가로 데브시르메로 징집되어 교육받으면서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이 이름을 투르크어식으로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에, 몽골어식 이름을 계속 쓴다는 건 빼도 박도 못 할 고증 오류다.[14] 당장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이 외교를 하는가, 아니면 외교부장관이 외교를 하는가? 더군다나 예니체리 사령관은 국방부장관보다도 낮은 자리로, 오스만 제국에서 딱히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과 비교할 만한 지위는 없지만 굳이 들자면 부재상(Vizier) 정도가 있다.[15] 각각 30년 전쟁의 가톨릭 및 개신교의 우두머리다. 안토니오 꼬레아와 만나는 건 아니고 30년 전쟁의 프롤로그에만 등장한다.[16] Deus ex machina,기계장치로부터의 신, 기계장치의 신. 연극에서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와서 어려움이 겪는 등장인물을 돕는 역할을 뜻한다. 한국의 전래동화인 콩쥐팥쥐에서도 콩쥐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두꺼비, 황소, 참새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다. 그래서 독일의 루터교회 대신학자인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는 종교에 의존하는 인간을 비판하기 위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을 썼다.[17] 이는 그의 고용주인 사보이아 공작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가 진작에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를 씹고 전쟁을 하다가 그 고용주로부터 보급이 끊기자 어쩔 수 없이 후퇴하면서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