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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19:48:46

박암

파일:external/file.koreafilm.or.kr/tn_DSHT047866.jpg
성명 박암(朴巖)
본명 박영철(朴泳哲)
출생 1924년 2월 29일
사망 1989년 3월 22일 (향년 65세)

1. 개요2. 일생3. 작품 목록
3.1. 영화3.2. 연극3.3. 드라마
4. 수상 경력5.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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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2. 일생

1924년 2월 29일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서 태어나 1949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1] 본디 그는 치과의사가 되려 했지만 이를 포기하고 6.25 전쟁으로 피난 중인 1951년, 대구에서 28세의 나이로 극단 '신협'에 입단해 연극 무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1962년에는 신협이 민극에 통합되면서 '국립극단'으로 출범되어 그도 그쪽으로 갔다가 1963년 신협이 재건되면서 그곳으로 돌아왔다.

1952년에 대구 자유극장이 제작한 영화 <태양의 거리(민경식 감독)>에 불량아를 가르치는 훈육 주임 역으로 은막에 데뷔하여 1955년 김기영 감독 영화 <양산도>에서 무령 역으로 탁월한 악역 연기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현해탄은 알고있다(1961)>, <고려장(1963)> 등 김기영 감독의 초기작부터 <이어도>,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 김기영 작품에 단골로 나왔다.

1956년에 자유부인에서 장태언 교수 역으로 열연하여 그의 지적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당시 지식층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어 톱스타의 경지에 오르지만, 아쉽게도 신영균,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등 굴지의 남배우들이 크게 부각되는 바람에 그닥 오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이런 연유로 1960년대부터 조연 배우로 변신하여 4백여 편의 온갖 영화에 출연하며 비중있는 주연급 조연들을 주로 맡아 소위 요즘 말하는 '명품조연'으로서 한국 영화사를 풍미했다. 1958년 신상옥 감독 영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의 검사, 1965년 유현목 감독 영화 <춘몽>의 대학교수 등과 같은 지적인 전문직 역할은 물론, 멋쟁이 연인, 자상한 아버지, 암흑가의 보스 등 배역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말년에는 우뢰매 같은 아동영화나, 흡혈귀 드라큘라를 다룬 호러영화에 스님(?)으로 나와 드라큘라를 퇴치하는 역을 맡는 등 이 분야 저 분야 가리지않고 꾸준히 활약했다.

그 외에도 한국영화인협회 연기분과위원회 부위원장(1969~1971)과 위원장(1971~1974)을 맡아 배우와 영화사 간 분쟁을 해결했고, '연예인 새마을축구대회'를 만들어 그 수익을 새마을발전기금으로 서울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영화인 생활 내내 '적이 없는 사람'으로 불린 인격자인 그는 1989년 3월 22일 밤 9시 30분,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6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특히 그는 죽기 전 장성환 감독의 영화 <애사당 홍도>[2]에 조연으로 출연한 상태였으며 영결식은 동월 25일 영화진흥공사 광장에서 영화인협회장으로 거행되었다.

여담으로 이영후 이전에 백범 김구 역으로 이름을 날린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MBC 드라마 제2공화국 ~ 제3공화국에서 박정희를 연기한 배우 이진수는 90년대 스포츠서울에 쓴 연예계 컬럼에서 박암이 죽을 당시를 회고했다. 종교가 가톨릭이던 박암과 술자리를 했는데 유명한 어느 선배 배우가 가톨릭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 고해성사를 하러 온 신부에게 "이보시오...난 평생을 경건한 척 하면서 더러운 짓 다 했소...그래놓고 죽기 전에서야 겁먹고 고해성사를 할 자격이 있겠소? 그냥 안하고 죽겠소. 내가 지은 죄는 저 세상에서 하느님이 알아서 하실테니...."이란 말을 하고 숨을 거두던 걸 언급했다. 박암은 "그 선배 정말 멋진거야! 죽을때 겁먹고 고해성사하는 것들 흔한데 얼마나 멋있냐"라며 칭송했는데 이진수가 "그럼 선배님도 돌아가시면 그럴 건가요?"라고 하자 즉각 물론이라며 답했다. 그로부터 몇 해 뒤, 박암도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박암이 죽을 때 이진수도 곁에 있었는데 박암의 아내가 신부님이 왔으니 고해성사를 하라고 하자 군말없이 한 게 유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없이 이진수를 보며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이진수는 스포츠서울 컬럼에서 "고해성사를 거부하고 숨을 거둔 선배랑 박암 선배랑 누가 더 나은지는 아직도 구별할 수 없다..."라고 회고했다.

3. 작품 목록

3.1. 영화

36년간 총 42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3.2. 연극

3.3. 드라마

4. 수상 경력

5. 참고 자료



[1] 직속 후배 배우로는 신영균이 있다.[2] 1992년 11월 7일 정식 개봉.[3] 홍콩과의 합작영화.[A] 문화영화.[A] 문화영화.[B] 국방부 국방홍보원 제작.[7] 제작 자체는 1987년에 했다.[B] 국방부 국방홍보원 제작.[9] 육군본부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