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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5 10:01:42

대원군(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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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작품상
제6회
(1967년)
제7회
(1968년)
제11회
(1972년)[1]
귀로 대원군 의사 안중근
대원군 (1968)
大院君
파일:대원군 포스터.jpg
<colbgcolor=#444><colcolor=#fff> 감독 신상옥
원작 유주현 《대원군》
각본 이상현
기획 신상옥
제작 이수길
주연 신영균, 김지미
촬영 최승우
조명 김대진
편집 오성환
음악 정윤주
미술 정우택
제작사 안양필림
개봉일 1968년 4월 11일
개봉관 국제극장
관람인원 98,000명
1. 개요2. 출연진3. 줄거리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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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주현의 대하역사소설 〈대원군〉을 원작으로 하는 신상옥 감독의 1968년 개봉 영화.

원작 소설은 1965년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 1967년 단행본으로 나온 후 곧장 영화화되었다.

광복 후 최초의 동시녹음 작품이다. 당시 제작진은 신축된 안양촬영소에서 나그라 녹음기와 지향성 마이크로 동시녹음 작업을 했다고 한다. 광복 전에는 일본인과 공동작업으로 동시녹음된 작품인 최인규 감독의 《수업료》가 있었다. 참고로 동시녹음 두번 째 작품은 김수용 감독의 《봄·봄》.

2. 출연진

3. 줄거리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지 5백년, 이조 말기에 국운이 쇠퇴해지자 김좌근(최남현)을 위시한 안동 김씨 일문의 세도정치가 국정을 좌우하게 되었다. 쇠퇴한 왕실엔 손도 쇠하여 익종대왕의 후계로 왕가의 종친인 흥선군 이하응(신영균)까지도 김씨 일파에 의한 탄압의 대상이 된다. 흥선군은 그 탄압과 제거의 음모를 피하기 위해 방종과 폭주 등으로 바보짓을 가장하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1863년 갑자기 철종(김동훈)이 죽자 흥선군은 자기의 둘째 아들 명복(이풍구-아역)으로 하여금 왕통을 잇게 하는 데에 성공한다. 명복을 왕위에 영봉한다는 전지를 들고 온 자는 흥선군 앞에 꿇어 엎드려 사뢴다. "이제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리실 분은 국태공이신 대원위대감이십니다." 화면은 다음 날 아침 명복과 흥선군이 대궐로 봉영되어 가는 장면에서 대미를 고한다.[2]

4. 수상



[1] 제8, 9회는 중단, 제10회는 수상작 없음.[2] 출처 〈여원〉 1968년 2월호